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11.20.자에 게재된 칼럼이다. 이 칼럼을 보니 동아일보가 왜 조중동 그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알 것 같다. 칼럼제목도 "횡설수설"인데 정말 횡설수설하고 계신다. ------------------------------------------------------------------ [횡설수설/오명철]‘486’ 1990년대 중반 한 재미 철학자는 흥미로운 전망을 했다. “한국 사회가 앞으로 386세대 때문에 큰 홍역을 치르게 된다”는 것으로, 1980년대 중반 서울대에서 방문 교수로 강의를 하면서 그런 결론을 얻게 됐다고 했다. 특히 주사파(主思派) 운동권 학생들의 경직된 사고와 단순 논리에 그는 절망했다고 한다. ‘설마’하는 생각으로 흘려들었던 그의 ‘예언’은 10년 만에 현실이 됐다. 문제는 노무현 정권 출범에 결정적 기여를 한 그 ‘386’들이 이제 10∼20년 장기 집권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30대’를 함축적으로 설명한 조어(造語)인 ‘386’이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다. ‘80년 광주’에 대한 울분을 공유한 이들은 시대의 금기(禁忌)였던 반미(反美)의 벽을 뛰어 넘었고, 일부는 주체(主體)의 늪에 빠졌다. 암울한 시대적 현실 앞에서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의식 과잉이 됐고,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사상적 회심(回心)을 한사코 거절했다. ▷‘386’에 대한 평가는 극단을 오간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자주(自主) 세력이라는 호평과 ‘홍위병’ 또는 ‘악의 축’이라는 혹평이 교차한다. 사실상 현 정권을 섭정(攝政)한다는 얘기도 듣는다. 하지만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어느덧 불혹(不惑)의 나이에 이른 왕년의 ‘386’들이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경험 틀을 회고 반성하며 ‘486 자유주의 연대’ 결성을 선언했다. 컴퓨터도 386, 486, 586으로 업그레이드했듯 386세대 또한 사고의 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재정권 시절 우리 사회는 운동권에 대해 퍽 관대했다. 운동권 학생을 마치 독립운동가처럼 감싸던 시절도 있었다. 운동권은 면학파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있었고, 열심히 일해 성공한 동창에게서 술을 얻어 마시면서도 큰소리를 치기 일쑤였다. 그로 인해 운동권은 역사와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고, 미워하면서 기득권을 닮아 갔다. 운동권은 이제 대학에서조차 ‘스포츠권’으로 비하되고 있다. 고여 있는 물은 반드시 썩게 마련이다. --------------------------------------------------- 위 칼럼에서는 386(나도 개인적으로 이 표현은 상당히 싫어한다)이라고 하는 세대를 까자는 것인지,주사파를 까자는 것인지,현재 학생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을 까자는 것인지 공격의 대상이 각 단락마다 변경되어서 혼란스럽다. 그리고 기도 안차는 대목은 "독재정권 시절 우리 사회는 운동권에 대해 퍽 관대했다"고 말씀하시는데,독재정권시절에 군대에 끌려가 의문사를 당한 사람들이 부지기 수이며,국가보안법 등 악법으로 인하여 감방에 들어간 이들의 수는 얼마이며,조중동 같은 언론에게 친북좌경용공세력으로 매도당한게 부지기 수인데 운동권에 대해 관대했다니... 내가 "관대"에 대한 의미를 잘못알고 있거나,이 칼럼을 쓴 사람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또한 386세대가 486,586과 같이 진화하라고 우정어린 충고를 해주셨는데,그럼 걱정 안 하셔도 소위 386세대들도 먹고살기 위하여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메무기 위하여 계속 노력중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까... 386,주사파(나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운동권이 잘못하는 게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저급하고 근거도 불분명한 칼럼으로 까대고,이런 말도 안되는 칼럼이 동아일보에 게재된 것은 실망스럽기 이를데 없다. 그래서 조중동을 안보고 있는 것인데,모처럼 부모님 댁에 놀러와서 보고 분노를 금치 못했다. 부모님께도 동아일보 절독하시라고 권해드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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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과 음주측정거부는 실체적 경합
대법원, 음주측정거부죄만 유죄 인정한 원심파기
정성윤 기자 jung@lawtimes.co.kr

운전자가 음주측정을 거부하다 경찰에 입건된 뒤 채혈감정 결과 음주운전 사실이 밝혀진 경우 음주측정거부죄와 음주운전죄는 실체적 경합관계에 있으므로 두 개의 죄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朴在允 대법관)는 음주측정거부와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홍모씨(42)에 대한 상고심(2004도5257) 선고공판에서 12일 음주운전 혐의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주취운전과 음주측정거부의 각 도로교통법위반죄는 실체적 경합관계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운전자가 호흡측정기에 의한 음주측정을 거부해 음주측정거부죄가 기수에 도달한 경우에는 그 후 채혈 등을 통해 음주수치가 밝혀졌다 하더라도 음주측정거부죄로만 처벌해야 하고 음주측정거부 외에 주취운전을 추가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단, 두 죄의 죄수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주취운전은 이미 이뤄진 도로교통 안전침해만을 문제삼는 것인 반면 음주측정거부는 기왕의 안전침해는 물론 향후의 안전확보와 위험예방을 함께 문제삼는 것이고, 또 주취운전은 도로교통법시행령이 정한 기준 이상으로 술에 ‘취한’ 자가 행위의 주체인 반면 음주측정거부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가 행위의 주체인 것이어서 결국 양자가 반드시 동일한 법익을 침해하는 것이라거나 주취운전의 불법과 책임내용이 일반적으로 음주측정거부의 법익에 포섭되는 것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원심은 음주측정거부 후에 음주수치가 확인되는 경우가 끝까지 음주측정을 거부하는 경우보다 비난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처단형이 경합범 가중으로 인해 더 높아지게 돼 불합리하다고 하지만 예컨대 두 사람이 모두 음주측정거부를 했다가 혈액감정 결과 한 사람은 혈중알콜농도가 0.05%에 미달하고 다른 사람은 이를 초과하는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두 사람 모두 음주측정거부로만 처벌할 수밖에 없어 오히려 비난가능성과 처단형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덧붙였다.

