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 국제노동기구(ILO) 이코노미스트 이상헌이 전하는 사람, 노동, 경제학의 풍경
이상헌 지음 / 생각의힘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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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최저임금이 고시됐다. 시간당 6천30원이다. "시간급을 일급(8시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4만 8천240원이며, 월급으로는 주 40시간제의 경우(유급 주휴 포함, 209시간 기준) 126만 270원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금이 오르는 저임금 근로자는 전체 임금 근로자의 18.2%인 342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최저임금 대비 인상률은 8.1%다."(연합뉴스) 국제노동기구 사무차장 정책특보 이상헌의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생각의힘, 2015)의 한 꼭지가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최저임금제만 갖고 다툴 게 아니라 최고소득제도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 아니, 이건 상상이 아니라 실제 역사다. 다만 어느 사이엔가 잊혀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뉴딜의 기치 아래 전레 없는 토목공사만으로 대공황을 극복한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대대적인 정책 조치도 취했다. 1937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시간 규제, 아동노동 철폐, 노조 결성권 등을 도입했다. 최저임금을 도입한 이도 루즈벨트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서 처음 최저임금이 도입된 지 50여 년이 된 때였으니, 미국은 `지각생` 신세였다. 하지만 덕분에 미국 노동시장은 오랜 방임주의 `방황`을 끝내고 멸실상부한 노동법의 기본 골격이 갖추어져서 제법 모범생다운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155-156쪽

하지만 루즈벨트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최저임금으로 소득 최저선을 구성하는 것은 당연지사고, 아랫선이 그려졌으니 윗선도 그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역사적으로 최악에 달한 소득 불평등을 염려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이 항탕 고조돼 가던 1942년, 루브젤트는 `소득상한제`를 도입하려 한다. 당시 소득 2만 5,000달러(현재 가치로는 약 100만 달러)를 소득 상한선으로 설정하고 그 이상의 소득분은 100% 과세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불평등 해소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당시 더 정치적으로 설득력이 있었던 `전쟁에 대한 기여`와 `국가에 대한 봉사`를 주요 이유로 삼았다. 모든 자원을 동원해 전쟁을 하고 있는 국가 총력전에서 고액 소득자가 마땅히 더 기여해야 한다고 했다. -156쪽

국민의 반응은 긍정적이었으나 의회에서는 난리가 났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살벌한 논쟁이 의회에서 벌어졌고 사실상 루즈벨트의 원안은 거부됐다. 다행히 국민적 지지가 높고 소득 불평등 해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정치권에 제법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의회는 공방 끝에 88% 최고세율이라는 타협안을 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천신만고 끝에 이 법은 통과된다. 루즈벨트가 생각했던 엄격한 의미의 최고소득제(소득상한제)는 아니지만 20만 달러는 `실질적` 소득 상한이 되었다. 이때부터 미국의 소득분배도 개선되기 시작한다. -156-157쪽

하지만 다시 한번 과거는 반복된다. 소득분배 개선이 눈에 띌 정도로 뚜렷해지고 경제도 제법 성장하게 되니 정책적 긴장이 자연스레 떨어졌다. 상황이 좋아졌으니, 부자를 야박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본격적인 로비도 생겨났다. 그 결과 90%에 육박했던 최고세율은 1960년대 후반 들어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세금 삭감을 공언한 레이거노빅스의 1980년대부터 최고세율은 30-40% 수준으로 반토막이 난다. 그리하여 세계 대공황 직전인 1920년대 수준의 세율로 돌아갔다. 소득분배는 급속도로 악화돼, 급기야 최상위 소득 1% 집단이 차지하는 소득비율도 1920년대 말 대공황 직전으로 치솟았다. 역사는 다시 반복돼 경기대침체 라는 세계경제 위기가 뒤따랐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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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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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 몸에 이상한 일이 생겨도 놀라지도 않는다. 점점 잛아지는 보폭, 몸을 일으킬 때의 현기증, 굳어버린 무릎, 터지는 정맥, 또다시 비대해진 전립선, 쉰 목소리, 백내장 수술, 이명, 광시증, 자꾸만 헐어 달걀노른자처럼 돼버린 입술 가장자리, 바지 입을 때의 어설픈 동작, 자꾸만 잊고 잠그질 않는 바지 앞 지퍼, 갑작스런 피곤, 점점 잦아지더니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낮잠. -457쪽

