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는 관심도서가 여럿 되는데, 그중 조하나 보크만의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글항아리, 2015)를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냉전시대 경제학 교류의 숨겨진 역사'가 부제. "저자는 20세기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의 동서 논의 현장을 복원하여 신고전파 경제학이 곧 신자유주의라는 통념을 뒤집으면서,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의 좁은 창문에 가려지기 이전에 이들의 논의와 토론이 이루어졌던 ‘경계 없는 은하계’를 그려 보인다."

 

 

원서를 찾아보니 번역서 제목이 부제이고, 원제는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시장'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재발견'이라는 게 책이 갖는 의의로 지목된다. 소개는 이렇게 이어진다.

사회주의는 반反시장적 국가주의 이념인가? 이 책에 따르면 이는 근거 없는 낙인이다. 20세기 동유럽에서는 ‘사회주의에 기반을 둔 시장’을 추구하는 유의미한 정치 실험이 이루어졌고 이는 당시 신고전파 경제학 담론의 주요 축이었다. 20세기 말 신자유주의가 이념적 승리를 거두면서 ‘자본주의적 시장’이 가능한 유일한 체제인 양 오인되었을 뿐이다. 저자는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의 수많은 경제학자들을 인터뷰하고 동유럽 문서고의 다양한 문헌을 직접 검토하고 번역하였으며, 이들의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 신고전파 경제학과 경제사상사의 까다로운 맥락들을 소화해냈다.

그렇게 우리의 통념에 대한 뒤집기를 시도한 책으로 피터 도베르뉴 등의 <저항 주식회사>(동녘, 2015)도 꼽고 싶다. '진보는 어떻게 자본을 배불리는가'가 부제. 내용을 보면 그렇게 예상 밖인 것만은 아니다.

이 책에서는 기업을 견제해야 할 사회운동단체들이 기업과 함께, 기업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런 행태는 매우 다양한데, 그중 하나는 운동단체들이 월급과 임대료 · 프로젝트 비용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출처와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금을 모으는 것이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대기업과 동반자가 되고, 특급 갑부들과 협력하거나 유명 인사들을 섭외하며, 기업의 돈을 받고 자신의 브랜드를 빌려 준다. 또 기업과 정부 · 시민들로부터 더 많은 후원과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브랜드 가치’를 관리하려 애쓴다. 저자들은 이렇게 기업화 된 사회운동단체들을 ‘군산복합체’에 빗대어 ‘비영리산업복합체’로 전락했다고 표현한다.

주제만 보자면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과 <저항 주식회사>가 첫 인상만큼 닮아 있지는 않지만, <저항 주식회사>를 '진보적 사회단체의 우파적 행태' 정도로 이해하면 대칭적인 의미는 가질 수 있겠다. 나란히 꼽은 이유다...

 

15. 0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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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캐스파 헨더슨의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은행나무, 2015)을 고른다. 미처 예기치 않은, 상상하지 못한 책이다. 현재로선 '공존하려는 인간에게만 보이는 것들'이란 부제만 떠 있어서 실제로 어떤 책인지도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같이 꽂아둘 만한 책들은 떠오르는데, 알베르토 망겔의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궁리, 2013),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열린책들, 2011) 등이다. 차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을 다룬 책이 아닐까, 라는 것. 나머지 두 책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의 상상(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공간과 영감을 제시해놓은 것과 대비되겠다. 하지만 이 역시 제목에 비추어 상상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책이 대체 무엇에 관한 것이고, 어째서 묵직한 분량을 자랑하는지는 실물을 봐야 알 수 있겠다.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해 상상해보는 것만으로 최소한 하루의 반나절은 의미심장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서가에 빈자리를 미리 마련해두면서...

 

15.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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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대학 신입생들의 독서토론 시간에 추천할 만한 책이 없는냐는 질문을 받고 떠올린 책의 하나는 '채현국이 구술하고 정운현이 기록한' <쓴맛이 사는 맛>(비아북, 2015)이다. 채현국 선생은 지난해 1월초 한겨레신문의 인터뷰에서 노인세대에 대한 일갈을 서슴지 않아 크게 화제가 되었던 분이다(기사를 찾아보니 작년에 한 잡지에서는 '올해의 인물'로도 꼽았군).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란 제목으로 나왔던 인터뷰 기사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8266.html 참조. <쓴맛이 사는 맛>은 그 기사가 계기가 돼 선생을 찾아간 언론인의 '채현국 보고서'다.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의 제목이 '너희들은 저렇게 되지 마라'이다.

 

 

기록자는 존경받는 어른이 드문 시대에 그가 '제대로 늙은 어른'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었다고 평한다. '꼰대'나 '어버이연합'만 떠올리다가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쓴맛이 사는 맛"이란, 제대로 된 말씀을 들으니 경탄과 환호가 저절로 이어졌었다. 김주완의 <풍운아 채현국>(피플파워, 2015)에 뒤이어 나온 <쓴맛이 사는 맛>은 그런 배경에서 나온 책이다. 인터뷰 기사의 확장판으로 읽어도 되겠다.

