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에른스트 카시러의 주저들을 읽어보려고 두 권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습니다. <국가의 신화>와 <문화과학의 논리> 두 책입니다.

헌데, 이러저러한 일들 때문에 자꾸 읽어야 할 리스트에서 멀어져만 갑니다.

할 수 없이 짧은 시간에 카시러 사상의 일면을 훑고자 책세상 문고판을 펴들게 되었습니다.

바로 <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 외>(책세상, 2002) 였죠~

카시러의 문화철학을 접할 수 있고, 게다가 ‘문화철학의 자연주의적 논거와 인본주의적 논거’가 아울러 수록돼 있어 잽싸게 선택했는지도 모릅니다.

스노우의 <두 문화>에 대한 논의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볼 겸 해서요~

아, 근데 첫 페이지부터 좀 이상했습니다. 도무지 읽어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 페이지도, 또 그 다음 페이지도! 이건 번역본을 읽은 고전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번역서 중 한 권일 겁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 범우사> 였습니다.)

이건, 영어 좀 하는 고등학생이 사전을 옆에 갖다가 놓고 해석을 한, 딱 그 정도의 수준입니다.

너무 심한 비유인가요? 그럼, 이해가 도저히 안 돼서 5번 이상 읽었던 10여 장만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쓰레기같은 번역인지 같이 확인해 보자구요. (맞습니다. 이 번역은 쓰레기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낌새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내가 이 강연에서 역사적이거나 특별히 문화학적이지 않고, 바르부르크 도서관이 체계적이고 철학적인 유형으로 부여한 과제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는 주제를 감히 다루려 한다면, 이런 시도에는 논증과 정당화가 필요할 것이다.” p15

이게 도대체 한국어 문장이란 말입니까? 고등학교 학생의 작문도 이보단 낫겠습니다. 보건데 함부르크의 이 문화학 도서관이 카시러가 보기에 너무도 대단해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이고 문화학적인 자신의 강연이 이 도서관(역사와 문화학 서재가 빼곡히 들어찬)에 비추어 하잘 것 없는 수준이다.’ 뭐, 대충 이런 뉘앙스 같은데, 저따위로 번역해 놓으니 내용 파악이 전혀 안 됩니다.

이 단락의 마지막 문장도 가관입니다. “이곳에서는 예술사, 종교사, 신화사, 언어사, 문화사가 공공연히 나란히 꽂혀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겹쳐 공통의 이념적 중심점과 관련되어 꽂혀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어색한 문장입니다. 그리고 계속 ‘~것이다’를 남발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짜증을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다음 페이지는 더 가관입니다.
“있음[존재Sein]의 되어감[생성Werden]에 대한 관계는 진정한 상관관계로서, 반대의 경우도 그러하다. (한 문장 건너서) 정신의 삶이, 그것이 전개되는 단순한 시간의 형식 속으로 용해되지 않으려면, 그 시간 속에서 해체되지 않으려면, 일어남의 동적인 배경 아래 형태를 가지고 지속하는 다른 것, 곧 머무는 것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p16

맥락상 어떤 의미로 번역했는지 어렴풋이 알겠습니다만, 이해하기 힘든 문장입니다. 이걸 읽고 이해가 되는 한국인이 있다면 그는 앞 뒤 맥락의 내용과 글 전체의 내용을 아는 번역자이거나 카시러 전문가이겠지요. 하지만 문장 상으론 완전히 비문입니다. 어려운 이유가  해독하기 어려운 문장 때문입니다. 그냥 원서에 있는 개념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페이지의 마지막 세 문장입니다.
“그 경향이란 실증주의, 그러니까 정리와 제한, 사실에 대한 단순한 자료를 넘어서는 것이다. 현대 언어학자 가운데 다음과 같은 주장을 대단히 정력적으로 따른 사람은 카를 포슬러이다. 결정적으로 실증주의에서 관념주의로 진보해야만 언어사적 사실이 본질적으로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pp16~17

실증주의 경향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거니와(앞 문장에서 단순히 “오늘날 철학보다는 오히려 개별과학 자체에서 다시 어떤 경향이 매우 강하게 일고 있다”고만 언급) 이 실증주의 경향이 그냥 정리, 제한 그리고 사실에 대한 단순한 자료를 넘어서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카를 포슬러가 따르는 주장이 또 그것이라는 군요. 집중해서 반복해 읽어보면 ‘단순한 자료를 정리하는 수준인 실증주의를 넘어 관념주의로 나아가야만 언어사적 사실이 본질적으로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다’는 내용 같은데(잘 해독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내용을 저렇게 번역해 놓으니 독자는 도대체 뭔 소린지 모르게 됩니다. 역자가 한국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어 시간에 저따위로 작문한다면 선생님한테 심한 꾸중을 듣고도 남습니다.

