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정보없이 아이와 이름이 같은 작가라 읽게 된 책이다,

표지 그림이나 속의 삽화도 마음에 들었다,

아이가 슥슥 그린 것같으면서도 꽤나 세밀하게 잘 그린  친근한 그림체가 내용과도 잘 어울렸다,

엄마의 미국연수때문에 6개월간 외가에 지내게 된 린아는 변화된 모든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낯선 사투리도 그렇고 꽤재재하고  억세보이는 아이들 낯선 풍경 모든 것에서 린아는 이방인이었고 어짜피 정해진 기간동안의 생활이라 굳이 이 속에 스며들 의지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전학 온 첫날  자기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사월이도 싫고 다정하게 대해주면서 자꾸 자기 바운더리를 넘어오는 유하도 싫었다,

서울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던 린아에게 어느날 밤에 유하가 줄게 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사고로 유하가 죽어버렸다,

미처 친해지지도 못한 친구의 죽음앞에 린아는 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발견한 유하의 비눗방울을 불면서 다시 유하를 만난 린아

그리고 그 비밀을 나누게 된 사월이와 지호와 함께 유하의 목걸이를 찾는 모험을 시작한다,

낯선 성황당앞, 돼지 우리 , 학교 운동장 숲길까지 내켜하지 않으면서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함께 다니는 세 아이는 어느 새 친구가 되었고 함께 땀흘리고 의지 하면서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갔다,

서울에서 온 린아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건 낯선 환경에 던져진 아이의 자기 방어라고 생각했었는데  린아에게도 아직 풀어내지 못한 아픔이 있었다, 아빠가 죽었고 그걸 미처 애도하지 못한 채 속에 보따리로 묶어서 치워버렸다,

그때도 흘리지 못한 눈물을 미처 알지 못한 유하가 죽었다고 흘러내리지 못한 건 당연했다,

슬픔이라는 것이 린아에게는 봉인된 감정이었다,

그저 그 감정을 모른 채 그저 화를 내고 늘 불만이었다,

그리고 그 불만이 주위 환경탓으로 친구들 탓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목걸이를 찾는다는 이유로 함께 다니지만 사월이와 린아는 서로 다르다는 것만 절실하게 느낀다,

키가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고 가족상황이나 형제 관계도 다르다,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두 아이는 산속에서 구덩이에 빠지면서 체온을 나누고 마음을 함께 나눈다,

별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속내를 보인것도 아니지만 함께 끌어안고 오돌오돌 떨면서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주었다,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목걸이를 찾는 방학동안 그들은 친구가 생겼고 누군가 다른 사람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고

서로에게 여린 힘을 보태줄 수 있었다,

작가는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을 믿고 있는 것 같다,

여리고 보잘것 없는 힘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구원해준다,

유하는 소에게 쫓기는 린아를 구하고 사월이는 철봉에서 떨어지는 린아를 구하고 린아는 떨고 있는 사월이를 안아주고 이 뒤에는 배경처럼 든든하게 지호가 버티고 서 있었다,

이제 헤어지는 날 비로소 린아는 눈물을 흘린다,

슬퍼서가 아니라 부쩍 커버린 자신에 대한 대견함의 눈물이 아닐까

이별이 이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사이의 정을 나눈다는 것 마음껏 슬퍼하는 감정을 알았다는 것이 눈물로 나타난다,

등장인물들이 아이다워서 좋았다,

영악하지 않고 순수했다,

위악을 떨고 미워하고 이해하지 않으려는 그 모습이 오히려 아이다웠다,

마음껏 감정을 드러내고 어른 흉내를 내지 않고 미워하는 상대를 극렬히 미워하고 좋아지면 그대로 표현해버리는 아이들이 너무 이뻤다,

린아도 사월이도 지호도 그리고 짧게 왔다 가버린 유하도

 

 

 

 

