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북은 박태균의 <사건으로 읽는 대한민국>(역사비평사, 2013). "2005년 <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을 펴내 많은 관심을 받았던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의 박태균 교수가 이번에는 한국현대사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사건들을 선정했다." 이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몰역사적 행태와 전도된 역사인식이 횡행하는 즈음이라 자연스레 손길이 가는 책이다.

 

 

두번째 책은 나간채의 <광주항쟁 부활의 역사 만들기>(한울, 2013). "광주항쟁 발발의 역사적 배경이 된 부마항쟁과 서울의 봄에서부터 시민의 힘으로 계엄군을 물리치고 이룩했던 해방 광주의 자치공동체, 공수부대의 투입으로 좌절된 광주항쟁, 그리고 패배했던 항쟁을 부활시키고 오월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끊임없이 계속된 5월운동까지 치열했던 광주항쟁의 전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세번째 책은 <살인의 심리학>의 저자 데이비드 그로스먼의 <전투의 심리학>(열린책들, 2013). "20년간 미 육군에서 복무한 예비역 중령인 데이브 그로스먼과 30년간 경찰 및 군 생활에 헌신한 로런 W. 크리스텐슨, 두 베테랑이 현직에 근무하고 있는 군인, 경찰이 경험한 수백 건의 실제 전투 사례를 수집하고 문헌 연구를 통해 체계화시킨 전투에 관한 대백과사전"이다. 네번째 책은 대니얼 드레즈너의 <국제정치이론과 좀비>(어젠다, 2013). 국제정치학 교재인데, '좀비'란 말이 붙으니 뭔가 읽어보고픈 책이 됐다.

 

 

그리고 마지막 책은 조엘 바칸의 <기업에 포위된 아이들>(알에이치코리아, 2013). '내 아이를 위협하는 나쁜 기업에 관한 보고서'가 부제인데, 저자는  "왜 거대 기업에게 아이들이 매력적인 소비자인지, 그들이 어떤 전략으로 아이들을 매수하는지, 그로 인해 우리의 미래는 얼마나 피폐해질 수 있는지를 첨예하게 파고든다." 기업의 부도덕한 이윤추구를 고발했다는 전작 <기업의 경제학>(황금사자, 2010)에도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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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으로 읽는 대한민국- 한국현대사의 그때 오늘
박태균 지음 / 역사비평사 / 2013년 5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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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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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부활의 역사 만들기- 끝나지 않은 5월운동
나간채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3년 5월
17,000원 → 17,000원(0%할인) / 마일리지 170원(1% 적립)
*지금 주문하면 "5월 2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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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심리학-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의 심리와 생리
데이브 그로스먼 & 로런 W. 크리스텐슨 지음, 박수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5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5월 20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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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치이론과 좀비
대니얼 W. 드레즈너 지음, 유지연 옮김 / 어젠다 / 2013년 5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5월 2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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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관심도서의 하나는 저명한 셰익스피어 학자 스티븐 그린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까치, 2013)이다. 퓰리처상과 전미국도서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기도 한 화제의 책.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아카넷, 2012)에 대한 관심을 잔뜩 북돋는 책이기도 하다(어디에 꽂혀 있는지 아직 못 찾고 있다). 책에 대한 리뷰는 중앙일보에 한 주 순연돼 실렸다...

 

 

 

중앙일보(13. 05. 25) '중세의 종말'을 알린 그 책 … 쾌락을 옹호하다

 

15세기 이탈리아를 다룬 책이라면 자연스레 르네상스를 떠올리게 된다. ‘근대의 탄생’이란 제목의 문구도 르네상스를 염두에 둔 표현이겠다. 하지만 책의 제목 『1417년, 근대의 탄생』(원제 The Swerve·일탈)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1417년’은 어떤 사건과 관련된 것일까.

 

1 1425년 문헌 수집가였던 포조 블라촐리니의 필사본 원고.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의 글을 옮겨 적은 것이다. 2 포조의 초상화. 그가 68세에 쓴 『운명의 성쇠에 대하여』에 실려 있다

힌트는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라는 부제에 담겨 있다. 문제의 ‘책 사냥꾼’, 포조 브라촐리니가 독일 남부의 한 수도원에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필사본을 발견한 것이 1417년 겨울이었다.

희귀본 고서(古書)의 우연한 발견이야 책 사냥꾼에겐 기쁜 일이었겠지만, 단지 그만한 일로 ‘1417년’을 역사에 남을 만한 연도로 삼는 것은 과장이 아닐까. 하지만 그 책이 기원전 1세기에 쓰인 루크레티우스의 책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당시 세계사의 방향을 바꿀 정도로 파괴력을 지닌 문제도서였기 때문이다.

