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왕실 법정에 서다 제인 오스틴 미스터리 1
스테파니 배런 지음, 이경아 옮김 / 두드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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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왕실 법정에 서다>는 <오만과 편견>의 저자 제인 오스틴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제인 오스틴 미스터리 시리즈' 제1권이다. 작품 속 제인 오스틴은 26살 노처녀(? 당시 기준)로, 사랑 없는 결혼을 거부하는 독립적이며 지적인 인물이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 편안한 삶을 꿈꾸던 당시 여자들과는 완전히 대조.) 월리엄 레이놀즈 치안판사와 함께, 마치 여자 탐정이나 변호사처럼 사건을 차근차근 파헤쳐가는데, 제인 오스틴의 이런 활약상은 정말 놀라웠다. 명.탐.정. 제인 오스틴이라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캐릭터 아닌가?

 

구성이 독특하다. 작품 대부분은 스카그레이브 저택에서 읽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한 (소설 속) 제인 오스틴의 일기와 편지(p.24)이다. 제인 오스틴은 이를 편집자 입장에서 재구성하여, 완벽한 추리극을 선보인다. 주목할 것은, 제인 오스틴이 편집자로서 단 주석이다. 이는 작품 외적 요소가 아니라 작품의 일부이며, 당시의 시대상이나 사회문화를 엿보게 해준다. 예를 들어, 남녀관계 호칭, 결투문화, 상류층의 생활모습, 의상, 백작 자작등 신분관계 등등. 스테파니 배런이 굳이 일기나 편지의 형식을 가져온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핵심사건은 절친 이소벨의 남편, 스카그레이브 백작(프레드릭 월리엄 페인)의 사망사건이다. 결혼식을 올린 지 3개월 만에 백작이 사망하자, 의혹은 젊은 아내(백작과 20년 이상의 나이 차) 이소벨에게 집중된다. 여기에 의문의 고발장(p.141)까지 날아들고, 의혹의 KEY를 쥔 듯 보였던 XXXXX마저 XX된 채 발견(p.215)된다.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사건. 과연 제인 오스틴은 진실을 밝혀 낼 수 있을까?

 

남녀간 미묘한 관계도 또 다른 재미다. 이소벨과 피츠로이의 사랑, 페니와 허스트, 제인 오스틴을 둘러싼 삼각관계(?) 등등. 엄청난 매력의 소유자, 허스트 중위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제인 오스틴, 마구 달려드는 페니, 둘은 은근히 질투심, 경쟁의식 비슷한 걸 느끼는데 이런 부분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제인 오스틴은 조금씩 의심스러운 인물이 추려낸다. 1) 사망한 백작의 아내 이소벨과 그의 연인 피츠로이 자작이 사랑에 눈멀어, 백작을 살해했다. 2) 이소벨에게서 크로스 윈즈를 빼앗으려던, 공공의 적, 해롤드 트로우브릿지가 범인이다. 3) 상속 관련해 백작과 말다툼을 벌였던 매력남 허스트가 우발적으로 백작을 살해했다. 한편, 배심원들은 XXXXX를 범인으로 지목(p.279)하나, 곧이어 또 다른 사실이 밝혀지는데...

 

파격적인 제인 오스틴 캐릭터를 탄생시켰다는 점만으로도 <제인 오스틴, 왕실 법정에 서다>는 훌륭한 작품이다. 또한, 각주 형식으로 당시 시대상을 정밀하게 고증하여, 작품의 깊이를 한차원 높였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지 못한 채 이 작품을 만났다는 거다. <오만과 편견>같은 명작은 읽은 다음, <제인 오스틴, 왕실 법정에 서다>를 다시 한 번 읽는다면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성탄절에 읽은 <제인 오스틴, 왕실 법정에 서다>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제인 오스틴 미스터리'의 전권 출간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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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가우초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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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북을 통해 로베르토 볼라뇨에 대해 알게 됐지만, 그의 작품을 읽는 건 처음이다. 버즈북을 읽을 당시만 해도 "오 멋진 작가네. 표지그림도 근사하고. 나오자마자 전부 사야겠다." 이랬으나, 어느 순간 볼라뇨를 깨끗하게 잊었다-_- 희미하게 열린책들과 표지작업을 한 야후벨과의 계약과정이 기억에 남았을 뿐. (금액이 오가고, 계약조건을 논의하는 과정이 신기했다. 뭐 아무튼)

 

<참을 수 없는 가우초>는 5편의 단편소설과 2편의 에세이가 실린 작품집이다. 문화권도 다르고, 처음 접하는 작가라 조심조심 읽어나갔다.

