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언론사이트에서 '진중권'이란 이름이 눈에 띄었다.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교양미학자'인 그는 알다시피 '진중권'이란 이름의 다른 한축인 '논객 진중권'에서 '논객'자를 떼기 위해 현재 칩거(?)중이다. 근황을 들여다보니 '디지털 시대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라고 한다. 그런 근황과 맞물려서 최근에 그가 민주노동당의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은 흥미롭다. 레디앙에 게재된 정리기사를 자료삼아 옮겨온다. (90%가 부정적인) 댓글들을 읽어보니 그가 이미 이전부터 해온 이야기이지만 나 같은 '일반독자'에게는 진중권과 그의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데 유익한 자료가 아닌가 싶다.

레디앙(06. 11. 25) “낡은 진보, 변하지 않으면 멸종할 것”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사회가 변하고 있는데 진보운동은 과거의 패러다임에 갇혀있다”며 “낙후된 패러다임으로는 멸종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객’ 생활을 접고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진씨는 지난 24일 민주노동당 장애인위원회와 성소수자위원회가 주최한 ‘소수자 정치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해 진보운동과 진보정당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양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을 고집할 경우 몰락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진씨는 “근 10년 동안 논객으로 살다보니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해야 하는 생활이 지겨웠다”며 “지금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짚어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일체의 집필, 방송활동을 중단한 채 디지털 시대의 사회와 문화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진씨가 발제 내내 강조한 것은 ‘패러다임의 변화’. 그는 “지금은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고 있다. 진보운동의 위기라고들 하는데 위기는 뭔가. 사회 자체가 변하고 있는데 진보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미 정보사회에 진입했다. NL은 농경사회의 패러다임이고 PD는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이다. 사회는 이미 정보사회로 진입했는데 농경사회,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으니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진씨는 “진보는 ‘텍스트’를 중시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블로그, 미니홈피를 꾸미는 것을 보라. 문자 대신에 소리와 그림, 동영상으로 꾸미고 있지 않은가”라며 텍스트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중권씨는 ‘시간’에 대한 기존의 관념도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진보는, ‘과거’는 피억압자의 기억을 조직해야 하는 것으로, ‘현재’는 미래를 위해 희생해야 할 어떤 것으로 보고 미래로 가자고 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현재의 즐거운 시간들이 모여서 미래가 된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비가역적, 즉 되돌이킬 수 없다는 관념도 사라졌다. 영화, 드라마 못 본 것이 있어도 클릭 몇 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는 정보화 사회의 계급구조의 변화에 대해 색다른 주장을 했다. 진씨는 “죄송한 말이지만 노동운동은 끝났다고 본다”며 “프로게이머들이 하고 있는 것이 미래 사회 블루칼라의 모습이고 화이트칼라는 프로그래머, 디자이너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농민 없는 진보운동, 노동자 없는 진보운동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자발적으로 게임을 하는 정보프롤레타리아트가 새로운 계급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씨는 진보정당의 활동에 대해 “‘저개발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의 양상에는 과개발의 정치와 저개발의 정치가 있다. 저개발의 정치는 목숨 걸고 하는 정치다. 서유럽 등의 과개발의 정치는 사회적 소통이 일정하게 해결된 상태에서 정치운동 자체가 유희가 되는 것으로 시위가 유희이고 퍼포먼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양자가 다 있다. 한쪽에서는 쇠파이프, 화염병, 최루탄이 있지만 다른쪽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촛불집회가 있다. 시민들은 과개발의 정치를 선호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어필하는 코드를 읽어내야 한다.” 그는 따라서 진보가 비판을 제시하는 방식 자체가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이미지를 복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는 시대다. 진위라는 인식론적 기준이 아니라 얼마나 새로운가, 색다르고 발랄한가라는 미학적 기준이 중시된다. 요즘 하는 역사드라마를 보라. 고증 자체가 필요 없어지지 않았나.”

진씨는 “지금은 비판만 갖고는 안된다. 제시하는 방향이 색다른 미학성, 예술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얼마 전에 ‘논쟁이 돌아온다’라는 행사가 있어서 갔는데 30분도 못 앉아있겠더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며 “그래서 내가 ‘좌파 리사이클링’(재활용)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진중권씨는 “디지털 시대 패러다임이 변했다. 새로운 방식, 창의성을 갖고 돌파해야지 이 상태로는 멸종한다. 우리 패러다임이 산업사회, 농경사회에 머물고 있는데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한심하겠나. 위기의식을 갖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윤재설 기자)

06. 11. 26.

