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훔쳐라
박성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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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성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소설집 <우리는 달려간다>를 통해서였다. 몽롱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가 마음에 들어 마음속에 새겨두었는데, 갑자기 그의 다른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이상 이상 이상>, <나를 훔쳐라>, 이렇게 두편의 소설 전부 구입했다. 다행히 출간된지 10년이 넘은 <이상 이상 이상>이 절판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정말 감탄했다. 이런 멋진 작가를 왜 이제까지 알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더불어, 일본소설만 탐닉해 오던 내 자신을 돌아봤다. 우리 주변엔 이렇게 멋진 작가가 있었던 것이다. 가장 놀라운 점은 '하리망당' ' 아치랑거리다' '흥감스레' '훙뚱항뚱' '새근발딱' 같은 멋드러진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껏 젊은작가들 중, 박성원 작가처럼 우리말을 아름답고 멋지게 구사하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저자는 인정받아 마땅하다.

[댈러웨이의 창] 세든 청년의 여자친구에게서 느끼는 묘한 감정과 댈러웨이를 통해 서술되는 철학적 사유가 인상적이었다. 이층에 세든 청년, 그리고 그를 찿아온 여인. 화자는 이층으로 사라진 그들의 행방을 쫓으며, 외로움을 느끼는데 그 심정이 공감이 갔다.(p.13-14참조)

댈러웨이. 댈러웨이는 사진을 직접찍기 보다, 피사체에 반사된 모습을 표현해 냈던 작가라 한다. 그의 사진은 평범해 보이지만 고도의 기술과 주제 의식이 들어간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화자는 청년을 통해 댈러웨이를 알게 되고, 댈러웨이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지만, 곧 그를 잊기로 한다. 댈러웨이와 위에서 언급한 여인은 오버랩된다고 이해했는데, 다음 서술을 보자. "애정이 증오로 치닫고, 또 그리움이 혐오로 쉽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댈러웨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이상하게 구토가 속을 우비고 올라왔고, 댈러웨이 사진을 응용한 광고를 보면 가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p.27)

댈러웨이란 인물은 과연 실제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정말 사실인가? 사실이란게 존재하긴 하는 것인가? 나중에 밝혀진 진실은 그만큼 충격적이다.

[중심성맥락망막염] 구더기사내, 화자, 그리고 친구의 술자리 대화(상담)가 핵심내용인데, 그들 대화의 깊이는 만만치 않다. 구더기사내? 무릎의 상처가 썩어가지만, 항생제 거부반응때문에 항성제를 사용할 수 없는 사내는 썩은 살만을 먹어치우는 구더기를 무릎에 넣은 것이다. 자기 몸속에 구더기라니...끔찍하지 않을까? 부끄럽지 않을까? 아니다. 사내는 당당하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회충이나 십이지장충 같은 것들에 비하면 이 구더기는 얼마나 이로운 생물입니까? 회충은 생살을 뚫고 기생하면서 온갖 질병을 일으키지만 제 몸 안에 있는 구더기는 생살을 먹지 않습니다. 오직 썩은 부위만 먹을 뿐이라 이 말입니다. 회충이 얼마나 독한 놈들인지 모두들 잘 아시죠? 수컷은 온몸이 생식기로 이루어져 있고 또 암컷은 한 번에 20여만 개의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에 이처럼 섹스만 밝히는 더러운 것들은 또 없을 겁니다."(p.38-39)

구더기사내는 중심성맥락망막염이란, 병에 대해 상담을 하고자 한다. 저 병은 망막이상으로 사물의 일부가 보이지 않는 병이다. 볼펜을 들고 있는 손을 바라보면, 손만 보이고 볼펜은 보이지 않는거 같은…. 이야기전개와 무관하게, 난 처음 '이 병이 그렇게까지 고민할 병인가'란 생각을 했다. '걸리면 죽는 불치병이 널렸고, 죽음보다 심각한 고통을 주는 병도 있는데 말야' 하고.

하지만 다음 서술을 보자. "제가 이 병을 겁내고 또한 지독하다고 느끼는 것으 제가 보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사물을 보거나 혹은 책을 읽더라도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하지 않으면, 제가 본 것이 과연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점 말입니다."(p.44) 그렇다. 자신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삶은, 진실 저 편에 있는 삶일 것이다. 왜 그가 힘들어 하는지 알았다.

