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은 여섯권의 책

여섯권은 이야기중심이라기 보다 인물 중심으로 펼쳐진다.

스토리는 요약하기 쉽지 않다.

사실 별 사건은 아니고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통속적이기도 하고 상투적이기도 하다.

자기만 모르는 자기의 이기심

엄마와 딸이 서로에게 자기만 참고 견딘다고 믿으며 소극적으로 상처를 주고 받는 것

지금이라고 해도 다를 것 없는 선거를 두고 벌어지는 사람들의 계략과 전술들 그리고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는 타인의 편견에 가득한 모습

내가 주고 싶은 사랑만 생각할뿐 상대가 받고 싶은사랑은 생각하지않은 것

그리고 작가의 자전적인 삶 (두번째 봄과 자서전은 많은 부분이 겹치고 얽힌다)

저주받은 천재의 이야기 그러나 지루한 이야기

 

이야기는 지루하기도 하고 뻔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대단하다

절대적인 선인도 악인도 없지만

이기적이지만 동시에 배려하는 인물

괸대지만 그 댓가를 바라는 인물

그건 내 모습이고 누구의 모습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혀를 차며 따라가다보면 거기에는 내가 있다.

누구에게나 다정하려는 건 성정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욕먹고 싶지않은 마음이 우선한 것이었고

타인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 정의감이 아니라 질투였거나 뒷담화를 하고싶었고

내가 이렇게 사랑하고 헌신하는데 받아주지 않는 상대방이 모든갈등의 원인이었다.

모든 상황의 중심에 내가 있고 내가 그 기준값이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

 

1. 두번째 봄

이 책은 저자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다. 크리스티의 자서전을 읽었다면 많은 부분이 겹친다는걸 알 수 있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죽음. 집을 지켜내는 일. 어머니. 그리고 전쟁 결혼  출산과 이혼까지 자서전이 솔직했다면 이 소설도 가감없이 솔직하다.

누구나 그렇지않을까만 그녀도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했다.

이 책을 읽으며 박완서를 떠올린다

전쟁을 겪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시작한 글쓰기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무심하게 흘리지 않고 꼭꼭 기억했다가 글로 풀어내리라는 은밀하고 강한 소망까지 닮아 있다. 기록하고 싶어서 기록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기록하지않을 수 없어서 소설을 쓰게 된 두 사람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그 결심이 부럽다.

크리스티가 명성을 얻은 건 추리물이지만 그녀가 쓰고 싶었던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고생각한다.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

한 사람 속의 다양한 모습

작가가 되어 어쩌면 그녀는 자기의 삶을 공개적으로 그러나 조금은 의뭉스럽게 정리하지  않았을까

자서전에도 나오고소설에서도 나오지만 삶의 모양새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선택이다.

그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2. 장미와주목

읽는 동안 누가 주인공일까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 주인공이어도 상관없었다.삶에서 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일테지만

시간이 흐른 후 내 삶을 돌아볼 때 누군가 타인의 영향이 너무 커서 그를 빼 놓고는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야기를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바라볼 곳인가. 그 순간 주인공이 결정되고 이야기의 성격도 결정된다.

화자인 휴 노리스가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그를 매혹시킨 상대는 게이브리얼이다.

계산적이고 냉혹하고 잔인한  그러나 더 할 수없이 솔직하고 본능적인 인물이다.

노리스의 입장에서 게이브리얼은 악인이다 그렇다면 게이브리얼이 본 노리스는 그저 불행한 장애인이었을까?

우리는 화자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고 상황을 판단한다.

결국 내가 아는 건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의 풍경뿐이다

그것으로 전부를 판단할 수 밖에 없지만 전부를 단정짓는 일은 언제나 끔찍하고 오만한 일이다

 

" 욕심많고 이기적인 인간은 세상에 아무런해도 끼치지않아.세상에 그런 인간의 자리는 충분하지  (중략) 이상에 도취된 인물이야 말로 평범한 인간들에게 고통을 주고 아이들을 굶주리게 하고 여자들을 괴롭히지 . 그들은 자신들이 그런 일을 하는 지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개의치 않네

하지만 자기 본위의 욕심이 많은 녀석은 큰 해를 끼치지 않아"

 

게이브리얼은 솔직하고 직선적이며 큰 이상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지금 눈앞에서 누군가 곤경에 처하거나 힘들다면 나서게 되고 그로 인해 명성에 흠이 가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건 그런게 아니다.

게이브리얼을 국회의원으로 만들려는 사람들 그들이 어쩌면 더 큰 야망을 가졌다

자기 본위의 일상을 충실하게 살았던 게이브리얼은 어느 순간 더 할 수 없는 악인이 되지만

그것 역시 노리스의 관점일 뿐이다.

게이브리얼은 뻔뻔한 짓을 했을 때는 명성이 높ㅇ아지고 딱 한번 발휘한 돈키호테식 기사도가 그를 주저앉히는 상황을 부른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불쌍한 여자를 동정해서도 안되고 인간을 보아서도 안되며 이상과 가치만을 부르짖어야 한다

 

" 나는 악 자체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아요. 이 세상의 해악은 약자들이 볼러오는 거예요.

 그들은 선의를 지니고 아주 낭만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난 그런 사람들이 두려워요. 그들이야 말로 위험하니까 암흑같은 바다위를 떠다니다 멀쩡한 배를 침몰시키는 표취선 같아요"

 

결국 게이브리얼은 폭력적이고 오만했지만 그들이 그를 미워하고 잊게 된건 그가 이방인이었기때문이 아닐까  선거에 이기기 위해 영입했던 사람, 이용가치가 있어 함꼐 했던 사람,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가치가 있는 사람일 뿐 진정으로 대한 것이 아니다.

그의 마지만 반전이 충격적인건 게이브리얼을 이용할줄 알았지 알아보지 못했기때문이기도 하다.

 

뱀다리로 ... 여기 나오는 인물 밀리 버트는 전형적인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

피해자인 동시에 모든 문제가 자기로부터 나온다고 믿고 모든 잘못을 자기에게 돌린다.

남편의 폭력도 동네에 떠도는 풍문도 모두 자기 탓이다.

그러나 무엇하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다. 그녀의 죄책감은 스스로를 갉아먹고 주변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패턴을 버리지 못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나쁜 남자들을 반복해서 찾게 되고 동정하고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또 다시 자책한다. 

시대는 달라도 성격유형은 다르지 않고 권력에 대한 욕심도 다르지 않다.

소설속의 선거운동은 지금의 것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3.  사랑을 배우다.

 

지나친 연민은 모욕이다.

