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삶에 커다란 안락과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불확실성과 위기의 새로운 원천이 되었다. 더 이상 세계가 과거와 같은 냉전 분위기 속에서 전쟁 위험이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나타난 현실은 그와 정반대였다. 한 개인의 잘못으로 수백 명의 목숨을 좌우하는 상황이 과거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는 이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1986년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에 흔들리는 현대의 모습을 ‘위험사회(Risk Society)’로 진단했다. 벡의 주저 《위험사회》가 출간된 지 정확히 30주년이었던 작년에 우리는 위험사회의 부작용을 경험을 했다.

 

사람들이 인식할 수 없는 위험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그러한 위험의 정도는 점점 더 높아진다. 벡은 사회가 가장 감당하기 힘든 위험 요소를 핵발전소라고 지적했다. 핵발전소의 위험은 말 그대로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런데 핵발전소보다 더 엄청난 위험 요소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최순실과 박근혜다.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이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그녀들을 보호하려는 세력(친박 세력, 박사모)의 행보를 살펴보면 하나의 근대성이 관통하고 있다. ‘박정희’라는 이름의 근대성. 박정희의 지지자들은 박정희 시대를 산업자본주의가 확립된 근대성의 정치적 결정체라고 찬양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앙하는 박정희 시대의 근대성에는 또 다른 쌍생아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국가주의와 개발지상주의였다. 부국강병을 신조로 경제개발을 시도한 박정희 시대는 한동안 근대성의 신화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제적 산업화를 상징하던 근대성은 이미 낡았다. 강력한 개발 독재, 군사적 가부장주의, 압축 성장 등의 근대성의 산물은 우리 사회를 위협했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 1972년 유신 체제. 한국 현대사에서 절대로 잊어선 안 될 이 굵직굵직한 사건 사고는 무분별한 개발 정책과 대통령 독재를 정당화한 권위주의를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위험’이었다.

 

근대성에 대한 반성이 없으면 위험이 축소된다. 박정희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면서까지 왜곡된 근대성의 위험성을 축소했다. 박정희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박정희 시절의 피해자라기보다는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박정희를 좋아하는 이들은 공통으로 국가 혹은 경제 발전을 위해 온갖 위험을 자초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구시대적 패권 정치와 정경유착의 관계도 우리 사회를 썩어 문드러지게 한 위험 요소이다. 이렇게 그들이 함께 빚어낸 잠재적 위험은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작년에 터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기본적인 사회질서를 위태롭게 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최순실과 박근혜는 우리 사회에게 새로운 위험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들의 존재는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해악의 근원이다. 탄핵을 반대하는 친박 세력과 박사모는 과거의 정치적 유산이 만들어낸 위험요소를 성찰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렇게 산재한 위험을 제거하지 못하면, 좌우 세력이 균형을 찾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위험사회의 피해는 아무 잘못이 없는 시민들이 감당한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위험이 두려울수록 민주적 공동체를 만들 의욕과 시간은 줄어든다. 지금으로부터 1,000일 전인 세월호가 침몰했던 2014년 4월 16일, 그 날을 거슬러 올라가 5 ․ 16 군사정변이 일어났던 1961년 그 날부터 우리 사회는 위험사회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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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0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10 11:48   좋아요 0 | URL
기득권층은 자신이나 자신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 세력의 입장이 불리하면, 법을 언급하면서 잘못된 행동들이 정당하다고 합리화합니다. 정말 웃긴 일입니다. 이러니까 정작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죗값을 받지 못합니다. 세상이 자꾸 이렇게 돌아가면 평범한 사람들이 살 맛 나지 않은 게 당연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7-01-10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박근혜는 죄가 없다. 정유라가 무슨 죄냐. 엄마가 다 잘못한거다. 등등의 말이 들립니다. 진정 위험한 것은 이런 사고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같습니다. 위의 것들이 안변하면 -그들은 변할리가 없으니까요- 국민들이라도 변해야하는데... 아직도 저런말을 하다니.. 그것도 제 주변에서 놀라울 따름입니다~~

cyrus 2017-01-10 11:50   좋아요 0 | URL
올해가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라서 벌써부터 잔치판을 벌이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박근혜가 탄핵되든 말든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올해도 작년처럼 여러 차례 험한 꼴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01-10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핵발전소야 관리 잘 하면 유용한 시설이지만 박근혜와 순실은 먹혀들지 않으니..

cyrus 2017-01-10 14:15   좋아요 0 | URL
박근혜와 최순실은 헌재까지 무시하더군요... 쌍ㄴ이라는 욕이 어울립니다.