이 만화에서는 너무 눈물울 많이 흘리는 소녀가 등장한다,

언제든 원하는 때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소녀

그는 아무 부러울것없는 부모와 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단 하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언제든 눈물을 흘릴 수 있지만 그건 그저 눈에서 흐르는 물이다,

눈물때문에 감정이 풍부하고 정서적인 아이라고 사람들은 믿지만 정작 아이사와는 어떤 감정도 없다, 그리고 그 아이사와 뒤에는 따뜻하지만 불안한 아빠와 다정하지만 매마르고 소통을 두려워하는 엄마가 있다,

아빠의 바람이 엄마를 불행하게 한다고 믿는 아이사와는 새를 죽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시골로 보내진다,

린아처럼 아이사와도 낯선 환경에 떨어졌고 절대 그곳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동화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다,

낯선 사투리와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지 않은 경계없는 사람들을 경멸하면서 누구에게도 마음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주변 할머니와 친척들 그리고 어린 꼬마 학교에서 그녀를 싫어하던 친구까지 아무런 경계없이 그녀의 공간으로 불쑥불쑥 들어온다,

어처구니 없이 소문난 교복을 바꾸지 않은 이유로 불쌍하고 보호해야할 소녀가 되고 말없고 도도한 표정이 어떤 꼬마에게는 매혹적이고 좋아하는 누나의 모습으로 비친다,

누구도 그녀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무심함도 있다,

어떨 때는 터무니 없이 무심하고 어떨 때는 터무니없이 훅 들어오는 사람들때문에 아이사와는 너무 힘들지만 절대 엄마에게 먼저 돌아가겠다고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여기엔 오래 머물 생각이 없으니 교복조차 바꾸지 않는다, 그 교복은 아이사와 자신이고  여기에 동화되지 않겠다는 고집이다,

그러나 아이사와 역시 린아처럼 스르르 무장해제된다,

아픈 꼬마는 너무나 사랑스럽게 누나를 따르고 사람들은 그녀의 마음을 오해한채로 잘 챙겨준다,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듯이 그녀의 마음을 무심한 따뜻함이 채워준다,

이제 아이사와는 마움대로 눈물을 흘리는 능력을 잃었다,

그런데 대신 마음속에 갖가지 감정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낯설고 두려운 것들이 훅훅 들어왔지만 아이사와는 가만히 그것들을 지켜보리로 한다,

아직은 쿨하고 시니컬한 태도를 버리고 싶지 않지만 작은 변화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린아는 변하고 아이사와도 변할 것이다,

그것을 성장이라고 불러야 하는 지는 모르겠다,

또 언젠가 넘어지고 다치고 마음을 닫을 일이 생길것이고 그리고 또다시 열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될 일들이  반복될 것이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훅 하고 바뀌거나 좋아지지는 않는다,

지루한 일상에서 반복되고 계속되어지면서 어느날 돌아보면 한뺨 커져있고 깊어질 것이다,

아이들은 자란다고 믿는다, 믿는 만큼 자란다고 누군가 말한 것처럼

 

린아 엄마도 잘 해쳐나갈 것이다,

그런데 아이사와의 엄마는 불안하다,

자기를 꽁꽁 싸매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도 받지도 않겟다는 그 철벽같은 마음이 자꾸 걸린다

남편의 바람에 화를 내지도 않고 쿨하게 인정하면서  상대를 더 외롭게 만들거나

엣 남자를 이용하면서 더 쓸쓸해지는 걸 내버려두는 것

아이사와의 변화가 그녀에게도 작은 햇살이 되면 좋겠다,

 