저자는 이런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이 세상을 사는 우리는 과연 자기가 본 것을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중심성맥락망막염'을 앓고 있지 않다면, 사물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저자는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저런 질문을 재기발랄하고 멋지게 부각시킨다. 짧은 단편이지만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가히 충격적이다. 저런게 능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리뷰에는 단 두편만 소개했지만, 수록되어 있는 단편 모두가 하나하나 음미해야할 가치를 가진다. 아름다운 우리말과 함께, 저자가 던지는 깊이있는 메시지를 가슴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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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8-02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댈러웨이의 창을 읽고 정말 충격을 받았지요.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단편이에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쥬베이 2007-08-02 19:53   좋아요 0 | URL
정말 충격받을만한 작품이에요. 감사합니다^^

turnleft 2007-08-03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이 책도 보관함으로~

쥬베이 2007-08-03 18:34   좋아요 0 | URL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아무래도 소장해야 할거 같아,
주문했습니다. 두고두고 읽게요 ㅋㅋㅋ

프레이야 2007-08-03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베이님, 박성원이라는 작가를 소개받고 갑니다. 꾸욱^^
순우리말의 재발견도 의미있구요. 담아갑니다.

쥬베이 2007-08-03 18:35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우리말이 제대로 쓰였습니다.
해설을 읽어보니, 저자는 우리도 생소한 우리말을 통해 '낮설기하기'의 효과까지 노린거 같다고 하더군요.

네꼬 2007-08-03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쓰시면 안 읽을 수가 없잖아요. =_=

쥬베이 2007-08-03 18:35   좋아요 0 | URL
꼭 읽어보세요^^ 괜찮으실 거에요~~

302moon 2007-08-0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소설집. 여기서 보니, 반갑습니다. 저도 그때, 우리말 활용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어요. ^^

쥬베이 2007-08-04 10:0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대무신왕기 2 - 태양을 삼킨 왕
김상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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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탕으로 한 팩션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남한산성>, <논개>, <대무신왕기>등.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로선 굉장히 반가운 일이다. 저자 김상현의 전작 <정약용 살인사건>을 읽지 못했다. <대무신왕기>가 처음 접하는 그의 작품인 셈인데, 설램과 걱정이 교차했다. 역사 팩션이란 좋아하는 장르를 어떻게 그려냈을까 하는 설램과, 기대에 못미쳐 장르자체를 멀리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하지만 저자의 서문을 읽고 그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믿고, 그가 펼쳐낸 세계속으로 빠져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자의 말을 잠깐 들어보자. "이렇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소설화하길로 마음먹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이야기에서 나만이 뽑아낼 수 있는 재미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하는 역사에 방점이 찍힌 '역사'소설이 아니라 소설에 방점이 찍힌 역사'소설'이 바로 나만의 재미의 다른 말이다."(p.10)

<대무신왕기>는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 무휼'과 그의 아들 '호동'을 중심으로 초창기 고구려의 늠름한 기상을 형상화한 소설이다. 호동왕자가 성장해 활약하는 현재와 무휼이 부여왕대소를 죽이던 과거가, 현재시점으로 번갈아 서술되는데 가끔 양자가 헷갈릴 정도의 절묘한 구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호동의 스승인 '을두기'가 어떻게 호동의 스승이 되었는지를 부여왕대소를 죽이던 시절로 거슬러 밝힘으로 양자의 시차를 극복해낸다.

주몽 추모왕이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자리라고 믿어지는 '졸본의 동굴'은 고구려 혼의 상징으로 소설에서 상당히 부각된다. 대무신왕은 호동이 위험한 작전수행 지시를 받고 동요하는걸 알아차리곤, 성지로 가 동굴속 용의 흔적에서 용의 이빨을 뽑아 아들 호동에게 주며 먹으라고 한다. '"그것을 먹으면 결코 전장에서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죽지 않았다" (중략) 대왕의 명령이었다. 호동은 손바닥에 올려놓은 차가운 용의 이빨을 냉큼 넣고 씹었다.'(p.135) 대무신왕은 자기가 선조로부터 경험했던, 용의 이빨을 먹는 의식을 아들에게 재현해 줌으로써 자신감을 불어넣고, 긍지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부여왕 대소는 머리는 하나고 몸뚱이는 두개인 까마귀상을 고구려로 보내 침략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내자, 대무신왕은 큰 결심을 한다. 그의 이런 결심을 옆에서 보좌한건 바로 을두기. 을두기의 계책에 따라 옥에 갖혀있던 도적의 수괴 '괴유'를 친견한 대왕. 과연 을두기와 대왕의 생각은 무었인지.

