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신기루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와 딸이 함께 몽골여행을 한다.

단둘만의 여행은 아니고 엄마의 동창여행에 딸이 함께 따라가는 모양새다.

엄마와 딸의 최초의 세계여행. 단 둘만의 여행

낭만적이고 뭔가 은밀한 소통 즐거움이 기대되지만 천만에...

엄마와 딸은 그저 대면대면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할퀴고는 정작 자기가 받은 상처만을 들여다 보느라 내가 상대에게 하는  한마디 무심한  몸짓 하나가 상처가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책을 펼치면 딸의 입장에서 엄마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이먹은 아줌마들의 주책 젊고 잘생긴 가이드에게 체면도 모르고 알랑거리고 아줌마 특유의 넉살과 입담으로 모든 정보를 알아내고 놀리고 친근하게 들러붙고.. 한마디도 15살 소녀의 눈에는 그저 한심하고 속물스러운 아줌마부대였고 계속 여행을 후회한다.

볼거리가 대단한것도 아니고 음식이 입에 맞는것도 아니고 말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내가 좋아했던 그룹의 오빠를 닮은 가이드때문에 뭔가 기대를 하고 설레지만 번번히 엄마로 인해 방해받고 정작 그 왕자님은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뿐이다.

밖에서  엄마의 새로운 면을 보기도 하지만 흥... 한때 주름잡던 문학소녀였고 나같은 두근거림이 있다는 건 상상조차 되지 않고 지금은 그저 팔뚝살이 철렁거리고 젊은 가이드에게 잘보이려고 화장을 떡칠하고 번번이 내 로맨스를 방해하는 훼방꾼일뿐이다.

데려온 딸은 신경도 안쓰고 친구들과 떠들고 히히덕거리기 바쁜 엄마..

나는 여기 왜 왔을까.. 한순간 가이드와 함께 본 석양에 가슴 설레고 본격적인 로맨스를 꿈꾸지만 그런 하룻밤의 신기루였을까... 아침에 천청벽력같은 소식이 기다린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1부가 끝나면 엄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생애 전환기에 선 엄마는 딸과 함께 좋은 시간을 위해서...라며 여행에 나선다.

딸을 보며 나도 한때 저랬지 하는 감성을 느끼지만 내가 한떄 그랬던것들이 나이들어 보니 별거 아니라는 걸 아는  현재라.. 사사건건 딸을 챙기기 바쁘다.

그런 허튼데 마음주고 시간 빼앗길 필요가 없다는 것 화려하고 도전적이고 반항적인 삶을 지향해서도 안된다는 것... 이 어미가 살아온 45년의 인생이 알려준 그 정답을 딸은 어떤 시행착오없이 알기를 바란다.

거인이 펼쳐놓은 외투의 구멍사이로 보이는 쏟아질듯한 별빛들 가도가도 지평선만 보이는 막막하기만 사막 그 거대한 자연앞에 초라하고 작아지는 나를 보면서 울음도 터뜨리고  친구에게 날선 질투도 느끼면서 여행을 하고 있다. 자유롭게 뭔가 굉장한 터닝포인트를 기대하며 온 여행이지만 정작 내 속에 꽁꽁 숨겨둔 무언가를 꺼내 보기는 두렵다.

어쪄면 그걸 꺼내어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45년 내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될까봐 그게 두렵다.

 

엄마와 딸의 여행 , 이국에서 겪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로 보는 딸과 엄마의 성장이라는 건  상투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가슴이 먹먹하다.

어쩌면 지금 내가 글 속의  엄마의 나이에 다인과 같은 딸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 엄마가 느끼는 현실을 마주 하기 두려움같은것이 내 속에 아직도 웅크리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아둥바둥 잡고 힘들게 끌고 가고 있는 것들이 어쩌면 한순간의 착각 신기루일거라는 것

계속 쿵쾅거리는 가슴은 마지막 부분 다인의 말에서 왈칵 감정이 쏠렸다.

신기루가 마냥 신기하고 이상하고 허무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여행중에 그 신기루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기대를 할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것

살아가는 세상에 아무 의미없는 시간은 없을 것이다.

