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에른스트 카시러의 주저들을 읽어보려고 두 권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습니다. <국가의 신화>와 <문화과학의 논리> 두 책입니다.

헌데, 이러저러한 일들 때문에 자꾸 읽어야 할 리스트에서 멀어져만 갑니다.

할 수 없이 짧은 시간에 카시러 사상의 일면을 훑고자 책세상 문고판을 펴들게 되었습니다.

바로 <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 외>(책세상, 2002) 였죠~

카시러의 문화철학을 접할 수 있고, 게다가 ‘문화철학의 자연주의적 논거와 인본주의적 논거’가 아울러 수록돼 있어 잽싸게 선택했는지도 모릅니다.

스노우의 <두 문화>에 대한 논의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볼 겸 해서요~

아, 근데 첫 페이지부터 좀 이상했습니다. 도무지 읽어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 페이지도, 또 그 다음 페이지도! 이건 번역본을 읽은 고전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번역서 중 한 권일 겁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 범우사> 였습니다.)

이건, 영어 좀 하는 고등학생이 사전을 옆에 갖다가 놓고 해석을 한, 딱 그 정도의 수준입니다.

너무 심한 비유인가요? 그럼, 이해가 도저히 안 돼서 5번 이상 읽었던 10여 장만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쓰레기같은 번역인지 같이 확인해 보자구요. (맞습니다. 이 번역은 쓰레기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낌새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내가 이 강연에서 역사적이거나 특별히 문화학적이지 않고, 바르부르크 도서관이 체계적이고 철학적인 유형으로 부여한 과제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는 주제를 감히 다루려 한다면, 이런 시도에는 논증과 정당화가 필요할 것이다.” p15

이게 도대체 한국어 문장이란 말입니까? 고등학교 학생의 작문도 이보단 낫겠습니다. 보건데 함부르크의 이 문화학 도서관이 카시러가 보기에 너무도 대단해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이고 문화학적인 자신의 강연이 이 도서관(역사와 문화학 서재가 빼곡히 들어찬)에 비추어 하잘 것 없는 수준이다.’ 뭐, 대충 이런 뉘앙스 같은데, 저따위로 번역해 놓으니 내용 파악이 전혀 안 됩니다.

이 단락의 마지막 문장도 가관입니다. “이곳에서는 예술사, 종교사, 신화사, 언어사, 문화사가 공공연히 나란히 꽂혀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겹쳐 공통의 이념적 중심점과 관련되어 꽂혀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어색한 문장입니다. 그리고 계속 ‘~것이다’를 남발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짜증을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다음 페이지는 더 가관입니다.
“있음[존재Sein]의 되어감[생성Werden]에 대한 관계는 진정한 상관관계로서, 반대의 경우도 그러하다. (한 문장 건너서) 정신의 삶이, 그것이 전개되는 단순한 시간의 형식 속으로 용해되지 않으려면, 그 시간 속에서 해체되지 않으려면, 일어남의 동적인 배경 아래 형태를 가지고 지속하는 다른 것, 곧 머무는 것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p16

맥락상 어떤 의미로 번역했는지 어렴풋이 알겠습니다만, 이해하기 힘든 문장입니다. 이걸 읽고 이해가 되는 한국인이 있다면 그는 앞 뒤 맥락의 내용과 글 전체의 내용을 아는 번역자이거나 카시러 전문가이겠지요. 하지만 문장 상으론 완전히 비문입니다. 어려운 이유가  해독하기 어려운 문장 때문입니다. 그냥 원서에 있는 개념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페이지의 마지막 세 문장입니다.
“그 경향이란 실증주의, 그러니까 정리와 제한, 사실에 대한 단순한 자료를 넘어서는 것이다. 현대 언어학자 가운데 다음과 같은 주장을 대단히 정력적으로 따른 사람은 카를 포슬러이다. 결정적으로 실증주의에서 관념주의로 진보해야만 언어사적 사실이 본질적으로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pp16~17

실증주의 경향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거니와(앞 문장에서 단순히 “오늘날 철학보다는 오히려 개별과학 자체에서 다시 어떤 경향이 매우 강하게 일고 있다”고만 언급) 이 실증주의 경향이 그냥 정리, 제한 그리고 사실에 대한 단순한 자료를 넘어서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카를 포슬러가 따르는 주장이 또 그것이라는 군요. 집중해서 반복해 읽어보면 ‘단순한 자료를 정리하는 수준인 실증주의를 넘어 관념주의로 나아가야만 언어사적 사실이 본질적으로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다’는 내용 같은데(잘 해독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내용을 저렇게 번역해 놓으니 독자는 도대체 뭔 소린지 모르게 됩니다. 역자가 한국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어 시간에 저따위로 작문한다면 선생님한테 심한 꾸중을 듣고도 남습니다.

계속 볼까요. 건너 뛴 문장도 읽기가 힘들 정도로 어색하지만 아래 인용한 문장보단 낫습니다.

“그는 살아오면서 모든 자신의 영향과 성과를 단지 상징적으로만 보았고, 당시 생각하기에 가장 원천적이고 깊이 있는 그리고 ‘가장 진실한’ 사고, 변형의 이념도, 첼터에게 보낸 변지가 말해주듯, 이제는 오로지 상징적으로만 이해하려고 말이다.” p20

문장을 분해해서 몇 문장으로 나눌지도 엄두가 안 나는 문장입니다. 그냥 원서에 있는 독일어를 한국어로 변환시키는 번역기와 하등 다를 게 없는 문장입니다.