그것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연민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그냥 내버려 뒤야 한다. 그를 신의 손에 맡길 뿐이다.

이야기는 지루한 편이다.

큰 흐름이 없다

완벽한 오빠가 죽고 이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었던 아이는 뜻밖에 동생이 생겨버린다.

동생이 죽기를 기원했던 아이는  위기가 닥쳤을 때 본능적으로 동생을 구하고 그 아이를 위해 남은 생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자신을 모두 바쳐 동생을 사랑하기로..

 

넌 사랑을 주고만 싶지 받고 싶지는 않은 거야

사랑을 받는다는 건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거야

 

그 사랑은 무겁다.

노라가 베푸는 사랑은 동생을 숨막히게 하고 견디게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죽음으로 내몬다. 그게 다 노라 탓이냐고 할 수도 있다

노라도 어쩌면 불행한 희생자다

부모에게 나를 사랑해달라고 떼쓰지 못했고 그래서 조금은 옆으로 비껴서 있었고 요구를 참고 견디는 법을 먼저 배웠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은 누군가에게 주기도 힘들다. 내가 아는 사랑이 전부이다.

다른 형태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불행의 시작이다

노라의 잘못도 아닌데. 노라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밖에없어서 애닮다.

 

4. 딸은 딸이다

 

가족은 가장 의지하고 가까운 관계인 동시에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관계이기에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 받는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녀를 위해 자녀는 부모를 위해 서로 자신이 가장 많이 참고 희생하고 견딘다고 믿는다. 말로 끊임없이 부담을 주는 부류도 있고 절대 드러내지 않지만 스스로의 희생을 세며  댓가를 바라기도 하고 가족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는  불가능한 기대를 걸기도 한다

가까워야 한다 라는 명제가 모두에게 다르기에 가족은 견뎌야 하지만 견디기 쉽지 않다

 

세라와 앤은 세상에 단 둘이 남은 가족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최우선이며 전부다 그러나 서로는 각자의 인격체이고 서로 다른 존재이며 제각각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둘은 서로가 자신이라고생각한다

분리되지 못한 모녀는 "상대를 위해" 간섭하고 삶에 기꺼이 끼어들기도 하고 정작 필요할 때는모른 척하며 사이를 벌여간다.

앤은  세라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한 희생을 했다고 생각하고

세라는 앤을 위해 수단을 다해 위험으로부터 구해냈다고 믿는다.

그들의 믿음은 그들의 것이다

스스로에게 가장 자랑스럽고 뿌듯한 믿음이다. 그것은 타인에게는 닿지도 않으며 상처가 된다는 것조차 모른다. 알았다면 후회했을까? 아니 화를 내고 더 상처를 입고 허우적거리며 상황을 악화시켰을 수도 있다.

앤이 만난 소소한 행복이 될 재혼은 세라읭 반대로 깨어지고  세라의 결혼 선택은 앤의 무관심으로 불행으로 치닫는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다 해주었는데 알아주지 못한다고 조금씩 어긋나고 있을 뿐이다.

끝으로 치닫기 전에 서로는 충돌하고  솔직하게 미움과 서운함을 드러내면서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결국 부딪치고 싸우고  내가 너를 미워한다고 말해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왜 미워하는지 왜 미움을 받는지 알아야 고치든 설득하든 관계를 끊어내든 할게 아닌가

사랑도 숨길 수 없지만 미움도 숨길 수 없다

소설속에 꽤 괜찮은 직설적인 상담가가 등장한다

 

희생이라니 얼어죽을 희생

희생의 의미가 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 봐 그건 따뜻하고 관대하고 기꺼이 자신을 불사지르겠다는 기분을 느끼는 영웅적인 한순간이 아니야. 가슴을 칼끝에 내미는 희생은 쉬워

왜냐하면 그건 거기서 자기의 본 모습이 훌륭해지는 순간 끝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희생은 나중까지 온종일 그리고 매일매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쉽지 않아. 희생을 하려면 품이 아주 넉넉해야지. 앤은 충분히 넉넉하지 않았어

 

전 세라를 위해 제 인생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를 포기했어요. 그런데 로라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았다고 하시네요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모두 제 잘못이라는 거잖아요.

 

우리 인생 고민거리의 절반은 자신을 진짜 자신보다 더 좋고 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생기지 내가 앤이라면 리처드를 포기한 것이 세라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기 마음의 평화때문이었는지 생각해 볼거야.

 

아이를 키우며 깨달은 것 하나

아이를 위해 걱정하고 안달하고 그의 고민을 내가 끌어안고 해결해주어야 할것같은 사명감을 느끼고 피곤해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아이를 위한  오롯한 희생이 아니다.

그렇게 라도 해야 내가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위안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엄마니까 이정도 희생은 이정도 부담은 당연하다. 라는 것이 스스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아이는 희생을 먹고 자라지 않는다.

아이는 희생하고 힘들어하며 견디는 부모를 원하지 않는다.

부모 역시 희생하고 참고 말잘 듣는 쉬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부담이 되지 않고 편안하고 언제나 기댈 수 있지만 언제든 죄책감 없이 떠날 수 있는 존재를 원한다. 언제나 옆에 있으면 좋지만 떠나도 서운하지 않고 개운할 수도 있는 관계를 원한다.

그러나 그런 단순하고 깔끔한 관계는 늘 부족해 보이고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쉽게 뭉개지고  누굴 위해서인지도 알 수 없는 책임감과 최선을 다하는 것만 남는다.

서로 피곤하다.

어쩌면 서로를 위한 희생이라고 믿으며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 어떤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큰 폭력일 수도 있다.

 

5. 봄에 나는 없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자기자신을 마주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나의 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본다면 진실이 보일까

어쩌면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덜이 모두 거짓이고 꿈일지 모른다고  반대로 환상일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진실일 수 있다.

내가 나의 위선과 허식을 마주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모두 다시 구멍속으로 몰아넣어버리면 그만일까

나를 알고 내가 주었던 상처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익숙한 습관과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까

나만 나의 실체를 알지못한 채 그렇게 삶을 마감한다는 것은 두렵다.

나를 안다는 것도 두렵고 나를 모른다는 것도 두렵다.

나는 내가 잘 알아... 이말은 진실도 아니며 오만이다

나는 누구지? 이건 삶이 지속되는한 계속되어야 할 질문이다.

안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나를 바꾸는 일이다.

사람은 조금씩 변해가는 존재이지면 결국은 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존재이다.

단순하지만 섬뜩한 내 모습이 그녀의 모습이다.

 

6. 마음의 양식

지루하다.

타고난 천재라는 건 매력이 없다.

