1. 단상

 

여든 넷인 친정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사람이 늙어 가는 것에 대해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없었으리라. 우리 집 가까이에 사는 어머니를 자주 보면서 나는 관찰자가 되어 인간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늙어 가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글에서 전하고 싶은 건 노인이 되어 겪는 마음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

 


내가 연로하신 어머니에게서 가장 주목한 건 자식과 함께 있는 시간을 꽤 좋아한다는 점이다. 가령 어머니가 집 부근에서 지인들과 노는 시간 동안 내가 어머니의 빈집에 다녀가면 아쉬워하신다. 식탁에 반찬을 놓고 왔더니 왜 당신에게 전화하지 않았느냐고 물으신다. 지인들과 즐겁게 노는 엄마를 뭐 하러 호출하느냐고 내가 말하면, “그래도 딸과 있는 게 더 낫지.”라고 답하신다. 난 아직 자식과 있는 시간보다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더 즐거운 걸 보면 늙지 않았나 보다. 



그다음으로 주목한 건 매일 전화 통화를 해도 내게 할 얘기가 무궁무진하게 많고 말하는 걸 즐긴다는 점이다. 지인들이 전화를 해서 통화를 길게 하면 성가신지 어머니가 지인들에게 “전화를 할 땐 용건만 간단히 하자.”라고 말했다고 해서 내가 웃었다. 내겐 용건만 간단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한 시간이나 통화를 했으니 그만 전화를 끊어야겠다고 하면, “벌써 그렇게 시간이 됐어?” 하고 의아해하며 더 통화하고 싶으신 눈치다. 나보다 어머니가 얘기를 더 많이 하는 데도 그렇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의 관심을 끌기 위해 했던 행동, 중학생 때 옷 사 달라고 했다가 어머니에게 혼났던 일, 고등학생 때 평소 무심해 보이던 어머니가 다정하게 대해 주면 내가 좋아했던 일 등을 떠올리니 지금의 연로한 어머니가 젊은 시절의 어머니와 대조된다.



나의 어머니만 그런 걸까? 늙으신 어머니는 자식을 짝사랑하는 사람 같다.






2. 탈무드















....................

걱정해야 할 사람



그는 전부터 친구에게 많은 돈을 빌렸었다. 마침내 친구의 빚 독촉이 시작되었다. 내일 아침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갚아야만 했다. 그런데 그의 주머니에는 한 푼도 없었다. 

그는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대에서 뒤척거리다가 방 안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내가 물었다. 

“여보, 대체 왜 그러세요? 무슨 근심이 있으세요?”

“내일 빌린 돈을 갚아야 하는데, 한 푼도 없으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소.”

“당신도 참 딱하시구려. 그렇다면 오늘밤 정작 잠을 못 이루고 서성거려야 할 사람은 그 친구잖아요.”


- 이동민 옮김, <탈무드>, 43쪽.

....................


⇨ 걱정이 있고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닐 때는 고정 관념을 깨 보는 게 걱정에서 벗어나는 한 방법이겠다. 



 



3. 도스토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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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겁니다. 자신을 속이고 자신의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이나 주변에 있는 진실을 감지하지 못하며, 반드시 자신이나 타인을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으며 사랑을 멈추게 되면 마음을 달래고 위안을 찾기 위해 애정이 결핍된 상태에서 욕망과 색정에 몰두하여 자신들의 결점이기도 한 야수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 모두가 타인들과 자신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 데서 비롯되지요. (……) 자, 일어나 자리에 앉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 또한 거짓 몸짓입니다…….」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제1부 제2권


  노수도사 조시마가 방탕하고 탐욕스러운 호색한 표도르에게 하는 말. 수도원에서 광대짓을 하여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을 모욕하고 더 나아가 모든 성스러운 것을 모욕하는 표도르의 핵심을 꿰뚫어 보고 있다. 거짓말은 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모욕이다. 스스로를 모욕하는 사람이 과연 무엇을 존경할 수 있겠는가. 


- 석영중,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42쪽.

....................


