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행사'로 아이와 함께 교보에 나갔다가 손에 든 책은 조르주 보르도노브의 <나폴레옹 평전>(열대림, 2008)이다. 평대에 놓인 책이 눈에 띄기에 러시아 원정에 관한 부분만 읽다가 결국 다른 책 두 권과 함께 계산대에 올려놓게 됐다. 이 세계사적 인물에 대한 본격적인 평전이 거의 없다는 것과 막스 갈로의 다섯 권짜리 책이 평전이 아니라 대하소설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갈로의 소설보다는 보르도노브의 평전이 내겐 더 맞을 듯싶었다. 소개기사를 찾아 스크랩해놓는다. 마침 기사의 제목이 '어른이 되어 다시보는 나폴레옹'이다(세계위인전에서 나폴레옹 편을 읽은 게 어느덧 3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역시나 관심도서인 <나폴레옹 전쟁>(플래닛미디어, 2009)에 관한 기사도 같이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4. 12) 어른이 되어 다시보는 나폴레옹

위인의 여러 기준 가운데 인지도를 근거로 한다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세계위인전의 주인공이겠다.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의 인기는 한국에서 세종대왕이나 정조대왕을 능가한다. 근세 서구 열강의 정복자였다는 프리미엄까지 더해 지구촌 전역에서 그만큼 유명세를 누리는 역사적 인물을 찾기 힘들다. “나폴레옹 사후 오늘날까지 전세계에서 나온 나폴레옹 관련 출판물이 8만여권에 이른다”(이용재 전북대 사학과 교수)는 사실은 그의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루에 한 권 이상 출판된 셈이다.

그러나 이런 익숙함은 사람들에게 나폴레옹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유도한다. 유소년기 큼지막한 활자에 영웅적인 삽화로 소개된 나폴레옹 이상을 알고 있는 성인독자는 얼마나 될까. 한번쯤 역사적 맥락이나 인간적 면모, 또는 리더십이나 영웅으로서 삶을 총체적으로 얽어 나폴레옹을 이해하기 원한다면 프랑스 작가 조르주 보르도노브의 ‘나폴레옹 평전’을 읽어봐도 크게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폴레옹은 1769년 8월15일 코르시카섬의 아작시오에서 태어났고, 1821년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사망했다. 생애는 프랑스대혁명과 중첩된다. 근세 유럽사의 가장 강렬한 현장에서 주역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후세 사람들에 의한 어찌할 수 없는 역사적 ‘분식’이 존재한다. 프랑스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숭상하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코르시카섬이 나폴레옹이 태어나기 1년 전 프랑스령이 됐고, 그가 어려서 프랑스말을 할 줄 몰랐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민족주의적 시각은 좀 안타깝게 느껴진다.

오히려 그에게선 자신이 의식했든 안했든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국제주의자로서 삶이 준비됐고 또 그 길을 기꺼이 걸었다. 프랑스 대혁명을 비롯해 모든 혁명과 진보는 초월과 통합을 꿈꾼다. 그러한 역사의 흐름에 맞닿아 나폴레옹은 자신을 초월하는 삶의 역동성을 보여줬다. 영웅적인 인물은 고단한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때로 그 선택은 영웅적인 삶을 고단한 삶으로 바꾼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안치용기자)  

중앙일보(09. 08. 15) 울름에서 워털루까지, 전쟁 천재 10년의 기록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 관한 책 한 권 쯤 안 읽어본 사람이 있을까. 어려서 읽은 위인전이든, 전쟁을 다룬 역사책이든, 인물에 관한 평전이든, 내면을 다룬 소설이든 나폴레옹에 관한 책은 너무 많아서 탈이다. 1821년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5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이래 지금까지 약 190년 동안 수없이 많은 책이 나왔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영국 작가 버나드 콘웰의 서재에 있는 나폴레옹 관련 서적만 2000종이라고 한다.

