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문제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영화가 하나의 복합물이었기 때문이다. 즉,영화는 어느 면에서는 예술에 속하고, 어느 면에서는 기술에 속하고, 또 어느 면에서는 학문에 속하기 때문이다.-15쪽
'시네마'(이미 축약된 단어)란 단어는 영화를 의미하는 '시네(cine)'또는 시노슈(cinoche)'란 좀더 축약되고 대중적인 해석, 즉 '막을 펼치다',막을 만들다'로 대체되는 '영화관에 가다'라는 표현을 탄생시켰다. - 2. 영화란 무엇인가? 중에서 -22쪽
위대한 여행가 세르주 다네는 영화를 '지도에 추가된 나라'로 정의한다. "시네마를 지도에 추가된 또 다른 나라와 동일시한 인물은 다름 아닌 고다르이다. 나 또한 이러한 사고를 무척 좋아했으며 반복하며 되풀이했다. 시네마(영화)는 나의 지리부도에 나오지 않는 나라이다. 지금 사람들은 시네마가 한 제국인지, 한 나라인지, 아니면 한 지방에 관계되는 것인지 자문한다."-24쪽
1960년대 초에 수십 명의 관객들이 자신들의 영화에 대한 광적이고 맹목적인 열정을 갖고 살았다. 울름 가의 영화 박물관에서,좀더 나중에는 샤이오 궁의 영화 박물관에서, 전문화된 영화 클럽에서(니켈 오데옹이나 시네쿠아 농),더욱이 벨기에의 브뤼셀 영화관의 원정을 통하여(파리에서 볼 수 없는 z시리즈 주말 영화로 하루에 7-8편의 영화 감상), 우리에게 유달리 눈에 띄는 몇몇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두세 가지 일을 공유한다. 즉 미국 영화에 대한 광적인 사랑(공식 비평,좋은 취미), 일부 연출가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탄(개개인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출가들의 리스트를 갖고 있다)과 특히 똑같은 공간의 향유.예컨대 영화관의 3-5열의 좌석은 우리들의 좌석이다.(..)분위기는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진 조직의 분위기였다.-사람들이 채(236)플(예배당)이라고 불렀다-그래서 이 예배당의 학생들은 일에 대한 정열적인 욕망을 갖고 있었다. -루이스 스코렉키,1978년 <카이에 뒤 시네마>293호, 42 영화 팬들은 존재하는가?-236-237쪽
에릭 드 쿠퍼는 1933년 영화 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일이 분명하지 않았던 시대에 일부의 문화, 즉 학식과 영화의 기쁨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였다. 종종 접근하기가 아주 어려운 이러한 약간의 보물들을 독차지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지'인 호기심이 필요했다. 이러한 '진정한 의지'를 채플(예배당), 즉신,성자,예언가 목회자, 종교 재판관이 되어 버린 영화 애호와 혼동(239)해서는 안 된다. 2001년에 영화 팬이란 것은 무엇인가? 이 단어는 이제부터 새로운 의미를 갖는가? 다른 목적,다른 행동 양식을 가진 영화 애호의 또 다른 형태가 존재하는가? -42.영화 팬은 존재하는가?--239~240쪽
텔레비전의 스크린에서 상연된 영화를 안다는 것은 반역인가?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고다르의 지적을 되풀이하면서 많은 말을 했다.실제로 우리는 복제 영화만을 보고, 그 차이는 그림과 그림엽서의 복사품의 차이가 동일한 것처럼 오리지널 영화 자체와 복제품이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조나단 로젠바움(1998)은 다른 고려를 제시했다."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비평가들, 교수님들,학생들 모두는 비디오로 영화를 본 다음 그것에 대해 말하거나 글을 쓴다. 마치 자신들 모두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해 있는 전이기의 결과 중의 하나이며,이것은 종종 일종의 부정확,게다가(271)일종의 이 영화들에 대한 우리들의 개인적 관계에 연관되는 속임수를 내포하기도 한다.-271,272쪽
실제로 우리가 영화가 무엇인지를 말할 때, 또는 영화를 기술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영화를 조건과는 무관한 대상으로 고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조건에서 우리들은 영화를 보고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받아들인다. 반면에 이러한 상황들은 종종 대상으로서 우리들의 영화 인식에서 결정적이다."고다르는 한술 더 뜨고 있다. 영화관에서 사람들은 두 눈을 스크린으로 올려뜬다. 반면 텔레비전에서 사람들은 아래쪽으로 눈을 뜬다. 영화관에서는 우리들보다 이미지가 훨씬 더 크지만, 텔레비전에서는 훨씬 더 작다. - 49.작은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합당한가?-272쪽
영화와 우리들은(영화관,페스티벌,텔레비전,영화 도서관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에게 좌우되지만,우리들이 우리 자신의 프로그램 '카드'를 만들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 물론 제한해서. (274) 영화를 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고독한 즐거움이 되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것은 하나의 일거리이다(단절의 의미, 홀의 개봉에서 선험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이것이 초현실주의자들이 다른 것을 보려고 다른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영화를 떠났을 때,이들이 했던 바로 그것이다. 비디오에 의해 제공된 편리함은 바로 다른 영화를 보게끔 부추겼다. 아울러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비디오는 영화 대상과의 관계를 바꾸었으며,dvd의 출현은 이것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49.작은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합당한가?-274,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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