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요즘 알베르 카뮈의 작품들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자연스레 그의 <페스트>를 다루게 됐다(언젠가 <최초의 인간>도 이 칼럼에서 다룬 적이 있다). 번역본은 책세상판으로 읽었는데, 김화영 선생의 이 번역본은 민음사판으로 나와 있다. 부분적으로 같이 읽은 건 이휘영 선생의 번역이다(주인공의 이름을 '리외'로 옮긴다). 아마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최초의 번역본이지 않았을까 싶다. 고등학생 때 제일 처음 읽었던 건 주우 세계문학 시리즈의 <페스트>였다(돌이켜 보면 꽤 괜찮은 리스트의 전집이었다).

 

 

 

한겨레(13. 07. 08) 카뮈의 인간에 대한 ‘야심’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1947)는 애초에 한 가지 감옥살이를 다른 감옥살이로 표현해보려는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최대의 걸작’이란 평판을 얻은 이 소설에서 페스트로 인한 오랑 시민들의 ‘감옥살이’는 일차적으로 작가와 동시대인들이 겪은 전쟁의 은유였다. 거기서 더 나아가 카뮈는 그 은유를 삶의 일반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하고 싶어 했다. 페스트는 죽음이란 인간 조건 자체를 비유할 수도 있다. 그 죽음은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의사 리유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 곧 ‘익숙하지 않은 죽음’이다.

 

작품의 또다른 주요 인물인 타루와의 대화에서 리유는 자신이 의사라는 직업을 그냥 한번 해볼 만한 직업 같아서 택했다고 말한다. 소위 ‘추상적인’ 선택이었다. 의사가 된 이상 사람들이 죽는 장면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한번은 어떤 여자가 죽는 순간에 “안 돼!”라고 외치는 걸 듣는다. “그때 나는 절대로 그런 것에 익숙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라는 게 그의 고백이다. 이 죽음과의 싸움, 죽음에 의해 좌우되는 세계의 질서와의 싸움은 일시적인 승리를 포함할지라도 언제나 패배할 수밖에 없다. 다만 리유는 불의와 마찬가지로 그런 죽음과는 타협하지 않고자 한다. 그것이 시시포스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반항’이다.

 

리유와 몇몇 동료가 환자를 치유하고 페스트의 확산을 막기 위해 결사적으로 애쓰는 가운데서도 페스트는 막무가내로 도시를 점령하고 사람들을 쓰러뜨린다. 많은 희생자들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한 어린아이의 죽음이다. 죄 없이 죽어가는 자의 오랜 고통 앞에서 주변은 신음과 흐느낌으로 채워진다. 페스트를 신이 내린 고통으로 수용하려는 파늘루 신부에게 리유는 격렬하게 외친다. “이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항의에 대한 신부의 대답은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라는 것이었다.

 

리유와 파늘루 신부와의 논쟁 장면은 흡사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 편을 방불케 한다. 이반 카라마조프 역시 신의 섭리가 무고한 어린아이의 고통을 대가로 구현되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이반의 논리를 조시마 장로의 가르침과 대비하면서 여전히 인간의 지성을 넘어서는 사랑과 섭리의 편을 들고자 하지만 카뮈의 선택은 단연 파늘루 신부가 아닌 리유 쪽이다. 그렇더라도 어린아이의 무고한 고통과 신의 섭리에 대한 반항만을 주제로 삼았다면 <페스트>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아류작에 머물렀을 것이다.

 

 

카뮈는 타루와 리유의 대화 장면을 통해 한걸음 더 나아간다. 타루가 자신의 관심사는 신이 없이 어떻게 성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라고 말하자, 리유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연대의식을 느끼며 자신의 관심은 그저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응답한다. 그러자 타루는 “그럼요, 우리는 같은 것을 추구하고 있어요. 다만 내가 야심이 덜할 뿐이죠”라고 정리한다. 만약 두 사람이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타루의 ‘성인’은 리유에게 ‘인간’이 된다. 타루에게 성인이라고 불릴 만한 이가 리유에게는 그저 인간일 뿐이라면 리유가 인간에 대해 훨씬 더 높은 기대와 야심을 가진 셈이 된다. 리유를 작가적 분신으로 내세운 카뮈는 대단한 야심가였다.

 

13.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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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도 마저 골라놓는다. 이번주엔 작가들로만 골랐다. 먼저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 '조르주 페렉 선집'의 세번째 책으로 <잠자는 남자>(문학동네, 2013)가 출간됐다.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문학동네, 2012)와 <인생 사용법>(문학동네, 2012)에 뒤이은 책이다.