재능이 인간을 선택하고 그 밖에 다른 기회를 모두 막아버리는 일... 그것이 천재라면 그렇게 부럽지도 않다. 버넌의 재능은 오랬동안 스스로가  부정했고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건 자기가 선택하고 싶은 행복과 상반된다.

그게 재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버넌보다 그 주위의 인물들 조. 넬 그녀들이 오히려 흥미롭다.

속물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조연으로 물러난 넬의 삶이 더 관심이 간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는 알겠지만 ... 재미난 스토리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삶에서 내가 선택받는 부분과 선택하는 부분..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삶은 그 시점에서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현재에 살았다면 소설보다 드라마를 쓰지 않았을까

이야기도 좋지만 인물과 대사가 매력적이다.

추리물에서도 그랬고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고 완벽하게 선악을 나눌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 어떤 순간에는 더 할 수 없이 선량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상황에서는 돌변한다. 사람이 그렇지 아니한가

아수라백작처럼 달랑 선악의 두가지 얼굴을 가진 것이 아니라

악에서 선까지 변해가는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천사처럼 순수한 모습이나 더 이상 무엇을 더 첨가할 수 없는 완벽한 악이 아니라 보이는 위치에 다라 시시각각 변하는 빛처럼 다른 색깔 다른 질감 다른 농도를 가진 사람들이다.

 

 

처음 책들을 읽었을 때는 좋아하는 작가의 다른 모습을 보는게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이유가 착각이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만 읽을 수록 비슷비슷한 분위기에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다 읽었다는 대서 뿌듯한 만족감을 얻었다.

그때도 무언가를 끄적였는데 그냥 그러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뭔지 정확하게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막연히 불안하고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계속되었다.

책읽기도 재미없고 영화도 보고 싶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서 수다를 떠는 일들이 시시해졌다.

일상은 평온하게 살아가지만 혼자인 시간이 되면 끝없이 가라앉아서 안자던 낮잠을 자고

먹는게 귀찮아졌고 리모컨만 돌리고 있었다.

세상에 책은 끝없이 쏟아지는데 남들이 좋다고 하는 모든 책을 욕심스레 읽을 이유가 뭐가 있나 싶었고 굳이 뭔가를 읽는다는게 귀찮아졌다

소설은 어짜피 현실이 더 극적인것이고 시는 현실도피인것만 같고 사회문제나 인문학은 그저 썰만 푸는 일이거나 굳이 그렇게 콕콕 찍어주지 않아도 살아가기 팍팍하다는 건 다 아는게 아닌가

그렇게 모든 게 싫고 모든게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으면서도 그저 해파리처럼 늘어지고 싶어져서

그냥 내가 손만 뻗으면 잡을 수있는 책.. 심각하지 않지만 너무 가볍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지만  너무 낭만적이지도 않은 이야기가 읽고 싶었다.

다시 읽은 아거사 크리스티는 그때와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뭐가 달라졌냐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하기 힘들지만... 사람이 다 그런거 아니겠니? 너만 그런것도 아니지.. 그런 소리가 들린다

뭐 흔하다면 흔한 위로지만  때로는 상투적인 것이 위로가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매일이 그날이 그날이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게

한번 아래로 쪼르르 흐르고 나면 다시 뒤집어 쪼르르 모래를 흘려보내야 하는 모래시계 같은 나날이다. 뒤집어 졌다가 다시 뒤집어지는 반복들 그래본들 모래만 흘려내리는 단순한 리듬에서

딱  눈 감고 모래시계를 눞혀놓은 기분  옆으로는 흐를 수 없이 그냥 그대로 멈춘 시간

그렇게 가라앉아 막막하다가 그래도 다시 모래를 흘러내릴 수 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고 모래 시계를 바로 세운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른 반복이 되길,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메콧이었다가 다시 애거사 크리스티로 돌아갔듯이

그렇게 잠시 다른 멈추는 시간.

그게 필요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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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권도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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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코 아가일은 양어머니를 살해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에 폐렴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2년 후, 갑자기 재코의 알리바이를 입증해 주는 사람이 나타나고, 아가일 가족은 '제일 그럴듯했던 모범 답안'인 '범인 재코설'이 무너지자 가족들 가운데 여전히 살인자가 있다는 끔찍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가족들은 의심의 그림자 아래 단결했다가도 서로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으로 다시금 뿔뿔이 흩어진다. 교통사고로 인한 기억상실 후, 바로 남극 대륙으로 가는 탐험대에 합류했던 지구 물리학자 아서 캘거리는 “문제는 죄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헤스터 아가일의 말에 마음이 움직여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고, 그늘에 숨어 있는 살인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살인을 계획한다.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마음이 놓이는 것이 아니라 무거워진다.

진실이 드러나므로써 죄를 지은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순수하고 무고인 사람들이 문제가 된다.

누가 봐도 범인일수 밖에 없는 인물이 범인이 되어 봉합되었던 사건이 다시 시작된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자기 입장에 따라 자기가 범인으로 몰릴수 있음을 알게 된다.

부유하고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는 사실 독재자였다.

모든 것을 움켜쥐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이들을 입양하고 아낌없이 베풀고 그리고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아내의 관심에서 밀려난 남편은 어린 비서를 만나 새로운 행복을 알게 된다.

아내의 죽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던 남편

어머니의 죽음으로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갖게 된 자식들

가족중 가장 비열하고 양아치스러웠던 잭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죽어버린 후 모든것은 그저 평화로워졌다.

그러나 사실 잭이 범인이 아니라면 범인은 우리중에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스로가 의심받을지 모를 상황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스포가 있음

 

뭐 불안한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심리묘사가 잘 되었다는 거 인정

누구나 범인일 수 있는 상황으로 몰아간 서스펜스도 인정

그런데 하필이면 외부인이며 이방인이 범인이어야 하지?

상황상 맥락상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건 작가가 그렇게 함정을 팠으니까

가족중 남편이거나 자녀이거나 혹은 남편을 사랑하게된 비서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가정이 무너질까봐?

이미 부모의 간섭과 억압이라는 폭력이 있고 자녀들은 제각각 감정을 품고 부모를 바라보고 저마다 속내를 숨기고 있는데 여기 살인이 더해지만  완전히 무너져 버릴까봐?

그래서 늘 문제는 외부에 있고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될까

가족의 변호사는 아마도 외부인이 침입해서 돈을 노리고 부인을 살해했다고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말을 한다. 누구나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차라리 그러기를 바란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일이 너무 고통스럽고 이렇게 가족이 무너질 수가 없다는 신념때문일까

그렇게 드러난 범인은 변호사의  어처구니없는 범인 유추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뭐... 내가 꼬아서 보는 걸 수도 있지만

늘 불행은 밖에서 들어온다고..

