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광주는.. 대학엘 들어가서 음성적으로 틀어주던 그 충격적인 영상에서가 아니라

 임창정이 참 우스꽝스럽게 나와서 어이없이 휘말리고 안타까워하던 영화 스카우트 그리고 공선옥의 "라일락이 피면"에 수록된 짧은 단편에서였다

 

 

나에게 용산 참사는 그 근처에 살고 있던 그때의 기억이나 신문 혹은 다쿠멘터리 등이 아니라  동화책 " 동화없는 동화책"속의 작은 이야기에서 였다.

 

 

나에게 삼풍백화점은 그 당시 하던 일을 잊고 몰두하던 신문 뉴스 방송들이 아니었고 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에 들어있는 단편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세계사에서 혹은 화면에서 보았던 홀로코스트도 결국 나는 모퍼고의 "모짜르트를 위한 질문"을 통해서였고

 

 

아마 지금 기억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건들 사건 사고들을 기억하는 건 어쩌면 정확한 통계와 사실을 보여주는 뉴스가 아니라 전해들은 혹은 재구성되어 허구가 섞여진 이야기들을 통한 것이라 믿는다.

 

이야기의 힘은.. 사실은 아니지만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눈으로 숫자로 기록된 객관적이고 차가운 사실이 아니라

오늘 내가 만난 사람 스쳐지난 거리 

나처럼 화내고 짜증내고 돌아서서 미안하고 머쓱했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그래서 사망 00명 어쩌구 저쩌구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누나가 되어 나와 다르지 않는 사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뉴스를 통해 들은 사건은 그저 냉랭하게 머리속을 맴돌지만

이야기를 통한 사건들은 마음이 먹먹하고 눈가가 지끈거리는 감정으로 다가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있다.

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시시한 거짓말이거나 화려한 언변의 사기가 아니라

그렇게 우리에게 정말 사람이 그랬다고 사람이 그렇게 살아왔다고 그리고 죽었었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사람들은 뉴스가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이야기가 밖으로 향한 창이 되어주었다.

아무리 뉴스에서 크게 다루고 많은 정보를 준다지만  한 사건이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의미를 갖게 되는 건 항상 뒤늦게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내게 세상의 창은 이야기였다.

조금 늦게 정보를 접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차가운 숫자와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의 일이라는 것 아픔이고 상처고 회한이고 혹은 희망이고 기쁨일 수 있는  나와 무관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건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아직도 이야기가 ..  소설이... 동화가 해야할 일이 많이 있다고 .. 지구에서 인간이 멸종되지 않는한 언어가 사라지지 않는한 이야기는 영원하리라 믿는다.

 

그 무엇보다도 이야기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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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세탁소 - 정미경 소설집
정미경 지음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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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내가 나인 순간이 얼마나 될까 그런 순간이 오기는 하는 걸까 지금 내가 널 좋아한다는 것 네가 날 좋아한다는 것 무언가에 휘둘려 그것마저 놓쳐버린다면 지금의 우리에게 도데체 뭐가 남아 있을까.....

                                번지점프를 하다 중에서..

 

그저께 대대적으로 책정리를 했다.

집 근처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기고 제일 활발하게 이용하는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중고 서점에서 싸게 책을 구입....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끌고 다니던 책을 하나씩 둘씩 야금야금 파는 재미에 들려서 모든 책들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집에 뭔가를 두고 싶지 않고 콘도같은 집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두손들고 반길 일이긴 하지만  사는 사람 생각은 안하고 낡고  이미 오래전에 나온 책을 무지 좋은 책이라고 꾸역꾸역 팔아야 한다고 우기는 남편을 말리는 건 힘들었다. 나에게 좋은 책이라는 것고 팔리는 책은 다른 거니까.

각설하고 책을 정리하다가 옛날 편지를 발견했다.

 

친애하는 **에게.. 라고 쓴 짧은 한장짜리 편지였는데

누가 썼는지 이름조차 없어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게 애정을 가지고 쓴 편지라는 것 (사실 애정이 없이는 손편지를 누구에게 쓰겠는가) 그리고 그 상대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이미 15년 가까이 흐른 후 받아든 그 편지가 참 새삼스럽고 설레었다.