 

 

<잠자는 남자>는 <인생 사용법>에 비하면 '애교스런' 분량으로 1967년작. "작가의 젊은 시절을 가늠하게 하는 사회학적 자전소설로, 이십대 중반 주인공 '너'의 파편화된 의식이 좇는 (반)의식 상태의 기행을 이인칭으로 풀어낸 독특한 소설이다. 1974년 베르나르 케이잔 감독과 공동 연출하여 당해 최고의 신진 영화인에게 수여되는 장 비고 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국내에 소개된 페렉의 책은 6종이 됐다(2종은 중복돼 나왔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실험적 작가의 대표작들을 한국어로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이 생각하면 좀 놀랍기도 하다.

 

 

 

그만큼 놀라운 건 독일 작가 W. G. 제발트의 책들이 번역되고 있다는 점. 이번엔 <공중전과 문학>(문학동네, 2013)이 출간됐다. 국내에 소개된 네번째 책으로 소설이 아니라 문학론이다.

 

1997년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진행했던 강연과 후기를 정리하여 묶은 '공중전과 문학', 강연 주제의 문학적 사례인 작가 논문 '알프레트 안더쉬'로 구성되어 있다. 두 텍스트를 관통하는 주제는 전쟁과 폭력 앞에서 입을 닫고 역사수정주의를 암묵적으로 지지했던 전후 독일문학에 대한 비판이다. 이미 전세가 기운 이차대전 말 영국군의 공습으로 희생된 수많은 독일인에 대해, 독일 국가와 문단 전체가 애도를 회피하고 과거를 수정하는 일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꺼내지 못했던 민감한 주제를 담은 이 책은, 출간 당시 독일 사회의 격렬한 반응과 함께 이른바 '제발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작가가 영국 대학에서 독일문학을 가르쳤던 독특한 처지에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독일 문단에 대해 거리를 두는 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발트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수전 손택이 평도 그렇다.

섬세하고 농밀할 뿐만 아니라 사물의 물성에 통달한 듯한 제발트의 언어는 한마디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 제발트처럼 국외에서 영원히 거주한 독일 작가만이, 그렇게 설득력 있는 고상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아무튼 아직 본격적으로 읽지는 않았지만 관련 연구서까지 모으게 만들 만큼 제발트는 뭔가를 기대하고 꿈꾸게 하는 작가다(내년쯤에는 강의에서도 다루고 싶다).

 

 

그리고 중견작가 김원우. 그의 장편소설 <부부의 초상>(강, 2013)이 출간됐다. 내가 읽은 건 산문집 <산책자의 눈길>(강, 2008)이 마지막이었던 듯한데, 그 사이에 <돌풍전후>(강, 2011)도 있었다(제목과 달리 '돌풍'을 일으키진 못했다). 이번에 나온 소설은 얼핏 <모노가미의 새 얼굴>(솔출판사, 1996)을 떠올리게 한다. 결혼 문제를 다룬 소설일 거라는 짐작 때문이다. 책은 <스크린 앞에서>란 단편과 <부부의 초상>이란 장편으로 구성돼 있는데, 두 작품은 연작이다. 작가의 일러두기에 따르면, "이 책의 내용은 철두절미하게 우리의 세태, 제도, 인심, 풍속 등을 지은이 나름의 안목대로 그럴싸하게 조감해본 조작물"이다. 소개는 이렇다.

전작 <돌풍전후> 이후 2년 반 만에 내놓는 김원우의 장편소설. 작가 김원우의 소설 문장은 흔히 만연체로 이야기되곤 하지만, 그 풍성한 어휘와 맛깔 나는 말의 리듬감은 세상살이의 입체를 한껏 부각하면서 소설만이 그려낼 수 있는 인간 진실의 조망을 실답게 성취한다. 씹으면 씹을수록 진미가 우러나오는 특유의 문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김원우 문학의 인장으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이번 장편 <부부의 초상>에서는 전작 <돌풍전후> 때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사투리를 소설의 문체에 끌어들이고 있는데, 작품의 무대인 대구와 경북 일원의 사투리가 인물들의 대사는 물론이고 그쪽 대구의 신문사에서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퇴직한 소설 화자의 지문에까지 버젓이 올라 있는 형편이다.

