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통할 것 같은 느낌의 책 두 권을 같이 묶는다. 이서희의 <유혹의 학교>(한겨레출판, 2016)와 곽미성의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21세기북스, 2016)다. 유혹과 연애를 주제로 한다는 점 외에도 두 저자의 예기치 않은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했다는 사실.

 

 

<관능적인 삶>(그책, 2013)으로 이미 (조용한) 화제를 모은 바 있는 이서희는 영화학교 ESEC 졸업 후 파리3대학 영화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고, 이번에 첫 책을 펴낸 곽미성은 영화 제작학교 ESRA에서 영화 연출 전공. 파리 1대학에서 영화학 학사와 석사를, 파리 7대학에서 박사준비과정(DEA)을 마쳤다고 소개된다. 정확한 연배는 모르겠지만 서로 안면도 있을 법하다. 굳이 약력까지 들춘 것은 역시나 '프랑스 물'이 다른가 보다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학과 예술의 나라 프랑스는 유혹과 연애의 나라이기도 한 것. <유혹의 학교>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얼핏 '도덕의 학교'를 패러디한 제목 같기도 하다).

"유혹은 상대가 있는 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고, 유혹의 대상은 타인으로만 제한되지 않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기 자신을 유혹하기도 하고 우리의 삶을 유혹하거나 삶과 삶의 순간에 유혹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유혹은, 상대의 매력은 물론 자신을 발견하고 탐험하는 수업이며, 우리는 삶과 함께 단련된 감각으로 소통의 폭과 깊이를 확장해가는 과정이다. 생명이 번식하고 문명이 꽃피워가는 이 세상은 그 자체로 유혹의 학교가 된다."

이 정도 소개 갖고는 감을 잡을 수도 없고 유혹도 되지 않는다. 책은 지난주에 구입했지만 당장은 읽어볼 짬이 없다. 다만 프랑스 소설들을 강의에서 계속 다루다 보니(게다가 이번주에는 모파상의 <벨아미>다) 저자가 강의할 유혹술이 궁금하긴 하다. 구입해놓고도 어디에 둔 지 몰라서 읽지 못한 <관능적인 삶> 꼴이 나기 전에 <유혹의 학교>는 당분간 손 가까이 두어야겠다.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는 부제가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인류 프랑스인들의 성과 사랑'이다. 대놓고 '프랑스 자랑질'이라고 할까.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는 자유롭고 주체적인 프랑스인들의 성과 사랑을 통해 프랑스 사회가 가진 문화의 속살을 보여주는 에세이다. 사랑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안에 영화, 문화, 음식에 대한 얘기가 들어 있어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교양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프랑스로의 여행을 목적으로 읽어도 좋고, 프랑스 문화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읽어도 좋으며, 프랑스인들처럼 자유롭고 매력적인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 읽어도 좋다." 

저자는 프랑스 남자와 결혼한 16년차 파리지엔이라고. 첫 책인 만큼 어느 정도의 필력을 보여주는지는 실물을 봐야 알 것 같다(그래서 주문을 넣었다).

 

 

이번 겨울에는 러시아 문학기행을 다녀올 참이지만, 언제 기회가 닿으면 프랑스 문학기행도 가봐야겠다. 어떤가, 자네가 가이드를 해줄 텐가, 벨아미?..

 

16. 06.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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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을 한권 더 고른다. 분량으로 보자면 '어마어마한 발견'이라고 할 만한데, 무려 1100쪽에 이르는 <20세기 프랑스 역사가들>(삼천리, 2016)이다. '새로운 역사학의 탄생'이 부제. 사실 편제 자체가 두꺼워질 만하다. 42명의 프랑스 역사가들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20세기 프랑스 역사가 사전'이라고 보면 되겠다. 옮긴이의 말에서는 '20세기 프랑스 역사학의 오디세이아'라고 불렀다. 앙리 피렌(1862-1935)에서 앙리 루소(1954- )까지다.

 

 

원저는 영어본이다. 영어권의 프랑스사 연구자들이 총동원된 듯한 인상이다(실제로야 그렇지 않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이런 규모의 책을 꾸미려면 관련학계가 총동원되어야 한다). 원저에 대한 욕심도 생기는데, 하드카바밖에 없어서 가격이 좀 부담스럽긴 하다(20만원대). 같이 비교가 되는 책은 작년에 나온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한길사, 2015)이다. 마르크 블로크, 페르낭 브로델, 조르주 뒤비, 미셸 푸코 등이 두 권에서 중복되는 이름이다.

 

 

어떤 용도로 읽을 수 있는가. 역사학 전공자라면 통독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사전으로 활용할 만하다. 가령 최근에 나온 <날씨의 맛>(첵세상, 2016)의 편자 알랭 코르뱅(1936- ) 같은 역사학자를 알게 되었다면, 그의 전반적인 관심사와 이력을 이 책에서 읽어보는 식이다.

