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에 뒤적거린 책은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을유문화사, 2011)이다. 도서관에서 <교양인의 책읽기>(해바라기, 2004)를 대출해서 비교해가며 몇 장을 읽었는데, 번역이 더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진 않아서(블룸의 문장을 만족스럽게 옮기는 것이 가능한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원서를 주문했다. 완역본이 아니어서 제쳐놓았던 <세계문학의 천재들>(들녘, 2008)도 할인판매를 하길래 주문하고(예전에 도서관에서 잠깐 빌려서 보긴 했는데, 그 또한 원서를 구해야 할지는 더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오늘 잠시 들여다본 책은 마이클 폴리의 <행복할 권리>(어크로스, 2011)다. 제목대로라면 관심이 덜했을 텐데, 원제가 '부조리의 시대'이고, '행복의 부조리'에 대한 성찰이 주제다. '부조리'라면 또 관심사에 든다. 당장은 아니지만 대린 맥마흔의 <행복의 역사>(살림, 2008)와 대니얼 길버트의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김영사, 2006)와 같이 묶어서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존의 미리보기를 참고하여 앞부분만 읽어보니 '당신이 찾는 행복은 없다'는 1장의 원제는 '행복의 부조리'이다. 번역본에서는 구분이 사라졌지만 전체 4부 구성에서 1부가 문제의 제기(The Problems)이고 1장이 1부에 해당한다. 무엇이 '행복의 부조리'인가? 행복 추구의 모순을 잘 정리해준 이는 존 스튜어트 밀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 자신의 행복 이외에 다른 대상에 정신을 집중하는 사람들... 만이 행복하다... 그렇게 다른 어떤 것을 목표로 하는 도중에 그들은 행복을 발견한다... 행복이 아니라 다른 어떤 목적을 삶의 목표로 설정하는 것만이 행복해지는 유일한 기회다."(14쪽) 

즉 행복을 목표로 삼아서는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 '행복의 부조리'이다. 그것은 오직 부산물로서만 얻어진다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말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도 행복은 어떤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고 '행위'였다. 그리고 '행복'이라 번역되는 '에우다이모니아'는 오히려 '번영(flourishing)'이란 의미에 더 가깝다('행복학'이란 조어에 가장 강력한 후보는 '에우다이모닉스Eudaimonics'이다. 번역본에서 '에우다이모닉'이라고만 음역한 것은 좀 인색하다).   

히말라야에 있는 부탄왕국에서 전국행복위원회라는 걸 만들었는데, 저자가 일러주는 바에 따르면 그 위원회의 첫번째 임무는 행복을 정의하는 것이었다고. 하지만 역시나 만만찮은 일이어서 위원회의 대변인이 이렇게 토로했다.  

"지난 세기에는 젊은이들에게 영웅이 누구인지 말해보라고 하면 거의 예외 없이 왕을 꼽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랩 음악가를 꼽는 사람이 50%에 달한다."(12쪽) 

 

호응관계가 맞지 않는 듯싶어 확인해보니 '랩 음악가를 꼽는 사람이 50%'란 말은 'rap artist 50 Cent'를 잘못 옮긴 것이다. 50 Cent는 1975년생의 래퍼다. 요즘 젊은이들의 꿈은 왕이 아니라 래퍼라는 것.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되는 만큼 행복을 정의하기란 요령부득이다. 플로베르의 한마디가 그래서 핵심을 짚은 듯이 보인다.  

"어리석음, 이기심, 건강은 세 가지 선결조건이다. 하지만 어리석음이 부족하다면 다른 것이 있어도 소용없다."(15쪽)  

그대, 행복을 원하는가? 일단은 어리석고 볼 일이다... 