그 만연체 문장을 읽어나가는 기분이 어떤지 궁금한 독자라면 무더위 속에서 잘근잘근 읽어나가도 좋겠다...

 

13.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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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개된 저자의 책 가운데 눈에 띄는 책을 고르는 '이주의 발견'이다. 이번 주에는 에스더 M. 스턴버그의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더퀘스트, 2013). 검색해보니 저자도 <내면의 균형>이란 책에 이어서 두번째 책인 듯하니 '신진 저자'다. 그럼에도 '신경건축학'이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가고 있다고 소개된다.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는 바로 그 신경건축학의 문제의식과 적용을 보여주는 책이다. 원제 자체가 <힐링 스페이스>(원서의 표지가 번역본보다는 '힐링'에 충실하군).

 

 

사실 공간이 바뀌면 마음도 달라진다는 건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도 부합한다. 신경건축학은 그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소개는 이렇다.

스턴버그는 지금껏 감각, 정서, 면역체계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들을 밝혀낸 심리학과 뇌과학, 의학 연구의 역사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 첫머리에 나오는 한 가지 예는 바로 ‘창밖으로 자연 경관이 내다보이는 병실의 환자들이 창밖으로 콘크리트 벽만 바라봤던 환자들보다 빨리 나았다’는 1980년대 연구다. 쾌적한 풍경이 보인다고 해서 어떻게 병이 빨리 나을 수 있었을까? 저자는 감각의 뇌과학적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일련의 장소와 상황들을 탐색하며 이 질문의 답을 찾아나간다.

정재승 교수는 추천의 글에서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을 신경건축학이라고 정의했다.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책일까. 역시나 정재승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1)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경험과 직관, 관습으로 축적되어 온 건축학적 전통이 실제로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 결과를 일러주며, 건축학이 좀더 '증거 중심의 학문'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게 해준다. (2)신경과학을 탐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뇌에 대한 이해가 건축학이라는 경이로우면서도 중요한 분야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제공해줄 것이다. (3)누구에게나: 이 책은 내 삶이 공간을 뇌와 마음, 힐링과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는 유익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자연스레 궁금해진 건 한국인의 대표 주거공간인 아파트를 신경건축학적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마침 박철수의 <아파트>(마티, 2013)도 지난주에 출간됐다. 박해천의 <콘트리트 유토피아>(자음과모음, 2011),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후마니타스, 2007)과 함께 묶어서 읽어볼 만한 책. 저자는 아예 한국을 '아파트단지 공화국'이라고 일컫는다.

 

우리야 으레 아파트에 사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기이하게 여긴다(대단위 아파트를 많이 지었던 사회주의 시절 러시아도 우리만큼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보통 도시의 독신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공간, 정도가 아파트에 대한 인상인 듯하다(그러니 결혼한 사람들이 아파트라는 몰개성적 공간에 거주한다는 게 이상하게 보이는 것. 우리는 땅값이 비싸다는 걸 고려해야 할까). 아무튼 중요한 건 경제성이나 생활의 편이성이란 이유 말고, 신경건축학적으로도 아파트란 공간이 살 만한 곳인지,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는 것...

 

그런 생각을 아파트 15층에서 적는다. 지금이야 적응이 됐지만 오래전 아파트 14층에 살 때 처음 몇 달 동안 '공간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기억도 문득 떠오른다. 공중에서 수감생활하는 기분이었다...

 

13.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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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강의 일정이 빼곡해서 평일에도 따로 고를 만한 여유가 없었다. 한여름 무더위에 함께 읽을 만한 책이 어떤 게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일단은 시작해보기로 한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김숨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현대문학, 2013)이다. 지난 봄에 나온 소설인데(나는 미처 나온 줄도 몰랐다), "이윤과 효율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서 진화에 대한 맹목과 공생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처절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에 대한 리얼하고도 불편한 보고서"라고 한다. 여름에 나온 소설도 고르자면 정이현의 장편 <안녕, 내 모든 것>(창비, 2013)도 눈에 띈다. "김일성이 죽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90년대 중반 강남 반포에서 함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세 친구들의 이야기". '내 모든 것'이라는 제목이 작각의 애착과 열정을 말해주는 듯하다. 거기에 본격 여름나기 소설을 더 얹자면 정유정의 <28>(은행나무, 2013). 나는 <7년의 밤>(은행나무, 2011)을 구입하고서도 (어디에 둔지 몰라) 못 읽어봤기 때문에 <28>은 내가 만나는 작가의 첫 소설이다.