내 몸과 나는 서로 상관없는 동거인으로서, 인생이라는 임대차 계약의 마지막 기간을 살아가고 있다. 양쪽 다 집을 돌볼 생각을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 그러나 최근의 혈액검사 결과를 보며, 이젠 마지막으로 펜을 들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평생 자기 몸에 관해 일기를 써온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을 거부할 수는 없다. -4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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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직업 - 고통에 대한 숙고
알렉상드르 졸리앵 지음, 임희근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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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이라는 이 망할 직업! 즐거우면서도 엄격한 이 직업은 위험을 무릎쓰고 매 순간을 투자할 것을 요구한다. 나는 인간이라는 직업을 알량한 글 몇 줄로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혹여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 물정 모르는 순진한 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듬더듬 전투의 무기를 찾으려고 노력은 했다. -125쪽

일상에서 감당하는 상처로부터 나타나는 싸움과 기쁨은 끊임없이 외친다. 다시 시작하라고, 노력을 계속하라고, 다시 행진하라고, 허약함 위에 뭔가 쌓아올리라고. 거듭거듭, 사람들은 그 상처가 극복되길 바란다. 사람들은 서두르고 싶고 어서 페이지를 넘겨 다음 장으로 가고 싶다. 그러나 상처는 다시 나타나 실존을 꿰뚫는다. 내면의 암적인 병은 아마 어떤 선례들을 따르고 싶어하리라. 그릇된 확신에 꽉 매달리고, 스스로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끝없는 전투가 일으키는 공포를 피하려 하리라. -126쪽

알량한 인간이라는 직업. 나는 기쁘게 싸우면서, 내 취약함도 내 조건의 지독한 허술함도 결코 시야에서 놓치지 않고 주시해야만 한다. 한 걸음 한걸음을 만들어내야 하고, 내 취약함으로 강해져서 투쟁의 원천이 될 힘을 모든 것을 동원해 찾아내야 한다. 분명 예감컨대 이 싸움은 내게 버거운 싸움이다. 그러나 내가 싸우다 죽지는 않을 것이다. -126쪽.

궁극의 과감함인 웃음은 일상의 틀을 깨고 시련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한다. 장애인 시설에서는 부재의 중압감이 무겁게 내리누르고, 질문 또한 내리누른다. 그곳의 나날은 수많은 난관을 만나게 한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샹포르의 기준에 따르면 `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삶은 유머 덕분에 달콤해진다. 웃음과 전투가 우리 삶을 구원한다. 만약 이 둘이 함께한다면, 둘이 서로 꼭 같이 간다면 어떻겠는가? -128쪽

모든 상황이 말도 안 되는 고역을 요구할 때, 노력 앞에서 지탱하는 것은 오직 확신뿐이다. 인간이라는 직업의 소명, 그것은 모든 것에 대적하여, 유머와 함께 집요해진다. 그러니 전투에 나서라. 가벼움과 기쁨으로 모든것을 쌓아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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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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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쓴 <죽음과 죽어감>이라는 책을 보면 죽음을 분노, 타협, 수용에 이르기까지 다섯 단계로 분석한 구절이 나오지만, 나에게는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요즘 시대에는 둘 중 하나는 암에 걸리니까, 내가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아, 그래?`라고 생각했다. 내 유방암은 이비인후과 의사가 발견했다. 유방암에 걸리면 팥알 크기의 멍울이 만져진다고 들었는데, 내 경우는 왼쪽 가슴에만 찹살떡 같은 멍울이 있었다. 이비인후과 선생님한테 보였더니 곧바로 병원에 가보라기에, 집에서 예순일곱 걸음 떨어진 병원에 갔더니 역시 암이라서 잘라냈다. -240쪽

수술한 다음 날 나는 예순일곱 걸음을 걸어 집으로 담배를 피우러 갔다. 매일 담배를 피우러 갔다. 일주일간 입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가슴이 쓸모 없으니까, 가슴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항암제로 반질반질한 대머리가 되었고 1년 동안 살아 있다고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사람 구실을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사람 구실을 못하니 자리를 보전한 채로 한국 드라마를 보았고 그러다 턱이 틀어졌다. -241쪽