시대의 어른 채현국의 삶이 깊어지는 이야기. 채현국은 '거리의 철학자', '파격의 인간', '현대판 임꺽정' 등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아왔다.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2위일 정도의 사업을 일군 거부였으며, 민주화운동가들을 뒤에서 후원했으며, 현재는 효암학원이라는 사학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교육자이다. 스펙 쌓기, 취업 전쟁 등으로 지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힐링'이라는 휘황찬란한 말로 포장된 위로가 넘쳐나는 오늘날, 채현국의 진심 어린 조언과 충고는 젊은이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그가 몸으로 직접 겪고 증명한 삶에서 우러나온 조언은 제대로 된 어른을 만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분을 만나본 지가 가물가물하다. 제대로 된 나라,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오늘 대학의 공기를 처음 들여마신 젊은이들이 "너희들은 저렇게 되지 마라"란 선생의 충고를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15. 0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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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에 가기 전에 '이주의 발견'을 고른다. '이주의 이론서'라고 해도 되겠다. 줄리엣 미첼의 <동기간>(도서출판b, 2015). 저자는 영국의 정신분석가이자 사회주의 여성주의자로 소개된다. 정신분석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을 제기했는데, 정신분석과 페미니즘의 관계는 사실 편이 나뉘는 걸로 안다.

 

 

<동기간>은 제목이 시사하듯 초점이 좀 다르다. '수직적 관계의 정신분석에서 수평적 관계의 정신분석으로'라는 표지 문구가 잘 집약하고 있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줄리엣 미첼의 책으로 기본적으로는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적 관점에서, 그동안 배타적으로 중시되어왔던 부모와 자식 간의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동기간이라는 측면 관계를 다양한 자료를 통해 분석하고 있는 저술이다.

희소한 접근방식이므로 정신분석이나 이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손길이 바로 갈 만하다.

 

 

말이 나온 김에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관련서를 찾아봤다. 모두 갖고 있는 책들인데, 절판된 책이 많아졌다. 엘리자베스 라이트가 엮은 <페미니즘과 정신분석학 사전>(한신문화사, 1997)은 기본 '도구'이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아직 품절되지 않았다. 국내 저자들이 쓴 <페미니즘과 정신분석>(여이연, 2003)과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페미니즘 이론을 통한' 텍스트 읽기를 보여주는 캐런 코우츠의 <아동문학 작품 읽기>(작은씨앗, 2008)은 절판된 상태.

 

 

줄리멧 미첼의 책으론 <여성의 영지>(2015)도 눈에 띄는데, 국내 번역된 <여성의 지위>의 원저인지는 확인해봐야겠다. 예상대로다. 초판은 1971년에 나왔고, 국내엔 <여성해방의 논리>(광민사, 1980)와 <여성의 지위>(동녘, 1984)란 제목으로 두 차례 번역됐었다. <미친 남자와 메두사>(2001)는 히스테리를 재조명한 책으로 돼 있는데, 수직관계 대신에 측면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한 책이라 한다. 근간으로는 <줄리멧 미첼과 수평축>이란 연구서도 나올 예정인데, 역시나 동기간 정신분석을 다룬 책으로 보인다. 한데, 대부분 외동인 한국의 핵가족 현실에서는 동기간 분석의 유효기간이 길어보이진 않는군. 혼자인 아이의 정신분석이 앞으로 개척되어야겠다...

 

15. 0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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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스티븐 케이브의 <불멸에 관하여>(엘도라도, 2015)를 고른다.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의 세번째 책인데, 첫 권이 셀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엘도라도, 2012)였고, 둘째 권이 수전 울프의 <삶이란 무엇인가>(엘도라도, 2014)였다. 출간 간격을 보면 점점 빨리 나오는 거 같은데, 넷째 권도 올해 나오는지 궁금하다. 공통점은 모두 강의를 바탕으로 한 책이라는 것. 소개는 이렇다.

 

TED에서 최단시간에 170만 명이 시청하며 화제가 된 스티븐 케이브 박사의 ‘불멸’에 대한 명강의가 책으로 나왔다. 죽고 싶지 않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 ‘불멸’을 ‘4가지 이야기’로 구분해 설명하면서, 불멸의 욕망이 어떻게 인류의 문명을 이끌어왔는지 풀어내고 있다. 프랑스의 알랭 드 보통과 비견되며 뛰어난 강연으로 소통하는 영국의 대중철학자 스티븐 케이브는 어둡고 막연할 것 같은 주제를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내러티브로 진행한다. 철학책이자 역사책인 <불멸에 관하여>는 “영원한 삶이 정말로 가능한가?”, “영생이 그토록 갈망할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그 대답의 과정을 파헤치고 있다.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은 적지 않은데, 지난해 나온 책만 해도 여럿이다(표지만 다 무채색이로군). 불멸도 따지자면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어떤 책을 기본서로 삼을 수 있을지는 좀 훑어봐야 알 것 같다. 화제작이었던 셀리 케이건의 책은 원서까지 구해놓았는데, 자꾸 독서 기회를 놓치게 된다. '문학 속의 죽음' 같은 강의를 하게 되면, 억지로라도 시간을 낼 거 같다. 아, 그 주제의 책도 이미 나와 있긴 하다.

 

 

학술적인 성격의 책이지만 최문규 교수의 <죽음의 얼굴 - 문학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죽어가는가>(21세기북스, 2014), 황훈성 교수의 <서양문학에 나타난 죽음>(서울대출판문화원, 2013), 그리고 임철규 교수의 <죽음>(한길사, 2012) 등이다. <죽음>은 어디에 놓았는지 찾아봐야겠다...

 

15.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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