 

 

책에서 코르뱅보다 젊은 역사학자는 딱 두 명인데, 로제 샤르티에(1945- )는 국내에 <읽는다는 것의 역사>와 <프랑스혁명의 문화적 기원> 등이 번역되었고, 앞서 언급한 앙리 루소의 책으론 <비시 신드롬>이 나와 있다. 곧 <20세기 프랑스 역사가들>은 이런 책들을 읽기 전후에 읽어볼 만하다. 엄두가 안 나는 독자라면 도서관에서 대출하거나 필요한 페이지만 복사해서 읽어도 좋겠다...

 

16. 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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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과 독서에 관한 강의를 종종 진행하다 보니 관련서들을 챙기는 편이다. 사이토 다카시의 <세상에읽지 못할 책은 없다>(21세기북스, 2016)나 조한별의 <세인트 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바다출판사, 2016) 등을 구입한 건 그런 이유에서인데, 사실 독서론이나 공부법에 대한 책들이 특별히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을 리는 없기 때문에 그냥 쭉 훑어보는 것 정도로 독서를 대신할 수 있다.

 

 

그건 실제로 사이토 다카시가 권장하는 독서법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필요는 없다', '많이 사서 조금씩 두루 읽는다' 등이 그가 제안하는 독서법이다. '업자들' 관점에서 보자면 지극히 당연한 말에 불과하지만, 인용해본다.

사실 우리 주변에 이른바 독서가로 불리는 사람들은 그다지 완독에 집착하지 않는다. '완독하고 나서야 다음 책을 읽겠다'는 원칙을 정해 두면 일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령 집안 서재에 1만 권의 장서를 보유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가 1만 권을 전부 읽었을까? 그렇지 않다.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소위 발췌독을 거듭한 결과 많은 양의 장서를 갖게 됐다고 봐야 한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제한돼 있다. 그 누구도 세상에 존재하는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완독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시간 동안 얼마만큼 다양한 책을 접할 것인지, 책과 얼마나 잘 교감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다.(19-20쪽)

이런 조언에 충실하자면, 사이토 다카시의 책 역시 완독의 대상은 아니다. 그냥 필요한 부분만 발췌독하는 걸로 충분하다(내가 지금 이 대목을 인용한 것처럼).

 

내가 사이토 다카시의 책 가운데 제일 처음 읽은 것은 <독서력>인데, 그는 독서력을 갖추기 위해서 150권 정도의 독서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내가 강의에서 자주 인용하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권수만 채우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염두에 둔 건 지하철에서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신서'였다. 그리고 그 신서의 대명사가 일본의 '이와나미 신서'다. 그 이와나미 신서가 얼마 전부터 '이와나미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다.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에서 출간하고 있어서 정확한 명칭은 'AK 이와나미 시리즈'다. 현재는 세 권이 나와 있는데, <이와나미 신서의 역사>는 이와나미 신서의 총목록을 포함하고 있어서 좀 두툼하다. <논문 잘 쓰는 법>과 <자율과 규율>은 신서(우리식 문고본과 비슷하다)에 맞게 200쪽이 안되는 분량으로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사이토 다카시의 주장인즉 이런 책을 150권 가량 읽으면 우리 뇌에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 근육'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분량이나 성격 면에서 책세상문고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번역만으로는 150권이 채워지기 어려울 듯하므로 다른 방도가 필요한데,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는(교유서가의 첫단추 시리즈와 연암서가와 인문교실 시리즈) 옥스퍼드대학출판부의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도 대안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비문학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고, 문학으로 분야를 옮기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세계문학전집 가운데서 얼마든지 골라 읽으면 되겠다.

 

사이토 다카시가 대학생들에게 주는 조언은 가급적 많은 양의 입문서를 읽으라는 것인데, 구체적으로는 '일주일에 다섯 권'이다. 200쪽 분량으로 계산하면 일주일에 1000쪽은 읽어야 된다는 것인가? 물론 그럼 좋겠지만, 그는 그렇게 무리한 요구까지는 하지 않는다. 20-30퍼센트의 독서도 유익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200쪽짜리 책의 20퍼센트라면 40쪽이고, 이 정도는 30분-1시간이면 충분히 읽어치울 수 있는 분량이다. 대학생이 아닌 직장인조차도.  

 

독서가 삶을 바꾸어주길 바라는 독자라면, 이제라도 실천해봄직하다. 매일 30분-1시간씩 걷는 일이 우리의 몸을 변화시켜주듯이, 매일 30분-1시간의 독서 역시 우리의 뇌(사고)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생을 변화시킨다. '평범한 대학생을 메이지대 교수로 만든' 사이토 다카시의 독서론이다...

 

16. 05. 27.

