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으로 윌리 톰슨의 <노동, 성, 권력>(문학사상사, 2016)을 고른다. 제목 자체가 은연중에 제래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연상하게 하는데, 출판사도 같다. 비슷한 성격의 책을 기획한 게 아닌가 싶다. 제목은 원제 그대로이고, 부제는 '무엇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왔는가'. 저자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역사학자다.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가 노동, 성 그리고 권력이라는 완전한 구조 안에서 발전한 것이며, 이 세 가지 핵심 동력은 ‘역사의 씨줄과 날줄’에서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를 관념이 아닌 물질에서 찾는 유물사관의 입장에서 인류 문명의 발전과 쇠락의 역사를 철저히 분석하고 파악한다. 인류 문명의 진화과정을 담고 있는 톰슨의 주장은 논증이 불가능한 가설을 배제하고 역사의 원인과 결과를 객관적이고 적확하게 밝혀내고 있다."

 

스케일이 큰 가설을 얼마만큼 잘 뒷받침하느냐가 관건. <노동, 성, 권력>은 작년에 나온 저자의 신작이고, 영국 제국주의나 좌파의 역사를 다룬 책을 펴낸 경력이 있다. <역사 속의 좌파>(1996)나 <1945년 이후의 공산주의 운동>(1997) 등이 눈에 띄는데, 저자의 관심이 문명사로 확장돼 간 걸로 보인다...

 

16. 0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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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의는 물론 전공학회와도 거리를 두고 지내다 보니 학술서를 손에 들 일이 아주 드물어졌다. 관심이 가는 책들은 구해놓는 편이지만 좀처럼 읽을 여유를 내기 어려울 뿐더러 외서 같은 경우도 (학술서라서) 너무 비싸서 '그림의 책'으로 보관함에만 넣어두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눈에 띄니까 몇 권은 페이퍼로 갈무리해놓는다.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 연구총서'로 나오는 책들과 한국외대의 '세미오시스 번역총서' 책들이다.

 

 

불어문화권 총서로 이번에 나온 책은(아무래도 주로 아프리카 지역을 다룬다) <카빌리 베르베르 문화사전>(사회평론아카데미, 2016)이다. '알제리 소수민족의 삶과 역사'가 부제. 사전인 만큼 분량도 두툼하다.

"알제리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거꾸로 프랑스에 유무형의 영향을 미쳤고, 지중해의 수많은 민족들이 로마와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며 사라져갔음에도 지금까지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바로 카빌리 베르베르인들이다. 우리에게 익숙하게는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의 혈통이며, 알베르 카뮈를 포함한 여러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지역이다."

카뮈를 포함한 여러 프랑스 작가들 가운데 카뮈만 떠오르는지라(누가 또 있는지?) <이방인> 등의 작품을 염두에 두게 되는데, 아무려나 그 배경이 되는 지역과 혈통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는 책. 이 총서에는 그밖에도 국내 연구자들이 쓴 <검은, 그러나 어둡지 않은 아프리카>(사회평론아카데미, 2014)와 엘렌 달메다 토포르의 <아프리카: 열일곱 개의 편견>(한울, 2010)이 포함돼 있다. 출간 간격으로 보아 잊을 만하면 한권씩 나오는 편이다. 직접 구입하긴 어려워도 도서관에 있다면 대출해서 주루룩 넘겨보고 싶은 책들이다.

 

 

'세미오시스 번역총서'는 '세미오시스 연구총서'와 짝을 이루는데, 번역총서에 더 눈길이 간 것은 러시아의 언어철학자 알렉산드르 포테브냐의 <사고와 언어>(외대출판부 지식출판원, 2016)이 포함돼 있어서다. 이번에 코르넬리스 드발의 <퍼스 철학의 이해>와 같이 나왔는데, 1권은 2013년에 나온 <퍼스 기호학의 이해>였다. '세미오시스'라는 총서명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주로 기호학 분야의 책들이 연구총서와 번역총서를 구성하고 있다. 그래도 당장 관심이 가는 건 <사고와 언어>.