세계적 군사 전문 출판사인 영국의 오스프리가 2004년 출간한 이 책은 나폴레옹의 침략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799년 11월 이집트 원정에서 돌아와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발표한 포고문에서 나폴레옹은 “문제는 더이상 국토 방위가 아니라 적국의 침공이다”고 선포한다. 그 때까지의 전쟁이 프랑스 혁명을 수호하기 위한 방어전쟁이었다면 이후의 전쟁은 혁명의 이상을 유럽 전역으로 전파하기 위한 정복전쟁이 될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1805년 오스트리아와 맞붙은 울름전투에서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가 된 1815년 영국과의 워털루 전투까지 나폴레옹 제국의 흥망성쇠를 10년간의 전쟁을 통해 보여준다. 각 전투의 전개 과정과 정치·외교적 배경은 물론이고 전투에 참가한 각국 지도자와 군사 지휘자들의 복잡미묘한 관계 등이 각종 도표와 지도, 그림, 초상화 등과 함께 연대순으로 정리돼 있다. 아울러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병사과 종군악사, 배우, 외교관, 예술가 등에게도 시선을 돌려 그들이 직접 경험한 전쟁의 실상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전술 교과서이면서 동시에 전쟁의 참상과 부조리를 고발한 반전(反戰) 교과서로 읽힐 수 있는 이유다.

인간 나폴레옹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프랑스 작가 막스 갈로가 쓴 5권의 대하소설 『나폴레옹』을 권하고 싶지만 정치·군사·행정의 천재 나폴레옹의 진면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다. 고증에 충실하다 보니 쉽게 읽히지 않는 점은 단점이다.(배명복 논설위원) 

11. 05. 05.  

P.S. 사실 내가 더 바라는 건 러시아 원정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해주는 책이다. 알다시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기 위해서도 배경지식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온 책으론 도미니크 리벤의 <나폴레옹에 맞선 러시아>(2011)가 눈에 띈다. 조만간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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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11-05-05 20:15   좋아요 0 | URL
어린이날 행사로 서점에 가셨으니 일석이조시네요.^^ 저는 오늘 헌책방에 갔었는데 바흐친의 <예술과 책임>, <프로이트주의>, 옹프레의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을 저렴하게 구입해서 흡족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의 역자를 보고 약간 미심쩍어 하는 중입니다... 이번엔 잘 하셨겠지요?^^

로쟈 2011-05-05 20:42   좋아요 0 | URL
아이가 원한 거였습니다.^^; 옹프레의 책은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는데, 다섯 권이 다 나온다면 나름대로 유의미한 소개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5-07 20:40   좋아요 0 | URL
러시아 원정 때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입장을 보면 동맹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로쟈 2011-05-08 18:36   좋아요 0 | URL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건 일반법칙 같아요...

카스피 2011-05-07 23:59   좋아요 0 | URL
코르시카 섬이 아마 이탈리아 영토였으니 나폴레옹은 이태리계 프랑스인이라고 할수 있을까요? 대체로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정치가들중에 자국 출신이 아닌 사람이 많다고 하더군요.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히틀러인데 원래 독일사람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로쟈 2011-05-08 18:39   좋아요 0 | URL
이탈리아란 나라가 전통적으로 국가보다는 지역을 따진다고 하니까 '이탈리아계'란 말은 별 의미가 없는 듯해요. 코르시카의 나름 귀족가문 출신이라는군요...
 

