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 작품속의 등장인물은 어느 누구도 타인을 배제하지 않는다,

마을에 새로 들어오는 스즈에게도 나와는 다른 성향의 타인에게도 모두를 끌어안고 간다,

환타지적인 요소라고도 할 수 있지만  가마쿠라 라는 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 누구든 우리가 되어버리고 가마쿠라를 거쳤서 어디로 갔던 누구든 여전히 우리가 된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

어쩌면 조금 조심스럽고  적당한 간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어색함이랄까 거리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 만큼 거리는 있을 지언정 사이에 금을 긋지는 않는다,

먼 우리 가까운 우리 조금 어중간한 우리들이 모여  이야기를 이어간다,

새로운 동생을 바라보는 언니들의 시선, 전학생을 바라보는 동급생들의 시선

다리를  잃은 친구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

유부남을 사랑하는 사치를 바라보는 동생들과 축구 코치의 시선

스포츠 용품 점장과 카페 주인 아저씨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 두사람이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 등등

모두가 타인임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우리라고 생각한다.... 고 나는 믿는다,

만화니까 할 수 있는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곱권의 만화속에서 누구하나 타인은 없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아버지는 말한다

타인의  신발에 발을 넣어보기전에 판단하지 말라고

우리가 은연중에 받아들인 어떤 가치관이나  그냥 습관적으로  여기는 생각의 좌표속에 어쩌면 큰 편견이 있고 어떤 틀이 있어서 우리와 타인을 구분하고 타인을 나쁘다고 규정하고 벽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흑인이 나쁜게 아니고 마을에서 은둔하고 있는 이웃이 나쁜게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잘 모를 뿐이다,

알고 나서 그가 악한 사람인게 드러난 후에 미워해도 늦지 않다,

우리가 타인과 다른 건 당연하지만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라고 남매에게 말해준다,

 

 

 

 

1968년  아이오와주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푸른눈 갈색눈의 체험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누군가를 편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차별을 하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는게 아니다,

아니 이유는 있지만 그 이유의 근원이 늘 옳은게 아니라는 것

누구든 누구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다른 것들사이에서 기어이 동질감을 찾아내고 학연 혈연 지연 피부색 종교 신념으로 덩어리를 만들고 다른 덩어리들과 구분하면서 우리를 더 멋지고 옳다고 믿기위해 다른 덩어리들을 계속 깍아 내린다,

내가 더 우월해지는 일은 내가 올라갈 수 있는 어떤 방향이 아니라 타인들을 끌어내리른 것으로 드러내려고 한다,

 

#2

 

현재 우리 사회에도 많은 우리와 많은 타인이 존재한다,

다문화가정이 많아진 만큼 인종적인 문제도 새롭게 드러나고

남자냐 여자냐의 문제

어느 지역 출신이냐의 문제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의 문제

나아가 집의 평수에 따라 사는 동네에 따라

심지어 어떤 계급의 부모를 가졌느냐에 따라 많은 구분들이 있다,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끈끈한 의리를 드러낼수록 그 끈끈한 우리바깥이 존재할 수 밖에 없아,

우리는 점점 끈끈해지고 의리있고 간도 빼주지만 우리가 아닌 타인은 그냥 투명해서 보이지 않거나  두렵거나 성가실 뿐이다,

차라리 콩가루처럼 하나하나 제각각 제멋에 놀고 나만 생각하고 고민하는 쪽이 오히려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본다,

나만 빼고 모두가 타자라면 타인이라면 그건 외로울 일도 없고 이방인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을까

너무 극단적인가?