짐작컨대 결혼전 활동하던 동호회의 누군가가 내게 책을 보내면서 함께 보냈던 편지라고 짐작된다. 책을 보낸다는 글귀로 보아..

뭐랄까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문장들로 이어진 자기 신변 이야기뿐인 짧은 메모같은 편지지만 그래도  행간에 보이는 배려랄까 애정이 느껴진다면 너무 오바스러울까

아주 늦게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한때 사귀었다기보다는 몇번 만났던 사람이었고 모임에서 몇번을 보다가 조금은 친해지다가 그냥 흐지부지 되고만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편지가 그때의 기억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사실 별 연애감정도 아니었고 사이도 아닌데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싫어서 멀리 했던 기억도 있고 뭐랄까 세삼 그리울 것도 없는 상대지만 그때 내가 받은 편지를 다시 보는 건 또 다른 감정이었다.

아... 나도 한때 이런 적이 있었구나.

어쩌면 내가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내 스스로 나였고 거기에  대책없이 당당하고 자유로웠떤 나를  떠올리게 했다.

괜히 좋아서 딸에게도 보여줬지만 별 관심이 없다.

뭐 절절한 사랑표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지하게 건조한 내용이긴 하다

받은 사람만 보낸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의 결을 꺼집어 낼 수 있는 거니까 누군가가 공감하기는 어려운 지극히 개인적인물건이니까.

그래도 편지를 발견한 그 며칠 내내 기분이 좋았다.

까맣게 잊어버린 내 청춘을 느닷없이 발견한 기분

풋풋하다고 하기엔 모자라지마 그래도 뭔가 설레고 기묘한 감정의  되새김질도 좋았다.

 

그래서 기분좋게 정미경의 소설집을 읽어내려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팍.. 나를 닮은 감정의 결을 다시 느껴본다

어쩌면 비루하고 대책없는 청춘들의 허우적거리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그 순간이 참 빛난다는 걸 그들은 알까? 내가 오롯이 나일 수 있는 순간을 찾아 다니는 그 청춘들이... 골뱅이 처럼 배배 꼬인 뒤끝을 가지고도 다음날이면 다시 헤헤 거릴 수 있는 그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건지

 

모든 작품을 읽고 책을 덮으면서는 조금 마음이 아리고 허무하고 하긴 했지만 여전히 한장의 에상치 못한 편지의 감흥은 지속되고 있었다.

 

결국 이 글은 리뷰가 아니라 책을 읽는 도중 어떤 편지를 발견해서 책은 뒷전이고 그 편지가 주는 감상에 취해서 홍해옿애거린다는 이야기일 뿐인 지극히 사적인 내용이 되겠다...

 

고로 같은 작품을 읽어도 그 순간의 상환이나 감정상태에 따라  지극한 비극도 희극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알려주는 것...   아 챙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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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어정쩡" 이 딱이다.

어정쩡...

이렇지도 않고 그렇다고 저렇지도 못한 중간에 끼어서 뭐라고 정의내리기 참 애매한 존재.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봐도 그렇다.

이렇다 할만큼 똑 부러지게 뭔가를 한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천사표처럼 허허거리면서 순진하게 살았던 것도 아니다. 그저 적당히 위악도 떨었고 적당히 비굴하게 착하척도 하면서 그렇게 살았는데 운이 좋았는지 별 어려움이 없이 지금까지 나이 먹었다.

내 아이들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가끔 내게 묻는다.

"엄마가 내 나이때 꿈이 뭐였어?"

"꿈?"
이 질문 큰 아이가 6살때부터 줄기차게 받아온 질문이다.

처음에는 이랬다

"엄마는 꿈이 뭐야? 지금부터 꿈을 꾸어야 뭐라도 되지 않겠어?"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가슴에서 뭔가가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는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모든게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시기라 그랬던거 같다.