사드의 <규방철학>(도서출판, 2005)이 새 번역본으로 나왔다. <밀실에서나 하는 철학>(민음사, 2011). <안방철학>(새터, 1992)을 원조로 치면 세번째 번역이다. 같은 제목을 피하기 위해 좀 비튼 것이겠지만 <밀실에서나 하는 철학>은 '격조'가 좀 떨어지는 제목이다('밀실'이라니? 밀실에서 궁리한 제목일까?). 이 참에 사드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절판된 책이 많아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은 몇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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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의 규방철학
D.A.F. 사드 지음, 이충훈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5년 8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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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에서나 하는 철학
사드 지음, 정해수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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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덕의 불운
싸드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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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범죄
D.A.F. 사드 지음, 오영주 옮김 / 열림원 / 2006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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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이번주 교수신문에서 시어도어(테오도르)딘의 <인간의 내밀한 역사>(강, 2005)에 대한 기사를 읽고 책을 챙겨놓기로 했다. 서양사학자 이영석 교수가 자신에게 역사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책의 의의를 재발견하게 돼 반갑다(알라딘의 상품 이미지 넣기는 언제쯤 정상화되는 것일까?).

  

교수신문(11. 05. 02) '시어도어 젤딘' 혹은 감성과 삶의 역사

내가 옥스퍼드의 역사가 시어도어 젤딘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1995년 무렵인가 런던의 한 서점에 들렀다가 베스트셀러 서가에 진열된 책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샀다. 이 책의 모티브는 만남과 대화다. 젤딘은 저명한 방송인에서부터 어린 여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랑스 여성과 대화를 나누면서 더 넓은 인간 경험의 세계로 나아간다.

사실 이 책은 시작도 끝도 분명하지 않다. 25개 장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읽어도 책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다. 한동안 나는 이 책에 깊숙이 빠져 있었다. 그의 재치 있는 농담이 한 줄기 섬광처럼 가슴에 파고드는 경우도 있었다.  



이 책 4장 ‘일부 사람들이 고독에 대해 면역성을 얻게 된 경위’를 보자. 그는 콜레트라는 세무서 직원과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장학금을 받아 상급학교에 진학해 나중에 공무원이 되었다. 비록 성공한 여성이지만, 직장에서 승진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남성의 독점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과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면서도 다른 사람의 관심을 얻으려고 한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고독이다. 이 시점에서 젤딘은 인간의 삶에서 외로움이 갖는 의미에 관해 역사의 바다를 항해한다.

고독은 오래 전부터 낯익은 것이다. 힌두교 신화는 창조주가 외로움 때문에 이 세계를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옛날부터 사람들은 고독에 대한 면역을 기르려고 노력했다. 은자의 삶을 동경하고 자기성찰에 매진하기도 했다. 유머와 웃음으로 고독에 대한 면역을 기르거나 내면적인 신앙을 갖는 것 모두가 고독 면역법의 전통이 되었다.

이와 달리 현대인은 외로움을 두려워한다. 여기에서 젤딘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외로움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일반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거꾸로 생각하면 외로움은 모험이다.” 혼자 있을 권리나 예외로 남을 권리 또한 다른 사람과 만나 교제할 권리 못지않게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 그 때 비로소 고독은 고통일 뿐이라는 일반론을 떨칠 수 있다.

나는 젤딘의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의 이전 책들도 읽었다. 원래 젤딘은 19세기 프랑스 정치사를 전공한 사람이었다. 그의 연구가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프랑스인의 일상생활에 녹아 있는 감성과 정감을 다룬 다섯 권짜리 책 <프랑스 1848-1945>를 펴낸 이후의 일이다. 여기에서 그는 프랑스인 특유의 감성과 정감을 탐사한다. 각권은 ‘야망과 사랑’, ‘번민과 위선’, ‘지성과 자존심’, ‘정치와 분노,’ ‘맛과 부패’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들 부제만 보더라도 그의 작업이 기존 역사학의 통념을 과감히 벗어나려는 시도임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젤딘은 일반적인 역사서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실험을 계속했다. 그가 역사서술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지금 여기에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해 성찰하는 데 있다.