의외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자기 감정을 잘 모른다,

내가 화가 난 이유가 불안인지 인젇받고 싶은 욕구인지 슬픔인지를 모른다

그냥 화가 났다고만 한다,

화를 낸다고만 한다,

그리고 알아주길 바란다 나 역시

내 화 뒤에 숨은것들을 나도 모르면서 타인이 알아주길 바란다,

내 눈물이 너무 두려워서 수도꼭지 잠그듯이 그렇게 꼭꼭 돌려서 한방울도 흐르지 않은 상태를 만들어 놓고 안도한다, 슬픔따위는 절대 접근 불가

그래서 마음은 자꾸 메마르고 흙바람이 분다,

내가 내 감정을 읽지 못하니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도 없다,

그저 남의 감정은 불편하고 피하고 싶다,

내 아이에게도 그렇게 된다, 아이가 징징거리는 것이 짜증나고 말잘 듣기만을 바란다

어른처럼 세련되게 감정을 숨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예전엔 말이 많고 자기 마음을 시끄럽게 떠벌리는 사람들이 불편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의 솔직함이 부러워졌다,

여전히 불편하고 정신이 멍해지는 건 있지만 그렇게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말하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도 아이사와의 엄마도 그렇게 시끄러운 사람은 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뭔가 소리를 내고 입밖으로 뱉는 걸 연습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통은 나를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 감정을 아는 것부터 시작이다,

울지 않는 소녀. 마움대로 울 수 있는 소녀들이 내 마음에 노크한다,

이렇게 햇살 좋은 날 꽁꽁 싸매둔 감정을 잘 펴서 말려보라고

보송보송해진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 보라고..

아이때문에 읽었다가 내가 감동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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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를 훔쳐보는 기분

  사실 저렇게 자기 영업의 비밀을 풀어준들.. 무지한 자들에겐 그저 쇠귀에 경 읽기 일 수도..

사실 도데체 어떻게 쓰는지 알아내고야 말겠어!! 하는   결의와 약간의 관음증이 더해져서 책을 집었는데 의외로 다른 소득이 있다,

어떻게 쓰는가? 보다 어떻게 세상을 사람을 보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더 생각하게 한다

혹 그것이 저자의 의도라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또 나는 한권의 책으로 계속 헛짓을 한 셈이고

그저 내가 빠진 작은 우물 속에서  보이는 하늘만 본 것일 뿐이고.

그나저나 작가들의 뒷 이야기가 꽤 재미있고

                                       나도 몰랐던 작가를 알게 되고 그 중 몇 권은 읽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도 되지 않을까?/

 

 

 

 알라딘에서 서재를 하면서 이 분을 모르면 간첩? 아닐까

나도 뭐하시는 분인지 모를 때 참 재미있게 쓰네 하면서 자자주 방문햇었고 티비에 나오는 걸 보고 실물을 알았고 아하,,, 하면서 꼭 잘 아는 사람처럼 친근해졌다

물론 나 혼자....

작가들의 글쓰기 책을 열심히 읽었지만 결국은 내가 펜을 들고 쓰지 않으면 그 책들이 다 소용없는 거란 걸 알면서 이제 글쓰기 책은 그만!!이라고 하는 중

이 책을 만났다.

책을 보니 이미 많은 저서를 낸 작가였지만

나의 무지로 작가가 아니니까 ,,, 블로그에서 쓴 글을 봐도 책 내용과 자신 그리고 책 내용과 이 사회에 대해 정말 절묘하게 그러면서 재미있게 술술 쓰는 그 영업비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펼쳤다,

작가가 아니니 실용적인 도움을 줄거야,, 하는 거대한 착각을 하면서

그런데 결국,,,,

이 분도 열심히 쓰는 거 말고는 길이 없단다

오래오래 읽고 써보고 싪패하고 그러면서 글이 늘었다고 하니,,

모든 노력이나 고난을 가뿐하게 넘어가게 할 비법은 정녕 없는 모양이다

쉬운 길로 가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기타를 배워도 내 손가락 끝이 벗겨지고 물집이 생기는 과정이 필요하고