11. 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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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2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2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5-02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그럼 전 행복해질 가능성이 농후하군요. 어리석은 건 어디 가서 빠지지 않으니까요 ㅋㅋ 죄송합니다. 그냥 한번 웃자고 해본 소립니다. 그래도 잠깐 행복했네요^^

로쟈 2011-05-02 09:30   좋아요 0 | URL
이기심과 건강을 잊으신 건 아닌지요?^^

비로그인 2011-05-02 15:03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아무튼 행복한 5월을 보내시길...^^

델러웨이부인 2011-05-02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cent가 50%로? 재밌네요~ ^^;;;

로쟈 2011-05-03 20:31   좋아요 0 | URL
^^;

두비 2011-05-0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구.... 로쟈님 비롯해 독자여러분께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재판 찍을 때 꼭 고치겠습니다. (이런 실수는 출판사가 할 말이 없습니다. ㅠㅠ 재판 찍을 기회가 오면 좋겠네요.)

로쟈 2011-05-03 20:31   좋아요 0 | URL
재밌는 책인데, 옥에티가 있더라구요...
 

낮에 택배로 받은 책은 건축 전문지 <공간>(522호)이다. 이달의 북리뷰로 김형진의 <미술법>(메이문화, 2011)에 대한 글을 썼기 때문이다. 생소한 분야의 책이어서 골랐지만 사례 중심이어서 아쉬웠다.  

공간(11년 5월호) 미술법 

“법과 예술이 만나면 서로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마냥 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또 피하는 것만이 상책은 아닐 때도 있다. 미술이 자기만족적인 행위를 넘어서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될 때, 미술시장과 미술산업의 대상, 곧 ‘예술상품’이 될 때 미술은 법과 충돌하며 또 법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 실상 법의 간섭은 피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법의 도움은 받고 싶은 것이 ‘미술 본색’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서로 피하는 것보다는 알아두는 것이 더 좋은 방책이 아닐까.   

김형진의 <미술법>은 ‘더 좋은 방책’을 마련하는 데 유용한 가이드북이다. 저자는 지적재산권 분야를 전문 변호사로 대학에서는 미술법을 강의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미술법은 “미술에 대한 법을 말하는 것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술법(Art Law)’이란 말 자체가 아직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법조항에 미술법이 특정돼 있는 건 아니므로 ‘미술과 관련한 법’으로 느슨하게 이해해도 되겠다. 사실 미술작품에 대한 저자의 정의 자체가 포괄적이면서도 느슨하다. 그는 “작품을 만들 때 작가가 미술작품을 만들려고 했고 그렇게 하는 데 분명히 실패하지 않았다면 그 작품은 미술작품”이라고 정의내리기 때문이다.   

저자가 들고 있는 사례지만 2001년 영국 미술계 최고의 영예인 터너상을 수상한 작가 마틴 크리드가 발표한 ‘작품번호88, 구겨서 공이 된 A4 용지 한 장’을 보더라도 그렇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종이를 구긴다면 쓰레기가 될 뿐이지만 터너의 구겨진 종이는 뒤샹의 ‘변기’가 그랬던 것처럼 당당히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그렇게 예술품으로 간주될 경우에는 ‘대우’가 달라진다. 통관 시 관세면제 혜택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저작권법과 여러 관련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책은 미술작품이 법과 마주치게 되는 다양한 사례들을 모아놓은 자료집처럼 구성돼 있다. 저작권에 관한 내용이 아무래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와 외설 문제, 미술품 관련 범죄, 미술과 전쟁, 미술과 세금 등 흥미로운 주제들도 포함돼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에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일부를 우리에게 반환한 사례와도 맞물려, 특히 작품의 소유권에 관한 장들이 눈길을 끈다.  

저자에 따르면 대체로 대륙법 국가들은 원소유자보다 현 소유자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유럽 국가들은 도난 발생후 시효가 지나면 더 이상 원 소유자의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영미법에서는 현 소유자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것과는 달리, 가령 프랑스에서는 설사 현소유자가 선의의 취득자가 아니더라도 도난 사건이 일어난 후 30년이 경과하면 원 소유자는 반환받을 수 없다고 한다. 다만 프랑스 정부는 시효에 관계없이 장물에 대해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하는데, 다소 편의적인 법적용이란 인상이다. 자신이 훔쳐온 물건에 대해서는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남이 훔쳐간 자기 물건에 대해서는 반환청구권을 인정하는 셈이니까.   