작년에 곰발님 소개 덕분에 《위험사회》를 읽었습니다. 읽기가 어려웠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 책을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루하고도 유쾌한 시간의 철학 -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것, 우리가 시간으로 하는 일
뤼디거 자프란스키 지음, 김희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러시아의 곤충학자 알렉산드르 류비셰프는 50여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시간 통계 노트를 작성했다. 그는 시간의 속성과 존재감을 정확히 인식했고, 자기에게 주어진 1분 1초까지도 지배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류비셰프는 철저한 시간 관리와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총 70권의 학술 총서와 단행본 100권 분량에 달하는 연구 논문을 남겼다. 류비셰프에게 시간은 곧 삶이다. 시간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버는 것임을, 부족한 시간은 없다는 것을 류비셰프에게서 배우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시간 관리’는 영원한 숙제다. 시간은 화살처럼 휙 지나간다. 하지만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흘러간다. 시간이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는 말은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는 주관적인 표현이다.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기로 유명한 칸트는 시간을 “시간은 모든 경험의 주관적 형식”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에게 시간은 외부의 어떤 것과도 관계없이 동등하게 흐르는 것이며 이를 시계로 확인할 수 있다. 삶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만들어진 시계가 때론 주어진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는 강박을 불러일으키는 감옥이 된다.

 

시간은 불가역적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며 시간에 거역할 수 없다. 시간이 왜 과거에서 미래로만 흘러가는지는 알 수 없다. 시간의 의미는 수 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독일의 철학자 뤼디거 자프란스키는 시간의 근본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에 관한 다양한 상념을 펼치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 철학적 작업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시간을 바라봤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의식이 다른 일에 몰두하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즐거운 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진다. 반면 최악의 시간은 분노 지수를 높인다. 친구를 기다리다 지치면 화가 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작정 기다리기에 고통스럽다. 이때의 지루함은 우리를 예민하게 한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 것으로, 정해진 채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우리에 의해 의미가 부여된다고 한다. ‘누구나 같은 시간을 가지고, 그것이 끝나면 죽는다’라고 생각하면, 주어진 시간을 이용하지 못한다. 자신의 인생 전체에 어떤 활동을 해야겠다는 전망이 뚜렷하지 않으면, 지루함과 불안이 동시에 나타난다.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새 출발에 두려움을 가진다. 죽음에 대한 이른 공포는 흘러가는 시간의 덧없음을 느끼게 해준다. 어찌 보면 시간에 대한 의식은 과거와 미래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는 과거를 회상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자신보다 조금 뒤에 존재하며, 우리의 목표와 꿈이 미래에 투영하기 때문에 항상 자신보다 조금 앞서서 존재한다.

 

자프란스키의 책에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특별한 비결은 없다. 결국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시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 저자의 결론이 너무 쉽고 평범한가. 저자의 표현 중에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것이 딱 하나 있다.