외국어를 배워도 나는 돌머리구나 하는 자괴감을 넘어야 하는 것이고

운동이든 뭐든 쉽게 되는 건 없다

그것이 유일하게 삶의 공평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쉽지 않게 익힌건 절대 날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 책으로 건진건 저자가 블로거 이전에 이미 작가였다는 것과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책 역시 재미있다는 것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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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지 오래 지난 후 영화를 봤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영화였고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이었고 추리물이었고,,,, 안 볼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책은 읽었지만 시간이 흘러서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았다,

두꺼운 책 세권을 영화 전후편으로 압축하다보니  많은 인물이 줄어둘었고 내용도 큰 흐름을 해치지 않은 범위에서 많이 바뀌었다,

영화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책 말미에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모교로 돌아오는 이는 노다 켄이치인데 영화에서는 후리노 료코로 바뀌었다, 주인공이니까,,,  영화니까 인물을 압축하는 의미에서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책과 너무나 다르 일이다,

별거 아니라고.. 그 당시 재판을 했던 누구라도 시간이 흘러 그 때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일이고 누구든 모교의 교사가 되어도 어색할 일이 없지만 그래도 내게는 료코보다는 켄이치였다,

주인공이 아니었고 늘 소심하고 눈에 띄이지 않은 아이였고 어쩌면 무서운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를 순간을 겪었고 그리고 주인공은 아니었으니 스스로 재판에 참가하기로 결정하고 간바라를 도와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마주하고 그리고 변한 인물이다,

극적이지 않고 잊히기 쉬운 인물이지만 그래서 그 아이가 나중에 교사가 되어 그 때를 당당하게 회상하고 참 좋은 경험이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음을 기억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영화도 책과 다르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눈내린 교정에 동급생이 죽었다.,그걸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노다 켄이치였는데 책에서는 료코와 함께로 나온다,. 죽은 가시와기는 등교거부를 하는 중이었고 그래서 경찰조사 결과 자살로 마무리 지었지만 그 것으로 아이들에게는 그림자가 일렁인다,

그렇게 지나가던 사고가 고발장으로 사건이 되고 불량학생 오이데 슌이치가 범인으로 지목되고 사람들은 술렁인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고 고발장을 쓴 사람이 누구냐로 관심이 모이고 누군가가 떠오르지만 학교는 덮기에 급급하다. 학교나 경찰의 의견은 누구도 다치는 학생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거였지만 드러나지 않은 사실은 계속 스스로 몸집을 불려나가고 더구나 좋은 취재감이라고 냄새를 맡은 언론에서 덤벼들면서 학교도 학생도 상처를 입고 서로 믿지 못하고 소문이 덩달아 몸을 흔든다,

그리고 또 학생이 죽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재판을 열어 사건이 어떤 것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영화속의 아이들도 제각각 아픔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기위해 진실과 마주하기로 하고 사건을 풀어나간다, 두려워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지 않으며 사건속으로 들어가서 마침내 진실의 얼굴을 마주한다,

어른들은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사실을 덮어버린다, 그냥 넘어가자

어른의 입장이고 생각이다,

누구 하나하나가 아니라 뭉뚱거려진 아이들 학생들이 다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건 내 눈에 상처가 보이는 건 싫다는 거고 두려움을 회피하는 일이었다,

그저 내 눈에 내 앞에서 보이지 않고 무탈하다면 그만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해야할 말이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 말이 목을 통해 나오는 순간 누군가는 다친다는 것이 어른들에게는 두려움이었지만

그말을 꿀꺽 삼킨 아이들에게 그 말들은 괴물처럼 커져가고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그 무게가 재판을 하면서 하나하나 내려진다, 그건 등에 지고 있는 것 보다 더 두려운 일이지만 아이들은 그걸 해냈다,

그리고 아이들이 훌쩍 자랐다는 것

영화는 그렇게 마무리 된다,

 

다시 소설을 읽었다, 한 번 읽은 것이라 꼼꼼하게 읽는대신 인물의 대사를 읽고 설명이나 묘사는 그냥 휙휙 지나쳤다,

사실 소설이 이렇게 두꺼운 세권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처럼 사건을 압축하고 인물을 줄여서 사건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더 가독성을 높이고 몰입하게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작가는 ... 어쩌면 작가는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죽음이 있고 소문이 있고 진실을 알고 싶어하고 어른들에게 맞서면서 아이들이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 보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거 같았다,

 

주리는 오이데 슌지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거짓말을 고집해서 가즈히코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다,

왜? 왜 그러는 거지?