박식한 역사가 젤딘은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인간의 내밀한 역사'에는 동양의 지적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다. 그는 동아시아 사람들의 감성에 대해서도 자신의 스케치를 보여준다.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세계는 중국인의 '恥', 한국인의 '恨', 일본인의 '忍'으로 대변된다. 이는 각기 부끄러움, 후회와 쓰라림, 더 나은 시대를 대망하는 기다림을 나타낸다. 젤딘에 따르면, 동아시아인의 감성은 유럽인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포용력이 있으며 부드럽다.

결국 젤딘이 추구한 것은 삶의 의미에 대한 그 자신의 해답을 얻는 작업이다. 그는 이성과 지식보다 감성과 정감의 영향을 받는 삶의 영역을 더 중시한다. 그의 저술에서 역사지식은 인간의 감성이나 삶에 관한 갖가지 질문의 해답을 추구하는 여정의 방향타이자 나침반이다. 그는 전문적인 역사지식을 추구한다기보다, 그 지식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젤딘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오랫동안 계급이나 산업화 같은 거시적인 주제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다가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지켜보면서 이들 주제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었다. 젤딘의 책은 지적 방황을 거듭하던 내게 역사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알려준 나침반이었다. 나는 역사 연구의 지향점이 삶의 성찰에 있으며, 그것은 일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에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요즘 나는 의식적으로 삶의 섬세한 측면을 확대해 보려고 노력한다. 알게 모르게 젤딘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이영석 광주대 서양사) 

11. 0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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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demian 2011-05-07 19:57   좋아요 0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입니다. 로쟈님 서재에서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이 책 재미있습니다^^

로쟈 2011-05-07 22:17   좋아요 0 | URL
저도 원서와 같이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원전이 정답이 아닌 이유

지난주에 체르노빌 원전 사고 25주기에 관한 기사를 포스팅했는데, 러시아 전문가이기도 한 와다 하루키 교수의 칼럼이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체르노빌 사고와 관련한 책이 더 출간되기를 바란다. 

   

경향신문(11. 05. 03) [와다 하루키 칼럼]‘이유있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동일본 대지진에 이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를 겪고 있는 우리는 4월26일 체르노빌 원전 사고 25주기를 맞았다. 체르노빌 사고 후 25년이 지나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체르노빌 사고는 옛소련에서 개발한 흑연감속로형(RBMK형)의 원전 사고로 이 모델의 특징은 격납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4기의 원자로 가운데 4호기의 정기검사를 위해 가동을 멈추려는 사이 발전 실험을 해버렸다. 긴급정지를 시도했지만 이미 늦었다. 폭주한 원자로는 대폭발을 일으켜 다량의 방사성물질을 대기 중에 뿜어냈다. 타고 있던 4호기는 필사적인 노력 끝에 석관에 봉인됐다. 작업에 투입된 많은 이가 숨졌다. 사고 직후 반경 30㎞ 지역의 주민 13만여명에게 퇴거 명령이 내려졌다. 방사선에 피폭된 어린이들이 속출했다. 고방사능이 검출된 주변지역 주민 27만명도 피난했다. 그야말로 묵시록적인 대재앙이었다.

체르노빌 사고는 소련의 국가사회주의체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때 소련에는 고르바초프라는 55세의 젊은 공산당 서기장이 등장,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제창했다. 필자는 1987년 출간한 <내가 본 페레스트로이카>에서 체르노빌 사고가 고르바초프 정치의 ‘결정적인 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2006년 공개된 고르바초프 시대의 정치국 의사록으로 입증됐다.