 

망각은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새 출발을 도모하는 예술이다. (49쪽)

 

이 문장은 특별하다. 새 출발을 시도하는 연초 분위기를 '업(up)'하게 띄워주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시간 속에 살다가 시간 속에 죽는다. 우리는 과거를 잊지 못하면 시간이 쏜살같이 가는 것을 안타깝게 느껴진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즈음이면,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좌절하게 마련이다.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막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러나 이 물을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에 따라 시간의 의미가 달라진다. 과거의 부귀영화를 따질 때가 아니고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한정된 시간을 의미 있게 살려면 과거를 말끔히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어떤 시간을 사느냐 생각하는 문제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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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1-09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서 일전에 내 글에 그런 댓글을 달았구나.
그래서 답글로 내가 류비셰프 얘기했었잖아.
사실 그 책도 생각 보단 별로였어.
근데 어제 TV를 보니까 <프리한19>에 주제가 어떻게 하면
젊게 살 수 있느냔데 수위를 차지했던 게
친구와 함께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거였어.
그 시절의 말투를 쓰고 완전히 그 시절로 돌아가는 거지.
그랬더니 젊어졌다는 거야. 그러니까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그때론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 순 뻥인 셈이지.ㅋㅋ

cyrus 2017-01-09 17:08   좋아요 0 | URL
학창시절 친구들을 만나 과거를 추억하면서 그 때 그 시절처럼 대화를 나누면 기분은 좋은데, 문제는 만날 때마다 추억담이 반복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좋은 추억을 언급하려고 과거를 미화하거나 부풀릴 수도 있어요. 과거에 돌아갈 수 없으니, 과거를 좋게 보정하는 싶은 심리인거죠. ㅎㅎㅎ

2017-01-09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09 17:11   좋아요 1 | URL
역시 **님의 생각은 정말 진지하고, 깊습니다. 저는 **님이야말로 누구보다 삶을 알차게 보내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일찍 퇴근할 수 있으면 6시 이후에 시간이 빕니다. 조만간 제가 먼저 연락드리겠습니다. 연락이 될 때 만날 시간을 조율하고 싶습니다. ^^

해피북 2017-01-09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판란스키의 책에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방법은 없다‘와 ‘망각은 허허벌판에서 새 출발을 도모하는 예술이다‘ 라는 글귀는 정말 연초에 새겨두기 좋은 말씀이네요 ㅎㅎ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올 한해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지내보렵니다 ㅋ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7-01-09 21:48   좋아요 0 | URL
거창하고 막연한 새해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이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비결인 것 같습니다. ^^

붉은눈 2017-01-11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이 심해서 현재의 삶에도 종종 방해를 받는 제게 ‘망각‘에 대한 교훈은 꼭 필요한 한 마디 같습니다. 리뷰 잘 보았습니다.

cyrus 2017-01-11 18:3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좋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안 좋은 과거를 잊지 못하는 편입니다. 새 출발을 할 때 방해되는 것들입니다.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 - 상품 뒤에 가려진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
안미선.한국여성민우회 지음 / 그린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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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판매직 노동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에 속한다. 감정노동은 타인의 감정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규제하는 노동이다. 소비자에게 무조건 친절을 보여야 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은 통제돼야 한다. 그래서 감정노동자들은 직무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다. 고객 만족 사회가 될수록 백화점 판매직 여성의 감정노동은 더 큰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백화점이 직원들에게 가르치는 서비스 정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한 판매가 가능한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고객이 잘못해도 고객이 옳다는 고객 제일주의를 표방한다.

 

백화점은 자본주의의 미니어처다. 온갖 물건들을 사고파는 행위가 이뤄지는 곳이고 그 행위가 화려하게 포장된 곳이기도 하다. 백화점은 영리하다. 백화점은 노동자들조차 상품 판매에 이용한다. 판매 여직원의 미소와 친절함이 곧 ‘상품’이다. 이들은 항상 친절하고 상냥한 응대와 부드러운 말투, 여성스러운 몸가짐을 갖추어야 한다. 온종일 한자리에 서서 고객을 기다리는 건 육체적으로 힘들 뿐 아니라 지루함과 짜증을 참기 어렵게 만든다. 제일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는 고객한테서 유발된 분노와 짜증을 억누르면서 ‘상냥하고 친절하게 웃어야’ 하는 것이다.