미움받던 미야케 주리를 그는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3중학교에서 그녀와 나란히 앉았던 그 누구도 아닌 가즈히코가 그녀를 이해했다, 같은 반의 그 누구도 진심으로 헤아려주지 않았던 그녀의 속마음을 그만이 헤아려 주었다,

이 법정에서 가즈히코는 오이데 슌지가 교내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괴롭히고 폭력행위를 저질렀는지 실상을 폭로했다, 3중학교의 모두가 어느 정도는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것 보고도 못 본 척 했던 것을 슌지에게 직접 말로 들이대며 비난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 고발장을 써서 피고인을 함정에 빠뜨린 게 누구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고발자가 누구든 이상하지 않다. 피고인은 그럴 만한 행동을 해왔으니까

그 마음이 주리에게 통했다, 그래서 그때 주리는 정신을 잃은 것이다, 간바라 변호인의 마음을 알아챘기 때문에 그가 무엇을 위해 피고인에게 그런 신문을 했는지 알아챘기 때문에

너는 나쁘지 않다, 가즈히코는 신문에서 오이데 슌지를 호되게 비난하며 주리에게 그렇게 전한 것이었다, 너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너는 나쁘지 않다, 너는 그저 막다른 궁지에서 빠져나오려고 한 것 뿐이다, 그러기 위해 생각나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너는 나쁘지 않다, 옳은 행동은 아니었지만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간바라 가즈히코가 유일하게 그런 말을 해주었다, 겉치레가 아니다, 그때뿐인 위로도 아니다 오이데 슌지를 비난함으로써 ㄱㅏ즈히코는 주리에게 그런 마음을 전했던 것이다,

이해한다고

미야케 주리의 거짓말에는 절실한 이유가 있었다, 영혼의 생사가 걸렸던 이유가 있었다, 주리는 슌지에게 괴롭힙을 당했고 괴물이라고 멸시 당했다, 학교라는 감옥안에서는 그녀가 도망칠 곳이 없었다,

주리의 증언은 거짓이지만 그 안에는 진실이 있다, 오이데가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었다고 해ㅆ다. 그것은 분명 주리가 눈으로 본 광경이고 귀로 들었던 소리다, 그날 밤 어둠에 휩싸인 옥상에서 가시와기 다큐야에게 던진 조소와 폭력이 ㅇ니라 미야케 주리가 이 학교에서 보낸 세월 속에서 수도 없이 겪어온 것이었다,

도망칠 수도 저항할 수도 업소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미야케 주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었다, 스스로 사라지건 오이데 슌지의 존재를 지워버리거나

그런데 기회가 찾아왔다, 주리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반격에 나섰다, 그것이 그 고발장이었다, 게데가 미야케 주리에게 그 기회를 준 것은 간바라 가즈히코였다, 가시와기 다쿠야가 죽은 직후 그가 바로 진실을 밝혔다면 주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궁지에 몰려 주위의 미움을 받을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는 없어도 거짓말장이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시잉 마쓰코를 그 거지스로 끌어들여 결국 잃고 마는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p   613-614

 

 