 

 

이 필사본의 발견 전후 과정을 추적한 저자는 “이 책의 발견이야말로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을 가져온 출발점이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대체 어떤 책인가. 지난해 국내 소개된『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아카넷, 2012)는 총 7400행에 달하는 운문 대작이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나 오비디우스가 서사시를 써 내려간 형식으로 루크레티우스는 에피쿠로스학파의 물리학·우주론·윤리학을 종합했다. 흔히 쾌락주의로 알려진, 헬레니즘 시기 중요한 철학 사조의 하나인 에피쿠로스학파의 적자가 바로 루크레티우스다.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의 쾌락주의를 재발견한 것이 왜 문제적인가. 바로 무신론을 함축하고 있어서다.

루크레티우스 자신은 신의 존재를 믿었지만, 그가 믿는 신은 인간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신이었다. 그가 보기에 신들이 인간의 운명에 신경을 쓰거나, 여러 종교적 제의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상상하는 것은 천박한 신성 모독에 불과하다. 이러한 특이한 무신론은 자연스럽게 물질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루크레티우스는 사물들의 세계란 ‘사물의 씨앗’이라는 불변체가 끊임없이 운동하면서 서로 충돌하고, 서로 결합했다가 다시 갈라지고 재결합하면서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세계가 ‘파괴할 수 없는 물질로 구성된 사물들의 부단한 변형’으로 생성된 것이라면 신의 창조는 개입할 여지도 없다. 우주에는 창조자도, 설계자도 없으며, 신의 섭리라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사물은 그 구성 입자들의 일탈로 탄생하게 되며, 이 일탈은 무작위적이기에 자유의지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루크레티우스는 사후세계란 없다고 했다. 지상에서의 삶이 인간 존재가 가지고 있는 전부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인생의 최고 목표는 쾌락을 늘리고 고통을 줄이는 것이며,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 구세주께서 채찍질을 견뎌내시지 않았던가”라고 되물으며 채찍질을 정당화했던 중세인의 생각과는 얼마나 다른 것인가.

중세는 고통의 추구가 승리를 거둔 시대였다. 사도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인과 순교자들이 스스로에게 매질을 가했다. 구세주를 닮고 싶다면 그가 겪은 고통을 몸소 겪는 것 이상의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교황청의 필사가이자 고대 필사본 수집가였던 포조가 1000년이 넘게 망각 속에 잠들어 있던 루크레티우스의 책을 발견함으로써 세계는 새로운 방향으로 다시 일탈하는 계기를 얻는다.

저자가 보기에 다빈치·갈릴레오·베이컨·알베르티·미켈란젤로·라파엘로·몽테뉴·세르반테스의 작업을 포함하는 일련의 문화적 운동은 모두 생명을 찬미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질계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심과 육체의 요구에 대한 긍정이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이었다면 르네상스는 루크레티우스의 생각을 가장 잘 체현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에피쿠로스에서 루크레티우스로 이어진 세계관의 끈이 15세기 초 한 책 사냥꾼에 의해 발견돼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이 되고, 또 점차 널리 퍼지면서 근대 세계가 탄생하게 됐다는 게 이 책이 제시하는 근대 탄생의 서사다.

 

흥미를 끄는 것은 저자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란 책을 발견한 일도 지극히 우연적이었다는 사실이다. 학부시절 학년 말이면 여름 한철 읽을 책을 구하러 대학 구내 협동조합서점에 들르곤 했다는 그는 어느 날 에로틱한 표지에 끌려 영어판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10센트에 구입한다. 그 우연한 발견과 독서가 결국 책 사냥꾼 포조 브라촐리니와 근대의 탄생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낳은 것이니 우연, 혹은 ‘일탈’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13. 05. 18.

 

 

P.S. <1417년, 근대의 탄생> 덕분에 그린블랫의 책들과 르네상스 관련서를 몇 권 주문했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고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한길사, 2003)는 눈에 띄지 않아 다시 주문했고, 시오노 나나미의 책 두 권도 더 얹었다. 책들은 언제나 가지를 치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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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프레시안 books'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0517141831§ion=03). 수주 전에 존 올콕의 <다윈 에드워드 윌슨과 사회생물학의 승리>(동아시아, 2013)에 대한 서평을 청탁받고 오늘 오전에야 쓴 것이다. 독서가 더디게 진행돼 리뷰도 예정보다 늦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생물학을 바라보는 입각점을 마련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

 

 

 

프레시안(13. 05. 17) 얼음물 테러당한 하버드대 교수, '유전자 결정론자'?

