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부제가 그렇다. 리카르드 보치의 <망작들>(꿈꾼문고). 편집자가 세계문학의 고전 저자들에게 원고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퇴짜놓는다는 게 착상이다. ‘우리가 아는 고전‘과 ‘우리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단점‘ 사이의 틈새를 파고드는 책이랄까. 그 효과는 물론 유쾌한 웃음이다. 내가 거든 추천사는 이렇다.

˝이 유쾌한 정신의 책에 모든 추천사는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아무 페이지나 펼치더라도 당신은 빙긋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문학의 ‘걸작들’을 ‘망작들’로 정색하고 재평가하는 편집자의 기개에 어찌 경탄하지 않으랴. 세계문학의 근엄함에 주눅 들었던 독자들에게 강추하고 싶다.˝

‘망작들‘ 시리즈가 근간으로 예고돼 있는데 구미가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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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의 소설은 국내에 대부분 소개돼 있다. 영어본이 아직 나오지 않은(불어본과 스페인어본은 나왔다) 데뷔작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1982)부터 <내 마음의 낯섦>(2014)까지다. 대표작 <내 이름은 빨강>(1998)을 강의에서 다루면서 검색해보니 <내 마음의 낯섦> 이후에 또 써낸 작품이 있으니 <빨간머리 여자>다. 미스터리로 분류되는 장르소설이라는데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한 모양이다. 추세로 보건대 올해 안으로 번역돼 나오지 않을까 싶다.

파묵의 몇몆 작품을 강의에서 읽었고 그의 문학론에 대해서는 서평도 썼지만 소개된 작품수에 비하면 아직 충분하지 않다. <하얀성>과 <새로운 인생>을 읽었는데 강의를 꾸린다면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의식한 소설이다)과 함께 <눈>과 <순수박물관>을 필히 포함해야 한다. <내 마음의 낯섦>과 <빨간머리 여자>는 어찌할지 생각해봐야겠다. 파묵에 대해서는 연구서들도 나오고 있어서 부담이 계속 늘고 있다. 파묵 스스로가 대표작을 세 권 정도로 추려주면 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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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3-2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요한집___특히 신선한
묘사가 좋았습니다!

로쟈 2018-03-27 21:57   좋아요 0 | URL
네 작품마다 개성들이있긴합니다.~
 

일본근대문학 강의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의 <라쇼몬>을 읽었다. ‘라쇼몬‘은 1915년작으로 그의 문학적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다. 이전에 쓴 작품들이 다수 있지만 아쿠타가와 자신이 습작으로 간주했고 1917년에 펴낸 첫 작품집 제목을 ‘라쇼몬‘이라고 붙인 데서도 이 작품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비록 그의 이름이 문단에 알려지는 건 그 이듬해에 쓴 단편 ‘코‘가 나쓰메 소세키의 격찬을 받으면서부터이지만(‘라쇼몬‘은 의외로 발표 당시엔 박한 평가를 받았다).

아쿠타가와의 전작을 살펴본 건 아니어서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나는 ‘라쇼몬‘이 그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 소설에 속하는 ‘지옥변‘(1918)이 화려한 작품이긴 하지만 ‘라쇼몬‘에 등장하는 하인(도적)의 도발적인 부도덕 선언에 비하면 현실과의 대결에서 퇴보한 느낌을 준다.

‘라쇼몬‘이 유쾌하다면(‘코‘와 함께 ‘라쇼몬‘을 아쿠타가와는 ‘유쾌한 소설‘로 분류했다) ‘지옥변‘은 비장하다. 하인(도적)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게 ‘라쇼몬‘의 결말인데 반해서 ‘지옥변‘의 결말은 주인공인 화가 요시히데가 딸을 먼저 보낸 자책감으로 자살하는 것이다. 권력자인 대신과 대범하게 맞서는 장면도 보여주지만 그의 삶은 비극으로 마감된다.

‘도적‘에서 ‘예술가‘로의 이행이 현실 응전력이란 면에서 퇴행이라면 단편 ‘갓파‘(1927)의 ‘광인‘은 그 최종단계다. ˝어느 정신병원 환자, 제23호가 아무한테나 하는 이야기˝로 설정된 이야기가 ‘갓파‘다. 설정 자체가 현실에서의 패배를 승인, 수용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유작 ‘어느 바보의 일생‘까지는 한 걸음에 불과하다.

내가 궁금한 건 ‘지옥변‘에서 ‘갓파‘ 사이에 반전의 계기가 없었던가 하는 점. 연보상으로는 ‘가을‘(1920)이나 ‘다이도지 신스케의 반생‘(1925) 같은 작품이 징검다리에 해당한다. 아쿠타가와 전집까지 훑어야 할까(범우사판까지 참조하면 대략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데 책을 못 찾고 있다). 당장은 그러한 이행을 가설적으로 제시하는 데 만족하려 한다. 다음주에는 시가 나오야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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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3-27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데 시게코와의 시련후 썼다는 ‘가을‘은 ‘라쇼몬‘처럼
유쾌한 소설이 못되었던듯.

로쟈 2018-03-27 00:38   좋아요 0 | URL
‘가을‘은 현대물인데 소세키의 <그후>의 영향을 받았다네요. 아쿠타가와가 소세키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죠..

two0sun 2018-03-27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읽어보니 현대물은 영~~라쇼몬과는 딴판이더군요.