뼈에 재발했을 때는 전이되었다는 생각을 못했다. 다리를 들어 가드레일을 넘었을 때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정형외과에 가서 뢴트겐사진을 찍자, 예전에 유방 절제를 해준 의사의 안색이 바뀌었다. 의사는 곧바로 암연구회를 소개해주었고, 암연구회에서는 지금의 병원을 소개받았다. -241쪽

나는 행운아다. 당담 의사가 근사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배우 아베 히로시를 쏙 빼닮은 외모에 키만 그보다 작았다. 의사로서는 드물게 잘난 척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언제나 웃고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 병원 가는 날이 기다려졌다. 일흔의 할머니가 근사한 남자를 좋아하는 게 뭐가 나쁜가?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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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서재에서 - 대한민국 대표 리더 34인의 책과 인생 이야기
윤승용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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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기로 서평가가 됐나.

2000년대 초반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서평을 쓴 게 시작이다. 당시 `이주의 리뷰`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여기에 서평이 뽑히면 상금 5만원이 나왔다. 책 살 돈이 필요한 나로서는 그 코너에 뽑히는 게 중요했다. 거기서 열심히 하다보니 팬이 생겼고 다음에 인터넷 카페 ‘비평고원’에 책 이야기를 썼다. 그러다 내 독자적인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2007년 한 일간지에서 나를 ‘인터넷 서평꾼’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뒤 서평꾼으로 알려지게 됐다. -279쪽

-서평은 비평과 어떻게 다른가.

비평은 독자들이 같은 책을 두 번 읽게, 다시 읽게끔 하는 것이다. 서평은 읽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판단하는 자료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비평은 어떤 책을 이미 읽은 독자를 상대로 한다. 서평은 읽지 않은 독자를 상대로 한다. 넓게 보면 서평은 비평에 포함된다. 그런데 요즘엔 책을 읽은 독자들이 적어 비평을 읽는 독자들이 실종됐다. 상대적으로 서평의 역할은 커졌다. -280쪽

-서평의 역할은 무엇인가?

서평은 어떤 책을 읽고 싶도록 하거나, 읽은 척하게 하거나, 안 읽어도 되도록 해준다. 정보홍수 시대에 양서에 대한 일종의 감별사, 도선사 역할을 한다. -280쪽

-서평을 쓸 때 원칙은.

내 주관을 적게 넣는다. 이건 지면 사정과 관련이 있는데 대개 서평 분량이 원고지 9~10매 내외다. 책 내용을 정리하고 나면 주관적인 판단을 섞는다고 해봐야 한두 문장이다. 다른 필자들은 주관적 느낌을 내용보다 더 중심적으로 다루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독자들이 책 내용을 느끼게 해주는 데 주력한다. 개성이 없다거나 호오가 분명하지 않다거나 하는 인상을 줄 수 있지만, 서평은 어떤 책을 골랐다는 것 자체가 유익한 정보다. 비평은 다르다. 어떤 책을 비평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 자체는 정보가 안 된다. -280쪽

-독자들에 대한 영향력은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나.

한 10부를 더 나가는 데는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최대로 잡으면 200부 정도? 출판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면 서평이나 지면 책광고의 영향력은 많이 줄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책을 고를 때 서평을 참고하려는 독자들의 성향은 바뀌지 않았다. 독자들이 정보를 얻는 출처가 분산됐을 뿐이다. 내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 방문자 수가 하루 2000명을 넘을 때도 있다. -281쪽

-그 많은 서평을 쓰려면 엄청난 독서를 해야 할 텐데, 도대체 책을 얼마나 읽는지?

사실 책 읽을 시간이 많진 않다. 다만 강의하고 서평 쓰고 잠 자는 걸 빼면 책 검색, 책읽기, 서평 쓸 책을 고르는 일이 내 일상의 전부나 다름없다. 다행이 내가 주량이 적어 사교활동에 빼앗기는 시간이 적다. -281쪽

-책은 어떻게 읽나? 겹쳐읽기라는방식을 주장하던데?

책의 종류에 따라 읽는 방식이 여러가지다. 목차만 읽는 경우도 있고, 이동 중 차속에서 가볍게 읽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관심있는 분야는 관련 서적 수십 권을 나란히 펼쳐놓고 읽는 이른바 겹쳐읽기, 병렬독서라는 걸 할 수밖에 없다. 즉 책을 읽다 새로운 개념이나 이론이 나오면 관련 책을 찾아보는 식이다.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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