 

백화점 판매직은 깨끗하고 별로 힘들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다. 그 속으로 한 발짝만 들어가서 보면 쉬는 데도 마땅치 않고 쉬어도 쉬어지지 않는 힘든 육체노동이다. 산업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사업주가 근로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과 의자 등을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서서 일하는 직원들은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해소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호소한다. 8시간 이상 서서 근무하는 동안 화장실에 가는 횟수는 1, 2번에 그친다. 고객이 집중되는 시간에는 여유가 나지 않고 화장실에 가기가 눈치 보이기 때문이다.

 

백화점 여성 근로자의 근로 여건 개선 여부는 사업주의 의지에 달려 있다. 하지만 여러 차례 권고 조치를 해도 사업주의 마음은 꿈쩍하지 않는다. 사업주가 근로 문제를 이해해주고, 태도가 변화하기를 기다릴 수만 없다. 백화점의 화려함 뒤에 가려있는 열악한 여성 근로자들의 노동 현실에 대해 연대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한국여성민우회는 ‘우다다액션단’이라는 시민 모니터링 단체를 발족했다. 시민들이 직접 백화점의 열악한 실태를 파악하여 또 다른 시민들에게 알림으로써 노동 문제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한다.

 

백화점 내부가 활기 넘쳐 보여도 그곳은 ‘환상과 절망’이 이중적으로 교차하는 공간이다. 쇼핑하는 우리는 점점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다. 백화점 자본주의가 창출한 소비의 유혹은 고객들에게 강렬한 환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우리가 소비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질수록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공간은 좁아진다. 직원들은 마땅히 앉을 곳도 없고 마땅히 쉴 곳도 부족하다. 백화점의 번듯한 겉모양에 감쳐진 초라한 여성 근로자들의 모습은 ‘사람’이 아니라 감정이 말라버려 인간적인 면모마저 사라져버린 마네킹이다.

 

“직원들 간에 서로 위안을 주고받고, 거기서 힘을 받아서 일을 하는 것인데, 그런 위안조차 못 받으면 무슨 맛으로 일을 해요? 참 답답해요.” (백화점 잡화 매장 직원의 말, 54쪽)

 

백화점 내부의 빛이 밝을수록 마네킹의 그림자는 길고 어둡다. 문제는 우리는 그 그림자를 보지 못한다. ‘고객이 왕’이라는 생각을 버려야만 마네킹의 그림자를 볼 수 있고, 그 일하는 마네킹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욕설이나 하대를 하거나 심하면 뺨을 때리는 고객이 있다. 근로자들을 존중할 줄 모르는 그들은 상대방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들이야말로 ‘사람’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 사람에 대한 무례를 더 이상 용납하면 안 된다. 우리가 근로자들의 고충을 알고, 그들을 존중하는 말 한마디와 인사가 뻣뻣해진 그들의 다리를 한결 가볍게 해주는 최고의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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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1-06 2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소일 하시는 분들 쉴 곳도 규정으로 법제화했으면 합니다. 화장실에서 간식 먹고 겨울에도 시멘트 바닥에서.... 휴... 어느 곳을 둘러봐도 화나고 욕 나오고...
노동자의 권익 보면 한국은 대책없는 민주주의 후진국입니다.

cyrus 2017-01-07 16:11   좋아요 0 | URL
사실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에 아쉬운 평을 하자면, 백화점 근로자들이 머무는 휴게공간이 얼마나 심각한지 볼 수 있는 사진 한 장이 실려 있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백화점 측이 시민들이 모니터링했을 때 사진 촬영은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글보다는 사진이 근로 실태의 심각성을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을 겁니다.

:Dora 2017-01-07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화점이라말로 자본주의 최상의 감옥...예전엔 모르고 참도 잘 다녔지요. 이전 셍각만해도 지끈...

cyrus 2017-01-07 16:14   좋아요 0 | URL
연말에 코스트코를 처음으로 갔습니다. 친구가 코스트코 회원이라서 필요한 물품이 있는지 확인할 겸 그곳에 갔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넓고, 사람들이 많은 쇼핑 공간은 처음 봤습니다. 왜 사람들이 코스트코를 찾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카트에 물품을 가득 채워 넣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니 숨 막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지금행복하자 2017-01-07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견직원으로 백화점 에서 일했던 지인이 생각나네요. 이것도 하면 안돼..안돼,.안돼.. 두다리가 퉁퉁 부어도 앉으면 안되고.. 정말 힘들었다고...
노동자를 사람취급하면 큰일 날 줄 아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쉽사리 바뀌지도 않고요..

cyrus 2017-01-07 16:16   좋아요 0 | URL
근로자, 노동자들을 사람답게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정부나 기업에 있는 소위 높으신 분들은 근로자들의 편의를 위해 투자하는 걸 아까워합니다.

