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소금밭이라는 말이 그냥 쿡 와서 박혔다.

아마 내 마음이 그랬던 모양이다.

뭐라도 해야하고  주위 사람을 다독여야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투명인간처럼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누구도 알아차리지 않은 존재였으면 했다.

뭐 그건 일부 가능할지 몰랐따.

막 낯선 곳에 이사온 참이었으니까....

이곳에서는 대로에서 삿대질을 하고 싸워도 누군지 모를테고 길거리에서 코를 파건 껌을 찍찍 씹어대도 아는 얼굴을 마주칠 리 없었다. 그게 편하면서 외롭기도 했다.

늘 마주하는 아는 사람은 가족이었지만 그건 내가 챙겨야 할 대상이었지 내가 위로받을 대상이 되질 못했다 미안하지만...

아침에 깨지 말기를 소원하며 밤에 잠이 들었고 다시 시작하는 하루가 너무 길기만 했지만 그걸 티낼 수는 없었다. 내가 기운이 빠지면 안될거 같은 상황은 목아래까지 차오르지만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또한 목아래까지 꽉꽉 차 올랐다.

 

가까운 도서관엘 가서 가족수대로 대출증을 만들었고 아이 학교 전학 수속을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도 학부모 대출증을 만들었고 이주마다 오는 아파트 이동도서관에서도 가족수대로 대출증을 만들었다 이 네모난  카드가 어떤 작용을 할지 몰랐지만 그래도 어디론가 도피처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도서관은 걷기엔 멀었고 뭔가를 타고가기엔 애매했고

학교 도서관은 아는 사람은 없지만 왠지 혼자 눈치가 보였고

이동도서는 의외로 볼만한 책은 없었다.

그래도 매주 꾸역꾸역 다녔고 책을 빌렸고 또 꾸역꾸역 읽었다.

지금 책을 읽을 타이밍이 아니었음에도 그냥 책만 읽었다

어쩌면 그때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거나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겠지만 모든 게 한없이 멀어보였고 한없이 허무했고 꼭 그래야하나 싶은 마음만 들면서 무기력했다.

지금도 가끔 느끼지만 내가 가장 무기력해보이는 순간은 한없이 늘어진 자세로 소파에 처박혀 책을 읽는 모습이다, 독서가 늘 옳은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가장 꼴뵈기 싫은 모양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해야할 일을 포기해버렸을 때

해야 할 일을 할 수가 없을 때

무엇이 해야할 일인지 알 수 없을 때

책을 집어들고 읽는다는 행위는 여유도 아니고 탐색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그냥 도피일 뿐이다,

마음이 어디에도 자리 잡을 수 없어서  그저 책속으로 도망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내 마음도 저 제목처럼 그저 소금밭처럼 쓰라리고 아팠다.

책을 읽어도 그 아리고 쓰린 통증은 여전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냥 무작정 있는 책을 집어들고 읽을 뿐이었다.

소설을 읽고 동화를 읽고 에세이를 읽고 알지 못하는 인문학을 읽고 요리책을 읽고 패션 인테리어책까지 꾸역꾸역 읽어대면서 나는 무엇을 기다렸던 걸까?

소금이 저절로 녹아서 그렇게 사라지길 바랬던 걸까

어떤 소금이 그냥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

택도 없는 소리다

그냥 그 때 나는 도망치고 싶었던 것뿐이다.

눈앞에 산처럼 쌓아있는 해야할 일들을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냥 저절로 알아서 해결되길 바라는 요행만을 바라면서

그렇게 책속으로 도망쳤다

 

아마 세상 백만넘는 독서인을 모욕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무언가 더 나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어서 도망치고 싶어서 그렇게 책으로 들어가는 일은 부끄럽고 무의미하다.

읽어도 읽어도 속에 체끼가 내려가지 않은 기분으로 몇달을 보내면서

결국은 내가 해야할일은 내가 해야하는 것이고

하지 않았거나 미뤘던 일들은 그 댓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을...

그래서 내가 얻은 것은...

책읽기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체득한 것 뿐이다.

꾸역꾸역 읽어내는 책들도 꾸역꾸역 먹어대는 음식들처럼 쉽게 체하고 쉽게 질릴 수 있다

그건 뭣도 아니다,

그걸 알았다.

그래서 지금은 변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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