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으로 영국 철학자 사이먼 크리칠리의 <믿음 없는 믿음의 정치>(이후, 2015)를 고른다. 크리칠리는 데리다와 레비나스에 관한 연구서로 명성을 얻은 철학자인데, 정치철학 쪽으로도 문제적 저작을 여럿 내놓고 있다 한다. 국내에는 <죽은 철학자들의 서>라는 주변적인 책만이 소개됐었다.

 

정치와 종교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탐구하여 오늘날 정치적 교착상태에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책. 저자 사이먼 크리츨리는 세계가 사실상 세속주의가 아니라 신성화의 탈바꿈으로 더 잘 이해될 수 있고, 바로 자유민주주의라는 또 다른 신이 등장해 종교전쟁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치가 모종의 종교적 차원 없이 실행될 수 없다는 단언 아래 믿음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진정한 정치를 실행하려면 믿음을 다시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번역본의 부제는 '정치와 종교에 실망한 이들을 위한 삶의 철학'이다. '헬조선'에 절망하는 이들에게도 '돌파구'가 되어줄지 모르겠다...

 

15. 11. 05.

 

 

P.S. 크리칠리의 다른 저작으론 주저인 <해체의 윤리> 외 <햄릿 독트린><무한 요구> 등도 눈길을 끈다. <햄릿 독트린>은 바로 구입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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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오쿠다 쇼코의 <남성표류>(메디치, 2015)를 고른다. 남자 혹은 남성을 주제로 한 많은 책들 가운데(실제로 찾아보면 많지는 않다) 가장 민낯에 가까운 책이라고 할 만하다. '표류'라는 제목부터가 그렇다. 가령 와카쿠와 미도리의 <남자들은 왜 싸우려 드는가>(알마, 2015)나 하비 맨스필드의 <남자다움에 관하여>(이후, 2010) 같은 책을 떠올려봐도 알 수 있다. 얼마나 한심한, 하지만 얼마나 실제에 가까운 남자들 얘기인가를. 아, 물론 중념남자들 얘기다. 소개는 이렇다.

 

<남성표류>는 블랙박스처럼 감춰진 남자들의 속내를 시원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특이하게도 여성이다. 오쿠다 쇼코는 기자로 활약 중에 남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0년 동안이나 밀착취재를 이어갔다. 그 결과, 남자들의 은밀한 심리를 담은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남녀 독자들의 반응은 열렬했다. 최초의 중년남성 심리 보고서라는 평가도 나왔다. 저자의 두 번째 책 <남성표류>는 오늘날 중년남성에게 닥친 5가지 위기를 주제로 삼았다. 일자리, 갱년기, 자녀교육, 부모 돌봄, 늦어지는 결혼! 오쿠다 쇼코는 전국을 돌며 30대 후반부터 50대 남자들을 인터뷰해서 그들의 위기와 극복 과정, 때로는 실패 사례를 담아냈다. 

두 권의 책을 내놓았다고 했는데, 첫번째 책이 <남자는 괴로운가 보다>로 화제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며, 이어서 펴낸 것이 <남성표류>다. 다섯 가지 표류의 양상을 장별로 다루고 있는데, 나로선 '건강표류'에 일단 눈길이 간다. 여러 가지 갱년기 건강의 위기 증상과 맞닥뜨리고 있는 터라 더더욱. 효도표류, 가정표류, 애정표류, 직업표류도 알고 보면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 부제대로 '인생 가이드'까지 발견하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실상과 정직하게 마주하는 기회는 될 성싶다. 사회학자 김찬호의 추천사는 이렇다.

일본 현실은 한국의 자화상을 비춰보고 미래를 예견하는 거울이다. 일본 남자들이 겪는 고뇌와 좌절은 시대의 통증이다. 그 음울한 풍경을 읽으면서 자신을 객관화해보자. 새로운 삶의 실마리를 더듬어가는 분투에서 용기를 얻어 보자.  

20대 청춘이라면 해당사항이 없지만 중년에 접어든 남성들이라면 일독해봄직하다...