 

존 올콕의 <다윈 에드워드 윌슨과 사회생물학의 승리>(김산하·최재천 옮김, 동아시아 펴냄, 이하 '사회생물학의 승리')는 '사회생물학 논쟁'의 중간 결산 같은 책이다. 제목에 '다윈 에드워드 윌슨'이 들어간 건 군더더기인데(두 사람의 인명을 그렇게 병기한 의도는 어림해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어색하다) 원제는 좀 더 간명하게 <사회생물학의 승리>이고 2001년에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나왔다.

 

물론 과학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신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책이다. 사회생물학 쪽으로도 지난 10년간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나왔을 법하니까. 그럼에도 저자가 '승리'라는 말을 쓸 수 있었다면 그맘때에도 대세는 충분히 기울었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까. 그렇다면 사회생물학 논쟁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에서 '사회생물학의 승리'를 말할 수 있는가가 일차적인 요점이겠다.

 

 

먼저 저자가 서두에서 묘사한 유명한 에피소드를 음미해본다. 1978년 2월 에드워드 윌슨이 미국과학진흥회의 연례총회에 참석했을 때 한 젊은 여성이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가 머리 위에다 얼음물 한 주전자를 쏟아 부었다. 그러자 공모자들이 연단에 올라와 윌슨을 조롱하며 플래카드를 흔들어댔다. 하버드 대학교의 저명한 교수이며 개미를 비롯한 사회성 곤충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학술회의장에서 당한 봉변의 전말이다.

 

 

요즘처럼 스캔들이 넘쳐 나는 시대에는 뉴스거리가 되기도 힘들지 모르지만 과학자사회에선 분명 흔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윌슨은 어째서 비난과 조롱의 표적이 된 것인가. '사회생물학'이란 말을 탄생시킨 1975년 작 <사회생물학>(이병훈 옮김, 민음사 펴냄) 때문이다(윌슨은 이 책으로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란 별칭을 얻는다). "하등동물인 아메바의 군체에서부터 현대 인간 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행동의 사회학적 기초를 면밀히 탐구한" 책이다.

 

윌슨의 정의대로라면 사회생물학은 '모든 사회성 행동의 생물학적 기초에 대한 체계적 연구'이다. 이것이 왜 문제되는가. 그 '사회성 동물'에 인간도 포함돼서다. 윌슨은 대형 말벌인 타란툴라 호크의 사회행동이나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똑같은 학문적 대상으로 다루고, 그렇게 다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회생물학>의 마지막 장을 인간에 할애하는데 그래봐야 전체 분량의 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국내에 <사회생물학 1,2>가 번역돼 나왔을 때 관심을 갖고 읽은 대목은 주로 그 마지막 장이었지만, 그의 '상식적인' 주장은 일부 동료 학자들과 대중에게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킨다.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과 정치적인 현상 유지를 정당화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이론을 창안했다"는 비난이 그에게 퍼부어졌다. 소위 '사회생물학 논쟁'의 발발이다.

 

 

 

사회생물학 논쟁과 관련해서는 프란츠 부케티츠의 <사회생물학 논쟁>(김영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피터 싱어의 <사회생물학과 윤리>(김성한 옮김, 연암서가 펴냄), 국내 학자들이 쓴 <사회생물학 대논쟁>(김동광·김세균·김환석 외 지음, 이음 펴냄) 등도 참고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책은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스티븐 로우즈·R. C. 르원틴·레온 J. 카민 외 지음, 이상원 옮김, 한울 펴냄)이다. 놀랍게도 저자들 가운데는 하버드 대학교의 동료 교수인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와 유전학자 리처드 르원틴 등이 포함돼 있었다. 과학계에서 윌슨만큼의 인지도를 갖고 있는 명망가들이 사회생물학에 대해 나치의 우생학과 다를 바 없다는 식으로 공격했고 부정적인 낙인을 찍는 데 성공했다.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는 문구 자체가 사회생물학은 인간의 모든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유전자 결정론이란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준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 결정론은 사회생물학 반대론자뿐 아니라 에드워드 윌슨이나 리처드 도킨스를 포함해 전문 진화생물학자라면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반대 진영에서는 '사회생물학=유전자 결정론'이라는 프레임을 교묘하게 써먹었다.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손쉬운 비판이 여론의 동조를 끌어내는 데 유력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고의성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사회생물학 논쟁의 시작은 '결정론으로서 사회생물학'이라는 허수아비 비판이었다. 그리고 그 배경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었다.

