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경험이 각기 다르다는 것은 우리의 요구가 각기 다르다는 뜨시며 정치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도 단 한가지가 아니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연대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전략들을 세밀하게 세움으로써 다양성을 추구했다. 정치적 연대를 발전시키려 한다면 여성은 다양한 문화를 지닌 이들이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탐색해야 한다. 유색인 여성들이 서로를 배우려고 함께 노력할 때 자매애를 구축해야하는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다. 연대를 위해 백인 여성에게 의지할 필요는 없다. 백인 여성들은 기회주의적인 관심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반인종차별주의자 여성들과 단결할 수 있다. 우리는 정치적 연대와 페미니즘 운동으로 하나되어 단결할 수 있고 자매애라는 개념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회목시킬 수 있다.

 

1. 흑인여성 .페미니즘 이론 형체 만들기

 

 프리단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페미니즘 담론을 지배하는 백인 여성들도 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자신들의 시각이 모든 집단의 여성들이 실제로 겪는 경험에 비추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의문을 거의 품지 않는다. 또한 최근 몇년 동안 비록 편견에 대한 지각이 상당히 늘어나긴 했지만 그들의 시각에 인종적 계급적 편견이 어느 정도까지 반영되었는지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지배 체제로서 성차별주의는 제도화 되었지만 이 사회에서 여성의 운명이 한가지 절대적인 방식으로만 정해지지 않았다. 억압바든다는 것은 '선택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억압받은 사람들은 비록 조직화된 저항에 참여하지 않고 저술을 토해 억압의 본질을 분명히 설명하지 못할지라도 자신이 억압받은 사실을 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거칠고 가차없는 비판은 페미니즘 투쟁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며 해방 이데올록를 함께 만들고 해방 운동을 함께 하자는 의도였다.

 

2. 페미니즘 .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하기 위한 운동

페미니즘은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투쟁이다. 페미니즘의 목적은 특정한 여성 집단이나 특정한 인종이나 계급의 여성에게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페미니즘이 생활방식도 아니며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기성의 정체성이나 역할도 아니라는 점이다.

남성과의 사회적 평등에 촛점을 맞추어 페미니즘을 정의하면 결과적으로 차별대우 남성의 태도 법적 형태등을 강조하게 되다. 반면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으로 페미니즘을 정의하면 지배체제에 그리고 성 인종 계급의 억압의 상호연관성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앞으로 페미니즘의 투쟁의 토대는 성차별주의및 여타 형태의 지반 억압의 문화적 기반과 원인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지하는 것으로 탄탄하게 기반을 다져야 한다. 억압 철학의 구조에 도전하여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페미니즘적 개혁은 영햐력을 오래 발휘할 수 없다.이 운동은 남성과 평등해지자는 운동이 아니라 사회에서 성차별적 억압적 상황을 종식시는 것 을 의미하는 것이다.

 

3. 페미니즘 운동의 중요성

 

성차별적 지배는 다른 형태의 억압과 다르게 사람들 대부분이 가정에서 실제로 목격하거나 체험했다. 우리는 대체로 가정을 떠나 넒은 사회에서 인종차별이나 계급 차별을 목격하거나 체험한다. 남자가 없는 가정에서 조차 어머니나 다른 어른들의 관계를 통해 아이들은 성차별적인 역할형태를 엄격하게 준수하고 권위적 지배를 중시 여기도록 학습한다.

각각의 사람들이 모든 형태의 억압에 저항하도록 투쟁이 필요하다고 인식해야만 정치의식은 중요한 발달 단계로 도달한단. 성차별적 억압에 저항하는 투쟁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여성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4. 자매애 .  여성들간의 정치적 연대

 

우리는 우리들만의 언어를 정의해 사용해야한다. 함꼐 피해자가 되어 이를 바탕으로 유대를 맺거나 공통된 적에 대응하려고 유대를 맺는것이 아니라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페미니즘 운동에 정치적으로 참여한다는 의식을 바탕으로 유대를 맺어야 한다 서아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페미니즘 우동에 정치적으로 참여한다면 남성과의 평등이라는 이슈 혹은 남성 지배에 대한 투쟁에 만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은 착하고 남성은 나쁘다는 성차별ㅈㄹ적 억압구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설명은 더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남성 지배에 저항할 수 있으려면 우선 성차별주의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야 하며 여성의 의식을 변화 시키는 노력을 해야한다. 여성들은 서로간에 성차별적 사회화가 된 것을 노출시키고 살펴보고 제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서 서로의 힘을 키워주고 지지하며 정치적 연대를 발전시키기 위해 견고한 기반을 세워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다르며 그 다른 점은 타인의 우리에 대한 인식에 얼마나 결정적인 요인이 될지를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이를 존중하도록 끊임없이 일꺠워주어야 한다.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받지만 모두가 억압을 받는 것은 아니며 억압의 정도가 균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경험이 각기 다르다는 것은 우리의 요구가 각기 다르다는 것이며 정치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도 단 한가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연대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전략을 세밀하게 세움으로써 다양성을 추구한다. 저이적 연대를 발전시키려면 여성들은 다양한 문화를 지닌 이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탐색해야 한다.

연대는 지지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연대를 경험하려면 공통된 관심사와 신념을 가진 공동체여야 한다. 즉 자매에를 구축하고 하나로 뭉치겠다는 공통된 목표를 가져야 한다. 이런 일치됨을 중심으로 통합하고 자매애를 구축해야한다. 지지는 부차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지지는 쉽게 얻고 쉽게 철회된다. 그러나 여대는 지속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페미니즘 운동에서 우리가 성장하려면 다양성과 의견 불일치와 차이가 필요하다. 연대감을 느끼려고 굳이 차이를 없앨 필요는 없다. 억압을 종식하려는 투쟁에 동등하게 임하기 위해 동일한 억압을 겪을 필요는 없다. 여자끼리 결속을 위해 반 남성적 정서를 가지기 보다는 풍부한 경험과 문화와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5. 남자 .. 투쟁을 함께 하는 전우

 

분리주의 이데올로기는 여성 홀로 페미니즘 혁명을 할 수 있다고 미도록 부추겼지만 실상 여성 홀로는 불가능하다 성차별적 억압을 유지하고 지지하느 ㄴ주된 행위자는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자신의 의식과 사회 전체의 의식을 변혁시킬 책임을 맡아야만 성차별적 억압은 사라질 수 있다. 남성들은 주된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는 남성들도 저항 투쟁에서 똑같은 몫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남성들은 동성 동료들의 성차별주의를 폭로하고 대항하고 반대하고 변혁하는 식으로 공헌할 수 있다.

 

6.권력을 보는 시각 바꾸기

권력이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지배및 통제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여성이 사회 정치적 영역에서 남성과 동일한 위치에 있다면 남성과 동일한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할 것을 안다. 그리고 남성집단은 권력세계로 진입한 여성들이 기존 상태를 고수하고 유지하려 할 때만 남녀의 평등한권리를 보장해주었다. (남성형 권력을 동일하게 준수하고 따르기를 바란다) 권력에 들어간 여성들은 가부장주의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면서  권력의 개념이란 지배와통제라고 인정하고 그런 권력을 행사한다.

