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관계에서 상처받고 관계에서 위로받는다.

누군가가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위로한다면  그건 살아가는 큰 힘이다.

 

아이가 엄마를 떠나 세상을 탐험할 수 있는 힘은 언제나 뒤에서 든든하게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엄마가 있다는 믿음이다. 세상을 돌아다니다 다시 돌아가면 언제나 그곳에 나를 안아줄 엄마가 있다는 건 큰 힘이다.  애착관계에서 안전기지는 중요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싸우고 상처입고 돌아와도 쉴 수 있고 내가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안전기지는 아이 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중요하다.

 

집단 상담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참가자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자기는 남편과 아이들의 안전기지가 되어주고 싶다고 했었다. 참하고  따뜻한 인상의 그 참가자는 안전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가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안다면서 가족에게 특히 남편에게 그런 안전기지가 되어주고 싶다고 했다. 참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그때 상담선생님이 격려를 해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누군가에게 안전기지가 되어준다는 건 정말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역할이 나를 소모하면서까지 희생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 안전기지가 되어준다는 건 중요하지만 상대가 성인일 경우 안전기지 기능을 넘어 그 대상의 대체 엄마 역할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건 할 수도 없지만 해서도 안된다. 아이의 엄마는 될 수 있지만 남편의 엄마는 될 수 없다. 성인사이에서는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여야 하니 한쭉이 일방적으로 품어주고  희생하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어쩌면 부모와 아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 경험이다.

우리엄마는 희생적인 엄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들도 안다 부모가 자신을 위해 희생한다는 걸 어느 나이가 되면 안다. 아주 못되먹은 아이나 문제가 있는 가정이 아니라면 아이들은 표현하지 않아도 부모의 희생을 고마워한다. 때로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다시 고마워할 주로 아는 존재다. 표현하느냐 마느냐로 판단할 수 없다. 말투나 태도는 껄렁거리고 무심하더라도 그 희생을 절대 모를 수 없다.

나도 한때 엄마한테 싸가지 없이 굴기도 했을것이고 가슴에 대못을 쾅쾅 박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내 속에는 항상 엄마를 걱정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 아니어도 엄마에게는 걱정이 한보따리고 나 말고도 신경써야 하고 돌봐야 할 식구가 더 있고 더 속썩이는 사람도 있다. 덜어주지는 못할 망정 거기에 돌을 하나 더 얹지는 말자라는 마음

내가 내키지 않아도 좋아요 괜찮아요 상관없여요 내가 하죠 뭐.. 이건 내가 가진 유일한 대사였다

물론 엄마에게 물어본다면 나로인해 속아 까맣게 타들어갔던 일 치사하게 상처받고 무시당하고 소외되었던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도 많이 저자세였다고 할 수 있다

나이를 먹어서일 수도 있지만 엄마가 얼마나 희생했고 고생했는지 아니까 사소한 건 그냥넘어가고 이건 아니지 싶지만 반박하지 않고 나는 늘 괜찮고 손이 가지 않고 혼자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견뎌야 한다는 마음이 사실 나를 많이 외롭게 했다. 나 너무 속상해.. 하며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 일은 될수 있는대로 하지 않았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 하지 못했으면서 나는 자꾸 주눅들었고 혼자 외로웠고 혼자 미웠다.

그래서이다. 그 희생의 강도가 심하면 심할 수록 그 희생이 아이에게 족쇄가 되기도 한다.

희생하는 상대에게 함부로 할 수는 없다. 내 부모가 내 엄마가 저렇게 희생하고 고생하는데 그런 엄마에게 "노"라고 할 수 없다. 왠만하면 "에"라고 할 수 밖에 없고 괜찮다고 하고 좋다고 하고 그냥 소소한 상처는 내가 받고 내가 견디고 만다.

그리고 희생이란  숭고한 것이 아니다.

