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작가구나 싶었다.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감정들 생각의 가닥 가닥들을 섬세하게 놓치지 않고 들여다 보고 묘사해낸다. 그 감정과 생각에 경중이 있지 않고 앞뒤가 있지 않음을 세심하게 살핀다. 그 마음도 그 맞은 편의 다른 마음도 다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작가는 말하면서 은근하고 강단있게 그럼에도 옳은 방향은 이렇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그 마음이 참 따뜻하다.

 

내가 누군가와 연대한다고 믿는 순간에도 내 속에 수만가지가 혼란스럽게 고개를 내민다. 우월한 위치에서 시혜적인 마음

한켠 이것이 전부 진실일 리 없다는 의심

그 의심을 감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 믿는 신념들

나의 지적 능력에 대한 관신

이건 내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죄책감

내가 뭘 안다고 나서는 걸까 하는 소심한 두려움

그렇기에 도망가도 괜찮다 누군가 대신하지 않을까 하는 비겁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한다는 무모한 정의감까지

한가지 행동에 존재하는 수만 갈래의 마음들 그렇게 나는 나를 한 방향으로 몰아가지 못해, 단단한 믿음이 없어서 갈등한다.

어떤 한 갈래의 내 마음이 타인의 다른 갈래의 마음가 만나서 갈등을 만들고 마음은 서러움과 부딪친다. 상처입고 웅크린다.

내 마음을 내가 정확히 이름 지을 수 없다 선한 사람이길 바라며 동시에 무엇도 손해보고 싶지 않고 가난한 내것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비겁이 부딪치면서 타인의 속물스러움을 부러워하며 동시에 혐오한다. 그 상대의 속물스러움은 내것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불행을 절박한 상황을 들으며 나는 판단하거나 충고를 해주지 않으려 한다.

나는 그 상황을 잘 모른다. 어쩌면 그는 자기가 유리한 상황만을 내게 말하고 편을 들어달라고 하고 도와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세상에 완벽하게 순수한 중립이란 없다. 누군가는 상처를 입게 되고 아무도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 그 놈의 중립이니까. 나는 완벽하게 그 사람의 편을 들고 싶다. 그가 틀렸더라도 내가 속았더라도 이용당하고 있을지라도 지금 이순간 그의 편이 되고 그의 말을 듣고 그의 등을 쓸어주며 니 잘못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그렇듯 그도 그렇다고 믿는다. 우리는 사실 자기가 잘못이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크든 얼마나 작든 내게도 티끌이 있음을 안다. 다만 모른 척 할 뿐이고 아니라고 우기고 싶을 뿐이고 속이고 싶을 뿐이다. 내가 아는데 적어도 나는 속일 수 없다. 정말 완벽한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그냥 나는 그 판단에 눈을 감고 편을 들고 만져주고 위안을 주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타인에게 인정받고 공감받고 나면 내 잘못을 들여다 볼 용기를 낼 수 있고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한 발 내디딜 힘을 얻을 거라 믿는다. 모두가 찾아와 도움을 청하고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는 마음을 먹고 실행하는 순간 그는 자기를 제대로 보려고 하는 것이라 믿고 싶었다.

짧은 경력의 상담사는 그렇게 기도하며 상담실로 들어간다.

 

갈등이 나쁜 것은 아니다. 갈등이 없는 매끈한 현실은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끔찍하다. 하나하나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어떻게 갈등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을까?

알수록 어려운 타인이고 모를수록 관대할 수 있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아무렇지 않고 편안하기만 할까? 제대로 갈등을 겪고 제대로 부딪쳐서 너와 내가 뭐가 다른 건지 이건 과연 만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 다투고 고민하고 끝을 각오하고 덤비는 상황을 맞지 않고 그냥 일방이 참고 견디는 그런 매끈한 화목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엄마를 50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나는 엄마를 모른다는 걸 알았다.

엄마도 나를 모른다.

엄마가 판단하고 불렀던 말이 없어 속을 알 수 없고 삐딱하기만 아이를 그동안 나라고 여겼다.

내가 문제라고, 다른 모두는 닮아서 이해하고 공통점이 있는데 나만 불편하고 어색하고 쉽게 입을 열기 힘들었던 관계가 모두 내탓이라고 생각했다.