여성이 성차별에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으려면 권력을 지녀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이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다. 가장 억압받는 여성조차 분명 나름의 권력을 행사한다. 가장 약하고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집단이 쥐고 있는 권력은 자신에 관한 정의를 권력자가 강요하는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권력에 의해 정의된 자신의 현실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처럼 근본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저항행위이며 강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자신들이 권력이 없다고 믿도록 조장해서는 안된다. 여성들이 매일 행사하는 권력들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며 그 권력들이 성차별적 지배와 착취에 저항하는 데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7. 일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기

 

페미니즘이 일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여성 노동자의 경제 상황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심리적 착취에 저항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임금을 받든 무임금이든 여성이 하는 모든 일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여성에게 새로운 자아개념과 자기 정의를 제공한다.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 전문직과 출세에만 집중했기때문에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마치 다른 모든 노동 특히 저임금 노동은 가치가 없는 듯 행동했다 페미니즘은 민중여성들이 하는 일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태도는 남성들의 태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8. 여성 교육. 페미니즘 어젠다.

 

읽기 쓰기에 기본을 두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기본이다

 

9. 폭력을 종식하기 위한 페미니즘 운동

 

폭력은 권력의 문제이며 사회 가정에서 권력이 남성에게 몰린 구조에서 권력이 있는 남성이 물리적 정서적 억압을 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권력을 가진 지배력이 폭력을 만들어내는 구조에서는 성차 인종차 계급 차 모든 경우 폭력이 유발될 수 있다.

폭력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권력을 많이 가진 쪽에서 적을 쪽으로

사회에서 권력을 가지지 못한 남성들은 그곳에서 억눌려 있던 폭력성을  통제상황이 필요 없는 경우 즉 보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처벌의 위험이 없는 상황에 행사한다. 가정은 대게 통제가능한 상황이며 대상은 여성이나 어린 아이다 남성은 자기가 가진 감정적 고통을 여성에게 배출하고 투사한다.

남녀간의 사랑과 폭력을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바꾸어야 하는 것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성별이 아니라 물리적 관계이다. 누군가는 선천적으로 공격적 성향을 가졌고 누군가는 선천적으로 수동적 성향을 타고 난 것이 아니다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 폭력에 관대해지거나 익숙해져서는 안된다.

가족내의 폭력 에서 군국주의적 전쟁  아동에 대한 통제와 교육이라는 이름하게 행해지는 폭력등 약자에 대한 자연스러운 통제등 모든 폭력을 낯설게 바라보며 재 정의해야한다.

 

10 혁명적 양육

 

 여성의 양육은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며 페미니즘 운동가를 비롯한 사회 모든 구성원들은 이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모성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가하고 모성이 여성에게 강요된 경험이나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경험이 되지 않도록 하며 여성 혼자서든 남성과 함께든 상관없이 여성의 양육이 훌륭하고 효과적인 것이 되도록 페미니즘의 맥락안에서 여성의 양육은 세롭게 인정받고 칭찬 받아야 한다.

어머니다운 돌봄과 아버지 다운 돌봄의 구분없는 효과적인 양육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11. 여성의 성적 억압종식시키기

여성은 자기 성에 대한 결정권이 있다.

 

페미니즘은 하나가 아니다.

하나의 공통된 가치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해야할 행동들은 하나일 필요는 없다. 여성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일 수 있는 지구의 절반 인구들도 저마다 인종 종교 계급 학력 지역에 따라 다른 특성을 가진다. 각자가 가진 고유한 특성과 경험  생각 감정을 하나의 틀로 묶을 수는 없다. 성차별이 성 평등으로 가는 길에서 원하는 것이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어떤 기본값을 가진 여성들을 모델로 모두가 그렇게 하나로 묶여야 할 필요는 없다.

백인 여성들이 시작한 페미니즘이 유색인종 여성들에게는 맞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처럼

모두가 만족할 만한 가치라고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경험하고 내가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토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다.

그 토대에서 한계를 느끼고 욕망을 가지고 변화를 추구한다.

하나의 가치만 내세우며 그 기준에 모두가 따르라고 한다면  그건  또하나의 차별이 된다.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라고 여성주의는 말한다.

내가 아니라 다른 타인이 겪은 차별 역시 차별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우리가 바꾸어야 할 과제가 된다. 여성이어서 차별받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로서 차별받고 싶지 않다는 것 그것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성들간의 정치적 연대 그리고 남성들은 적이 아니라 함꼐 가야 할 동지라고 생각하는 것

폭력에 대한 생각들 바뀌기 위해 선행되어야할 교육의 문제 육아의 문제 그리고 일에 대한 생각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  어쩌면 페미니즘의 흐름이 긴 만큼 이제는 당연하게 이해할 내용들도 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드라마 <미스티>를 보며 누구나 부러워하고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주인공 고혜란의 남편 강태욱을 보며 참 많이 답답했다.

참 좋은 남자라는 건 알겠는데  상대가 바뀌지 않는다고 징징거리는 건 아니지 싶었다.

고혜란이란 여자는 최고에 대한 욕망이 있고 무엇보다 일이 우선이었고 그렇게 도전할만큼 충분한 능력과 배짱과 용기도 인물이다. 그리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사귀었을때 고혜란은 충분히 그런 면을 드러냈다. 내숭떨지 않고 아닌척 하지 않으면서 나는 욕심이 많고 그걸 이룰거라고 그래서 결혼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멋지게 강태욱은 그런 그녀에게 명함이 되어주고 배경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사랑하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니까 괜찮다고 까지 했다.기꺼이...

뭐 연애할때 무슨말을 못하랴... 하고 말한다면 할말이 없다만

고혜란이 충분히 욕망덩어리고 이기적이고 속물적이라는 것도 알겠지만 그녀는 그 본능에 늘 충실하고 정직하다. 모든 패를 드러내고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인데

결혼후  변하지 않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치열하게 싸우며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방에 쳐박혀서 꽁하고 삐진 그 남자 강태욱이 이해되질 않는다.

자기랑 달라서 좋아해놓고 자기와 너무 안맞다고 토라진다(말그대로 토라진다. 화를 내는게 아니라)

7년전 혼자 유산했다는 이유로 현재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이 고혜란인것처럼 꽁하다.

내 뜻대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내 뜻대로 고분고분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정서적으로 냉대하는 것도 결국 폭력이 아닐까... 주인공이라서 멋지게 나오니까 모든 것이 덮이는 거지만 결국은 그도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은 저자가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그래픽 노블이다.

오사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멋지게 자유롭게 살 수 있겠다고 기대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멋진 누구나 좋아하는 남자 닐을 만나고 둘은 사랑에 빠지고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커플이 되었다.누구나 닐을 칭찬했다 멋지다고 젠틀하고 젊은 시절 내모습같다고 모두가 좋아했다.

그런 닐을 사귀게 된 오사는 뿌듯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닐이 이상하다.

아니 어느 순간 바뀐 건 아닐 것이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내게 관심이없다고 하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싫어한다.

옷차림을 타박하고 화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며 니가 그래서 잘못이라고 모든 것이 니 잘못이라고 윽박지르고 따지고 소리지른다.

사랑하니까 그런거라고 믿었지만 자꾸자꾸 주눅들 수밖에 없다.

잘못을 지적당하기 시작하면 무엇이든 내잘못인것만 같다.

내가 화장을 이상하게해서 내가 그의 마음을 몰라주고 친구들과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내가 칙칙한 옷을 입어서 옛날 남자친구에게 받은 엽서들을 정리하지 않아서

내가 무엇무엇을 하지 않아서  혹은 내가 무엇무엇을 했기때문에 그가 화를 내고 소리지른다.

이젠 그의 표정과 말투에 예민해지고 무엇이 옳고 그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나올지가 중요하다. 내가 잘못한게 무엇인지 그의 심기를 건드린게 무엇인지 그것을 빨리 알아채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이다.

이것이 옳으냐 그러냐는 중요하지 않다

짙은 화장에 개성있는 옷차림에 활발하고 개방적이고 자유롭던 오사는 사라지고 칙칙하고 비슷비슷하고 평범한 오사가 닐 곁에서 전전긍긍한다.