 

저자 존 올콕은 윌슨의 회고적 분석에 따라서(윌슨의 자서전 <자연주의자>(이병훈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를 참고할 수 있다) 사회생물학 논쟁이 1970년대 중반 미국 대학가의 분위기와 맞물려 진행됐다고 본다.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캠퍼스 내 좌파 교수와 학생들이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따라 '인간의 본성'이란 개념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인간의 행동은 사회적 산물이기에 사회를 개조하면 자연스레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관점이었다. 하지만 사회생물학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관념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였고 "가난한 자와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적 변화를 거부하는" 것으로 비쳤다. 그래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윌슨을 포함해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배계급의 하수인'으로 몰아붙였다. 사회생물학이 오해와 부정적인 평판을 덮어쓰게 된 배경이다.

 

국내에도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번역되고 연이어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가 소개됨으로써, 자세한 학문적 논쟁을 알 수 없는 독자로서는 <사회생물학>의 무리한 주장(유전자 결정론)이 다른 과학자들에게 비판받은 것으로 이해하기 쉬웠다. 벌써 20년 전 상황이다. <사회생물학의 승리>는 바로 그러한 이해를 교정해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저자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회생물학이 불필요한 적개심을 얻는 데 공헌한 잘못된 오해들을 규명하고 제거하여 사회생물학 연구의 진정한 본성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저자가 사회생물학을 둘러싼 오해들을 규명한다고 하니까 어떤 오해들인지에 대해서도 일별해볼 필요는 있겠다. 다음의 여덟 가지이다.

(1)사회생물학은 윌슨 개인의 새로운 이론이다.
(2)사회생물학은 인간의 행동을 주 관심대상으로 삼는다.
(3)사회생물학은 종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형질의 진화를 다룬다.
(4)사회생물학은 어떤 행동 형질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전제에 기초한 환원주의적 분야이다.
(5)사회생물학은 인간과 다른 동물의 행동을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비교한다.
(6)사회생물학은 검증되지 않고 검증 불가능한, 그럴싸한 이야기를 생산하는 데 특화된 공론이다.
(7)사회생물학은 학습된 행동이나 인간의 문화적 전통을 설명하지 못하며 오직 경직된 본능만을 다룬다.
(8)사회생물학은 어떤 행동을 '자연적' 혹은 '진화된' 것으로 명명함으로써 좋지 않은 인간의 행동을 모두 정당화한다.

사회생물학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독자라면 당연히 이 책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 독서 면제니까. 하지만 사회생물학에 대해 좀 들어본 적이 있고, 뭔가 미심쩍다고 생각해온 독자라면 이 책은 요긴한 도움을 줄 수 있다.(다만 저자가 에드워드 윌슨이나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필력을 자랑하는 건 아니어서 정색하고 읽어야 한다는 조건은 붙는다. 개인적인 독후감으로는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더 재미있다.)

 

가령 사회생물학에 대한 대표적인 반대자이자 그에 대한 오해의 유포자이기도 한 스티븐 제이 굴드의 견해를 보자. 그는 <사회생물학>을 비판하면서 자신은 "모든 인간행동의 범주가 가능하지만 어느 것으로도 편향되지 않은 뇌를 상정하는 생물학적 잠재성이라는 사상과 특정 행동적 특질에 해당하는 특정 유전자를 상정하는 생물학적 결정론 사상을 대치시킬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윌슨의 차이를 '생물학적 잠재성' 대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대립으로 규정한다. 열렬한 다윈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굴드는 인간의 문화적 발전에 대해서만큼은 진화의 과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사회과학자들이 주로 이러한 입장에 서는 것은 당연하지만 굴드는 생물학자라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이렇듯 '문화가 전부'라고 보는 입장이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빈 서판 이론'이고, 문화결정론이다.

 

일례로 집단학살에 대한 설명을 비교해보자면, 굴드는 우리의 뇌가 어떠한 경향성도 갖고 있지 않기에 집단학살은 보편적이지 않고 그 분포양상도 무작위적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살인적인 집단의 수만큼 평화로운 집단이 있다"는 게 굴드의 생각이고 예측이다. 굴드가 보기에 결정론적 생물학(사회생물학)은 인간에게는 집단살인 유전자가 있고 그래서 집단살인은 보편적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렇게 보는 사회생물학자는 없다는 점에서 이 역시 전형적인 허수아비 비판이다.