또 두 페이지 정도는 그런 대로 읽을 만하게 전게 되다가 4페이지를 넘지 못하고 다시 번역기 돌린 듯한 문장이 나옵니다. “그런 매개가, 그것이 소리 기호에 의해서든 신화와 예술의 형상 형성을 통해서든 아니면 순수 인식의 지적인 기호와 상징에 의해서든, 정신적인 것 자체의 본질에 필연적으로 속한다는 것은, 정신적인 것의 본질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일반적 형식을 숙고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p22

역시 무슨 소린지 모르는 비문입니다. 원서의 내용을 모르니 정확한 번역은 안 되겠습니다만, 주어진 문장을 최대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고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소리 기호에 의해서든 신화와 예술의 형상형성(카시러가 사용하는 개념같습니다)을 통해서든 아니면 순수 인식의 지적인 기호와 상징에 의해서든, 그와 같은 매개가 정신적인 것 자체의 본질에 필연적으로 속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일반적 형식인 정신의 본질적 숙고를 통해 금방 알 수 있다.” 뭔 소린지 도저히 몰라서 최대한 번역자가 번역한 틀 내에서 바꾸어 봤습니다. 정확히 이런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번역자는 독자가 읽어 나가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역이든 뭐든 말입니다~

이후로도 계속 유리를 밟는 듯한 문장은 계속 됩니다.

“의성어적 언어기원론은, 이미 스토아학파에서 체계적으로 완성되었고, 18세기에 비코를 통해 알게 된 독창적이고 특이한 형성 과정 속에서 근대와 현대 언어이론의 초기까지 관철되었다.” p26

“다른 한편 언어의 역사를 보면, 언어의 고유한 원칙은 소리를 묘사하는 데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은 반면, 언어 형성에 함께 작용하는 요소로서는 어디서나 효과적이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래서 경험적 언어 연구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소리모사 원칙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된 명예 회복이 계속해서 시도되어 왔다.” 상동

“아무도 소리와 의미를 원래의 자연적인 관계로 수용하는 것을 동정적인 멸시의 미소로 내려다볼 권리가 없으며, 이 문제를 잘못 해결한 사람이 한 번도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 하지 않은 사람보다 백 번 낫다는 지적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상동

“에벤 언어에는 받아들인 인상을 소리로 재현하기 위한 수단이 매우 많다. 들은 것, 본 것, 어떻게든 지각된 것을 모두 흉내 내고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소리로 표시하는, 거의 강요되지 않은 유희에서 생겨난 수단의 풍요로움이다. p27 

계속 읽는 다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거의 이런 식의 문장이 끝까지 계속 될 것 같아 읽기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래두 32페이지까지 봄) 제가 너저분하게 본문을 계속 인용한 것은 모두 문장 자체가 잘못된 문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냥 원어에 대응하는 한국어만 있어, 대충 조합하여 그럴듯해 보이면 번역이라고 출간하는 작태가 한심스럽기 때문에 주구장창 인용해 본 것입니다.

만약 인용한 문장이 뭐가 이상하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한국어 공부를 다시 해야 합니다. 이건 원천 봉쇄의 오류가 아닙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왜 잘못됐는지 지적할 수 있는, 일명 썩은 문장의 대표적인 예들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고전 번역서들이 윗 문장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문예출판사본인 막스 베서의<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같은 출판사본인 샤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역시 위에 언급되어 있는 문장들과 대동소이 합니다. 모두 저열하고 조잡한 문장들로 명저를 훼손시키고 있습니다.

좋은 번역은 번역자의 명성에 있지 않습니다. 대단한 학벌과 업적 그리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좋은 번역을 담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출간된 대부분의 고전 번역들은 모두 그 분야의 권위자들이었지만 출간되어 나온 책들을 보면 매우 조악한 번역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언하건데, 고전은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번역이 이상해서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카시러의 문화철학을 접해보려고 책을 펴들었지만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30여 페이지를 수도 없이 읽어 봤지만, 결론은 읽을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요.

카시러 전문가처럼 선전해 놓은 역자, 오향미는 제가 볼 때에 에른스트 카시러의 철학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번역했다고 보여집니다.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어찌 번역기를 돌린 것과 같은 문장들을 내뱉느냔 말입니다. 역자는 무책임한 번역으로 카시러 철학에 먹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솔직히 이 책은 교정 과정에서 다시 회수되었어야 마땅합니다. 이러한 번역본이 돌아다닌 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만큼 한국 번역서들의 질이 안 좋다는 반증이겠지요.

읽느라 열 받았고, 이 글을 꾸역꾸역 쓰느라 힘들었습니다.


