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했을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빨간색 공책이었다. 내 고 3시절을 함께 했던
나는 고등학교 3학년때 지지리로 공부가 하기 싫었고 지금 생각하면 복에 겨울 정도인데 하루하루가 슬프고 우울했다.
공부하기 싫은애를 잡아 놓았으니 우울하고 괴로워할 수밖에
^^
그래도 당시 내게는 구세주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학교의 국어선생님인 고 우 섭 선생님이다.
그러나 참으로 운명의 장난인지 나는 그 선생님께 한번도 배워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리 잘나지도 않은 나를 알리기 위한 힘겨운 작업에 들어갔었다.
사랑과 공부를 병행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지라 ^^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선생님과 하기 싫은 공부와 우울한 나날
이 일기장은 둘도 없는 벗이 되어주었다.
첫장을 넘기면 편지 한장이 붙어 있다
내가 내게 보낸 편지다.
단 하나 뿐인 내 친구 상미에게
날씨는 점점 화창 그 자체. 그러나 더욱 그늘져가는 네 얼굴이 나는 싫구나.
별뜻없는 말에 의미없이 허탈하게 웃는, 별일 아닌 것가지고서 발끈 화를 내는 네가 점점 싫어지는구나.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힘들다. 외롭다. 쓸쓸하다. 무섭다. 아푸다라는 최면을 스스로 걸고 있는 너.
네 인생은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란다. 너에 따라 좌우되는 거야.
죽을 용기도 없고 살아야 할 의무감이 느껴진다면 결국 살아야 하는건데 이렇게 살 거니? 이렇게 너를 썩혀가면서?
너는 할 수 있단다. 다른 그 누가 할 수 없는 것도 너는 할 수 있단다.
도로를 달리는 차 중 목적지를 모르고서 헤매는 차가 몇이나 될까?
모두 목적이 있고 방향점과 도착지를 알고 있는데 너는 무엇이지?
네가 갖고 있던 꿈은 한때 품었던 추억에 불과하도록 네 스스로가 만들고 있구나.
-생략-
나는 그렇게 내게 편지를 써놓고는 나를 독촉하고 격려했다. 이 일기의 시작은 그렇게 된 것이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청춘의 초상에게라는 헤르만 헷세의 시가 나온다.
그리고 하단에는 작은 사진 하나 붙어있다
내가 좋아 했던 선생님이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때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다.
저 사진을 나는 그때 사려고 엄청 애썼던 것같은데^^
(앗 나이가 들어나겠네)
청맥은 내가 당시 호로 쓰던 거다 나는 푸른 보리를 내 호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웃긴다.
일기의 첫시작은이렇다 카르페디엠 당시 유행하던 영화에서 나온 말을 쓰고 시작했다.
가자 어디로 가느냐고? 글쎄. 그렇지만 지금 내가 가려는 길은 피하러 가는 것이 아냐.
못 믿겠다구? 믿지 마라. 이제 난 도망안 갈거야.
아니 갈지도 모르지. 안간다고 약속하긴 싫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피할 생각이 없어.
언젠가 연경이가 그러더군(앗 연경이 지금은 연락이 안되는 친구 반갑다 친구야)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되지 않냐고?
(아 연경이가 왜 이런 말을 했지 아마도 내가 공부를 안해서 일걸)
여기까지만 써야겠다 너무 창피하니
하여튼 첫장의 내용은 공부열심히 해서 대학가자는 이야기다.
참 대학이 뭔지.
일기장을 들춰보다 보니 난 일기장이 수첩대용이기도 했다 공부 게획까지 짜놓은 걸 보면
여름 어느 날의 일기다
바람이 분다. 마치 가을 같다.
가을이 되면 어떡하지?
올 여름은 무지 덥고 그래서 사람들 모두 짜증을 낸다
그러나 난 이 더운 여름을 시간시간 마다 감사하며 보낸다.
난 가을이 오는게 싫으니까
좀 덥더라도 모기가 물고 온몸에 땀이 찔찔 나도
난 이 여름이 다가올 가을 보다 더 더 좋다
누군가 내게 종종 고3이냐고 물어올 때가 있다
그러면 난 자연스럽게 아니라고 하고 싶다
최종나오는 답은 긍정의 '네' 라는 말이지만 내 맘 좀 알아주면 좋겠다.
닌 적어도 내 마음은 고3이 아니라고
고 3 그 자체가 무서워서가 아니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
그것에 부과되는 무거운 짐을 질머질만큼
나의 어깨는 튼튼치 못하기 때문이다.
난 참 나약했구나 참 비겁했구나 싶다 다시 돌아가면 행복해 할 텐데
일기장 곳곳에
시가 써 있는 껌종이도 책갈피로 끼워놓고
친구 선영이의 편지도 붙여넣고
일요일 학교에 나와 나는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와야 하는 입시생입니다로 시작하는긴긴 일기도 써놓았다
이 일기에는 다소 반항적인 내 모습이 들어있어서 다시 옮기지는 않으련다
일기장 내내 낙서도 요란하다
좋아하는 선생님께 부지지 않는편지를 썼다
친구들과 공부하기 싫어한 낙서 놀이는 마냥 우습다
시간이 갈수록 내 일기는 점점 우울해 졌다
아마도 시험날이 다가와서겠지
이 그림을 그려준 짝 은미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성실하고 착했던 곱슬머리 은미는 예쁜 아기의 어마가 되어 있겠지
고3 시절 나는 공부는 안 하고 도만 닦았나 보다
^^
늘 괴로워하고 우울해하고 선생님 부르고 그런 나를 위로하는 친구들의 편지만 가득하다.
아 보고 싶은 선생님 이젠 아이아빠가 되어 여느 아저씨처럼 사시겠지
40대 중반 선생님
힘들었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시절이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간다면 더 열심히 살텐데
그래도 그때가 있어서 나는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