홍씨는 지난해 7월 대구달성군에서 음주운전을 단속하던 경찰관들에게 적발돼 3차에 걸친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에 불응, 음주측정거부 혐의로 입건된 뒤 혹시 채혈결과 음주수치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채혈한 결과 혈중알콜농도 0.144%로 추정되는 결과가 나와 음주운전 혐의로 추가 기소됐으며, 1심에서는 모두 유죄가 인정돼 징역 10월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는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인정돼 징역 6월을 선고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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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먹고 운전하는 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죽이는 행위가 될 수 있슴을 다시 한번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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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퇴근을 오후 7시 무렵에 한다. 일이 좀더 남아있으면 8~9시 정도에 하고,
약속이 있거나 사무실에 붙어 있는게 싫으면 6시 30분정도에 한다.
회사 규정에는 6시로 되어있지만 실제 6시에 퇴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부서 회식이 있거나 집에 아이가 아프다거나 하는 특수 상황이 아니면 6시 퇴근은
생각하기 어렵다. 간다고 해서 특별히 붙잡는 사람은 없지만 언제인가 부터 그게 관행화되어서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거에 큰 불편함은 모르고 산다.
퇴근은 대략 7시쯤하고 지하철을 타고 출발하면 1시간 정도 걸려 집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보통 10시30분에서 11시 무렵이다.
8시무렵부터 집에 가기 전에 스포츠센타에서 스쿼시를 열심히 치다가 집에 가기 때문에
퇴근시간과 귀가시간간에는 상당한 시간 격차가 존재한다.
같이 스쿼시를 즐기는 사람들은 10명 내외.. 거의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모이면 스쿼시 이야기만 한다.
라켓을 얼마에 샀느니,거트는 어디에서 갈고,어떤 스트링이 좋고....
나도 관심을 갖고 있어 주의 깊게 듣거나 내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맨날 치는 사람들하고만 치다보니 뭔가 박진감 넘치는 요소들이 부족하다는 거다.
실력이라는 스쿼시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대략 이기는 사람한테는 거의 대부분 이기고,
지는 사람한테는 지기 때문에 치는 사람들이야 땀 뻘뻘 흘리면서 힘들게 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저것들 언제 게임 끝나나?"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어제는 모처럼 박진감을 가미하기 위하여 팀을 짜서 내기를 했다.
내가 1번타자로 나가 모처럼 이를 꽉물고 쳤으나,37살 누나한테 박살이 났다.(11:3)
평소에는 그 누나한테 5번 지면 한번 이기는 정도였는데,역시 내기를 하니 상대가 되질 않았다.
두번째 경기에서는 우리 센타 스쿼시 동호회 회장님하고 현역 장교인 근육남이 붙어 적군인 근육남이
승리했고(11:6), 세번째 경기(사실 2:1로 지나 3:0으로 지나 이미 승부는 난 상황이었다)에서는 나이스가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우리 편이 30살 아줌마를 이겼다(11:4).
패배의 분을 삭히지 못하고 우리 편은 체력이 바닥난 회장님을 빼고,복식으로 나와 나이스가이가 한편으로,아줌마 두명이 한편으로   아이스크림 내기로 재대결을 벌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세트스코어 2:0으로 패배.. 이번에는 각자 먼저 게임에서 붙은 사람과 복수혈전을 명분으로 재대결을 벌였으나,나는 초반 7:1까지 갔던 우위를 끝내 지키지 못하고 11:9로 역전패 했다.
보통 하루에 4~5게임 정도를 치는데 그래도 1~2번 정도는 이기는 게임을 했는데 어제는 게임을 치는족족
지는 연전연패의 날이었다. 거기다 아이스크림 내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줌마들은 kgb인가 뭔가하는 음료수인지 술인지 불분명한 비싼(!) 걸 먹어서 나의 빈약한 호주머니에 먼지만을 남겨주었다.