 

어쩌면 이제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없어지면서 그 틀은 더욱 견고해지고 우리끼리라는 내부적 단결이 강해지고 그 내부의 순수함을 더 강하게 지키고 싶어한다,

조금이라도 타인이 섞이는 것 그래서 어색해지고 내키는대로 말하고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어색하고 싫어서 그저 편하고 잘 아는 ... 서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를 더 편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함이 편해지고 더 이상 우리 이외의 것에 호기심이 생기지도 않고 관심이 생길 필요가 없다면 벽은 더욱 높아지고 견고해진다,

편한 걸 마다할 이유가 없다,

편하고 익숙하다는 것만으로도 차별을 진행된다,

어떤 인식이 없고 나는 아무런  편견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나만의 익숙함에 만족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차별이 될 수 있다,

상상력을 가지고 누군가 다른 이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

차별을 줄이는 건 거기서 시작할 수 있다,

 

#3

 

모든 남자가 여혐은 아닐것이고 잠재적 범죄자는 아니라고 주장만을 할게 아니라

여자들이 두려워하는 현실을  한 번 쯤은 상상해보고 공감하려고 해보라는 거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다닐 수 있는 밤길이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의 원인일거구

그냥 내 마음이 급해서 발걸음을 빠르게 하며 앞사람을 따라잡았던 그 순간

그 앞사람은 혼자 생사를 오가는 상상을 했을 수도 있다고

어두운 골목길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고 벽으로 밀어붙이고 안아주는 연애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는 것

내 좋은 의도가 상대에게도 똑같은 모양으로 갈 수 없을 수도 있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면 안될까,.. 라고

돈이 많은 집안의 어린이까지 공짜 급식을 먹을 필요는 없지않으냐는 합리적인 사고대신

의무교육중인 학생들은 누구나 공평하게 의무급식을 해야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 해볼 수 있는 것 , 내가 베푸는 선의의 시혜가 누군가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상처일수도 있다는 사고의 확장이 필요하다,

 

무언가 대단한 활동을 하는게 아니라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 내가 어떤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는 상식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는 순간 나의 경계가 더욱 확대되지 않을까

나와 같은 사람은 누구도 없다,

비슷한 사람은 있을지라도  하나하나는 다 다르다,

결국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일한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웃어야 하는 것이다,

 

내 삶에서 타인이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으면 한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 타인은 궁금하고  신비로운 존재이길 바란다,

알지 못하는 대상이 무섭고 공포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확장이었으면,....

그냥 그랬으면 좋겠어서,...

한줄 이상의 일기를 주저리주저리 오래오래 썼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6-1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특정 대상이나 상대방의 사정을 모르면 그/그것에 대한 편견이 생겨요. 그리고 그 편견을 바라보는 관점이 ‘차이’가 아니라 ‘차별’로 형성되고요. 타자를 알아야 편견의 오류를 알아낼 수 있는데, 무능한 생각이 들통날까봐 일부러 회피하는 것 같습니다. 편견의 가해나자 피해자 모두 지치게 만드는 상황입니다.

푸른희망 2016-06-16 18:3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모르면 두럽고 두려운건 나쁜 거라고 여기죠.다른건 결국 틀린것이되구요
 

 

수학여행가는 에피소드에서

"남자들은 바보가 한 명 있으면 휘둘리기 마련이야" 하든가

"바보는 쉽게 전염된다"는 말

한 사람이 바보짓을 하면 다른 사람도 쉽게 따라하게 된다는 뜻일게다 아마...

그 말이 따뜻했다,

바보를 바보라고 따돌리지 않고 그냥 어울린다는 말이라고 받아들였다,

넌 바보고 멍청하니까 우리가 될 수 없다고 우리 밖에 놔둬 버리는게 아니라

같이 바보가 되어 버리는 그런 멍청하고 어이없는 행동이 따뜻하다

 

7권동안 어떤 악인도 없다,

까칠하고 직설적인 사람들도 있고 철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악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따뜻하게 받아주고 스며든다,

가마쿠라에 살러온 스즈를 맞이한 세자매뿐 아니라 축구하는 친구들  신용금고 사람들  식당 사람들 누구나 함께 어우러지는게 이 만화의 매력

 

이번 회는 읽으면서 울컥한 부분이 많이 생겼다,

사치가 따뜻해졌고  요시노가 외롭지 않게 생겼다, 스즈의 꽤 괜찮은 남친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다만 치카가 걸리지만 별일 아니기를....