프랑스의 사례라면 역사적 배경이 없지 않다. 널리 알려진 대로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군은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엄청난 양의 미술품을 조직적으로 노획하고 약탈하여 나폴레옹미술관에 채워놓았다. 바로 루브르 미술관의 전신이다. 이렇게 약탈해온 미술품을 프랑스는 일체 돌려주지 않았다. 이와 견주어볼 만한 것이 2차 대전 시 소련의 약탈 사례다. 전쟁기간은 물론 전쟁 이후에도 소련은 독일과 동유럽에서 광범위한 약탈을 자행했는데, 이 가운데는 독일군이 프랑스에서 약탈해온 미술품도 상당수 있었다. “소련이 보관하고 있는 많은 미술품 중에서 일부 밝혀진 발딘 컬렉션(Baldin Collection)은 약 2천 350만 달러 상당의 미술품으로 반 고흐, 뒤러, 렘브란트 등 거장의 작품이 포함돼 있었다.”   

요컨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까. 지난 1995년부터 러시아의 푸시킨 미술관과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는 이들 약탈 문화 재산의 전시가 시작됐다(개인적으론 2004년에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본 인상파 컬렉션이 인상적이었다). 독일과 프랑스로선 유감스럽겠지만 미술품의 반환요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는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한다.   

미술법이 문제되는 갖가지 사례 가운데 가장 흥미롭게 읽은 건 미술품 훼손 사례다. 지난 2006년에 벌어진 일인데 세계적인 재벌 스티브 윈이 소장품인 피카소의 1932년작 ‘꿈’을 친지들에게 자랑하다가 그만 팔꿈치로 그림을 치는 바람에 2인치 정도 파손했다고 한다. 시가 1억 3900만 달러에 매각할 예정인 그림이었다. 비록 복구하긴 했지만 어이없는 실수로 수천 만 달러의 손실을 감수하게 된 그는 매각 결정을 포기하고 그림을 그냥 간직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숨을 돌리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 하느님, 그래도 제가 그랬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정말로 그의 안도에는 동감하는데, 훼손 당사자가 소장자 자신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감당하지 못한 ‘기념비적인’ 훼손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탈리아 사람 피네로 카나타라면 예외였을까.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미술품을 훼손한다는 ‘상습법’ 카나타는 피렌체의 다비드 상에서 발가락을 자르고 잭슨 폴록의 작품에 매직을 칠한데다가 몬드리안의 그림에 오물을 토한 화려한 전력을 갖고 있다. 아무리 세계적인 재벌이라 한들 스티브 윈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 아닐까 싶다. 

11.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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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고의 유쾌한 문화혁명

4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또하나의 책읽기 책은 허아람의 <사랑하다, 책을 펼쳐놓고 읽다>(궁리, 2011)다. 저자의 이름이 생소하더라도 '인디고 서원'은 혹 들어보셨을지 모르겠다. 부산에 있는 청소년 인문학서점이자 한국 청소년 인문학 활동의 메카이다. 그 인디고서원의 대표가 바로 '아람샘'이다. 책날개에 실린 소개에는 '매 순간 생의 혁명을 꿈꾸는 투사, 이 땅의 인문혁명을 도모하는 전사'라고 돼 있다(또 한 가지는 '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닌, 한 사람에게는 소중한 연인'이다). 그 '인문학 혁명가'가 함께 읽어보자고 제안하고 또 글귀들을 읽어주는 책소개 모음집이다. '인디고 아이들'과 함께 그간에 많은 책을 펴냈지만 <사랑하다, 책을 펼쳐놓고 읽다>는 그의 첫 단독저서다.   