"저자는 슬라브 제 민족 언어 창작물의 실증적 사례를 통해 언어의 의미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내적 형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언어학과 시학과 심리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통학문적인 관점에서의 언어현상 연구를 주창하고 있다. 저자는 언어가 기존의 사고와 새로운 지각 사이의 매개 활동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려 했다. <사고와 언어>에서 개진된 사상은 이후 언어의 대화적 본성을 주장하게 될 후대 철학가들에게 사상적 모델을 제시했다." 

오래 전에 읽은 기억으로는 포테브냐의 언어철학이 러시아 형식주의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잊은 지 오래다.

 

 

러시아 형식주의에 대해선 기본서이면서 고명한 연구서인(영어권 최초의 연구서이자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빅토르 어얼리치의 <러시아 형식주의>(문학과지성사)도 절판된 지 오래 되었군. 이런 책들과 씨름하던 게 어즈버,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16.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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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류학자 두 사람을 다룬 전기(듀오그라피)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현암사, 2016)를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걸출한 인류학자로서 두 사람의 이름이나 대표작을 들어본 독자도 있을 테고, 더 나아가 두 사람이 동성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독자들이 일차적으로 관심을 가질 법한 책이지만, 최근 고조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도 읽어봄직하다. 부제는 '위대한 두 여성 인류학자의 사랑과 학문'.  

 

 

두 사람의 전기는 별도로 나온 적이 있다. 그런데, 둘다 미드의 책이다. 그 자신의 자서전 <마거릿 미드 자서전>(범우사, 1999)과 베네딕트에 대한 전기 <루스 베네딕트>(연암서가, 2008). 제3자가 쓴 평전으로서 이번에 나온 책과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겠다.

"20세기 초, 남성중심적이었던 문화인류학 분야에서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한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두 사람의 삶과 이론을 밝혀내어 문화적 담론으로서 조명한다. 저자 로이스 배너가 이 책의 주된 목표로 꼽는 것은 ‘젠더의 지리학’이 두 사람의 삶에 미친 영향을 기술하는 것이다. 젠더의 지리학이란 두 사람이 정치적, 사회적, 직업적, 가족적, 개인적 인생의 과정에서 헤쳐나간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복잡한 지형을 뜻한다. 저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두 사람의 서신과 서류철을 총망라한 최초의 평전을 엮어냈고, 최근 수십 년간 출간된 레즈비언 역사와 퀴어 이론서도 폭넓게 활용했다. 두 사람의 흥미진진하고 다면적인 인생 그리고 연구 업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두 사람이 여성 학자로서 받은 불평등한 대우를 결국 어떻게 이겨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간다."

제목에는 미드가 베네딕트보다 앞세워져 있어서 연배가 위인 걸로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은 제자다. 사제지간이자 동료였고 또 연인이기도 했던 것. 루스 베네딕트가 1887년생이고(1948년 몰), 마거릿 미드는 1901년생이다(1978년 몰).  

 

 

루스 베네딕트의 대표작은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 <국화와 칼>이고, 자신의 문화인류학적 입장을 보여주는 책으로 <문화의 패턴>이 있다. 그밖에 <일본인의 행동패턴> 같은 책이 국내에 소개된 상태다.

 

 

그리고 '인류학의 어머니'로도 호명되는 미드의 책으론 <세부족 사회에서의 성과 기질>과 <사모아의 청소년> 등이 대표 저작으로 번역돼 있다.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를 읽고서 두 사람의 학문 세계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면 연이어 읽어볼 만하다...

 

16. 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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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저자는 아니지만 은근히 자주 소개되는 일본 저자 중에 나카지마 요시미치가 있다. 철학자로서 칸트 전문가라고 하는데, 국내에 소개되는 책은 비교적 가벼운 교양서다. 가령 <일하기 싫은 당신을 위한 책>(신원문화사, 2011)이라고 하면 철학자가 쓴 책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는 이 책은 37살까지 직업을 갖지 않았던 저자의 자기 체험을 반영한 처세서라고 한다.