어느 순간 이렇게 7층에서 뛰어내려 내가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지만 이렇게 죽을 수도 없다. 그건 너무 억울한 일이니까

잔소리가 화가 되고 짜증이 되고 윽박이 되고 그리고 물리적인 폭력으로까지 번지면서 오사는 생각한다. 이건 아니다. 이렇게 맞고 당하고 모든 관계를 끊어내고 고립되어 살수는 없다

내 모든 삶을 닐과 바꿀 수 없지 않을까

그러나 닐이 웃어주고 미안하다고 하고 안아주면 모든 것은 그저 녹아버린다.

그래 별일 아닐꺼야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인데

내가 뭐라고.

오사는 점점 닐에게 길들여지고 스스로 무능해지고 있다.

 

왜 그렇게 살지? 왜 그렇게 당하면서 한소리 못하고 나오지도 못하고 의지가 없이 끌려가는거지?

타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쉽게 말할 수 있다.

아니라고.. 아니되라고 왜 말하지 않았나요?

근데 그 순간 이게 잘못된건가?  아니면 내가 잘못하는 걸까? 그게 혼란스러운 지점이 있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겨버리면 내가 이상한가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너는 못나고 못나고 못나고 어리석고 어리석고 어리석고 무능하고 무능하고 무능하고... 그렇게 되풀이해서 들어온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다. 의존적이고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책은 사람이 어떻게 길들여지고 어떻게 점점 약해지고 무능해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현실을 용기있게 직면하는 순간 도움을 받을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길도 쉽지 않다.

다시 되돌아가는게 편하게 생각되기도 하고 내가 과연 할 수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고 한번 든 상처로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상담을 받고 진단서를 끊고 고소를 하고 재판을 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결국 오사 역시 모든 과정을 겪고도 한 참 후에 닐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장면을 보고 안도한다.

미안하지만 .. 이제 닐의 관심대상은 저 여자가 되겠구나 이제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겠구나 하는 순간 안도한다.

폭력이 나쁜 건 사람을 아프게 하고 다치게 하는 것이지만

스스로를 약하게 만들고 믿을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고 만드는 것이 더 위험하다.

 

사랑이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는 정의란다.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감정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다.

타인을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것  내가 아닌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나를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기도 하다. 나만 아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아끼는 마음

그것만 기억하고 있어도 적어도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사랑이 폭력이 되어버리는 일은 적어지지 않을까

 

 

여기까지 페이퍼를 썼을 때 계속 미투  고백이 이어진다.

문단에서 연극계에서....

지금 드러난 분야 이외 다른 곳인들 당당할 수 있을까?

권력을 이용해서 지위를 이용해서 더럽고 추악한 폭력을 휘두른 사람들뿐 아니라

내 일이 아니니까 나는 직접 행동하지 않았으니까

뭔가 여지가 있으니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거나

나는 그냥 침묵하고 말겠다고 그게 중립적인거라고 스스로 포장했던 모든 사람들

그들 역시 모든 비난과 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것이다

폭력 당사자가 아니라 옆에서 침묵하고  객관적인 입장이 되겠답시고 중립이라고 도망가던 모든 이들 역시 방관자라는 이름의 폭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건 아무것도 아닐거라고 애써 위안하고 나는 저만큼은 아니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조금 더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세상에 당연하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 다 그렇고 그런거 아니겠냐고  잊으면 되고 툭툭 털면 되는거 아니냐고 쉽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깃털만큼 가벼운 말이 누군가에겐 바위처럼 무겁게 내려치는 고통이다.

사랑한다면 이해한다면 아껴주고 싶다면

그 상대가  NO!! 라고 말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게 먼저가 아닐까

그리고 당연히 받아들이는  마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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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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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학교에 작은 포스트 잇이 붙었다.

 

"feminist .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여자가 토막살인을 해도 토막녀 살인사건

  여자가 토막살인을 당해도 토막녀 살인사건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여자 아이들에게 '만지지 마세요'를 말하라고 가르치는게 아니라

  남자아이들에게 "허락없이 만지면 안돼" 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가해자가 없어지면 피해자도 없어집니다"

 

" 세상에 기아란 없다.

  나는 오늘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여성 혐오란 없다

  나는 오늘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여자들은 "김치녀"가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검열하지만

 남자들은 "한남충"이  되지 않으려고 여자들을 검열한다.

젠더 권력의 차이란 그런 것이다"

 

 

누가 언제 왜 붙였는지는 모른다.

어느 순간 쉬는 시간에 봤더니 이런 포스트잇이 곳곳에 붙어 있었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구경하고 있었고... 그리고 누군가는 욕을 했고 누군가는 포스트 잇을 잡아 뜯어버렸다고 했다.

그나마 일찍 발견한 아이는 그걸 사진에 담아 왔다.

누가 왜 했는지 알 수 없었고

읽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있었고 무시하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있었고 욕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왜 욕을 하지?

이게 붙어있는게 누구에게 피해를 준건 아니지 않나?

남자애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런걸 싫어하는 여자애들도 있더라.. 아이는 그 사실에 더 놀랐다고 했다. 뭐 여자라고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욕할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누군가 공부하기 싫어서? 혹은 궁금해서 누가 복도에 이런걸 붙여놨더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지만 선생님은 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갑작스러웠을 것이고 뭐라고 해아할지 순간 머뭇거렸을 수도 있을 것이고 혹시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는게 멈칫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프닝같은 하루가 지나고

며칠 뒤 이번엔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스티커를 붙이는 자보가 화장실에 붙었다고 했다. 그것 역시 몇몇이 보았고 몇몇이 욕을 하고 몇몇이 찢거나 스티커를 아무데나 붙이며 사라졌고 그날 오후 방송에서는 허락받지 않은 계시물을 함부로 부착하지 말라는 학생부의 통고가 들려왔다고 했다.

아이는 누군지 궁금하다고 했다.

처음엔 어떤 학생이 아닐까 했는데 어쩌면 선생님일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누구인지 용기가 있지만 용기가 없기도 하다고 조잘대다가 학원으로 갔다

 

 

예전 가정폭력 활동가 수업중에 한채윤 선생님 강의가 참 인상적이었다.

여러 성소수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강의가 정말 좋았다.

누구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던 부분을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이 쉽고 재미있게 거부감없이 하는 설명에 모두 넔을 잃었고 열광했었다.

돌아와서 이런  아이를 붙들고 설명했지만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머리탓에 혼자 해매다가 이런 좋고 쉬운 강의를 너희 나이에 받으면 참 좋을텐데. 그러면 편견이 좀 적어지지 않을까

너무 쉬워서 누구나 듣고 금방 이해 되더라

물론 엄마도 이해는 다 했어 다만 외우질 못했을 뿐이야.... 하며 수다를 떠는데

아이가 말한다

"엄마 그런 강의 한 번 하는 건 하겠지만 하고 나면 학부모회에서 난리가 날 수도 있어"

아... 그럴수도 있겠다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은 아니니까 누구나 의견은 다르니까....

그래도 이렇게 좋은 강의는 모두 다 듣는게 좋은데... 아쉬웠다.

말랑말랑하고 알고 싶은 거 많은  그리고 어쩌면 이미 편견이 조금씩 자리를 넓히고 있을 지 모를 그때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게 정말 좋을 텐데... 하고 아쉬워만 했었다.

 

조금씩 정말 아껴가며 읽었던 책의 마지막을 덮었다.

