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초에 한 신문의 '책읽기 365'에 착안하여 '사회적 독서를 시작해보자'며 나대로의 목록을 제안한 바 있다. 내가 1월의 목록으로 꼽은 책은 네 권이었는데, 지승호의 대담집 <금지를 금지하라>(시대의창, 2006),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알마, 2006), 테리 이글턴의 <우리시대의 비극론>(경성대출판부, 2006), 그리고 김경주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코리아, 2006)가 그것들이었다.

 

 

 

 

네 권의 책은 각각 네 가지 범주를 고려한 것인데, (1)한국사회에 대한 책, (2)미국과 세계에 관한 책, (3)철학/이론서, (4)문학서, 가 그 범주들이다. 한달이 지나서 돌이켜보니 네 권의 책 모두 구입은 했지만 한권도 완독은 하지 못했다. 나대로 변명이 없는 건 아니나 취지에 스스로가 적극 부응하지 못한 점은 반성할 여지가 있다. 그래도 <금지를 금지하라>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한 꼭지씩을 읽었고,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에서 몇 편의 시를 읽었으며 나대로 이 책들을 '광고'했으니 의미가 없는 건 아니겠다. <우리시대의 비극론> 같은 경우는 좀 '무거운' 책에 들기에 일단은 사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싶고(사실 복사해둔 원서를 아직 못 찾고 있다).

 

 

 

 

참고로, 어떤 평자는 이글턴의 이 책을 <미학사상>(한신문화사, 1995)과 함께 그의 가장 좋은 책으로 꼽았다(<미학사상>의 원제는 '미적인 것의 이데올로기' 혹은 '미학의 이데올로기' 정도이다. 왜 샤프한 제목을 놔두고 둔감한 제목으로 옮겼는지 모르겠다). 이글턴 버전의 '미학사'인데, 먼로 비어슬리의 <미학사>(이론과실천, 1989), 베르너 융의 '미학사 입문' <미메시스에서 시뮬라시옹까지>(경성대출판부, 2006), 아직 한권이 덜 나온 타타르키비츠의 <미학사1,2>(미술문화, 2006) 등과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아무려나 다시 달이 바뀌고 보니 해야 할일들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의무감'에 2월의 목록도 제안하도록 한다. 서재를 즐겨찾으시는 분들 가운데 1% 정도, 즉 10분 정도는 취지에 공감하여 '사회적 독서'에 동참하실지 모르고(적어도 책은 사서 꽂아두실 수 있겠다. 사실은 그게 중요하다) 그 정도라면 나의 '발의'가 무색하진 않겠다. 2월은 날수도 적은지라 좀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골랐다.

 

 

 

 

먼저, '한국사회를 읽자'는 취지로 고른 책은 남재일의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강, 2006). 고종석의 <신성동맹과 함께살기>(개마고원, 2006)에도 눈길이 갔지만,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의 경우 비교가 안될 만큼 세일즈포인트가 턱없다. 나부터도 한권 사줘야겠다. 가격 대비 분량 빵빵하고, 읽은 분들의 평도 좋다. 소개를 옮기자면, "기자 시절부터 다방면의 글을 써온 남재일의 사회/문화 비평집. 영화를 중심으로 대중문화 작품들을 읽어내려간 글들과 최근의 한국 사회 이슈들에 대한 발언들, 그리고 한대수·최민식·임상수·김훈 등 한국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수록했다."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은 인터뷰들이다. 지승호 대담집의 경우도 그렇지만, 나는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육성을 듣고 싶다.

