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이틀 저녁수업이 있었던 지난 학기에 비하면, 일주일에 이틀 아침 아홉 시 수업이 있는 이번 학기가 조금 더 수월하지만, 그럼에도 개강초의 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듯하다. 귀가 후에 글을 쓰기 위한 '또다른 일과'가 시작되어야 하지만, 대개는 정신을 못 차리고 나가떨어지기 일쑤다(오늘은 영양제를 맞아보라는 충고도 받았다). 하기야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프로야구 선수들도 체력이 달려서 애를 먹는다고 하는데, '빈곤한' 체력으로 8개월을 버텼으면 할 만큼 한 거란 생각도 든다(더 무리할 수도 있지만, 과로사 증후군도 이젠 고려해야 할 나이다). 그럼에도 일정은 11월까지 빼곡하다. 이러다 연말까지 찌질한 노동'으로 연명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다...

'찌질한 연애'에 관한 책에 대해 떠들려다가 잠시 말이 헛나갔다. 최근 각광받는 20대 필자군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들이 <뉴라이트 사용후기>(개마고원, 2009)의 한윤형과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레드박스, 2009)의 김현진이다(나는 시사IN의 칼럼으로 처음 알게 됐다). 한 책소개 프로그램에 두 사람의 책을 나란히 후보로 올렸다가 한윤형의 책을 먼저 읽게 됐는데, 김현진의 책도 여유가 되는 대로 읽어볼 참이다. '연애'에 대한 관심은 한참 아랫순위이고 '88만원 세대의 글쓰기'에 대해서 분석해보고픈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온다 싶으면 뭔가 써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기력을 충전하는 게 우선일 테지만. 사실 연애도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기운이 생동해야 할 수 있는 것이 연애일 테니까. 최소한 맥 빠진 연애를 하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김현진의 인터뷰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9. 09. 09) “당신만 찌질한 사랑에 아픈 건 아니랍니다”

요즘 인터넷과 진보매체에서 ‘글발’을 보여주는 잘나가는 20대 칼럼니스트가 여럿 있다. 하지만 그 중 여성은 김현진씨(27)가 유일하다. 첨예한 사회 이슈에 대해 속시원히 발언하던 그가 최근 돌연 관심사를 돌려 연애에 관한 에세이집을 냈다. 속칭 ‘찌질한 연애’의 모든 것을 모았다는 책 <누구의 연인도 되지마라>이다. 

 

웬 연애 칼럼집이냐는 반응에 김씨는 “몇년 전부터 연애 이야기를 좀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연애를 많이 한 편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연애는 개인과 개인이 다 벗고 충돌하고 깨지기도 하는 것이어서 사람을 가장 많이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데 요즘 자꾸 똑똑하게 사랑하라, 손해보는 사랑은 하지마라고 이야기하는 책들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런 이야기가 지겹더군요. 20대 여성들이 소개팅 가서, 데이트 하면서 돈을 안썼네 하면서 남자들을 이용해먹는 ‘된장녀’적인 아이콘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은 분위기도 싫었고요.”

사회가 강퍅해지면서 점차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은 없어지고 기회비용을 계산하고 손해 안 보고 상처 안 받으려는 태도가 야무지고 똑똑한 사랑의 방식으로 인식되는 풍토가 싫었다. 책은 ‘찌질한’ 사랑을 해서 자신을 비관하고 있는 20대 여성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물론 자신도 찌질한 연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실 여자들이 그렇게 따져가면서 손해 안 보는 연애만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남자에게 이용당하고, 손해 보고 끙끙 앓고 심지어 맞기도 하고 임신했다가 애를 떼기도 하고…. 찌질한 연애로 주눅들어 있는 아가씨들이 책을 보고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길 바랐어요.”

이 책은 벌써 김씨의 6번째 에세이집이다. 1998년 고교를 자퇴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진학한 뒤 자신의 청소년기를 되돌아보며 99년 발표한 에세이집 <네 멋대로 해라> 이후 <불량소녀백서> <질투하라 행동하라> <당신의 스무살을 사랑하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등을 통해 10대와 20대들에게 조언을 건넸고 잡지와 신문 등 매체에도 시사칼럼을 쓰는 등 꾸준히 글을 썼다.  

“사실 저보다 글 잘 쓰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 분들은 다들 대기업 홍보실에 가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사실 비결 같은 건 없고요, 제 글이 도움이 됐다고 e메일을 보내주시는 분들 보면 그냥 고마울 따름이죠. 제가 여태 살아오면서 박박 긴 ‘삽질’의 기록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위로를 얻길 바랄 뿐, 10~20대의 멘토씩이나 될 자격은 아직 없는 것 같아요.”