사실 사람이라면 내가 감당하는 범위를 넘어가면 보상을 생각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희생하는 순간은 순수했을 지라도 그 일이 자꾸 반복되면 왜 나만 참아야 할까 하는 마음 왜 내가 해주는 걸 알지 못하지 왜 나만 해야할까 내가 이만큼 해주면 나도 뭔가르 바래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기대하는 댓가가 없으면 당연히 실망한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희생은 더 이상 숭고하지 않은 부담이 되고 억압이 되고 관계가 왜곡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희생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베품 그 적정선이 중요하다.

이기적인 것과 내 중심을 잡고 나를 존중하는 것은 다르다.

언젠가 자식은 부모 곁을 떠난다. 성장해야한다. 그게 정상이다.

나에게서 어떤 미련도 남기지 않고 자유롭게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게 손을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언제든 상처받고 실패해서 돌아오고 싶아면 기꺼이 받아들이면 된다. 쉬게하고 울게 하고  맛있게 먹고 편안하게 자게 해주면 된다. 조언할 수 있지만 강요할 수는 없다.. 다시 떠날 때가 되면 손을 흔들어 줄 뿐이다.

 

 

어떤 관계에서든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사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타인이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그건 그의 입장에서이고 그가 베푸는 친절들도  싸가지 없이 말한다면 그가 생각하는 친절이고 그가 할 수 있는 친절이지 그게 꼭 나에게 맞는것도 아니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 타인의 친절에 감동했다면 우연히도 서로의 감정 주파수가 맞아 떨어진 행운일 뿐 그의 능력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 친절이 가장이거나 위선이라는 건 아니다. 그건 충분한 진심이고 정성이지만 모든 정성이 다 가치를

발하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거절한다.

내가 원치 않은 것도 거절한다.

내가 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면 그 이후는 어찌 될지 생각하지 않는다.

원하는 걸 해주고 그냥 잊어버린다

그게 원망으로 돌아와도 그건 내탓이 아니다.

그가 원하는 걸 내가 몰랐던 건 내가 그가 아니니 당연하고 그가 싫어하는 그 무언가는 내가 아니다. 내가 행한것 내가 주었던 무엇일 뿐이다.

이기적이고 냉정하지만 그게 맞을 거다.

타인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고 부담을 갖지도 주지도 않는것

그건 이기심이지만 동시에 내가 지탱하는 힘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이다.

잘 늙어가는 것 노후 준비를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자식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세상이다. 내가 잘 살아가는 것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는 것 그것이 타인도 타인의 삶을 제대로 살게 하는 힘이 된다.

이기적이지만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다. 유감이지만 내가 지치지 않게 지키는 하나의 갑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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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의 "낯술"을  낭독으로 들으니 술냄새가 나는 거 같다.

막걸리  소주 이과두주가  뒤섞인 냄새가 공기속에 흐른다.

낯술의 장점은..

끝을 정하고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낮에서 시작해서 밤까지 끝을 모르고 달릴 수도 있지만

짧은 틈에 강하고 짧게 혹은 한 점처럼 누구도 모르게 간단하게 끝낼 수 있는 것이 낯술이다,

남들은 하루를 살아가는 시간을 나혼자 뚝 잘라서 햇살 아래서 마시는 낮술은 쉽게 취하지도 않는다

낮술은 애미애비도 못알아 본다고 하지만 짧은 시간을 잘라서  단시간에 마시는 낮술은 초각성상태로  마시는 거라 쉽게 취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다. 내가 낮술을 마셨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 라는 마음으로 마시는 낮술이어서 그렇다.

이렇게 흐트러지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이 동시에 낮술의 순간이다.