간바라가 주리의 말을 들어주고 마음을 알아준 것처럼 미미 여사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마음을 읽어 주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야기가 늘어지고 조금 중심에서 벗어나는 일은 상관하지 않았다, 이야기속의 아이들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누구나 그것을 누군가 들어주기를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로쿄도 주리도 노다뿐이 아니다, 휙 지나가는 인물 모두는 제각각 자기의 아름을 가지고 있다, 하나하나 몇장면 나오지 않아도 이름이 있고 스스로 빛나는 존재이고 해야할 말이 있고 들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걸 미미 여사는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조금 더 압축하고 불필요한 인물을 뺀다면 영화처럼 집중해서 사건에 몰입하겠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았다,

로쿄도 간바라도 그 나이 또래의 얼굴을 불쑥불쑥 드러내고 있었고 검사 조수도 변호인의 조수도 주인공 못지 않은 기지와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누군가가 과거에 받은 왕따의 아픔도 있고 폭력을 당하고도 후환이 두려워 어서 결론 지은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비겁함이 남아있었다,

아이들은 제각각 자기가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마음을  간바라가 주리에게 해 준것 처럼 후지노가 노다에게 해준 것처럼 별거 아닐지라도 니 마음을 알아.. 하고 그 아픔에 귀를 기울이면 아이들은 괴물이 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깊이 간직한 그 말이 나에게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고 세상을 마주할 힘을 얻는다, 오이데 역시 그저 불량학생 폭력학생이라는 가면뒤에 숨은 약하고 겁이 많은 얼굴을 드러낸 것도 누군가 그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것이 힘이 되었다,

 

누구도 이길 수 없고 상처만 될거라는 재판은 어른들의 우려대로 상처를 남겼지만 대신 진실을 찾아내는 일 마주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도 함께 얻었다,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을 알고 우리의 말을 하고 우리의 말을 들여주는 것.. 그것이 공감이다,

아이들은 그걸 배운 것이고 어른들은  머쓱하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며 예전에 봤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드라마가 생각이 났다,

크리스마스가 되고 겨울방학이 되면서 모두가 돌아간 학교 기숙사에 남은 몇명의 학생들 사이의 긴장감 그리고 사고로 학교로 들어온 의사 그리고 시작되는 게임

괴물은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좋은 학교의 똑똑한 아이들은 스스로를 믿으며  수수께끼를 풀어가지만 그들은 그저 문제 풀이에 급급했다 누구도 진심으로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거 같다. 모두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그걸 드러낸다는 건 더 무서웠다, 아닌 척 괜찮은 척 하면서 아이들은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과연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만들어진것인지 자문할 겨를도 없이  이미 괴물이 어른의 손에 조종당하면서 그렇게 무서운 존재가 되는 것..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좋은 결말은 아니었던 거 같다.

아마 시작이 눈이 쌓인 학교 그리고 그 눈속에 묻힌 시체라는  비슷한 모티브때문에 떠오른 건지 모르겠다만,,,,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들어주는 것

그리고 하나 더 욕심을 내 본다면,,,,,

그건 니가 잘못한거야, 그러면 안되는거야

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

그리고 행동하거나 행동을 말리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저 아이들 나이에 저런 걸 알았다면,, 난 아마 대단한 어른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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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 김중미를 좋아한다,

그 작가의 사고도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 함께 생활하고 함께 살아온 그의 삶도 존경한다,

누구나 생각은 하고 글로 쓰고 말로 외칠 수는 있어도 몸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내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줄 것이냐는 질문도 감내하면서 행동으로 실천한 일은 대단하다,

그저 내가 할 일이라고는 그의 작품을 읽고 내 아이들에게 읽히는 일뿐이다,

직접 경험하는 건 엄두도 나지 않고 사실 매우 속물적인 사람이 나인지라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부유하길 바라는 사람인지라 머리따로 몸따로라는 자괴감이 들때가 많지만 그래도 그의 책을 읽고 권하고 감동하고 반성하고 내 주변이라도 돌아보자하는 것이 전부이다, 부끄럽지만,,,

 

      

    

 

 

 

 

 

 

 

 

 

 