그래서 가족내에서는 불행이 싹틀리가 없고 늘 안전하고 화목하고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이라고 여기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미 썩어서 냄새가 진동하지만 향수를 덧뿌리고 뿌려대며 자기들만 모른다고 아니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 같다.

 

나름 진지하게 읽었지만 마지막.. 마음이 꼬여버렸다.

나는 가족에게 맺힌게 많은 모양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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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말 잘 읽힌다. 잡은지 반나절이면 끝이다.

 

2. 게이고의 유일한 시리즈 인물인 가가 형사는 은근 매력적이다

   무심하고 냉정하지만 치밀하고 집요하게 사건을 물고 늘어지는 점이 좋다.

   실제 이런 형사가 얼마나 될까 싶어  아쉽다.

 

3. 게이고는 추리소설을 쓰지만 늘 사회문제를 말하고 싶어한다.

   사람이야기. 관계망속에서 큰 권력앞에서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가 주된 관심처럼 보인다.

   어쩌면 추리물이 인간의 본 모습을 가장 충실하게 보여주는 장르가 아닐까 싶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보이는 것만 믿을 수 없다는 걸 잘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정의롭고 도덕적인 결론이 나온다.

  용기를 내라. 진실에서 도망치지 마라. 스스로를 믿어라. 등등등

 

4. 피해자가 죽고 경찰이 가족에게 탐문을 할 때 의외로 가족들이 죽은 가장에 대해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른다는 묘사가 인상적이다.

사실 내가 늘 보고 매일 만나는 사람을 잘 안다고 믿지만 얼마만큼 알까

사실 가족이지만 서로의 개인적인 면을 존종해주고 싶어서 일정부분은 공유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고 있고 그것이 존중이라고 믿는데 막상 죽고 나서 그가 어떠했느냐고 묻는다면 살아있을때의 존중이 죽어서는 무심함 무관심이 되고 말았다. 사실 우스개 말로 가족이니까 그러는거 아니라는 말처럼 가족이니까 말하지 않고 가족이니까 폐끼치지 않고 가족이니까 그냥 모른 척 넘어가주는 면도 많아서 과연 내가 죽는다면 혹은 가족중 누군가가 죽는다면 뭉뚱그려서 할 말은 많을지 몰라도 형사들이 세세하게 캐묻는 탐문에는 대답할 수 있을까 나부터 의심스럽다.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어떤 큰 조직에 이용될 수도, 어쩔 수 없이 연류되어 원치 않은 선택이나 행동을 하거나  그것만이 살길이어서 하는 수 없이 행해지는 것들이 있다.

큰 흐름을 봐야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고쳐나가야 하고 바꾸어야 하지만

그 속에서 그것이 잘못인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행동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내가 한 행동과 말과 태도는 가장 작은 범주에서는 내가 선택한 것이다.

누군가가 등을 떠밀고 억지로 밀고 가더라도 나에게는 작지만 중요한 거부할 수 있는  힘은 있을거라 믿는다.

안타깝지만 행동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은 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그릇된 것이라면 반성도 함꼐

 

일본의 신사들 일본의 다리 지명등을 보면서 여행에 대한 욕구가 불쑥 느닷없이 올라온다.

신사를 찾아 참배하는 거나 차를 타고 다니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탐문을 하고 돌아다니는 행동들 메밀국수. 정식같은 음식들 작은 노포들에 대한 묘사

드닷없이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을 그냥 덮는다는 것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가장 나쁜 방법이다.

세상엔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없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덮어주는 건 가장 나쁜 가르침이라고 가가 형사가 말한다. 그러게 배운 아이는 모든 걸 덮는 것으로 무마하려는 그릇된 도식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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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8-02-22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가와 시리즈도 있습니다.
대표작은 용의자x의 헌신이죠☺
 

 

 

 

 

 

 

 

 

 

 

 

 

 

우리의 경험이 각기 다르다는 것은 우리의 요구가 각기 다르다는 뜨시며 정치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도 단 한가지가 아니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연대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전략들을 세밀하게 세움으로써 다양성을 추구했다. 정치적 연대를 발전시키려 한다면 여성은 다양한 문화를 지닌 이들이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탐색해야 한다. 유색인 여성들이 서로를 배우려고 함께 노력할 때 자매애를 구축해야하는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다. 연대를 위해 백인 여성에게 의지할 필요는 없다. 백인 여성들은 기회주의적인 관심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반인종차별주의자 여성들과 단결할 수 있다. 우리는 정치적 연대와 페미니즘 운동으로 하나되어 단결할 수 있고 자매애라는 개념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회목시킬 수 있다.

 

1. 흑인여성 .페미니즘 이론 형체 만들기

 

 프리단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페미니즘 담론을 지배하는 백인 여성들도 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자신들의 시각이 모든 집단의 여성들이 실제로 겪는 경험에 비추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의문을 거의 품지 않는다. 또한 최근 몇년 동안 비록 편견에 대한 지각이 상당히 늘어나긴 했지만 그들의 시각에 인종적 계급적 편견이 어느 정도까지 반영되었는지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지배 체제로서 성차별주의는 제도화 되었지만 이 사회에서 여성의 운명이 한가지 절대적인 방식으로만 정해지지 않았다. 억압바든다는 것은 '선택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억압받은 사람들은 비록 조직화된 저항에 참여하지 않고 저술을 토해 억압의 본질을 분명히 설명하지 못할지라도 자신이 억압받은 사실을 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거칠고 가차없는 비판은 페미니즘 투쟁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며 해방 이데올록를 함께 만들고 해방 운동을 함께 하자는 의도였다.

 

2. 페미니즘 .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하기 위한 운동

페미니즘은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투쟁이다. 페미니즘의 목적은 특정한 여성 집단이나 특정한 인종이나 계급의 여성에게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페미니즘이 생활방식도 아니며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기성의 정체성이나 역할도 아니라는 점이다.

남성과의 사회적 평등에 촛점을 맞추어 페미니즘을 정의하면 결과적으로 차별대우 남성의 태도 법적 형태등을 강조하게 되다. 반면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으로 페미니즘을 정의하면 지배체제에 그리고 성 인종 계급의 억압의 상호연관성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앞으로 페미니즘의 투쟁의 토대는 성차별주의및 여타 형태의 지반 억압의 문화적 기반과 원인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지하는 것으로 탄탄하게 기반을 다져야 한다. 억압 철학의 구조에 도전하여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페미니즘적 개혁은 영햐력을 오래 발휘할 수 없다.이 운동은 남성과 평등해지자는 운동이 아니라 사회에서 성차별적 억압적 상황을 종식시는 것 을 의미하는 것이다.

