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렉스 극장과 덤핑 :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비디오 시장은 쪼그라들고 극장은 호황을 누렸던 것일까? 우선 다수의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교통과 상업의 요지에 새로 들어서 하나의 스크린을 가진 기존의 단일 대형 극장이 몰락한 극장 환경의(211)급격한 변화를 들 수 있겠다.1998년 4월,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 CGV 강변 11이 개관하면서 시작된 멀티플렉스 시대는 한국의 영화문화와 산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촉매의 역할을 담당했다. 우선 영화 스크린 수는 1999년 588개에서 2001년 818개, 2002년 977개, 그리고 2003년 1,200개를 돌파하는 등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212)-211,212쪽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각종 편의시설과 최첨단 장비 그리고 문화오락 공간 등을 갖추면서 영화 관람을 단순한 구경에서 토털 엔터테인먼트 활동으로 변화시켰다. (중략)멀티플렉스는 원래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24시간 어디서도 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100%상품화 전략을 가지고 출범했다.그러므로 멀티플렉스 극장은 영화 관람의 행위를 하나의 의식에서 소비로 변화시킨다.-212쪽
공급이 증가하면 수요가 따라서 늘어나듯이 멀티플렉스가 도입되면 극장 관객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세계 어디에도 한국처럼 비디오 시장이 단기간에 몰락하는 경우는 없다.(중략)비디오 시장의 주된 몰락 이유는 우선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으로 청년층이 비디오 볼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 있다. (중략)그러나 청년들의 인터넷 사용 시간은 이미 인터넷 중독이라 부를 만큼 지나치게 증가하여 2002년부터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디오 시장의 몰락의 더욱 중요하고 심각한 이유는 극장 요금의 덤핑에서 찾아야 한다.(213) 제2부 한국영화 붐이라는 신화, 05 한국 영화 붐 연구 중에서 --213쪽
모바일과 네트의 미래 : 모니터 인간들은 극장 인간들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신조어를 만들거나 기존의 단어를 새롭게 해석하는 언어 전략을 구사한다. 우선 그들은 한 편의 영화를 작품이라 부르기보다는 소프트웨어나 콘텐츠로 생각한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나 콘텐츠로서의 영화를 뉴스,스포츠,게임 등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정보로 생각한다. (중략) 그들은 극장보다 모니터에서 영화를 더욱 값싸고 빠르게, 그리고 편하게 볼 수 있다면 사람(237)들이 구태여 극장에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가 극장을 떠나 모니터에 정착하게 되면, 영화의 형식과 내용은 모니터 환경에 맞추어 변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237,238쪽
이런 주장을 펴는 모니터 인간들을 보면 극장 인간들은 정나미가 떨어진다. 극장 인간들에게 영화는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영화는 우선 그 자체로 완전하고 자율적이며,그래서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예술 작품'이다. 작은 점 하나라도 창작자가 아니라 제3자에 의해 더해지거나 삭제된다면, 그것은 예술 작품의 자격을 상실한다. 또 예술 작품은 창작자가 처음 계획한 전시 공간에서 감상되어야 한다. 미술관과 극장은 단순한 물리적 전시 공간이 아니라 특별한 역사와 사회적 기능을 가진,그래서 그 자체로 특수한 의미를 가지는 상징적 공간이다.그래서 극장 인간들은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디오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그저 긴 예고편일 뿐이며,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영화를 방영하는 행위는 영화예술에 대한 배신을 넘어 절단과 살상 행위이다. 극장 인간들에게 영화는 이렇게 잡다한 정보가 아니라 인간의 고귀한 정신과 진실한 마음이 빚어 낸 예술이며 문화다.-238쪽
영화 종말론의 오래된 역사 : 텔레비전이 컬러화 되고 채널 수도 다양해진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영화는 또 다시 풍전등화의 위치에 서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영화 천재가 나타나 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름하여 sfx와 키덜트 무비 시대. 영화의 제작비와 규모는 더욱 비대해지고, 이에 따라 관객수는 증가하여 영화는 더욱 거대한 산업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영화 시대의 종언을 예견하는 시나리오는 계속되었다. 비디오의 시대가 열렸던 1980년대도 그랬고, 인터넷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는 환상이 지배했던(240)1990년대 말에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모바일 영화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다. 또 극장이냐,아니면 모니터냐의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이렇게 영화 시대의 종언과 그에 대한 반박의 역사는 영화의 탄생 직후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상 기록과 상영 방식에 혁신적인 테크놀로지가 도입될 때마다 그 논쟁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항상 극장 인간들의 승리로 끝났다.-240,241쪽
무엇보다도 영화산업에 결정적인 변화는 극장용 영화의 전자적 배급이나 위성 텔레비전이나 기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영화의 가정적 배급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중에서 극장을 통한 영화의 전자적 배급은 이미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필름 프린트를 대량으로 복사하여 극장으로 수송하는 현재의 배급 시스템은 19세기 말 영화의 발명기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그 높은 비용과 관리의 복잡함으로 영화의 전자적 배급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 앞에서 급속하게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필름 영사의 종언에 불과할 것이지만, 영화의 가정 배급은 극장 붕괴는 물론, 자칫 영화산업 그 (242)자체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242,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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