국제신문(11. 04. 30) "꿈꾸어라 청년아" 인문학 혁명가의 책 추천

저기 무대 위에 앉아서 노래하는 작은 여성이 '혁명가'라는 사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지난 28일 오후 부산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사랑하다, 책을 펼쳐놓고 읽다-허아람의 꿈꾸는 책방낭독회'였다. 부산의 청소년 인문학 서점 인디고서원(www.indigoground.net)의 허아람 대표가 <사랑하다, 책을 펼쳐놓고 읽다>를 펴낸 것을 기념해 조촐하게 마련한 낭독 콘서트였다. 



여기서, '혁명'이란 말은 정치용어가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이뤄낸 열정과 성실을 비유하는 말로 쓰고자 한다. 또는, 가치혁명과 같은 인문용어로 이해하셔도 좋을 것이다. 허 대표의 손에서 인디고서원이 태어났다. 인디고서원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청소년 인문학 활동의 거점이자 최전선이 됐다. 청소년인문학잡지 '인디고잉'과 영문판 국제 인문학잡지 '인디고'가 창간돼 지금도 나오고 있다. 허 대표는 '인디고 아이들'과 함께 5대양 6대륙을 샅샅이 다니며 세계 석학들과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 땀흘리는 젊은 활동가를 만나 부산에서 국제행사인 '인디고유스북페어'를 두 번 열었다. 인디고유스북페어에 온 석학과 활동가들은 깜짝 놀랐다. 



인디고서원이 자랑하는 청소년 독서토론 프로그램인 '정세청세'는 부산의 작은 인문서점 행사에서 전국 12개 도시에서 열리는 대표 인문프로그램으로 자랐다. 이중 '이것은 혁명이 아니다'라 할 만한 것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개인적 판단이다.

그렇게 바쁜 가운데서도 허 대표가 빼먹지 않은 일이 있다. 책읽기다. '사랑하다, 책을 펼쳐놓고 읽다'는 허 대표가 2008년10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부산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매주 금요일 진행한 '허아람의 꿈꾸는 책방'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책이다. 허 대표를 초청해 '별밤'을 진행했던 진행자 지성훈 씨도 이날 낭독콘서트에 초청됐다. "인디고유스북페어 준비 때문에 외국에 갔다가 공항에서 짐을 잔뜩 짊어진 채 방송국에 오시질 않나, '그렇게 바쁜 중에서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다'는 걸 눈치채게 하려고 그랬는지 방송실에 그간 읽은 책을 펼쳐놓질 않나…"(웃음) 이 책은 그렇게 나왔다.

책에 대한 책, 책의 책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재미있고 잘 읽힌다. 방송에서 입말로 해설하고 육성으로 낭송한 형식을 책에 옮겼기 때문이다. '청춘들에게 안겨주고 싶은 시집' '내 삶의 중요한 가치' '스무 살의 겨울을 어떤 생각들로 준비할까' '아름다운 바보들' 등 글이 저마다 주제를 갖고 있어 유용하고 울림이 좋다. 허 대표는 이 책에서 283권을 소개한다. 방송에 함께 나왔던 낭송음악의 목록도 실었다.

르 클레지오의 '어린 여행자 몽도'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칠 때 또는 어떤 문학작품을 접하게 할 때 몽도와 이 할아버지의 글자 배우기 장면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감수성으로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합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허 대표의 발걸음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짐작케 한다. 아름답고 진솔한 '책의 책'이다.(조봉권기자) 

11. 04. 30.  

P.S. 아람샘의 책 추천은 마튜 르 루의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마고북스, 2006)에서 시작해서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문학과지성사, 2001)로 마무리된다. "저에게 만약 지상의 도서관이 불탔을 때 남겨야 되는 세 권의 책을 묻는다면, 대답할 한 권의 책"이라고 꼽은 책으로 '제목 또한 이 책의 글귀에서 따왔다.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도 마지막 방송 시간에 언급돼 있어 '인상적'이다. 마지막 방송의 마지막 멘트는 이렇다.  

