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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조 퀴넌 지음,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조 퀴넌의 이 오바스러운 제목의 책의 원제는 <One for the Books>다. 원제를 어찌 해석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번역 제목과 달리 '책을 읽는 모든 지구인'을 위한 책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을 위해서 쓴 글이 아니라 정말로 '책'을 위해서 쓴 글이다. 여기서 책이란, 종이책을 말한다. 작가는 책을 향한 자신의 온 마음을 다 바쳐 러브레터를 썼다. 아주 솔직하고 개인적이며 시시콜콜하다. 그래서 함부로 추천하기는 어렵다. 다만 서친님들께는 조심스레 추천할 수 있을 듯. '다른 취미생활 다 하고 가끔 시간이 남으면 책을 한 권씩 읽기도 한다'는 정도의 책에 대한 애정으로는 안 된다. 책을 읽는 방법이나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 등등에 관한 조언을 얻고자 해도 안 된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이 작가 나이쯤 되도록(작가는 1950년생임) 책을 열심히 읽으면, 이렇게 솔직하고 개인적이며 시시콜콜한 러브레터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하나, 서친님들께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어진다.
1. 책을 읽으려고 일을 쉰 적이 있습니까?
2. 좋아했지만 탈피했거나 결국 버린 작가들이 있습니까?
3.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이 있습니까?
4. 책에 대한 식견을 인정하는 상대는 몇 명이나 됩니까?
5. 당신에게 책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중에 댓글 달고 싶은 질문만 골라서, 달아주시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급 존대).
왜냐하면 조 퀴넌이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들이 던졌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온 답변들 일부를 소개한다.
3번 질문에 대해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이 있는가? 그렇다. 거듭, 또 거듭, 친구들은 다음의 책들을 지목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율리시즈>, <피네건의 경야>, <마의 산>, <전쟁과 평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트리스트럼 섄디>, <부덴부로크 가 사람들>, <로마제국 쇠망사>, 보스웰의 <존슨의 생애>, <제3제국의 흥망>, <미들마치>는 그들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의심하면서도 언젠가는 올라야 할 우뚝한 봉우리들이었다. - 317쪽
<미들마치>와 <피네건의 경야>는 이 책에서 몇 번이나 언급된다. 언젠가는 다 읽어야지 하며 계속 실패하고 있다고 한다. 이만한 독서력의 사람도 어렵다니, 이중 읽은 책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크게 절망하지 않아도 될지어다.
4번 질문에 대해서
"책에 대한 식견을 인정하는 상대는 몇 명이나 되는가?"
(...)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없다고 답했다. 없습니다. 몇 명 있어요. 없어요. 그런 사람은 많지 않죠. 없어, 그리고 넌 확실히 아니거든? - 319쪽
넌 확실히 아니거든? 에서 빵 터짐 ㅋ
사실 이 책 3번 챕터 정도까지 읽었을 때는, 제법 재미있긴 하지만 이 작가를 그다지 좋아하게 될 것 같지는 않군, 빨리 읽고 처분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일단 작가는 오디오북과 전자책은 좋아하지 않고, 화장실에서 책을 읽는 것은 '내가 읽는 작가에게 더없이 무례한 모욕'(11쪽)이라고 썼는데, 나는 이 책을 화장실에서 읽고 있었다.. 전혀 모르는 작가나 작품들이 줄줄이 언급되는 걸 보면서는 영미문학 진짜 많이 읽은 분이나 소화 가능하겠다 싶었다. 여성주의적 시각이 전혀 없는 전형적인 옛날 남자 같은 느낌도 좀 있었고. 하지만 뒤로 갈수록 이 책이 꽤 마음에 들어버렸고, 마지막 챕터의 이 대목까지 읽고 나자 처분할 생각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천사에게 나중에 오라 할 이유가 되는 책으로 샬럿 브론테를 드는 걸 보면서 더욱(난 아직 안 읽었지만..). 이 대목은 5번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이기도 할 것이다.
독서는 인류가 피할 수 없는 것을 지연시키는 방법이다. 독서는 우리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방식이다. 이 장대하고 가능할 성싶지 않은 독서 계획이 우리 앞에 줄지어 있는 한, 우리는 숨을 거둘 수 없다. 나는 아직 <빌레트>를 다 읽지 못했으니 죽음의 천사에게 나중에 다시 오라 전하라. - 381쪽
책에 대한 이 미친듯한 사랑. 책을 읽느라 하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 그러나 책을 빼고는 도저히 얘기할 수 없는 인생의 대목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의 어떤 대목에 스스로를 투영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전체가 마음에 드느냐 안 드느냐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알라딘마을의 뒤메질러들에게 바치고 싶은 대목은 이것이다.
책 정리는 지독히도 괴로웠다. 내 책은 언제나 내 삶의 일부였다. 책들은 훌륭한 병사요, 유쾌한 친구였다. 한 권 한 권이 다 오랜 세월 수차례의 숙청에서 살아남은 책이었다. 저마다 카펫으로 불려나가 자기변호를 펼치는 과정을 몇 번이나 겪은 책들이었다. 모든 참가자와 맞서 선한 싸움을 펼치고 그 자리에 남을 권리를 얻지 않은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나한테 있는 책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 359쪽
아무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모든 책을 서점에서 한 권 한 권 사 모아온 저자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 대목 뒤에 근데 진짜 그럴까? 진짜 <~~> 이 책이 나에게 정말 필요할까? 하며 회의하다가 결론은 필요하다로 난다. 결국 버리는 작업은 책들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는 과정이 되고 만다. 쫌.. 귀엽다.
자, 여러분, 여러분은 왜 책을 읽으시나요?
저는요, 음... 저는... 저는.....!
생각해보고 다음에... (후다닥)
딸아이는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책을 선물하면서 상대도 그 책을 진심으로 좋아해주기를 바라는 단체 포옹 강요 같은 행태를 이해 못하겠단다.
"책은 그때그때 한 권씩 사요. 책을 구입해서 바로 읽고 싶으니까요. 딱 맞는 책을 딱 맞는 때에 읽고 싶어요. 책을 쟁이고 싶진 않아요. 비축해두고 싶지 않아요. 남들이 나에게 책을 주는 것도 원치 않아요. 책을 읽는 경험은 각기 다 개인적이죠. 지금 이 순간밖에 없는 거에요. 독서는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할 수 있어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독서 경험을 재창조(recreate)해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다고 봐요."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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