 

 

P.S. 일본 인문출판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와나미 관련서로는 창업주에 대한 평전으로 나카지마 다케시의 <이와나미서점 창업주 이와나미 시게오>(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15)가 있다. "현재의 이와나미서점이 일반 대중에게 주는 인식과 창업주 이와나미 시게오의 사상이 어떻게 맞서고 합쳐지며 그의 안에 하나의 사상으로 남게 되었는지를 다양한 사료와 일화를 통해 담담히 고찰해나간다."  

 

또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으로 가는 문>(현암사, 2013)도 이와나미 관련서인데,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란 부제대로 자신이 이와나미 소년문고로 읽은 어린이 세계명작 50권을 회고하고 있는 책이다.

 

한편 어문학사에서 나온 '일본 근현대사' 시리즈(전10권)도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다. 마지막 10권 <일본 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어문학사, 2013)은 이와나미 신서 편집부에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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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개되는 저자는 아니므로 '발견'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매번 출간 소식이 반가운 저자는 영국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이다. 지난해부터 부쩍 책이 자주 나오는데(확인해보니 그래봐야 네 권이지만) 이번에 나온 건 <낙관하지 않는 희망>(우물이있는집, 2016)이다(원저는 예일대판과 버지니아대판, 두 종이 있다).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얼른 가늠해보기 어렵다. 소개는 이렇다.

 

"저자의 희망에 대한 생각은 삶에서 낙관주의의 역할에 대한 확고한 거절로 시작한다. 그것은 오히려 합리화의 구조 혹은 진실된 분별력 대신 한 사람의 기질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친숙하지만 제대로 규정하기 힘든 단어인 희망의 의미를 분석한다. 그것은 감정인지, 열망과는 어떻게 다른지, 미래에 집착을 하는지 등. 그리고 마침내 저자는 비극적 희망의 새로운 개념을 꺼내든다. 이글턴이 감지하는 희망은 경박한 낙관주의에 오염된 희망을 정련하고 제련하는 것으로서 '희망과 욕망의 비극적 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저평가되어온 희망의 가치를 상승시켜서 '희망과 절망의 역리적逆理的 관계'를 교차하고 융합한다."

이런 소개글은 대개 담당 편집자가 작성하는데, "이글턴이 감지하는 희망은 경박한 낙관주의에 오염된 희망을 정련하고 제련하는 것으로서 '희망과 욕망의 비극적 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저평가되어온 희망의 가치를 상승시켜서 '희망과 절망의 역리적逆理的 관계'를 교차하고 융합한다."는 건 이글턴의 문체를 미리 맛보게 하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친절하지는 않다. 거기에 뒤이어 나오는 "그렇게 했을 때에만 이글턴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희망"의 여건을 조성하고 에른스트 블로흐의 허망하고 낙관적인 희망에 대항하는 '값지고 현실적인 희망'의 조건을 구성할 것이다."란 문장도 마찬가지다(에른스트 블로흐의 의문의 1패로군).

 

 

 

블로흐의 주저인 <희망의 원리>는 박설호 교수에 의해 완역본이 나왔었지만 현재는 절판된 상태이고, 박 교수의 '에르스트 블로흐 읽기'만 세 권까지 나와 있다. 김진 교수의 <에르스트 블로흐와 희망의 원리>(울산대출판부, 2006)도 가이드북이다(목적지가 사라진 가이드북?). 

 

모호한 소개글보다는 차라리 슬라보예 지젝의 추천사가 명쾌하다. "우리가 빠져든 곤란지경의 도처에서 횡행하는 낙관주의는 당연히 가짜이다. 오직 진정한 희망을 지참한 사람들만이 우리가 다가가는 지옥을 감히 직시할 수 있다. 이 책은 암담해져가는 현대에 적확하게 들어맞는 진실한 종교의 가장 뛰어난 고백서이다." 그래서 이 또한 장바구니로...

 

16. 0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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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을 고른다. 패트리샤 코헨의 <중년이라는 상품의 역사>(돋을새김, 2016). 제목이 눈에 띌 수밖에 없는데, 알고 보니 <나이를 속이는 나이>(돋을새김, 2014)란 제목으로 한 차례 나왔던 책이다. 제목과 표지 갈이를 하고서 다시 나온 셈인데, 여하튼 전보다는 눈에 띄는 책이 되었다.

 

"오랫동안 뉴욕 타임스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방대한 자료 수집과 생생한 인터뷰를 토대로 ‘중년에 관한 최고의 연구 보고서’를 펼쳐낸다. 이 보고서는 지금까지 중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과 미래 사회를 위한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내용이야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데, 문제는 어떻게 풀어냈느냐는 것이겠다.

 

 

돌이켜보니 중년을 주제로 한 책을 여럿 읽었다. 데이비드 베인브리지의 <중년의 발견>(청림출판, 2013)과 바버라 스트로치의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해나무, 2011), 윌리엄 새들러의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사이, 2006) 등인데, 그래도 <중년이라는 상품의 역사>에 눈길이 가는 걸 보면, 확실히 중년은 중년인 모양이다. 새로운 얘기가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16. 0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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