 

 

 

윌슨은 <인간 본성에 대하여>(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유전자는 문화를 가죽 끈으로 묶어놓고 있다. 끈은 상당히 길지만, 가치들은 자신들이 인간의 유전자 풀에 미치는 결과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속박될 것이다"이라고 말한 바 있다.(굴드는 이런 정도의 입장을 유전자 결정론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모든 것은 유전적 성향과 환경의 만남에서 결정된다.

 

굴드의 예측과는 반대로 저자는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김진준 옮김, 문학사상사 펴냄)에서 이용한 데이터를 참고하여 집단학살이 역사가 기록된 이래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일어났다는 걸 밝힌다. 결코 20세기 문명의 발명품이 아닌 것이다. 더불어 "아마도 집단학살의 가장 흔한 동인은 군사적으로 강한 자들이 상대적으로 약한 자들의 당을 차지하려고 하면서 그들의 저항과 맞설 때일 것"이라는 다이아몬드의 지적대로, 집단학살에는 어떤 패턴이 있다. 곧 집단학살이 임의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다른 자들이 갖고 있던 중요한 자원을 확보하려는 행동의 결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에게 그러한 성향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사회생물학의 민감한 이슈 가운데 하나인 강간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회생물학자들은 다른 동물들에서나 인간에게서 강간이 유전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진화적 적응 전략이라고 본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강간이 성적 욕망과 무관하며 단지 잔혹한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힘과 지배의 행동이라고 규정한다. 강간을 '자연적'이라고 여길 경우 강간범을 사회가 용인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만약 강간이 성적 욕망과 무관하다면 피해 여성의 분포는 살인 피해자의 연령 분포와 비슷하게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식력이 가장 높은 연령대에 집중돼 있다. "24세 여성이 강간을 당한 확률은 54세 여성이 당할 확률보다 약 4~20배 정도 높았다"고 보고된다. 강간이 성욕과 무관하다는 주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통계다.

 

강간은 남성에게 진화한 심리적 기전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때나 작동하지는 않는다. 강간이 적응적인 조건부 전략이라는 가설에 따르면 강간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거나 처벌의 가능성이 낮은 조건과 관련성이 있다. 여성의 의지에 따라 짝을 맺을 가능성이 적거나 없는 남성에게서, 그리고 전투 중인 병사처럼 처벌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강간이 발생할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현재의 환경은 우리의 뇌가 진화한 환경과 다르며 강간 같은 행동이 유전자에 이익을 가져다줄 확률도 낮아졌다. 게다가 자주 오해받는 것처럼 어떤 행동이 '자연적'이라고 해서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생물학이 어떤 행동을 진화적 적응 행동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좋지 않은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오해는 근거가 없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진화된 심리의 독재'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

 

<사회생물학의 승리>는 사회생물학에 대한 많은 오해를 불식시킴과 동시에 우리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훨씬 더 심화시켜준다. 교양학술서의 난이도를 갖고 있는 책이지만 "사회생물학의 내용과 역사에 대한 명쾌하고 유창하며 정확한 저작"이라는 에드워드 윌슨의 평가에 어긋남이 없다.

 

13. 05. 17.

 

P.S. 리뷰를 쓴 김에 번역본의 오류도 한두 가지 지적한다. 책의 장제목이나 절제목은 편집자의 판단에 따라 새로 붙여질 수 있지만(가령 9장의 원제는 '사회생물학의 실제 적용(The Practical Applications of Sociobiology)'이지만 번역본에서는 '인간과 사회생물학'이라고 붙여졌다) 9장의 첫 절 제목이 '집단학살'인 건 착오로 보인다. 그런 내용이 안 나올 뿐더러(집단학살은 7장 끝부분에 나온다) 원제는 '사회에 대한 위협(A Danger to society?)'이다. 번역도 한 군데 지적하면, 7장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의 말을 번역본은 이렇게 인용했다.

 

"진화적 관점이 도움이 되는 경우는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것에 대해서 뭔가를 가르쳐줄 때이다. 가령 학살이 어떤 유전자에 의해 유발된다고 해도... 인류 역사는 결정론이 아니라 잠재적 가능성을 입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화적 양식의 모든 특징이 결정적이기보다는 유연성을 보인다는 점을 통에서 우리는 학살과 같은 문화적 현상이 왜 진화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209쪽)

마지막 문장의 '통에서'는 '통해서'의 오자다. 처음 두 문장의 원문은 이렇다.