고칠 생각을 하고 노력한 건 아니었지만 나도 그들과 정말 절실하게 닮고 싶었다. 차라리 그들을 닮아서 편안하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에 안들고 그건 아니라고 자꾸 부정되면서 한편으로는 저렇게 살고 싶고 저렇게 서로 공감하고 편했으면 했다.

늘 내 선택은 틀렸다. 끝에 가면 뭔가 이상하게 뒤틀리고 어렵고 아니었다. 그때 그렇게 말릴 때 말을 들었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내 속에 가득하면서도 나는 허세가 가득했다. 나는 지쳐갔고 이제 두 손을 들고 나 좀 살려달라고 이제라도 어떻게 하면 당신들과 같아질 수 있느냐고 매달리고 싶으면서도 더 등을 돌리고 괜찮은 척 강한 척 못된 척 했다. 내가 한 선택이 틀렸다는 건 결국 그 결과를 오롯이 내가 안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틀린 문제는 내가 고쳐야지 두 손들고 남에게 치워버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속으로만 안고 쌓아갔고 엄마는 내가 당신을 무시한다고 잘난 척한다고 단정하면서 너는 강하니까 괜찮으니까 하는 마음에 무심하게 돌을 던졌다. 물론 던지는 이는 그게 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쉽게 다쳤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진짜 괜찮고 강하고 못됐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봐도 정떨어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으니까.

자기가 낳고 기른 자식도 모를 수 있다.

가장 친밀한 관계 엄마와 자식도 서로 모른다.

서로 잘 안다고 내가 아는 만큼 상대도 나를 안다고 믿으면 앞뒤 자르고 툭 뱉는 말들 행동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심함, 그런 것들이 서로에게 비수가 되어 오해가 깊어졌고 상처는 깊어갔다. 내 속의 여러 갈래의 마음들

내가 못되서 그들이 베푸는 선한 마음을 속물적인 시혜라고 받아들였다.

그들은 선한 마음을 베풀었음에도 그 마음은 어디다 갖다 버릭 그들이 주지도 않은 모멸감을 받아들고 부르르 떨었다. 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그 모멸을 나혼자 받아들고 어쩔 줄 몰랐다.

내가 삐뚤어졌을까? 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50년이 지나 나만 잘못 생각하는게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는 없겠지만 선한 마음이라 믿었겠지만 받는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 짧은 생각이 모멸감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아무 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도착해 있는 자리가 있다. 아니 아닌가 내가 무엇인가 잘못했을까 나도 모르게 둔감해졌고 안전만 추구하는 의존적인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누군가를 배재했을까?

이런 것이었나? 이런 것이었구나. 사실은 별 것도 아닌데 그래서 별 거였구나.

 

우리는 바이링궐이다. 우리 말은 반쯤은 자신의 것이지만 반쯤은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우리는 종종 싸우려다 싸울 대상을 변호하여 주저앉는다.

그리고 나서 성내고 괴로운 마음이 되어 자신을 때려 기어이 피를 내곤 한다. afl 싫어도 우리 입에선 자꾸만 아줌마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비하하는 그런 말이.

<작은 마음 동호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건 이상한 말이었다. 더 이상 정직할 수 없는 말이지만 몹시 편리하게 책임을 방기해버리는 말이었다. 너무도 불공평한 말이었다. 그러나 승혜에게는 한 사람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 이전에 조금 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꼭 해야하는 칼질같은 말이기도 했다.

 

미오가 선어너럼 내뱉었던 너는 몰라라는 말에 담긴 무서움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 것인지 승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 말은 심연의 말이었고 그것을 똑바로 감당하기엔 승혜는 너무 젊었다. 나는 무엇을 모르는 것일까 얼마나 모르는 것일까 미오 또한 나를 얼마만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승혜는 무서웠다. 그래서 무서움의 크기만큼 유치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승혜만큼 미오 역시 무서워하고 있었다. 승혜는 그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그 하나하나의 작은 행동들이 아무런 상처도 남기지 않는 것은 또 아니어서 그렇게 젊은 두 연인은 서로를 물고 뜯고 눈이 빨개질 때까지 울음을 터뜨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모르는 건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되는 거야. 아마 그건 우리가 좋다거나 나쁘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닐거야.