 

3. 페미니즘 운동의 중요성

 

성차별적 지배는 다른 형태의 억압과 다르게 사람들 대부분이 가정에서 실제로 목격하거나 체험했다. 우리는 대체로 가정을 떠나 넒은 사회에서 인종차별이나 계급 차별을 목격하거나 체험한다. 남자가 없는 가정에서 조차 어머니나 다른 어른들의 관계를 통해 아이들은 성차별적인 역할형태를 엄격하게 준수하고 권위적 지배를 중시 여기도록 학습한다.

각각의 사람들이 모든 형태의 억압에 저항하도록 투쟁이 필요하다고 인식해야만 정치의식은 중요한 발달 단계로 도달한단. 성차별적 억압에 저항하는 투쟁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여성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4. 자매애 .  여성들간의 정치적 연대

 

우리는 우리들만의 언어를 정의해 사용해야한다. 함꼐 피해자가 되어 이를 바탕으로 유대를 맺거나 공통된 적에 대응하려고 유대를 맺는것이 아니라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페미니즘 운동에 정치적으로 참여한다는 의식을 바탕으로 유대를 맺어야 한다 서아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페미니즘 우동에 정치적으로 참여한다면 남성과의 평등이라는 이슈 혹은 남성 지배에 대한 투쟁에 만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은 착하고 남성은 나쁘다는 성차별ㅈㄹ적 억압구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설명은 더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남성 지배에 저항할 수 있으려면 우선 성차별주의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야 하며 여성의 의식을 변화 시키는 노력을 해야한다. 여성들은 서로간에 성차별적 사회화가 된 것을 노출시키고 살펴보고 제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서 서로의 힘을 키워주고 지지하며 정치적 연대를 발전시키기 위해 견고한 기반을 세워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다르며 그 다른 점은 타인의 우리에 대한 인식에 얼마나 결정적인 요인이 될지를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이를 존중하도록 끊임없이 일꺠워주어야 한다.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받지만 모두가 억압을 받는 것은 아니며 억압의 정도가 균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경험이 각기 다르다는 것은 우리의 요구가 각기 다르다는 것이며 정치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도 단 한가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연대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전략을 세밀하게 세움으로써 다양성을 추구한다. 저이적 연대를 발전시키려면 여성들은 다양한 문화를 지닌 이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탐색해야 한다.

연대는 지지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연대를 경험하려면 공통된 관심사와 신념을 가진 공동체여야 한다. 즉 자매에를 구축하고 하나로 뭉치겠다는 공통된 목표를 가져야 한다. 이런 일치됨을 중심으로 통합하고 자매애를 구축해야한다. 지지는 부차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지지는 쉽게 얻고 쉽게 철회된다. 그러나 여대는 지속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페미니즘 운동에서 우리가 성장하려면 다양성과 의견 불일치와 차이가 필요하다. 연대감을 느끼려고 굳이 차이를 없앨 필요는 없다. 억압을 종식하려는 투쟁에 동등하게 임하기 위해 동일한 억압을 겪을 필요는 없다. 여자끼리 결속을 위해 반 남성적 정서를 가지기 보다는 풍부한 경험과 문화와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5. 남자 .. 투쟁을 함께 하는 전우

 

분리주의 이데올로기는 여성 홀로 페미니즘 혁명을 할 수 있다고 미도록 부추겼지만 실상 여성 홀로는 불가능하다 성차별적 억압을 유지하고 지지하느 ㄴ주된 행위자는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자신의 의식과 사회 전체의 의식을 변혁시킬 책임을 맡아야만 성차별적 억압은 사라질 수 있다. 남성들은 주된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는 남성들도 저항 투쟁에서 똑같은 몫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남성들은 동성 동료들의 성차별주의를 폭로하고 대항하고 반대하고 변혁하는 식으로 공헌할 수 있다.

 

6.권력을 보는 시각 바꾸기

권력이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지배및 통제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여성이 사회 정치적 영역에서 남성과 동일한 위치에 있다면 남성과 동일한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할 것을 안다. 그리고 남성집단은 권력세계로 진입한 여성들이 기존 상태를 고수하고 유지하려 할 때만 남녀의 평등한권리를 보장해주었다. (남성형 권력을 동일하게 준수하고 따르기를 바란다) 권력에 들어간 여성들은 가부장주의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면서  권력의 개념이란 지배와통제라고 인정하고 그런 권력을 행사한다.

여성이 성차별에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으려면 권력을 지녀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이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다. 가장 억압받는 여성조차 분명 나름의 권력을 행사한다. 가장 약하고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집단이 쥐고 있는 권력은 자신에 관한 정의를 권력자가 강요하는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권력에 의해 정의된 자신의 현실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처럼 근본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저항행위이며 강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자신들이 권력이 없다고 믿도록 조장해서는 안된다. 여성들이 매일 행사하는 권력들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며 그 권력들이 성차별적 지배와 착취에 저항하는 데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7. 일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기

 

페미니즘이 일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여성 노동자의 경제 상황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심리적 착취에 저항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임금을 받든 무임금이든 여성이 하는 모든 일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여성에게 새로운 자아개념과 자기 정의를 제공한다.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 전문직과 출세에만 집중했기때문에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마치 다른 모든 노동 특히 저임금 노동은 가치가 없는 듯 행동했다 페미니즘은 민중여성들이 하는 일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태도는 남성들의 태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8. 여성 교육. 페미니즘 어젠다.

 

읽기 쓰기에 기본을 두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기본이다

 

9. 폭력을 종식하기 위한 페미니즘 운동

 

폭력은 권력의 문제이며 사회 가정에서 권력이 남성에게 몰린 구조에서 권력이 있는 남성이 물리적 정서적 억압을 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권력을 가진 지배력이 폭력을 만들어내는 구조에서는 성차 인종차 계급 차 모든 경우 폭력이 유발될 수 있다.

폭력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권력을 많이 가진 쪽에서 적을 쪽으로

사회에서 권력을 가지지 못한 남성들은 그곳에서 억눌려 있던 폭력성을  통제상황이 필요 없는 경우 즉 보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처벌의 위험이 없는 상황에 행사한다. 가정은 대게 통제가능한 상황이며 대상은 여성이나 어린 아이다 남성은 자기가 가진 감정적 고통을 여성에게 배출하고 투사한다.

남녀간의 사랑과 폭력을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바꾸어야 하는 것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성별이 아니라 물리적 관계이다. 누군가는 선천적으로 공격적 성향을 가졌고 누군가는 선천적으로 수동적 성향을 타고 난 것이 아니다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 폭력에 관대해지거나 익숙해져서는 안된다.