읽는내내 생동하는 고구려의 기상이 느껴질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상당히 실감나고 생생해, 마치 대하역사 드라마를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일부 대화는 지나치게 '현대적'이어서-특히 호동왕자의 대사부분 및 선우,소군의 대사부분-이야기 몰입에 어려움을 준 것은 내내 아쉽다.) 평소 스케일이 큰 역사물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 역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추구하던 재미있는 소설은 목적을 달성했다. 한정된 사료를 바탕으로 한편의 멋진 소설을 선보인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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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삿갓 - 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
이청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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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삿갓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서 김삿갓의 삶을 중심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런 류의 소설을 아주 좋아한다.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거니와, 친근한 역사를 바탕으로 해서 따분하지 않고 잘 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정수준의 재미역시 보장한다. 소설 김삿갓 역시 저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흥미롭게 읽었다.

처음 책장을 넘기면, 김삿갓은 아니나오고, 홍경래와 그 패거리가 등장한다. 바로 역사시간에 배운 '홍경래의 난'이 그려지는 것이다. 처음 난 왜 홍경래가 나와야 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이상한데...하면서 뭔가 이유가 있겠지하며 읽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왜 홍경래가 등장했는지 알게되었다. 만약 홍경래의 난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김삿갓도 없었을 것이다. 왜? 없었다면, 김삿갓은 장원급제한 자기 능력대로 관직에 진출해 뜻을 펼쳤을 것이고, 굳이 방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김삿갓(김병연)의 할아버지는 김익순으로, 바로 홍경래의 난에 가담했던 인물이다. 결국 난은 진압되고 병연네 집안은 문중에서 내침을 당하는데, 멸족되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었다. 김삿갓은 바로 역적집안의 아들인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과거를 보게된 병연. 그런 병연은 아직 자기 집안내력을 모르고 있다. 그런데 이게 왠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시제는 바로 "논정가산충절사 탄김익순죄통우천"(가산군수 정시의 충성스런 죽음을 논하고, 하늘에 사무친 김익순의 죄를 탄하라"(p.55) 자기 할아버지를 비난하라는 것. 하지만 위에도 말했다싶이 병연은 집안내력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글을 짓고 장원급제를 한다. 그러나, 그는 역적집안의 자손. 벼슬길은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기 할아버지를 욕한 배은망덕한 자손이 되었다.

그는 방황한다. 장원급제 했지만 뜻을 펼 수 없는 현실. 자기 할아버지를 욕되게 한 자기자신. 그는 인간이기에 방황했다. "인간으로서 자신의 뿌리를 부정해 버린 천하의 불효자식이 발 붙일 땅은 적어도 이 세상에는 없었다."(p.70) 산에 열심히 오르는 그의 처는 그에게 금강산에 가볼것을 청하고, 병연은 금강산으로 향한다. 하지만 금강산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건 남의 재물이나 터는 썪은 무리들. 하지만 그는 금강산에서 한 젊은이를 만나는데...그는 과연 김삿갓에게 있어 어떤 의미일까?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사회에 의해 배척당하고 떠돌 수 밖에 없었다. 역적의 자손인 그를, 자기 할아버지를 비난해 장원급제한 그를, 세상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현실속에 좌절하고만 김삿갓을 비난한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란의 근본원인인 조선사회의 뿌리깊은 지역차별과 썩을대로 썩은 세도정치에 대항하지 않고 떠도는 삶으로 현실을 도피했다고 그를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당신이라면 그러한 현실에 대항할 수 있었겠는가? 아무도 그를 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사회의 피해자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그의 안타까운 삶의 기록이다.

저자의 글은 다이나믹한 맛을 없지만, 담백하고 솔직하다. 차근차근 읽어가며 난 김삿갓의 삶의 괘적을 따라다녔다. 그의 험란한 인생사는 오늘날 약자들의 모습과 어울린다. 오랜만에 깊이있는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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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 1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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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반야 마지막장을 넘기며 넘쳐오르는 만족감을 느꼈다. 국내문학의 한정된 소재선정에 늘 불만을 품어오던 난 이 책의 신선한 소재와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에 빠져버렸다. 무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것부터 시작해서, 사신계란 흥미로운 설정, 반야의 놀라운 능력등 한순간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채정'과 '순정'이 있다. 이들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숙부네 집에서 얹혀살게 된다. 채정이 열여섯이 되던해 숙부는 벼슬 한자리를 하기위해 채정을 마흔살 영감의 후실로 시집보내려 한다. 가엾은 채정은 짐을 챙겨 도망가고, 흘러흘러 무녀 동매의 수양딸이 된다. 채정은 그 후 본명을 버리고 '유을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데, 유을해가 바로 '반야'의 어머니이다. 바로 동매와 유을해,반야 이 무녀3대가 이야기의 한 축이다. 반야는 '별님'이란 또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름하나만으로는 감당이 안 될듯하여 별칭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그럼 이쯤에서 반야의 놀라운 능력을 엿보기로 하자.