마음이 서늘해진다,

누군가는 몰라서 말하지 않았고 누군가는 알지만 말할 수 없었고 누군가는 알 필요조차 없는 진실들.. 사실들..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건 하나의 권리이며 동시에 권력이 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누구나 하는 생각 이미 세상의 당위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아닌 조금만 비틀리고 방향이 다른 이야기들은 그대로 침묵이 된다 누군가 힘이 있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는 기색이 보인다면 그건 폭언이고 반항이고 쓸데없으며 조용히 사라진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포스트 잇의 글귀들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지만 함부로 권할 수 없는 좋은 이야기들

세상에는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는것들이 참 많았다.

 

솔닛의 글에 '여성"의 자리에 누구든 약자를 넣으면 다 말이 되지 않을까

어린아이. 장애인. 성 소수자. 외노자 .

너희를 보호하기 위해서 ... 도와주기 위해서 하는 일이야 하는 말이야

그러니 조용히 따르기만 하면 돼

꼭 그렇게 많이 알 필요는 없어

그렇게 세상의 많은 입들이 조용히 닫히고 세상은 고요하다. 그리고 그 고요는 평화가 되고 안전이라고 여겨진다.

 

뭐라고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저 솔닛의 책에 밑줄을 치고 소리내어 읽어 볼 뿐이다.

 

 

 

감정이입이란 우리가 타인을 진실되게 느끼기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 느끼거나 타인과 더불어 느끼기 위해서 그럼으로써 자신을 넓히고 확장하고 개방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와 같다. 감정이입을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간성의 일부를 닫아두거나 제거해버렸다는 것. 자신을 어떤 종류의 취약함으로부터 막아두었다는 것이다. 남을 침묵시키는 것 혹은 남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는 것은 타인에게도 인간성이 있으며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적 계약을 깨뜨리는 것이다             p66

 

 

우리의 인간다움이란 이야기들로 구성되고 만일 언어와 서사가 없는 경우에는 상상력으로 구성된다. 그 상상력이란 어떤 이야기가 내가 아니라 네게 벌어졌기 때문에 내가 말 그대로 몸소 느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치 내 일처럼 상상할 수 있고 내 일이 아니더라도 마음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이어져 있고 누구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살해되어 침묵당하면 감정이입을 끌어낼 수 있었던 목소리들이 침묵되고 의심받고 검열받고 말할 수 없게 되고 들리지 않게 된다. 차별은 누군가가 어떤 측면에서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에게 동일시나 감정이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우리 서로 간의 차이가 전부이고 공통의 인간성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p67

 

 

랭턴은 우리의 논쟁의 촛점을 재설정하여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이 하는 일 말이 품은 힘에 주목한다. 그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언어를 써서 결혼하고 투표하고 평결하고 명령한다. 혹은 우리에게 그럴 힘이 없을 때는 하지 못한다. 주인이 노에에게 먹을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 명령이지만 노예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호소이다. 각자가 지닌 힘이 말의 의미와 말이 할 수 있는 일을 혹은 할 수 없는 일을 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p109

 

 

수치심은 자존감을 파괴하는 것이다. 공격자가 피해자에게 스스로의 의사에 반하는 일을 시키기 위해 피해자가 스스로를 더럽고 역겹고 부끄러운 존재로 여기도록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가하는 것이다. 수치심은 피해자가 경찰에 범죄를 신고하거나 도움을 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 피해자는 또 자신의 과거 성경험과 폭행의 세세한 측면이 꼬치꼬치 파헤쳐질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p 140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여자들 일인것은 그저 그 일이 여자들에게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그 일을 저지르는 건 대부분 남자들이니 어쩌면 페미니즘은 줄곧 남자들일이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p148

 

 

집단이란 물 샐틈 없는 범주이므로 그 속의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사고방식, 신념, 나아가 책임을 공유한다는 생각은 차별의 핵심적 요인이다. 이런 생각은 집단 처벌로 이어진다. 이 여자가 나를 배신했으면 저 여자를 비난해도 된다는 생각 집 없는 사람들 중 일부가 범죄를 저질렀으면 모든 집 없는 사람들을 처벌하거나 쫓아내도 되고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p 212

 

 

얼마전 나는 무지권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보았다.특권있는 사람 재현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의식할 필요가 없는 사람 실제로 자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이 나름대로 일종의 상실이다.

페미니즘은 여자들이 과거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경험에 대해 마침내 말을 꺼내는 것인 경우가 많다면 반페미니즘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인 경우가 많다.  p242

 

 

누군가가 나에게 페미니스트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기 쉽지 않을것이다.

나는 부조리가 싫고 세상에 불만이 많고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고민할 것이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내게 좀 대단한 것이다.

나를 드러내는 일이 아직 익숙하지 않고 조금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있는게 편한 입장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야 라고.. 말하기는 아직 쉽지 않다.

 

예전 김수현의 <사랑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에서 커밍아웃한 동성애 아들을 대하는 부모를 보면서 적어도 나도 저렇게 행동하고 말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스개 소리로 지식이 마음에 들지 않은 이성을 데려오면 어떻게 할거냐는 닥치지도 않은 문제에 대해 설왕설래할때 그 수다들을 막은 질문은 그것이었다.

마음에 안드는 이성이 아니라 마음에 안드는 동성을 데리고 오면 어떡할래?

그 질문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지도 않은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알지 못하는 보따리를 내미는 것이다,

나는 극히 이기적인 부모의 입장에서 나중에 내 자식이 어떤 입장이 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 목숨이나 재산이나 명예를 빼앗는게 아니라면) 그 입장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기를 바란다,

내 아이가 여자여서 밤길을 조심해야 하고 여자여서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다 잘하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고  여자를 사랑해서 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맞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만에 하나 내 아이가 당할 차별과 불합리가 두려워서 나는 지금 이순간 누구도 차별하거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기적이지만...

내가 겨눈 칼끝이 언젠가 내게도 돌아올 수 있다.

지금 내가 살고 말 세상이라면 모르겠지만 언젠가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고 또 그 아이의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라면 내가 조금 더 살기 편하게 누구나 세상을 넓게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그가 무엇무엇이어서 외롭고 아프고 답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 대상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병신같은 질문을 받지 않고  쓸데없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하고 내가 먼저 움직이고 내가 조금 더 따지려고 한다.

이것도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참 이기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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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억중에 하나다. 이것이 진실인지 혼자만의 상상인지는 모르겠다. 어떤 사실에 상상이 더해진 것일 수도 있다.

등에 동생을 엎은 엄마 손을 잡 고 시장엘 갔다.

장을 보긴 했는지 무얼 샀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그냥 그 시장 어느 모퉁이에서 무언가를 모여서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떠돌이 약장사였는지 어떤 시장 공연인지도 모르겠다.

구경을 했었고 혹시나 사람 틈에서 엄마를 잃어버릴까봐 동생을 둘러 엎은 포대기 끈을 잡고 있었다. 엄마 손을 잡지 않은 건 어쩌면 손에 물건들이 있었기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 참을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에 엄마가 없었다.

내가 붙들고 있었던 것은 포대기 끈의 끝자락이 아니라 어떤 할머니가 입은 저고리 고름이었다.

내게 고름이 잡힌 그 할머니는 빙긋 웃으며 이제 다 봤냐 집에 가자.. 그러면서 나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분명히 데려다 주었을 것이다. 혼자 간 기억은 없으니까

그 할머니가 누구인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아마 나를 알거나 우리 가족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을 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엄마에게 왜 먼저 돌아갔냐고 떼를 쓰거나 따지지 않았다.

그때 내가 어떤 반응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때 감정은 떠오른다.

그때 내가 가진 감정은 체념이었던거 같다.