누군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좋다,

칼칼한 그 카페라고 우기는 식당이 되어버린 가게 아저씨같은 사람이 내 주변에도 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연히 팟케스트를 알고 낄낄대며 들었다,

결정장애를 가진 현대인들의 결정을 도와준다는 컨셉도 참신했고 두 사람의 케미도 유쾌하고 좋았다, 누군가를 깍아내리거나 면박주지 않고 스스로 망가지면서도 청취자의 고민을 진지하게 대하고 공감하려고 하는 태도도 좋았다,

뭐 그렇게 대단한 상담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한껀한껀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느꼈다,

한명은 먼저 지르면서 나서면 다른 한명은 조곤조곤 정리하고 마무리하거나  보기보다 허당인 면을 드러내는 한명에게 면박을 주면서 함께 깔깔대는 모양새가 오래 알고 이해하지 않으며 나오지 못할 조화였다,

사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이 쉽지 않다,

해결책은 늘 알고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지만 그 선택이 옳다고 지지받고 싶고 때로는 해야하지만 한번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누군가가 다잡아주길 바라는 것

그런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설령 도무지 해결책을 알지 못하는 문제이더라도 알지못하므로 무엇이든 해답이 될 수도 있다, 어~ 하고 내가 몰랐던 부분을 들을 때가 있고 아리송한 걸 명쾌하게 납득시키기도 하고 이건 너무 엉뚱하잖아하고 무시하다가도 언젠가 불쑥 다른 곳에 써먹을 수도 있다,

나는 두 사람이 벌써 데뷔한지 20년이나 지난지 몰랐다,

하긴 김숙이 난다김을 하면서 삼천만 땡겨달라고 했을 때는 나도  젊었을때고 한창 송은이가 만원의 행복을 할때는 첫아이 이유식을 먹이면서 본 거 같기도 하다,

한번도 대단한 스타가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하고 성실하게 한 분야에서 20년을 지내왔다는게 세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 보다 꾸준하고 진득한 사람 그래서 오래오래 남아 있는 사람이 더 가치있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난 한번도 진득하게 뭘 해본 적이 없다,

졸업무렵 공부를 계속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덜컥 취직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시작한 사회생활은 채 몇년 되지 않아 이게 적성이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 이미 사표를 내버렷고 글을 쓰겠다고 맘 먹고 공부하고 스터디하고 시작했지만 그것도 내 재능에 대한 고민고민만 하다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늘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지금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공부하는 상담도 늘 회의적이고 어떤 유용한 가치를 가지나 혼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일단 생각을 멈추고 몸을 움직이라는데 나는 여전히 커다란 대가리만 굴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장 오래 진득하게  버티는 카테고리는 사람. 여자 이것밖에 없는 거 같다 ㅜㅜ

각설하고....

 

팟방을 많이 듣진 않았지만 두가지 사연이 기억에 남았다,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해야할까요 라는 사연에 홍석천과 연결했던  사연

그때 홍석천이 그랬다 가능한한 오래오래 하지 말라고...

어떤 조언보다 진정성 있게 들렸던건 그의 경험이 상처가 녹아 있었던 것은 말 할것도 없고

무엇보다 상담자의 마음을 공감하고 알기때문에 해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면 상처받고 안하면 죄책감이 든다면 차라리 죄책감이 낫다는 것

속이는게 아니라 내가 좀 더 튼튼해지고 막말로 혼자 독립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때 까지는 버티고 버텨야 한다는 조언이 울컥하면서 와 닿았다,

뭐 부모니까 이해할거라든가 부모를 속이지 말자든가 하는 도덕적인 판단이 아니라

너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니가 우선이라고 너를 먼저 생각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내게도 푹 꽂혔다,

 

그리고 김생민이 조언한 돈을 쓸까요 모을까요?

