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관심을 갖게 된 영국의 인류학자다. 팀 잉골드. 1948년생이고 현재는 에버딘대학의 명예교수. 몇년전에 <팀 잉골드의 인류학 강의>가 나왔을 때는 개론서 정도로 봤는데, 최근 연이어 나온 책들은 그가 독자적인 관심과 이론을 갖춘 인류학자라는 걸 알려준다. 소위 ‘선(line)의 인류학‘이다.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와 <라인스>까지 주요 저작이 더 번역되어 비로소 ‘팀 잉골드의 인류학‘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 그리기, 쓰기의 공통점은? 모두 선을 따른다는 점이다. <라인스>는 이처럼 일상생활 속, 역사 속, 세계 속 어디든 존재하는 선을 탐구한다. 심오하고 창조적인 관점을 통해 과감하게 사유하는 팀 잉골드는 이 책을 시작으로 ‘선 인류학’을 전개해나간다. 그는 열린 길을 따르며 움직임 속에서 성장해나가는 행로(wayfaring) 방식을 매혹적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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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가 열서너 살 때(1929년생이니 1942, 3년쯤일까), 유대인 작곡가에게 작곡을 배우러 다녔다. 유대인들이 차츰 탄압받던 시기에 쿤데라의 아버지 루드빅은 그런 방식으로 동료에 대한 우의를 표하고자 했다. 아파트를 빼앗기고 여기저기 옮겨다니던 스승님의 피아노 앞에서 쿤데라는 연습곡들을 연주했다. 그 시절을 회고하는 단락은 쿤데라 에세이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아름답다. 그가 이름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유대인 작곡가의 이름은 파벨 하스(1899-1944)다(결국 나치의 수용소에서 생을 마친다). 그의 딸 올가 하소바(1937-2022)는 오페라 가수이자 배우로 쿤데라의 첫번째 아내이기도 했다...

그 모든 일들 가운데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그를 흠모하는 마음과 이미지 서너 개뿐이다. 특히 이 이미지가 그렇다. 수업이 끝난 뒤 그가 나를 바래다주다가 문 가까이에서 멈춰서더니 불쑥 이렇게 말했다. "베토벤에게는 놀랄 만큼 약한 이행부들이 많아. 하지만 센 이행부들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약한 이행부들이야. 잔디밭처럼 말이야. 잔디밭이 없으면 우리는 그 위로 솟아나는 아름다운 나무에게서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을 거야."
묘한 생각이다. 그것이 아직도 나의 기억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묘하다. 아마도 내가 스승의 내밀한 고백 하나를, 어떤 비밀, 오직 터득한 자들만이 알 권리를 갖는 한 가지 위대한 꾀를 듣게 된 걸 명예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스승님의 그 짧은 성찰은 일생 동안 나를 따라다녔다.(나는 그 성찰을 옹호했고, 그것과 싸웠으며, 한 번도 그 끝까지 가 보지 못했다.) 그 성찰이 없었던들 분명 이 글은 쓰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소중한 그 성찰보다 더욱 소중한 것, 그것은 그 잔혹한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 아이 앞에서, 드높은 목소리로, 예술 작품의 구성 문제를 성찰하던 한 인간의 이미지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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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고딕소설 선집 <나는 지금 잠에서 깼다>가 나왔다. 광고를 보고 곧바로 알라딘 북펀드에 참여한 책이기도 하다(처음인 것 같다). 12편이 수록돼 있는데, 하름스의 <노파>를 제외하면 나도 처음 접하는 작품들이다. 편역자와 출판사의 수고에 감사하며 응원을 보낸다. 
















책을 펴낸 미행은 꽤 독특한 안목으로 책을 펴내는 곳이다. 프루스트의 단편집 <쾌락과 나날>부터 시작해서 조르주 바타유의 시집으로 넘어가면 프랑스문학 출판사인가 싶었지만, 러시아 작가 유리 올레샤의 단편집 <리옴빠>가 더해지면 '색깔 있는' 문학출판사가 된다. 대다수가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어서 더 의미가 깊은데, 헝가리 시인 요제프 어틸러의 <너무 아프다>와 러시아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전쟁산문> 같은 책은 특히 귀하다. 판권란에는 출판사의 주소지도 나와 있지 않아서 더 궁금하다.
















전체 출간 목록을 훑어보니 대략 절반 가량을 구입했는데, 사실 모든 책을 구입한다 해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포크너와 미시마 유키오가 취항저격형 책들이다. <난 지금 잠에서 깼다>도 많은 독자들과 만나서 러시아문학작품이 더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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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현대사 책들이 연이어 나왔다. 시기도 이어져 있는데 니콜라스 스타가르트의 <독일인의 전쟁>은 독일인들이 경혐한 2차세계대전(1939-1945)을 다루고 있고, 하랄트 애너의 <늑대의 시간>은 전후 10년간(1945-1955)에 주목한다. 지난겨울에 제발트의 작품들을 다시 읽은 터라 더 관심을 갖게 되는 책들이다(제발트의 책 가운데서는 <공중전과 문학>이 길잡이가 되겠다). 먼저 <독일인의 전잼>에 대한 소개.

˝이 책은 2차대전 사료로 독일인의 혼란스러운 속내에 접근한다. 집이나 길거리에서 포착된 수많은 내밀한 이야기로 2차대전의 편견을 헤집는다. 일기, 편지, 보고서, 법정 기록에 담긴 독일인의 생생한 육성은 전체주의의 전쟁범죄에 숨은 낯설고 새로운 진실을 증언한다. 그 진실이란 독일 국민이 패전의 순간까지 적극적으로 2차대전에 임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그들이 내면에 품었던 민족방어 전쟁 논리가 나치즘과 결부되며 어떻게 발전했는지 뒤따라간다.˝

그리고 <늑대의 시간>에 대한 소개.

˝패배의 잿더미에서 ‘영혼의 타락’과 ‘홀로코스트의 공포’를 딛고 일어선 ‘전후 독일인의 심리’를 해부한 최초의 역사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 1945년 5월 8일, 이른바 ‘제로시간‘부터 1955년까지 10년 동안 독일이 거쳐야 했던 재건의 노력과 사회적 분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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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8년 전의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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