그 시간이 나중에 뼈아픈 후회가 될지라도 혹은 나중에 기억도나지 않는 허무한 시간일지라도 그게 의미없는 건 아닐껏이다. 그 순간순간은 뭔가 절실하고 몰두했던 것들이 있었으므로...

 

아이가 읽고 싶다고 해서 빌렸다가 시험기간이라 내가 먼저 읽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내가 먼저 읽기를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이도 이 책을 읽고 제 엄마를 이해하려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쩌면 그나이에 그저 내 성적에 안달하고 엄친딸과 비교나 하고 투덜거리기나 하고 돈돈거리는 엄마를 보며 한심하다고 내아이도 생각할지도 모른다.

엄마는 마냥 팔자가 좋아서 시험도 안보고 단어를 외울필요도 수학을 풀 필요도 없고 친구들 사이의 고민도 없어보이고 빈 집에서 하루종일 (적어도 반나절은) 원하는 걸 하고 지내는 구나.. 하는 그런 부러움반 한심함 반 생각을 했을것이다.

하지만 그런 딸에게 나도 책속의 엄마 이상의 무언가를 줄 수는 없을 거같다. 무언가 멋진 말을 하고 싶지만 번번히 누군가에게 가로채이거나 기회를 잃을것이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싶은 멋진 엄마이고 싶은 동시에 아이의 성적과 미래를 당겨 걱정하느라 전전긍긍할것이다.

 

전혀 비슷하지는 않지만 라이팅 클럽이 생각났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이고  딸이 엄마를 한심하고 무시하기도 하지만 결국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 둘사이의 한없이 깊은 애증이 보여진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하고 상처주고 상처입는 다는 것 아닐까

 

엄마는 딸들에게 꼭 너같은 딸낳아서 키워봐라 하고

딸은 절대로 엄마와 같은 삶은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절대 닮고 싶지도 않고 닮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내게 가장 무서운 비판자이고 내게 가장 쓰라린 상처와 위안을 동시에 주는 존재들이다. 엄마에게 딸은 딸에게 엄마는...

나도 한때 내 엄마가 좀더 멋지길 바랬고 너무나 통속적이고 집요하게 걱정하는 걸 간섭이라고만 생각했고 절대 내 마음을 이해못한다고 나랑 수준이 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렇게 오만했던 나이때의 나를 지켜보았을 엄마 나이가 되면서 엄마의 행동이 이해가 되고 받아들일 수는 없어도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그때의 엄마는 나보다 많이 젊었고 그래서 피가 더 뜨거웠을 것이고 더 힘들었을 것이다.

결혼이 늦은 그래서 속물이 되어 결혼한 나랑 달란 보송보송한 20대 초반에 결혼한 엄마에게 시집이며 남편이며 딸이며 하나같이 버겁고 혼자 수습할 수 없는 대상이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 나도 엄마랑 다르지 않는 삶을 살고 있고 엄마랑 다르지 않는 모습을 내딸에게 보여준다.

나는 다를 거라고 적어도 아이와 친구가 되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사람이 될거라고 큰소리 쳤지만

그리고 지금 그러하다고 믿고 있지만.. 아마  내 아이는 속으로 엄마랑 말이 안통해! 할지도 ..

엄마가 딸이 되고 딸이 엄마가 되는 순간이 겹쳐진다고 그게 반복된다고 책은 조용히 이야기해준다.

라이팅 클럽을 다 읽고 책을 덮었을때 뭐라고할 수 없던 먹먹함이 지금도 느껴진다.

계속 나는 달리고 있는데.. 이 울타이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데 자꾸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 사막에서 길을 잃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자동차처럼 나도 그렇게 열심히 도망치고 달렸었는데 어느새 내가 정말정말  달아나고 싶었던 바로 그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을때 느끼는 망연함...

그리고 그 달리는 과정에 내가 봤던 아름다움, 이상, 꿈이 어쩌면 신기루였는지도 모른다는 것

지금부터 내 아이도 그렇게 지독한 달리기를 하겠지만 어쩌면 계속 맴돌기만하는 걸 시작할것이다

멀리 멀리 엄마로부터 떨어져보라고.. 나랑 다른 길을 가보라고 등을 떠밀어주고 싶지만 한편 그 손을 차마 놓지도 못하는 이야기..

그리고 항상 깨달음은 나중에 온다는 것..

