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정아 엄마와 순영이 딸
엄마는 말했다,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것만 자꾸 생각나는데 너는 왜자꾸 아니라고만 해
딸이 말한다.
그때 엄마가 어땠는지 다 아니까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아니까....
아들을 못 낳아서 자식을 못 낳아서 할머니한테 아버지한테 구박받는 걸 아니까
엄마가 힘든 걸 아니까 그래서 그렇다는 걸 아니까
딸은 엄마를 아니까 마음을 그냥 덮어 두었고
엄마는 딸이 자기에게 마음을 터놓지 못한 이유가 자기탓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일은 터졌고 상처를 입었고 그걸 어미로서 몰랐고
엄마는 내가 내 자식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딸은 자기의 불행을 엄마가 알아버려서 그래서 자기가 엄마 마음에 벽돌 하나를 더 얹어 놓았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울수 도 없었다,
아 그랬던 거구나..
드라마를 보는 순간 무언가 내 머리를 쳤다,
그랬던 거였다,
나도 엄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드라마처럼 드라마틱하지 않지만 내 엄마도 많이 힘들었다,
어린 눈치에도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게 느껴졌고 한집에 살던 고모들도 그다지 엄마에게는 다정하지 않고 어딘가 군식구같은 냄새를 풍겼고 아빠역시 그 시대 고단한 가장이었다,
엄마에게 더 이상 짐을 올려 놓을 수는 없었다,
손이 가지 않는 아이
혼자 알아서 하는 아이
그렇게 인식되어지며 나이를 먹고 철아닌 철이 들면서 규정되고 이름지어진대로 살아지게 된다,
어떤 일이든 아무렇디도 않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별거 아닌 일이었다,
혼자 우는 경우가 있어고 그 울음은 짧았고 대체로 하두번의 꺽꺽 거림으로 끝을 맺었다,
울면 안돼 징징 짜면 안돼
이건 누가 나에게 경고한게 아니었다,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것이 아니고 내가 나에게 하는 경고였고 내가 나에게 하는 단도리였다,
울지말자 울 일 아니다,
뭐라고 하지 말자 어쩌겠는가 내문제인걸 ...
그렇게 조개처럼 입을 닫았다,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 탈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벽돌을 올려놓으면 안된다고만 생각했다,
그땐 그 벽돌이 내 위에 차곡차곡 쌓여간다는 걸 몰랐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일이라는 건 나중에 어른이 되고도 나이를 많이 먹어서 알았다, 욕구를 드러내는일 본능적인 행동이나 표정 말투도 훈련을 통해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내삶으로 증명되었다,
가능한한 아무렇지 않게
상처받지 않은 모습으로
내가 받은 것만 기억할 것
고마운 것만 생각할 것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배운 사람으로서의 할 태도라고 생각했고 그런 사고나 태도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많이 힘들었다,
그것도 내가 아직 덜 성숙해서라고 생각했었다,
나도 아프다고 힘들다고 배째라고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건 내 몫이 아니었다,
화가 나면 내가 못되먹어서 화가 났다고 생각했고 못되먹어서 성질이 나는 거라고 ... 생각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 속의 모녀가 서로에게 벽돌을 얹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살면서 많이 멀어졌고 많이 힘들었음을 보면서 울음이 났다,
배려라는게... 내가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말하지 않으니 아무렇지 않을거라고 믿어 버리는 건 내가 그만큼 힘들고 고단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다,
이미 지난 일이고 돌이킬 수도 없었고
그땐 젊은 내 엄마도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고
좋은 의도로 했을 거라는 걸 머리로 알아가는 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늘 머리와 가슴은 다르게 놀았다,
가슴은 자꾸 억울하고 서운하다고 하는데 그걸 눌렀고 그러면 안된다고 머리가 타일렀다,
가슴은 자기를 표현하기를 주저하게 되고 나중에는 표현하는 방법을 잊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었던 거다,
그래서 나는 잘 참고 말안하고 알아서 하는 딸이 되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그리고 너무나 슬프게 그게 가장 편한 일이 되어버렸다,
누구에게 고백하지 않는 것 누구와 나누지 않는것 누구에게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것
그걸 이제 알았다,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속 나이든 여자들 중에 가장 힘들고 주책맞지만 가장 귀여운 그녀를 보면서 그리고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그녀의 딸을 보면서 나는 나를 본다, 내 엄마를 보았다,
그리고 슬퍼졌다,
#2 난희 엄마와 완이 딸
바람피우는 아버지 일찍 과부가 된 엄마
매맞는 아내였던 외할머니 이제는 바보가 되어서 할머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폭력에 불구가 된 외삼촌
억척스러워진 엄마
말 잘 듣는 딸
그 딸은 이제 자기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했던 남자는 불구가 되어버렸고 텅 빈 마음을 달래려고 결혼한 선배를 이용했다,
엄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늘 엄마말 잘 듣는 딸이고 싶었고 이젠 어떤 말도 엄마에게는 위로를 받을 게 없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늘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나를 보지 않고 나에게서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내가 왜 선배를 만났는지 내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저 보고 싶은 것 유부남은 만나는 미친년같은 딸이라고만 보고 딸의 앞날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 그런 엄마가 이해되는게 너무 싫다,
어린 시절 엄마는 나와 함꼐 죽으려고 했다,
힘들어서 죽고 싶었다는 건 이해가지만 왜 나도 함께 죽어야 했던 걸까
그때 일을 그냥 묻었다,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야 무슨 소용일까
그러나 이젠 드러내기로 한다,
엄마와 마주하는 것 내 상처와 마주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이 어쩌면 그 사람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 그럴거다,
가까워서 그 마음을 다 알지만 그 사람이 해주는 최선이 내겐 부담이 될때 괜히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닐까 하고 죄책감이 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죄책감을 주는게 정말 사랑일 수 있을까?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라고 딸 완은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문득 엄마 난희의 마음에 기울어진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 내가 배운 사랑이 이것이라고 믿고 무장정 퍼부어 주었는데
그는 내가 준 모든 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지겹다고 하고 집착이라고 하고 부담이라고 한다면 나는 뭘까
내가 그동안 무슨 헛짓을 한것인가?
사랑이란 어쩌면 감정이 아니라 이성을 필요로 할지도 모르겠다,
니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걸 말해봐,
그리고 경청하고 그걸 해주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것?
무작정 우물처럼 퍼울려지는 감정보다 조금은 절제되고 딱딱 가로세로를 맞춘 이성이 간간이 끼어들어야 하는 걸까?
이번 주말 다시 드라마는 이어질 것이고
나는 내 엉마를 생각하고 내 자식의 엄마인 나를 생각하며 또 꾸역꾸역 텔레비젼앞에 앉을 것이다,
그녀들의 사랑은 어떻게 정리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