가족내의 폭력 에서 군국주의적 전쟁  아동에 대한 통제와 교육이라는 이름하게 행해지는 폭력등 약자에 대한 자연스러운 통제등 모든 폭력을 낯설게 바라보며 재 정의해야한다.

 

10 혁명적 양육

 

 여성의 양육은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며 페미니즘 운동가를 비롯한 사회 모든 구성원들은 이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모성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가하고 모성이 여성에게 강요된 경험이나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경험이 되지 않도록 하며 여성 혼자서든 남성과 함께든 상관없이 여성의 양육이 훌륭하고 효과적인 것이 되도록 페미니즘의 맥락안에서 여성의 양육은 세롭게 인정받고 칭찬 받아야 한다.

어머니다운 돌봄과 아버지 다운 돌봄의 구분없는 효과적인 양육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11. 여성의 성적 억압종식시키기

여성은 자기 성에 대한 결정권이 있다.

 

페미니즘은 하나가 아니다.

하나의 공통된 가치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해야할 행동들은 하나일 필요는 없다. 여성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일 수 있는 지구의 절반 인구들도 저마다 인종 종교 계급 학력 지역에 따라 다른 특성을 가진다. 각자가 가진 고유한 특성과 경험  생각 감정을 하나의 틀로 묶을 수는 없다. 성차별이 성 평등으로 가는 길에서 원하는 것이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어떤 기본값을 가진 여성들을 모델로 모두가 그렇게 하나로 묶여야 할 필요는 없다.

백인 여성들이 시작한 페미니즘이 유색인종 여성들에게는 맞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처럼

모두가 만족할 만한 가치라고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경험하고 내가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토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다.

그 토대에서 한계를 느끼고 욕망을 가지고 변화를 추구한다.

하나의 가치만 내세우며 그 기준에 모두가 따르라고 한다면  그건  또하나의 차별이 된다.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라고 여성주의는 말한다.

내가 아니라 다른 타인이 겪은 차별 역시 차별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우리가 바꾸어야 할 과제가 된다. 여성이어서 차별받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로서 차별받고 싶지 않다는 것 그것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성들간의 정치적 연대 그리고 남성들은 적이 아니라 함꼐 가야 할 동지라고 생각하는 것

폭력에 대한 생각들 바뀌기 위해 선행되어야할 교육의 문제 육아의 문제 그리고 일에 대한 생각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  어쩌면 페미니즘의 흐름이 긴 만큼 이제는 당연하게 이해할 내용들도 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드라마 <미스티>를 보며 누구나 부러워하고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주인공 고혜란의 남편 강태욱을 보며 참 많이 답답했다.

참 좋은 남자라는 건 알겠는데  상대가 바뀌지 않는다고 징징거리는 건 아니지 싶었다.

고혜란이란 여자는 최고에 대한 욕망이 있고 무엇보다 일이 우선이었고 그렇게 도전할만큼 충분한 능력과 배짱과 용기도 인물이다. 그리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사귀었을때 고혜란은 충분히 그런 면을 드러냈다. 내숭떨지 않고 아닌척 하지 않으면서 나는 욕심이 많고 그걸 이룰거라고 그래서 결혼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멋지게 강태욱은 그런 그녀에게 명함이 되어주고 배경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사랑하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니까 괜찮다고 까지 했다.기꺼이...

뭐 연애할때 무슨말을 못하랴... 하고 말한다면 할말이 없다만

고혜란이 충분히 욕망덩어리고 이기적이고 속물적이라는 것도 알겠지만 그녀는 그 본능에 늘 충실하고 정직하다. 모든 패를 드러내고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인데

결혼후  변하지 않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치열하게 싸우며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방에 쳐박혀서 꽁하고 삐진 그 남자 강태욱이 이해되질 않는다.

자기랑 달라서 좋아해놓고 자기와 너무 안맞다고 토라진다(말그대로 토라진다. 화를 내는게 아니라)

7년전 혼자 유산했다는 이유로 현재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이 고혜란인것처럼 꽁하다.

내 뜻대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내 뜻대로 고분고분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정서적으로 냉대하는 것도 결국 폭력이 아닐까... 주인공이라서 멋지게 나오니까 모든 것이 덮이는 거지만 결국은 그도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은 저자가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그래픽 노블이다.

오사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멋지게 자유롭게 살 수 있겠다고 기대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멋진 누구나 좋아하는 남자 닐을 만나고 둘은 사랑에 빠지고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커플이 되었다.누구나 닐을 칭찬했다 멋지다고 젠틀하고 젊은 시절 내모습같다고 모두가 좋아했다.

그런 닐을 사귀게 된 오사는 뿌듯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닐이 이상하다.

아니 어느 순간 바뀐 건 아닐 것이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내게 관심이없다고 하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싫어한다.

옷차림을 타박하고 화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며 니가 그래서 잘못이라고 모든 것이 니 잘못이라고 윽박지르고 따지고 소리지른다.

사랑하니까 그런거라고 믿었지만 자꾸자꾸 주눅들 수밖에 없다.

잘못을 지적당하기 시작하면 무엇이든 내잘못인것만 같다.

내가 화장을 이상하게해서 내가 그의 마음을 몰라주고 친구들과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내가 칙칙한 옷을 입어서 옛날 남자친구에게 받은 엽서들을 정리하지 않아서

내가 무엇무엇을 하지 않아서  혹은 내가 무엇무엇을 했기때문에 그가 화를 내고 소리지른다.

이젠 그의 표정과 말투에 예민해지고 무엇이 옳고 그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나올지가 중요하다. 내가 잘못한게 무엇인지 그의 심기를 건드린게 무엇인지 그것을 빨리 알아채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이다.

이것이 옳으냐 그러냐는 중요하지 않다

짙은 화장에 개성있는 옷차림에 활발하고 개방적이고 자유롭던 오사는 사라지고 칙칙하고 비슷비슷하고 평범한 오사가 닐 곁에서 전전긍긍한다.

어느 순간 이렇게 7층에서 뛰어내려 내가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지만 이렇게 죽을 수도 없다. 그건 너무 억울한 일이니까

잔소리가 화가 되고 짜증이 되고 윽박이 되고 그리고 물리적인 폭력으로까지 번지면서 오사는 생각한다. 이건 아니다. 이렇게 맞고 당하고 모든 관계를 끊어내고 고립되어 살수는 없다

내 모든 삶을 닐과 바꿀 수 없지 않을까

그러나 닐이 웃어주고 미안하다고 하고 안아주면 모든 것은 그저 녹아버린다.