 

지금 마흔의 중반에 서서 문득 삐뚤어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한없이 삐뚤어지고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아봐도... 나쁘진 않을거같다는 건..

어쩌면 숙희로 살다가 이제 춘희로 살고 싶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방주로 오세요

피그말리온의 아이들

그리고

고의는 아니지만

 

이 작가는 누구지?

아 물론 그가 구병모라는 미모를 가진 여자라는 건 안다.

그리고 개인적인 정보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위의 책들을 덮으면서 늘 떠오르는 것

 

도데체 누구냐 넌?

 

넌 도데체 왜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하고 이런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이런 찝찝하고  뒤 안닦은 느낌을 주는 결말을 내는 거냐

그리고 그 기기묘묘한 뒷감정을 이렇게 오래오래 끌게 하는거냐?

 

 

 

그의 첫 책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었을 때 참 신선했다

뭔가 스릴있고 가슴을 죄어오면서도 생각할 꺼리가 많았고 그 신비로운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뭔가 하나를 얻으려면 댓가를 주어야 한다는 것

내가 다시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동화처럼 낭만적이고 모든 걸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때"로 되돌아간다는 단순한 사실 그래서 설령 또다시 지금처럼 모든 것이 반복이 되더라도 그 모든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 될지 불행이 될지 아. 뭏. 튼...

 

신기하면서 가슴이 서늘해지는 그 이야기를 읽고나서 한참 후에 아이도 함께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겨우 초등학생이 무엇에 끌렸는지 몰라도 아이가 먼저 그 작가의 작품을 찾았고 먼저 읽었다.

집에 "피그말리온의 아이들' "방주로 오세요" 가 있어도 위저드에서 느낀 피로감이 쉽게 잊혀지질 않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단편인 "고의는 아니지만"은 그냥  몇장읽고 닫았다.

쉽지 않아...

내가 이해력이 딸리는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문제인건지...아니면 우리 합이 안맞는건지도..

 

                             

 

그리고 아이를 따라 방주~ 와 피그말리온을 읽었다.

여전하다.

뭔가 아쉬움이 남는 결말 자꾸 뒤통수를 당기는 기분은 여전하다.

피그말리온의 아이들을 읽으며 과연 기성세대중 누가 로젠타 스쿨의 교장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교육이라는 것이 결국  권력자가 통치하기 편하도록 사람을 길들이는 과정일 뿐이라는 걸 모두가 알면서도 모른 척 할 뿐이다. 보다 손쉽게 보다 우리에게 유용하게... 그러나 전면으로 내세우는 것은 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

무기력해보이는 아이들이 외부인을 돕고 체제에 저항을 하지만 결국은 더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그곳을 나오지 않는다.

나온다고 한들 세상에 알린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들에게 따듯한 집이 있는가 환영해주는 가족이 있는가 결국 세상은 바뀌는 것이 없다.

그래서 결론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 미안하고 미안하다.

내가 그렇게 한것도 안이지만 내가 그렇게 극악스럽게 아이를 몰아간건 아니지만

그래도 모른 척 눈감고 좋은게 좋은거야... 하고 등을 돌리는 행동

이런 단순하고 무심한 행동이 용서되지 않는다.

그런들... 그래서 어쩌라구

 

방주시는 작가 후기에서 볼때 아마 그의 초기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출간은 늦었지만 예전 미리 써놓은 습작같은 걸 고치고 고쳐서 내놓은게 아닐까

조금 서툴고 단순하고 직선적인 느낌이 강하다.

투박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꾸미지 않고 내뱉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현실의 어딘가를 떠올리게 하는 방주시 그리고 그곳의 선택된 사람들 그리고 반쯤 선택될 수도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격차를 폭파해버리고 싶은 ㄴ사람들

결국 이 이야기도 끝은 그렇게 끝났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작가의 백미는 "아가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이야기도  기묘하지만 아름답다,

반은 물고기인 주인공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때문인지모르겠지만 이야기가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리고 이전 리뷰에서도 썼지만 이건"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끝없는 학대와 미움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소년이 누군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미워하고 구타하고 이용하는 것 그러면서도 "살아있는게 좋아서"그렇게 데리고 있는 것

이 유치찬란하고 어이없는 행동이 결국은 사랑이었다.