계속 볼까요. 건너 뛴 문장도 읽기가 힘들 정도로 어색하지만 아래 인용한 문장보단 낫습니다.

“그는 살아오면서 모든 자신의 영향과 성과를 단지 상징적으로만 보았고, 당시 생각하기에 가장 원천적이고 깊이 있는 그리고 ‘가장 진실한’ 사고, 변형의 이념도, 첼터에게 보낸 변지가 말해주듯, 이제는 오로지 상징적으로만 이해하려고 말이다.” p20

문장을 분해해서 몇 문장으로 나눌지도 엄두가 안 나는 문장입니다. 그냥 원서에 있는 독일어를 한국어로 변환시키는 번역기와 하등 다를 게 없는 문장입니다.

또 두 페이지 정도는 그런 대로 읽을 만하게 전게 되다가 4페이지를 넘지 못하고 다시 번역기 돌린 듯한 문장이 나옵니다. “그런 매개가, 그것이 소리 기호에 의해서든 신화와 예술의 형상 형성을 통해서든 아니면 순수 인식의 지적인 기호와 상징에 의해서든, 정신적인 것 자체의 본질에 필연적으로 속한다는 것은, 정신적인 것의 본질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일반적 형식을 숙고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p22

역시 무슨 소린지 모르는 비문입니다. 원서의 내용을 모르니 정확한 번역은 안 되겠습니다만, 주어진 문장을 최대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고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소리 기호에 의해서든 신화와 예술의 형상형성(카시러가 사용하는 개념같습니다)을 통해서든 아니면 순수 인식의 지적인 기호와 상징에 의해서든, 그와 같은 매개가 정신적인 것 자체의 본질에 필연적으로 속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일반적 형식인 정신의 본질적 숙고를 통해 금방 알 수 있다.” 뭔 소린지 도저히 몰라서 최대한 번역자가 번역한 틀 내에서 바꾸어 봤습니다. 정확히 이런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번역자는 독자가 읽어 나가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역이든 뭐든 말입니다~

이후로도 계속 유리를 밟는 듯한 문장은 계속 됩니다.

“의성어적 언어기원론은, 이미 스토아학파에서 체계적으로 완성되었고, 18세기에 비코를 통해 알게 된 독창적이고 특이한 형성 과정 속에서 근대와 현대 언어이론의 초기까지 관철되었다.” p26

“다른 한편 언어의 역사를 보면, 언어의 고유한 원칙은 소리를 묘사하는 데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은 반면, 언어 형성에 함께 작용하는 요소로서는 어디서나 효과적이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래서 경험적 언어 연구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소리모사 원칙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된 명예 회복이 계속해서 시도되어 왔다.” 상동

“아무도 소리와 의미를 원래의 자연적인 관계로 수용하는 것을 동정적인 멸시의 미소로 내려다볼 권리가 없으며, 이 문제를 잘못 해결한 사람이 한 번도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 하지 않은 사람보다 백 번 낫다는 지적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상동

“에벤 언어에는 받아들인 인상을 소리로 재현하기 위한 수단이 매우 많다. 들은 것, 본 것, 어떻게든 지각된 것을 모두 흉내 내고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소리로 표시하는, 거의 강요되지 않은 유희에서 생겨난 수단의 풍요로움이다. p27 

계속 읽는 다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거의 이런 식의 문장이 끝까지 계속 될 것 같아 읽기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래두 32페이지까지 봄) 제가 너저분하게 본문을 계속 인용한 것은 모두 문장 자체가 잘못된 문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냥 원어에 대응하는 한국어만 있어, 대충 조합하여 그럴듯해 보이면 번역이라고 출간하는 작태가 한심스럽기 때문에 주구장창 인용해 본 것입니다.