뭐 그렇지 뭐...... 그런 마음

가족이 많아서 언제나 바빠서 마음 편히 시장 구경도 못할 엄마를 이해한 건지

등에 엎은 아이는 처지고 장바구니는 무거워서 더 이상 서있을 수 없었던 그 상황을 이해한건지

그건 모르겠지만 그냥 내가 이해해야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을 뿐이다..

내 기억은 그것뿐이다

그 초기 기억이 어떤 작용을 했했는지 하긴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아주 어릴 적 기억이라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무심하게 떠올랐을 뿐이다.

억울했다거나 화가 났다거나 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기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뭐 그런 때도 있었구나 하는 마음 뿐이었다.

그 때 이후 나는 무언가 달라졌을까?

나는 그 기억을 그날 집단 상담때 이외 누구에게- 가족에게 도 한 적이 없다.

 

 

 

 

 

 

 

 

 

 

 

 

 

 

 

 

 

 

 

 

 

 

 

 

 

 

헤어진 여자친구가  전에 선물했던 시계를 돌려달라고 연락이 왔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계를 돌려주는 일이 주된 스토리는 아니었다.

유학을 떠난 여자친구를 위해 연락도 하지 않고 미국으로 간 남자의 이야기도 그들의 극적인 러브스토리가  주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때 엄마 아빠가 동물원에서 버리려고 했다고 믿는 삼남매의 이야기도 그 비정한 부모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암투병으로 세브란스 지하에서 보낸  어두운 시간의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런 투병기도 아니었고 다른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첫 문장이 이야기 전체를 보여줄 때도 있지만 그 이야기도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야기는 맥락없이 시작했다가 느닷없이 마무리괸다.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이었고 소소하고 무심했다.

때로는 나의 사소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때로는 그저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이젠 기억이라고 하기엔 주관이 너무 들어가버린 희미한 그림자같은 것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어서 후회조차 소용이 없는 이야기들도 있다.

남에게 털어놓기에는 소소하고 시시한 이야기들이지만 그래도 내겐 어느 순간 느닷없이 떠오르는 기억이고 상처일 수도 있고  변화였던 이야기들이다.

이미 시간은 흘렀고 이젠 그저 되새김질 하는 것 이외엔 어떨 도리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히지 않는 것... 무심하게 들었거나 보았지만 내게 순간 의미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살아가다보면 대단한 사건들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온나라가 온 세상이 들썩이는 일들은 분명 역사를 바꾸기도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어떤 무늬를 만들어 내는 게 분명하지만 때로는 사소하고 나만 알고 넘어갈 수 밖에 없는 누구에게 말하기 쑥스럽고 애매한 것들이 삶의 각도를 바꿀 때도 있다. 아주 미세하게 누구도 타인은 알아차릴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내 삶이 바뀌어버린 그런 변화를 가진다.

단편속의 인물들은 대단한 사람은 없다.

물론 그들이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중엔 대단하고 위대한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그 주인공들이나 대부분의 인물들은 그저 우리곁을 스치는 사람들이고 지나가다 보아도 눈에 띄지 않는 그냥 그런 희미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겪는 소소한 일들이 어느 순간 삶의 각도를 미묘하게 벌어놓는다.

그리고 그 이전의 나와 달라진다. 뭐가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을 할 수는 없다.

그건 나만 느끼고 나만 알아차리는 변화이니까...

 

사실 처음 이 단편을 읽었을 때는 그냥 그랬다.

좀 소녀취향인가 싶었고 뜬금없고 느닷없다는 기분도 들었고  심하게 말해서 한편한편이 너무 널뛰는 거 아닌가 싶었다.

 

몇해를 보내고 다시 읽는 지금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런게 없는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생각도 했다.

이어 쓴게 아니라 시기를 달리해서 다른 매체에 그때 그떄 써서 기고했던 작품들이라면 저마다 다른게 당연하다.

그동안 단편집에서 찾아내던 전체를 흐르는 무언가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평론가의  발견이거나 나 개인의 착각일것이다.

그저 내가 경험했던 무언가와 내가 기억하는 어떤 정서들과 책을 읽는 지금 내가 가진 주위 환경과 나의 마음의 상태가 더해져 그 책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뿐이다.

바람같은 사랑이나 이미 소멸해버린 무언가를 향한 손짓같은 건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무언가 일 것이다.

내가 가진 내 기억의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그건 나의 기억이고 나의 시간이다.

내가 기억한 모든 조각과 내가 느낀 정서의 조각들을 끌어모으면 내가 될까

그렇게 완성된 나는 어떤모습일까

지금 이순간 나이 먹은 나와 같은 모양일 수도 아닐 수도.....

그냥 의미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 그리고 그 작은 조각조각마다 의미가 있을거라고 믿는 것 그것만 남을 뿐이다

단편을 읽는다는 건 그렇다

별 거 아니지만 별난... 그런 묘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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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한 번 넘어진 모퉁이에서 다시 넘어지는 일이 빈번하다.

한 번 경험했다면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은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의 행동이겠지만

한 번 이상 모퉁이에서 넘어졌다면 이제 모퉁이만 보면 넘어질지 모른다고 긴장하고

그 긴장감이 다시 넘어지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가 매번 같은 모퉁이에서 넘어지고 있다.

다만 이젠 그 모퉁이를 주의해야 한다는 걸 안다는 것이 다행이랄까

다만 살아가면서 그 모퉁이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니까....

왜 그 모퉁이를 지나가냐고 다른 길은 생각하지 않냐고 아이를 탓하기도 했고

뭔가 다른 길을 모색하지 않거나 그 모퉁이를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다른이들과 비교하며 윽박질렀지만 그건 정말 소용없는 짓이다.

그저 그 모퉁이를 돌때 마다 긴장하지 말라고 하고

넘어져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미리 무릎 보호대라도 준비해주는 것밖에...

살면서 몇번의 모퉁이를 돌아야 할테고 늘 혼자 그 곳을 돌아야 할테고

그 모퉁이를 없앨 수도 없다.

아이가 크면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켜보는 것 뿐이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예쁜 표정을 유지하면서...

괜찮다고 하면 괜찮다고 같이 말해주고

괜찮지 않다고.. 괜찮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래도 된다고 하고

모퉁이를 미워 어쩔 줄 몰라하면  함께 미워하고 욕하지만.. 그래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해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책을 읽을 뿐이다...

 

 

 

 

 

 

 

 

 

 

 

 

 

 

 

저자가 제각각 관심분야를 독립영화로 찍는 다른 동료들을 인터뷰해서 책을 엮었다

여성 장애인 성 소수자 이주노동자 군대문제 동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영화를 제작했던 나름 분야에 대해 전문가이고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나는 그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는데

책의 구성은 저자가 자기 생각을 풀어나가면서 인터뷰한 사람들의 말을 인용처럼 들어간다.

저자의 생각도 건강하고 좋지만  인터뷰를  했다면 그들의 생각들을 조금 더 깊이 듣고 싶었다.

                                                                                 

우리가 혐오를 반대하는 잉는 자명하다. 혐오는 인간의 존엄성을 사산조각내고 그 사람을 하찮게 여기도록 한다. 차별과 혐오는 바늘과 실이다. 누군가를 차별하면 그 대상을 혐오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차별당하는 사람을 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긴다. 혐오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차별과 혐오는 악순환이다.

우리가 혐오에 짐식되지 않고 혐오와 싸워 이길 유일한 방법은 타자에 대한 공감뿐이다. 고감이란 내 주변에 항상 있지만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내가 혐오하는 사람들이 낯선 타자나 이방인이 아니라 실은 나의 다른 얼굴이라는 사실을 단지 아는 것이 아니라 개우치는 것이다. 공감할 수 있다면 소통할 수 있다. 소통하면 이해하게 된다. 이해하면 더는 혐오할 수 없다. 그런데 고감 없는 이해는 오만한 해석이 되기 쉽고 이해없는 공감은 극단으로 치우치기 쉽다. 그러므로 공감하려면 알려는 의지가 즉 상대방을 이해햐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머릿말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과 누군가를 혐오하는 일은 다르다.

