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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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아련한 추억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아기자기하면서 동시에 힘있는 필치의 삽화.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동이었다. <똥친 막대기>의 배경은 소가 농사일을 하고, 쭈그려 앉아 변을 보던 60,70년대이다. 부모님 세대가 아이였던 그 시절, 티 묻지 않은 순수함이 가득했던 그 시절…. 읽는 동안, 답답했던 가슴이 편안해 졌다.

<똥친 막대기>는 '백양나무 곁가지의 대모험, 그(?)가 바라보는 재희네 가족이야기'라 할 수 있다. 놀랍게도 화자는 인간이 아니라, 백양나무의 곁가지이다. 회초리가 되어 재희를 아프게 한 것에 미안해 하고, 똥을 휘저어 오물투성이가 된 모습에 괴로워하는, 사람과 똑같은 녀석.  

백양나무 곁가지가 백양나무에서 떨어진 것은, 농사꾼 박씨에 의해서였다. 암소가 일에 집중하지 못하자 매질하려고 박씨는 곁가지를 꺾는다.(p.24) 이렇게 대모험은 시작되었다.

재희는 사랑스런 아이다. 화자가 아니기 때문에, 내면묘사엔 한계가 있지만,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장면이 여럿 있다. 자기가 맞아야 할 회초리를 구한 다음, 종아리를 시험삼아 톡톡 두드려 보는 모습(p.76), "요놈의 개구리 잡아서 울 엄마 몸보신 해 주어야지."(p.131)라며 개구리를 잡는 모습(p.130), 놀리는 아이들에게 야무지게 혼줄을 내는 당찬 모습(p.120) 등. 생각만 해도 귀엽다.

백양나무 곁가지는 이런 재희를 좋아한다. 봇도랑에 버려진 후엔 손꼽아 재희를 기다리고(p.139), 재희가 회초리를 구하러 나오자, '나는 회초리 감으로 그녀에게 선택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선택되는 행운까지만 누리고 싶었을 뿐 그녀를 내려치는 회초리로서의 역할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p.75)라며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백양나무 곁가지는 박씨에게 꺾여져 나무 막대기가 되었다가, 재희네 집으로 가서는 회초리, 똥친 막대기, 낚시대가 된다. 딱딱하게 응어리진 똥오줌을 휘저어야 했고, 낚싯대가 되어 허리가 부러질뻔 했고, 홍수에 떠내려가 사라질 위험에까지 처했지만, 결국 뿌리를 내려야 할 곳을 찾는다.(p.161)

<똥친 막대기>는 전 국민이 읽어야 할, 전 국민이 감동할만한 작품이다. 울보소녀 재희를 보며, 부모님 세대는 향수에 잠길 수 있고, 아이들은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간접체험할 수 있다. 지나친 생각일지 모르지만, 이 작품은 국어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양나무 곁가지의 모험에서 수많은 교훈과 감동을 느낄 수 있기에. <똥친 막대기>는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오래오래 사랑받을만한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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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큰 놀이터다 - 화랑세기에서 배우다, 소통편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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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은 큰 놀이터다>는 화랑세기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초대 풍월주 '위화'를 중심으로, 마복칠성의 맏이 원종(법흥왕), 벽화 오도 옥진 등 여인들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 '역시 김정산!'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고, 삶의 교훈까지 얻을 수 있었다.

'삶의 교훈'이라,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상의 가치를 갖는 작품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권력의 흐름, 사랑, 좌절등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특히 고승 '법화'를 주목해야 한다. 법화와 그의 제자들은 여러 일화를 돌아보고 의미를 논하는데, 마치 공자와 그의 제자를 보는 듯하다. (수상쩍은 부제 '화랑세기에서 배우다. 소통편'은 바로 이 점에서 정당화 된다.)