두 작품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그저 내가 느끼는 건 아프다는 것이었다,

글로 읽고 말로 듣고 화면으로 본 것이 전부인 내게 이야기를 통해 내게온 아이들의 이야기는 생생했고 그저 뉴스이상의 울림을 주었지만.... 그 후 나는 뭔가 한 건 없다,

누군가는 너무 아픈 이야기라서 내 아이에게 차마 읽히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반발을 느꼈지만 나 역시 그 누군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읽히는 것일 뿐이다,

이런 세상도 있단다.. 알고 있어라.. 너희는 행복한 줄 알아라.. 이 이상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읽히지 않은 그와 읽힌 내가 다를게 없다,

 

 

 

 

 

 

 

 

 

 

 

 

 

역시 아프고 힘든 아이지만 그래도 가까운 주변 아이들 이야기였다,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는 많았고 담담하게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이제 작가가 많이 둥글어졌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팟케스트에 나온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천에서 강화로 거처를 옮겼다는 이야기 새로운 작품 이야기 권하는 소설 "나는 태양"이야기

그리고 공동체 아이들 이야기 강화 아이들 이야기

어짜피 대학을 가고 소위 말하는 세속적인 성공을 할 수 없을 아이들에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해준다는 말 너희들의 한계는 여기까지야 라고  사실대로 말한다는 것

그리고 현실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면서 밀양으로  쌍용자동차 현장으로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이야기   아이들의 미래가 공동체 이모 삼촌의 모습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부끄럽지 않다는 이야기등등.. 담담하게 툭툭 뱉어내는 그의 말투에서 단단함을 보았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그게 현실인데,,,,

그렇다고 그 아이들이 꿈이 없는 건 아니지 않는가?

꿈을 존중하되 현실도 함께 보여주는 이야기에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그리고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그가 나온 팟방을 다운 받아서 여러번 들었다.

그저 내 아이에게 무얼 이야기 해야하나? 나는 잘 살고 있나 싶을 때 들으면서 그의 씩씩한 말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황정은 작가의 담담한 말투에서 나도 모르게 위안을 받았다,

사는 게 별건가? 하는  근거 없는 용기도 생겼다,

 

그리고 아이 도서관에서 아침 대출반납 봉사를 하면서 이 책을 보았다,

그때 방송에서 말한 강화의 이야기였다,

인천에서 12여년을 지내고 난 후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나올 수 있었고 강화에서도 그만큼의 삶을 지낸 후 드디어 나온 강화의 이야기였다. 깜언...

작은 아이 친구가 반납한 책이었다,

제 언니랄 달리 유난히 책을 싫어하고  안 읽는 아이와 비교하면서  이걸 내 아이가 읽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약간의 절망감과 학부모 다운 시기도 빌려와서 일단 내가 읽는다,

도시 근교 농촌의 생활 도시와 가까워서 느끼는 열등감  에프티에이 이후  농촌의 문제들

이 모든 배경을 세세하게 그리면서 중3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짜피 인문계를 가서 농어촌으로 아무 대학이나 가도 졸업을 못하는 게 태반이고 한다하더라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힘든 상황들  혹은 공부를 잘 해서 대학을 잘 가더라도 논팔고 소팔아 모든 미래가 아이에게 저당잡힌 가족의 이야기들... 이건 사실 그 곳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농사가 무너지면 결국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다, 안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도시도 뾰족한 수 없다. 사교육에 뭐에 아이 대학을 보내느라 허리가 휘고 그저 대학을 보내도 그 앞날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고개 한 넘으면 또 고개 또 고개 하나 넘고 또 고개

무슨 떡광주리 이고 고개를 넘으며 호랑이를 만나는 오누이 엄마도 아니고...

이야기가 쉽게 읽히지 않았다,

농촌의 막막한 현실도 아이들의 이야기도 그럼에도 너무나 순수한 아이들이 너무 위선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문화 선천적 장애  막막한 현실....