"An evolutionary speculation can only help if it teaches us something we don't know already - if, for example, we learned that genocide was biologically enjoined be certain genes... but the observational facts of human history speak against determination and only for potentiality."(143쪽)
번역본은 강조한 if-절을 첫 문장과 분리해서 이해했는데, 내 생각엔 첫 문장에 이어지는 것이다. 굴드가 보기엔 집단학살이 특정 유전자에 의해 유발된다는 식이면 진화적 고찰이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류사는 결정론보다는 잠재성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집단학살 유전자'가 집단학살을 유발한다는 식의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게 사회생물학을 비판하는 굴드의 주된 이유인데(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면 사회생물학, 더 나아가 진화생물학은 인간의 행동에 대해 말해줄 게 없다고 그는 믿는다?!), 본문에서 지적한 대로 이건 굴드의 편의적인 이해이자 허수아비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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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시간을 원고를 쓰느라 보내고 겨우 허리를 펴고 한숨 돌린다. 점심을 먹기 전 막간에 새로 나온 책들을 둘러보다가 <지상 최대의 철학 쑈>에 눈길이 멈춘다. 정확하게는 <만화로 보는 지상 최대의 철학 쑈>(다른, 2013)다. 그래픽노블 철학서.

 

 

미국도서관협회 선정 최고의 그래픽노블. 그동안 딱딱한 교실에만 갇혀 있던 철학을 우리 삶 곁으로 끌어내려 친숙하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대의 소크라테스부터 현대의 데리다까지, 역사상 최고의 지성들의 삶과 사유를 한눈에 알기 쉽도록 재치 넘치는 입담과 익살스러운 그림으로 정리한다. 무겁고 고리타분할 거라 생각했던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현대적인 언어와 기법으로 책 한 권에 알차게 풀어냈다.

 

그래픽노블 철학서로는 러셀의 철학(<수학의 원리>)을 다룬 <로지코믹스>(랜덤하우스코리아, 2011)가 좋은 반응을 얻은 적이 있다. 유사한 종류는 '철학 스케치' 시리즈가 <스피노자의 우화>(열린책들, 2010)부터 <들뢰즈와 가타리의 무한속도1>(열릭책들, 2012)까지 나온 바 있지만, 철학사 전체를 다룬 책은 얼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용으로만 보자면 폴커 슈피어링의 <철학 옴니버스>(자음과모음, 2013)의 그래픽노블판이라고 할까. 암튼 책은 흥미로워 보이고, 'Action Philosophers'란 원제가 '지상 최대의 쑈'로 탈바꿈한 것도 창의적인 개명 같다. 범위도 넓어서 소크라테스부터 데리다까지 다루면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나 에인 랜드 등도 포함시켰다. 연휴에 손에 들었다면 더 좋을 뻔했다...

 

13. 05. 17.

 

마이리뷰: 87편
마이리스트: 515편 
마이페이퍼: 3432편 
즐겨찾기등록: 4000명

 

P.S. 점심을 먹어야겠다. 서재 소식 한 가지. 오늘로써 즐찾이 4000명이 됐다. 찾아보니 2010년 9월에 3000명을 넘어섰으니 2년 8개월만이다. 나대로 자축해본다. 5000명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한계치가 있을 것이기에), 애는 써봐야겠다. 그간에 관심을 가져준 알라디너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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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좀 일찍 먹고 새로 나온 책들을 둘러보다가 <갑과 을의 나라>(인물과사상사, 2013)란 제목에 눈이 뜨였다. 이 순발력! 저자는 짐작할 수 있는 대로 강준만 교수다. 책의 부제는 '갑을관계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배해왔는가'. 소개에 따르면 "<갑과 을의 나라>는 그동안 ‘지역감정’, ‘언론 권력’, ‘강남 좌파’, ‘안철수 현상’ 등을 이슈화하며 한국 사회의 명암(明暗)을 추적해온 강준만이 지금껏 대한민국을 지배해왔고 이제는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은 갑을관계를 분석한 책이다." 저자의 '스크랩 공장'이 버티고 있기에 이런 이슈 도서도 단기간에 출하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겸사겸사 저자가 근년에 펴낸 한국사회 비평서 혹은 문화사 관련서들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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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의 나라- 갑을관계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배해왔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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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 상업주의- 정치적 소통의 문화정치학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1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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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의 시대- 강준만이 전하는 대한민국 멘토들의 이야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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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국가와 권력은 어떻게 성을 거래해왔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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