 

그렇게 궁금하면 네가 누나에게 나중에 다시 물어볼 수도 있지.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그렇지만 네가 나중에 다시 물었는데 누나가 대답을 할 준비가 안 되있거나 대답을 전혀 하고싶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면 억지로 물어보면 안되는 거야.

 

이런 맛 궁금했는데 생각과는 달랐다. 심심하고 슴슴하고 대단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맛이었다. 그 아무렇지도 않음 때문에 실망스러우면서도 안심이 되는 그 별 것 아님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승혜와 미오>

 

 

나는 내가 있었으면 좋겠어.

 

오직 자신에게만 들리는 아우성을 속에 품은 채 진짜와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보고 듣고 짐작하고 취급하는 세상 속을 계속 걸어가야 하는 괴리감과 말하고 싶은데 입을 다물어야 하는 수두룩한 순간들과 그런 고립 상태와 엄마와 재윤은 내내 싸워왔던 것이다. 나는 어떤 것과도 그런 식으로 싸워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거대하고 절박한 질문들은 아니어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어떤 막막한 심정은 내게도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치부터 밤까지 그것의 조각들이 내 몸속을 작은 반딧불처럼 날아다니다 새벽이 되어서야 꺼지는 광경을 느리게 느리게 지켜보곤 했다.

<마흔셋>

 

 

누가 옳고 그런지 판단과 결정을 하고 싶지 않아요. 할 능력도 자격도 없어요.

내게 온 그 사람은 말을 듣고 공감하고 편들면서 온전히 그가 나를 믿고 말하는 그 순간 그 동안은 그 사람 편이 되어 주고 싶어요. 어쩌면 본인이 가장 잘 알거예요. 이건 전적으로 그 사람 잘못만은 아니다. 내가 빌미를 주었을 수도 있고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달라져서 내 마음이 달라져서 미움 때문에 이럴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 모든 마음을 뭉뚱거려서 나는 그 사람편이 되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요.

누군가가 오롯이 존중해준 내 마음 그 경험이 본인이 앞으로 발을 내디딜 용기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을 돌아보며 욕심이라면 내려놓을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그냥 그 순간 내가 이용당하고 있더라도 그 사람 편을 들고 싶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가 딱 이정도밖에 안되니까요. 더 이상은 나도 무섭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의 성폭력 피해사실 앞에서 나는 왜 도리어 망설이게 될까

그 안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누군가 편을 들어준다는 것 설령 그가 아주 가깝고 친밀하고 믿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전부를 걸어야 하는 일 일수도 있다. <피클>

 

 

믿어야겠죠. 선한 마음에는 아무 힘이 없다고 그건 아주 작고 연약한 거라서 어떤 무서운 일도 일어나게 할 힘이 없다구요. 그래서 우리가 지켜줘야 하는 거라고요.

 

위기에 처한 타인을 보면 사람은 미래같은 것과 상관없이 구하려고 몸을 던지게 마련이고 그는 그 본능에 충실한 뒤 자신 안에서 어떤 일관성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했을 뿐이다.

지금 이 세상은 너무도 병들어서 우리는 타인의 선의 뿐 아니라 자신의 선의까지 의심하고 그것을 망상의 위치까지 격하시킨다. 그런 지경까지 온 것이다. 정말이지 그래서는 안되는 지경까지.

<이웃의 선한 사람>

 

약속해 어떤 가정법도 사용하지 않기로

그때 무언가를 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말로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로 해

가정법은 감옥이야. 그걸로는 어디에도 닿을 수 없어.

나는 현재를 살거야. 과거의 형벌을, 잘못 내린 선택의 총합을 살지 않을거야. 기억이라는 보석속에 갖혀 빛나는 과거의 잔여물을 되새김질만 하지도 않을거야. 오직 한 번뿐인 현재를 살거야 지금을.

 

 

세상에 수 많은 준이 존재하고 그 많은 준을 사랑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지경까지 간 상황은 내가 기억하고 또 기억해서 그를 존재하게 해야만 하는 것.