통제받지 않은 학자·정부 부처 탓
사고 발생 사흘 후인 4월29일 공산당 정치국이 특별협의회를 열었다. 고르바초프는 방사능의 원천 봉인을 주요 과제로 보고 루이시코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사고대책반을 꾸린다. “성실함과 정보 공개가 없으면 안된다”며 “파국을 초래한 원인을 조사할 것”을 주문한 고르바초프는 사고 후 18일째인 5월14일 TV를 통해 사고 상황 및 정부의 대응책을 설명했다. 그후 5월22일 그는 정치국에서 불같이 화를 냈다. “우리는 습관과 놀라울 정도의 무책임에 맞닥뜨리고 있다. 사고는 모든 사람과 연관돼 있다. 본인의 기술적 의무를 뛰어넘어 넓게 보지 못하는 관료주의에 직면하고 있다. 만인이 알아야 한다. 무책임하고 엉터리인 자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음을.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 세계에 감추지 말고 말해야 한다.” 고르바초프는 원자력학의 권위자로 쿠르차토프 원자력연구소 소장이자 과학아카데미 총재였던 알렉산드로프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 연구소의 ‘위험한 독점’을 비판했다.

그는 6월5일에도 “체르노빌 사고는 장관이나 중앙위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관련돼 있다”면서 “지금 가동 중인 것은 안전성이 최대한 확보돼야 한다. 원전 관련 사안을 인민과 말하는 것을 피해선 안된다. 달콤한 말은 삼가고, 감추지 말고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6월16일 공산당 중앙위원 총회에서 고르바초프는 체르노빌 사고를 언급하며 “경제 국면뿐만 아니라 전 사회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시급하다”는 새로운 전략을 내놓았다.

체르노빌 사고 원인을 조사한 정부위원회의 보고가 7월3일 정치국에서 검토됐다. 위원회는 사고 원인이 위험한 RBMK형 원자로에 있다고 결론을 냈다. 정치국 토론은 그렇게 위험한 원전을 왜 계속 만들어왔는지에 초점을 모았다. 고르바초프는 말했다.  

“우리는 30년간 당신들(원전 전문가, 관련 부처)로부터 모두 안전하다고 들어왔다. 당신들은 신으로 떠받들어지길 바랐다. 거기서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 왜냐하면 모든 정부 부처와 연구기관은 컨트롤 밖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파국이었다. 지금에 와서도 당신들에게서는 결론에 대해 생각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무엇보다 사실을 확인해야 함에도 이래저래 속이려 한다.”

7월31일 고르바초프는 하바로프스크에서 페레스트로이카는 ‘혁명’이라고 단언했다.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그는 사회 전체의 페레스트로이카, 즉 혁명적인 정신 개혁을 촉구한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에 직면한 일본 정부와 국민에게서 아직 그러한 반성, 정신적 혁명을 촉구하는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 옛소련에서는 사고 원인으로 격납용기가 없는 원전 모델이 지목됐다. 사고 이후 일시적으로 고조된 원전 비판 목소리가 후퇴, 원자력 르네상스라 할 수 있는 원전 붐이 일었다. 그 배경엔 ‘소련 모델은 너무 낡았고 안전하지 않다. 서구 모델은 신식으로 안전하다’는 논리가 자리한다. 그러나 격납용기가 있는 신형 모델 원자로가 후쿠시마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소련 지도부의 토론 내용을 보면 고르바초프가 원자력 학자와 정부 관련 부처가 비판을 허락하지 않는 독립왕국을 구축, 안전신화로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해온 점을 고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 뿌리는 체제의 차이를 뛰어넘어 동일하고 영원하다고 본다.

원자력학자와 관련 부처는 전력회사와 결부돼 있다. 일본 정부 산하의 원자력안전위원회에는 원자력학자들이 모여 있다. 위원장은 마다라메 하루키 도쿄대 교수다. 대학으로 옮기기 전 그는 도시바의 원자력부 사원이었다. 원자력안전보안원은 경제산업성에 속해 있다. 데라사카 노부아키 원장은 관료다. 도쿄전력에 경제산업성 차관이 낙하산으로 내려온다. 원자력발전소를 컨트롤하는 2개의 조직은 원전이 안전하다고 선전하는 조직이었다. 마다라메는 원전 가동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에서 전력회사 측의 증인으로 활약해온 인물이다. 이번 사고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사고 당일 모이지도 않았다. 또한 일주일 이상 지난 후에야 사고 현장에 직원을 파견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체르노빌 사고 때 쿠르차토프 원자력연구소의 제1부소장이자, 현장에서 사고 수습에 매달린 레스가프트라는 인물이 있다. 옛소련의 ‘원자력 마피아’ 일원이었다. 그는 2년 후인 1988년 4월27일 자살했다. 전날은 사고 2주기였으나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는 체르노빌 사고와 관련한 단 한 줄의 기사도 없었다. 이게 그의 자살 원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체르노빌 현장에서 진두지휘를 한 그는 고농도의 방사성물질을 뒤집어썼다. 죽음을 각오한 그는 죽을 장소, 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프라우다는 4월30일 그의 죽음을 보도했다. 그리고 5월20일에는 두 개 면에 걸쳐 그의 유고(遺稿) ‘이 일에 대해 말하는 나의 책무’를 실었다.

