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으로 장 자크 르세르클의 <들뢰즈와 언어>(그린비, 2016)를 고른다. 한때 주요 저작을 다 구했을 정도로 내겐 친숙한 저자의 들뢰즈 연구서다. 제목 그대로 '들뢰즈'와 '언어'를 접속시키고 있는. 원저는 2002년에 나왔고, 나도 10여 년 전에 책을 구한 듯싶다. 그리고 번역본이 나온다는 소식도 오래 전에 접했는데, 무소식이어서 잊고 있던 차에 책이 나왔다.

 

 

제목 대신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한 것은 르세르클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 루이스 캐럴 전문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책으로 국내에 가장 먼저 소개된 것도 책임 편집을 맡은 '피귀르 미틱' 시리즈의 <앨리스>(자음과모음, 2003)였다. 이 시리즈의 <프랑켄슈타인>(자음과모음, 2004)과 슬라보예 지젝 등과 공저한 <레닌 재장전>(마티, 2010)이 더 소개되어 있다.

 

 

 

현재는 파리 10대학의 영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의 주요 관심분야는 언어철학과 문학이론이다. <들뢰즈와 언어> 외에는 <넌센스의 철학>, <마르크스주의 언어철학> 등 다수의 저작을 갖고 있다.

 

 

관심분야여서 그런지 내게는 모두 흥미를 끄는 타이틀의 책들이다. <거울을 통한 철학>은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므로 <거울나라의 철학>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밖에 <화용론으로서의 해석>과 <바디우와 들뢰즈, 문학을 읽다> 등의 책도 읽을 거리. 특히 후자는 번역돼도 좋지 않을까 싶다(구입한 책인 줄 알았더니 구매내역에 들어 있지 않다. 장바구니에만 넣어놓았던 걸까? 구매내역만 믿을 수도 없는 것이 재간본의 경우에는 체크가 되지 않는다. 간혹 두 번 구입하는 책들이 생긴다).

 

한창 관심을 갖고 있던 10년쯤 전이라면 바로 책을 구해서 전투적인 독서에 몰입했을 성싶은데, 지금은 여건이 달라져서 당장은 읽을 여유가 없다. 그래도 언제 들뢰즈와 언어에 대해,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해 강의할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다. 하긴 이번주부터 나보코프에 대해서 강의하므로 기회가 없는 건 아닐지도. 나보코프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러시아어로 옮긴 인연이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해 강의하려면 필수적인 게 주석판이다. 국내에는 두 종이 번역돼 있는데, 마틴 가드너의 주석판은 절판돼 아쉽다. 번역본은 엄청나게 많은데(<앨리스> 역시 번역의 전장이다. 온갖 말장난을 옮기는 게 번역의 관건이다), 판매량을 보니 시공사판과 비룡소판이 많이 읽히는 상황에서 작년에 나온 창비판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새번역은 어떤지 궁금하다...

 

16. 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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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련서 2종을 같이 묶는다. 쩌우닝의 <중국의 형상1,2>(인간사랑, 2016)과 중국 전문가 8인의 공저 <중국 학교1,2>(청아출판사, 2016)다.

 

 

'중국의 형상'은 총서라고 돼 있는데, 이번에 나온 건 1권 <키타이의 전설>과 2권 <대중화제국>이다(전체8권으로 돼 있으니 앞으로도 상당히 많은 분량이 더 채워져야 한다). '중국의 형상'이란 제목은 좀더 구체적으로 풀면 '서양의 중국 형상', 곧 '서양의 눈에 비친 중국의 역사'다.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방의 중국 형상은 전설에서 천당과 유토피아를 거쳐 지옥에 이르기까지 왜곡과 과장을 거듭했으며 서방 문화가 '타자'를 표현하는 담론이었다고 파악한다.또한 '문화적 타자'와 관련된 담론으로서 서방의 시야에 등장한 중국 형상이 언제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어떠한 언어 환경 속에서 발생.진화.단절 혹은 연속.계승되었는지 관찰하고 있다."

소개에 따르면 '중국인이 최초로 쓴 서양의 중국사 비판'이라 한다. <오리엔탈리즘>의 중국판이라고 보면 되겠다. 대신 서양인이 아니라 중국인이 직접 쓴.

 

 

<중국 학교>는 '학교 시리즈'의 중국 편인데(이 시리즈의 책으론 <이슬람 학교>가 먼저 나왔다), 1권에서는 중국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근원을 찾아가고, 2권에서는 오늘의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주제를 다룬다. 어떤 독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상대방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가면서 상호 간 이해도를 서서히 높여가는 인문기행은 우리가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전문가가 말하는 주제를 갖고 떠나는 중국 여행 이야기를 듣고 나만의 여행을 계획할 수도 있다."

요컨대 중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라면 미리 읽어보시라는 것. 그런 용도라면 <러시아 학교>도 나옴직하다. 벌써 기획돼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16. 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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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로버트 프록터와 게리 크로스의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동녘, 2016)를 고른다. 원제는 '포장된 쾌락', 그리고 ' 병, 캔, 상자에 담긴 쾌락'이 부제다.