저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마음속에 와닿았던 한 줄의 문장으로 오늘 하루 내 삶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생의 의지가 생긴다면, 책은 그것으로 충분한 자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런 책을 한 권이라도 가까이 두시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4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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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을유문화사, 2011)과 함께 받은 책은 피에르 바야르의 <햄릿을 수사한다>(여름언덕, 2011)다.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이론서 혹은 비평서가 가능하다는 걸 서두에서부터 알려주는 책인데, 아예 그의 자신의 작업을 '이론적 픽션'이라고도 불리는 모양이다. '5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이미 올려놓기도 했지만, 피에르 바야르와 함께 '선더랜드행 기차'를 타고 독서여행을 해보는 것도 흥미진진할 듯싶다.  

  

한겨레(11. 04. 30) 추리소설가가 자기 작품속 범인 모른다고?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로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범인은 작가가 설정한 셰퍼드 박사가 아니라 따로 있다? 셜록 홈스의 <바스커빌 가의 개>에서도 살인을 저지른 것은 ‘무고한’ 개가 아니다? 나아가, 햄릿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 역시 숙부인 클로디어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다?

이런 엉뚱하고 도발적인 주장을 펼치는 이가 있다. 프랑스 파리8대학의 문학 교수이며 정신분석가인 피에르 바야르가 그다. 그는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셜록 홈즈가 틀렸다> <햄릿을 수사한다>와 같은 책에서 이런 과감한 주장을 내놓고 그를 자기 나름대로 ‘입증’했다. 



그의 튀는 주장은 이것만도 아니어서, 어떤 책에 대해 신뢰할 만한 발언을 하기 위해 반드시 그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거나(<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시기적으로 앞선 작가가 후대의 작가와 작품을 표절하는 게 가능하다는(<예상 표절>·<한겨레> 2010년 6월12일치 10면) 등의 주장 역시 서슴없이 내놓는다. 프랑스에서 지난해 가을에 나온 <작품의 작가가 바뀐다면?>이라는 최근 저서에서는 가령 <이방인>을 카프카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톨스토이가, 그리고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디 에이치(D. H.)가 아닌 티 이(T. E.) 로렌스가 썼다는 가정에 따라 작품을 새로운 눈으로 읽는 시도를 해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상식을 거스르는 도발적인 주장으로 열광과 비난을 함께 거느리고 다니는 피에르 바야르가 한국을 찾았다. 방한에 맞추어 나온 <햄릿을 수사한다>를 비롯해 지금까지 그의 책 다섯권을 낸 도서출판 여름언덕과 프랑스문화원의 초청으로 25일 한국을 찾은 그를 26일 만나 독특한 주장의 배경과 의도를 들어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로는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하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가 아니라 일종의 편집증 환자의 논리에서 출발해 보면,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많은 독창적이며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바야르가 스스로 고안한 세 개의 개념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보면 그의 주장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추리비평’.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셜록 홈즈가 틀렸다> <햄릿을 수사한다> 세 작품은 바야르의 이른바 추리비평 삼부작으로 꼽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추리비평이란 “제대로 처벌되지 않은 문학적 살인의 진범을 드러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작품 속에서 밝혀지지 않은 모든 불가사의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는 “작가가 자기 책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렇듯, 작품에 대한 작가 자신의 완벽한 장악력을 의심하는 태도가 낳은 것이 ‘개입주의 비평’이다. “독자가 텍스트 앞에서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있지 않고, 작품에 개입해서 변형을 가하고 그 결과 더욱 공정한 세상에 적합하게 만드는 비평”이 바야르가 말하는 개입주의 비평이다. “문학작품을 비롯한 텍스트의 주위에는 수많은 잠재적 텍스트, 또는 유령 텍스트가 있다. 기존의 텍스트를 불완전하고 유동적인 실체라고 가정하고, 그 안에 감추어진 잠재적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이 개입주의 비평이다.”

마지막으로, 바야르는 ‘이론적 픽션’을 추구한다. “나는 기존의 문학 및 픽션 대 이론 및 비평의 구분을 무너뜨리고자 한다.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와 <셜록 홈즈가 틀렸다> 페이퍼백은 서점에서 이론이나 비평이 아니라 픽션 쪽으로 분류된 덕에 반응이 아주 좋았다. 전통 인문학에서는 화자 ‘나’를 저자와 동일시하는 게 보통인데, 내 책에서 ‘나’란 자연인 바야르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내가 책의 논지를 위해 창조한 허구적 존재인 것이다.”