그것이 분열증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모든 존재가 준이 되어야만 내가 견딜 수 있는 상황이다. 준을 기억하고 존재하게 해야만 하는 것.

기억하는 한 나는 존재하는 거야... 그런거다.

<님프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 연약한 존재여

 

이게 내 사랑이야. 이게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랑이 방식이라고

 

내가 인식하는 사랑의 방식을 아무런 주저없이 주장하고 요구하고 실행할 수 있는 건 힘이다.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이다.

그 힘은 대상에게 닿지 않는다. 사랑은 사라지고 치욕만 남는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로봇들

그들은 왜 여자의 형상을 가졌을까 상반신은 여자이면서 하반신은 확실한 기계의 형상이다.

인간을 완벽하게 닮은 순간 느끼게 될 불쾌감은 줄이고 인간이 만족할만큼 본인의 의사는 전혀 상괂없이 너를 위해 너를 존중한다는 수아에 대한 나의 생각과 판단과 행위들이 과연 수아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평등한 입장에서의 존중이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흘려보낸 시혜였다.

내 입장에서 시혜가 그에게는 모멸이라는 것

몰랐고 이해할 이유도 없었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기까지는...

<수아>

 

 

 

같은 입장, 같은 부류로 나뉘어 한 무리로 묶여있어도 개인은 각각 다르다.

사람은 개인적인 존재이고 저마다 특별하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것이 우선이다.

성별은 같아도 입장이 다르고 위치가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상황이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로 묶일 수 있고 다시 나뉠 수 있다.

함께 묶여서 함께 소리내고 목적을 향해가더라도 다음 날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를 수 있다. 사람은 변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때 우리가 같은 생각 같은 방향이었다는 것이 위선이 되거나 그냥 아무것도 아닌 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대로 가치가 있고 지금은 지금 이대로 의미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물론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고 그때 그렇게 믿고 친밀했던만큼 멀어지면 배신감과 미움이 커지겠지만 뭔가 사정이 있겠지. 그렇게 딱 그만큼 거리를 용납할 수는 없을까.

우리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작은마음동호회에서 그걸 본다.

 

이성애 커플이든 동성애 커플이든 인간이 가지는 갈등과 고민은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편안하고 그래서 이상하고 이물감이 든다.

나랑 분명 다른 취향을 가진 이들이 나랑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한다는 건 위안이 될까 두려움이나 분노가 일게 될까. 승혜와 미오는 그냥 연인이었다. 사랑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함께 했지만 이제는 또 그 사랑이 걸림돌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한다. 유치하게 삐지고 미워하지만 알고 싶어하는 마음도 그만큼이다. 나는 아직 그들을 모르지만 그가 가진 마음은 내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걸.. 그리고 모르는 만큼 알 수도 있을거같은 마음

그들은 그냥 보통의 커플일 뿐이다.

 

가족이지만 가장 깊은 마음은 서로 말하지 못한다. 타고난 내가 나로 살지 못한 삶을 그만두고 성별을 바꾸고 싶어하는 둘째,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지만 외롭고 강하지 않은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첫째와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해하지만 내 이해범위 밖에 있는 아이들을 어쩌지 못해 병을 가진 엄마는 서로의 가장 깊은 상처는 결국 드러내지 못한다. 더 깊은 상처가 있다는 걸 짐작하지만 애써 모른 척 한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그리고 나도 아파서 남의 상처를 관여하고 싶지 않고 제발 상대는 저절로 나아서 무탈하길 바라는 이기심도 있고 그렇다.

가족이어서 멀어지고 싶어도 가까이 갈 수 있는 것.. 가깝지만 언제 멀어져도 괜찮을 수 있는 조금 외롭지만 견뎌야 하는 마음이 마흔 셋에 담겨있다.

 

선한 의지는 누구나 원하는 것인데 그 선한 의지는 의외로 아니 당연하게 강하지 않다.

이런 선한 이웃을 만난다면 나도 겁을 먹을 거고 방어할 것이고 불편할 거 같다. 그래서 선한 이웃을 만나는 건 너무 어렵다.

 

작고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그 입장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섬세하고 예민한 그 촉수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지는 않을까

그의 책을 더 이상 보고 싶은데 더 볼 수 없다는 게.. 아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