 

[짐] '어라 벌써 끝났어?' 이런 말이 튀어나왔을 정도로 짧다. (딱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 분량 정도.) 가장 슬퍼 보이던 미국인 친구 '짐'에 대한 이야기.

 

[참을 수 없는 가우초] 판사출신 변호사, '엑토르 페레다'의 이야기다. 페레다는 대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나 전원생활을 시작한다. '알라모 네그로 농장'을 운영하며, 가우초들과 어울려 전원생활에 적응해 간다. 그러나 모두가 페레다 같진 않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부터 함께 했던 요리사는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로 떠나버린다. 페레다는 3년만에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오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삭막한 도시의 현실.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주제의식이 명확했던 작품.

 

[경찰쥐] 쥐가 상징적 소재인지 알았는데, 진짜 쥐가 화자다. 의인화된 경찰 쥐, '호세(페페 엘 티라)'가 주인공. 정체불명의 살인마(포식자)를 추적하는 내용이라 미스터리한 느낌이 강하다.

 

[알바로 루셀로트의 여행] <참을 수 없는 가우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 소설가 루셀로트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참을 수 없는 가우초>엔 특정 인물을 관찰하고 이야기하는 작품이 많다.) 자기 작품을 표절한 프랑스 감독을 찾아, 표절의혹을 파헤치는 것이 핵심이며, 창녀 시몬과의 관계 같은 흥미로운 소재도 등장한다. 루셀로트는 볼라뇨의 분신이 아닐까?

 

5편의 단편소설과 2편의 에세이라고 했지만, 다음 세 작품은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정통 소설의 느낌은 덜 하지만, 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 4작품에 비해 굉장히 모호하고, 주제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특히, [크룰루 신화]는 생소한 인명이나 고유명사가 많이 나와, 혼란스러웠다. 볼라뇨의 다른 작품을 충분히 접한 다음, 천천히 음미할 필요가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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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랑수아 가르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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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는 '나르시스 펠티에'란 인물의 실화를 다룬 소설이다. 나르시스 펠티에는 견습선원으로 항해 중, 외딴 섬에 홀로 남겨져, 무려 18년간 문명과 격리된다. 18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늠름했던 선원 '나르시스 펠티에'는 어떻게 흰둥이 야만인 '암글로'가 되었는가?

 

나르시스가 야만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이야기[A]'옥타브 드 발롬브룅'이 후원자에게 보내는 편지[B]가 번갈아 제시된다. 발롬브룅은 흰둥이 야만인으로 발견된 나르시스를 맡아, 언어와 문화를 교육시키고, 18년간의 행적을 조사하는 학자다. 나르시스를 맡은 건 총독의 강권 때문이었으나, 점점 나르시스에게 애정을 갖는다. 언어를 습득하는 그를 보며, '아버지의 심정'(p.95)을 느끼기도 한다. 발롬브룅과 대칭되는 인물이 [A]에도 있다. 바로 '검둥이 노파'다. 노파는 다 죽어가던 나르시스에게 물과 음식을 건내고(p.52), 아픈 그를 돌보며(p.119), 나르시스가 부족에 동화되는 데 힘이 되어 준다.

 

나르시스가 야만인 부족에 서서히 동화되는 과정, 심리변화는 작품의 핵심이다. 구조대가 올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부족을 멸시하며, "나는 생폴 스쿠너 선 선원이다!"를 외치던 나르시스. 그러나 믿음과 희망은 조금씩 사그라든다. 그렇게 멸시하던 야만인들은 물을 찾는 법을 알았고, 사냥하는 법을 알았다. 여기서 나르시스는 이들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진정한 동화는 작품 마지막에서야 이뤄지나, 중간에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항상 노파에게서 음식을 받아먹던 나르시스가, 제 손으로 식량을 얻어낸 장면.(p.138) 키가 훨씬 큰 나르시스는 다른 부족이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들어가 조개나 홍합을 잔뜩 채취한다. 자연스럽게 부족원들은 그에게 빈바구니를 내밀며 조개채취 공동작업을 벌인다. 스스로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절대 함께 식사하는 걸 허용하지 않았던 부족이지만, 이번에는 나르시스를 막지 않았다. 처음으로 배불리 먹은 나르시스.