[덧붙임]

저도 역시 글을 못 쓰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죠. 제 글 역시 썩은 문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도 많이 있겠죠. 하지만 번역하시는 분들 정도라면 이 잣대는 높아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임감 있는 번역이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도 주제넘게 번역에 대해서 울분을 토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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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1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번역 문장을 보면서 절대적으로 공감을 표합니다~
특히 전문 서적들.. 번역 가관입니다. ^^

yamoo 2010-08-17 09:56   좋아요 0 | URL
거의 읽기 힘든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번역서들이 그러니, 해당 외국어 좀 하는 사람에게는 원서를 보는 것이 이롭죠~ 헌데, 모든 외국어를 잘 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울며 겨자 먹기로 번역서를 볼 수밖에 없죠. 그래도 왠만하면 군소리 안하고 읽는데...도저히 페이지를 넘길 수 없는 번역서들이 수두룩하더군요~ 번역서들은 넘쳐나는데, 정작 읽을만한 책이 없다는..ㅜㅜ

양철나무꾼 2010-08-17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서를 보다가 뚜껑 열리는 경우가 어디 한두번이어야 말이죠~ㅠ.ㅠ
저게 도대체 말인지 망아진지...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불끈 입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불끈~
그러기 위해서 체력 안배 잘해서 기초실력을 탄탄히 해야겠다,불끈~

yamoo 2010-08-17 13:34   좋아요 0 | URL
뚜껑이 안 닫히는 것이 문제에요..ㅎ 그런 의미에서 저는 나무꾼님의 그 불끈~ 에 한표 던집니다~^^

마늘빵 2010-08-1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 책이 익숙한가 했는데 저도 한번 들었다 놨던 책이네요. ^^ 오래전 페이퍼로 번역 문제를 언급했고요. 페이퍼가 없었다면 접한 줄도 몰랐을 겁니다. :)

yamoo 2010-08-17 23:30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아프님 리뷰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카시러가 글을 어렵게 쓰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읽지도 못하게 해 놓다니...아프님의 지난했던 이 책 읽기가 눈에 선합니다~^^

철학전공자 2012-04-06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독일에서 카시러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자로서 정말 할 말이 없고 또 한편 아쉽네요. 안그래도 카시러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데 그나마 번역서가 그런 수준이라니...
논문을 끝내고 나서,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해 볼까 생각은 있었지만 독일 철학용어를 한국어로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고 진작에 포기했었습니다. 그래도 용감히 번역하는 분들이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는데 정말 나도 실망. ㅠㅠ... 그래서 새삼 내 논문을 다시 꺼내보고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뉴욕대학교의 물리학 교수였던 소칼은 재미있는 착상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평소에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을 ‘철학자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를 남발하는 공허한 말장난’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입증하기 위하여 아무 의미도 없는 가짜 논문을 만들어서 유명한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학술지에 제출하기로 한 것이다.

소칼의 시도는 평소 자신의 생각을 대범하게 실행한 것이다. 평소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계에 가진 생각이 옳다면, 자신의 엉터리 논문이 학술지에 채택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소칼은 〈경계를 넘어서: 양자 중력의 변형적 해석학을 위하여(Transgressing the Boundaries: Toward a Transformative Hermeneutics of Quantum Gravity)〉라는 가짜 논문을 ‘Social Text’에 제출했다.

소칼의 말에 따르면, 포스트 모더니즘 학술지가 ‘그럴듯하게 들리고 편집자의 이데올로기적 선입견에 비위를 맞춰주기만 하면 넌센스로 범벅이 된 논문을 출판해 주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다고 한다.

결국 이 논문은 1996년 ‘Social Text’의 봄/여름호에 출판되었다. 자신의 논문이 Social Text에 실린 날, 소칼은 ‘Lingua Franca’라는 학술지에서 Social Text에 실린 논문은 엉터리 논문이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서 Social Text를 출판하던 듀크 대학교는 큰 홍역을 치렀다. 소칼은 자신의 엉터리 논문에 대해 ‘좌파들의 전문 용어, 비위를 맞춰주는 참고 문헌, 장황한 인용, 명백한 넌센스들을 자신이 찾을 수 있는 한 가장 멍청한 수학과 과학에 대한 인용문을 중심으로 섞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솔직히 대학에서 문학이나 철학을 강의하는 분들이나 현대철학을 공부하는 분들을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알쏭달쏭한 개념들을 쏟아낸다. 알 수 없는 개념들이기에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된다. 쓰는 사람은 논의에 맞게 쓸 수 있어 의사 전달에 편할지 모르지만 듣는 사람은 어지럽다.

상황이 이쯤 되면 말하는 이가 뭔가 있어 보이게(?) 된다. 왜냐하면 알 수 없는 개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또한 그럴듯하게 사용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적확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그냥 고개만 끄덕거릴 수밖에 없다.

나도 소칼과 같은 시도를 꽤 많이 해 봤는데(개념을 정확히 잘 모르면서 아는 척 말하는 거) 철학에 문외한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자신의 공부가 부족함만을 탓했다.

더 심한 상황은 토론 자리에서 벌어진다. 어떤 논의에서 자신의 생각을 뭐라고 하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무장한 사람이 철학적 개념들을 들이대며 아니라고 한다. 이후의 상황은 간단히 정리 된다. 아무 반박도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나 보라고 시인하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연출된다. (솔직히 이런 자리를 꽤 많이 목격했다)

중요한 건 그들이 개념을 몰라서 그렇지만 더 심각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대변되는 현대 프랑스 철학의 개념들이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그렇다.

자신도 정확히 알 지 못하는(그런데 안다고 생각하고 쓰는) 모호한 개념들은 그 개념의 나열만으로도 충분히 현학적인 문장이 되어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다음 개념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철학적 단어들을 마구 잡이로 늘어놓은 것이다.

