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싱어송라이터
이미경 지음 / 북극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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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싱어송라이터를 읽고

 

어떤 노래는 끝난 뒤에 시작된다.

멜로디가 멎고 나서야 비로소 문장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 책은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노래를 듣는 대신 읽는다. 읽히는 노랫말은 더 이상 유행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이 된다.

책을 펼치면 먼저 산수화 한 점이 놓여 있다. 굽이치는 산길과 정자, 그리고 그 길을 오르는 작은 인물. 사람은 작고 풍경은 넓다. 사랑을 개인의 사건으로 믿어왔던 마음이 그 앞에서 잠시 물러선다. 사랑은 늘 시대의 지형 위에 놓여 있었을지 모른다. 오르는 길은 각자의 몫이지만, 산은 공유된다.

고전 시가와 현대 가요를 엮는 접근이 나는 새로웠고 오 흥미롭네 하며 호기심이 일었다.

사람과 사람사이 일이 다 그렇지. 시대가 변한 들 어디 사랑이 변하랴. 사람이 변하지.

목차를 보니 사랑시인가 싶을 만큼 소 제목들이 감성적이다.

예를 들면 그대에게 내 마음을 고이 띄워 보냅니다.

, 그 지긋지긋한 사랑을 또 이렇게 예쁘게 표현했네 싶을 만큼 샘이 난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었는데 1부는 사랑으로 시작한다.

 

첫 시작은 서경별곡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어릴 때 외기 싫던 서경이 아즐가~ 위두어렁셩 두어렁셩~.

그런데 언제나 다가오는 부두의 이별이 ~는 얼마나 쉽던가.

13페이지 위에

사랑하신다면 울면서라도 쫓으리이다.라는 제목에 쿵,

하많은 세울 울었었지. 지금이라면 정신차리래이, 다 소용없다, 나라면 이럴텐데 작가님은 이렇게 애절하게 사랑이야길 푸신다.

여기에 역사와 지리학적 이야기도 나온다. 고려시대 평양은 서경이었고, 해상무역에서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고 있다. 이에 묘청의 난까지 언급. 이 책이 역사책이야? 국어책이야? 사회책이야? 아니 사랑시집? 읽으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려운 고려시가를 이렇게 쉽게 푸시다니.

나도 학교다닐 때 고전시가가 어려웠다. 무슨 말인지 재미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내가 고전시가를 배울 때 이 책이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책이다.

그런데 정선의 연광정이란 그림이 등장한다. 아니 그림까지 넣다니. 저절로 옛 시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그림만 찾아보다가 또 깜짝 놀랐다. 어쩜 이리 구하기 힘든 그림들을 착착 골라 넣었을까? 그림이 시고 시가 영화고 노래가 되어 귀에 착착 들린다.


다시 나타난 시가 장석남 시인의 <배를 밀며>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갑자기 옛 이별이 떠올라 울컥했다. 마음에서 지워버린 시를 다시금 써 볼까 싶기 까지 했다.

 

마음을 푹 젖게 해 놓고는 말릴 틈을 안 준다.

대동강 물이 마를 날이 있을까?

정지상의 송인, 이라는 한시와 김민기의 친구를 이야기 하는데 대동강 아니라 동네 호수공원 물도 마를 수 없겠네 싶다.

읽다가 나오는 시들만 필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명원의 별리

 

깊은 밤 창밖에 보슬비 내리고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나는 정 아직 부족한데 날이 새려 하니

비단 옷깃 부여잡고 뒷날을 기약하네.

 

왜이리 아름다운지 내가 곧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어 안달복달이다.

 

 

난 파도가 밀면

노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버린 것 같아

늘 그리워 그리워

()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띄워요

 

파도는 밀리고, 글씨는 번진다. 사랑은 또렷하게 적혔다고 믿는 순간 가장 쉽게 흐려진다. 그러나 늘 그리워 그리워라는 반복은 지워지지 않는다. 반복은 과장이 아니라 버팀이다. 바닷물을 창가에 띄운다는 상상은 닿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보내는 마음의 형식이다. 닿지 않음이 오히려 사랑을 또렷하게 만든다.

가장 내 맘 같았던 건 탑처럼 쌓아올린 36행 보탑시.

이별, 그리움, 가야할 길은 멀고, 소식 전할 글월은 더디기만 하오.

 

책을 읽다보면 감탄을 멈출 틈이 없다. 아이유, 장기하와 얼굴들, 이효리, 임영웅까지 나오고, 다시 읽을수록, 아 이 맘이 이리 애절하네 싶은 시들, 노래 가사들. 정말 한류가 그냥 한류가 된 게 아니네 싶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사랑은 점점 줄어들고, 대신 태도가 남는다. 그리고 한 편지의 문장이 등장한다.