바야르는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추리소설 <범죄>의 살인자가 작가가 지목한 인물이 아닌 다른 인물이라는 주장을 다름 아닌 베르나노스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발표했을 때 전문가들이 경악하는 걸 보고서 “내가 바른 길에 들어섰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소개했다. “역설과 유머로 무장하고서 진리와 정의라는 이상을 좇아 문학 세계를 개선하려는 것”이 이론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글쟁이의 목표다.(최재봉 선임기자) 

11.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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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을유문화사, 2011)이다. 원제는 'How to read and why'. 책을 어떻게 읽는지, 그리고 왜 읽는지 시범적으로 보여주는 책. 원제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주문을 했는데, 받고 보니 예전에 <교양인의 책읽기>(해바라기, 2004)라고 한번 번역됐던 책이다. 터무니 없어 보이는 책값 때문에, 그리고 불명료한 번역 때문에 직접 구입하진 않고 도서관에서 대출해 몇 장을 읽어본 기억이 난다(주로 러시아 작가들에 관한 장). 요컨대, '오래된 새책'인 셈이다. 그래서 이번에 올라온 리뷰기사와 함께 지난 2004년의 기사도 찾아서 같이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11. 04. 30) 고전을 더 잘, 더 깊이 만나는 길

고전 문학은 어떻게, 왜 읽는가. 숱한 평론가와 독서 애호가들이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놨다. 미국의 인문학자이자 평론가 해럴드 블룸도 그중 한 사람이다. 문학 비평에 있어서 블룸의 위치는 ‘보수 중의 보수’라 할 만하다.

그는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원제 How to read and why)에서 고전을 읽는 몇 가지 방식을 제시한다. 그 첫번째가 “머릿속에서 은어를 제거하라”다. 그가 ‘은어’라고 말한 것은 “한 분파나 수상쩍은 비밀 집회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용어”다. 즉 블룸은 역사주의, 페미니즘, 해체론, 마르크스주의 등 근대적 주체를 해체하고 저자를 죽이는 모든 사조에 저항한다. 블룸에 따르면 독서의 즐거움은 사회적이기보다 이기적이다. 책을 더 잘, 깊이 읽는다고 타인의 삶을 향상시킬 수는 없다. 독서를 통해 이웃이나 주위 사람을 개선하려고 시도해서도 안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자신을 튼튼하게 하고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를 깨닫기 위해 책을 읽는다.”  

독서의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 후 블룸은 “내면의 빛에 비추어” 읽어볼 만한 장·단편 소설, 시, 희곡 60여편을 제시한다.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월트 휘트먼, 마르셀 프루스트를 거쳐 윌리엄 포크너, 코맥 매카시까지 이른다. 새 장르를 소개할 때마다 ‘들어가는 말’과 ‘나오는 말’로 이정표를 제시하는데, 그렇다 해도 블룸의 글은 읽기가 쉽지 않다. 집중력이 높고 섬세한 독자만이 이 이정표와 지형을 읽어낼 수 있겠다.

블룸은 현대의 단편 소설을 체호프파와 보르헤스파로 나눠볼 것을 제안한다. 체호프 스타일이 현실에 대한 우리의 갈증을 충족시켜 준다면, 보르헤스 스타일은 현실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갈구하는지 보여준다. 어네스트 헤밍웨이, 플래너리 오코너가 체호프파라면, 이탈로 칼비노는 보르헤스파다.

이후 문학계의 지도를 새로 그린 동시대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를 찬양하는 데 많은 분량이 할애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최초의 소설이자 가장 뛰어난 소설이지만 소설 이상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건”이 일어나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산초와 돈키호테의 대화다. 둘은 서로의 말을 들음으로써 자아를 더 새롭고 풍부하게 발전시킨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는 <햄릿>이 소개된다. 블룸은 문학적 위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성경>에 유일하게 맞먹는다고 단언한다. “햄릿의 정신과 그 정신을 확장하는 데 있어 그가 사용한 언어는 신이 사용한 언어보다 아직까지는 더 넓고 더 민첩하다”고 말한다.