[칸트, 윤리, 상징계, 담론, 의식, 메타, 환원, 사고, 이율배반]


이따위 무의미한 단어들은 다음과 같이 조합될 수 있다. “칸트적 이율배반을 상징계적 윤리의식으로 환원하는 메타 담론 - ” 그럴듯한 철학적 문장이 완성되었다. 아무 뜻도 없이 개념만 나열한 문장이 어느새 고상하고도 철학적인 문장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들은 어떤 상황이든지 논의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 특히 ‘칸트적’, ‘들뢰즈적’, ‘라캉적’ 이라고 하는 철학자 이름 뒤에 붙인 관형적 어미 ‘적’은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마법을 부린다. 누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이런 개념에 익숙한 사람들은 안다는 전제하에 이 후의 논의를 진전시킨다. 정말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소칼이 지적했듯이 작금에 판을 치는 포스트모던 철학은 현란한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면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소칼은 그것을 대담하게 실험을 통해 증명한 것 뿐! 프랑스 철학 등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 대한 내 생각을 소칼이 그대로 증명했다는 데에 속이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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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16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철학만 그런 것은 아닌거 같아요.
저는 작년까지 IT 테스트 프로세스 컨설팅을 했는데,
이런 분야도 엄청난 언어 유희를 즐기거든요... ^^
에러, 오류, 버그, 결함, 인시던트, 이슈 모두 뜻이 달라요.

진짜 웃긴건,, 석박사 마치고 바로 컨설팅한다고 온 사람들은
저런 단어 하나 잘못 쓰면 엄청 면박을 준답니다. 그런데
실무에 테스팅 프로세스를 적용하기 위해 하는 행위는 영....
현실과 동떨어져서 헛집고 개발자들 고생시킨다는거죠. ^^

yamoo 2010-08-16 19:49   좋아요 0 | URL
아이티 분야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군요^^ 근데, 에러, 오류, 버그, 결함, 인시던트, 이슈...이런 단어들로도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수가 있나욤? 아, 그나저나 석박사 마치고 바로 컨설팅할 때에는 단어 하나하나를 엄청 따지면서 실무 테스팅할 때는 마구잡이로 쓰나요? 아, 아이티 분야는 하나도 몰라서뤼~ 쩝..

마녀고양이 2010-08-16 19:58   좋아요 0 | URL
아니여.. 경험은 없는데다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해서
큰 숲을 못 봐여..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진 프로세스를 만들어내서
사용하라고 강요를 하죠. ^^

yamoo 2010-08-16 20:05   좋아요 0 | URL
아항~~위의 상황과 반대되는 상황이군요..ㅎㅎ 그러고보니 분석철학자들을 비판했던 철학자들의 논리가 생각나네요^^

양철나무꾼 2010-08-16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 분야 관련 저런 걸 매번 경험하고 살죠~

근데 하나로 귀결되는 건,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겁니다.
고개 뻣뻣한 벼가 있다면 그건 볼것도 없이 채 다 안 익은거죠.

yamoo 2010-08-16 19:54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의 분야관련 에피소드를 듣고 싶은데요~^^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면 될걸, 그냥 두루뭉술하게 들뢰즈적이라고 합니다..들뢰즈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두루 통용될 듯 싶은데요, 그 외의 사람들에게 들뢰즈적이라고 하는 것은 들뢰즈의 어떤 개념이 그 상황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정확히 풀어서 설명해줘야지, 마구잡이로 들뢰즈적이라고 하면 들뢰즈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은 혼란스럽잖아요~ 좀 친절해 졌으면 하는 바람에서..그럼 말장난이다 뭐다 불만이 없어질텐데 말이죠..쩝~

양철나무꾼 2010-08-17 10:52   좋아요 0 | URL
제 분야 관련 에피소드 얘기하면 이해하기 힘드실텐데...

그 중 이해할 수 있을 만한거 하나만 얘기해 보자면,
한창 조류독감이 유행하던 시기 였죠.
걍 '조류독감(avian influenza)'이라고 얘기하면 될 걸,
애볼라 인플루엔자가 어쩌고 저쩌고 말야~
(ebola는 virus랑 연결되는 전혀 다른 것임.)

yamoo 2010-08-17 23:36   좋아요 0 | URL
하하, 제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전문적인 분야이군요! 엇, 근데 나무꾼님 이공계열 이셨나부당~~ 문학을 싸랑하셔서 인문 전공하셨는 줄 알았는뎅~^^;;
 

  

고학자 슐레이만은 여덟살 때 아버지가 선물한 <어린이를 위한 세계사>라는 책을 읽고 호메로스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합니다. 그가 외우던 일리야드와 오디세이의 시구를 암송하면서 꿈을 키웠나봅니다~

 

슐레이만은 책 속에 나오는 트로이를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찾겠다는 커다란 꿈을 가졌습니다. 어릴때의 꿈이 커서 망상이 되지 않도록 그는 열심히 공부했고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구소련으로 가서 사업을 일구어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큰돈을 벌자 그는 그의 일생의 꿈이었던 트로이 도시를 찾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는 그가 노력해서 모은 모든 돈으로 그가 꿈꾸었던 트로이 도시를 찾아 나섭니다. 발굴 작업에 모든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비웃었습니다. 신화에나 나오는 얘기를 믿고 그 도시를 찾아나서는 그를 비웃은 것이지요. 그러나 그는 굿굿이 발굴을 계속했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그는 황금 주전자 등을 발굴했습니다.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바로 그 꿈의 트로이 도시를 발굴한 것이지요..   



슐레이만의 얘기를 복기하면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꿈을 꾸고 그것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에게 꿈은 현실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꿈은 믿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자의 몫이니까요.

어릴 때의 꿈이 퇴색되어 없어졌나요? 언제나 꿈을 갖고 사는 사람은 허망하지 않을 겁니다. 이룰 목표가 있으니까요.