사람이 세상 모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을 뒤집어 말하면 모두를 사랑하고 이해할 수 없다. 내 감정에서 내 정서에서 내 상식에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도 하지만 절대 변하지 않기도 한다.

그건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다,

 다만 내가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 공공연하게 떠들면서 누구든 그 대상을 미워하도록 만든다면 그건 혐오가 된다.

사실 나는 아직 불법 이주노동자가 두렵고 개인적 양심때무에 병역을 거부한다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안다

여자가 다 성녀이거나 창녀가 아니듯이 이 땅의 모든 남자들이 한남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사람이 아니듯 외노자라고 다 흉악범죄자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인식하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은 다르다

요즘 많이 언급되는 "청년경찰"에서의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문제라고 머리는 생각하지만 나는 내가 대림동을 가거나 외노자와 어울리고 싶지는 않다. 그럴 기회도 많지 않겠지만 나는 마음 한 구석에서 그들이 무섭다

책에는 중국인들이 많아지면서 시끄러워지고  다툼이 일어나고 그 다툼이 그냥 주먹다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칼부림으로 이어진다면서 그렇게 사건이 일어나도 순식간에 피해자도 가해자고 그리고 뿌려진 핏자국도 사라진다고 했다. 그만큼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불법 체류자이기때문에 집혀가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이 차별받아서 내면에 두려움이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왜 하필 소소하다는 다툼조차 칼부림이 나야하는가에 방점을 찍는다

외노자에게 쉽게 "니네 나라로 가라"고 하거나 외국인 신부들의 주민증 발급을 거부하는 남편들의 이기심등을 들으면 참 인간으로 할짓이 아니다 라고 분노한다. 외국인이라고 피가 붉지 않은게 아니라는 말처럼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반응은 오원춘 사건이나 떠도는 장기밀매 이야기들이 더 가깝다. 그들로 인해 거리가 더러워지고 다니기 두려워지는 일이 우선이다. 이것조차 혐오라고 생각을 하면서 쉽게 그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군대문화는 이미 군대만의 문화가 아니다. 그건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모두 통용된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군대 경험 혹은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가 가장 지루하고 거부감드는 주제라는 것에 동의하고 세상의 질서가 군대처럼 억압적이고 상명하달이라는 것에도 거부감을 느낀다. 군대가 인간성을 말살할 수 있고 폭력적인 문화가 어쩔 수 없이 강하다것도 안다.그럼에도 나는 개인적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누구도 자진해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군대다. 연예인 누구누구가 해병대를 가고 어린 나이에 군대를 자원했다는 이야기가 미담처럼 나올 수 있는 것도 그만큼 가고 싶어하지 않은 것이 더 크다는 반증이 아닐까 . 할 수 있다면 누구나 거부하고 싶지만 병역의 의무라는 것때문에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거라는 것때문에 누구나 참고 기왕이면 좋게 가고자 할 뿐이다.

누군가의 종교상의 이유가 그리고 폭력과 군대문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양심이 존중받아야 한다면 가고 싶지 않아도 갈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음도 존중받아야 한다. 나도 가서 2년을 뺑이 돌았으니 너도 가야한다. 너만 빠지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아니어도 누군가는 폭력에 무감해서 그 문화애 대한 예민함이 없어서 갈 수 밖에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양심이 나의 의무와 충돌할 때 결국 병역대신 처벌을 받아 감옥에 가는 것을 택하는 것이 차라리 나은지 ,,, 사실 여자라서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 군인아저씨가 아니라 군대간 아들이라는 표현이 더 가까운 나이가 되면서 누군가는 가장 빝나는 시기에 혹은 내가 가장이 되어야 하는 그 사간에 그냥 오롷히 흘렬 버리도록 감내하는데 누군가는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게 조금 이해가 가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든다.

 

나는 혐오가 어떤 것인지 잘 안다.

나보다 약한 대상에게 흘러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혐오다.

나를 힘들게 하는 대상이나 제도는 다른 것인데 그 적확한 대상에게는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가장 만만하고 쉬운 상대에게 그 화풀이를 한다. 죽어라 한놈만 패는 것처럼 그렇게 나보다 약하고 만만한 대상을 미워하고 증오한다.

내가 취업을 못하거나 모든 욕망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건 잘못된 경제의 흐름이거나 제도의 부재때문일텐데 그건 너무 어렵다. 다만 내 옆에 그저 남자 말이나 듣고 고분고분해야할 여자들이 직업을 가지고 나와 경쟁하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희 나라에서 살지 왜 이 한국까지 기어와서 일하려는 외노자들이 나의 경쟁상대가 된다.  내가 가진건 신체 건강한 군필자라는 것  사내라는 것인데 이제 세상은 부드럽고 자상한 남자들을 원한다. 남자라는 존재가 더 이상 한가지로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이 역겹고 성소수자의 취향은 변탵스럽고 병적인 것이 된다. 장애인은 그저 돌봐주어야 하고 복지예산을 가져가는 짐스러운 존재다.

그들이 내 앞길을 막는다.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나를 화나게 한다. 그래서 밉다

그래서 싫고 사라졌으면 내 앞에 납작 엎드렸으면 한다. 그런 마음이 나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좀 더 과격하게 드러내고 공격한다.

그 모든 약한 존재가 사라지면 나는 편할까?

외노자가 사라지고 모든 아들들이 군대를 가고 나면 내 마음은 조금 더 편해질까?

모르겠다.

 

혐오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금의 교양과 상식만 있다면 세상에 많은 혐오를 알 수 있거 거부감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교양있는 사람이니 남들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조금 더 진보적이고 조금 더 꺠어있는 주장을 할 수 있지만 내 마음은 조금 불안하다. 그들이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나누고 싶지 않다는 욕심과 알고 이해하지만 그건 나와 그들이 다른 바운더리에 있을때 이야기이지 나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나누어야 하는 순간이랴면  비겁하게도 나도 자신은 없다.

그래서 자꾸 이런 책을 읽는다.

모두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진부해져버렸지만./ 그래도 읽어서 자꾸 내 마음을 다시 다독일 필요가 있다.

내 속의 미움이라는 감정이 언제 불쑥 혐오가 되어 튀어나올지 나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공동체 사회를 인간 이상으로 확장해서 동물권에 대해 이야기해 준 6장은 새로운 세상을 내게 보여주었다. 

 

 

 

 

 

 

 

 

 

 

 

 

 

 

 

 

 

누구나 다 아는 유괴사건이 있었다.

아이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의 비명소리 아이의 겁에 질린 표정이 찍힌 사진이 집으로 오지만 아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고 범인도 알 수 없었다. 친구 아버지가 용의자로 몰렸지만 정황이 충분하지 않다.

49일 후 아이는 돌아왔다.

아이는 49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모두가 아이에게 그때의 일을 묻지만 아이는 그저 집을 나가기 전 토요일에 본 주말의 명화가 기억의 끝이고 중간의 49일은 통째로 사라졌다.

아이는 자기가 기억못하는 그 49일을 자기보다 더 잘 아는 주위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이 더 두렵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해야할지 이미 답을 정해놓고 다그치는 사람들이 무섭다. 아이네는 이민을 갔고 성인이 되어  모두가 이제는 기억하지 못하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아이가 유괴된 49일간 사라진 또 한명의 아이가 있었다.