한 상황을 보자. 딸 벽화를 비처제에게 바쳤던 섬신은 그가 죽자, 지증제에게 다시 바치려고 한다. 벽화는 "저는 싫습니다. 당연히 싫지요. 이제는 저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한번 살아보고 싶습니다! 색을 바쳐 지위를 사는 추하고 천박한 일을 제발 그만두었으면 좋겠어요!"(p.84)라 하지만 아버지의 엄명에 답답하기만 하다. 이에 오빠 위화는 '멋진 조언'(p.84,84 직접 읽어보시길.)을 해주고 벽화가 자신의 인생을 살게 돕는다. 나중에 법화와 위화는 대화를 나눈다. "이미 황실에 들어간 여인으로 황가에 색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도리다. 어찌 한사코 이를 막았는가?" / "저는 오직 제 누이의 뜻을 받들었을 뿐입니다." / "하면 날이에서는(처음 벽화가 비처제에 바쳐질 때 살던 지역명)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 그때는 저도 보고 배운 바가 일천하여 세상 사는 묘리를 잘 몰랐습니다." 나중에 벽화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섬신과 위화는 같은 실수를 범했으나, 위화는 한 번 실수에 그쳤고 섬신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이처럼 사람은 같은 일을 겪고도 배우고 느끼는 바가 다 다르고, 같은 구덩이에 빠졌지만 헤쳐 나오는 길도 제각각이다. 위화처럼 한 번 실수로 대오의 경지에 이른다면 먼저 한 냥을 잃고 뒤에 열 냥을 얻은 셈이지만, 섬신처럼 꼭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면 먼저 한 냥을 잃고 뒤에 다시 열냥을 잃는 격이다."(p.87) 이어 한 제자가 질문한다. "그럼 처음부터 실수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의 셈은 어떻게 됩니까?" 벽화가 답하길, "평생 실수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먼저 한 냥을 잃지도 않겠지만 뒤에 열 냥을 얻을 까닭도 없다."

목차만 보면, 짧은 이야기가 모여 있는 단편 같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야기가 핵심인물을 중심으로 실타래처럼 이어져 있다. 예를 들어, [옳은 인생도 없고 그른 인생도 없다](p.203)는 오도의 두 딸(즉, 위화의 딸) 옥진과 금진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이어지는 [먼저 겪은 일은 뒷일에 편견이 되기 쉽다](p.214)에선 옥진과 영실의 결혼이 주요 에피소드로 등장하고, [새옹지마](p.224)에선 옥진과 영실의 불화와 옥진을 취하는 원종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즉, '옥진 금진 -> 옥진 영실 -> 옥진 원종' 식으로 이어지는 것. 이런 절묘한 구성은 터키의 국민작가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의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와도 접점이 있다.

<세상은 큰 놀이터다>의 핵심인물 위화는 한평생 풍류를 즐기던 괘남아였다. 온 백성이 그를 사랑했고 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였다. 오늘날로 따진다면 인기스타, 국민배우와 같지 않았을까? 그는 비처제에게 후궁으로 들어간 누이 벽화덕에 권력의 심층에 다가 간다. 그 후 마복칠성과 어울리며 승승장구하지만, 오도를 둘러싸고 원종의 질투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나중에 지소와 삼맥종(진흥왕), 옥진과 비대가 차기 왕위다툼을 벌이자, 자기 딸이 아닌 지소를 지지하는 놀라운 모습(p.281)을 보이기도 한다. 어린 삼맥종을 섭정한 지소태후는 위화를 우두머리 삼아 화랑제도의 기틀을 만든다.

<세상은 큰 놀이터다>는 명작중의 명작 <삼한지>의 감동을 이어가는 작품이다. 재미도 재미거니와 삶의 교훈까지 얻을 수 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역사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은 김정산 작가님을 따라갈 자가 없는 것 같다. 정말 멋진 작품. ('화랑세기에서 배우다. 소통편'이란 부제는 후속편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 후속편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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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9-16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사 시름잊고 싶을때 역사속으로 빠져들어 위화의 풍류에 취해보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여전히 건재하신 쥬베이님!