나이가 드니 어릴 때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도 가물가물 합니다. 꿈이 뭐냐고 물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지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슐레이만의 이야기는 제게 꿈을 잊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네요..꿈을 망각하기에는 아직은 넘 젊은 거 같습니다. 어렸을 때의 꿈을 상기하며 희망을 부풀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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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8-15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트로이 도시에 관련한 고고학자 슐레이만 이야기 제가 어느 글에 쓴 내용이예요.
아 반가워라. 자주 뵈어요. yamoo님

yamoo 2010-08-16 09:42   좋아요 0 | URL
슐레이만 이야기를 쓰셨다구요~ 와우~! 저두 반갑습니당~~^^
세실님 자주 뵈러 가야겠어욤~~ㅎ

양철나무꾼 2010-08-16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세실님~
슐레이만 얘길 쓰셨다니(인급하셨다니)멋진걸요~!!!

yamoo님,꿈을 꾸기에 적당한 나이는 없는것 같아요~
님이 희망을 부풀릴 수 있도록...제가 신선한 공기 그쪽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yamoo 2010-08-16 09:43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감사합니다...신선한 공기를 보내주시기만 하세요..ㅎ 걍, 바로 받겠습니다~~ㅎㅎ 말씀만 들어도 넘 고마운걸요^^

마녀고양이 2010-08-16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을 꾼다는 것,, 참 아름다운 일이예요.
좋은 한주되셔염,, 야무님~

그런데,, 슐레이만은 보물 찾기의 꿈은 이루었지만,
그리스에서 가져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대요. 슐레이만은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밤에 몰래 빼돌렸다는군요. 결국 독일 정부가 차지했다는군요.
보물은 2차 대전 중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현재는 러시아에 있대요. ^^

순수하게 트로이 보물 찾기까지만 하면 좋았을 것을... ㅠㅠㅠ

yamoo 2010-08-16 09:41   좋아요 0 | URL
엡~ 마녀고양이님두 좋은 한주 되시길!

오호! 그렇군요~ 전 슐레이만이 보물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밤에 몰래 빼돌린 것은 전혀 몰랐네요..전, 순수하게 트로이 보물을 찾는 줄로만 알았거든요~~~이런~!

2010-08-16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7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은 광복절이군요!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라서 광복절의 의미가 남다릅니다~

아까 잠깐 KTV를 보니 단국대학교 한시준 교수가 나와서 특강을 하더군요. 우연히 중간부터 봤는데, 근대사에 알려지지 않은 사항을 알려줘서 주의 깊게 시청했습니다. 흘려 보내기 아까워서 시청 내용을 정리해 봤습니다.

1.

일본의 강압에 의해 조약에 싸인한 매국놈들에게 일본은 작위를 수여했다고 합니다. 총 72명에게 작위를 수여했는데, 작위를 부인한 사람은 오직 2명 이었고, 6명은 나중에 작위를 반납하여 68명만 작위를 받았습니다.

을사보호조약의 내용은 대부분 이들의 신변을 보호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대한제국 황실, 현직 대신, 전직 대신 등이었습니다.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 등 서열을 부여하여 작위를 부여하고, 귀족에 맞는 품위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은사금까지 지급했고, 68명은 모두 그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 작위는 대대손손 세습된다고 합니다.

이들의 자손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세습된 신분으로 해방 후 상당한 유지가 되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자세한 내막이 궁금해 집니다..

2.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테라우치 간에 한일합방 조약이 체결됩니다. 그런데 조약은 29일날 발표됩니다. 이 일주일 동안 일어난 일은 대한제국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나라인지 알 수 있게 합니다.

이 일주일간 대한제국이 한 일은 합방조약이 체결되도록 한 매국놈들에게 황실이 훈장을 수여한 것입니다. 순종은 합방의 주범인 이완용에게 국가 최고등급의 훈장을, 그리고 나머지 을사 5적에게는 그 바로 밑 훈장을 지급하고, 황후는 매국놈들의 부인들에게까지 훈장을 수여합니다~ 참고로 순종이 이완용에게 준 국가최고등급 훈장은 공신 중에서 임금이 아주 특별히 그 공을 기려 내리는 훈장이라고 합니다. 참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역 하늘에 세 발의 총성이 울립니다. 아시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는 그 자리에서 쓰러집니다. 러시아 군대 사이에서 총을 쏜 안의사는 그 즉시 러샤 군대(이 때 하얼빈은 러샤 점령 지역)에게 잡힙니다. 하얼빈 주재 러샤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던 안의사는 취조도중 한 소식을 접합니다. 러샤 전령이 지금 죽은 사람은 이토 이로부미이다..라고 하자, 안의사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침략의 원흉 이토를 죽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안의사는 항상 대한제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옥에 있을 때 조차 편지에 ‘대한국인’이라는 글자와 함께 손도장을 써서 사람들에게 돌렸다고 합니다. 지금도 자동차 뒤에 보면 안의사의 손도장 스티커를 심심찮게 봅니다만..

이러한 안의사를 범죄자로 만든 것이 바로 대한제국 황실이었습니다. 이토가 죽자 황실은 이토가 죽은 만주에 조문단을 파견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토의 시체가 본국에 도착하자 대신들을 일본에 조문객으로 파견까지 합니다. 아울러 순종은 이토에게 ‘문충정공’이라는 시로를 내립니다. 이 시호는 나라를 어려움에서 구하거나 나라를 건국할 정도의 공이 있는 신하에게 임금이 특별히 내리는 시호라는데, 이 시호를 이토에게 내린 것입니다.