한신(한신은 젊은시절 유을해와 서로 사랑의 감정을 나누던 사람)의 누이동생 영신이 행방불명되고 한신은 반야에게 행방을 수소문한다. "혼백의 유모였다는 여인을 방문 쪽에 앉힌 반야는 칠성 방울을 흔들어 흩어져 맴도는 혼백의 기를 모아 불러 들였다. 비로소 영신 아씨의 생전형상이 뚜렷이 보이는가 싶을 때 급작스런 공포가 반야를 엄습했다. 겁탈당할 위기에서 발생한 공포였다.'(p.82) 그렇다. 영신아씨는 몸종과 함께 누군가에게 욕을 당하고 살해 당한것이었다. 반야는 이것뿐만 아니라 시체가 숨겨진 곳까지 지목하는데...마치 범죄미스테리를 보는듯한 재미까지 있다.

이야기의 다른 한축은 '동마로'에서 비롯한다. 유을해에 의해 받아들여져, 반야의 보디가드 역할을 하는 듬직한 동마로. 꽃님이가 자꾸 그를 '언니'라고 칭하는 바람에 처음엔 여성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잘 생긴 외모로 뭇 여성들을 설레게 하는 남정네다. 동마로는 이야기의 핵심인 '사신계'에 투신한다. 사신계는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가꿀 권리가 있다.'라는 강령을 가졌으며 최고수장은 '사신총'이라 불린다. 과연 이들의 정체는 무었이고, 무었을 하는 자들일까?

고을 사또는 계속해서 반야를 불러들이고, 반야는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는다. 계속 그러한 요구를 피해오던 반야지만, 집요한 사또의 청에 결국 사또에게로 가게된다. 사또는 신기(神氣)가 있는 자로, 사내셋 계집하나가 사또를 둥지삼고 있었다. 즉 귀신이 씌여있다. 사또는 의외로 이런말을 한다. "나는 네가 내 곁의 것들을 쫓지 않고도 내 심신에 내리는 통증을 없애 주기 바라고, 무기(신기) 또한 강하게 만들어 주기를 소망한다."(p.167) 씌여있는 귀신을 ?기보단 이용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일개 사또라 보기엔 간악하고 사특한 인물. 이야기 전반에 걸쳐 중요한 인물이 될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반야. 그녀는 남장을 하고 길을 떠난다. 한신(사은재)로부터 '시현'이란 이름까지 받고서. '이제부터 반야의 본격적인 활약상을 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야는 한양에게 가장 큰 혜정원이란 객점에 잠깐 머무르게 되는데, 혜정원 주인 혜정은 그녀에게 자기 앞날을 봐달라고 한다. 그리고 복채를 꺼내는데...그녀가 가진 복채주머니는 반야의 할머니 '동매'가 가지고 있던것도 똑같았다. 이게 뭔 일일까? 그리고 혜정이 하는 말. '귀천도 없고, 남녀차별도 없는 신세계. 그 세상은 모든 사람의 목숨값이 같습니다 (중략) 그런세상을 들어 본적 있나요?(p.228) 동매가 죽어가면서 한 말하고 어찌도 저리 유사한지. 여기서 난 감을 잡았다. 동매와 혜정은 바로 '사신계'의 일원이 아닐까 하는 점, 그리고 그들은 표식으로 같은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는 점. 이런 인연으로 인해 반야도 사신계에 투신하게 될거 같다는 점. 계속 읽어나가며 내 추론이 맞는지 살펴봐야 겠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반야와 사신계의 관련은 곧 드러난다. 다음 서술을 보자. "반야가, 사신계가 기다리던 재목이거니와 예비되었던 계원이었음도 그 뒤 밝혀졌다. 반야의 양조모인 칠성부 오품 동매가 반야를 키웠더니와 칠성부 부령이 일찌감치 반야를 점찍고 반야가 자라 사신계로 ?아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인연이 되려 그랬던지 반야의 아우 동마로가 저 홀로 사신계로 ?아들어 계원이 되어 있기까지 했다.(p.239) 그랬군. 반야와 동마로의 활약상이 기대된다.