 

 

 

 

P.S. 해서, 앞으로 '진중권의 디지로그'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진중권 패러다임'은 이어령 패러다임의 운동권 버전이 아닐까, 라는 게 기사를 읽으며 떠오른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편으론 민주노총의 운동방식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의 인터뷰 기사도 읽어봄 직하다. 오마이뉴스의 기사이다(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75852&ar_seq=2).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인 2006-11-26 09:26   좋아요 0 | URL
이 내용만 보면 어떻게 하자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변화의 필요성만은 누구라도 절감하고 있는 듯 합니다. 퍼갑니다. :)

로쟈 2006-11-26 09:28   좋아요 0 | URL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까지입니다. 발제문이니까요...

마법천자문 2006-11-26 10:48   좋아요 0 | URL
전형적인 기회주의, 개량주의적 사고방식이군요. 진씨는 정치얘기 하지 말고 본업에나 전념했으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6-11-26 11:49   좋아요 0 | URL
"진중권은 조선의 김대중 주필이라는 놈과 별반 다를바 없는 기회주의자 중의 하나이다. 그런놈이 지금 마치 진보세력의 대변인양 호도하며 수구대변인, 김대중을 욕하고 지랄하지만 이놈한테 느껴지는 것은 참으로 출세욕이 유시민보다 강한 놈이구나하는 것이다.(...) 꼴갑지 않게 노는 저런 자식이나 좀 안나왔으면 싶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진중권의 한 칼럼기사에 대한 댓글인데 드루이드님도 같은 생각이신지요?

마법천자문 2006-11-26 12:20   좋아요 0 | URL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에 비교하는 건 물론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이겠지만... 자칫 유시민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본업인 미학쪽에서는 상당히 인정받는 학자로 알고 있는데, 부디 그쪽으로만 전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yoonta 2006-11-26 13:07   좋아요 0 | URL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맞는 말이긴한데..그게 정보 뭐시기여야만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 우리의 정치환경이 과개발의 정치환경인지도 잘모르겠공..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에는 공감하는데 어떻게 변화하자는 건지는 불분명한 글이네요.

로쟈 2006-11-26 14:29   좋아요 0 | URL
드루이드님/ '상당히 인정받는 학자'라기보다는 '교양미학'의 개척자이죠. 미학을 대중화한 공로가 있습니다.
yoonta님/ 오랜만에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어떻게'란 각론은 따로 나올는지 모르겠지만, 디지털 시대 패러다임이란 게 '프로그램'대로 움직여지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어부 2006-11-26 15:41   좋아요 0 | URL
개량주의라고 비난하는 그들을 저쪽에선 교조주의라고 하더만요..-_-
'본업에만 충실..' 이란 말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쓰여 온지도 많이 봐 온것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6-11-26 16:24   좋아요 0 | URL
민주노동당이 진정 '진보'정당인지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받은 느낌은 변형된 '내셔널리스트' 정도라고 할까요? 뭐 어떤나라당은 내셔널리스트 축에도 못 든다는 점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위로라면 위로가 될 수 있겠군요^^

끼사스 2006-11-26 21:51   좋아요 0 | URL
진씨가 말하는 '저개발의 진보정치' 방식도 진득하게 하다보면 홍콩 느와르 식의 '복고적 미학성'을 획득해서 '정보사회 블루칼라'들에게 어필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ㅎㅎ

마법천자문 2006-11-27 00:49   좋아요 0 | URL
진씨가 노동자의 파업권을 옹호하는 칼럼을 쓰고,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 나와 시위에 동참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면 '본업에만 충실하라' 는 말을 할 이유가 없겠지요. 무슨 패러다임의 변화가 어쩌구 이미지 시대가 저쩌구 저개발의 진보정치 어쩌구 하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나 늘어놓을 바에야 본업에나 충실하라는 말입니다. 무슨 패러다임, 이미지 시대 운운하는 게 이진경이가 '탈주, 유목' 같은 소리 늘어놓으면서 현실도피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느껴지거든요. 제가 무식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천자문 2006-11-27 00:53   좋아요 0 | URL
그리고 서유럽에서는 시위가 유희이고 퍼포먼스라서 프랑스에서는 소방관들이 월급 올려달라고 불지르면서 데모하는 모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