 

15. 1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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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비평사/지성사와 관련한 묵직한 책 두 권을 같이 묶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필립 라쿠-라바르트와 장 뤽 낭시가 공저한 <문학적 절대>(그린비, 2015)와 <생각의 역사>의 저자인 지성사가 피터 왓슨의 <저먼 지니어스>(글항아리, 2015)다.

 

 

<문학적 절대>는 '독일 낭만주의 문학 이론'이 부제. 700쪽 가까운 이 두툼한 책에서 두 저자는 "1800년대를 전후로 출간되었던 낭만주의 시기 텍스트를 선별하여 싣고, 낭만주의가 가진 현대성을 다양한 맥락에서 드러낸다."

특히 이 책은 국내 최초로 낭만주의의 중요한 저자 중 한 사람인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비판적 단상」과 <아테네움 단상>, 그리고 ‘도로테아에게 보내는 편지’로 잘 알려진 「철학에 대하여」와 같은 많은 문헌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아우구스트 슐레겔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강의>, 셸링과 노발리스의 텍스트들까지 모두 한국어로 번역하여, 이제까지 2차 문헌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낭만주의 시기의 대표적인 텍스트들의 다수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곧 이론서나 문학사에서 이름을 접할 수 있었던 텍스트들의 실체와 만나게 해준다는 것(특히 슐레겔).

 

 

'독일 낭만주의'라고 하면 너무 전문적일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게 작금의 독서 현실이지만 벤야민의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도서출판b, 2013) 같은 책에 관심을 가질 만한 독자라면 '축복'으로 여겨도 좋을 만한 책이다(라쿠-라바르트와 낭시의 공저로는 <문자라는 증서>도 번역돼 있다).

 

 

번역본으로는 무려 1400쪽이 넘는 분량의 <저먼 지니어스>는 좀더 폭넓은 시대를 다룬다. 18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3세기 동안의 독일 지성사가 범위다. 제목대로 '천재들의 나라' 독일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해주는 책. 

바로크 시대를 상징하는 바흐에서 현재까지 지난 250년 동안 독일 천재들의 활동, 또는 지식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이 이 책 <저먼 지니어스>의 내용이다. 이 ‘독일 천재’들을 보면 가난한 변방에 불과하던 독일이 1933년 히틀러가 등장하기 전까지 3세기 동안 지적·문화적으로 다른 유럽 국가와 미국보다 더 창조적이고 뛰어난 나라로 변모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낸 나라, 내면의 풍요를 이상으로 삼았던 교양국가, 교육받은 중간계층을 최초로 형성한 나라, 대학과 연구소의 나라가 바로 독일이었다. 18세기 중반부터 20세기까지 독일은 그야말로 ‘유럽의 세 번째 르네상스와 두 번째 과학혁명’이 일어난 나라였다. 저자 피터 왓슨은 히틀러 이전의 그 찬란했던 독일의 창조적인 업적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가능했는가, 히틀러의 등장 이후 그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무너졌으며 어떻게 회복되었는가를 방대한 문헌을 동원해 파헤치고 있다.

뉴요커의 서평이 압축적이다. '<저먼 지니어스>는 왓슨이 독일 지성사의 별들에게 쓴 850여 쪽에 달하는 연애편지다.” 이 가을에 읽을 수 있는 가장 긴 연애편지겠다...

 

15.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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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이론분야의 책 두 권을 같이 묶는다. 영국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의 대담집 <비평가의 임무>(민음사, 2015)와 라캉주의 분석가 백상현의 <고독의 매뉴얼>(위고, 2015)이다.

 

 

먼저 이글턴 독자들에게 <비평가의 임무>는 종합선물 같은 책이다(<문학이론 입문> 이후 그의 독자로 자연스레 입문한 나 같은 경우도 '이글턴 독자'에 해당한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과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영문학자인 매슈 보몬트가 2008년에서 2009년 사이의 9개월간 나눈 일련의 대담을 엮은 이 책은 이글턴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그가 집필한 모든 책, 그리고 가장 최근의 비평적 화두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 생애를 포괄하고 있다. 초점은 비평가로서의 이글턴의 학문적 여정에 맞춰져 있는데, 근 반세기가 넘는 기간에 걸쳐 이글턴이 실존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 일련의 이론적 담론들을 취하여 어떻게 마르크스주의를 심화하고 갱신하고 재정립하는지를 낱낱이 보여 준다. 끊임없이 사유하고 새로운 지적 도전들에 대응하며 계속 발전하고 변화해 가는 모범적 능력을 보여 주는 이글턴을 만날 수 있다.