 

오늘 집에서 보낸 서신과 선물을 받았소.”

당신이 곱게 보내 바느질한 옷은 입을 수 없을 것 같소.”

 

못내 아쉬워 집 안 뜰의 은행 아래 저를 두고

동백이 붉게 타오르는 이유는 당신 눈자위처럼 붉기 때문이오.”

 

떠났다고 말하면서도 색을 남긴다. 단호함 뒤에 온기가 남는다. 사랑은 끝났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파도에 번진 글씨는 다른 자리에서 다시 붉어진다. 감정은 소멸하지 않고 형태를 바꾼다.

 

이 책은 노래를 통해 조선을 읽는다. 그러나 읽다 보면 조선이 아니라 사람이 남고 삶이 남고 태도가 남는다. 사랑을 어떻게 말했는가가 아니라, 사랑 이후에 어떻게 서 있었는가가 더 또렷해진다.

파도는 밀려가고,

달은 기울고,

꽃은 피었다가 스스로를 닫는다.

노래는 끝난다.

그러나 남는 것은 한 사람의 자세다.

조선의 싱어송라이터는 사랑보다 이별을 이야기하고 묻는다. 사랑이 지나간 뒤에도 품위를 잃지 않을 수 있는가. 그 질문이 이 책을 조용히 오래 읽히게 한다.

이 책은 곁에 두고 자주 아무 데나 펴고 읽다가 또 무심히 두고 가끔 건조해진 마음에 물 주듯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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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싱어송라이터
이미경 지음 / 북극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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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감탄이 절로 나는 책이다. 오랫동안 철을 담금질하듯 갈고 닦아 낸 책이란 티가 팍팍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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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쇠똥구리다 참좋은세상 3
다린 지음 / 옐로스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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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서울에서 자라 쇠똥구리를 직접 본 적이 없다. 동글동글한 똥 구슬을 데굴데굴 굴리는 장면은 책이나 Tv 화면 속에서만 만났을 뿐이다. 한때는 시골 풀밭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어떤 작가님은 어릴 때는 엄청 많았는데 라고 하셨다. 지천이엏던 쇠똥구리, 지금은 좀처럼 만날 수 없다. 소를 들판에 풀어 기르지 않고 축사에서 키우게 되면서 자연 속 소똥은 사라졌고, 사료에 섞인 화학 물질과 구충제 성분은 쇠똥구리의 생존을 위협했다. 우리가 편리함을 택하는 사이, 들판의 작은 환경 지킴이는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쇠똥구리다』는 그렇게 잊힌 존재를 다시 우리 눈앞에 불러 세운다. 이 책은 생태 지식 그림책이면서 동시에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풀밭 위에 똥이 툭 떨어지자 어디선가 쇠똥구리가 나타난다. 앞다리로 똥을 모아 동글동글 구슬을 만들고, 물구나무를 선 채 힘센 뒷다리로 데굴데굴 굴려 간다. 아이들은 그 모습에서 먼저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하지만 곧 “냄새난다”, “저리 가”라는 말들이 날아들고, 쇠똥구리는 작게 웅크린다. 그 작은 몸짓이 묵직하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겉모습과 냄새, 조건만으로 존재를 판단해 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야기는 깨진 똥 구슬 속에서 발견한 씨앗을 통해 전환점을 맞는다. 힘든 하루 끝에 잠든 사이, 씨앗은 새싹이 되고, 그 작은 연두빛 싹이 희망처럼 쇠똥구리 마음에 차오른다. 싹은 싱그러운 풀과 예쁜 꽃으로 자라난다. 반대로 쇠똥구리가 사라진 들판에는 똥이 쌓이고, 싱싱하던 풀과 꽃은 시들어 간다. 공벌레가 구르지 못하고, 다른 곤충들이 불편해하는 장면은 생태계가 얼마나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 준다. 한 존재의 부재가 곧 모두의 불편과 위기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푸른 식물 사이에서 똥덩이를 밀어 올리는 쇠똥구리의 모습은 작지만 당당하다. 그 장면은 단순한 곤충의 노동을 넘어, 묵묵히 자기 몫을 다하는 존재의 품위를 보여 준다. 크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이 책은 소리 높이지 않고 말한다. 환경 보호를 직접적으로 외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레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전하는 방식이 인상 깊다.
아이들에게는 생태에 대한 첫 감탄을, 어른들에게는 잊고 지냈던 자연에 대한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무엇보다 “우리 곁으로 돌아와 줘”라는 문장을 마음속에 남긴다. 그 문장은 단지 쇠똥구리를 향한 호소가 아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태도, 사라진 감각, 자연과 더불어 살던 시간을 향한 부름이기도 하다. 쇠똥구리를 다시 만나는 일은 한 곤충을 복원하는 문제를 넘어, 우리 삶의 방향을 되묻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쇠똥구리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언젠가 들판에서 데굴데굴 굴러가는 작은 구슬을 마주하게 되기를 기다리게 된다. 그때는 코를 막는 대신, 조용히 인사하고 싶다. “쇠똥구리야, 안녕.” 『나는 쇠똥구리다』는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의 출발점이 되어 줄, 오래 곁에 두고 싶은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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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소나 책가방 속 그림책
금민아 지음 / 계수나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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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강아지 뭉치와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온 병주. 병주에게 반려견 뭉치는 친구이고 동생이다. 할아버지는 병주와 함께 온 뭉치를 반긴다.