 

 

 

아마도 많은 독자가 책장을 넘기고 있을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 2013)도 이 여름의 책이다(서평을 쓰기 위해 나도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아무려나 내일까지는 완독할 참이다). 세계문학전집 쪽으로는 최근에 나온 <미친 사랑>(시공사, 2013)에 이어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열쇠>(창비, 2013)가 출간됐다. 창비식 표기로는 '타니자끼 준이찌로오'가 "70세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56세의 남편과 45세의 아내 사이의 적나라한 섹스를 그려 당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작품". 이열치열의 독서가 될 듯하다. 러시아문학 작품으로는 불가코프(불가꼬프)의 <개의 심장>(열린책들, 2013)이 재출간됐다. '개인간'을 다룬 1925년작으로 러시아에서는 영화로도 유명한 대표적 풍자문학.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윤명철의 <고구려, 역사에서 미래로>(참글세상, 2013)다. 고구려사 가이드에 해당하는 책인데, "‘현장답사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저자가 고구려의 주몽에서 광개토대왕, 장수왕, 그리고 멸망에 이르기까지 번성하고 화려했던 고구려를 재조명하고 한민족의 뿌리를 찾아보고자 했다." 찾아보니, 어린이용과 소설로는 책이 좀 나와 있지만 성인을 위한 교양서는 드문 듯싶다.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고구려왕조실록>(웅진지식하우스, 2004)이 기본서일까. 고구려 고분벽화에 관한 책으로는 전호태의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여행>(푸른역사, 2012)를 길잡이 삼아볼 수 있다.

 

 

눈길을 밖으로 돌려보면, 굳이 여름에 읽으란 법은 없지만 프랑스혁명사를 여름에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마침 책들이 나와서 든 생각이긴 하지만. 주명철 교수의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소나무, 2013) 외에도 막스 갈로의 <프랑스 대혁명 1,2>(민음사, 2013)가 최근에 나왔다. 견물생심이라고 나오면 또 읽고 싶어지는 게 독자의 심리다. 아니, 생리?

 

 

 

3. 철학

 

박인철 교수가 추천한 책은 최진석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소나무, 2013). "본래 인문학이라는 개념은 서구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저자는 서구적인 시각에서가 아니라 주로 노장사상과 같은 동양사상의 관점에서 인문학에 접근한다." 기억에 저자의 전공이 장자였다. 이와 유사한 인문적 성찰을 제시하고 있는 책으론 이번주 나온 두 미국철학 교수의 <모든 것이 빛난다>(사월의책, 2013)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피노자 가이드북으로 나온 이수영의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오월의봄, 2013)도 더 얹는다.

 

 

시리즈북도 고르자면 자음과모음에서 나온 <우울할 땐 니체><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비참할 땐 스피노자>도 손에 들 만하다. 세 권 다 손에 들어야 한다면 정말로 비참할 듯싶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고른 책은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의 <인종차별의 역사>(예지, 2013)다. "들라캉파뉴는 인종차별은 항상 존재해왔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인종차별의 담론과 행동의 기원은 고대그리스이며, 그 이후 사이비 과학 등에 의해 정당화된 정신착란으로 진화하였고, ‘우월적 인종’을 믿는 조악한 인종 우생학의 선구자들에 의해 깊어졌다는 것이다." 한국판으로 하면 '지역차별의 역사'가 될까? 책이 나왔을 때 토머스 고셋의 <미국 인종차별사>(나남, 2010)와 장 메이메의 <흑인노예와 노예상인>(시공사, 1998)도 찾아보고 후자는 구입해두었다. 여유가 생기면 <미국 인종차별사>도 챙겨놓아야겠다.

 

 

학술서 쪽으로는 안재흥의 <복지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형성과 재편>(후마니타스, 2013), 조돈문의 <베네수엘라의 실험>(후마니타스, 2013), 그리고 신광영의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후마니타스, 2013) 등이 근간에 나온 책들이다.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해선 참고해봐도 좋겠다.

