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라곤 해도 어린이가 없는 집은 여느 휴일과 다를 바 없고, 설사 어린이가 있다고 해도 국가적인 애도 분위기 속에서 별로 즐겁지 않은 어린이날이다(개인적으로는 어제오늘 어버이날 행사만 당겨서 치르고 있다). 그래도 아직 어린 조카들을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기도 뭐해서 기념할 만한 책을 찾아봤다.

 

 

'우리 시대 탐서가들의 세계 명작 다시 읽기'를 부제로 달고 있는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반비, 2014)도 후보에 들 만하다. 소개는 이렇다.

건축가 김진애, 오영욱, 서울도서관장 이용훈, 라디오 피디 정혜윤, 경제학자 우석훈, 아나운서 고민정, 소설가 황경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탐서가들이 동화책을 한 권씩 손에 들고 한 자리에 모였다. <플랜더스의 개>, <비밀의 정원>, <어린 왕자>, <인어 공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서가 깊은 곳에서 ‘내 인생의 동화’라 할 작품들을 꺼내온 저자들은 오랜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화와 함께 성장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어렸던 나와 다시금 마주하면서, 그때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감동과 교훈을 발견하는 과정을 글에 담았다.

끝내 기한을 맞추지 못했지만 나도 원고 제안을 받았었는데, 내가 고른 책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라스무스와 방랑자>였다. 초등학교 때 읽은 제목으로는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였고, 린드그렌이 저자인 줄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린드그렌이 스웨덴 작가니까 분류하자면 '북유럽동화'에 해당하지만, 나는 '남유럽동화'로 기억하고 있었다. '라스무스'란 이름이 왠지 남유럽스럽다고 여긴 듯하다. 아무튼 이 책을 고르고 새 번역본으로 주문해서 손에 드는 것까지는 했지만 다시 읽지는 못했다. 20여 쪽 가량 읽다가 다른 일들에 밀려 덮어놓았고 지금은 책의 행방도 모르는 상태. "그때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감동과 교훈"을 재발견하는 건 여전히 숙제로 남게 됐다.  

 

굳이 특별한 계기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어릴 적에 읽은 동화책을 다시 꺼내보는 것도 좋은 '시간여행'이 되겠다. 그런 걸로 치면 '꼬마 니콜라 시리즈'도 내겐 추억의 책이다. 80년대 초반에 나온 건 문예출판사판이었던 것 같은데, 문학동네판으로도 다시 나왔다. 두툼한 합본판의 <꼬마 니콜라>(문학동네, 2013)와 <돌아온 꼬마 니콜라>(문학동네, 2014)다. 아마도 중1, 2학년때 쯤 서점에서 한 권씩 구해 읽은 듯싶다. 장 자크 상뻬의 그림은 여전히 친근한 느낌을 준다. 아, 그맘때는 소피 마르소의 <라붐>(1980)에 빠져 있던 나이이기도 했다(주로 시험기간에 나는 영화를 보러 다니곤 했다).

 

 

열다섯 살 소녀가 지금은 쉰이 다 됐으니 세월 만한 강자가 없다. 우리는 기억으로 어설프게 항의해볼 따름이다(같이 늙어간다는 걸 위안으로 삼으며).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도 그런 항의의 일종이지 않을까...

 

14.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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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가장 놀라운 책은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의 <불안의 서>(봄날의책, 2014)다. 눈 밝은 독자라면 이름이 낯설지 않을 책일 텐데 <불안의 책>(까치글방, 2012)이라고 나왔던 책이다.

 

 

 

<불안의 서>는 페소아의 유작 산문집으로 1982년에야 출간돼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 먼저 소개된 판본으로 <불안의 책> 소개에는 이렇게 설명해놓았다.

이 책의 원본은 페소아가 자필로 "Livro do Desassossego"라고 써서 한 덩어리로 묶어놓은 것을 바탕으로 연구자들이 그의 원고를 모아 분류한 것이다. 이것은 페소아가 남긴 유일한 산문작품으로 대략 20년 동안 쓴 일기이다. 이 책의 포르투갈어 원서는 1982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포르투갈 원서의 출간은 비평계와 출판계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엄격한 언어학적인 기준에 따라서 편집되었고, 강독하기 힘든 원본의 문제를 해결해준 필사 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불안의 책>의 한국어판은 포르투갈 원서를 번역한 포르투갈 문학 연구자인 안토니오 타부키의 이탈리아어 판과 영어판을 참고하여 발췌, 번역한 것이다.

방대한 분량의 일기(원고)를 사후에 편집해서 낸 책인 만큼 딱히 정본이 있을 리 없다. 다만 분량들이 좀 다른데, 이번에 나온 <불안의 서>는 독어판을 바탕으로 배수아 작가가 옮겼고 <불안의 책>보다는 훨씬 두툼하다(<불안의 책>은 이탈리아어판을 옮긴 것이다). 그러니까 둘 중의 하나를 고를 필요는 없고, 그의 책을 고대한 독자라면 좋은 의미에서 '엎친 데 덮친 책'이라고 보면 되겠다.