그 답게 돈은 모으라고 있는거지 쓰라고 있는게 아니라는 말을 키득거리면서 들었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 내 방식을 고수하는 뚝심이 은근히 부러웠다,

계속 이어지는 돈에 대한 그의 철학을 들으면서 짠돌이지만 그래도  누구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나름 철학이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외국여행을 가라 어쩌라는 말을 다 자르고 딱 10만원으로 통영을 다녀오라는 고의 결론이 그래서 더 유쾌하고 즐거웠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공감해야한다는 건 알지만 막상 그 '공감'이라는 것은 쉽지가 않다,

내가 알아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마음 그 마음이 공감이다,

'앵무새 죽이기'에도 나왔듯이 남의 신발을 신어보아야 한다는 말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야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의 시선으로 우리의 입장에서 타인을 본다, 그래서 어설프게 충고를 하고 연민만 해버린다,

공감은 어떤 결론을 내주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도 아니다,

어떤말로도 위로가 될 수없다고 외면해버리는 것도 아니다,

내가 먼저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직면하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마음

각자 각자의 입장에서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음을 알고 만져주는 것이 공감이다,

 

 

" 난 잘하는게 없어, 친구를 사귀는 것도 너무 힘들고 남자애들이든 여자애들이건 먼저 말거는 것도 어려워 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게 뭔지도 모르겠어 자존감이 너무 낮은거 같아 ......그래 맞아 어쩌면 너무 나자신한테 엄격한걸지도 몰라 너무 나에 대해 기대가 커서 왠만하면 잘하는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왜 이렇게 된건지 모르겠어 자꾸 자신이 없고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은 거 좋아하는 것도 없고 싫어하는 건 정말 많은데 좋아하는 건 모르겟어..."

한 번씩 잊을 만하면 듣게 되는 딸아이의 하소연이다,

내가 너무 엄격하게 키웠나 키우면서 뭘 잘못했나 시간을 헤집어서 기억을 꺼집어 내보면 후회할 것들만 떠오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결정적인건 없었는데...

사람은 누구나 불안하고 스스로가 마음에 안들 수 밖에 없다지만 조금은 무모하고 자기에 대해 과대망상을 해도 괜찮은 나이에 너무 쪼그라들기만 한 아이를 보면서 나를 보기도 한다,

나도 싫은 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지만  뭘 좋아하니? 하고 물어보면 말문이 턱 막힌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괴감을 느끼고 스스로 쪼그라들지만 그걸 누군가가 알까봐 황소개구리만큼 몸을 부풀리기도 하고 아닌척 쿨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살고 있다, 그냥 이제 나한테 익숙해져서 어쩌라구 하는 똥뱃장으로  살긴 하지만 그런 유전자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져서 아이는 아직도 불안하고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고 기대치는 자꾸자꾸 하늘만큼 높아지고 뭐 그런 중이다,

책은 우리의 수치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흔히 수치심과 죄책감을 혼돈해서 쓰는데 저자는 명확하게 구분해준다,

어떤 잘못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죄책감은 내가 한 행동에 대한 비난이고 부끄러움이고 반성이지만 수치심은 나자신에 대한 비난이고  분노가 된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했지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건 죄책감이고

나란 놈이 그렇지 늘 이모양이꼴이야 나는 한심한 놈이야 ... 하게 되면 수치심이 된다,

죄책감은 고칠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수치감은 그대로 주저앉아버린다,

그 수치감은 어디서 오는가?

내가 속한 가족 사회 집단에서 주입하는 어떤 가치관에 의해 내가 알게 모르게 익숙해진 기준이기도 하고  내 속에 자리잡은 어떤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부녹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누군가의 의도적인 혹은 의도치 않은 말한마디로 건드려지고  폭발해버리거나 스스로를 망가뜨리게 된다, 그 수치심은 어쩌면 내 안에 자라지 않은 아직 어린 아이가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같다,

나 아직 여기 있으니 좀 봐달라고... 나 좀 안아주고 위로해달라고

그 아이가 내 속에 있다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아마 누구나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라지 않은 아이를 한명씩 품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아이를 알아주고 마주보고 위로해주는게 필요할 뿐이다,