지금 내가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질문을 했던 여섯살 짜리가 이미 열네살이 되어버린 지금 생각하면 그땐 뭐든 꿈꿀 수 있었던 때였구나 싶다.

속된 말로 지금이 내가 살아갈 가장 젊은 순간이라는 것

그걸 알지만 지금도 가끔 어릴적 꿈이 뭐였는지 지금이라도 돌아간다면 무얼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답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렇다고 깊이 고민을 해도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을 거같다.

슬프다.

결국 나란 사람은 그렇게 그때나 지금이나 "어정쩡" 이 가장 적당한 대답이다.

 

뭐가 되고 싶다는 당찬 꿈도 허황된 망상도 없었다.

어쩌면 일찍 철이 들었던 거 같기도 하다. 뭔가를 꿈꾼다고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았고 세상에는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보다는 얻을 수 없는게 더 많다는 것도 알았고 그리고 맘대로 살아도 되는 건 아니지만 그냥저냥 게을러도 살아가는데 지장없는 나름 여유있는 부모도 있었던 까닭이었다.

난 뭐가 되고 싶었을까

뭐랄까 그 무엇이라는 것이 직업이라면 나는 구체적으로 꿈꾼 직업들이 없는 건 아니다.

기자가 되고 싶었고 선생님도 되고 싶었고 작가도 되고 싶었다.

어쩌면 어떤 일을 하건 내 일에서 프로가 되고 싶었고 그 일이 글쓰기랑 관련이 있었으면 하기도 했다. 참.. 한때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준비하다가 덜컥 은행에 입사하게 되면서 그냥 접었다.

그때 모든걸 거기에 걸었던 친구는 지금 그 길을 가고 있다. 크게 성공한건 아니지만 지금 후회하는지는 모르지만 자기의 꿈을 이루기는 했다.

그런데 나는 뭔가를 꿈꾸다가도 신포도를 앞둔 여우처럼 늘 변명을 했고 이유를 찾았고 조금은 쉬운길로 방향을 틀어갔다.

운이 좋았는지 그나마 재능이 있었는지 그 시작은 항상 잘풀렸지만 끝이 엉망이었다.

시작은 하되 끝을 본 건 하나도 없다.

젊은 천재가 가장 불행하다는 건 맞는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천재씩이나 되는 것도 아니지만 뭔가 초반 운이 잘 풀리는 만큼 그것을 지속하는 끈기나 독기가 부족했다.

늘 어정쩡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고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잘 못하는 것도 아닌

모든 걸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이 내 상황이다.

 

세상을 나혼자 잘먹고 잘 산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면서 내 주위의 상황에 눈물을 흘리긷 하지만 돌아서면 나도 명품백을 매고 거리낌없이 백화점을 돌아다니고도 싶었다.

잘 나가는 브런치 카페에도 아는 척을 해야하고 소외받는 이웃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성찰을 보이고 싶었다. 두 가지가 상반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뭐든 잘나고 싶었던 것일뿐 뭐하나 깊이있게 빠지지도 못했다.

여기가면 저기가 걸리고 저기 가면 여기가 그리웠다.

누군가가 나를 강하게 이끌어준다면 그대로 끌려가고 싶으면서도 막상 뭔가에 끌리는 순간엔 주저하고 간을 보고 의심하기가 끝이 없었다.

 

책을 읽는 이유도 그랬다.

뭔가 사회를 사람을 알고 싶었고 소통하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없었으면 하고 바랬다면 그건 욕심일 뿐일까

책모임에서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그랬다.

이 책을 나쁘다고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막막하고 마음아픈 이야기는 내 아이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고 .. 굳이 이런 이야기를 아이에게 읽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때 순간 반발이 들었고 내생각은 그랬다.

내가 아이에게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권할 필요는 없지만 아이가 이 책을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진다면 나는 기꺼이 권하겠다. 아이에게 권하기는 할것이다. 그리고 읽느냐 마느냐는 아이가 결정할 일이지만 나는 아이에게 내가 모르는 세상을 보게 하는 기회를 뺏고 싶지 않다고..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한 책을 한두권 읽는다고 사람이 변하지는 않는다.

