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은 원고를 쓰느라 보내고, 점심을 먹고 와서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북은 푸른역사 아카데미의 강좌를 묶은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푸른역사, 2013).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여기서 '문학'이라는 것은 한국 현대문학이며, '문학사 이후'는 이른바 '근대문학의 종언'이 선언되고 운위되고 또 더 이상 한국 현대문학 통사가 써지지 않는 시대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는 어떤 모습일까? 구체적으로는, 초국가적 근대문학의 유통 체계와 현대적 대중 예술, 그리고 그보다 더 거대한 문화사의 흐름 속에서 생장해온 '네트워크로서의 한국문학사'를 생각해보고자 했다."
젊은 세대 연구자들의 새로운 시각과 의욕을 담은 책. 개인적으로는 강의에 참여하긴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단행본 글로 다듬지는 못했다. 저자의 권리를 포기한 대신에 독자의 권리를 더 충실히 누려보고 싶다. 두번째 책은 한겨레 최재봉 기자의 <그 작가, 그 공간>(한겨레출판, 2013). "시인, 소설가, 번역가, PD 등 자신의 글을 쓰는 작가들의 은밀한 공간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공간들과 작가들의 관계, 어떤 공간 속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 등등을 속속들이 그려내는 책"이다. 작가와 저자를 더 가까운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세번째 책은 휴버트(허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도런스 켈리의 <모든 것은 빛난다>(사월의책, 2013). 드레이퍼스는 하이데거 연구로 유명한 철학 교수로 국내엔 폴 라비노우와의 공저인 <미셸 푸코: 구조주의와 해석학을 넘어서>(나남출판, 1989)로 처음 소개됐었다. 이후엔 <인터넷상에서>(동문선, 2003) 하나만 더 소개된 듯한데,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인터넷에 대하여>라고 번역됐어야 하는 책이다. 이번에 나온 건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가 부제다. 뭔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책이어서 오전엔 원서도 바로 주문했다.
네번째 책은 샘 피지개티의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알키, 2013). '슈퍼 리치의 종말과 중산층 부활을 위한 역사의 제언'이 부제다. 유사한 책들이 없진 않기에 제목에 마음이 움직인 건 아니지만, 하워듸 진의 <미국민중사>와 나란히 꽂아두어야 할 책이라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추천사에 끌렸다. 그 정도라면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김용규의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휴머니스트, 2013). 제목의 '백만장자'는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직전 24가지 질문을 남겼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에서 시작하여 ‘종말은 언제 오나’에 이르는 이 질문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 누구나 품을 수밖에 없는 신과 인간에 관한 절박한 물음이다. 고(故) 이병철 회장의 질문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질문이기도 한 이 숙명적인 문제들을 철학자 김용규가 진지하게 성찰한다." 질문에 얽힌 사연은 재작년 말에 차동엽 신부의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명진출판, 2011)을 통해 알게 됐는데, 이번에 '철학자 김용규'가 내놓은 답이 궁금해서 손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