 

<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는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또 다른 삶을 선택해야 했던 한 인간의 생존 실화이다. 이 책을 통해 20여 년에 걸쳐 문명->비문명[A], 비문명->문명[B] 넘나들었던 나르시스 펠티에의 고뇌를 함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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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미스터리
J.M. 에르 지음, 최정수 옮김 / 단숨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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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미스터리>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에 대한 경의와 애정이 바탕이 된 작품이다. 주요 등장인물도 셜록 홈즈를 연구하는 10인의 홈스학자들, 셜록 홈즈와 외모가 닮은 러스트레이드 경감(p.21)이다. 따라서 셜록 홈즈의 팬이라면, 작품에 숨겨진 위트나 풍자를 더 깊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셜록 홈즈를 한 번도 읽지 않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셜록 미스터리>를 읽는 데 지장은 없다. 나 역시도 어릴 때 아동용 홈즈를 읽은 기억밖에 없다.

 

포세이돈 소방위와 플리포 소방사가 긴급 출동한다. 이들의 임무는 '눈사태로 매몰된 베이커 스트리트 호텔에 가서, 홈즈학회 참석차 투석했던 10인의 대학교수를 구출'(p.16)하는 거다. 호텔 지배인 루이지 리가텔리와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합류하고, 다 함께 호텔로 진입한다. 이들은 난장판이 된 호텔에서 충격적인 뭔가를 발견하는데...

 

<셜록 미스터리>는 일종의 액자식 구성이다. 러스트레이드 경감과 포세이돈 소방위 일행은 현장에서 발견된 기록을 읽고 있다. (액자 바깥 이야기) 이들이 읽는 기록은 1)신문기자(오드리 마르무쟁)가 남긴 기록과 2)교수들이 보낸 편지와 메모 등으로, 고립되었던 4일간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액자 속 이야기) 비중은 20 : 80 정도로 액자 속 이야기가 핵심이다. 따라서, 초반 맹활약을 기대했던 러스트레이드 경감은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10명의 교수들은 소르본 대학에서 새롭게 신설되는 홈즈학과의 정교수 자리를 노리고 있다. 임명권자이자, 학회 주최자인 보보교수의 눈에 들기 위해 애쓰며. 그러던 중, 홈스학자들이 하나둘 의문의 사고를 당하고 설상가상으로 호텔은 고립된다. 4일간 이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솔직히, 작품 속 풍자나 위트가 가슴에 와 닿진 않았다. 원인은 작가의 역량이 부족한 것도, 셜록 홈즈 시리즈에 대한 지식부족도 아니다. 문화차이다. 이건 이 작품뿐만이 아니라, 다른 프랑스권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도 느꼈던 거다. 풍자나 위트는 굉장히 압축적이기에, 이를 제대로 느끼려면 어느 정도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셜록 미스터리>의 구성은 놀라웠다. 오드리 마르무쟁의 기록이나, 교수들의 편지가 7,8페이지 내외로 짧게 짧게 이어진다. (한 페이지로 간략하게 등장하는 메모도 있다.) 그런데도 이야기의 흐름이 전혀 끊기지 않고, 기록과 편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대단하다. 이런 구성력은 쉽게 선보일 수 있는 게 아니다. (구성만 놓고 보면,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과도 비슷하다. 단, 편지와 기록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 사건의 진실은 러스트레이드 경감의 명쾌한 추리로 밝혀진 듯(p.359) 보이나, 끝부분에 새로운 의혹이 제시(p.381)된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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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인류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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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능이 끝나고 갈 대학이 정해졌다. 대학입학 때까지 긴 시간을 헌책방에서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당시엔 교과서가 아닌 책(소설)이 참 고팠다. 그 헌책방 골목은 주로 참고서 위주였다. 허나 일반 소설류를 취급하는 곳도 많았다. 부담 없이 쭈그리고 앉아, 책더미에 숨어서 이것저것 읽었다. 그때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와 존 그리샴의 책이다. 당시 <개미>는 예쁜 양장이 아니었고, 투박한 반양장이었다. (당시엔 양장본이 아주 드물었다.)

