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레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란 시구가 생각이 나서 예전에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패러디해 쓴 시를 옮겨놓는다. 히로뽕 투약 혐의로 룸살롱 종업원들이 구속된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이니까 십수 년 전에 쓴 것이다. '별 헤는 밤'은 한국인의 애송시이면서 나도 가장 좋아하는 시편 가운데 하나이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산과 들에는
갖가지 향기의 별떨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코끝을 찌르는 이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꾸욱 꾸욱 들이켜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그저
내겐 아직 많은 날이 남아 있다고 턱없이 믿는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아반테와
별 하나에 스쿠프와
별 하나에 프린스와
별 하나에 세피아와
별 하나에 벤츠와
별 하나에 메르세데스  

나는 아무 미련도 없이 그저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송하(朴眞玉․26, 金銀嬉․24), 다보(崔成伊․28), 모노(李모․19, 李收容․27) 캐쉬(南基永․27), 실크(韓定恩․29), 땡큐(朴모양․25), 마우이(尹慶正․27, 蔡永愛․22), 샤넬(曺賢淑․24), 궁원(朴英美․25), 히로뽕 투약혐의로 종업원이 구속된 룸살롱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별천지에 있던 사람들을 생각해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나는 무엇인지 부끄러워
이 많은 별내음이 내린 언덕 위에 누워버렸습니다

바지와 남방에 묻은 흙을 투욱 투욱 털면서 집에 갑니다  



09.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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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0-15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은 자신이 쓴 시의 연유를 잊은듯 했습니다. 어젠 나희덕,황지우 시인을 한 공간에서 보게되었습니다. 시가 낙엽처럼 떨어저 길섶에 딩굴때,독자는 유난히 한 낙엽을 주워 봅니다. 우리는 시인의 시를 통해 사물을 느낍니다.

로쟈 2009-10-15 11:23   좋아요 0 | URL
시집도 많이 읽으시는군요.^^

펠릭스 2009-10-15 14:56   좋아요 0 | URL
여름밤이면 저희 집 뒤산 메똥옆에 누워 초롱초롱한 별 들을
처다 봤었죠. 가끔 시원한 차림에 적막을 뚫고 혼자 올라왔던
통장님댁 따님이 제 여름밤의 고요를 흔들었죠. 잃어버린줄
알았는데 로쟈님 시속에 숨어 있었군요. 감사해요.

로쟈 2009-10-15 22:12   좋아요 0 | URL
요새 어디 누워서 별을 보기란 하늘에 별 따기죠...

hnine 2009-10-15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좋은 시들이 많이 쓰여지고 읽혀지고 있지만, 이런 시가 또 나올까 싶은 생각이 감히 들 정도로 좋습니다.

로쟈 2009-10-15 11:22   좋아요 0 | URL
윤동주답지 않은 시죠. 마지막 연은 논란이 있는데(어조도 좀 다르죠), 저는 포함된 걸 더 좋아합니다...

saint236 2009-10-15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별하나에아반데와 별하나에 스쿠프와....로쟈님의 간절한 소망이 확 다가오네요. 이택광씨의 "무례한 복음"이라는 책을 보다가 로쟈님의 이야기가 나왔더군요. 예전에 오역을 지적하셨던 사건 말이예요.루쟈님의 이야기를 거기에서 보니 반가운 마음에 들아왔습니다. 예비군 훈련가서 그거 한권 읽고 왔습니다.

로쟈 2009-10-15 11:21   좋아요 0 | URL
제 소망은 아닙니다. 저는 면허도 없고 차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요.^^; <무례한 복음>의 그 대목은 제가 페이퍼로 올려놓은 적이 있습니다...

비로그인 2010-02-20 22:49   좋아요 0 | URL
재미있고 눈물나는 시군요..
벤야민이 떠올랐어요. 저는 벤야민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이없고 안타깝게 자살한 그에 얹혀 선생님의 큰 눈망울에 스며드는 눈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