 

 

 

5. 경제/경영

 

김은섭 위원이 추천한 책은 다니엘 샤피로와 로저 피셔의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한국경제신문, 2013)다. "이 책은 우리가 감정의 동물임을 주지시킨다. 그래서 현명한 협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활용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대가 나와 의견이 다르다면 ‘인정, 친밀감, 자율성, 지위, 역할’의 다섯 가지 핵심관심을 제대로 파악해서 상대방에게 어떤 감정이 생기기 전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협상을 주제로 한 책은 생소한데, 찾아보니 최철규, 김한솔의 <협상은 감정이다>(쌤앤파커스, 2013)와 게리 네스너의 <이기는 사람은 악마도 설득한다>(라이프맵, 2012) 등이 같은 분야의 책이다. 감정을 활용해야 한다는 충고가 눈길을 끈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고른 책은 우용태의 <물총새는 왜 모래밭에 그림을 그릴까>(추수밭, 2013)다. 일종의 조류도감. 하지만 "단순히 새에 대한 생물학적, 생태학적 정보만을 담은 조류도감이 아니다. 새에 관한 속담, 전설, 시조, 노래가사 등 새와 관계가 있는 많은 인문학적 자료가 녹아있는 책이다." '처음으로 읽는 우리 새 이야기'가 부제. 새 관련서는 어떤 게 더 있는지 찾아보니 <한국의 도요물떼새>(자연과생태, 2013), <멸종위기의 새>(자연과생태, 2012) 등이 눈에 띈다. 나도 책을 두어 권 갖고 있는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책은 김진희의 <결혼한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봄, 2013)이다. "이 책은 놀랍게도 결혼한 여자들이라면, 아니 어쩔 수 없이 외부 경쟁사회의 섭리와는 다르게 삶을 꾸리고 있는 자라면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할 그림과 글로 채워져 있다"는 게 추천의 이유다. 최상운의 <인상파 그림여행>(소울메이트, 2013), 사토 고조의 <모나리자는 왜 루브르에 있는가>(미래의창, 2013) 등도 최근에 나온 그림 책이기에 모아놓는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윤태옥의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미디어윌, 2013)다. '속옷'이 아니라 '집'에 대한 책. "이 책은 ‘왕초’란 별명을 갖고 있는 다큐멘터리 제작자 윤태옥의 ‘중국 민가기행’이다. 제목은 중국 죽림칠현(竹林七賢)의 고사에서 가져왔는데, 그에 따르면 천지가 ‘옷’이고 집은 ‘속옷’이다. 주거 공간을 통칭하여 집이라고 부르지만 그 모양새는 각양각색이다. 드넓은 대륙, 중국의 집이라고 하면 더 말해 무엇하랴. 저자는 중국 전역 22,000km를 종횡하며 중국인들이 살아온 집을 훑어보았다." 중국 여행길에 나서는 독자라면 저자의 <중국 식객>(매일경제신문사, 2012), 홍은택의 <중국 만리장정>(문학동네, 2013)을 나란히 챙길 만하다.

 

 

 

9. 실용

 

이계성 위원이 고른 책은 김양중의 <하루가 건강하면 평생이 건강하다>(책읽는수요일, 2013)다. "직장인들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과 기초적인 건강지식 및 정보를 소개한다. 핵심은 일상생활 속의 건강 습관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체계적인 건강관리를 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건강습관만으로 30~40대 직장인들이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의료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건강 관련 번역들과 함께 <건강기사 제대로 읽는 법>(한겨레출판, 2009)도 펴낸 바 있다. 건강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 나이인지라 좀 솔깃하게 들리는 책이다.

 

 

10. 아키라

 

나대로 고른 이달의 주제는 '아키라'다.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세미콜론, 2013)가 통째로 나왔다. '전설적인 만화'라는 얘기는 만화를 즐겨보지 않는 나도 심심찮게 전해들었는데, 번듯하게 출간되니 읽어볼 욕심이 난다. 하물며 열혈 독자들의 소감은 오죽하랴. "스무 살 때 받은 충격의 여진이 아직 고스란히 살아 있는 만화."(윤태호) "페이지마다 칸마다 투여된 작가의 엄청난 노동량이 보는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박찬욱) "AKIRA는 최고의 교과서이면서도 절대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산같은 만화다."(최규석)

 

 

미야자키 하야오나 데즈카 오사무만큼 입에 익지는 않지만 오토모 가츠히로와 함께 일본 만화의 높이가 어떤 것인지 경험해봐도 좋겠다...

 

13. 07. 06.