아니 모든 사람이 변하지는 않는다.

내가 모르는 일이라 이해를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마음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몇몇에게는 또다른 행동까지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른 거니까.. 그걸 마음아프니까 막막하고 기분이 좋지 않으니 막아야 한다는 건 아니라도 생각했다.

나역시 김중미를 읽고 김애란을 읽고 누군가가 동화로 쓴 용산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몹시 아팠다. 아팠고 미안했고 또 미안했다.

나도 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어버려서 그저 미안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니지만 내가 전혀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닌.. 어쩌면 어정쩡했던 모래알같았던 내 일상의 무심함이 모여서 뭔가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미안했고 가만 있는 것도 힘들었다.

무언가를 행동할 수도없었고 하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읽고 또 읽으면서 마음아파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정쩡한 삶은 그게 전부였다. 부끄럽지만..아직도 읽고 있을 뿐이다. 나는..

아직도 나는 읽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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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는 한줄 일기인데

줄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할말이 많다는 건 그건 자꾸 나자신에 대해 변명할 거리가 많아진다는 거고

그만큼 내가 비굴하고 초조하다는 거고

내가 못났다는 말이다.

 

이젠 변명하지 말아야 겠다.

그리고 좀 웃고 살아야겠다.

(요새 애들이 자꾸 묻는다. 엄마 화났어?  아니야 난 기분좋을 때도 이런 표정이야..

이것도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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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건 퇴직같은 건지도 몰랐다.

주부의 일터가 가정이라고 한다면 직장동료이고 상사가 가족일 수도 있다.물론 가족과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스물넷 이후 생활을 계속했고 계속 뒷바라지 해온 가족들이라면 그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 남은 순간과 내가 평생을 일해온 일터에서 떠나 혼자 된 순간이 비슷하지 않을까

자식들을 다들 제 가정을 가졌고 남편도 세상을 떠난 지금 엄마는 이제야 비로소 퇴직흘 하게된걵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일해온 직장에서 자의든 타의든 나오고 나면 다들 혼란을 겪게 된다. 아침에 눈을 떠도 일찍 서둘러 나갈 곳이 없다는 것  이제 이불속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책임을 져야하고 해야할 일들이 있지 않다는 것 내 앞에 놓여진  24시간이 오롯이 내것이라는 것이 홀가분하면서 동시에 나를 짓누르는 무게로 다가올 수도 있다.

엄마가 지금 그런 기분일까

자식이 떠난 집에 아버지와 둘이 생활한것도 10년이 넘었다.

나름 까다롭다면 까다로왔던 분이 우리 아버지였다. 무던하고 음식타박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쉬웠는지 몰라도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드셔야 하고 몸이 아픈 뒤로는 바깥 출입을 못하게 되면서 짜증과 욕구불만이 많았을때 엄마도 힘들어했다.

남자란 자고로 아침에 눈을 뜨면 어디론가 갔다가 저녁에 돌아와야 집안이 편한 법인데 하루종일 살갑지도 않은 남편과 함께라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 나를 들들볶으려고 사는 것 같다고 눈물로 한숨으로 호소하기도 여러번이었으니까

나도 내 생활에 바빠서 모른 척 했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린 적이 대부분이었다.

나이를 먹고 내 생활에 허덕이다보니 두분이  모두 이해가 되면서 모두 이해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는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아버지를 보면 이해가 갔다. 평생을 바깥일을 해온 사람에게 하루아침에 집안에만 있어야 한다는 건 큰 형벌이다. 성실한 사횜생활과 가장으로서의 의무완수는 사회에서 쉽게 노닥거릴 친구를 만들지를 못했을 것이다. 내게 사회적인 지위가 있고 평판이 있을때는 자신있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 모든 계급을 떼고  사회의 이름을 떼고 보면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나서기가 조금 주저된다. 게다가 몸도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 상태라면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자존심이 강한만큼 작아진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클 테니까

그에 대한 모든 화풀이나 짜증은 엄마의 몫이었다.