이걸 초등학생이 읽었다구?

난 너무  비겁하게 내 아이가 못읽는 것이 아니 안읽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중미 작가는 현실을 너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소설이라는 것이 얼마든지 은유적으로 표현 가능한 것임에도 어떤 미사여구나  필터 없이 그대로 내민다.

굉장히 쓴 약이다,

무론 안 봐도 그만이고 안 보여줘도 그만이지만... 자꾸 한번씩 뒤돌아보게 하는

뒤통수를 당기는 힘이 그 속에 있다,

괜히 봤어....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의 작품이 나오면 아마 또 볼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괜히 봤어...

그건... 여전히 내가 머리만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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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유는 식물을 키우는 일과 같다,

땅에 씨를 뿌리면 싹은 위를 향해 자란다,

현재에 발을 딛고 미래를 향하는 사람과 닮았다,

어떻든 살아가려면 물과 태양 토양  바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씨를 뿌리기전 먼저 땅을 뒤집어야 한다.

땅속 깊이 도구를 집어 넣어 뒤접어 아래의 흙이 위로 나오게 해야한다. 속에 있던 축축하고 습기를 머금은 흙을 뒤집어 밖으로 드러내고 안과 밖을 뒤섞어서 땅을 고른다. 그러는 과정에서 흙은 공기를 품게 되고 부드러워지고 씨앗을 품을 준비를 한다,

그  과정이 바로 프로이드와 융이 바라보는 트라우마 내면 아이 마주하고 그림자 찾기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안으로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 뿌리가 내려갈 속을 먼저 뒤집고 일구어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고 뒤집어지고 모든 것이 드러나야만 비로소 흙은 씨앗을 품고 뿌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그리고 뿌려진 씨앗은 건강하게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지지대로 위로 싹이 자라고 솟아 오른다.

성장되는 것은 건강해지는 것이다,

뿌리가 건강하게 아래를 향해 내려갈 수 있을 때 싹이 나오고 그 싹은 위로위로 올라오며 가지가 되고 줄기가 되고 꽃이 피어난다.

내 성장을 위해 우선 내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내 성장의 근원은 무엇인지를 먼저 들여다 보아야 하는 것이다,

심리치유를 말할때 내 과거를 마주하고 내 상처를 찾아보라는 말이 참 힘들었다,

지금 여기서 시작해야하는 치유 과정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라니....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의문이었고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지금 이 상태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원하는 것인데 과거라니.,

이미 나이먹고 지나온 과거가 길수록 그 과거를 마주해봐야 이미 많이 미화되어있고 왜곡되어 있고 선택되어 있다. 좋았다고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것 그리고 이젠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뒤지고 헤집어서 무얼하겠는가 하는 마음이 강했다,

프로이드가 싫었고 융은 어려웠다.

유행따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이나 에릭슨의 발달과정 매슬로의 욕구 단계를 짚어가며 지금부터 내가 변하는 것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뭐든 차례가 있는 법이었다,

땅을 뒤집지 않고 그 위의 흙만 깨작깨작 만지다 실어놓은 씨앗은 땅속으로 뿌리를 내릴 수 없다. 단단하고 견고한 땅속으로 들어가기엔 뿌리가 너무 약하고  싹이 나올 수도 없다.

물만 부으면 썩어버리고 햇빛만 주게되면 말라버린다.

뿌리를 내리는 일 그건 바로 내 내면을 바라보는 일이다,

이젠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그 그 때의 상처를 꺼집어 내서 지금 징징거리고 상처를 준 이에게 대들 수도 없다. 그도 나이를 먹었고 잊었을 것이고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고 한다면 더 이상 달라질게 없겠지만  그래도 나의 근원을 알아야 하는 거였다,

지금 여기서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단 땅부터 파고 뒤집어야 했다.

이제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뒤늦게 혼자 열심히 땅을 뒤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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