로쟈 2018-03-27 01:05   좋아요 0 | URL
벌써 보셨군요. 저는 <희작삼매>를 주문해놓아서 나중에 읽어보려해요. 거기에도 들어 있어서.
 

프랑스 소설사뿐만 세계문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작가이기에 발자크 소설은 언제든 관심의 대상이 된다. 한데 문학독자라면 그 관심이 독서와는 별개라는 점도 숙지하고 있다. ‘너무 많이 쓴 작가‘의 대명사가 또한 발자크이기에 어디까지 읽어야 할지가 곧장 문제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견해이기도 하고 나의 원칙은 <고리오 영감>(1835)을 필독서로 하고 나머지 작품은 선택사항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강의에서도 <고리오 영감> 외에는 <루이 랑베르>를 읽은 게 유일하다.

그런 입장이기에 발자크의 신간이 반갑지만은 않다. <13인당 이야기>(문학동네)라니? 듣도보도 못한 작품인데 조사를 해보고 나서야 영문을 알 수 있었다. 세 편의 작품을 하나로 묶어서 ‘13인당 이야기‘라고 통칭하는 것. 어떤 이야기인가?

˝<13인당 이야기>는 13인당이라는 비밀결사 조직 구성원들의 사랑과 복수를 다룬 소설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발자크의 작품 중에서 ‘인물 재등장 기법’이 처음 사용된 소설이며, 훗날 ‘인간극’ 전체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도시 파리 역시 여기에서 처음으로 이야기의 중심 요소로 등장한다. 19세기 초 파리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왕정복고 시기 도시사적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불어판으로는 한권으로 합본돼 있는 듯하지만 위키백과에 따르면 두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중편(노벨라)으로 구성돼 있다.

페라귀스(1833)
랑제 공작부인(1834)
황금 눈의 여인(1833)

이 가운데 ‘황금눈의 여인‘이 중편으로 분류돼 있다. 전체 분량이 600쪽 가량이니까 장편으로 분류되는 나머지 두 편도 두꺼운 편은 아니다. 발자크가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게 1829년부터이므로 30대 중반에 발표한 이들 소설은 초기작에 해당한다. 흔히 <고리오 영감>을 발표하면서 그의 문학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 면을 고려하면 유난히 초기작에 집중돼 있는 것이 문학동네판 발자크의 특징이다.

나귀가죽(1831)
루이 랑베르(1832)
13인당 이야기(1833-34)

같은 초기작이라도 나로선 청년 도스토예프스키가 번역을 시도하기까지 한 <외제니 그랑데>(1833)에 더 관심이 있지만(현재로선 완역본이 절판된 상태다) <13인당 이야기>도 초역이므로 감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디까지 읽어야 할까? 중요도만 따지자면 분명 <잃어버린 환상>(1837-43)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손목을 잡기에. 이러다가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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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6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르웨이의 문호 헨리크 입센의 마지막 작품이 번역돼 나왔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지만지). 반가움과 유감이 교차하는데, 늦게라도 거장의 작품이 번역돼 나온 건 환영할 일이지만 지만지판은 고가 정책을 취하고 있어서(그만큼 찾는 독자가 적다는 뜻이다) 어렵게 나온 번역본이라도 강의에서 쓰기 어렵기에 유감스럽다. 여느 세계문학전집판과의 차이다.

입센의 작품으로는 대표작 <인형의 집>과 <유령>만을 주로 강의에서 읽었는데 시야를 확장해보려 해도 마땅한 새 번역본이 나오지 않는다. 지만지판으로 나온 <바다에서 온 여인>이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는 개인적으로 참고할 수 있을 따름. 스웨덴의 극작가 스트린드베리도 <유령 소나타>(지만지) 같은 작품이 재번역돼 나왔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렇게 번역 출간이 반갑지만은 않은 사례가 학술명저번역총서로 나오는 고전들이다. 가령 찰스 디킨스의 <작은 도릿>(한국문화사) 같은 경우 4권짜리로 나와 있는데 권당 400쪽 안팎이고 책값은 15000원이다. 한 작품을 읽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필요한 것. 조지 엘리엇의 <다니엘 데론다>(한국문화사)도 4권에 총 1400쪽 분량이고 권당 21000원이다. 아무리 중요한 작품이라 해도 일반독자가 읽기엔 부담스럽다(전공자라도 울며 겨자먹기가 아닐까).

진작 품절된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새물결)도 대표적인 사례다. 두권 짜리에 1456쪽이면 만만찮기는 하다. 그렇다고 99000원이라면(양장본 학술원서 가격이다) 구입도 부담일 뿐더러 강의에서 다룰 수 없다. 반대중적이라고 할까. 읽는 건 일도 아니라고 말하곤 하는데, 말 그대로 책을 손에 들 수만 있다면 읽는 건 누워서 떡먹기에 해당한다.

독자가 줄어서 책이 고가화되고 책이 고가화되면서 독자는 더 줄어든다. 불가피한 일인가. 그래도 상관없다면 상관없는 일이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가 언제인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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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3-26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반독자인 저에겐
책값은 부담~읽겠다고 하는건 무모한 도전이
아닐런지.

로쟈 2018-03-26 22:44   좋아요 0 | URL
저도 책값은 부담이에요. 고가의 학술서도 부담인데 작품번역본까지 5만원대를 넘어가면.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