그래 별일 아닐꺼야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인데

내가 뭐라고.

오사는 점점 닐에게 길들여지고 스스로 무능해지고 있다.

 

왜 그렇게 살지? 왜 그렇게 당하면서 한소리 못하고 나오지도 못하고 의지가 없이 끌려가는거지?

타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쉽게 말할 수 있다.

아니라고.. 아니되라고 왜 말하지 않았나요?

근데 그 순간 이게 잘못된건가?  아니면 내가 잘못하는 걸까? 그게 혼란스러운 지점이 있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겨버리면 내가 이상한가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너는 못나고 못나고 못나고 어리석고 어리석고 어리석고 무능하고 무능하고 무능하고... 그렇게 되풀이해서 들어온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다. 의존적이고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책은 사람이 어떻게 길들여지고 어떻게 점점 약해지고 무능해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현실을 용기있게 직면하는 순간 도움을 받을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길도 쉽지 않다.

다시 되돌아가는게 편하게 생각되기도 하고 내가 과연 할 수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고 한번 든 상처로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상담을 받고 진단서를 끊고 고소를 하고 재판을 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결국 오사 역시 모든 과정을 겪고도 한 참 후에 닐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장면을 보고 안도한다.

미안하지만 .. 이제 닐의 관심대상은 저 여자가 되겠구나 이제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겠구나 하는 순간 안도한다.

폭력이 나쁜 건 사람을 아프게 하고 다치게 하는 것이지만

스스로를 약하게 만들고 믿을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고 만드는 것이 더 위험하다.

 

사랑이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는 정의란다.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감정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다.

타인을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것  내가 아닌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나를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기도 하다. 나만 아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아끼는 마음

그것만 기억하고 있어도 적어도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사랑이 폭력이 되어버리는 일은 적어지지 않을까

 

 

여기까지 페이퍼를 썼을 때 계속 미투  고백이 이어진다.

문단에서 연극계에서....

지금 드러난 분야 이외 다른 곳인들 당당할 수 있을까?

권력을 이용해서 지위를 이용해서 더럽고 추악한 폭력을 휘두른 사람들뿐 아니라

내 일이 아니니까 나는 직접 행동하지 않았으니까

뭔가 여지가 있으니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거나

나는 그냥 침묵하고 말겠다고 그게 중립적인거라고 스스로 포장했던 모든 사람들

그들 역시 모든 비난과 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것이다

폭력 당사자가 아니라 옆에서 침묵하고  객관적인 입장이 되겠답시고 중립이라고 도망가던 모든 이들 역시 방관자라는 이름의 폭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건 아무것도 아닐거라고 애써 위안하고 나는 저만큼은 아니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조금 더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세상에 당연하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 다 그렇고 그런거 아니겠냐고  잊으면 되고 툭툭 털면 되는거 아니냐고 쉽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깃털만큼 가벼운 말이 누군가에겐 바위처럼 무겁게 내려치는 고통이다.

사랑한다면 이해한다면 아껴주고 싶다면

그 상대가  NO!! 라고 말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게 먼저가 아닐까

그리고 당연히 받아들이는  마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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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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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학교에 작은 포스트 잇이 붙었다.

 

"feminist .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여자가 토막살인을 해도 토막녀 살인사건

  여자가 토막살인을 당해도 토막녀 살인사건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여자 아이들에게 '만지지 마세요'를 말하라고 가르치는게 아니라

  남자아이들에게 "허락없이 만지면 안돼" 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가해자가 없어지면 피해자도 없어집니다"

 

" 세상에 기아란 없다.

  나는 오늘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여성 혐오란 없다

  나는 오늘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여자들은 "김치녀"가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검열하지만

 남자들은 "한남충"이  되지 않으려고 여자들을 검열한다.

젠더 권력의 차이란 그런 것이다"

 

 

누가 언제 왜 붙였는지는 모른다.

어느 순간 쉬는 시간에 봤더니 이런 포스트잇이 곳곳에 붙어 있었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구경하고 있었고... 그리고 누군가는 욕을 했고 누군가는 포스트 잇을 잡아 뜯어버렸다고 했다.

그나마 일찍 발견한 아이는 그걸 사진에 담아 왔다.

누가 왜 했는지 알 수 없었고

읽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있었고 무시하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있었고 욕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왜 욕을 하지?

이게 붙어있는게 누구에게 피해를 준건 아니지 않나?

남자애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런걸 싫어하는 여자애들도 있더라.. 아이는 그 사실에 더 놀랐다고 했다. 뭐 여자라고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욕할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누군가 공부하기 싫어서? 혹은 궁금해서 누가 복도에 이런걸 붙여놨더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지만 선생님은 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갑작스러웠을 것이고 뭐라고 해아할지 순간 머뭇거렸을 수도 있을 것이고 혹시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는게 멈칫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프닝같은 하루가 지나고

며칠 뒤 이번엔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스티커를 붙이는 자보가 화장실에 붙었다고 했다. 그것 역시 몇몇이 보았고 몇몇이 욕을 하고 몇몇이 찢거나 스티커를 아무데나 붙이며 사라졌고 그날 오후 방송에서는 허락받지 않은 계시물을 함부로 부착하지 말라는 학생부의 통고가 들려왔다고 했다.

아이는 누군지 궁금하다고 했다.

처음엔 어떤 학생이 아닐까 했는데 어쩌면 선생님일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누구인지 용기가 있지만 용기가 없기도 하다고 조잘대다가 학원으로 갔다

 

 

예전 가정폭력 활동가 수업중에 한채윤 선생님 강의가 참 인상적이었다.

여러 성소수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강의가 정말 좋았다.

누구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던 부분을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이 쉽고 재미있게 거부감없이 하는 설명에 모두 넔을 잃었고 열광했었다.

돌아와서 이런  아이를 붙들고 설명했지만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머리탓에 혼자 해매다가 이런 좋고 쉬운 강의를 너희 나이에 받으면 참 좋을텐데. 그러면 편견이 좀 적어지지 않을까

너무 쉬워서 누구나 듣고 금방 이해 되더라

물론 엄마도 이해는 다 했어 다만 외우질 못했을 뿐이야.... 하며 수다를 떠는데

아이가 말한다

"엄마 그런 강의 한 번 하는 건 하겠지만 하고 나면 학부모회에서 난리가 날 수도 있어"

아... 그럴수도 있겠다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은 아니니까 누구나 의견은 다르니까....

그래도 이렇게 좋은 강의는 모두 다 듣는게 좋은데... 아쉬웠다.