풀어지는 순간이면서 동시에 누구에게도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충돌하는 순간 그래서 오히려 더 쨍한 마음으로 마시는 낮술이다,

 

이야기 속에 주인공들은 우연히 낮에 막걸리를 마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낮술을 익히고

낮술을 마시는 단골 장소가 있고

혼전 임신을 알고 낮술을 마시던 골목들을 돌아보고

아이가 정학을 맞았을 때 하소연할 친구를 그리워하며 중국집에서 잡채밥과 이과두주를 마시고

마지막엔  산더미같은 파전을 앞에두고 와인 글라스에 막걸리를 따라서 마신다,

아버지가 죽고  아이는 학교를 땡땡이 치고 혼자 집에 숨어들어 먹다 남은 떡볶이와 맥주를 마신다.

제목보다 덜 나오는 낮술 장면들이지만

그 순간의 낮술을 마시는 상황들은 충분히 이해했다.

 

낮술을 차라리 독한 술로 짧게 끝내거나

식사대신 막걸리로  배를 채울 수도 있고

가볍고 부담없는 캔 맥주로 시간을 떼울 수 있다.

쓸쓸하고 외롭고 그러면서 동시에 오기가 생기는 마음이 낮술의 안주가 된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동시에 누가 보던지 말던지 하는 마음이 함께 알콜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간다 안주는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비오던 일주일이 지나고 간만해 해가 쨍한 지금

밀린 빨래를 베란다 가득 널어놓고 그 아래서 낮술 마시기 딱 좋은 날이다.

 

지금 들은 윤성희의 낮술은  신의 한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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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8-2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술 한 사발 마시고 싶네요. 옛날에는 낮술 참.. 많이 마셨는데...

푸른희망 2017-08-24 14:24   좋아요 0 | URL
흐~^^ 낮술은 흐린 날보단 쨍한 날이죠....
 

 

 

 

 

 

 

 

 

 

 

 

 

 

마음이 소금밭이라는 말이 그냥 쿡 와서 박혔다.

아마 내 마음이 그랬던 모양이다.

뭐라도 해야하고  주위 사람을 다독여야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투명인간처럼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누구도 알아차리지 않은 존재였으면 했다.

뭐 그건 일부 가능할지 몰랐따.

막 낯선 곳에 이사온 참이었으니까....

이곳에서는 대로에서 삿대질을 하고 싸워도 누군지 모를테고 길거리에서 코를 파건 껌을 찍찍 씹어대도 아는 얼굴을 마주칠 리 없었다. 그게 편하면서 외롭기도 했다.

늘 마주하는 아는 사람은 가족이었지만 그건 내가 챙겨야 할 대상이었지 내가 위로받을 대상이 되질 못했다 미안하지만...

아침에 깨지 말기를 소원하며 밤에 잠이 들었고 다시 시작하는 하루가 너무 길기만 했지만 그걸 티낼 수는 없었다. 내가 기운이 빠지면 안될거 같은 상황은 목아래까지 차오르지만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또한 목아래까지 꽉꽉 차 올랐다.

 

가까운 도서관엘 가서 가족수대로 대출증을 만들었고 아이 학교 전학 수속을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도 학부모 대출증을 만들었고 이주마다 오는 아파트 이동도서관에서도 가족수대로 대출증을 만들었다 이 네모난  카드가 어떤 작용을 할지 몰랐지만 그래도 어디론가 도피처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도서관은 걷기엔 멀었고 뭔가를 타고가기엔 애매했고

학교 도서관은 아는 사람은 없지만 왠지 혼자 눈치가 보였고

이동도서는 의외로 볼만한 책은 없었다.

그래도 매주 꾸역꾸역 다녔고 책을 빌렸고 또 꾸역꾸역 읽었다.

지금 책을 읽을 타이밍이 아니었음에도 그냥 책만 읽었다

어쩌면 그때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거나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겠지만 모든 게 한없이 멀어보였고 한없이 허무했고 꼭 그래야하나 싶은 마음만 들면서 무기력했다.