그리고 두번째 '미국을 알자'란 취지로 염두에 두었던 것은 엠마뉘엘 토드의 <제국의 몰락>(까치글방, 2003)인데, 어느새 품절이다(책은 그나마 사둔 게 다행이군). 그래서 다시 고른 책은 '악동 감독 케빈 스미스의 미국 문화 뒤집기'란 부제를 가진 <순결한 할리우드>(media2.0, 2006). 이미 읽으신 분들도 많을 책인데, 원제는 'Silent Bob Speaks'(2005)이고,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와 제작자를 끌어들이는 시나리오를 쓰는 영화감독, 미국 인디영화계의 총아 '케빈 스미스'의 에세이.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문체로 미국 대중문화계의 이면을 파헤친다. 지은이가 할리우드에서 보고, 듣고, 소화시킨 미국 문화의 모든 것을 밀도있게 담아낸 책이다." 물론 나의 취지는 미국문화의 한복판에서 그가 던지는 '육성'을 들어보자는 것이다. 목차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꼭지는 데이빗 린치의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지젝의 <부정성과 함께 머물기>의 출간이 다소 지연되는 바람에 무주공산이 된 철학/이론 파트에서는 로버트 니스벳의 <보수주의>(이후, 2007)를 골랐다. 하도 여기저기서 보수주의를 떠들어대고 있으므로 보수주의가 정말 뭔지 좀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신보수주의의 창시자'로도 불린다는 니스벳의 이 책은 (얇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를 가장 잘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보수주의 개론서"라고 평가되는 모양이다. "과연 보수주의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서 그것을 실체를 찾을 수 있는가? 저명한 보수주의 사회학자인 로버트 니스벳이 정치적 집단주의와 근본적 개인주의를 공격하는 보수주의의 본질을 명쾌하게 분석한다"니까 일독해봄 직하다. 원서의 표지를 보니 부제는 '꿈과 현실'.

그리고 끝으로 문학서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열린책들, 2007)을 고른다. 모더니즘에 대해서 공부도 해둬야 하고, 막간을 이용해 안 읽어둔 고전도 읽어둘 겸. 이미 여러 종의 번역서가 나와 있으므로 판본은 임의로 고르실 수 있겠다(기억에 학부시절엔 삼중당문고 정도가 유일했었다.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실실거리며 감상을 전해주던 친구가 생각난다. 버지니아 울프처럼 세상을 떠났다).

잔소리 같은 소개를 보태자면, "20세기 문학사에서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이른바 '의식의 흐름'이라는 실험적인 서술 기법을 발전시킨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섬세하고 아름다운 필치와 비범한 지성과 창조력이 결합된 장편소설이다." 그래도 300쪽이 안되는 분량이니 분량으로만 치자면 '만만한' 작품이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주연의 영화 <댈러웨이 부인>(1997)이 작년 가을에 개봉되기도 했었다. 겸사겸사 봐두면 좋겠다...

07.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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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1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01 09:59   좋아요 0 | URL
**님/ 네. 안 그래도 부지런하시단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구내서점에서 구매할까 했는데, 보내주시면 잘 읽어보겠습니다.^^

paviana 2007-02-01 10:16   좋아요 0 | URL
사놓고 베고만 자는 책들이 너무 많은데, 님의 말씀 들으니 위안이 되는군요.ㅎㅎ

짱꿀라 2007-02-01 10:43   좋아요 0 | URL
로쟈님, 정말로 이곳에 들어오면 책잔치가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답니다. 어찌 그렇게 책 소개를 잘 해주시는지 매일 감탄하고 갑니다. 좋은 정보 가지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로쟈 2007-02-01 10:46   좋아요 0 | URL
paviana님/ 아시다시피 책의 용도야 다양하지요.^^
santa님/ 별로 돈 드는 잔치도 아닌 걸요.^^

biosculp 2007-02-01 10:48   좋아요 0 | URL
보수주의와 더불어 나온 자유주의는 사서 책장에 진열해 두었습니다.
근래 서점가서 헉소리 나는 느낌을 받은것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새로운 판본입니다. 아 사고 싶다라는 지름신의 충동을 일으켰는데 하드커버도 나온다니 비교해보고 가격만 적당하면 다른책들 접어두고 사려고 합니다.

동대장 2007-02-01 10:54   좋아요 0 | URL
2월 책 중에 한권 읽어볼랍니다. 참 바지런 하시네요.
항상 좋은 정보에 감사드려요.....