'비평가의 임무'는 발터 벤야민의 유명한 에세이에서 제목을 가져왔는데, 이글턴의 벤야민론, <발터 벤야민 혹은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이앤비플러스, 2012)도 이 참에 다시 소환해도 좋겠다.

 

 

<고독의 매뉴얼>의 부제는 '라깡, 바디우, 일상의 윤리학'이다. 맹정현과 함께 한국프로이트라깡칼리지에서 상임교수로 활동하면서 라캉주의 전파에 힘쓰고 있는 저자의 신작이다.  

<라캉 미술관의 유령들>의 저자 백상현의 신작. 저자는 고독이라는 주제에 대한 이론적인 동시에 실천적인 글쓰기를 시도한다. 정신분석과 철학의 틀로 우리 삶의 당면한 문제, '벌거벗은 삶'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추리소설적 기법을 차용해, 라깡과 바디우의 이론적 개념을 삶의 실천과 연결시켜 급진적인 사유의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맹정현의 <프로이트 패러다임>(위고, 2015)과 함께 한국의 정신분석 담론의 현단계를 일별하게 해줄 듯싶다...

 

15. 10. 27.

 

 

P.S. 라캉과 정신분석 독자들에겐 이번 가을에 읽을 거리가 몇 권 더 있다. 라캉의 <아버지의-이름에 대하여>와 <종교의 승리>, 그리고 브루스 핑크가 쓴 <라캉의 사랑론> 등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라캉의 책들은 영역본). 분량이 얇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번역본들이 나와도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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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소재를 다룬 두 권의 책을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미국의 의학박사 쇼 윌기스가 엮은 <손의 비밀>(정한책방, 2015)과 '런던 문구 클럽'의 공동창설자 제임스 워드의 <문구의 모험>(어크로스, 2015)이다.

 

 

먼저 <손의 비밀>은 '낯설게 보는 인체과학 시리즈'의 첫 권으로 나왓는데, '몸에서 가장 놀라운 도구를 돌보고 수리하는 방법'이 부제다. '인체과학 시리즈'라는 점에서 짐작해볼 수 있는데, "미국 커티스 국립 손 센터의 전현직 전문의 15인이 공동 저술한 손 의학 전문교양서"."인간의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손의 문제들이 거의 모두 담겨 있다"고. 간단히 말해서, 손에 관해 의학적으로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실제로 어떤 책인지 궁금하고, 앞으로 나올 시리즈도 기대된다.

 

<문구의 모험>은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가 부제. "영국의 오프라인 문구류 품평회 '런던 문구 클럽'의 창설자인 저자 제임스 워드는 문구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발명부터 진화, 문화적 변용까지 그가 소개하는 문구사의 주요장면들은 그대로 우리의 역사, 문화사, 생활사, 산업사의 주요 장면들이다. 일상적 사물이 된 문구들이 어떻게 발명되고 우리의 삶과 어떻게 관계 맺어 왔는가를 차근히 살피며 독자들을 흥미로운 문구의 세계로 안내한다."

 

일단 문구 마니아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하는 책이고, 그런 수준은 아니더라도 작가들의 문구에 대해서는 흥미를 갖고 있는 나 같은 독자도 끌어당기는 책. "색인 카드에 짧은 글을 써두고 이리저리 퍼즐을 맞추듯 소설을 완성해나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노란색 리걸 패드에 작품을 써내려간 노벨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 포스트잇에 소설을 구상하고 완성한 이후에도 모두 스크랩해서 보관하는 윌 셀프 등 자신만의 도구에 애착을 가진 작가들과 그들의 특별한 문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니까 말이다.

 

'옵서버'지의 평은 이렇다. "제임스 워드 덕에 우리에게는 앞으로 꽤 오랫동안 문구에 관한 책이 필요 없게 되었다." 곧 '문구 책의 종결자' 되시겠다...

 

15.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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