결국 학대도 사고이후의 전혀 연락하지 않는 고집에서도 누군가를 향한 절절한 사랑이 느껴졌다.

혹 그때 내 마음이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한권 "고의는 아니지만"

이건 단편집이다.

이걸 읽으면 내가 작가를 조금 더 알 수 있을까

 

한권한권 읽으면서 내 편견으로 인한 것일지라도 작가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뭔가 공감이 가는데

이번은 읽을 수록 오리무중이고  더욱 알 수 없다.

도데체 이 작가 다음엔 무얼 쓸것인가

내가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세상의 기대가 무서워서 이제 숨어버리진 않을까

그건 그렇고 도데체 누구냐 넌

몇권을 더 읽으면 알 수 있는 거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나이

세상에서 제일 거칠것 없는 나이

세상에서 제일 막 나가는 나이

그게 바로 중학교 2년이란다.

오죽하면 북한이 못 쳐들어오는게 얘네들때문이라고 할까

사실 큰애도 내년에 중학교를 가는데 들리는 여러가지 흉흉한 소문들을 들으면 어찌 보내나 싶은 생각이 하루에 열두번도 든다.

초등학생을 키워본 엄마들은  그때는 한창 어린애들이라고 하고

중학생을 키워본 더 나이 든 엄마들은 중학생도 한창 아기들이라고 한다.

사실 나이 먹어 돌아보면 20대라고 내가 뭘 다아는 것도 아니었다.

법적인 성인이고 주민등록이 나왔을 뿐이지 우리가 철이들고 세상을 다 안게 아니었으니

아니 솔직히 20대에서 그 비슷하게 더 산 지금의 나이에도 아직도 내가 철이 들었다 세상을 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없는데

하물면 중학교 2학년이면...

문제는 돌아보면 그때 내가 참 어렸구나 하는 걸 알지만 막상 그 나이때는 이미 알거 다 알고 나도 클만큼 컸거든!!하는 마음이 더 컸던건 사실이다.

애들은 유치하고 어른들은 치사하고 세상은 부조리하고 학교는 공정하지 않다.

지들도 잘난거 없으면서 공부에 몰아치는 선생들도 같잖고 잔소리하고 내마음도 몰라주는 부모도웃기지도 않고.. 뭐 그런 나이

그래도 예전엔 그냥 그렇게 혼자 여기저기 좌충우돌하거나 몰려다니며 먹어대고 웃어대고 불만을 내기하듯 풀어내는 게 전부였는데 요즘은 다르다.

아이들이 더 많이 세상을 알아서.. 화장도 하고 남자도 만나고 게다가 왕따와 자살 등등 모든 문제의 집합체가 중학시절이라는 말들이 솔찮이 들려온다. 설마....

자살을 많이 하고 왕따가 심해지는 시기

교사들도 손을 놓게 되고 어른들도 눈치만 살피는 시기

그 무서운 시기가 다가온다.

사실 옆에서 보는 입장에서 저 철없는 것 되바라진것 나쁜 년 놈 해가며 욕하고 피하고 잔소리하고 나아가 때리기도 하면 그만이지만 그 시절을 지나는 이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고통이고 불안이고 전쟁이 아닐까 싶다

 

책의 주인공 스미레도 사실 평범한 여학생이다

그리 뛰어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지만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해야겠다고 결심도 하고 노력도 하고 그리고 친구도 사귀고 싶다. 당연하다.

그런데 맘대로 안된다.

그 시절로 돌아가 내가 그때 젤 고민한게 부모님이나 성적은 아니었고 친구관계였던거 같다.

어쨌든 고등학교는 진학할 정도 성적은 되고 가족관계도 무난하고 젤 힘든게 ㅇ친구다

더우기 여학생들의 그 복잡미묘한 여러가지등등 

 

 

 

여학생들은 그게 본능인지 모르겠지만 소속감이 없으면 무척 불안하다. 어딘가 그룹에 끼어 함께 먹고 웃고 떠들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또 거기에 끼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빠지지 않기 위해서도 전전긍긍해야한다. 나의 취향 나의 관심과는 상관없이 무리의 취향과 노선에 따라야 하고 거기에 맞춰 호호 웃기도 하고 뭔가 깨름칙한 짓도 서슴없이 할 수 있어야 하고

사실 지나고보면 유치하고 철없는 짓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절실한가

그룹에 끼느냐 마느냐는 내일 해가 뜨느냐 마느냐 늘이 무너지느냐 마느냐의 문제만큼 절실한 일이다. 누군가 함께 도시락을 먹을 사람이 없고 나와 수다를 나누고 하소연을 들어줄 누군가없다는 것 함꼐 화장실에 손잡고 갈 사람이 없다는 것  그건 황량한 사망게 뚝 떨어진것보다 더 불쾌하고 불안하다.