하나 그렇게 글을 써도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첫 책은 무려 19쇄나 나갔는데도 말이다. 생활감각이 전무한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의 생계를 꾸려가다보니 글값으로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김씨는 웃으며 자신의 글쓰기를 ‘생계형 글쓰기’라 하고 자신을 일러 월 40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도시빈민’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그는 조용히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실천을 하고 있다. 얼마 안 되는 자신의 인세, 원고료의 일부를 기륭전자 비정규직 분회에 기부한다. <그래도 언니는 간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의 인세 중 10%,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는 매체 중 두어 군데의 고료는 그를 거치지 않고 분회 쪽에 입금된다. “사실 원고료가 얼만지도 몰라요. 요즘은 가난하다 보니 그 돈도 아쉽기는 하지만, 작년에 기륭전자 언니들이 싸우는 걸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기 때문에 내는 수업료라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보니까 소소하게 컵라면이니 생수 등 돈 드는 게 많더라고요. 돈을 더 많이 벌면 다른 곳에도 기부하고 싶은데 저도 도시빈민이다 보니 ‘일단 한 군데만 밀자’ 하고 있어요.”

그는 자신의 기부를 “국세청과 전혀 상관없는 제 나름의 사회에 대한 납세”라고 했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 보니까 연대를 잘 못한다고 괴로워하는데 시간이 없을 땐 ‘현금빵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신자유주의적 시각의 연대긴 하지만, 별달리 시간도 여유도 없을 땐 최선의 연대는 입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기부뿐 아니다. 그는 언제나 현장에 달려나간다. 지난해 여름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륭전자 노조원들의 단식투쟁에 참여해 릴레이 단식을 하고 노조원을 위한 바자를 열었다. 올여름에는 쌍용차 평택공장 파업현장에도 갔다.

“일단 제가 가난하기도 하고, 에세이스트로서의 직업윤리 같은 게 있어요. 공돈 먹을 수는 없다, 이런 거죠. 집에서 그냥 인터넷으로 보고 글을 쓰기에는 제가 많이 부족해서 몸으로 때우는 거죠. 가서 내 눈으로 본 걸 쓰자, 현장 분위기를 몸으로 느껴서 조금이라도 더 진짜인 글을 쓰자고 생각해요.”

냉철한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촌철살인의 유머와 휴머니즘이 담겨 있는 그의 칼럼이 생생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현재 서울 종암동 철거구역에서 살고 있는 그는 재개발로 변화하는 서울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정말 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일본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걸>을 재밌게 읽었다는 그는 “원래 실없는 농담을 엄청 좋아하고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해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은 생각도 크고요. 한데 요즘 사회 상황이 왠지 결연한 분위기를 유도하네요. 앞으로 전공(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대학원 과정을 휴학하고 있다)을 살려서 킥킥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짬 내서 읽고 하루하루 살짝 기분 전환이라도 될 수 있는, 그 정도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윤민용기자) 

09. 09. 09.  

P.S. 날짜로만 치면 꽤 의미있는 날이로군(중국의 '구구절'이 오늘인가?). 지면에서의 인기에 비하면 실제 판매량은 두드러지지 않은 듯하다(적어도 알라딘에서는). 책 인세의 10%는 기부된다고 하므로 덩달아 '간접기부'에 참여해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 듯싶다. 그래야 우리의 '언니'가 더 오래 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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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9-09 20:18   좋아요 0 | URL
제가 악착같이 읽지 않는 종류의 책이 이런 책이었는데, 인터뷰 기사와 로쟈님 P.S.를 보니 한번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군요^^

로쟈 2009-09-09 22:5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연애서 읽을 나이는 아니지만, 젊은 세대의 감각을 엿볼 수는 있을 듯해요...

2009-09-09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09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09-09-09 22:51   좋아요 0 | URL
가야금연주자 황병기 님이,
"삼복 더위때에 무언가를 하면 큰 일이 되더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붘깡스를 즐겼던 로쟈님이나, 한 여름에 평택공장을 지켰던 작가 님이나
"무언가 큰 일"을 저축하고 있는 듯합니다. 11월을 너머 빼곡히 변화하는
서울을 온 몸으로 담아 낼 것 같습니다.

책읽는 남자가 섹시하듯 신문을 읽는 여자 또한 '누구의 연인'이기를
거부하는 가을 분입니다. 연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계절에 B급 연애는
더 생생할 텐데요.

여름내 흘린 육즙으로 이젠 탈진하여 어지럽고 어깨마저 축처집니다.
가을의 숨을 몰아쉬는 야구장과 투쟁 현장과 강의실에서도 1등급 육즙을
공급 받아야만 다음 삼복에도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슴입니다.