 

이야기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아는 사건안에 아무도 모르는 기억이 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내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기억을 지워버린다. 단지 살기 위해서 나를 위해서 기억을 지운다. 없던 일처럼 만들어버린다.

어른이 된 두 소녀는 가장 아픈 그때의 기억이 없다.

그러나 그 기억은 예고도 없이 돌아온다.

그것도 완전한 형태가 아닌 퍼즐조각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조각난채로 내게 두서 없이 돌아온다.

소녀들은 용기를 내어 기억을 직면한다.

아파서 잊었던 기억을 아프지 않게 위해 다시 꺼집낸다.

살기 위해 잊었던 것을 이제 살려고 기억해내려고 한다.

직면하는 일은 언제나 두렵다.

그 깊은 망각속에 어떤 괴물이 어떤 모습으로 숨어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 망각이 내 것이지만 내 속에 숨은 깊은 우물이지만 나는 나의 우물을 들여다 보는것이 제일 무섭다. 그러나 봐야 한다. 내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걸어가고  빛을 향해가기 위해서 봐야 하는 것이 그 우물이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우물속에는 괴물도 있지만 그 괴물은 생각만큼 흉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젠 작은 개구리가 되어 내가 충분히 마주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기억하지 않은 나는 내가 아니다

군데군데 지워져 버린 모습은 나의 완전한 모습이 아니다.

나를 구성하는 건 뼈와 살과 피와 함께 나의 기억들이다.

누구도 이젠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나만은 나를 알고 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나만 모른다면 나는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너무 힘든 고통은 잊고 싶다.

사라져서 아무도 아니 적어도 나만 몰랐으면 좋겠다.

너무 힘들다면 깊이 쑤셔 놓아도 괜찮다

다만 너무 늦지 않게 그렇게 방치하고 감춰둔 것을 다시 꺼내야 한다.

그건 괴롭고 무서운 것만 있는게 아니라 가장 여리고 보드라운 내가 함께 견디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나를 찾는 일이 기억하는 일이다.

단순하지만 몰입감있게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청춘시대2>의 등장인물 중, 데이트 폭력 피해자 예은이 있다.

전편에서 폭력을 경험하고 생존했고 심리치료를 받고 있고 학교를 휴학했다가 다시 복학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밤길 남자. 혼자 다니는 것 누군가 나를 바라보는 것 모든게 두렵지만 무엇보다 그런 피해를 당한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빴기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다.그건 타인이 쉽게 내뱉는 말일 때도 있고 나 스스로 끊임없이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피해자인데 내가 가장 상처입고 폭력을 당했고 살아남았는데 그는 멀쩡하게 죄값을 치르고 캐나다로 가버렸고 나는 여기서  두려움을 눌러가며 타인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야한다. 게다가 험한 뒷담화도 내몫이고 남들의 편견이나 의심도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한다

폭력자체도 두려운데 그 폭력에 젠더가 개입하고 남녀 관계가 얽히면서 문제는 이상하게 꼬여간다. 때린놈은 나쁜 놈 맞은 놈은 당한 놈이라는 칼로 딱 잘라버릴 정리가 되지 않는다.

도데체 어떻게 행실을 했길래..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는 의심부터 이제 남사스러워 어떻게 살래? 이제 걸레잖아. 하는 혐오까지 모조리 피해자의 몫이다.

폭력을 당해서 살아남아도 또다시 잔펀치들이 훅훅 들어온다. 그땐  배려라거나 관심이라거나 충고라는 이름을 달고 들어오지만 그것도 폭력이다.

드라마 흐름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은이 언제나 겁에 질려 있는 것은 아니다.  하메들과 웃고 똑 소리나고 얄미운 조언을 하기도 하고 괜찮아 보일 때도 많다. 이제 시간도 제법 흘렀고 잊을 만하지 않은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다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참 많이 애쓰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닌척 괜찮은 척...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남들에게 폐끼치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강화길의 소설들을 읽으면 모든 인물들이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한다.

모두가 아프다. 과거 폭력의 경험이 있고 버림받은 기억이 있고 남들에게 뒤쳐졌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더이상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고 내 자식에게 그런 낭패감을 물려주고 싶지 않고 관계에서  소외받고 싶지 않다. 모두가 힘들고 아픈데 관찮은 척 한다.

아무렇지 않은 말간 얼굴고 남의 일인것처럼 그림자를 못 몬척 하고 애를 쓴다.

모두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아프다고 악! 하고 소리지르며 주저앉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괜찮지 않고 남들보다 뒤떨어지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어버릴테니까 절박하게 괜찮은 사람인양 미소짓는다.

그 미소가 슬프다.

사실 단편들을 모두 읽지 못했다.

처음 나온 <호수 - 다른 사람> 을 읽고 너무 힘들어서 그만 읽고 싶었다.

이후 몇편을 더 읽었지만 모두가 너무 힘든 인물들이었다.

괜찮다고 위로하기엔 그 위로가 어줍잖아질 것같이 모두가 제 고통속에서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웃고 있었다. 위로를 거부하는 얼굴들이다.

<호수- 다른 사람>의 주인공이 마지막에 해야할 일을 했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순응이 아니라 차라리 폭력일지언정 세상을 향한 저항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픈 사람들이 아프다고 말하고 나를 치료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세상이 정말 좋은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이건 강화길보다 더 강하다.

첫 단편부터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럴거야.... 이럴지도 몰라.... 이러지 말았으면..... 그것만 아니었으면..

하는 사건들이 쉴 틈도 주지 않고 훅훅 치고 들어왔다.

여자가 당할 수 있는 모든 폭력이 종합셋트처럼 펼쳐진다.

감금 강간 폭력  비하. 혐오. .....

그러나 록산 게이의 여자들은 그 모든 상처를 직면하고  다시 일어선다.

더 이상 일어날 수 없고 그대로 주저 앉아도 그만일 상황에서 모두가 다시 일어서고 현실을 마주한다. 모두가 약한 여자들이었지만 동시에 강한 여자들이다.

어려운 여자란... 어려운 일을 경험한 여자들이지만 어떤 폭력에도 쓰러뜨리기 어려운 여자들 강한 여자들이란 의미였을까?

마지막 단편은 저자의 경험이 아니었을까? <나쁜 페미니스트>에서도 봤던 에피였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멋진 책을 써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약하고 쉽게 부서질수 있는 존재지만... 무언가 부서줬다고 그대로 주저 앉아 버리는 존재는 아니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내가 경험한 기억이 아름답든 추하든  그 모든 것이 나라는 것을 직면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누구를 미워할 수는 있지만 누군가를 따돌리는 혐오는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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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글씨도 커서 쉽게 읽힌다,

슬픈 건 이렇게 큰 폰트의 글자도 이젠 읽기가 힘들만큼 노안이 심해졌다는 것

내내 안경을 올리고 읽었다, 슬프게도

이다혜 기자는  씨네 21보다는 팟빵 빨간책방을 통해 더 잘 알게 된 작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인지 말이 빠르고 간혹 이동진의 말을 끊고 들어올 때도 있어서

가끔은 불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틀린 말은 하지 않는구나 싶을 때도 있었다.

긴장하면 말이 빨라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 불편하지만 불편하다고 하기도 불편한 것이었고

많이 읽고 많이 노력하고 많이 애쓰며 살고 있다는 느낌...

잘 알지 못하지만 참 열심히 사는 모습이 말투속에서 쓰는 언어들 속에서 느껴져서 그냥 모르지만 좋아하지도 않지만 응원하게 되는 편이다,

 

이 책은 너무 얇다, 글씨도 커서.. 그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전반적으로 책값이 너무 비싸긴 하지만,,,가끔 무식하게 글자 수에 따라 혹은 페이지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쓸데없이 말이 많아지는 책들이 더 많아지려나?

