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과 독서에 관한 강의를 종종 진행하다 보니 관련서들을 챙기는 편이다. 사이토 다카시의 <세상에읽지 못할 책은 없다>(21세기북스, 2016)나 조한별의 <세인트 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바다출판사, 2016) 등을 구입한 건 그런 이유에서인데, 사실 독서론이나 공부법에 대한 책들이 특별히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을 리는 없기 때문에 그냥 쭉 훑어보는 것 정도로 독서를 대신할 수 있다.

 

 

그건 실제로 사이토 다카시가 권장하는 독서법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필요는 없다', '많이 사서 조금씩 두루 읽는다' 등이 그가 제안하는 독서법이다. '업자들' 관점에서 보자면 지극히 당연한 말에 불과하지만, 인용해본다.

사실 우리 주변에 이른바 독서가로 불리는 사람들은 그다지 완독에 집착하지 않는다. '완독하고 나서야 다음 책을 읽겠다'는 원칙을 정해 두면 일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령 집안 서재에 1만 권의 장서를 보유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가 1만 권을 전부 읽었을까? 그렇지 않다.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소위 발췌독을 거듭한 결과 많은 양의 장서를 갖게 됐다고 봐야 한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제한돼 있다. 그 누구도 세상에 존재하는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완독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시간 동안 얼마만큼 다양한 책을 접할 것인지, 책과 얼마나 잘 교감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다.(19-20쪽)

이런 조언에 충실하자면, 사이토 다카시의 책 역시 완독의 대상은 아니다. 그냥 필요한 부분만 발췌독하는 걸로 충분하다(내가 지금 이 대목을 인용한 것처럼).

 

내가 사이토 다카시의 책 가운데 제일 처음 읽은 것은 <독서력>인데, 그는 독서력을 갖추기 위해서 150권 정도의 독서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내가 강의에서 자주 인용하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권수만 채우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염두에 둔 건 지하철에서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신서'였다. 그리고 그 신서의 대명사가 일본의 '이와나미 신서'다. 그 이와나미 신서가 얼마 전부터 '이와나미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다.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에서 출간하고 있어서 정확한 명칭은 'AK 이와나미 시리즈'다. 현재는 세 권이 나와 있는데, <이와나미 신서의 역사>는 이와나미 신서의 총목록을 포함하고 있어서 좀 두툼하다. <논문 잘 쓰는 법>과 <자율과 규율>은 신서(우리식 문고본과 비슷하다)에 맞게 200쪽이 안되는 분량으로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사이토 다카시의 주장인즉 이런 책을 150권 가량 읽으면 우리 뇌에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 근육'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분량이나 성격 면에서 책세상문고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번역만으로는 150권이 채워지기 어려울 듯하므로 다른 방도가 필요한데,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는(교유서가의 첫단추 시리즈와 연암서가와 인문교실 시리즈) 옥스퍼드대학출판부의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도 대안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비문학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고, 문학으로 분야를 옮기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세계문학전집 가운데서 얼마든지 골라 읽으면 되겠다.

 

사이토 다카시가 대학생들에게 주는 조언은 가급적 많은 양의 입문서를 읽으라는 것인데, 구체적으로는 '일주일에 다섯 권'이다. 200쪽 분량으로 계산하면 일주일에 1000쪽은 읽어야 된다는 것인가? 물론 그럼 좋겠지만, 그는 그렇게 무리한 요구까지는 하지 않는다. 20-30퍼센트의 독서도 유익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200쪽짜리 책의 20퍼센트라면 40쪽이고, 이 정도는 30분-1시간이면 충분히 읽어치울 수 있는 분량이다. 대학생이 아닌 직장인조차도.  

 

독서가 삶을 바꾸어주길 바라는 독자라면, 이제라도 실천해봄직하다. 매일 30분-1시간씩 걷는 일이 우리의 몸을 변화시켜주듯이, 매일 30분-1시간의 독서 역시 우리의 뇌(사고)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생을 변화시킨다. '평범한 대학생을 메이지대 교수로 만든' 사이토 다카시의 독서론이다...

 

16. 05. 27.

 

 

P.S. 일본 인문출판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와나미 관련서로는 창업주에 대한 평전으로 나카지마 다케시의 <이와나미서점 창업주 이와나미 시게오>(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15)가 있다. "현재의 이와나미서점이 일반 대중에게 주는 인식과 창업주 이와나미 시게오의 사상이 어떻게 맞서고 합쳐지며 그의 안에 하나의 사상으로 남게 되었는지를 다양한 사료와 일화를 통해 담담히 고찰해나간다."  

 

또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으로 가는 문>(현암사, 2013)도 이와나미 관련서인데,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란 부제대로 자신이 이와나미 소년문고로 읽은 어린이 세계명작 50권을 회고하고 있는 책이다.

 

한편 어문학사에서 나온 '일본 근현대사' 시리즈(전10권)도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다. 마지막 10권 <일본 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어문학사, 2013)은 이와나미 신서 편집부에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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