그런 서로의 불안을 함꼐 공유하면 좀 좋으련만

그걸 악용하기도 한다. 여기 들어오고 싶어 안달하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놀리고 될듯 말듯 애태우는게 그렇게 재미있을까

스미레도 그런 고통을 지나왔다

샤냐는 그 위기를 목숨을 담보로 하며 지나왔다.

 

자신들의 모임이 관계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그 시절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가 소녀들이고 가장 강하고 악랄한 존재도 소녀들이다.

내가 돋보이려고 누군가를 모함하고 위기에 빠뜨리고 상처주는 것 그리고 그건 장난이고 친해서 하는 짓이라고 하고..  그렇게 불안하고 위태로운 시기를 넘겨야 성장하게 되는건지...

 

노력은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중 2때의 나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노력해도 안될때 지나치게 고민하면 안된다. 좋아하는 간식이나 따뜻한 차라도 들면서 폭풍이 지나가기를 얌전히 기다리는 편이 낫다 퐁풍우는 금방 지나갈 테니까 절대로 리스트 컷따위를 해서는 안된다.

 

내년 내 아이가 스미레처럼 샤니처럼 위기에서 내게 손을 내밀면 나 어떻게 해야할까

어쩌면 당장 뭔가 절실한 아이에게 어떤 조언도 훈육도 도움이 안될 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배운대로 육아서나 교육치침서따위가 소용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고 맛있는걸 먹으면서 함께 버티는 것 견디는 것 그게 더 절실하지 않을까

그걸 과연 나는 할 수 있을지

 

어쩌다 중학생 엄마같은 건 되가지고 하이고 하이고 하면서 아이보다 더 동동거리는건 아닌지모르겠다.

어쨌든 우리 모두 힘내자..

중학시절을 3년이면 끝이다. 그  기간이 아름다운 추억이될지 지긋지긋하게 지우고 싶은 기억이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 시간을 비켜갈 수는 없으니까 피할 수 없으니 즐길 수 밖에...

내년이 기대되고 긴장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썸네일

 

 

꽤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집에 계신 티비는 달랑 네개의 공중파만 나오는지라 캐이블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그저 그림의 떡이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때마다 하도 1997 1997 해대는 통에 도데체 뭔가 하고 보기시작해서 딱 4일만에 15화까지 다 마쳤다.

아.. 이런 재미난 드라마가 있었다니..

첨 드라마를 볼때는 알콩달콩한 로맨스보다는 그 깨알같은 시대의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보다보니 시원이와 윤제 사이가 참 오묘하다.

어릴적부터 허물없이 보아온 친구사이

나는 저 아이의 식습관 잠버릇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걸 세세하게 다 알고  상대의 첫 생리가 언제 터졌는지 어떤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어디에 빠져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아는 사이

내가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우울하면 옆에서 어꺠를 내밀어 주고 기분좋아 미치겠는 순간에 등짝을 팍팍 맞아주며 내 마음을 받아주는 사이..

아 흔한 구도로 친구가 언젠가 연인이 되는거구나..

그렇게 시작하고 봤는데 오묘한걸 발견했다.

윤제에게 시원이는 엄마가 아닐까?

윤제가 싫어하는 오이를 대신 먹어주고 자장면에 올라가 있는 완두콩을 대신 먹어주고

내가 빨던 빨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대로 입으로 빨고 침을 뭍혀서 뭐 묻은거 때어주고

그건 연인이 아니라 엄마가 자식에게 해주는게 아닐까

어릴적 부모를 잃은 윤제에게 아마 엄마는 늘 부제중이었을테고 그 빈 공간을  어느새 시원이가 차지하고 메워주는 것이아닐까 했다.