그냥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고

스스로를 많이 오픈해서 저자에 대해 알게 되는 이야기도 있고

그냥 끄덕거리면서 읽다가  가운데 부분  <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부분이 너무 좋아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책에 대한 부분은 빨간 책방에서 말하는 논지와 조금 겹치기도 하고  별다르지 않지만

고등학교에 가서 했었던 강연을 정리했다는 저 부분은   여학생시절보다 조금이라도 더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거고 누구나 후회할 수도 있는 부분 그리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지만 결국은 눈치로 체득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을 드러내고 이야기해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시원하다,

그 부분을 모두 옮길 수도 없고...

그 또래의 여학생이라면 딸이있다면 읽어볼 만하다,

엄마나 선생님 말은 죽어도 안들어도 누군가 언니같고 선배같은 이의 말은 또 찰떡같이 들을 나이인지라... 괜찮았다.

 

세상에는 나도 모르게 형성되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많은 차별이 있다,

남자와 여자

대학생인가 대학생이 아닌가

중산층인가  기초수급자에에 가까운가

가끔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차별을 당하는 존재 이며 동시에 어떤 부분에서는 누군가 선망하는 존제가 되며 나도 모르게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가난하다는 것이 단순히 돈이 없다는 문제여서 개인의 노력으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가난을 경험하지 않았다... 라는 문장이나

선택이라는 단어자체가 대상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벽이 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말,, 누구나 쉽게 자유롭게 선택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라고 말하지만  그 선택조차 다시 태어나는 것부터 바꾸지 않으면 아무런 선택지가 없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 글 말미에 가해자의 선택이 아니라 늘 피해자 특히 여성의 선택에 더 많은 의미와 존중이 들어간다는 말도 공감한다. 남성들에게는 왜? 라고 어째서? 라고 묻지 않은 것을 여성에게는 따른다는 말도 그렇다,

얼마전에 읽고 다시 감동했던 <제인에어>와 <광막한 사르가소의 바다>의 이야기가 나와서 좋았고   "당신을 당신 딸이라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 스스로에게 사주고 싶은 것 어떻게 달라지나요?스스로에게 자학하며 던지는 말을 딸에게라면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라는 대목에선 나도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

더위를 피해 냉방이 잘 된 카페에서 시간 죽이기 용으로 읽기도 딱 좋았지만 그 이상으로도 괜찮다.

 

 

 

 

 

 

 

 

 

 

 

 

지난 번 읽었던 이 책과 함께 내 딸에게 읽게 하고 싶은 책목록에 넣는다,

먼저 쉽게 이다혜의 책을 보다가 이 책을 보면 괜찮겠다고 혼자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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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사람 저사람 나와서 인터뷰하는 거랑 여러사람이 갑자기 등장하는 부분만 넘기면 정말 책장이 저절로 넘어간다, 시간이 금방 간다,

엄마들이란  호주나 한국이나 다를게 없구나

엄마들사이에서도 여왕벌이 있고 돼지 엄마가 있고 소문을 몰고 다니는 여자들이 있고 이유도 모르고 왕따를 당하는 엄마도 있고 목소리가 크고 정의롭기만 한 엄마도 있고 아름다워서 질투를 받거나 무조건 추앙을 받는 엄마도 있다,

아이들 사이의 왕따나 따돌림이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그런 엄마가 되고 또 그런 아이들을 만든다,

한편 폭력을 보고 자란 아이는 폭력을 쓰는 사람이 되고 자기도 모르게 또다시 폭력을 쓰는 아이를 기른다, 거울도 안보는 남자마냥 스스로의 얼굴을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사소한 거짓말은 무엇이었을까 페리가 섹스 뱅크스라고 속인 거짓말?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셀레스트는 자기가 가정 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타인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숨긴다,

제인은 귀여운 아들 지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를 쉽게 말할 수 없다,

매들린은 전 남편 네이선의 가족이 한동네 한 학부형이라는 사실을 공개하지만 그 속내까지는 꺼낼 수 없다.

저 여자들의 공통점은 뭔가 문제로 아파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내 잘못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셀레스트는 끊임없이 페리를 쪼개며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분리해내고 자꾸 좋은 면을 생각하려고 하기만 하고 제인은 그날 밤의 사건이 자기가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며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고 매들린은 화끈한 만큼 걱정도 많다.

셀레스트가 가진 문제가 가정폭력이라면 제인의 문제는 일종의 데이트 폭력이다.

폭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하지만  내 잘못도 있다는 데서 오는 죄책감과 그 나쁜 남자가 한편으로는 좋은 아빠이고 좋은 남편일 때도 있다는 생각이 혼란을 가중시킨다.

나도 함께 때렸으니까 내가 먼저 저 사람을 도발했으니까 라고 자꾸 자기의 문제를  생각하고 그가 다시 다정하고 친절하고 나를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 더 중심을 둔다. 내가 맞고 있고 그가 때리고 있다는 사실은 자꾸 뒤로 미뤄진다. 그렇게 멍해지고 몽롱하게 길들여간다,

그날 그 바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함께 엘리베이트를 타고 룸에 가지 않았더라면... 거기에 내가 알고 있는 내 단점 나는 뚱뚱하고 예쁘지 않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비웃었던 사실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못생겨서 냄새가 나서 역겨워서.. 그런 일을 당한걸까? 그 생각이 내내 떠나질 않고 누굴 만나도 그날 그 말이 나의 삶의 판단 근거가 된다.

매들린도 어쩌면 남편이 생후 한달되 딸과 자신을 버리고 떠났을 때 분노를 이겨내고 함께 삶을 헤처나왔던 그래서 딸이며 동시에 동지이고 전우이기도 한  에비게일이 아빠의 집으로 떠나는 순간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엄마라서 그 감정을 드러내면 안되고 쿨하고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던 거다. 딸이 주는 배신감앞에서 전남편과 지금의 남편을 비교하게 되고 자꾸 지금의 자식들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고 내가 남편의 새아내보다 못한게 있는 거 같고 자꾸 더 뒤쳐지는 것 같은 열등감이 커지게 한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못하면 누구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남에게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 나조차 속여버린 사소한 거짓말들을 이 책을 말하고 싶었을까?

다들 속물이고 한편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럴수 밖에 없었겠다.라는 마음이 더 드는 건 나 역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참 많이 다른 세여자가 서로 친해진다는 것 의심없이 믿어주고 서로를 위해 싸워주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악녀인줄 알았던 레니타의 반성도 참 동화적이다,

 

지구 저쪽 호주에서 겪는 여자들의 불편함과 불안이 이곳에서와 다르지 않다는게 참 서글프다,

많이 배웠든 지위가 어떻든 여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지워지는 무게가 있다,

남자들도 다르지 않겠지만

여자들의 그 무게는  무게를 느끼고 토로하면 여자답지 않거나 모성이 부족하거나 모든게 내 잘못으로 인한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까지 덧씌워진다. 세 여자는 누구도 악녀는 아니다,

남편에게 맞는일이 당연하지 않고 남성에게 성적인 모욕을 당하는 일은 내가 명백한 피해자이고 혼자 키워온 내 아이가 내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인간적으로 당연할 수 있는데 그 당연한 감정에 자꾸 죄책감이 덧칠되고 무게가 늘어간다. 그래서 서로의 상처를 견주고 무게를 재며 내가 좀 낫다고 여기거나 내가 더 억울하다고 하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눈물위에 웃음을 걸어놓는다. 모두가 통속적이고 속물이긴 해도 미워할 수 없는게  그들이 원죄이진 않다는 것

 

이렇게 여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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