내내 가족에게 시집식구들에게 시달리다가고  그 나이쯤 되면 모든 걸 홀가분하게 내려놓기도 한다는 나이에 이르러서도 엄마는 아무것도 내려놓지를 못했다.

매일 싸운다고 잔소리한다고

그냥 한귀로 듣고 흘리고 말지 싶었던 적도 많았다. 일일이 대꾸하고 신경쓸 일이 무어있을까 이제 두분에게 남은 시간이란 그런 것들 뿐일텐데..

하지만 어쩌면 엄마를 살게하고 그나마 아침에 눈을 뜨게 만든건 그런 아빠의 짜증이고 까탈스러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단 두식고 이제 생활비도 아껴야 할 나이에  나이도 많고 아무거나 먹기도 까다로운 늙은 남편에게 무얼 해먹일까 하는 건 지구온난화문제 해결만큼이나 어려운 과제일것이다.

매일 세계 평화회담같은 고민을 짊어지고 오늘 내앞에 펼쳐진 스물네시간을 어떻게 보낼것인가 생각하고 동동거리는 것이 엄마를 움직이게 하고 숨쉬게 했다고 한다면 엄마가 싫어할까

그렇게 화내고 짜증나고 돌아서면 애틋하고 가련하기도 한 내 사람이 떠난 지금

어쩌면 가장 힘들고 무섭고 막막한 사람은 엄마다 지극히 당연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란 얼마나 무겁고 무서울까

철없이 내가 종종 바라는 소망이 있었다.

남편도 아이도 없는 낯선 곳에서 보송보송한  잠자리에서 혼자 눈뜨는 것

그리고 눈뜨고 내 앞에 펼쳐진 시간을 내멋대로 흘려보내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사치라고

엄마는 지금 그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이 사치로 느껴지진 않을거다. 아직도 밤이 되면 혼자라는 게 무섭다고 했다.

화내고 짜증내면서 아이구 내팔자야  저인간때매 내가 죽겠다고 투덜거릴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해진다는 건 참 슬프고 슬펐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떤 예고도 없이 70평생을 해오던 일이 하루아침에 없어졌다.

그러니 이제 자유다?

서늘하고 무섭다.

하지만 계속 두려워할 수도 없고 뭔가 시간을 채워야 하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내가 뭐라도 해줄 수 있을까

아직도 내 앞에 놓은 시간도 허덕이는 이 딸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티나지 않게 아파하고 훌쩍이는 거말고는 없다.

한번쯤 내가 가서 하룻밤 같이 있어 줄까 하는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간다고 뭔가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짐이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고 또 그렇게 있다가 훌쩍 내 생활로 돌아와버리면 안그래도 두분이 있을때도 누군가 왔다가 가버리면 그 빈 공간이 너무나도 크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큰 공간을 두고 올지도 두렵다.

도움도 안되고 허전함만 키워주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만 드는건... 그것도 핑계일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시던 분도 아니고

혼자서 영화를 보러 다니거나 문화생활을 즐기던 분도 아니고

그저 티비 드라마를 함께 보셨고 간혹 운동삼아 나간게  혼자 한 전부인 분에게

이제 그 앞에 남은 시간을 어찌하라고 할것인지......

그냥 멀리서 혼자 마음만 쿵떡거리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 한권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이제 혼자가 된 엄마에게는 오랫동안 시간을 함께하며 애증을 나누었던 장발이 없다.

어쩌면 그 애증 상대였던 분이 아버지였던거 같기도 하다.

미워하고 미워하고 모른 척 하고 싶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를 닮아버린 상대에 대한 애잔함

엄마가 가진 40년동안의  불만이 희생이 엄마를 살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 읽었을 때 마음이 싸해서 책장을 차마 덮지 못했었는데 이걸 엄마에게 권하는 건  막 넘어져서 까지고 피가나는 쓰라린 상처에 매정하게 소독약을 들이붓는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약이 독이 될 때도 있으니까...

그냥 나중에 내 마음이  덜 먹먹해졌을때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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