순종이 이토에게 이러한 시호를 내린 것은 결과적으로 막중한 공신을 안의사가 죽인 꼴이 됩니다. 자랑스런 한국인으로서 침략의 원흉을 당연히 처단했는데, 대한제국을 책임지는 황제가 이러한 황당한 짓을 한 것입니다. 행태를 보면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4.

한일합방이 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몇몇 유생들이 자결을 합니다. 그 중 잘 알려진 사람 이 매천 황현입니다. 이 사람은 벼슬도 한 적도 없는 저~ 전라도 산골의 유생입니다. 그가 남긴 <매천야록>이 구한말의 시대상을 간결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헌데, 이 황현이 그의 아들에게 말했던 대목이 가슴을 칩니다. “내가 죽을 이유는 없다. 단 나라가 망할 때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나라가 500년 동안 선비를 길러냈는데, 책임질 선비가 없다는 것..이 어찌 통탄스럽지 않을 일이요” 하고 소주에 아편을 타서 절명합니다.

정치를 책임지고 있던 사람들은 나라가 망한 것에 대해서 하나도 책임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민영환과 한규설님은 자결했죠. 하나도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라가 망했을 때 훈장을 남발한 황실의 행태만 봐도 알 수 있죠.

대조적으로 일본은 1945년 패망했을 때, 자결한 일본인이 500명이었답니다.

5.

구한말 당시 대한제국의 멸망원인을 예의주시한 중국인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원인으로 ‘내부의 적’을 꼽았답니다. 아무리 작은 성이라도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이 죽기로 결사하면 성이 함락되기 어렵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1차 진주성 혈전에서도 보다시피 아무리 전력차이가 많이 나더라도 적의 침입을 막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성문을 열어주는 내부의 적이 있으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성이 망하죠. 당시 중국인들은 대한제국의 멸망을 후자의 시각으로 봤다고 합니다


6.

한시준 교수는 강의 말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를 망각한 나라에게 미래는 없다”고. 백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원인을 찾고 반성해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죠. 경술국치 100년을 맞이하여 이러한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오늘은 광복절이죠. 광복의 의미와 함께 대한제국이 했던 치욕의 행태를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픈 것은 지금의 정치인들이 그때의 구태와 별반 다르지가 않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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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5 0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5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8-1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픈 것은 지금의 정치인들이 그때의 구태와 별반 다르지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와,추천할 수 밖에 없는 걸요~^^
정치인들은 정치인들이라고 하고,제 자신도 한번 돌이켜보았습니다.
공휴일이 아니어서,광복절인지도 몰랐다는~ㅠ.ㅠ

yamoo 2010-08-15 20:19   좋아요 0 | URL
한국 근대사를 공부하다보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납니다. 민족주의가 한물갔다고 평가를 하지만 한국근대사를 보면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민족주이가 아닌가 합니다~ 아직도 민족주의는 우리역사에서 진행중인것 같다는~

역시 공휴일이 아니니, 많은 분들이 광복절인지 아닌지 몰루고 지나가는 듯 합니다. 일요일과 겹치면 그 다음날이라도 반드시 휴일로 지정해 놀아주는 것이 기념일을 기억하는데 금상첨화인 조치인것 같습니다!ㅎㅎ

마녀고양이 2010-08-15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망각한 나라에게 미래는 없다" 절대적 공감입니다.

저는 교육부터 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게,,
제일 처음 배워야 하는게 국어, 역사, 사회, 철학(그리고 종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먼저 키우고, 그 이후 실용 분야인 영어, 수학, 과학 등을 배우는게 맞는 순서 아닐까요? 우리는......... 공교육 끝까지
우리의 역사, 세계 역사, 철학이나 종교, 인간다움은 제대로 배우지 못 하지 않나 하는. ㅠ

yamoo 2010-08-15 20:22   좋아요 0 | URL
인문학의 기초교육을 시키는 것이 바른 전인교육이겠지요^^ 헌데, 이넘의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영어와 수학만 강화하고 사회와 역사과목은 축소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더군다나 인기없다고 대학에서는 사학과와 철학과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니...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마녀고양이님을 교육부로 보내야 것네요~~ㅎㅎ

2010-08-15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5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까지 봐왔던 만화책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고 감명 깊게 본 작품들입니다. 웬만한 문학 작품보다 더 재밌고 감동적인 것 같습니다~ 주관적인 것이지만 저랑 취향이 같으신 분들이 보면 좋을 거 같아요^^


그 제1. 기생수

매우 충격적인 글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그것만큼이나 독특하고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굳이 분류한다면 이토 준치의 공포만화 계열로 분류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분류하기에는 이 작품의 무거움이 상당히 걸립니다.
예~ 바로 기생수는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라는 철학적 주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작품이 발표되고 나서 일본에서는 철학적 논쟁이 가열됐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만화가 이와와키 히토치는 그해의 만화상을 수상했다고 하더군요.
머리를 점령하지 못한 외계생물 ‘오른쪽이’를 통해 보는 인간의 모습 그 자체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무색케 할 정도로 형편없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도그럴것이 오직 인간만이 생태계를 황폐화시킨 유일한 존재이니까요. 충격적인 첫 장에 쓰인 글을 보아도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인간 존재의 모습을 인간보다 더 뛰어난 생물체에 의탁하여 비판하고, 그 문제의식을 드러낸 수작입니다. 특히 '오른쪽이'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야하는 주인공의 고뇌의식과 오른쪽이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새롭게 보아 가는 오른쪽이의 의식이 이 작품을 더욱더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더불어 큰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기생수를 꼭 보시길... 애장판도 나왔습니다~