옮긴이가 쓴 대로 블룸이 원하는 건 결국 ‘강한 독자’다. 약한 독자가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파악할 때, 강한 독자는 작품을 자신의 시각에 비추어 창조적으로 오독한다. 오독의 과정을 통해 작품에 지지 않는 강한 자아를 형성하기. 이 책을 발판삼아 꿈꿔볼 만한 목표다.(백승찬기자)   

해럴드경제(04. 10. 09) 책! 책!…어떻게 왜 읽어야 할까

`나 눈가린채 뱃전 위 널빤지를 걷네/머리위로 별들이 느껴지고/발 아래 바다가 있네/다음 한 걸음이 내 마지막 걸음이 될지도 몰라/나 불안하게 걸음을 옮기네/누군가 경험이라 부른 그것을`(에밀리 디킨슨) 

경험의 총합이 진실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인간은 극단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존재. 순간은 필사의 선택으로 점철돼 있다.

왜 책을 읽는가? 살아있는 영미문학권 최고 비평가 중의 하나인 해럴드 블룸은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인간이 겪는 최종적인 변화는 죽음. 감정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기 쉽기에 인간은 책에서 위로를 구한다. 마르크시즘 비평에 맹공을 퍼부었던 논객 중의 논객 해럴드 블룸은 맞장구치는 재미로 책읽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혹은 남을 비판할 근거를 취하기 위해 독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블룸이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는 본연의 자기가 될 것을 가르친 체호프. 저자는 체호프처럼 문학이 선(善)의 한 형태임을 보여주는 작가들 때문에 책을 놓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교양인의 책 읽기`(해바라기, 2만3000원)는 책을 어떻게 왜 읽는가 하는 주제를 다각도로 풀어낸 문학평론서다. 예일대 등에서 40년간 문학을 가르친 해럴드 블룸의 독서편력을 넘겨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금을 종횡하는 박학함으로 위대한 정신들의 내연(內緣)관계가 낱낱이 드러난다. 가령 30대에 매독으로 요절한 모파상이 쇼펜하워의 정신적 제자였음을 아는 사람 얼마나 될까.  

블룸은 단편소설의 장르적 특성을 언급하면서 체호프적인 것과 보르헤스적인 것으로 구분한 뒤 인상주의와 자의식을 각각 예술적 책략으로 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르반테스를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경쟁자라고 규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블룸은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토머스만을 세르반테스 파로 분류하면서 돈키호테와 산초판자도 모른 채 인간에 대해 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교양인…`은 거장들의 문학세계를 두루 엮어낸 책. 문학의 치유능력을 믿는 블룸은 위대한 작품은 매우 실용적이라고 단언한다. 인간의 초상화로서 소설은 3000년대에도 여전히 독자를 얻을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한다.  

`오, 천상의 존재들이여/그대들은 우리를 무엇으로 만드는가. 가진것 없으니/우리는 웃을수 밖에;가진것이라고는 우울함뿐이니/여전히 아이일수 밖에. 감사드리오/지금의 모습에. 그리고 그대들과 함께 싸움에서 떠나고자 하오/우리의 문제가 아니니까. 그만둡시다/그리고 시간처럼 우리를 참아봅시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셰익스피어가 49세에 극작을 그만둔 이유를 설명하며 위의 시구를 인용했다.(윤승아 기자)  

11. 04. 30.  

P.S. 블름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셰익스피어: 인간의 발명>과 <서양의 고전>은 원서를 구해놓은지 오래됐지만 아직 읽어보진 못했다. 만만찮은 분량이기 때문인데, 번역서가 출간돼 수고를 덜었으면 싶다. 이번에 관심을 갖게 된 책은 <영향의 해부>이다. <영향의 불안>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인데, 조만간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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