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다시 생각에 빠졌들었다, 그는 자신이 있을 공간을 정했다, 그는 법정을 벗어나 아들이 재로 가라앉은 바다를 열었다, 자신의 운명을 정하는 판결을 앞둔 때에 아버지는 아들이게 가 있는 것이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들로 부터 격리되었다, 그는 아버지였다, 나도 한 사람의 아들이었다, 그 아들은 자유의 몸으로 오래도록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나는 박재호의 옆에서 피할 수 없는 아버지를 마주 보게 됐다, 아버지 돌아가신 아버지,,
(중략)
퇴근하면 가방만 내려놓고 안방에 들렀다, 아버지는 저녁이 되면 안방에 펼쳐둔 전기장판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는 거기서 항상 괜찮다고 대답했다, 나는 항상 오늘은 좀 어떠냐고 물었다, 가을부터 둥지속 새끼 새처럼 전기장판을 못 벗어나던 아버지는 끝내 그 위에서 눈을 감았다, 나는 잠결에 형의 절규를 듣고 알았다, 내가 달려갔을 때 형은 남겨진 육신을 끌어안고 악을 쓰고 있었다, 아버지가 거둔 고양이. 그것이 창틀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누으로 죽음을 내려봤다,
전기장판은 코드가 뽑혀 있었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영안실에 들른 조문객들에게 형은 전기장판 코드가 뽑혔다고 말하고 또 울었다, 나는 형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건 형탓도 전기장판 탓도 아니야 형은 날 와락 부둥ㅇ켜안고 목을 놓았다, 거기에 이모가 가세해 우리 둘을 껴안고 곡을 했다, 5년 넘게 연락 한 번 없던 여자였다, 난 흐느끼는 소리를 냈지만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내진 못했다, 눈물이 안 나왔다,
아버지는 어머니 옆에 묻혔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누렇게 뜬 전기장판을 내버렸다, 형은 말이 없었다, 두세시간 눈을 붙였다, 잠에서 깬 뒤 집을 나와 택시를 잡았고 청량리역에서 속초행 기차를 탔고 속초에서 울릉도로 떠나는 배에 올랐다, 누구와도 연락없이 섬에서 이틀을 보냈다, 성인봉에서 내려다 본 동족 바다는 사막처럼 건조했다,
(중략)
그때가 스물 여덟이었다, 겨울이 그 해 절정에 도달한 밤 나는 전기장판 위에 누워 뜬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면서 오래도록 내 아빠를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 그 사람도 전기장판 위에 누워 있었다, 거기서 그의 시간은 죽을 날을 향해 달렸다, 나는 물 한 컵 달라고 부탁하는 시든 목소리를 떠올렸고 무덤속에서 살점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을 마른 몸을 상상했다, 어느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례식까지 흐르지 않던 눈물이. 멈출 수가 없었다, 가슴으로부터 올라오는 통증 영원히 끝나지 않을 밤 나를 덮친 그 밤을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 시대와 이전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은 겪는 것처럼 나는 아버지를 잃었을 뿐이었다,
그런 모두가 이런 아픔을 간직한 채 태연하게 세상을 살아왔던가 그렇다면 세상 위모든 사람들을 존경하며 살아가리라. 통증은 더 심해졌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싫은 사람이라는 말은 아버지와 같았던 적이 있었다,
내 아버지는 내게 아무런 잘못을 한 적이 없었다,
먹이고 입히고 성인이 되도록 뒤를 보아주었고 모든 책임을 졌고 어떤 책망도 한 적이 없는데
그래서 아버지가 싫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개천용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무지한 부모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공부를 잘했고 공부로 성공했다
그리고 책임감 강한 아비 없는 장남답게 가족을 형제를 책임졌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당신 가족이 우선이었다,
내 어머니 내 누이들 그들이 우선이었다
엄마와 우리 남매는 늘 그 다음이었다,
그건 아버지가 직접 입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도 행동으로 몸짓으로 일찌기 터득했다,
이유는 그게 유일했지만 그건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컸다,
다른 형제와는 그 문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내 언니가 내 동생이 아버지의 그런 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사촌이나 친척들과 친하질 못했다,
늘 서먹했고 적대적이었지만 세련되게 감출 줄 았았던 것 뿐이었다,
우리는 친척들 사이의 섬이었다,
모두가 아버지를 숙주로 생각하고 기생해서 모든 걸 뜯어가면서 그건 당연하다고 느끼는 충들 이었고 우리는 그들을 아닌 척 증오했다,
그리고 그건 자연스럽게 그 관계를 인정하는 아버지에게 모두 돌렸다,
언제나 산인줄 알고 화수분처럼 퍼낼 줄 알았던 아버지가 쓰러졌지만
그때는 모두 모른 척 했다,
무지하게 대놓고 모른 척 한 건 아니라서 더 분했다,
걱정하는 척 미안한 척 안쓰러운 척 하면서 혹시나 내게까지 책임이 올까 전전긍긍하는 것인 ㅡ껴졌다, 어쩌면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믿는게 편했다,
아버지는 누구의 탓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젠 남은 처와 자식이 자기를 책임지리라 믿었다,
나도 남부럽지 않게 아버지에게 받았으면서도 늘 남에게 준 것과 내가 받은 것을 비교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미워했다,
결혼을 하지 말든가. 자식을 낳지 말든가
그의 책임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비니까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고 결혼하고 가족이 생기고 그 동생들마저 한 가족의 가장이 된 이후에도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가 가엾다기 보다 한심했다,