그 제2. 섬데이

하라 히데노리를 아십니까? 모르시면 대여점에 달려가 하라 히데노리라는 작가의 어떤 작품이라도 보시길...모두모두 다~ 감동을 주는 재미가 있습니다. 히데노리 작품은 우리나라에 히데노리 선집으로 대원에서 출간되고 있습니다. 절판된 겨울이야기를 비롯해서 청공에 이르기까지...
히데노리 작품의 주요 테마는 남녀의 사랑의 감정을 아주 섬세하게 그녀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감정의 묘사가 사랑을 해본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잡아내는 작가의 역량에 있습니다.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하게되고 작품을 읽을수록 스스로 빠져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섬데이는 취업을 앞둔 대학4학년생의 꿈과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꿈과 사랑을 모두 쟁취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생에서 직업과 취업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갠적으론 히데노리 작품에서 잴루 잼나게 본 작품이라 할 수 있네요^^
히데노리 작품은 이 외에도 내 집으로 와요(연인), 그래하자, 프리킥, 언제나 꿈을 등이 있습니다. 요즘 스토리작가와 작업을 함께해서인지 요즘 나오는 히데노리의 신간 작품들은 예전 작품들보다 못하네요~ 
 


그 제3. 무한의 주인

정말 대단한 작품 입니다. 베르세르크와 함께 읽으면서 작가의 역량에 놀란 작품입니다.
그림이 정말 예술입니다. 정말 예술 작품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일러스트 집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시나리오도 죽입니다. 암울하지만 무게 있는 정말 멋진 작품입니다. 저는 이 만화를 보고 절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만...


그 제4. 용오 shinji Makar&syu akana공저

니고시에이터(교섭자)의 활약상을 그린 액션 활극물(?)입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과 매우 흡사하면서도 색다른 재미를 주는 작품입니다. 키튼이 고고학적 전문지식이 강점이라면, <용오>는 해박한 국제정세 지식이 한 몫 한다고 할까요. 예컨대, 97년 한창 논란이 됐던 파키스탄 종교내란, 구소련 해체 후 빈곤에 허덕이는 러시아, 홍콩반환 시점에 맞춘 홍콩의 어두운 세력 등등‘

여튼, 구성의 탄탄함과 그 나라 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실제 작가는 그 나라를 직접 방문하고 작품구상을 했다는 군요. 직접 체험에 의한 사실의 전달) 작품의 재미를 배가 시키고 있습니다. 꼭 007를 보는 것 같다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몇 년 째 출간되지 않고 있어 독자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제5. 해피

떠오르는 혜성, 우라사와 나오키의 초기 작품 중 하나입니다. 비록 <몬스터>나 <마스터 키튼> 보다는 지명도가 떨어지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의 진가가 가장 잘 발휘된 작품이라 생각되어 이 작품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만화 매니아이신 분들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들이 모두 뛰어나다는 걸 잘 아실 텐데요, 이 작품은 특히, 한번 잡으면 끝까지 놓을 수 없는 대단한 흡입력이 장점입니다. 그런데, 그 흡입력이 우라사와 나오키의 가장 큰 장점인 인물묘사 에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제가 볼 때 해피만큼 인물의 표정이 생동감 있게 표출된 작품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특히 미유키와 쵸코의 갈등관계에서 미유키가 정말 ‘답답하고 바보같다’는 생각을 줄기차게 했었는데, 바로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역량...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제6. 최종병기 그녀

무한의 주인과 함께 그림이 죽여주는 만화 중에 하나입니다. 이 만화를 처음 접했을 때 그림이 너무도 좋아 읽기 시작한 것이 그만 끝까지 읽게 된, 그런 작품 입니다. 헌데, 내용도 매우 뛰어나더군요. 약간 감상적이지만, 처절함이 베어있다고나 할까요. 최종병기인 그녀...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아끼는 남자친구 슈우. 그 둘 사이의 애절한 관계가 가슴 아프게 그려진 멋진 비극 만화입니다~ 이런 작품 드문데 말이죠^^ 
  

 

 

 


그 제7. 베르세르크

말이 필요 없는 명작입니다. 작가 미우라 켄타로를 불세출의 스타로 만들어준 엄청난 데뷔작입니다. 인과율에 의해 선택 받은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 모든 것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간의 첨예한 갈등을 뛰어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상과 현실의 괴리,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철학적 대립구도 등을 장대한 스토리라인에 훌륭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대단한 것은 작가 자신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미우라는 역사의 암흑기인 중세와 비슷한 판타지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성인도 기꺼이 속아 줄 수 있는 가상공간 속에, 작가는 ‘절대 선’과 ‘절대 악’을 지양하고 그 중간 영역으로서 God Hand라는 존재를 설정했습니다.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중간계를 지배하는 공간. 굳이 분류하자면 환타지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기존의 환타지물과는 격을 달리합니다. 한 번 손에 잡으면 헤어나올 수 없는 세계~ 꼭 한 번 빠져보시길!