쥬베이 2008-09-16 22:59   좋아요 0 | URL
우와 칼리님!! 오래간만이에요^^
추석은 잘 보내셨죠? 이 책 강추합니다!ㅋㅋㅋ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김이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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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놀랐다. 국내작가의 환상문학이 단편집으로 묶여 나올 정도가 되었다는 것, 유수의 출판사에서 출간했다는 것에. 우리의 환상문학도 알게 모르게 발전하고 있던 것이다. 척박한 현실을 돌아보면,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의 작가와 출판사가 얼마나 대단한 도전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들의 발걸음은 언젠가 제대로 평가 받을 날이 올 것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작품성이 고르지는 않다. 감탄하며 읽은 것도 있고, 읽기 민망할 정도의 작품도 있었다. 가장 앞에 실린 [미소녀 대통령]은 좀 더 고민이 필요한 작품이다. 문근영 대통령, 다코다 패닝 경호원을 등장시킨 용기는 가상하지만, 평행우주개념 같은 설정과 스토리 전개가 진부하다. 또한 착취당하는 소녀, 착취하는 어른이란 대립구조를 통해 사회비판의식을 드러낸 부분도 투박한 서술때문에 우습게 되어 버렸다. 마지막 부분(p.26이하)에서 지나치게 많은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도 거슬렸다.

[크레바스 보험사]와 [마산 앞바다]도 별로였다. [크레바스 보험사]의 문제는 거친 문장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무감각했던 영현은 그런 사건 속에서 찰나의 죽음을 선사하는 위험 요소가 세상에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 몸서리치도록 명확하게 깨달았다.'(p.38) 어떤 의미로 썼는지는 알겠지만, 답답하고 늘어진다. 전체 문장이 그렇다. '원래 스타일이 그렇거든?'이라고 한다면, 뭐 할 말은 없지만 작가 10명의 문체를 한번에 접하기 때문에 쉽게 비교된다. [마산 앞바다]의 경우 느낌은 괜찮지만 이야기가 어수선하고 임팩트도 약하다.

[문신] 미야베 미유키의 <브레이브 스토리>, <이코 안개의 성>, 쓰네카와 고타로의 <야시>와 비슷한 느낌이다. 환상적인 분위기도 잘 살렸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결말은 조금 아쉽다. 밋밋하다고나 할까. [월리엄 준 씨의 보고서]는 괜찮았다. 세계 아동문학의 거장 '머랫W.E.프라이러리'의 갑작스런 죽음과 담당 편집자 월리엄의 모험(?)이 축인데, 플롯이 살아있고 흥미진진하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반전이다. 너무나 통속적이고 뻔한 반전이라 차라리 없는게 나았다.

[할머니 나무]와 [몽중몽]에 대해선 코멘트 하지 않겠다. 기억에 남는게 없다.

[서로 가다], [초록연필], [콘도르 날개] 이 세 작품은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의 최고 명작이다. 짧은 분량이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서로 가다]의 배경은 쿠빌라이 칸이 몽골대제국을 건설하던 시기이다. 서쪽에 있다던 어머니의 고향과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를 그리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일대기가 핵심이다. 역사물의 묘미와 종교적 향취까지 만끽할 수 있는 멋진 작품.

[초록연필] 세계적으로 희귀한 명품연필 'LAPIZ VERDE'(초록연필)을 둘러싸고 직장동료 양홍과 은경이 벌어는 에피소드, 'LAPIZ VERDE'를 만든 루까스 베르데의 일대기가 번갈아 진행된다. 이질적인 두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조화되는데다, 루까스 베르데의 삶이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읽으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하지만 양홍과 은경의 플러스펜 100개 실험(p.210)은 옥의 티다. 안에다 칩을 심고 이동상황을 모니터링한다니…평범한 직장인이 저런 게 가능할 거 같은가? 황당한 군더더기.

[콘도르 날개] 기대하지 않고 읽다 놀란 작품이다. 평범한 직장인인 주인공은 심야 케이블TV에서 <콘도르 눈동자와 예언대소동>란 제목의 3류 영화를 본다. 이후 그의 삶은 저 영화의 장면과 묘하게 엉키며 뒤죽박죽이 된다. 도대체 남자에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저 이상한 제목의 영화는 뭐란 말인가?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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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연인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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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힘든 시기에 정미경 작가를 알게 됐다. 비록 단편 하나였지만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그 후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를 읽었고, 이번에 <내 아들의 연인>을 읽었다. 역시 정미경 작가의 작품은 어느하나 따분한게 없다.