병주는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할아버지도 어릴 때 강아지 키웠어요?

할아버지는 어떤 강아지를 키웠을까? 할아버지가 키운 강아지는 소였다.

요즘 아이들이 소가 반려 동물이었다고 하면 놀랄 것이다. 소가 어떻게 반려 동물인가?

반면 할아버지에게 소는 삶의 일부였다. 농사를 짓고, 위험을 함께 넘고, 하루의 무게를 나누어 지던 존재. 두 사람의 동물은 다르고, 시대도 다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차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한 질문을 놓아둔다. “개보다 소가 더 좋았다고요?”

할아버지는 그저 기억을 꺼내 놓는다. 기억을 꺼내며 할아버지 얼굴 그대로 아이 모습이 되는 장면은 너무나 귀엽다.

밭고랑이 만들어지던 순간, 소를 타고 달리던 들판, 멧돼지를 만났던 산속의 시간. 같은 시간을 살지도 않았는데 시간시간이 내 이야기 같다.

그 옛날 소는 재산의 일부였다. 그러나 어린 할아버지는 재산이 아니라 가족이고 친구인 소를 걱정하고 찾으며 울었던 추억을 이야기한다.

멧돼지보다 소가 안 보이는 게 더 무서웠다는 말은 너무나 와 닿는다. 병주도 자기 개 뭉치를 떠올린다. 안 보였을 때 울었던 기억, 찾았을 때의 안도. 이 순간, 두 세대의 경험은 정확히 겹치지 않지만 감정의 결은 같아진다. 세대는 같은 기억을 갖지 않지만,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히 보여준다.

.이 그림책을 보고 나서 류현재 작가의 『빼그녕』이란 마름모 출판사의 소설을 읽었다. 주인공 백은영, 자신의 이름을 거부하여 빼그녕이라 스스로를 말하는 7살 소녀 역시 반려 동물이 소 프랑크다. 프랑크가 팔릴까봐 안절부절하고 프랑크가 팔리기 전에 도망치게 한다. 그러나 프랑크가 교통사고 나서 기부스를 하고 나중에 소가 죽었을 때 슬프게 우는 이야기가 흐른다. 마치 이 그림책의 소설버전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소와 인간의 교감이 특별하다는 걸 마치 증명하는 듯 했다.

『개나소나』는 무척이나 섬세한 그림책이다. 그림책 『개나소나』에서는 그림책이어서 볼수 있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저 꽃은 냉이 꽃아닐까? 집 옆의 장독, 소소하고 섬세한 그림 보는 재미는 그림책만의 보물찾기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독자는 깨닫게 된다. 세대는 단절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만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라는 것을. 소가 개로 바뀌고, 들판이 산책로로 바뀌어도, 잃어버리면 찾고, 걱정하고, 다시 안도하는 마음만큼은 그대로 건너온다는 사실을 『개나소나』는 알려준다.

요즘 우리집 반려견 백두는 내 말을 더 잘 알아듣는다. 겁 많아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을 떄는 걸음이 빠르고, 기분이 좋을 때는 산책하면서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누가 그렇게 나를 보며 웃어 줄까 생각하면 백두가 참 소중하다.