2017-01-07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07 16:21   좋아요 1 | URL
백화점 판매직은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서 그만둔다고 합니다. 그만큼 수익이 박하고, 육체적 · 정신적으로 힘듭니다.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백화점 근로자들을 힘들게 만든 건 백화점 사업주이니까요. 그리고 그동안 열악한 상황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 저 같은 사람들도 잘못이 있습니다.

서니데이 2017-01-07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날씨가 따뜻합니다.
cyrus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7-01-07 16:23   좋아요 1 | URL
주말 날씨가 좋을수록 집에서만 지내고 싶군요. ㅎㅎㅎ
서니데이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

서니데이 2017-01-09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번 먼저 인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가 먼저 인사남깁니다.
행복한 월요일, 기분 좋은 한 주 되세요.^^

cyrus 2017-01-09 14:50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페미니즘의 검은 오해들 - 가부장제, 젠더, 그리고 공감의 역설
김미덕 지음 / 현실문화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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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페미니즘(liberal feminism)은 남녀 불평등의 원인을 가부장적 섹슈얼리티에서 찾는다. 가부장적 섹슈얼리티는 남성은 능동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저항할 능력이 없어 보이는 나약한 모습이 여성의 성적 매력이며, 지배적으로 보이는 것이 남성의 매력이라는 점. 그것은 섹슈얼리티가 바로 가부장적 권력관계 속에서 구성된 것임을 말해준다. 사랑의 이름으로 낭만화하는 성적 실천이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기본 토대가 된다. 그래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섹슈얼리티를 분석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포착되지 않던 불의와 억압의 존재를 가시화(visibility)한다. 

페미니즘은 사회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한 시도에서 출발했다. 초기의 페미니즘 운동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이었다.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적 제도라든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억압을 반대하고 상호보완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오랫동안 주류 페미니즘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그렇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점차 페미니즘 운동이 전개되면서 단순히 여성 지위 향상이란 수준에 머무르지 않게 된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까지 ‘페미니즘’이란 이름은 서구 중심 시각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의제일 뿐이다. 흑인 · 유색인종 페미니스트들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인종적 · 계급적 평등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백인 · 중산계층 · 서구 중심적 시각으로 동질화한 페미니즘은 서구 밖으로 발전된 다양한 페미니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페미니스트의 검은 오해들》은 작년 페미니즘 도서 출판 열풍에 맞춰 나왔음에도 독자들의 열렬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 책은 오늘날 지역 · 국가 · 인종 · 사회적 경계를 넘은 세계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문제점을 소개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너무 늦게 수출한 것이다. 얼마나 늦었냐면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한계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적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한 시기가 1960년대부터였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부터 비서구 유색인종 페미니스트들을 중심으로 한 제3세계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 등이 등장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제3세계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점차 소개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대중들에게는 생소한 사상이다. 《페미니스트의 검은 오해들》을 쓴 김미덕이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관점의 틀은 제3세계 페미니즘이다. 