그 아이는 나와 영원히 함께할 존재이니 잘 지내야 할 뿐이다,

누군가의 말한마디 행동하나에 상처받는 게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수치감을 느끼고 그래서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스스로가 가치없다고 느끼는  그 마음이 다시 나를 부끄럽게 느낀다,

누구나 살면서 상처를 갖는다,

적은 세월을 산 아이라고 아픔이 없지는 않다,

그 상처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할지에 따라 내게 수치감을 줄것인지 그저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일지가 결정된다,

누군가에게 수치감을 주는 언어가 아닌 공감하고 자비로운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데 그건 알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 마음을 읽어주고 받아주고 공감하는 것

결국 수학을 풀듯이 계속된 연습문제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위로이지만 그게 또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내 마음에 숨은 수치심을 건드려서 마주하고 싶지 않고 그 상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도 있단다.

먼저 나를 마주하고 나에게 관대할 때 타인에게도 관대할 수 있다는 말이 훅 다가온다,

 

내가 눈군가를 달래주고 안아주는 일이 서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정하지만 무뚝뚝했던 부모님은 어색해서 아마 표현을 안 했으리라 믿는다,

누군가에게 다정한 위로를 경험하지 못해서 나는 늘 그게 어색했다,

애교도 없고 다정하지 않은 건 성격탓이 아니라 내가 경험이 없고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다정한 위로보다 툭툭 던지는 적확한 한마디의 말을 더 신뢰하고 편해하는 것

그래서 나조차 누구에게 다정하게 다가가기 보다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진단하는 말을 던지는게 더 편했다, 그게 상대에게 상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적어도 가식적이지 않고 뒤에서 험담하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이고 솔직하다고 믿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상처받고 싶지 않은 나만의 갑옷이었던 거 같다,

위로로 무너지고 싶지 않고 징징짜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단단하게 나를 무장시키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요구하게 된다,

어른대 어른으로서는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지만 상대가 어린 아이일때는 그것만큼 가혹한 것도 없다,

감정은 눌러야 하고 이성적이어야 하고 나는 늘 조언하고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니다 싶어 모든 감정을 감추지 말고 말하라고 했더니

그 응대가 너무 힘들다,

배운대로 하는 건 뭔가 가식적이란 생각만 들고 그저 바라봐주고 안아주는 건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쩌라는 거냐고....

생긴대로 살자니 그게 아닌것 같은데 바꾸자니 그건 내 옷이 아니다,

수학 영어 국어 과탐 사탐만 아니라 내 감정을 들여다 보는 것 표현하는 것 그리고 공감하는 것 모두가 공부가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하고 시험이 필요한 일이었다,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며 알게 되지만 늘 용기내어 한걸음 다가가는 것이 힘들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왔지만 가슴에서 발로 가는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

 

세상에 나는 또 하나가 더 없다,

단 하나인 나는 단하나여서가 아니라 그 존재로 가치있고 의미가 있는 존재이다,

불완전하고 누군가와 달라보이고 어딘가에 끼어들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아도 나는 여전히 나이고 여전히 의미있는 존재다,

누구나 아프지만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그 다른 누군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있고 의미있다,

내가 그렇듯이...

나를 알고 조금 용기를 내서 한걸음 내딛는 일

그리고 부끄러움이 영원히 내옆에 머무는 건 아니라는 것

의외로 타인은 쉽게 잊을 테고 남의 판단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꾸 잊게 되고 그 이상으로 나를 덮치는 수치심을   없애지 말고 그냥 인정하고 함께 살기로 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품과 작가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작품속에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발칙하게 생각했다,

통속적이고 적나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 통쾌했었다,

착한척하거나 의도적으로 위악을 떨지 않아도 인간이란 족속은 무른 속내와 이익앞에서 무엇보다 자기 욕심이 앞서는 존재이다, 그것으로 착하다 악하다고 판단을 할 수 없다,