보호·관리 시스템 결함 경고 무시
그의 글은 사고 당시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소속 부처의 공산당회의에 참석한 그는 “우리 부에서는 ‘만사 순조’라는 보고에 익숙했지만 이 보고는 특히 승리의 전투 보고와 닮아 원자력산업·원자력학의 찬가를 부르는 것”이었다고 적고 있다. 보고의 마지막에서는 체르노빌 사고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가 경솔한 짓을 저질렀으나 원자력의 전진은 멈추지 않는다”는 식으로 결론지어졌다는 것이다. 회의 후 그는 비행기를 타고 키예프로 날아갔다. 공항에서 사고 마을로 향하던 중 자신은 이 사고가 ‘전 지구적 사건’, 폼페이 멸망과 같은 ‘인류사에 남을 사건’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사고수습대책팀의 책임자가 됐다.  

“체르노빌 원전에 도착하니 나는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체르노빌 사고는 수십년간 취해온 잘못된 경영방식의 피날레, 그 모든 것의 도달점이라고. 물론 체르노빌 사고에는 구체적인 책임자들이 있다. 이 원자로의 보호·관리 시스템에는 결함이 있고, 이를 아는 수많은 연구자들은 그 결함을 지적했다. 그러나 건설책임자는 추가공사를 꺼리고 보호·관리 시스템을 고치는 일을 서둘지 않았다.”

경고했던 사고가 터졌고, 그는 책임을 진 것이다. 그의 회상에는 체르노빌 사고에 맞서 싸운 사람들에 대한 추억도 담겨 있다. “나는 몇 번이고 4호기의 매우 위험한 구역에 들어갔다. 나는 사람들에게 투입될 곳의 상황을 설명하고 나를 도와줄 사람과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대열을 떠나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않은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비극이 도사렸지만 그들이 재빠르게 움직여줘 기분이 고양됐다.”

올해 4월26일 체르노빌 25주기 기념식에서는 후쿠시마 사고가 언급됐다. 체르노빌 사고현장에서 일한 바 있는 한 명이 일본 TV에 “후쿠시마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은 우리의 형제다. 힘내라”고 말했다. 인류는 두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교훈을 살려야 한다. 