 

"이제껏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독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았다. 무절제와 탐욕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개인을 질책했다. 기계화와 대량생산, 자본의 힘을 이유로 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들은 우리 욕망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꿔버린 거대한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가 우리 모두를 소비 중독에 빠지게 했다고 주장한다. 그 변화를 이들은 ‘포장된 쾌락의 혁명’으로 명명했다."

사회학자들의 책 제목을 빌리자면 '쾌락의 구조변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흥미로운 테마여서 원저도 구해볼까 했더니 하드카바만 나와 있어서 참아두기로 했다. 공저자 게리 크로스의 <소비된 노스탤지어>도 관심을 끄는 타이틀이다. 여하튼 쾌락의 구조변동, 혹은 쾌락의 포장변동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책은 수많은 익숙한 제품들의 탄생기를 담고 있다. 카카오나무에서 난 쓴 열매가 달콤한 ‘허쉬 초콜릿’이 되기까지, 의례 때나 가끔 피울 수 있었던 담배가 종이에 포장되고 담뱃갑에 담겨 특정한 이미지를 갖게 되기까지, 도축장 부산물에서 나오는 젤라틴이 ‘젤로’라는 전에 없던 상품이 되기까지, 목소리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축음기가 발명된 이야기 등 익숙한 것들이 어떤 기술발전과 마케팅을 거쳐 지금 우리 곁에 오게 됐는지를 다양하게 소개한다."

따로 카테고리는 없지만, '이주의 사회과학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16.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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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고르려다 보니 후보감이 너무 많아서 일본인 저자 두 명을 따로 묶는다. 좀 알려진 우치다 타츠루와 다소 생소한 사토 마사루이다.

 

 

출판계의 대세 작가인 사이토 다카시나 기시미 이치로만큼은 아니지만 우치다 타츠루의 책도 매해 한두 권씩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번에 <반지성주의를 말하다>(이마, 2016)가 나옴으로써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바다출판사, 2016)에 이어서 올해는 벌써 두 권을 채웠다. 지난해에는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샘터사, 2015)가 나왔었다.

 

 

우치다 타츠루의 간판 저작은 <푸코, 데리다,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갈라파고스, 2010). 결코 많이 나갈 만한 타이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문 독자들의 호평 속에 '중박'을 쳤던 책이다. 그밖에 <하류지향>(민들레, 2013) 등이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이번에 나온 <반지성주의를 말하다>는 단독 저작이 아니라 우치다의 편저다. "최근 더욱 심해져 가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와 소수자 혐오, 그에 따른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밑바탕에는 반지성주의와 반교양주의가 있음을 성찰하는 책이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과 논객 다수가 저자로 참여하여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적 반지성주의의 역사적, 동시대적 맥락을 살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부제는 '우리는 왜 퇴행하고 있는가'인데, 일본 사회에 대한 진단이지만 반지성주의의 현황이 우리와 동떨어진 건 아니므로 참고할 만하다.

 

 

한글 이름으로는 두 명의 사토 마사루가 있는데(<시진핑 시대의 중국>의 저자 사토 마사루는 중국 전문가다), 여기서 다루려는 이는 다치바나 다카시와의 대담집 <지의 정원>(예문, 2010)을 통해 이름을 알린 사토 마사루다. 전진 외교관으로 러시아통이었고 현재는 전업작가로 활동한다. 그의 책 두 권이 이번에 나란히 나왔는데, <종교개혁 이야기>(바다출판사, 2016)와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역사의아침, 2016)가 그것이다. 좀더 묵직한 책은 <종교개혁 이야기>.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표논객이자 칼날 같은 사회비판으로 유명한 사토 마사루. 그가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15세기 종교개혁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흔히 루터와 칼뱅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보다 백 년 전 보헤미아의 사제였던 얀 후스가 범접할 수 없는 절대 교황권에 대항하며 제대로 된 신앙을 부르짖다가 화형대의 잿더미로 사라진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신학자들로부터 '종교개혁 이전의 종교개혁자'로 일컬어지는 얀 후스의 사상과 투쟁을 되짚어본다."

프라하 광장의 얀 후스 동상이 생각나서 더 궁금한 책이기도 하다.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는 '복잡한 현대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사'가 부제이며, "구체적으로는 제국주의, 민족 문제, 종교 분쟁의 세 가지 키워드로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통사적인 지식 없이도 세계사의 큰 흐름을 읽어낼 수 있도록 독자를 안내한다." 사이토 다카시의 <세계사를 욺직이는 다섯 가지 힘>(뜨인돌, 2009)과 비슷한 성격의 책으로 보인다...