 

 

P.S. 7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나남, 2003)로 골랐다. 푸코의 책 가운데서는 가장 평이하다고 알려져 입문서로 많이 추천되는 책이다. 최근에 나온 오생근 교수의 <미셸 푸코와 현대성>(나남, 2013)을 손에 들다 보니 저자가 옮긴 <감시와 처벌>이 떠올랐고, 얼마전 영미 정보기관(국가안보국)의 전방위 도감청과 불법 정보수집이 폭로된 일도 '감시'란 키워드가 여전히 현재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감시와 처벌>은 물론 철학적, 역사적 성찰을 담은 책이고, 감시사회란 주제와 관련해서는 좀더 현실에 밀착된 책들까지 참고해볼 수 있겠다. 로빈 터지의 <감시사회, 안전장치인가, 통제도구인가?>(이후, 2013), 한홍구 등의 <감시사회>(철수와영희, 2012), 아르망 마들라르의 <감시의 시대>(알마, 2012) 등이 같이 읽어볼 만한 관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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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은 원고를 쓰느라 보내고, 점심을 먹고 와서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북은 푸른역사 아카데미의 강좌를 묶은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푸른역사, 2013).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여기서 '문학'이라는 것은 한국 현대문학이며, '문학사 이후'는 이른바 '근대문학의 종언'이 선언되고 운위되고 또 더 이상 한국 현대문학 통사가 써지지 않는 시대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는 어떤 모습일까? 구체적으로는, 초국가적 근대문학의 유통 체계와 현대적 대중 예술, 그리고 그보다 더 거대한 문화사의 흐름 속에서 생장해온 '네트워크로서의 한국문학사'를 생각해보고자 했다."

 

 

젊은 세대 연구자들의 새로운 시각과 의욕을 담은 책. 개인적으로는 강의에 참여하긴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단행본 글로 다듬지는 못했다. 저자의 권리를 포기한 대신에 독자의 권리를 더 충실히 누려보고 싶다. 두번째 책은 한겨레 최재봉 기자의 <그 작가, 그 공간>(한겨레출판, 2013). "시인, 소설가, 번역가, PD 등 자신의 글을 쓰는 작가들의 은밀한 공간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공간들과 작가들의 관계, 어떤 공간 속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 등등을 속속들이 그려내는 책"이다. 작가와 저자를 더 가까운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세번째 책은 휴버트(허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도런스 켈리의 <모든 것은 빛난다>(사월의책, 2013). 드레이퍼스는 하이데거 연구로 유명한 철학 교수로 국내엔 폴 라비노우와의 공저인 <미셸 푸코: 구조주의와 해석학을 넘어서>(나남출판, 1989)로 처음 소개됐었다. 이후엔 <인터넷상에서>(동문선, 2003) 하나만 더 소개된 듯한데,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인터넷에 대하여>라고 번역됐어야 하는 책이다. 이번에 나온 건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가 부제다. 뭔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책이어서 오전엔 원서도 바로 주문했다.

 

 

네번째 책은 샘 피지개티의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알키, 2013). '슈퍼 리치의 종말과 중산층 부활을 위한 역사의 제언'이 부제다. 유사한 책들이 없진 않기에 제목에 마음이 움직인 건 아니지만, 하워듸 진의 <미국민중사>와 나란히 꽂아두어야 할 책이라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추천사에 끌렸다. 그 정도라면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김용규의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휴머니스트, 2013). 제목의 '백만장자'는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직전 24가지 질문을 남겼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에서 시작하여 ‘종말은 언제 오나’에 이르는 이 질문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 누구나 품을 수밖에 없는 신과 인간에 관한 절박한 물음이다. 고(故) 이병철 회장의 질문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질문이기도 한 이 숙명적인 문제들을 철학자 김용규가 진지하게 성찰한다." 질문에 얽힌 사연은 재작년 말에 차동엽 신부의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명진출판, 2011)을 통해 알게 됐는데, 이번에 '철학자 김용규'가 내놓은 답이 궁금해서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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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한국 현대문학사의 해체와 재구성
천정환.소영현.임태훈 외 엮음 / 푸른역사 / 2013년 7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13년 07월 06일에 저장
품절
그 작가, 그 공간- 창작의 비밀을 간직한 장소 28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07월 06일에 저장

모든 것은 빛난다-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지음, 김동규 옮김 / 사월의책 / 2013년 6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2013년 07월 06일에 저장
절판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슈퍼 리치의 종말과 중산층 부활을 위한 역사의 제언
샘 피지개티 지음, 이경남 옮김 / 알키 / 2013년 7월
24,000원 → 21,6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00원(5% 적립)
2013년 07월 0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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