 

 

 

말이 나온 김에 적자면 작년에 '인문서가에 꽂힌 작가들' 시리즈로 이탈리아 작가이자 <불안의 서>의 이탈리어어판 편집자 안토니오 타부키의 책 세 권이 함께 나왔더랬는데, 일년만에 한 권이 더 추가됐다. <레퀴엠>(문학동네, 2014). "현대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탈리아 작가로 손꼽히는 안토니오 타부키, 그가 사랑한 포르투갈과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에게 바치는 오마주"라고 하므로 <불안의 서>와 짝이 잘 맞는다. 작년에 나온, 시인/작가들의 꿈에 대한 상상 <꿈의 꿈>(문학동네, 2013)에도 '페르난두 페소아의 꿈' 장이 포함돼 있다.  

 

 

다시, <불안의 서>로 돌아와서 책소개는 이렇다. '완역본'이라는 것은 독어판의 완역을 의미하는 듯하다.

포르투갈의 국민작가로 추앙받는 페르난두 페소아가 쓴 <불안의 서>. 짧으면 원고지 2~3매, 길면 20매 분량인 에세이 480여 편이 실려 있다. 흔히 명예, 성공, 편리함, 소음과 번잡함 등이 인정받는 현시대에, 페소아는 그와 정반대되는 어둠, 모호함, 실패, 곤경, 침묵 등을 자신의 헤테로님 베르나르두 소아레스를 통해 노래하고 있다. 차분하고 섬세하고 치밀하면서도 치열하게까지 느껴지는 페소아의 글들을 통해, 혼자만의 시간에 삶에서 부닥치는 전반적인 주제들을 중심으로 고뇌하는 한 작가가 추구하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소설가 배수아의 완역본.

싱그러운 봄날이 오히려 뒤숭숭한 독자들에게는 특별히 더 반가울 법한 책이다. 봄날은 가더라도, 이런 책들에 파묻혀 가는 건 괜찮은 봄날이다...

 

14. 04.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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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은 노벨상 수상작가 2인의 작품으로 고른다. 1920년에 수상한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과 1993년에 수상한 미국문학의 대모 토니 모리슨이다.

 

 

함순의 작품은 <목신 판>(시공사, 2014)이 번역돼 나왔다. <굶주림> 정도만 소개돼 아쉬웠던 터라 반갑다. 정확하게는 중편 <목신 판>(1894)과 <빅토리아>(1898)가 수록된 작품집이다. 소개는 이렇다.

19세기 말 노르웨이와 유럽 전역에 지배적이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에서 벗어나 인간의 부조리한 행동뿐 아니라 내면 심리의 우연성과 이중성까지 담아내고자 한 그의 독특한 소설 미학은 당시 유럽 전역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근대문학사조에 변혁을 가져왔다. '목신 판'과 '빅토리아'는 함순의 창작 활동이 가장 왕성하던 30대에 나온 작품으로,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시공을 초월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주옥같은 작품이다. 고독한 방랑자의 내면에 불어온 불가해한 사랑의 파동을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그려낸 '목신 판'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꿈같은 기대와 쓰라린 절망을 한 편의 동화처럼 엮어낸 '빅토리아'는, 사랑이라는 냉혹한 우주의 힘을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언제나 가슴을 울리는 불멸의 이야기로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흙의 혜택>(1917)과 함께 <굶주림>(1890)에 이어지는 초기작 <미스터리>(1892)도 번역되길 기대하는 작품이다.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 <빌러비드>(문학동네, 2014)도 문동 세계문학전집의 하나로 새로 번역돼 나왔다. 영화 <노예 12년>과 함께 미국 노예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독자라면 더 심층적인 이해를 갖게 해줄 듯하다. 어떤 작품인가.

출간 당시 퓰리처상, 미국도서상 등 미국소설에 주어지는 거의 모든 명예를 얻었고, 21세기에 들어서는 20세기 미국문학의 정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흑인문제를 노예제에서부터 현대의 인종차별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다룬 토니 모리슨은 이 작품에서는 특히 '여성 노예'에 초점을 맞추었다. 노예라는 운명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딸을 죽인 흑인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흑인들의 참혹한 역사를 재조명하는 한편, 박탈당한 모성애를 되찾은 도망노예의 과격하고 뒤틀린 사랑과 그로 인한 자기 파괴를 이야기한다.

 

예상할 수 있지만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찾아보니 <양들의 침묵>의 감독 조나단 드미가 1998년에 찍었다. 오프라 윈프리 주연.

