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광복절이군요!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라서 광복절의 의미가 남다릅니다~

아까 잠깐 KTV를 보니 단국대학교 한시준 교수가 나와서 특강을 하더군요. 우연히 중간부터 봤는데, 근대사에 알려지지 않은 사항을 알려줘서 주의 깊게 시청했습니다. 흘려 보내기 아까워서 시청 내용을 정리해 봤습니다.

1.

일본의 강압에 의해 조약에 싸인한 매국놈들에게 일본은 작위를 수여했다고 합니다. 총 72명에게 작위를 수여했는데, 작위를 부인한 사람은 오직 2명 이었고, 6명은 나중에 작위를 반납하여 68명만 작위를 받았습니다.

을사보호조약의 내용은 대부분 이들의 신변을 보호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대한제국 황실, 현직 대신, 전직 대신 등이었습니다.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 등 서열을 부여하여 작위를 부여하고, 귀족에 맞는 품위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은사금까지 지급했고, 68명은 모두 그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 작위는 대대손손 세습된다고 합니다.

이들의 자손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세습된 신분으로 해방 후 상당한 유지가 되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자세한 내막이 궁금해 집니다..

2.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테라우치 간에 한일합방 조약이 체결됩니다. 그런데 조약은 29일날 발표됩니다. 이 일주일 동안 일어난 일은 대한제국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나라인지 알 수 있게 합니다.

이 일주일간 대한제국이 한 일은 합방조약이 체결되도록 한 매국놈들에게 황실이 훈장을 수여한 것입니다. 순종은 합방의 주범인 이완용에게 국가 최고등급의 훈장을, 그리고 나머지 을사 5적에게는 그 바로 밑 훈장을 지급하고, 황후는 매국놈들의 부인들에게까지 훈장을 수여합니다~ 참고로 순종이 이완용에게 준 국가최고등급 훈장은 공신 중에서 임금이 아주 특별히 그 공을 기려 내리는 훈장이라고 합니다. 참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역 하늘에 세 발의 총성이 울립니다. 아시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는 그 자리에서 쓰러집니다. 러시아 군대 사이에서 총을 쏜 안의사는 그 즉시 러샤 군대(이 때 하얼빈은 러샤 점령 지역)에게 잡힙니다. 하얼빈 주재 러샤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던 안의사는 취조도중 한 소식을 접합니다. 러샤 전령이 지금 죽은 사람은 이토 이로부미이다..라고 하자, 안의사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침략의 원흉 이토를 죽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안의사는 항상 대한제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옥에 있을 때 조차 편지에 ‘대한국인’이라는 글자와 함께 손도장을 써서 사람들에게 돌렸다고 합니다. 지금도 자동차 뒤에 보면 안의사의 손도장 스티커를 심심찮게 봅니다만..

이러한 안의사를 범죄자로 만든 것이 바로 대한제국 황실이었습니다. 이토가 죽자 황실은 이토가 죽은 만주에 조문단을 파견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토의 시체가 본국에 도착하자 대신들을 일본에 조문객으로 파견까지 합니다. 아울러 순종은 이토에게 ‘문충정공’이라는 시로를 내립니다. 이 시호는 나라를 어려움에서 구하거나 나라를 건국할 정도의 공이 있는 신하에게 임금이 특별히 내리는 시호라는데, 이 시호를 이토에게 내린 것입니다.

순종이 이토에게 이러한 시호를 내린 것은 결과적으로 막중한 공신을 안의사가 죽인 꼴이 됩니다. 자랑스런 한국인으로서 침략의 원흉을 당연히 처단했는데, 대한제국을 책임지는 황제가 이러한 황당한 짓을 한 것입니다. 행태를 보면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4.

한일합방이 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몇몇 유생들이 자결을 합니다. 그 중 잘 알려진 사람 이 매천 황현입니다. 이 사람은 벼슬도 한 적도 없는 저~ 전라도 산골의 유생입니다. 그가 남긴 <매천야록>이 구한말의 시대상을 간결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헌데, 이 황현이 그의 아들에게 말했던 대목이 가슴을 칩니다. “내가 죽을 이유는 없다. 단 나라가 망할 때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나라가 500년 동안 선비를 길러냈는데, 책임질 선비가 없다는 것..이 어찌 통탄스럽지 않을 일이요” 하고 소주에 아편을 타서 절명합니다.

정치를 책임지고 있던 사람들은 나라가 망한 것에 대해서 하나도 책임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민영환과 한규설님은 자결했죠. 하나도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라가 망했을 때 훈장을 남발한 황실의 행태만 봐도 알 수 있죠.

대조적으로 일본은 1945년 패망했을 때, 자결한 일본인이 500명이었답니다.

5.

구한말 당시 대한제국의 멸망원인을 예의주시한 중국인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원인으로 ‘내부의 적’을 꼽았답니다. 아무리 작은 성이라도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이 죽기로 결사하면 성이 함락되기 어렵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1차 진주성 혈전에서도 보다시피 아무리 전력차이가 많이 나더라도 적의 침입을 막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성문을 열어주는 내부의 적이 있으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성이 망하죠. 당시 중국인들은 대한제국의 멸망을 후자의 시각으로 봤다고 합니다


6.

한시준 교수는 강의 말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를 망각한 나라에게 미래는 없다”고. 백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원인을 찾고 반성해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죠. 경술국치 100년을 맞이하여 이러한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오늘은 광복절이죠. 광복의 의미와 함께 대한제국이 했던 치욕의 행태를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픈 것은 지금의 정치인들이 그때의 구태와 별반 다르지가 않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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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5 0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5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8-1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픈 것은 지금의 정치인들이 그때의 구태와 별반 다르지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와,추천할 수 밖에 없는 걸요~^^
정치인들은 정치인들이라고 하고,제 자신도 한번 돌이켜보았습니다.
공휴일이 아니어서,광복절인지도 몰랐다는~ㅠ.ㅠ

yamoo 2010-08-15 20:19   좋아요 0 | URL
한국 근대사를 공부하다보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납니다. 민족주의가 한물갔다고 평가를 하지만 한국근대사를 보면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민족주이가 아닌가 합니다~ 아직도 민족주의는 우리역사에서 진행중인것 같다는~

역시 공휴일이 아니니, 많은 분들이 광복절인지 아닌지 몰루고 지나가는 듯 합니다. 일요일과 겹치면 그 다음날이라도 반드시 휴일로 지정해 놀아주는 것이 기념일을 기억하는데 금상첨화인 조치인것 같습니다!ㅎㅎ

마녀고양이 2010-08-15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망각한 나라에게 미래는 없다" 절대적 공감입니다.

저는 교육부터 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게,,
제일 처음 배워야 하는게 국어, 역사, 사회, 철학(그리고 종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먼저 키우고, 그 이후 실용 분야인 영어, 수학, 과학 등을 배우는게 맞는 순서 아닐까요? 우리는......... 공교육 끝까지
우리의 역사, 세계 역사, 철학이나 종교, 인간다움은 제대로 배우지 못 하지 않나 하는. ㅠ

yamoo 2010-08-15 20:22   좋아요 0 | URL
인문학의 기초교육을 시키는 것이 바른 전인교육이겠지요^^ 헌데, 이넘의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영어와 수학만 강화하고 사회와 역사과목은 축소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더군다나 인기없다고 대학에서는 사학과와 철학과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니...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마녀고양이님을 교육부로 보내야 것네요~~ㅎㅎ

2010-08-15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5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