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대학교의 물리학 교수였던 소칼은 재미있는 착상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평소에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을 ‘철학자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를 남발하는 공허한 말장난’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입증하기 위하여 아무 의미도 없는 가짜 논문을 만들어서 유명한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학술지에 제출하기로 한 것이다.

소칼의 시도는 평소 자신의 생각을 대범하게 실행한 것이다. 평소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계에 가진 생각이 옳다면, 자신의 엉터리 논문이 학술지에 채택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소칼은 〈경계를 넘어서: 양자 중력의 변형적 해석학을 위하여(Transgressing the Boundaries: Toward a Transformative Hermeneutics of Quantum Gravity)〉라는 가짜 논문을 ‘Social Text’에 제출했다.

소칼의 말에 따르면, 포스트 모더니즘 학술지가 ‘그럴듯하게 들리고 편집자의 이데올로기적 선입견에 비위를 맞춰주기만 하면 넌센스로 범벅이 된 논문을 출판해 주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다고 한다.

결국 이 논문은 1996년 ‘Social Text’의 봄/여름호에 출판되었다. 자신의 논문이 Social Text에 실린 날, 소칼은 ‘Lingua Franca’라는 학술지에서 Social Text에 실린 논문은 엉터리 논문이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서 Social Text를 출판하던 듀크 대학교는 큰 홍역을 치렀다. 소칼은 자신의 엉터리 논문에 대해 ‘좌파들의 전문 용어, 비위를 맞춰주는 참고 문헌, 장황한 인용, 명백한 넌센스들을 자신이 찾을 수 있는 한 가장 멍청한 수학과 과학에 대한 인용문을 중심으로 섞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솔직히 대학에서 문학이나 철학을 강의하는 분들이나 현대철학을 공부하는 분들을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알쏭달쏭한 개념들을 쏟아낸다. 알 수 없는 개념들이기에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된다. 쓰는 사람은 논의에 맞게 쓸 수 있어 의사 전달에 편할지 모르지만 듣는 사람은 어지럽다.

상황이 이쯤 되면 말하는 이가 뭔가 있어 보이게(?) 된다. 왜냐하면 알 수 없는 개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또한 그럴듯하게 사용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적확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그냥 고개만 끄덕거릴 수밖에 없다.

나도 소칼과 같은 시도를 꽤 많이 해 봤는데(개념을 정확히 잘 모르면서 아는 척 말하는 거) 철학에 문외한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자신의 공부가 부족함만을 탓했다.

더 심한 상황은 토론 자리에서 벌어진다. 어떤 논의에서 자신의 생각을 뭐라고 하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무장한 사람이 철학적 개념들을 들이대며 아니라고 한다. 이후의 상황은 간단히 정리 된다. 아무 반박도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나 보라고 시인하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연출된다. (솔직히 이런 자리를 꽤 많이 목격했다)

중요한 건 그들이 개념을 몰라서 그렇지만 더 심각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대변되는 현대 프랑스 철학의 개념들이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그렇다.

자신도 정확히 알 지 못하는(그런데 안다고 생각하고 쓰는) 모호한 개념들은 그 개념의 나열만으로도 충분히 현학적인 문장이 되어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다음 개념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철학적 단어들을 마구 잡이로 늘어놓은 것이다.

[칸트, 윤리, 상징계, 담론, 의식, 메타, 환원, 사고, 이율배반]


이따위 무의미한 단어들은 다음과 같이 조합될 수 있다. “칸트적 이율배반을 상징계적 윤리의식으로 환원하는 메타 담론 - ” 그럴듯한 철학적 문장이 완성되었다. 아무 뜻도 없이 개념만 나열한 문장이 어느새 고상하고도 철학적인 문장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들은 어떤 상황이든지 논의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 특히 ‘칸트적’, ‘들뢰즈적’, ‘라캉적’ 이라고 하는 철학자 이름 뒤에 붙인 관형적 어미 ‘적’은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마법을 부린다. 누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이런 개념에 익숙한 사람들은 안다는 전제하에 이 후의 논의를 진전시킨다. 정말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소칼이 지적했듯이 작금에 판을 치는 포스트모던 철학은 현란한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면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소칼은 그것을 대담하게 실험을 통해 증명한 것 뿐! 프랑스 철학 등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 대한 내 생각을 소칼이 그대로 증명했다는 데에 속이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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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16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철학만 그런 것은 아닌거 같아요.
저는 작년까지 IT 테스트 프로세스 컨설팅을 했는데,
이런 분야도 엄청난 언어 유희를 즐기거든요... ^^
에러, 오류, 버그, 결함, 인시던트, 이슈 모두 뜻이 달라요.

진짜 웃긴건,, 석박사 마치고 바로 컨설팅한다고 온 사람들은
저런 단어 하나 잘못 쓰면 엄청 면박을 준답니다. 그런데
실무에 테스팅 프로세스를 적용하기 위해 하는 행위는 영....
현실과 동떨어져서 헛집고 개발자들 고생시킨다는거죠. ^^

yamoo 2010-08-16 19:49   좋아요 0 | URL
아이티 분야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군요^^ 근데, 에러, 오류, 버그, 결함, 인시던트, 이슈...이런 단어들로도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수가 있나욤? 아, 그나저나 석박사 마치고 바로 컨설팅할 때에는 단어 하나하나를 엄청 따지면서 실무 테스팅할 때는 마구잡이로 쓰나요? 아, 아이티 분야는 하나도 몰라서뤼~ 쩝..

마녀고양이 2010-08-16 19:58   좋아요 0 | URL
아니여.. 경험은 없는데다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해서
큰 숲을 못 봐여..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진 프로세스를 만들어내서
사용하라고 강요를 하죠. ^^

yamoo 2010-08-16 20:05   좋아요 0 | URL
아항~~위의 상황과 반대되는 상황이군요..ㅎㅎ 그러고보니 분석철학자들을 비판했던 철학자들의 논리가 생각나네요^^

양철나무꾼 2010-08-16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 분야 관련 저런 걸 매번 경험하고 살죠~

근데 하나로 귀결되는 건,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겁니다.
고개 뻣뻣한 벼가 있다면 그건 볼것도 없이 채 다 안 익은거죠.

yamoo 2010-08-16 19:54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의 분야관련 에피소드를 듣고 싶은데요~^^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면 될걸, 그냥 두루뭉술하게 들뢰즈적이라고 합니다..들뢰즈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두루 통용될 듯 싶은데요, 그 외의 사람들에게 들뢰즈적이라고 하는 것은 들뢰즈의 어떤 개념이 그 상황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정확히 풀어서 설명해줘야지, 마구잡이로 들뢰즈적이라고 하면 들뢰즈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은 혼란스럽잖아요~ 좀 친절해 졌으면 하는 바람에서..그럼 말장난이다 뭐다 불만이 없어질텐데 말이죠..쩝~

양철나무꾼 2010-08-17 10:52   좋아요 0 | URL
제 분야 관련 에피소드 얘기하면 이해하기 힘드실텐데...

그 중 이해할 수 있을 만한거 하나만 얘기해 보자면,
한창 조류독감이 유행하던 시기 였죠.
걍 '조류독감(avian influenza)'이라고 얘기하면 될 걸,
애볼라 인플루엔자가 어쩌고 저쩌고 말야~
(ebola는 virus랑 연결되는 전혀 다른 것임.)

yamoo 2010-08-17 23:36   좋아요 0 | URL
하하, 제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전문적인 분야이군요! 엇, 근데 나무꾼님 이공계열 이셨나부당~~ 문학을 싸랑하셔서 인문 전공하셨는 줄 알았는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