 

16.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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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저녁에 지방에서 강의하고 늦게 귀경한 탓에 오랜만에 심야 합승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나보다 앞서 술에 취한 중국 여자가 뒷죄석에 타고 있었는데, 같은 방향이어서 나도 동승하게 되었다. 여자는 곯아떨어질 정도로 만취한 건 아니어서 계속 운전기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 중국에 관한 내용이었다. 택시 기사가 중국에 자주 왕래한다면서 핸드폰에 저장된 몇 장의 사진을 보여준 때문이었다. 기사는 중국어도 당연히 할 줄 안다고 말했지만 '정말요?'하면서 중국어로 묻는 질문에는 손사래치며 답하지 않았다. 여기는 한국이니까 한국말로 해야 한다며. 아마도 옆자리에 앉은 나를 의식한 것 같은데, 두 사람만 있었다면 중국어 대화도 가능했을 성싶었다. 두 사람의 대화 덕분에 나는 현재 중국 위안화 환율이 180원이란 것과 중국 택시 기본요금이 (지역마다 다르긴 해도) 5위안이라는 것(버스는 1위안) 등을 알 수 있었다(심야택시는 배울 게 많군).

 

 

이런 얘기를 서두에 꺼내는 건 '세계화' 시대의 한 가지 표정이 아닌가 해서다. 가까운 이웃나라이긴 하지만 외국인과 택시를 합승하는 것도, 그리고 그 나라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이런저런 대화가 가능한 것도 이젠 드물지 않은 일이다. 1시 반이 넘어 귀가해서 내가 처음 한 일은 택배상자들을 풀고 배송된 책들을 정돈하는 일이었는데(주문한 게 많았다), 열댓 권 가운데 제일 먼저 펴든 게 김이듬 시인의 <디어 슬로베니아>(로고폴리스, 2016)였다. '사랑의 나라에서 보낸 한때'가 부제. 제목과 부제가 모두 시인이 쓴 여행서라는 걸 알려주는 책이다. 실제는 예상보다 더 여행서다운 책이었다. 아래는 류블랴나 성 사진. 체코의 프라하 성과는 또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슬로베니아 곳곳의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좀 오래 전에 한 번 다녀온 중국에는 아직 다시 갈 계획이 없지만 불현듯 슬로베니아에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구가 300만이 안 되는(책에는 면적이 한국의 전라도만 하고 인구는 200만 정도라고 소개된다) 발칸의 작은 나라.   

"김이듬 시인이 2015년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류블랴나 대학교 파견 작가로 슬로베니아를 방문하고 쓴 여행에세이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 여러 유럽 국가들과 원활한 연결망을 가지고 있어 여행객들에게는 중간 경유지 정도로 여겨지는 슬로베니아에서 시인은 오랫동안 천천히 그곳의 사람과 자연, 문화를 음미했다. 이 책에서 시인은 동유럽 패키지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슬로베니아의 명소―블레드 호수, 포스토이나 동굴, 프레드야마 성―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보고 매혹된 슬로베니아의 다양한 도시를 소개하고 있다."

 

한 여행서에서 슬로베니아를 '슬라보예 지젝의 나라'라고 소개해서 웃음을 지은 적이 있는데(여행객들에게 어필할 만한 제목인가?) 사실 슬로베니아란 나라와 류블랴나란 수도에 대해서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지젝 덕분이긴 하다. 국내에는 '슬로베니아학파 총서'도 나오지 않았던가. 지젝을 제외하면 레나타 살레츨과 알렌카 주판치치, 미란 보조비치 등이 슬로베니아학파의 멤버들이다(무슨 조직은 아니고, 독일 관념론과 라캉 정신분석을 융합하여 작업하는 지젝의 동료들이다). 덕분에 슬로베니아는 적은 인구의 나라라는 이미지와 함께 대단히 지적인 나라라는 인상을 받는다. 실제로도 그럴까? 하긴 단위 인구당 철학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일 수는 있다.

 

 

슬로베니아에도 여러 관광명소가 있다지만 내가 먼저 들르고 싶은 곳은 수도 류블랴나다. 강병융 작가가 '아내를 닮은 도시'라고 부른 도시(인디고 연구소에서 기획한 인터뷰집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도 지젝과의 류블랴나 현지 인터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추천사를 보면 편혜영 작가도 '류블랴나파'에 속한다.

"얼마간 류블랴나에 다녀온 후 나는 어떤 도시보다 자주 류블랴나를 들먹였다. 류블랴나는 말이지, 로 시작하는 말은 대개 과장이었다. 당연했다. 나는 고작 며칠 그곳에 머물렀고, 본 것보다 보고 싶은 것, 간 곳보다 가고 싶은 곳이 여전히 많았다. 소설 쓰는 강병융이 그리로 간다고 했을 때 오랜 거짓말을 들킨 기분이었다. 동시에 함께 그곳을 그리워할 동지를 만나 즐거웠다. 그때부터 이 책을 기다려왔다."

언젠가 모스크바에서 일년을 지낸 것처럼, 류블랴나에서도 한 시절을 보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대로 '디어 슬로베니아' 한권쯤 쓸 수 있을 텐데...

 

16.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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