사람마다 모든면이 소통이 가능하지 않다. 다만 소통이 가능한 부분은 분명 있고 그것음 마치 서로를 연결하는 열쇠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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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아구 책가방 속 그림책
박윤규 지음, 김종도 그림 / 계수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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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종종 ‘어른답게 행동해라’라는 말을 듣는다. 어른답다는 게 어떤 모습일까?
책 『마구아구』(박윤규 글, 김종도 그림)는 이 질문에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보다, 한 마리의 투박한 멧돼지를 통해 답을 건넨다. 물론 삶의 답이라는 게 한 가지는 아니겠지만 이런 답을 나는 응원한다.
월악산 덕주골에 사는 마구아구는 욕심 많고 사납기로 소문난 멧돼지다. 동굴 안 가득 채운 더덕, 칡, 도라지와 밤, 도토리들은 그의 자랑이고,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는 든든한 양식이지만 동시에 불안의 원천이다. 그는 양식을 잃지 않기 위해 동굴 앞에 온통 똥 울타리까지 쳐 놓으며 경계한다.
마구아구는 “누구든 맞닥뜨리면 뾰족한 송곳니로 들이받는” 동물이며, 동굴에 “여기는 무시무시한 마구아구의 집, 들어오면 바로 죽음”이라는 팻말까지 세워 놓는다. (p.4~5)
마구아구는 내것이 매우 중요하고 내 것을 건드릴 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 뻔함을 암시한다. 함께라는 공동체보다 악착같은 자신의 생존과 독점을 선택하는 삶이다.
이야기는 예상 밖으로 흘러간다.
양식을 지키려 애쓰던 마구아구가 결국 도둑을 잡겠다고 분노를 뿜어내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다른 동물들에게 먹이를 나눠 주며 발도장을 찍기 시작한다.
겉보기에는 도둑을 찾기 위한 꾀지만, 동물들은 그저 그 행동을 ‘나눔’으로 받아들인다.
“마구아구가 이상해졌어.”
동물들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따뜻하다.
착해진 것이 아니라 속셈이 있는 행동이었음에도 나눔을 베풀기 위해 움직이는 몸은 이미 변화의 첫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장면은 드디어 마구아구가 도둑을 찾는 순간이다.
그 도둑은 거창한 악당도, 영리한 침입자도 아니다.
바로 꼬마 산양이다.
“엄마가 덫에 걸려 발을 다쳐서… 배가 고파서…”
꼬마 산양이 울먹이며 고백하는 순간, 마구아구의 눈꼬리와 목소리는 눈에 띄게 변화한다.
분노로 치켜올랐던 눈은 서서히 내려앉고, 마구아구의 기세는 꺾인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좀 달라고 하지 그랬어.”
이 문장은 단순한 용서의 말이 아니다.
마구아구가 처음으로 타인의 사정을 생각한 순간, 즉 진짜 ‘성숙’한 어른의 길로 접어든 순간이다.
우리는 종종 어른이 된다는 것을, 나이가 들거나 책임을 여러 개 떠안는다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보면, 성숙은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마음의 움직임 안에서 일어난다.
교육이나 훈계가 아니라, 아주 작은 타인의 사정을 듣는 순간에 일어나는 변화다.
마구아구는 꼬마 산양을 용서하고, 남은 양식을 모두 내준다.
이때 그는 “나눠 주러 온 것”이라고 말하며 산양에게 발도장을 찍으라고 한다. 여기서 마구아구가 거짓말을 했다고 뭐라할 이 있을까? 때로는 선한 거짓말이 생명을 살린다.
나눠 주는 거 역시 어려운 너만이 아니고, 모두가 받는 걸 너도 받는 거다. 라는 마음을 심어주면서 산양의 마음 속에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는 산양에게 의지가 되어 준다.
왜 혼을 내지 않았는가?
산양은 마구아구를 보자마자 납작 엎드려 용서를 빈다. 그만큼 마구아구는 존재만으로도 잘못을 빌만큼 무서웠다. 그 무서운 마구아구의 양식을 가져갔다면 엄청난 용기와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조마조마한 시간이 어떤 혼남보다 두려웠으리라. 그것을 마구아구는 아는 듯하다.
내 마음을 가장 흔든 부분은
“배고프면 와서 말해라! 꼭.”
이 부분이었다.
배고프면 와. 이 말만으로도 산양은 고마움이 파고든다. 그런데 마구아구는 꼭을 붙인다. 마구아구는 아는 듯하다. 배고픈 시간, 그럼에도 도와달라고 말하기 어려운 그 마음을. 어쩌면 마구아구는 그래서 악착같이 양식을 모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꼭’ 이라는 말은 마치 보험처럼 들린다. 찾아가지 않더라도 오늘 너무 배가 고프더라도 그 말은 내내 산양에게 남아서 언젠가 정말 배가 고프고 힘들면 내겐 찾아갈 곳이 있다. 라는 것.
이 보다 더 든든한 보험이 있을까?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구아구는 영봉 꼭대기로 올라가, 지금까지 모아온 발 도장 나뭇잎들을 허공에 날려 버린다.
그리고 일주일째 누지 못했던 똥을 누며 이렇게 외친다.
“우와아! 시원하다!”
이 유쾌한 결말은 단순한 재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마구아구가 쥐고 있던 욕심과 불안을 모두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몸도 마음도 시원해진 것이다.
참 어른은 모든 걸 움켜쥐는 사람이 아니라, 놓아주는 사람이 아닐까?
빠듯한 마음을 조금 비워 내고, 누군가의 사정을 들을 여유를 만드는 사람.
분노를 내리누르고 이해 쪽을 선택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어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인정하고 조금씩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참 어른은 자신의 것을 나누며 더 넓은 세계를 만나게 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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