열심히 연습해서 다음에는 꼬-옥 복수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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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롬멜>을 읽기 시작했다.
롬멜은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장군이다.
2차 대전 당시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과 독일군 간의 전투에서 과감한 기습작전과
용병술로 초기 우세한 전세를 이끌다가 보급의 한계로 인하여 결국 패퇴하였고,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그 지역 사령관을 하면서 방어전을 전개하였으며,
나중에는 히틀러 암살음모에 연루되어 가족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살을 하였다는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롬멜의 이력이다.
우리에게는 그가 나치인지 아닌지가 큰 관심사가 안되지만,독일에서는 롬멜을 나치로
보아야 할 것인지,전쟁영웅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논쟁이 여전히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 같다.
독일의 논쟁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지금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친일파 진상규명이라는
부분과 연결해서 드는 의문들이 있다.
1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 등장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그 당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가졌다고 헌법시간에 배웠었다.
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은 결국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가진 탓에 나치의 발호를 막지 못했고,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다수를 점하던 독일사회민주당은 무능하고 안일한 대응으로 정권을
강탈당했다. 하지만 나치가 집권하면서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인하여 군비에 제한을 받던
독일 군부와 배상금 문제와 경제공황로 인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상당수의 독일 국민들은
나치의 집권을 열광적으로 환영하였으며, 롬멜도 그러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는 이후 군인으로서 승승장구하였고, 히틀러도 나름대로 그를 총애하였던 것 같다.
자 그럼 시각을 한반도로 돌려 일제한테 나라를 빼앗겼던 조선의 보통의 인민들이 먹고살기 위하여
일제의 관료가 된 상황을 생각해 보면,별반 차이가 없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든다.
더군다나 3.1운동과 중일전쟁을 거치면서 일제의 지배가 항구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조선(내지 한국)을 자신의 조국으로 생각하지 않고 일본을 자신의 조국으로 인식하는 이들도
있지 않았을까? 아울러 일반 민중들보다는 관료체계에 접근하기가 용이하였던 지식인층에서
이러한 인식이 확산되어 일제 강점 초기에는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날리던 이들도 맛이 가기
시작한 것은 아닐런지.. 물론 일제 시대 우리 민족의 위치는 나치가 지배하던 독일에서 유대인보다
조금 나은 정도밖에 안 되었던 거 같지만....
만약 우리가 다시 일본이나 외국에게 주권을 빼앗긴다면 과연 나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독립운동에
가담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 안주하면서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위하여 지배국의 관료나 협조자가
될 것인가? 인간 실존의 한계를 뛰어넘었던 존경스러운 분들이 계시기에 당위적으로는 전자의 손을
드는 것이 정의관념에 부합하겠지만, 나약하고 심지가 굳지 못한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롬멜은 초기에는 비리비리하던 바이마르 공화국에 실망하여 강력한 추진력을 과시했던 나치에게
호감을 가졌지만,지내보니 자신의 정의관념에 부합하지 않아 결국은 나치의 수괴인 히틀러를 제거하려고
시도하기 이른 것은 아닌지.. 아직 그 부분까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불행한 현대사를 가진 우리 역사에서도 롬멜이라는 인물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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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11월 8일부터 10일까지 휴가를 냈었다.
놀다가 복귀하니 일거리가 좀 쌓여있었는데 그중 제안심사를 해야하는 것도 있었다.
주관 부서 담당자가 친하게 지내는 녀석이라 예전에 두어번 해주었더니
이번에도 부탁을 해서 어지간한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상 일거리로 받아두었다.
휴가 때문에 심사기간 중에 3일을 까먹고,이틀동안 16건을 마무리해야 했다.
부지런히 서둘러서 기한내에 마무리를 해 주 었더니 오늘 도서상품권을 1장 주고 갔다.
1만원권 1장이다. 투입노동력에 비하면 박한 대우라고 할 수 있겠으나,그래도 도서상품권이라
참아주었다.
그거 1장을 받자마자 부지런히 알라딘,예스24,영풍문고를 돌아 다녔다.
근데 아쉽게도 해피머니에서 나온 상품권은 알라딘에서는 사용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예스24와 영풍문고에서는 사용이 가능한데 예스24는 11.20.까지 물류센타 이전관계로
사아티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일시품절에 걸려있는 상품이 많아 이용을 못하겠고,
영풍문고는 아직까지도 배송비를 받는 정책을 유지중이었다.
그래서 고민 중이다. 도서상품권을 종종 선물로 받는데(울 회사는 직원생일성물로 3만원 상당의
도서상품권을 주니 1년에 한번은 받는다) 받은 도서상품권을 이틀이내에 책으로 교환하는
성급한 행태를 보여왔기에 지금도 치솟는 소비 욕구를 참느라 힘들다.
지금 노리고 있는 책은 <부시의 엉터리 영어 어쩌구 저쩌구>하고 강준만,김환표 씨가 쓴
반공에 대하여 한국사회에 보여온 모습을 다룬 책이다. 고민 좀 해보고 이 상품권을 가장
가치있게 쓰는 방법을 강구해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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