수유 2007-02-01 10:58   좋아요 0 | URL
"너는 꽂아두기 위해서 책을 사지? " 동생이 늘 제게 하는 말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당장 읽기보단 꽂아두는 책이 훨씬 많습니디만,. 그러나 사지 않을 수 없을 뿐더러 언젠가는 손에서 읽을 날이 옵니다..

린(隣) 2007-02-01 11:21   좋아요 0 | URL
부지런하신 로쟈님의 사회적 독서목록, 저도 참조하고 싶네요.
한편의 불순한 생각, 독서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로쟈님의 공적 생각은 어떨까? 예를 들면 긴급조치관련 문제 같은.. 아침에 좃선을 보니 괜히 시비 걸고 싶은 기분이네요.
그건 글쿠, 열린책들에서 댈러웨이 부인은 또 언제 나왔데요?
솔출판사의 울프 전집을 통해서 봤었는데. 그때 참 좋은 기획이다 싶었는데 그닥 빛을 못 본 것 같아 약간 안타까운 기억이..

드팀전 2007-02-01 13:36   좋아요 0 | URL
<순결한 헐리우드>는 왠지 발칙할 것 같아서 눈여겨 봤지만 ..지금은...
전 산 책은 반드시 읽자는 주의여서...3-4권 이상 쌓이면 불안해집니다.대개 5만원 맞추기 위해 함께 주문하다보면 좀 쌓이는데..하여간 쌓이면 마음이 않좋습니다.그래서 미리 사기는 잘 하지 않는 편이지요..책을 많이 않봐서 그런가 봅니다.

로쟈 2007-02-01 13:49   좋아요 0 | URL
biosculp님/ 도스토예프스키는 새로 나온 장정이 더 맘에 들더군요. 전은 이전의 판본들을 두 종 다 갖고 있어서...
동대장님/ 동참해주셔서 감사.^^
수유님/ 보석들 모으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horasin님/ 저는 좃선을 보지 않습니다. 다른 페이퍼들에서 이미 피력해놓은 바 있지만 저는 '정치적인 말'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자칭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들'이 아니라 그의 생활이고 일상이라고 봅니다. 대학 강단에서 진보적 이념을 늘어놓는 건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이란 제도 자체가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언론이나 종교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울프, 책이 독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그냥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들도 나름 게으르기 때문에...
드팀전님/ 그런 뒷맛까지도 '미국적'인 게 아닐까요... 그리고, 제가 (3-4권만 쌓이면 불안해지는) 그런 아빠라면 딸아이가 너무 좋아할 거 같습니다.^^

수유 2007-02-01 16:31   좋아요 0 | URL
모을수 있다면야 보석도 모으고 싶군요 --;;

로쟈 2007-02-01 16:32   좋아요 0 | URL
책을 보기를 보석같이 하시면...

2007-02-01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바 2007-02-01 18:00   좋아요 0 | URL
부득이하게 지젝의 책이 선정되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1월 말에 출간된다고 해서 계속 기다렸는데 말입니다. 로쟈님이 출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실 거라고 믿고 있겠습니다.

로쟈 2007-02-01 18:23   좋아요 0 | URL
**님/ 섭섭이라니요. 저도 빨리 책을 내서 신세를 갚아야겠습니다.^^;
에바님/ 다음주에는 나올 거라고 하네요...

2007-02-01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01 21:07   좋아요 0 | URL
**님/ 지나친 말씀이시구요.^^ '뚜렷한 목소리'가 저는 때로 진정한 정치적 행위에 대한 가림막이 아닌가란 생각을 합니다. 중요한 건 '정치'가 아니라 '정치성'(정치적인 것)이고 이건 두루 편재하는 것 아닐까요? 따라서, 저는 매일, 매순간 아주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우리는 한시도 그로부터 면제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이해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늘빵 2007-02-01 23:53   좋아요 0 | URL
로쟈님 보면 참 분야가 넓으세요. 저는 시는 봐도 모르겠어요. -_-

로쟈 2007-02-02 00:04   좋아요 0 | URL
고종석의 <언어의 속살>만 따라 읽으셔도 웬만한 시집들은 읽은 게 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