로쟈 2009-09-09 22:58   좋아요 0 | URL
네, 여름을 잘 나지 못한 후유증 같습니다. 이제와서 물릴 수도 없구요.^^;

2009-09-09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09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체오페르 2009-09-09 23:20   좋아요 0 | URL
사실 선입견이 있었던지라 로쟈님의 이 글을 읽고나니 왠지 부끄럽네요.
푸른바다님과 같이 저도 악착같이 읽지 않는 책이 여자 뭐뭐~ 시리즈 같은 종류,
칙릿, 시덥잖은 연애학서 같은 종류의 책들인지라 이 책도 딱 제목과 표지만 보고 그런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보지는 못했으니 정확히는 알수없지만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되고 보이면 한번 살펴봐야겠네요. 배우고 갑니다. 글 감사합니다.^^
ps : 제가 그런 책들을 싫어하는 몇가지는 여자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해놓고 남자를 비판하는 그런 시각도 싫고 연애학서 보고 손해보지 않는 연애하려고,사랑도 결국 자신 행복하자는 거고 즐겁지 않으면 싫은거라지만...그런게 불편하더라구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런 책을 통해 당신은 '연애에는 성공할지 모르나, 사랑에는 실패할 것이다' 뭐,저만의 견해입니다.^^;;

로쟈 2009-09-09 23:49   좋아요 0 | URL
저자는 저자를 먼저 봤기 때문에 의외다 싶었는데, 소개를 보면 수긍이 가는 면도 있습니다. 더불어, 저자의 나이도 생각하게 되구요...

루체오페르 2009-09-09 23:22   좋아요 0 | URL
앗 제가 남기는 순간 다른분의 글과 로쟈님의 댓글이 와르륵 달려 나타나네요. 지금 같은 글을 보고 있다니 왠지 기분 재밌습니다. ㅎㅎ

다락방 2009-09-09 23:34   좋아요 0 | URL
저는 아침에 경향신문을 읽고 회사일을 시작하는데, 로쟈님이 가끔 이렇게 경향신문 기사를 올려주시면 한번 더 보게 되는거에요.

저도 위에 루체오페르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계발류의 시리즈 책은 전혀 읽고 싶지 않은데, 그래서 이 책도 제목만 보고 그런책이거니 하고 넘기려다가 저자가 김현진이란걸 알고 오늘 부랴부랴 주문했어요. 시사인에 기고하는 그녀라면 연애에 대한 얘기도 제법 신랄하지 않을까 싶어 기대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9-09-09 23:48   좋아요 0 | URL
저도 보통은 전철역에서 사서 읽는데, 오늘은 버스를 이용한 탓에 사보지 못하고 온라인에서 읽었습니다. 마땅한 기사다 싶어서 옮겨놓았는데, 반응이 좋군요...

라로 2009-09-10 03:17   좋아요 0 | URL
저도 선입견과 편견이 강한 인간이라 "저런책~?!..."이라며 들춰보지도 않고 제목과 표지만 보고 지나쳤을텐데,,,,,,,로쟈님,,,흑

라로 2009-09-10 03:24   좋아요 0 | URL
지금 책을 보관함에 담으며 보니 알라딘에 올라온 리뷰는 대부분 참 가혹하네요,,,

로쟈 2009-09-10 16:30   좋아요 0 | URL
'찌질한 연애담'에 대한 거부감도 한몫하는가 봅니다...

필로우북 2009-09-10 10:35   좋아요 0 | URL
저도 김현진 님 팬이에요. 예전에 '또 하나의 문화'시리즈에 글을 쓰던 십대 시절부터 글을 참 잘 썼었죠. 동시대에 같은 나이를 살면서 글로 표현해 주는 게 고맙기도 했구요. (그녀는 절 모르지만 제 중학교 1년 선배이기도 해서)그 뒤의 행보를 지켜는 보고 있었지만, 얼마 전 '20대 여자들을 위한 자기격려서' 라는 부제가 붙은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를 읽고 다시 팬이 되었습니다. 20대를 포함한 모두, 계발에 앞서 자기를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



로쟈 2009-09-10 16:32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세대가 달라서 자기세대에 대한 연민이나 격려에는 거리감을 느끼지만, 맛깔나는 자기 문체를 갖고 있어서 좋아합니다...

순오기 2009-09-10 10:45   좋아요 0 | URL
20대인 우리 딸이 보면 딱 좋겠다 싶은데... 대학도서관에서 경향신문을 챙겨본다니 기사는 읽었겠네요. 저는 '언니가 간다'가 더 땡기는데요.^^

로쟈 2009-09-10 16:33   좋아요 0 | URL
<언니가 간다>는 칼럼모음집인 듯해요...

2009-09-10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0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