11.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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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에 뒤적거린 책은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을유문화사, 2011)이다. 도서관에서 <교양인의 책읽기>(해바라기, 2004)를 대출해서 비교해가며 몇 장을 읽었는데, 번역이 더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진 않아서(블룸의 문장을 만족스럽게 옮기는 것이 가능한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원서를 주문했다. 완역본이 아니어서 제쳐놓았던 <세계문학의 천재들>(들녘, 2008)도 할인판매를 하길래 주문하고(예전에 도서관에서 잠깐 빌려서 보긴 했는데, 그 또한 원서를 구해야 할지는 더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오늘 잠시 들여다본 책은 마이클 폴리의 <행복할 권리>(어크로스, 2011)다. 제목대로라면 관심이 덜했을 텐데, 원제가 '부조리의 시대'이고, '행복의 부조리'에 대한 성찰이 주제다. '부조리'라면 또 관심사에 든다. 당장은 아니지만 대린 맥마흔의 <행복의 역사>(살림, 2008)와 대니얼 길버트의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김영사, 2006)와 같이 묶어서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존의 미리보기를 참고하여 앞부분만 읽어보니 '당신이 찾는 행복은 없다'는 1장의 원제는 '행복의 부조리'이다. 번역본에서는 구분이 사라졌지만 전체 4부 구성에서 1부가 문제의 제기(The Problems)이고 1장이 1부에 해당한다. 무엇이 '행복의 부조리'인가? 행복 추구의 모순을 잘 정리해준 이는 존 스튜어트 밀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 자신의 행복 이외에 다른 대상에 정신을 집중하는 사람들... 만이 행복하다... 그렇게 다른 어떤 것을 목표로 하는 도중에 그들은 행복을 발견한다... 행복이 아니라 다른 어떤 목적을 삶의 목표로 설정하는 것만이 행복해지는 유일한 기회다."(14쪽) 

즉 행복을 목표로 삼아서는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 '행복의 부조리'이다. 그것은 오직 부산물로서만 얻어진다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말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도 행복은 어떤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고 '행위'였다. 그리고 '행복'이라 번역되는 '에우다이모니아'는 오히려 '번영(flourishing)'이란 의미에 더 가깝다('행복학'이란 조어에 가장 강력한 후보는 '에우다이모닉스Eudaimonics'이다. 번역본에서 '에우다이모닉'이라고만 음역한 것은 좀 인색하다).   

히말라야에 있는 부탄왕국에서 전국행복위원회라는 걸 만들었는데, 저자가 일러주는 바에 따르면 그 위원회의 첫번째 임무는 행복을 정의하는 것이었다고. 하지만 역시나 만만찮은 일이어서 위원회의 대변인이 이렇게 토로했다.  

"지난 세기에는 젊은이들에게 영웅이 누구인지 말해보라고 하면 거의 예외 없이 왕을 꼽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랩 음악가를 꼽는 사람이 50%에 달한다."(12쪽) 

 

호응관계가 맞지 않는 듯싶어 확인해보니 '랩 음악가를 꼽는 사람이 50%'란 말은 'rap artist 50 Cent'를 잘못 옮긴 것이다. 50 Cent는 1975년생의 래퍼다. 요즘 젊은이들의 꿈은 왕이 아니라 래퍼라는 것.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되는 만큼 행복을 정의하기란 요령부득이다. 플로베르의 한마디가 그래서 핵심을 짚은 듯이 보인다.  

"어리석음, 이기심, 건강은 세 가지 선결조건이다. 하지만 어리석음이 부족하다면 다른 것이 있어도 소용없다."(15쪽)  

그대, 행복을 원하는가? 일단은 어리석고 볼 일이다... 

11. 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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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2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2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5-02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그럼 전 행복해질 가능성이 농후하군요. 어리석은 건 어디 가서 빠지지 않으니까요 ㅋㅋ 죄송합니다. 그냥 한번 웃자고 해본 소립니다. 그래도 잠깐 행복했네요^^

로쟈 2011-05-02 09:30   좋아요 0 | URL
이기심과 건강을 잊으신 건 아닌지요?^^

비로그인 2011-05-02 15:03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아무튼 행복한 5월을 보내시길...^^

델러웨이부인 2011-05-02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cent가 50%로? 재밌네요~ ^^;;;

로쟈 2011-05-03 20:31   좋아요 0 | URL
^^;

두비 2011-05-0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구.... 로쟈님 비롯해 독자여러분께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재판 찍을 때 꼭 고치겠습니다. (이런 실수는 출판사가 할 말이 없습니다. ㅠㅠ 재판 찍을 기회가 오면 좋겠네요.)

로쟈 2011-05-03 20:31   좋아요 0 | URL
재밌는 책인데, 옥에티가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