[너를 사랑해] 충격적인 설정과 간간이 등장하는 사회이슈가 매력적인 단편이다. 회장이 맡긴 계좌로 투자하다 돈을 날린 화자, 미인계를 쓰기로 한다. 오랜 연인사이인 여자친구 Y를 회장에게 소개시켜 눈을 멀게 하려는 것. 우여곡절 끝에 셋은 만나고(p.24), 회장은 Y에게 빠져 버린다. 화자의 계획은 성공한 것일까? 시작은 했지만, 막상 둘의 관계가 진행되자 화자는 어쩔 줄 모른다. 도리어, Y는 "자긴, 내가 어떡했으면 좋겠어?"(p.48)라며 느긋해 한다. 이들의 기묘한 삼각관계(?)는 어떻게 진행될지.

(이야기 중간중간 연예인 학력위조 사건, 신정아씨 사건, 탈레반 인질사건, 심형래감독의 D-WAR를 연상시키는 내용도 등장한다. 저자의 의도가 어떤 것이던 간에 그 자체만으로 흥미로웠다.)

[내 아들의 연인] 내 여자친구를 과연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할까? 예비 며느리에 대한 살뜰함? 왠지모를 질투의 시선? 가끔 생각하곤 한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도란이란 귀여운 이름을 가졌다. 요즘 아이같지 않게 낭비벽도 없고, 조용조용, 귀여운 도란이. 아들과 도란이 사이를 가로막는 건 돈이다. 신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상류층인 아들과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도란이 사이 보이지 않는 벽은 의외로 공고했다.

어머니인 화자는 도란이를 만나고 같이 밥을 먹으며 점점 호감을 갖는다. 손으로 직접 뜬 목소리를 선물받고는 '가슴이 아련해졌다'(p.141)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어머니는 도란이의 모습에서 자기를 발견한 건 아닐까? 가난한 초핀대신 지금 남편을 선택했던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 건 아닐까? 표제작에 걸맞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매미] 가장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은 귀속에서 울려퍼지는 매미소리로 힘들어 하고 있다. 외국유학을 끝내고 돌아온 다음부터 매미소리는 들리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힘겹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를 힘겹게 하는 것은 매미소리뿐이 아니다. 하루 종일 못질하는 윗층남자, 바로 층간소음(p.182)이다. 견디다 못해 분노를 터트리는 화자의 모습(p.183)은 그 사실적 묘사에 경악했다. 누구나 한번은 경험한 일 아닐까? 화자의 분노가 내 가슴으로 전해졌다.

<내 아들의 연인>, 정미경 작가님의 매력을 다시금 확인한 작품이다. 단편 하나하나 깊이 공감하며, 고민하기도 하고, 때론 웃으며 즐겁게 읽었다. 아직 정미경 작가님의 진가를 모른다면 얼른 읽어 보시길. 작가님의 이전 작품들을 모조리 찾아 읽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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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7-11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매미는 저 역시 공감백배예요. 역시 역량있는 작가의 책을 한권 읽으면 모조리 찾아있게 되는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인가봐요...^^

쥬베이 2008-07-11 18:12   좋아요 0 | URL
ㅋㅋㅋ 칼리님도 그러시구나^^
저는 미친듯 전작수집에 돌입하기도 해요ㅋㅋㅋ
 
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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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모 작가) 이런 말을 했다. '작가가 너무 쉽게 쓰면 독자는 작가를 만만하게 여긴다'라고. 이 말을 듣고 기겁했다. 그럼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어렵게 쓴단 말인가? 은희경 작가의 작품은 <비밀과 거짓말>을 읽었고, 이게 두 번째 작품이다. <비밀과 거짓말>이 얽히고 설킨 인물관계와 복잡한 플롯으로 기억에 남았다면,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다른 차원에서 '복잡'하다. 물론 분량도 얼마 안 되고 읽기에는 수월하지만, 스토리라인이 흐릿한데다 소설자제가 몽롱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렵다.