김미덕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그대로 수용한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익이라는 다소 제한된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 보니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겪는 피억압을 강조하기 위해 성차별 문제를 폭로하고, 이를 전제로 남성에게 호소한다. 사실 작년에 독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페미니즘 도서 대부분은 이러한 전략을 구사한다. 가장 대표적인 책으로는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폭력과 성차별을 만화로 적나라하게 묘사한 《악어 프로젝트》(푸른지식, 2016년)와 여성 혐오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남자들의 심리를 분석한 《맨 박스(Man Box》(한빛비즈, 2016년)가 있다. 《맨 박스》처럼 페미니즘 관점에서 남성을 비판하고, 남성의 반성을 유도하는 형식으로 쓴 책이 오찬호의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다. 《악어 프로젝트》같은 경우, 실제로 프랑스에 출간 당시 논란이 많았는데 남성을 여성의 삶을 침해하고, 공격하는 포식자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악어 프로젝트》의 저자는 남자를 악어로 묘사함으로써 여성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설정했다고 밝혔다. 이 책에서 악어로 묘사된 어떤 남성은 그동안 살면서 인식하지 못했던 여성 혐오와 성차별의 위험성을 이해하는 순간, 악어가죽을 벗는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남성을 악어로 묘사한 궁극적인 목표가 성별 간 대립이 아닌 이해와 화합이다.

그런데 김미덕은 주류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오랫동안 사용한 폭로 및 공감 유도 전략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대학교에서 남녀 학생들에게 여성학을 가르치면서 겪은 경험과 남녀 학생들이 솔직하게 밝힌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 등을 소개하면서 ‘남성은 가해자이고 여성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설정에서 비롯된 한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설정으로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치면, 일부 남성들이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지 못한다. 남성들이 여성 차별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페미니즘을 수용한다고 해도 단순한 공감에 그친다면 남성은 성차별과 가부장제에 얽힌 자신의 삶을 성찰하지 못하거나 실제로 일어난 현실적인 문제를 회피한다. 

여성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대가 형성했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페미니즘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통로가 조금씩 열렸다고 환영하기에는 이르다. 눈에 보이는 공감이 전부가 아니다. 페미니즘이 만들어낸 긍정적인 신기루만 바라보면, 인종 · 민족 · 계급 등 다양한 변수들이 얽힌 성 차별 및 성 불평등 문제를 보지 못한다. 김미덕은 페미니즘이 사회 정의 구현과 인권 문제에 한 발짝 더 나아가려면 공감과 역지사지(易地思之)보다는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 작업을 제안한다. 탈동일시는 자신의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주는 사회에 대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과 동일시된 감정이나 생각에서 분리되면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동시에 자신의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의 검은 오해들》은 젠더 문제만을 접근하는 현재의 페미니즘의 한계를 바라보고, 그 문제 해결을 모색하려고 시도한다.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이 이 한계를 바라보지 못하면, 국제적인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오늘날의 페미니즘은 혼합성과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페미니즘들을 필요에 따라 적절히 동원할 필요가 있다. 우리 독자들이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연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동참하려면 다양한 페미니즘들을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내부에 존재하는 억압의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 글 제목은 이정서의 소설 《당신들의 감동을 위험하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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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6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06 08:29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것과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것을 혼동합니다. 페미니즘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려고 전자의 입장을 후자의 입장으로 둔갑시켜서 왜곡합니다.

기억의집 2017-01-06 0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그렇게 페미니즘이 우리들 틈새속으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게 박근혜가 정권을 쥐고 그녀를 조종한 사람이 최순실이었다는 것입니다. 박-최 게이트 사건 보면 남자들이 저 두 여자들에게 꼼짝 못할 정도로 벌벌 떨었다는 우리 모두는 알고 있잖아요. 남자도 아닌 여자에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억압당하고 벌벌 떨었는지. 전 박근혜가 국회의원들이나 공직자들 모아 놓고 수 틀리면 째려보고 입 다문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해요. 그 모습 보면서 남자들의 심리가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람들 모두 철저히 가부장제 사회속에서 그렇게 길들여진 남자들인데 왜 박에겐 저랗게 벌벌 떨까? 박이 진정 페미니즘의 구현인가? 하는 우습잖은 생각도 들더라구요.

