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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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쓴 <죽음과 죽어감>이라는 책을 보면 죽음을 분노, 타협, 수용에 이르기까지 다섯 단계로 분석한 구절이 나오지만, 나에게는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요즘 시대에는 둘 중 하나는 암에 걸리니까, 내가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아, 그래?`라고 생각했다. 내 유방암은 이비인후과 의사가 발견했다. 유방암에 걸리면 팥알 크기의 멍울이 만져진다고 들었는데, 내 경우는 왼쪽 가슴에만 찹살떡 같은 멍울이 있었다. 이비인후과 선생님한테 보였더니 곧바로 병원에 가보라기에, 집에서 예순일곱 걸음 떨어진 병원에 갔더니 역시 암이라서 잘라냈다. -240쪽

수술한 다음 날 나는 예순일곱 걸음을 걸어 집으로 담배를 피우러 갔다. 매일 담배를 피우러 갔다. 일주일간 입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가슴이 쓸모 없으니까, 가슴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항암제로 반질반질한 대머리가 되었고 1년 동안 살아 있다고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사람 구실을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사람 구실을 못하니 자리를 보전한 채로 한국 드라마를 보았고 그러다 턱이 틀어졌다. -241쪽

뼈에 재발했을 때는 전이되었다는 생각을 못했다. 다리를 들어 가드레일을 넘었을 때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정형외과에 가서 뢴트겐사진을 찍자, 예전에 유방 절제를 해준 의사의 안색이 바뀌었다. 의사는 곧바로 암연구회를 소개해주었고, 암연구회에서는 지금의 병원을 소개받았다. -241쪽

나는 행운아다. 당담 의사가 근사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배우 아베 히로시를 쏙 빼닮은 외모에 키만 그보다 작았다. 의사로서는 드물게 잘난 척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언제나 웃고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 병원 가는 날이 기다려졌다. 일흔의 할머니가 근사한 남자를 좋아하는 게 뭐가 나쁜가?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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