그 제8. 곤

아~ 이만화는 정말 예술작품에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 없이 그림으로만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태고의 공룡 새끼인 곤. 단연 그는 밀림의 동물 중에서 공포의 대상이 될 만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동물의 왕인 사자나 호랑이도 곤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가 됩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곤이지만 천진한 면도 많아 약한 초식동물들을 도우면서 그들과 사이좋게 지냅니다.

이 작품은 최강의 힘을 가진 곤을 통해 여러 비정한 동물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비정한 세계와 절묘한 대응을 이루고 있습니다. 곤이 나타나기 전까지 초식동물을 위협하여 그들의 힘을 자랑하는 육식동물들. 하지만 곤의 힘 앞에 한 없이 비굴해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들의 추악한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작품의 최대의 장점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계속 여행을 하고 있는 곤의 여로를 통해 인간사의 비정함을 함께 경험하시길..


그 제9. 드레곤 헤드

공포가 무엇인지 시종일관 어두움으로 일관하는 공포 만화의 걸작입니다. 저는 이 만화를 정품이 나오기 전에 봤습니다. 한국에서 어느 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기차가 전복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그 당시 책의 제본 상태라든가 인쇄상태가 매우 안 좋았지만 내용이 하도 독특하여 끝까지 보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얼굴의 공포스런 표정과 식은땀 그리고 어디서부터 오는지 모르는, 모든 것을 압도하는 어두움은 진정한 공포의 본질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이토 준치의 작품들이 공포만화의 대표로 자리매김 되고 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 <드레곤 헤드>의 무거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드레곤 헤드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네요)


그 제10. 생존게임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습니다. 이 만화를 손에 잡으면 그 어떤 활동도 유보해야 할 정도로 흡입력이 뛰어난 작품입니다. 20권이 넘는 방대한 작품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단, 그림체는 별로 더군요 ㅎ)

큰 해일로 일본열도의 거의 전체가 물에 잠긴 어느 날, 홀로 어느 섬에 남겨진 소년이 문명생활에서 원시생활로 이행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을 매우 밀도 있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문명의 혜택을 입고 살아가는 문명인이 문명의 도움 없이 홀로 남겨졌을 때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이 만화를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존의 절박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발휘되는 태고의 원시적 본능이 문명의 이기가 없을 때 얼마나 위력을 발휘하는지 배울 수 있는 매우 유익하고도 의미 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인간과 문명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수작 입니다. 꼭 보시길 강추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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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0-08-1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존게임은 어렸을때 빌려 읽은 적이 있는데(다 읽은 건 아니구요 몇권만) 상당히 뭐랄까 그때는 상당히 충격적이였다고 해야되나...--;; 악몽도 꾸고. 그 이후로는 안본 기억이 있네요. 그림체는... 그 당시에도 흡사 7,80년대쯤에 보이던 그림체랑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고 생각한 것 같네요.ㅎㅎ;

yamoo 2010-08-15 00:43   좋아요 0 | URL
그림체는 별루지만 정말 대단한 흡입력이 있던 작품이었습니다. 첨에 읽을 때는 그림체가 진짜 별루여서 거슬렸는데, 1권을 읽고 나니 20권까지 그냥 직행이더군요..ㅋㅋ 이틀만에 다 본 기억이 있습니다~ㅎㅎ 전 대학 때 읽어서 충격은 덜했고 그냥 무자게 재밌게 읽었더랬습니다..^^

2010-08-15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5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8-15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님의 코믹스 선호 타입도 조금은 매니아 급이군요.. ^^
<최종 병기 그녀>는 한때 엄청난 인기였죠.. 내용상 19금이었지만.
저희 동생과 취향이 비슷한데가 있으세요, 곤 같은 경우도 동생이 들이밀어 읽은 기억이. 훗

yamoo 2010-08-15 20:27   좋아요 0 | URL
예...전 만화광이기도 해요^^ <최종병기 그녀>는 애니로도 만들어져서 엄청난 히트를 쳤었죠~ <곤>은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 생각해요~ 그림으로만 내용을 전개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읽어보면 엄청 흡입력 있잖아요~ 아, 근데 동생분도 만화광이신가염~?

마녀고양이 2010-08-16 09:09   좋아요 0 | URL
만화광이라기 보다는 독특한 취향? ㅋㅋ
저는 20세기 소년과 파이브스타스토리를 좋아해요. 그 작품들도 좋아하실듯 한대여?

yamoo 2010-08-16 20:16   좋아요 0 | URL
완전 좋아했었죠..ㅎㅎ 20세기소년보다는 파이스스타스토리에 열광했었다는..ㅎㅎ 리키시스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우라사와 나오키는 뭐니뭐니해도 몬스터지요!

2010-08-15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6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0-08-16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수는 생각할 꺼리가 많았던 걸로 기억하고, 곤은 처절하게 웃겼던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최종병기그녀는 그림체가 이뻐서 맘에 들었죠^^
스토리가 우중충하면 그림이라도 이뻐야된다~그림이 안이쁘면 웃기기라고 해야된다~이런식으로 만화를 골랐었는데요^^요새는 만화에 접근하기가 쉽지않은 상황이 되서 참 아쉽네요~

yamoo 2010-08-16 20:20   좋아요 0 | URL
만화 고르는 취향이 정말 지대로 이시네요~!ㅎㅎ 음...하라히데노리 작품을 안보셨다면 꼭 봐보시길~! 완전 강추~ 아, 또 하나 걸작이 있습니다..<카잔>이라고..이거 정말 죽입니다...그림도 괜찮은데, 내용이 장난아니에요..만화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으시면...시간을 두고 천천히 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