⇨ 거짓말을 하는 게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고 여긴다면 착각일 뿐,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가 되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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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3 16: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메리 미리 크리스마스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건강하게 보내세요 ^ㅅ^

페크pek0501 2021-12-23 16:03   좋아요 3 | URL
와우!!! 감사합니다. 복 한 바구니 받은 기분이네용^^

페넬로페 2021-12-23 16: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년에 딸아이랑 대화 많이 할 수 있도록 추억 쌓기 자주 하고 있어요~~
페크님!
메리 크리스마스^^

페크pek0501 2021-12-24 12:07   좋아요 4 | URL
좋은 생각이시네요. 젊은 날의 우리 엄마는 저와 얘기를 잘 나누는 엄마가 아니었어요.
중풍에 걸리신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서 힘들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엄마와 친해진 건 제가 결혼하면서 따로 산 뒤부터인 것 같아요. 제가 친정에 놀러가면 막 반기셨죠. 이미 외할머니는 돌아가신 후였죠.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blanca 2021-12-23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어머니 모습 귀여우세요. 탈무드 얘기 발상의 전환 참 좋네요. 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1-12-24 12:08   좋아요 1 | URL
블랑카 님, 오랜만입니다. 반가워요.
우리 엄마가 귀여우신 데가 있답니다. 웃기고 재밌는 부분도 있어요.
어려움에 처할 땐 발상의 전화!!!
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

stella.K 2021-12-23 16: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언니가 누구를 닮으셨나 했더니 어머니를 많이 닮으신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인자하시고 살가우신 분 같습니다.^^
저희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늘 붙어 있어서일까?
그~~다지 살갑지는 않죠.
근데 저한테만 그런답니다. 언니는 그렇지가 않지요.ㅎㅎ
그러고 보니 오늘쯤부터 크리스마스 인사를 해도 좋겠군요.
크리스마스 잘 보내십시오.^^

페크pek0501 2021-12-24 12:13   좋아요 4 | URL
우리 엄마는 살가우신 분 아니세요. ㅋ그러니깐 제가 관심을 끄는 행동도 하고 다정하게 대하면 좋아하고 그랬죠. (위에 ‘평소 무심해 보이는‘을 추가했어요. 저의 실수임.ㅋ)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을 왕자님, 공주님 대하듯 하잖아요. 옛날 엄마들은 안 그랬어요. 일단 집안일이 많았어요. 세탁기 없이 손빨래 하랴 부모 모시고 대식구들 챙겨 먹이랴 바빠서 그랬는제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안 썼어요. 저는 애들 기분 좋게 해 주려고 서점에 데려가 책 고르라며 사 주고 그랬는데 엄마는 제 기분을 위해 뭔가 해 주신 게 없는 것 같아요. 삶이 고단하셨는지... ㅋㅋ

붙어 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저도 엄마랑 막상 살면 부딪는 일 많을 것 같아요. ㅋㅋ 스텔라 님도 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

Kletos 2021-12-23 19:25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어머니 옛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난 일이더라구요 적당히 판만 깔아드리면 이야기보따리가 한없이 흘러나오는것 같습니다 ㅎㅎ 따뜻한 글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1-12-24 12:15   좋아요 3 | URL
그렇죠? 이야기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와요. 지인들과 있었던 일을 전부 저에게 말해요. 말하는 게 행복하다는 듯이 말이죠.

Kletos 님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잘잘라 2021-12-23 22: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어머니 이야기 좋아요^^
페크님 즐겁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1-12-24 12:16   좋아요 3 | URL
후후~~ 그냥 써 본 건데 감사합니다.
미세먼지 대신 눈이 살짝 와 주면 좋겠습니다. 즐겁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12-23 22:3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추임새만 넣고 있는 저를 발견할때가 가끔 있죠 ㅎㅎ

오거서 2021-12-23 23:06   좋아요 5 | URL
어머니 목소리를 오래 듣고 싶어서 그러지요?