 

"일하기 싫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있어서 일이란 무엇인지, 일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등에 대한 힌트를 제시함으로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일깨워주고 있다. 일에서 삶의 보람을 찾지 못한 20대, 30대, 40대, 50대의 네 사람과 저자의 가상의 대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각자의 고민과 방황, 그리고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그보다는 좀더 철학적인 책으로는 <철학의 교과서>(지식의날개, 2014)가 있는데, 저자 나름의 시각을 담은 철학 입문서로서 나도 언급한 적이 있는 책이다.

 

미리 두 권의 책 얘기를 꺼낸 것은 이번주에 새로운 책이 나왔기 때문인데, <비사교적 사교성>(바다출판사, 2016)이 그것이다. 2013년작. "일본에서 '싸우는 철학자'로 알려진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40여 년간 칸트라는 사람과 그의 철학에 천착해 왔다. 그의 집필 활동은 주로 칸트의 철학을 알기 쉽고 명료하게 읽어 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칸트가 말한 '비사교적 사교성'을 실마리 삼아, 관계 맺기에 절망적으로 서툴거나 곤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을 생각하며 쓴 철학 에세이다."

 

 

물론 책이 나온 배경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혼자'(홀로)라는 게 사회의 화두이기 때문. 지난해 베스트셀러였던 사이토 다카시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위즈덤하우스, 2015)이 이런 추세를 대표한다.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걷는나무, 2015)나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동양북스, 2015) 등의 책들도 비슷한 기획의 산물일 테다. 이 문제의 칸트적 번안이 '비사교적 사교성'인 것. 여하튼 혼자라는 문제를 좀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듯싶다...

 

16.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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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크 독트린>과 <노 로고>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의 신작이 나왔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열린책들, 2016). "기후 변화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역학을 치밀하게 파고든 책"이라고 소개된다.

 

"이 책은 2014년 UN 기후 변화 정상 회담에 맞춰 조직된 대규모 시민 기후 행진 일주일 전에 발간되도록 기획되었으며, 출간 직후엔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 가장 중요한 환경서라는 찬사를 받으며 ‘뉴욕 타임스’를 포함한 유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남편 아비 루이스가 연출하고 본인이 직접 내레이터로 참여한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환경 단체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상영 중이다. 5년간 진행한 방대한 자료 조사와 현장 답사, 과학자와 경제인, 환경 운동가들의 인터뷰를 종합하여 결실을 맺은 이 책은, 오늘날 기후 위기의 본질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의 문제임을 역설한다."

그래서 찾아봤다. 다큐는 2시간 11분 분량인데, 발췌영상은 https://www.theguardian.com/business/video/2015/mar/06/this-changes-everything-naomi-klein-oil-video 참고. 아룬다티 로이의 추천사를 참고할 만하다. "나오미 클라인은 그녀의 선하고 맹렬하며 세심한 마음씨를 우리 시대 가장 중대하고 가장 긴급한 물음들에 쏟고 있다. 나는 그녀가 우리 시대 가장 영감을 주는 정치 사상가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기후 문제를 다룬 책은 적잖게 나와 있는데, 당장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을 다룬 책만 하더라도 마크 마슬린의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한겨레출판, 2010), 앤서니 기든스의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코르비르, 2009), 이안 앵거스가 엮은 <기후정의>(이매진, 2012) 등을 떠올릴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조너선 닐의 <기후변화와 자본주의>(책갈피, 2011), 하랄트 벨처의 <기후전쟁>(영림카디널, 2010), 폴 엡스타인과 댄 퍼버의 <기후가 사람을 공격한다>(푸른숲, 2012) 등도 같이 읽어볼 만한 관련서. 이 분야는 읽을 책이 아니라 안 읽어도 되는 책을 골라내는 게 필요해 보인다...

 

16.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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