일본소설의 국내시장 점유률이 50%가 넘은데는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국내소설이 제한적인 소재만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이유가 있다고 본다. 반야는 그런점에서 한국문학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자유분방한 소재와 이야기 전개속에서 난 무한한 흥미를 느꼈다. 멋진 이야기를 펼쳐보여준 송은일 작가님께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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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이혜경 지음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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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산지 한달반 정도 지났다. 대학복학이다 뭐다 아직까지 읽지못하다 몇일전에야 손에 잡았다. 처음 이혜경이란 작가를 접한건 군에 있을때 어떤 문학상수상집을 통해서였는데,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그냥 차분한 글이 호감이 가는 정도였다.

<틈새>의 마지막장을 넘기고, 이혜경 작가의 글은 처음 읽을때보단 다음이, 또 그 다음이 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란한 말로 독자를 현혹하려 한다거나, 쓸데없는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침착하게 자기 할 말을 한다. 이점이 마음에 든다.

첫 단편은 [물 한모금]이다. 이 소설은 한국내 불법체류자가 주인공이며, 화자란 점에서 내게 놀라움은 안겨줬다. '불법체류자들의 시각으로 쓴 소설을 과연 어떠할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화자는 아밀. 그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그의 동료이자 친구인 샤프의 체포소식을 전한다. 샤프와 함께 한국에 건너온 일들을 회상하는 아밀...

이 소설을 읽으며, 불법체류자인 그들의 일상과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느꼈다. 그들이 다른것이라고는 국적과 생김새가 다른다는 것일뿐이었다. 그들의 삶은 우리형 누님들이 1960년대 70년대 독일이나 미국에서 겪었던 삶의 다름 아니고, 또 오늘의 우리삶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똑같이 사랑을 느끼고 허무감을 느끼고, 살아간다.

난 '물 한모금'이라는 제목 역시 저러한 관점에서 이해 하고자 하였다. '아밀, 인생은 소가 물 한모금 마시는 시간만큼밖에 안된단다. 딱 그 만큼이란다.'(p.19)라는 아밀의 할머니의 저 말은 인생의 무상성과 돈을 벌기위해 발버둥치고, 국적이 다른다는 이유로 배타시하는 사회를 대조하고, 은근한 비판의식을 표출하고 있는건 아닐지. 그들의 한마디. '난 작은 도마뱀보다 무력하고 무해한 인간이랍니다. 그저 당신네 땅에서 잠시 숨쉬는 것 뿐이에요. (p.21)

[틈새] 표제작인 틈새는 인상적이었다. 전자제품 수리기사인 그는 친구인 영석의 집 냉장고를 수리하러 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석은 전교1등을 도맡아하던 친구로 육사에 들어갔다 보증빛으로 조기전역한 친구다. 그는 이야기한다. '짐작은 했지만, 그다지 여유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게 한눈에 드러나는 살림이었다. 쌔뜻한 가구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누추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그녀의 살림솜씨 덕분일 것이다' (p.112)

어느날 갑자기 일을 하겠다는 그의 부인. 집에서 살림만하는 여자들의 권태가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친구인 현태에세 들었던 그는 무시하려 하지만, 지하노래방을 혼자 드나드는 아내의 권태는 끝이 없다, 결국 아내는 그에게 말한다. '이혼해요. 나 이혼할거에요. 그러잖아도 당신에게 말하려 했어요.'(p.127) 말할 수 없는 충격. 그는 삶의 의욕을 잃고 살아할 이유,죽어야 할 이유를 끄적인다. 농약을 구하려는 그. 그에게 삶이란 무었인가?

<틈새>는 삶의 권태와 상실, 일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균적인 소시민인 '그'를 통해 평균인들의 삶과 권태를 살펴본다. 근래 자극적인 소재의 극적인 책을 주로 읽었던 내겐 오히려 저점이 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무문제없어 보이던 아내와의 관계는 조금씩 틈새가 벌어지고 있었으며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지나간 시절과 지금의 아득한 틈새역시 메울 수 없다. 이런 우리의 상실감과 고뇌를 효과적으로 전달한 수작이다.

이 리뷰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일곱편의 단편들도 대단하다. 특히 이수문학상 수상작인 피아간(이 작품을 통해 이혜경이란 작가를 알게 되었음)과, 미발표작이었던 '섬'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혜경이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선보여주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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