거대한 산은 점점 깍여 갔다,
그리고 마음이 흔들렸다,
곰곰히 생각을 해도 아버지는 잘못한게 없었다,
그는 늘 좋은 아들이고 좋은 형이고 좋은 오빠였고 좋은 사회인이었는데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에서는 걸렸다, 늘 걸렸다,
과연 좋은 아버지란 어떤 아버지인가,,,
교과서적인 대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 자꾸 걸렸다,
많이 편찮으셔도 늘 그 상태로라로 계실거라고 생각하고 미운 마음을 거두었다는 것만으로 다 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미워하지 않고 안쓰러워진것 만으로 나는 충분한 도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 앞에서는 나는 여전히 철부지였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철딱서니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언젠가 썼듯이 나는 울음이 안 나올까봐 걱정했다,
보여지는 나에 대해서 걱정했다,
삼일장이 지나고 하관을 하고 모든 절차가 끝나고서 깊고 긴 잠을 잤다,
나에게도 지켜야할 가족이 있고 아버지보다 더 챙겨야 할 어린 자식이 있었다,
나이 먹었고 병 들었고 이미 예상을 했던 일이고... 그렇게 넘겼다,
그런데 어떤 모퉁이마다 어떤 갈피마다 자꾸 아버지가 걸렸다,
아버지 살아 생전 이렇게 그를 많이 생각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그의 뒷모습이 걸리고 그의 말이 걸리고 그의 행동들이 그때 그 눈빛이 자꾸 걸렸다,
아버지가 걸릴 수록 나는 나쁜년이 되어갔다,
울 수도 없었다,
영화속 인물에서 책속의 누군가에게서 그리고 어떤 낯선이의 뒷모습에서 자꾸 아버지가 걸리면서 아무때나 울컥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나도 나이 먹어서... 라고 넘기고 싶었다,
무언가 정리가 필요했다,
글을 쓰고 그를 기억해보고 자꾸자꾸 떠올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점점 더 무거운 나쁜 년이 되었다,
아버지가 이해될수록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배움이 길다고 똑똑해 지는 건 아니었다,
아는 게 많다고 똑똑하고 실수를 하지 않고 선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살아있기만 한 헛똑똑이였다,
일곱살에서 조금도 자라지 않은 늙은 아이였다,
자꾸 자책감이 들었다,
기억할수록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고 지금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이젠 정리되어 간다고 내가 조금은 덜 나쁜년이라고 정리하고 있었다,
이 책을 팟케스트로 들었다,
용산 이야기라는 게 딱 듣는 순간 떠올랐다,
제법 긴 방송을 순간 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봤다, 윤계상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고 마음이 먹먹했다,
그때도 법정에서 선 아버지 박재호를 보며 늘 그렇듯 내 아버지를 생각했다,
영화도 마음에 들어 책을 읽기로 했다,
영화의 흐름 그대로 책은 넘어갔다,
아 대석역을 유해진이 하는게 아니었어... 하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주민역할이 빠진게 아쉽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모든 법정공방이 끝나고 마지막 주인공의 아버지 이야기에서 또 걸렸다,
울지 않았다는 부분과 나중에 알았다는 이야기에서 턱 걸렸다,
언제까지 이렇게 끌어야 하나
애도는 마감시간이 없다고 한다,
슬퍼하는 이가 그 슬픔이 깊이 잠기고 그리고 다시 솟아 오를때까지 언제든 애도의 시간일 수 밖에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내 경우는 애도가 아니란 생각을 한다
나는 죄책감이었고 미안함이었고 이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뿐이다,
이건 애도가 아니다,
그저 나만의 만족 혹은 감정과잉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것 뿐이다,
처음엔 긴 애도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함께 드는 건 불순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으며 그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듣지 않고 딴 생각에 자꾸 빠지는 건 예의가 아니다
'소수의견'이란 책을 썼을 때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텐데
자꾸 그는 자기 아버지의 이야기를 긴 법정 공방뒤에 숨겨놓았다고 믿고 싶었다,
뭐 눈에 뭐만 보인다고 나는 자꾸 그것만 보였던 거다,
이건 너무 질질 끌고 있고 산뜻하지 못한 애도다,
아니 애도도 아닌 미련이다
책은 영화와 달리 지리멸렬하게 끝이 난다,
어떤 영웅적인 사건도 언젠가는 잊혀지거나 더 큰 사건으로 덮어진다,
살아보니 정의가 늘 반짝반짝한것도 아니었다,
나중엔 지루해지고 녹슬어서 잊혀지기거나 그땐 정의인줄 알아던 것들이 지루한 일상만도 못하다고 여겨질때도 많다,
이 책이 영화보다 더 사실적인 건 그거다,
박재호는 잊혀질거고 그 많은 사건은 계속 터질거고
홍재덕은 로펌에서 떼돈을 벌거고
주민은 어쩌면 정치에 발을 담궜다가 박경철 의원처럼 변할지도 모른다,
한순간 정의가 이겼다고 모두가 정의를 위해겠다고 와 .. 나섰다가 다시 와 흩어지는 게 현실이다, 씁쓸하지만 그래왔고 그럴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하다,
자꾸 자꾸 기억하게 만드는 일
잊고 있던 그때 그 함성을 떠올리게 하는 일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게 만드는 일
그런 별볼일없지만 있어야 할 일을 위해 소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 글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 뭔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