만약 인용한 문장이 뭐가 이상하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한국어 공부를 다시 해야 합니다. 이건 원천 봉쇄의 오류가 아닙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왜 잘못됐는지 지적할 수 있는, 일명 썩은 문장의 대표적인 예들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고전 번역서들이 윗 문장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문예출판사본인 막스 베서의<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같은 출판사본인 샤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역시 위에 언급되어 있는 문장들과 대동소이 합니다. 모두 저열하고 조잡한 문장들로 명저를 훼손시키고 있습니다.

좋은 번역은 번역자의 명성에 있지 않습니다. 대단한 학벌과 업적 그리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좋은 번역을 담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출간된 대부분의 고전 번역들은 모두 그 분야의 권위자들이었지만 출간되어 나온 책들을 보면 매우 조악한 번역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언하건데, 고전은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번역이 이상해서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카시러의 문화철학을 접해보려고 책을 펴들었지만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30여 페이지를 수도 없이 읽어 봤지만, 결론은 읽을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요.

카시러 전문가처럼 선전해 놓은 역자, 오향미는 제가 볼 때에 에른스트 카시러의 철학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번역했다고 보여집니다.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어찌 번역기를 돌린 것과 같은 문장들을 내뱉느냔 말입니다. 역자는 무책임한 번역으로 카시러 철학에 먹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솔직히 이 책은 교정 과정에서 다시 회수되었어야 마땅합니다. 이러한 번역본이 돌아다닌 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만큼 한국 번역서들의 질이 안 좋다는 반증이겠지요.

읽느라 열 받았고, 이 글을 꾸역꾸역 쓰느라 힘들었습니다.


[덧붙임]

저도 역시 글을 못 쓰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죠. 제 글 역시 썩은 문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도 많이 있겠죠. 하지만 번역하시는 분들 정도라면 이 잣대는 높아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임감 있는 번역이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도 주제넘게 번역에 대해서 울분을 토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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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1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번역 문장을 보면서 절대적으로 공감을 표합니다~
특히 전문 서적들.. 번역 가관입니다. ^^

yamoo 2010-08-17 09:56   좋아요 0 | URL
거의 읽기 힘든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번역서들이 그러니, 해당 외국어 좀 하는 사람에게는 원서를 보는 것이 이롭죠~ 헌데, 모든 외국어를 잘 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울며 겨자 먹기로 번역서를 볼 수밖에 없죠. 그래도 왠만하면 군소리 안하고 읽는데...도저히 페이지를 넘길 수 없는 번역서들이 수두룩하더군요~ 번역서들은 넘쳐나는데, 정작 읽을만한 책이 없다는..ㅜㅜ

양철나무꾼 2010-08-17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서를 보다가 뚜껑 열리는 경우가 어디 한두번이어야 말이죠~ㅠ.ㅠ
저게 도대체 말인지 망아진지...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불끈 입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불끈~
그러기 위해서 체력 안배 잘해서 기초실력을 탄탄히 해야겠다,불끈~

yamoo 2010-08-17 13:34   좋아요 0 | URL
뚜껑이 안 닫히는 것이 문제에요..ㅎ 그런 의미에서 저는 나무꾼님의 그 불끈~ 에 한표 던집니다~^^

마늘빵 2010-08-1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 책이 익숙한가 했는데 저도 한번 들었다 놨던 책이네요. ^^ 오래전 페이퍼로 번역 문제를 언급했고요. 페이퍼가 없었다면 접한 줄도 몰랐을 겁니다. :)

yamoo 2010-08-17 23:30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아프님 리뷰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카시러가 글을 어렵게 쓰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읽지도 못하게 해 놓다니...아프님의 지난했던 이 책 읽기가 눈에 선합니다~^^

철학전공자 2012-04-06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독일에서 카시러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자로서 정말 할 말이 없고 또 한편 아쉽네요. 안그래도 카시러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데 그나마 번역서가 그런 수준이라니...
논문을 끝내고 나서,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해 볼까 생각은 있었지만 독일 철학용어를 한국어로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고 진작에 포기했었습니다. 그래도 용감히 번역하는 분들이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는데 정말 나도 실망. ㅠㅠ... 그래서 새삼 내 논문을 다시 꺼내보고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