 

 

 

토니 모리슨의 작품은 한때 줄줄이 출간되다가 지금은 대부분 절판되고 네댓 작품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작품보다 연구서가 더 많이 눈에 띌 정도다). 나도 미처 구입하지 못한 작품이 많은데, 여하튼 올가을에는 강의에서도 다룰 예정이라 몇 작품 읽어봐야겠다. <빌러비드>와 <솔로몬의 노래>가 제일 먼저 염두에 두고 있는 작품이다...

 

14.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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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새로 번역돼 나온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민음사, 2014)을 고른다. 개인적으로는 얼마전에 모파상의 작품들을 모으면서 단편집과 장편들을 몇 권 더 구입했는데,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다시 나온 <여자의 일생>이 없어서 아쉬웠더랬다. 이젠 구색을 맞추게 되었다고 할까(졸라의 <나나>도 다시 나오길 기대하는 작품이다).

 

 

 

<여자의 일생>은 모파상의 첫 장편소설인데, 읽어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원제는 그냥 'Une Vie'다. '한 인생' 내지는 '어떤 인생'. 잔느라는 한 여자의 인생을 그린 소설이라 일본에서 <여자의 일생>이라고 옮겼고, 그런 제목으로 우리한테 소개돼 굳어졌다(물론 그런 식으로 굳어진 제목이 부지기수다. <실낙원>이나 <마의 산> 같은 제목도 우리말로는 어색하지만 굳어져버린 제목들이다. 가끔은 실러의 <군도>처럼 <도적떼>로 정정되기도 하지만).

 

 

기 드 모파상은 1850년에 태어나 1893년에 생을 마쳤다. 단편작가로 언제나 같이 언급되는 안톤 체호프보다 연배가 딱 10년 위다. 1860년생으로 1904년에 세상을 떠난 체호프도 거의 비슷한 수명을 살았다. 또 다른 공통점은 톨스토이가 가장 아꼈던 작가들이라는 점. 번역본의 뒷표지를 보니 <여자의 일생>에 대해서도 톨스토이는 "<레미제라블> 이후 최고의 프랑스 소설"이라고 높이 평가했다(톨스토이는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도 호평한 바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작가답게 여자들의 삶을 다룬 작품을 그는 주로 좋아했다). 

 

 

영화화되면서 부랴부랴 나온 듯한 느낌을 주는 <벨아미>의 번역본도 몇 종 나와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장편으로 <피에르와 장>(<삐에르와 장>). 그렇게 세 권 정도가 대표 장편으로 소개돼 있고, 단편집들이 여러 종 나와 있다.

 

 

 

모파상의 단편으론 <목걸이>가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데뷔작 <비곗덩어리>나 <쥘르 삼촌> 같은 작품을 좋아한다. 책들을 다시 모은 만큼 기회가 되면 다시 읽고 강의에서도 다뤄보고 싶다...

 

14. 0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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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이주의 고전'은 에밀 졸라의 <인간 짐승>(문학동네, 2014)이다. 국내 초역인데, '루공마카르 총서 20권'의 목록을 꿰고 있지 않는 한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게 이상하지 않지만, 졸라가 썼을 법한 소설이긴 하다(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의 설명이기도 했다. 자연주의 작가, '에밀, 졸라', 이름을 어찌 잊겠는가). 1890년작. 소개는 이렇다.

 

에밀 졸라의 충격적 문제작. 자연주의 문학의 절정을 이루는 '루공마카르' 총서 스무 권 중 열일곱번째 작품이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유전과 환경이라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제2제정기 프랑스 사회를 낱낱이 해부해 객관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겠다는 포부로 기획되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인기 작가", "19세기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미 명망을 얻은 졸라가 '루공마카르' 총서에 대한 열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저술한 <인간 짐승>은 <테레즈 라캥>. <목로주점>에 이어 다시 한번 프랑스 문단에 충격을 가했다.

제목에서부터 인간과 짐승을 대립시킨 이 소설은 '인간다움'과 '짐승스러움'이라는 두 축의 패러다임 아래 배열할 수 있는 요소들을 복잡하고 교묘하게 얽어 견고한 서사를 이루어낸다. 당시의 삶 속에 켜켜이 틀어박힌 세기말의 징후들을 '범죄-욕망'과 '철도-기계'라는 두 절단면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준다. 당대의 짐승스러움에 대한 분노와 경멸을 담아낸 이 소설은 나아가 그 짐승스러움의 연원을 관찰과 해부를 통해 들춰내고 그에 근거해 인간다움의 전망을 제시한다.

 

졸라의 작품은 가장 유명한 <목로주점>이 여러 번역본으로 나와 있다. 대신에 한때 대표작으로 꼽히던 <나나>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느낌이다. <쟁탈전>과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등은 최근에 추가된 타이틀(그밖에도 몇 권 더 번역돼 있다). 루공마카르 총서 20권이 다 소개되는 건 어렵더라도, 대표작들은 망라되면 좋겠다. <인간 짐승>이 한 가지 기준이 될 듯싶다...

 

 

 

14.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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