<그것이 꿈이었을까>는 몽환적, 초현실적, 나아가 기이한 분위기까지 풍긴다. 특히 레인캐슬과 레인캐슬에서 만나게 되는 마리아는 이런 분위기의 결정체이다. 결국엔 제목처럼 '그건 꿈일까?'라는 의문에 봉착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조차 모호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줄거리를 늘어놓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지만 간략하게 살펴보자.

의대생인 준과 진은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를 해보자며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는 레인캐슬로 향한다. 레인캐슬을 둘러싼 환경은 기괴하다. 끝없이 이어진 복도, 시체안치실 같은 식당, 모든 장소를 빠짐없이 비추는 조명, 거기다 언제나 내리는 비까지. 공포영화속 그것을 떠올리면 딱 들어맞을 듯. 거기다 화자인 준은 정체불명의 여성이 등장하는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괴함. 한편, 준과 진은 수녀원에서 도망쳤다고 주장하는 마리아란 여자를 만난다. 마리아의 정체는?

준은 한미라라는 여성(마리아와 한미라가 동일인물인지 아닌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_-)과 숨바곡질 같은 만남과 헤어짐을 이어간다. 시간이 흘러 준은 체코 프라하로 여행을 떠나며, 진에게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이상한 만남, 이상한 맺어짐. 그렇게 이야기는 안개속에서 이어진다.

후지타니 오사무의 <사랑하는 다나다군>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이가 있다. 과장과 유머러스함이 넘치는 <사랑하는 다나다군>에 비해 이 작품은 훨신 세련되고 진중하다. 또한 스토리라인 역시 오사무의 작품보다 간략하며 안정감이 있다. (양자를 비교하는 거 자체에 분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ㅋㅋㅋ) 하지만, 음악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는 점(로린 마젤이 지휘한 모리스 라벨의 오페라 <어린이와 마술>/비틀즈의 음악),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유사하다.

강렬한 스토리라인을 중시하는 입장에선,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그리 매력적인 작품이 아니다. 내용자체가 모호해 붕 떠 있는 듯하고, 이야기의 몇몇 연결고리는 마음에 걸린다. (준의 갑작스런 프라하행이 대표적) 하지만, 소설전체를 지배하는 독특한 분위기는 인상적이다.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숨겨져 있는 뭔가를 어렴풋이 본 듯하다. 모호하고 답답한 저 코멘트처럼, 읽는내내 안개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 표지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에메랄드 빛 배경에 실루엣만 흐릿한 여성이 첼로를 켜고 있다. 홀로그램식으로 반짝이는 별은 포인트. 화면으로 보이는 이미지로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실제로 보라. <그것은 꿈이었을까>의 표지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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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7-0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이거 관심가는데요?!!!+_+

쥬베이 2008-07-09 15:17   좋아요 0 | URL
ㅋㅋㅋ환상적인 분위가 상당히 매력적이 작품이에요.
하지만 저는 쫌^^

칼리 2008-07-1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잊고 있던 작가였는데 쥬베이님 덕분에 다시 되새겨 보게 되네요^^

쥬베이 2008-07-11 18:13   좋아요 0 | URL
저는 은희경작가하고 맞지 않는거 같아요
이 작품도 그렇고, <비밀과 거짓말>도 그렇고...
큰 감흥이 안오더라고요

다락방 2008-08-14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베이님.
저는 은희경의 다른 작품들, 이를테면 『새의 선물』이나 『마이너리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퍽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도 않을 뿐더러 재미도 없더군요. 『비밀과 거짓말』도 읽기 어려웠구요. 저도 그 두 작품이 저하고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쥬베이 2008-08-16 11:41   좋아요 0 | URL
우와 신기하네요^^ 동지감이 팍팍ㅋㅋㅋ

<비밀과 거짓말>은 일부러 어렵게 쓴 작품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 마음에 드는 작가는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