제가 울 아들 가만히 관찰해보면 본인이 속한 작은 사회(학교)에서 자기 또래애들한테 배우더라구요. 울 아들은 제가 페미니즘을 말해도 페미니즘에 대한 시각이 닫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또래 친구들의 영향이 큰 거 같아요. 우리 교육이 입시 위주가 아닌 고등학교때부터 끊임없이 어떤 사안 그게 페미니즘이든 아니면 정치적이든지간에 성찰하는 법을 배워야하는데 그런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상인이 되다보니 가부장제에 대한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가 남아 있는 것 같더라구요.

cyrus 2017-01-06 08:56   좋아요 1 | URL
여자들만 구성된 사회조직도 가부장제에 영향을 받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조직 내에서 위계 질서, 차별이 생깁니다. 과거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근거로 남성을 비판했지만, 이제는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도 비판해야 합니다. 박근혜가 공직자들의 비판적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그녀도 가부장제 문화에 길들였기 때문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가부장제 문화에 길들여지면 권위적인 태도를 드러냅니다. 생각보다 일상 속에 가부장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 문제점을 짚어줘야하는 일이 페미니즘의 역할인데 청소년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에 페미니즘을 배우지 못합니다.

블랑코 2017-01-06 0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역시 공부를 해야겠어요.

cyrus 2017-01-06 08:59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그동안 페미니즘을 너무 단순하게 공부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양한 페미니즘들을 공부하면서 시야를 넓혀야겠습니다.

마립간 2017-01-06 09: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실이나 진리에는 인기있는 것이 있고, 인기 없는 것이 있는데, cyrus 님의 글만 읽어도 《페미니스트의 검은 오해들》가 인기 없는 이유가 그냥 느껴지네요.

cyrus 2017-01-06 17:3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제 글이 전체적으로 무미건조해서 책이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학술지에 실렸던 것입니다. ^^;;

2017-01-06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7-01-12 21:48   좋아요 0 | URL
170106 17:27 투명인간 님

제 댓글에 대한 댓글로 생각하여 말씀드리면 위 책이 《잘못된 길》의 인기 없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1953년부터 1994년까지 전국 영화관에 가면 무료로 보는 ‘그것’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대한늬우스’이다. 유신 시절 영화관에 가면 누구나 애국가를 들었다.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 삼천리금수강산의 영상이 펼쳐지면서 애국가가 울리면 관객들은 암흑 속에서 일어나 차렷 자세로 경의를 표했다. 그리곤 울며 겨자 먹기로 보아야 했던 영상이 ‘대한늬우스’였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세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중략)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세상 떼어 내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동명 시집 37쪽)

 

 

황지우는 이 시를 통해 군사문화의 외면적 강압을 비판했다. 시에서 언급된 ‘이 세상’은 많은 문제를 내포한 사회였다. ‘대한늬우스’는 노골적인 국정 홍보물이었다. 정부의 시각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중립성이나 객관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았다. 정권유지를 위한 홍보물이라는 비판을 받아오다 1994년 12월 31일 2040호를 끝으로 폐지됐다. 강압과 침해의 의미로 남게 된 추억이 2009년에 한 번 부활한 적이 있었다. 문체부가 제작한 ‘대한늬우스-4대강 살리기 편’이였다. 비록 상영기간이 한 달에 불과했지만, 1970년대의 시계로 거꾸로 돌린 문체부의 행보는 유신 시대에 있을 법한 일이다. 영화를 보는 것은 문화를 향유하는 행위다. 개인의 일상에까지 권력에 의한 획일적인 강요가 침투해 있다면 문화는 척박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쓴 시를 두 번 다시 보기 싫다. 혐오감이 난다."

 

황 시인은 자신의 처녀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출간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이 시집의 ‘자서(自序)’ 첫머리에 시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썼다. 사실 그의 시집을 읽으면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억압과 부패, 그리고 비(非) 윤리가 가득했던 시절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새들조차 세상을 뜨고 싶을’ 정도로 숨 막혔던 그때 그 시절의 아픔을 느껴본 시인과 독자들은 이 시집을 다시 들춰보기가 껄끄러울 것이다. 그런데 유신 시대가 종언을 고한 지금은 그때보다 더 미개해지고, 더 야만적이다. 지금의 세상이 황 시인의 시보다 더 혐오감이 난다.