인간이란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한 그래서 자유의지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늦게 등단했다고 누구나 많은 이야기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것이고

다사다난한 역사를 관통했다고  그것이 문학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동시대를 산 누구나 작가가 될 것이고 누구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털아낼 수 잇을 것이다

여러번의 인터뷰에서 가장 마음을 끈 것은 어려운 시기를 겪어내면서 나중에 이걸 꼭 글로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견뎠다는 말이었다,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보다 살아남아서 나중에 이 이야기를 꼭 써서 복수하겠다는 결심

그건 극단으로 몰린 처절함이기도 하고 동시에 순진한 어린소녀의 결심같기도 하다,

그렇게 작가는 늦게 시작했지만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나보다,

닥쳐온 일들을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단단해진 속에 이야기가 쌓여갔다,

부러웠다,

일단 일을 하고 삶을 살아가고 현실을 살아내는 것이 골방에서 머리를 싸매는 일보다 더 의미있다는 것을 작가는 들려줬다,

어떤 고귀한  선언이나 주장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내는 사람이 더 귀하고 가치있음을

그리고 그  바닥에서 알아가고 부끄러워하고 그러면서 자기자신의 오기를 가지는 것 그말도 좋았다,

부끄러움과 자긍심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인간

정말 매력적이지 않은가

 

쉽고 잘 읽히는 소설이 좋고

누군가는 통속적이라고 폄하할지라도 살아가는 일이 통속적일 수밖에 없다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현실에서 살지 이상속에서 살지 않는다,

나 자신도 짜잘한 인간이라 이상적으로 보이는 사람보다 현실적으로 정직하고 당당하면서 부끄러움을 아는 그런 사람이 더 좋다, 어떤 이상은 없어서 비굴해보일지라도 내 주변을 챙기고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이 더 좋다,

그래서 여러번의 인터뷰중에서도 균일하게 드러나는 작가의 작은 것을 아끼는 마음  작은 일에 가치를 두는 마음이 좋았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 중이다,'예전엔 몰랐던 봄꽃이 에쁘다고 느껴지고 본홍색 노란색 그 색들이 촌스럽지 않고 정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작가의 아름다웠다는 정원이 궁금하다

그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작가의 책을 다시 먼지를 털어 읽어야겠다,

사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작가다

비슷한 위선에 동질감도 느끼고 소소한 복수에  차사한 후련함도 함께 공유하면서 나만 속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위로받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것은 리뷰는 아니다.

 

책을 다 읽었다,

산 지  일년이 조금 되었을까? 책장에 꽂아놓고 계속 노려보고 부담만 느끼다가 펼쳐들었다,

아니 이전에도 읽었었다,

첫부분 수바시와 우다얀의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읽다가 책장을 덮었다,

이 책은 그냥 순식간에 그냥 읽어치워서는 안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휘리릭 읽어버릴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인도역사를 모르고 70년대의 복잡한 사정을 모르니까 라고 핑계를 대기도 했고

첫 몇장면에서 뒤의 이야기가 충분히 유추되고 그게 마음이 짠해져서 이렇게 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렇게 버려두고 계절은 바뀌었다,

그리고 어제 다 읽었다,

내 예상이 맞는 부분이 있고 아닌 부문도 있었다,

이렇게 3대에 걸친 이야기가 펼쳐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다얀과 수바시의 이야기는 맞았지만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가우리의 등장은 예상치 못했다

 

인도에 남아 혁명에 가담한  적극적이지만 서툴렀던 우다얀

현실을 생각하고 미국으로 떠났지만 내내 이방인으로 돌면서 마음 한 구석에 빚진 기분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수바시

그들 사이에서 아내로 제수로 다시 아내로 살아내다 자기 삶을 찾아 떠나버린 가우리

그리고 그들의 아이 벨라

모두가 제각각 제가 서있는 곳에서 자기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삶을 시작한다,

그 시작점은 같았을 지라도 한걸음 한걸음 내딛여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고 무늬가 달라졌다,