페크pek0501 2021-12-24 12:18   좋아요 4 | URL
그레이스 님, 딱 맞는 말씀 하십니다. 안성맞춤입니당~~~ 추임새도 넣어 주고 적당히 웃어 주기도 해야 한답니다. 그래서 한 시간 이상 되면 저는 끊고 싶어용. 거의 매일이거든요.
그런데 그 어머니 모습이 훗날 저의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

페크pek0501 2021-12-24 12:20   좋아요 4 | URL
오거서 님 때문에 소리 내어 웃었답니다. 그거 유머 맞지요? 괜히 다 아시면서 유머로 던지신 말씀이신거죠?
저는 언제쯤 이렇게 재밌는 댓글을 쓸 수 있을까요. 오거서 님의 댓글을 베스트 댓글로 선정하겠습니다. 저를 빵터지게 만드셨기 때문. 고맙습니다. ^^

오거서 2021-12-24 13:20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페크님께서 인정해주시니 기쁩니다. ^^

페크pek0501 2021-12-24 13:23   좋아요 2 | URL
딴청 피우는 댓글로 잠시나마 즐거웠답니다. 오거서 님께 감사드립니다.^^

mini74 2021-12-24 11: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매번 언니옷들 물려입어서 ㅠㅠ 새 옷 좀 입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밤새 언니옷 깨끗이 빨아서 다림질해서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막 화냈는데 그 맘은 어땠을까 싶어요. 저희 엄마도 매번 오래 있다 가라 그러세요 ~~ 거울 보니 제 얼굴이 아니라 엄마얼굴이 있네요.

페크pek0501 2021-12-24 12:23   좋아요 4 | URL
오! 좋은 어머님을 두셨습니다. 다림질이면 꽤 정성이 드는 일이죠.
헤어질 땐 언제나 아쉬워하는 엄마를 두고 와야 해서 모레 또 올게요, 한답니다.

맞아요. 저는 아빠를 닮아서 엄마와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을 보니 딱 저의 얼굴이더라고요. 그래서 친엄마가 확실하구나, 그랬었죠.
미니 님, 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12-24 23: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은 어머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계시군요.
어머님이 친구나 지인보다 더 가깝게 생각하고 좋아하신다는 것이 일상적인 일들 사이에서 느껴집니다. 좋은 친구, 화목한 가족, 다 있으면 좋지만, 유지하려면 그만큼 많이 노력해야한다는 것도 생각하게 되네요.
페크님,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좋은 밤 되세요.
메리크리스마스.^^

페크pek0501 2021-12-25 13:20   좋아요 4 | URL
예. 어릴 때 많이 못 받은 사랑을 지금 받나 봐요. 자랄 땐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어요. 어머니에게 혼나면 아버지가 보상?을 해 주셨죠.
딸은 어른이 되면 친구처럼 되나 봐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님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바랍니다. ^^

희선 2021-12-25 01: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 어머님은 다른 사람보다 페크 님과 이야기하고 전화하실 때 가장 좋으신가 봅니다 가장 편하게 생각하실 듯도 하네요 페크 님이 어머님 말씀을 잘 듣고 함께 이야기도 잘하셔서 그런가 봅니다 어머님 건강하게 지내시면 좋겠습니다

페크 님 성탄절 마음은 따듯하게 보내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1-12-25 13:22   좋아요 1 | URL
글쎄, 저라면 안 그럴 것 같은데 친구보단 자식인가 봐요.
어머니에게 바라는 건 오직 하나. 건강하게 사시는 거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희선 님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바랍니다. ^^

서니데이 2021-12-25 21: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나요.
날씨는 오늘 더 추운 것 같아요.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페크pek0501 2021-12-28 11:51   좋아요 3 | URL
예, 잘 보냈어요. 허리가 아파 누워서 보냈지만 그런대로 괜찮게 보냈어요. 지금은 다 나았어요.
패딩을 입을 만한 것 보면 겨울답게 추운 것 같아요.
이 해의 남은 남들 동안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좋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늘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21-12-26 15: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엄마랑 울엄마랑 두 살 차이네요. 울엄마가 연하에요. 에고 늙어가는 걸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를요.

페크pek0501 2021-12-28 11:54   좋아요 3 | URL
프레이야 님, 모친께서 우리 어머니 연세와 비슷하시다니 반갑네요.
그렇군요. 가까이 지켜보며 사는 것도 복이라는 걸 깜빡 잊었어요.ㅋㅋ
저도 나중엔 딸 집 부근에서 살아야겠어요. 그래야 저도 보살핌을 받지요.
부모에겐 딸이 최고랍니다. 병원 갈 일 있을 때 모시고 가고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갈 일 있으면 타 오죠. 우리어머니는 언제 병원에 예약돼 있는 줄도 모르세요. 제가 다 관리한답니다. 반가웠고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