 

행정자치부가 올해부터 새로운 국민의례 방식을 제정했다고 한다. 공식 행사에서 순국선열, 호국영령을 위한 묵념을 하도록 권고했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은 국가가 지정한 묵념 대상자에서 제외됐다. 그뿐만 아니라 5.18 민주 항쟁 희생자, 제주 4.3 희생자들도 묵념 대상자가 되지 못했다. (참고 기사 : [정부, 국민의례 때 ‘세월호, 5·18 묵념 금지’ 못 박아] 한겨레, 2017년 1월 5일 자) 국가가 국론 분열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묵념과 추도를 통제하는 상황. 우리가 탄핵 결과 그리고 최순실, 정유라에 주목하고 있을 동안에 정부는 조용히 역사의 시곗바늘을 유신 시대로 돌리고 있다.

 

나는 유신 시대와 유사한 상황으로 되돌리려는 정부의 행보에 거부한다. 국민의 취향과 마음조차 통제하고, 하다 하다 이제 희생자를 애도할 자유마저 빼앗으려고 한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도 한참 돌았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이 없다는 교황의 말처럼 인간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행위에도 중립이 없다. 자유라는 단어의 의미가 민망해지는 요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여전히 유효하다. 시집을 두 번 다시 보기 싫더라도 84쪽은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 거기에 묵념할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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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탕아 2017-01-05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유효한 시 맞네요. ^^

cyrus 2017-01-05 18:09   좋아요 0 | URL
오늘 한겨레 기사를 보고, 오랜만에 황지우 시집을 들춰봤습니다. ^^

yureka01 2017-01-0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영화 한 편 보는데도 애국가가 흘러 나왔던 기억납니다.
독재적일수록 애국심은 강요되고.
민주적일수록 애국심이 우러나죠.

cyrus 2017-01-05 18:12   좋아요 0 | URL
제가 극장을 처음으로 갔던 해가 2001년입니다. 대한 늬우스가 나오던 극장 내부의 풍경이 어떤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암울했던 역사를 보게 되니까 그때 그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유신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대한늬우스를 좋은 추억으로 생각할 겁니다.

나와같다면 2017-01-05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정권은 세월호 희생자. 5.18민주 항쟁 희생자. 제주 4.3 희생자들에 대해 추도할 염치가 없습니다

5.18 광주민중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을 불렀던 MB정권의 천박함을 기억합니다

cyrus 2017-01-05 18:15   좋아요 0 | URL
정부는 순국선열들을 진심으로 애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국민들에게 애도할 자유를 제한할 자격이 없습니다.

캐모마일 2017-01-05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씀이 요근래 읽은 글 중에 제일 인상에 남네요.

cyrus 2017-01-05 18:17   좋아요 0 | URL
황지우 시집의 84쪽에 보면 묵념을 할 수 있습니다. 시 제목이 ‘묵념, 5분 27초‘입니다. 광주 항쟁 희생자들을 추모한 무언시입니다.

북프리쿠키 2017-01-05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사짓는 땅이 지력을 다했으면 갈아엎어야 되는데 잡초만 뽑아대니 아무리 좋은 종자를 심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네요.
이제부터 시작인데 이 위기감도 곧 사그라들겠죠~
이나라 현대사는
˝유야무야˝ 이 한마디가 모든 걸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7-01-05 18:18   좋아요 1 | URL
조봉암이 대선 후보에 나섰을 때 선거 구호가 ‘갈아 엎자‘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조봉암만큼은 아니더라도 국민들 속 시원하게 해주는 대선 후보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

보슬비 2017-01-05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묵념에서 뭉클했어요.. 국가는 대한국민 국민에게 큰 트라우마를 주었어요. 더 큰 트라우마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둠은 빛을 이길수 없다‘는것을 제대로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cyrus 2017-01-05 21:13   좋아요 0 | URL
암울한 상황을 직시하고, 여기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에 촛불 집회를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과 함께 하면 트라우마가 조금씩 치유될거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