말랑말랑하고 알고 싶은 거 많은  그리고 어쩌면 이미 편견이 조금씩 자리를 넓히고 있을 지 모를 그때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게 정말 좋을 텐데... 하고 아쉬워만 했었다.

 

조금씩 정말 아껴가며 읽었던 책의 마지막을 덮었다.

마음이 서늘해진다,

누군가는 몰라서 말하지 않았고 누군가는 알지만 말할 수 없었고 누군가는 알 필요조차 없는 진실들.. 사실들..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건 하나의 권리이며 동시에 권력이 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누구나 하는 생각 이미 세상의 당위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아닌 조금만 비틀리고 방향이 다른 이야기들은 그대로 침묵이 된다 누군가 힘이 있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는 기색이 보인다면 그건 폭언이고 반항이고 쓸데없으며 조용히 사라진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포스트 잇의 글귀들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지만 함부로 권할 수 없는 좋은 이야기들

세상에는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는것들이 참 많았다.

 

솔닛의 글에 '여성"의 자리에 누구든 약자를 넣으면 다 말이 되지 않을까

어린아이. 장애인. 성 소수자. 외노자 .

너희를 보호하기 위해서 ... 도와주기 위해서 하는 일이야 하는 말이야

그러니 조용히 따르기만 하면 돼

꼭 그렇게 많이 알 필요는 없어

그렇게 세상의 많은 입들이 조용히 닫히고 세상은 고요하다. 그리고 그 고요는 평화가 되고 안전이라고 여겨진다.

 

뭐라고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저 솔닛의 책에 밑줄을 치고 소리내어 읽어 볼 뿐이다.

 

 

 

감정이입이란 우리가 타인을 진실되게 느끼기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 느끼거나 타인과 더불어 느끼기 위해서 그럼으로써 자신을 넓히고 확장하고 개방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와 같다. 감정이입을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간성의 일부를 닫아두거나 제거해버렸다는 것. 자신을 어떤 종류의 취약함으로부터 막아두었다는 것이다. 남을 침묵시키는 것 혹은 남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는 것은 타인에게도 인간성이 있으며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적 계약을 깨뜨리는 것이다             p66

 

 

우리의 인간다움이란 이야기들로 구성되고 만일 언어와 서사가 없는 경우에는 상상력으로 구성된다. 그 상상력이란 어떤 이야기가 내가 아니라 네게 벌어졌기 때문에 내가 말 그대로 몸소 느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치 내 일처럼 상상할 수 있고 내 일이 아니더라도 마음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이어져 있고 누구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살해되어 침묵당하면 감정이입을 끌어낼 수 있었던 목소리들이 침묵되고 의심받고 검열받고 말할 수 없게 되고 들리지 않게 된다. 차별은 누군가가 어떤 측면에서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에게 동일시나 감정이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우리 서로 간의 차이가 전부이고 공통의 인간성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p67

 

 

랭턴은 우리의 논쟁의 촛점을 재설정하여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이 하는 일 말이 품은 힘에 주목한다. 그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언어를 써서 결혼하고 투표하고 평결하고 명령한다. 혹은 우리에게 그럴 힘이 없을 때는 하지 못한다. 주인이 노에에게 먹을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 명령이지만 노예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호소이다. 각자가 지닌 힘이 말의 의미와 말이 할 수 있는 일을 혹은 할 수 없는 일을 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p109

 

 

수치심은 자존감을 파괴하는 것이다. 공격자가 피해자에게 스스로의 의사에 반하는 일을 시키기 위해 피해자가 스스로를 더럽고 역겹고 부끄러운 존재로 여기도록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가하는 것이다. 수치심은 피해자가 경찰에 범죄를 신고하거나 도움을 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 피해자는 또 자신의 과거 성경험과 폭행의 세세한 측면이 꼬치꼬치 파헤쳐질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p 140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여자들 일인것은 그저 그 일이 여자들에게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그 일을 저지르는 건 대부분 남자들이니 어쩌면 페미니즘은 줄곧 남자들일이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p148

 

 

집단이란 물 샐틈 없는 범주이므로 그 속의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사고방식, 신념, 나아가 책임을 공유한다는 생각은 차별의 핵심적 요인이다. 이런 생각은 집단 처벌로 이어진다. 이 여자가 나를 배신했으면 저 여자를 비난해도 된다는 생각 집 없는 사람들 중 일부가 범죄를 저질렀으면 모든 집 없는 사람들을 처벌하거나 쫓아내도 되고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p 212

 

 

얼마전 나는 무지권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보았다.특권있는 사람 재현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의식할 필요가 없는 사람 실제로 자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이 나름대로 일종의 상실이다.

페미니즘은 여자들이 과거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경험에 대해 마침내 말을 꺼내는 것인 경우가 많다면 반페미니즘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인 경우가 많다.  p242

 

 

누군가가 나에게 페미니스트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기 쉽지 않을것이다.

나는 부조리가 싫고 세상에 불만이 많고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고민할 것이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내게 좀 대단한 것이다.

나를 드러내는 일이 아직 익숙하지 않고 조금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있는게 편한 입장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야 라고.. 말하기는 아직 쉽지 않다.

 

예전 김수현의 <사랑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에서 커밍아웃한 동성애 아들을 대하는 부모를 보면서 적어도 나도 저렇게 행동하고 말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스개 소리로 지식이 마음에 들지 않은 이성을 데려오면 어떻게 할거냐는 닥치지도 않은 문제에 대해 설왕설래할때 그 수다들을 막은 질문은 그것이었다.

마음에 안드는 이성이 아니라 마음에 안드는 동성을 데리고 오면 어떡할래?

그 질문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지도 않은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알지 못하는 보따리를 내미는 것이다,

나는 극히 이기적인 부모의 입장에서 나중에 내 자식이 어떤 입장이 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 목숨이나 재산이나 명예를 빼앗는게 아니라면) 그 입장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기를 바란다,

내 아이가 여자여서 밤길을 조심해야 하고 여자여서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다 잘하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고  여자를 사랑해서 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맞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만에 하나 내 아이가 당할 차별과 불합리가 두려워서 나는 지금 이순간 누구도 차별하거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기적이지만...

내가 겨눈 칼끝이 언젠가 내게도 돌아올 수 있다.

지금 내가 살고 말 세상이라면 모르겠지만 언젠가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고 또 그 아이의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라면 내가 조금 더 살기 편하게 누구나 세상을 넓게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그가 무엇무엇이어서 외롭고 아프고 답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 대상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병신같은 질문을 받지 않고  쓸데없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하고 내가 먼저 움직이고 내가 조금 더 따지려고 한다.

이것도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참 이기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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