시원이가 그렇게 윤제를 구박하고 떄리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굴어도 그건 친구나 연인이 아니라 엄마가 내게 하는 잔소리고 간섭이고 잘되라고 하는 매질(?)이고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윤제의 정서적 빈공간을 채워주는 사람 그 사람이 시원이고 그렇게 둘이 정을 쌓고 그게 사랑으로 변해간다.

 

열달동안 엄마의 뱃속에 있다가 나온 아이는 몹시 두렵다. 탯줄이 잘리고 세상에 혼자 버려진 느낌 그때 첨으로 나를 안아주고 배고플때 먹을 것을 주고 기분나쁜 젖은 귀저기나 불쾌함 두려움을 울음으로 나타내면 귀신같이 알고 와서 챙겨주는 사람 그 사람이 엄마였다.

(그 엄마에게 모성이 자연스러운가 아닌가는 차후로 미루고 일단)

그런 엄마가 채워주는 정서적인 안정감은 아기에게 대단한 것이다.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고 빽이고 투정이나 화내는 것짜증내는 것 다 받아줄 사람

내가 나보다 더 편하게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엄마가 아이의 정서를 채워주고 나면 아이는 세상에 나설 용기가 생기고 또다른 세상의 문을 아무런 주저함 없이 열어젖힐수 있지 않을까

윤제와 시원이를 보면서 나는 두 사람이 연애를 하고 밀당을 하고 서로 마음을 몰라주고 그게 아니라 어쩌면 20년 가까이 그렇게 자기들도 모르게 서로 빈 정서의 공간을 채워주고 있는 엄마와 아들같은 관게구나 하는 걸 보았다.

시원이의 잔소리 니킥 무모한 고집이 윤제를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면서 정서적 안정감을 함께 주었던게 아닐까

책 썸네일

최근 읽었던 홍당무

그 소년도 불안하고  현실에 불만이 많은 엄마로 인해 정서적 빈 공간을 채우지 못한 소년이었다.

늘 속을 줄 알면서도 엄마말을 믿고 따르고 뭐든 시키는대로 하는 것도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아닐까 싶다. 채워지지 않은 내 정서의 빈공간을 어서 채워달라고 비어있어 지금 내가 몹시 불안하고 두렵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중이 아니었을까

지치고  임계점까지 화가 찬 엄마의 마음을 그스를까봐 자기 감정은 죽이고 담담하게 바라보면서도 자꾸 바라는 것

그도 빈 공간이 많은 소년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참 자라는 내 아이들에게는 얼마만큼의 빈공간이 남아있을까

탯줄을 자르면서 부터 함께한 불안과 두려움을 나는 얼마나 달래주고 안아주었을까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사랑은 주는 사람이 기준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기준이라고 했다

사랑이 아니라 배려가 그랬다는 건지 좀 모르겠다

주는 사람이 이만하면 충분하다가 기준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감사하고 이만하면 충분하ㅏ다고 느끼는 만큼이 진정한 충분한 배려고 사랑이라고

주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나는 이만큼 주었는데 왜 반응이 없는가 왜 나에게 돌아오는 댓가가 없는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받는 사람입장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동정이거나 강요로 느껴질 수도 있단다

내가 이렇게 희생해서 너를 가르치고 기르고 돌보는데 너는 왜 그렇게 삐딱하게 나를 보고 나를 원망하니 내가 도데체 뭘 잘못했니? 나는 하느라 했다.

이런건 어쩌면 자식에게 족쇄가 되고 도망가고 싶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아이의 정서를 매워주면서도 쿨한 엄마

늘 아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조금은 거기를 두고 무심한 엄마

그 적당한 거리가 참 어렵다.

암만 생각해도 홍당무의 엄마 르픽부인은 홍당무를 사랑하는 방법이 홍당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닌걸 모르는 거같다. 그럼에도 자기 방식으로 사랑이라고 믿고 퍼부으면서 혼자 지쳐갈 그녀가 안쓰럽다.

나는 지금 나 혼자 일방적으로 사랑이라고 퍼부으면서 혼자 지쳐가고 있지 않나

사춘기가 된 아이는 그걸 지*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갑자기 불안하다.

딱 윤제에게 시원이만큼 되는 그런 사랑이 필요한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