지금도 가끔 느끼지만 내가 가장 무기력해보이는 순간은 한없이 늘어진 자세로 소파에 처박혀 책을 읽는 모습이다, 독서가 늘 옳은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가장 꼴뵈기 싫은 모양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해야할 일을 포기해버렸을 때

해야 할 일을 할 수가 없을 때

무엇이 해야할 일인지 알 수 없을 때

책을 집어들고 읽는다는 행위는 여유도 아니고 탐색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그냥 도피일 뿐이다,

마음이 어디에도 자리 잡을 수 없어서  그저 책속으로 도망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내 마음도 저 제목처럼 그저 소금밭처럼 쓰라리고 아팠다.

책을 읽어도 그 아리고 쓰린 통증은 여전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냥 무작정 있는 책을 집어들고 읽을 뿐이었다.

소설을 읽고 동화를 읽고 에세이를 읽고 알지 못하는 인문학을 읽고 요리책을 읽고 패션 인테리어책까지 꾸역꾸역 읽어대면서 나는 무엇을 기다렸던 걸까?

소금이 저절로 녹아서 그렇게 사라지길 바랬던 걸까

어떤 소금이 그냥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

택도 없는 소리다

그냥 그 때 나는 도망치고 싶었던 것뿐이다.

눈앞에 산처럼 쌓아있는 해야할 일들을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냥 저절로 알아서 해결되길 바라는 요행만을 바라면서

그렇게 책속으로 도망쳤다

 

아마 세상 백만넘는 독서인을 모욕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무언가 더 나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어서 도망치고 싶어서 그렇게 책으로 들어가는 일은 부끄럽고 무의미하다.

읽어도 읽어도 속에 체끼가 내려가지 않은 기분으로 몇달을 보내면서

결국은 내가 해야할일은 내가 해야하는 것이고

하지 않았거나 미뤘던 일들은 그 댓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을...

그래서 내가 얻은 것은...

책읽기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체득한 것 뿐이다.

꾸역꾸역 읽어내는 책들도 꾸역꾸역 먹어대는 음식들처럼 쉽게 체하고 쉽게 질릴 수 있다

그건 뭣도 아니다,

그걸 알았다.

그래서 지금은 변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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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그림이 자꾸 19금을 향하고 있다... 애들이랑 같이 보는데ㅜㅜ

이제 스즈랑 친구들도 고등학생이 되고 막내언니는 결혼을 할거고 다른 두 언니도 편안하고 좋은 남자친구가 생겼고 가족 구성도 조금씩 변하면선 안정감이 느껴진다.

아직 철이 없는 엄마는 여전하고  이모 할머니의 욱~도 여전하시시만

다들 조금씩 좋은 쪽으로 발전하는 걸 보면.. 역시 만화는 만화구나 싶으면서도 안도감이 느껴지는 건?? 뭔지 모르겠다.

뭐든 좋게 끝나는게 이젠 좋은 모양이다,

 

말이라는 게 어떻게 꺼내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가족이라도 끊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끊어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장 아프고 힘든 대상이지만 끊어낼 수 있다고 마음을 먹으면 별 일 아닐 수도 있게 된다.

또 다음 권은 언제 나올지...

그냥 잊고 있다보면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또 다시 발간되겠지...

 

우울하고 기분이 처질 때 쌓아놓고 읽으면 참 많이 힘이 나는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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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내가 무지하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잘 몰라서 아는 게 적어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해야한다고만 생각했다,

왜 난 이렇게 모르는게 많을까만 고민했다,

 

그런데

후보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각당의 참모들의 인터뷰를 계속 보면서

어쩌면 모르는 사람. 무지한 사람은 저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처음했다,

내가 몰라서 무지해서 못알아 들은게 아니라

그들이 무지해서 아는게 적어서 제대로 말을 못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동안 나만 탓해서 너무 나에게 미안하다

생각만큼 무지 하지 않고 이해력도 좋았구나,,.,,

 

나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을 다 이해하겠는데

답변은 늘 저기가서 남의 다리나 긁고 있고

두리뭉실  주제를 잡지 못한다,.

내가 무지한게 아니었다,

세상엔 무지한 사람이 정말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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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8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