형제였어도 부부였어도 그들은 제각각의 삶을 살아갔다,

이야기는 우디얀에게서  수바시에게서 가우리에서  그리고 벨라에게서 조금은 두 형제의 엄마로부터 보여지고 느껴지고 생각나는 것들을  서술한다,

각각 자기의 입장이 있다, 누구의 삶이 누구의 삶보다 못하다거나 누구에게 피해만 준다고 할 수도 없엇다,

물론 가우리는 많은 부분을 수바시에게 빚을 지고 살았다,

수바시가 동생에게 느끼는 빚진 기분과는 다르게 정확하게 무게를 달수 있는 형태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도를 떠나게 했고 새 삶을 살게 했고 그녀가 원하는 공부를 가능하게 해주었던 남자를 배신하고 떠나는 그녀가 곱진 않지만 미워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뭐라고 해도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변병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우리가 느낀 답답함 죄스러움  그리고 도무지 자기 옷을 입은 것 같지 않은 삶에서의 해방이 절절하게 와 닿았다, 누구나 모성이 있는게 아니고 누구나 남들처럼 흉내내며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녀의 선택을 적어도 나는 지지한다,   불쌍한 년보다는 차라리 나쁜 년이 낫다,

 

수바시의 삶은 어딘가 스토너를 연상시킨다,

미국으로 떠나와 자리 잡은 그곳을 한번도 벗어나지 않고 삶을 이어온 그의 모습이 미주리 대학을 떠나지 않고 견뎌온 스토너와 겹쳐진다,

자기만의 시간속에서 삶을 견디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저항해온 두 남자는  답답하고 밉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도 수바시가 딸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어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적어도 앨리스보다 벨라는 행복할 것같다)

 

신념과 투쟁으로 짧은 삶을 마감한 우디얀

그는 순수하지만 서툴렀고 다정하지만 이기적이었다,

누군가를 해방해야한다고 하면서도 집에서는 대접받기만을 원했던 모순적인 그의 모습은 낯선 타인이 아니다,  그런 그이기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우리를 끌어들인 행동의 결과가 평생 가우리에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죄책감을 남겼다

뭘 그런 걸로... 라고 하기엔 가우리에게 남은 무늬는 너무나 선명하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휘청거리게 되고 내가 원하지 않은 무늬를 그리면서도 사람들은 제각각의 삶을 살아낸다,

뭐라고 하든 그것은 나의 삶이고 나의 문제였다,

제각각 누구에게는 상처가 되고 누구에게는 무심함이 되더라도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이 슬프지만 단단하다

자기만의 공간..

책에서는 가우리만이 자기만의 공간을 원한다고 표현되어있지만

결국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고 그 속에 웅크린다,

벨라의 옷장속도 그런 공간이고  평생 한 연구소를 떠날 수 없는 수바시의 그 대학도 그의 공간이다, 인도 켈거리가 우디얀의 공간이듯이

그들의 어머니는 이층 테라스가 그녀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신선한 공기를 맞으며 희망도 보았지만 결국 가장 잔인하게 아들의 죽음도 목격하는 그녀만의 공간이다,

 

책은 세 사람 그리고 그 주변의 사람들을 이야기하지만

공간을 이야기하고 시간을 이야기하며

사람이 공간과 시간 속에서 어떤 무늬를 그리고 서로의 무늬에 침범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저지대에 고여서 흐르지 않은 물처럼 때로는 서로 멈춰서 엉기기도 하지만

끝내 말라버린 저지대의 물기처럼 그렇게 제각각의 삶으로 돌아간다,

 

두께에 비해 쉽게 읽혔고

쉽게 읽힌데 비해 오래오래 생각하게 한다,

단편보다 별로야 별로야... 하고 중얼거리면서 마지막장을 덮었고 그리고 그 말은 이제 안하기로 한다 더 낫다 아니다 라는 평가가 의미가 없다,

그녀는 좋겠다,

이제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다음 책은 어쩌면 조금 오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