 

군대에 갔다. 일, 이등병 때는 책 읽는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상병 이후에는 시간이 좀 났다. 특히 자기 전, 당직사관 몰래 랜턴을 켜고 책을 읽었는데, 이게 정말 환상이다. 완벽하게 몰입해서 책을 읽고 싶다면, 군대에 가서 병장쯤 된 다음, 22시 이후 랜턴켜고 읽어보라ㅋㅋㅋ 아무튼, 이때 <개미> 1권을 다시 읽고, 나머지 권들을 전부 읽었다. <개미>는 군에 있을 때 읽은 모든 책 중, 단연 최고였다. 이처럼,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내 인생의 주요지점에서 나와 함께 했다. 그것도 최고로 멋진 기억으로.

 

2.

 

<제3인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선보인 기념작이다. 데뷔 20주년 기념작답게, <제3인류>에는 특별한 장치가 있다. 뭘까? ... 작가는 의도적으로 데뷔작 <개미>의 흔적을 곳곳에 뿌려두었다.

 

첫째, <개미>의 주인공, 에드몽 웰즈가 <제3인류>의 주인공 다비드 웰즈의 할아버지로 설정되었다. (에드몽 웰즈의 딸 '레티샤'도 다비드의 대사속에서 잠깐 등장한다.) 개미는 '소형화'의 한 상징으로 중요하게 부각되는데, 절대자 가이아(지구)는 개미를 자신의 파트너(?)로 점찍기(p.283)까지 한다. 둘째, 에드몽 웰즈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입체적 구성의 한 축으로 전면에 등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 셋째, <개미>의 주요 테마였던 '소형화, 여성화, 긴밀한 연대'가 <제3인류>에서는 보다 극적으로 다뤄진다. 

 

3.

 

<제3인류>를 읽으며 감탄한 건, 현란하고도 입체적인 구성이다. 다비드 웰즈와 오르르 카메러의 메인스토리 사이사이, 1) 절대자 가이아(지구) 시점, 2)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3) 뉴스가 이어진다. 대충 껴맞춰진 구성이 아니다. 상당히 정교하다. 예를 들어, 오로르와 오비츠 대령의 대화속에 오로르의 증조부 '파울 카메러'가 언급(p.380)되는데, 바로 다음장에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인물 '파울 카메러'를 이야기한다. 또한, '뉴스'에는 이란의 대규모 시위사태가 비중있게 다뤄지는데, 이게 바로 오비츠 대령이 연구를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이처럼 <제3인류>의 구성은 탄탄하며 놀랍고, 다양하며 입체적이다.

 

절대자 가이아(지구)의 시점부분은 <제3인류>의 커다란 특징이다. 작가는 지구에 의지를 부여하고, 살아있는 존재처럼 독백하는 가이아를 그려냈다. 가이아는 환경파괴를 일삼는 인간에 분노하며, 경고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자신의 탄생(지구의 역사)과 자기 위에서 살아가던 생명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재밌는 건, 인간 탄생을 설명하는 부분(p.306)이다. 가이아는 충돌하는 행성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존재를 찾는다. 유력한 후보로 영장류를 떠올리지만, 뇌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게 문제였다. 가이아는 한가지 묘안을 떠올린다. 영장류를 유인해 돼지와 교접시키는 거다. 가이아는 곧 지진을 일으켜 영장류와 흑맷돼지를 한곳에 가두었고, 둘은 교접하여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니, 이게 바로 인간이었다. 충격적이지 않을가?^^

 

4.

 

다비드와 오로르의 미묘한 관계 역시 <제3인류>의 매력 포인트다. 초반 등장했던 샤를 웰즈가 사라지고 나서, 다비드와 오로르는 번갈아 등장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둘은 자신의 프로젝트가 채택되길 바라는 경쟁자이지만, 호감을 느끼는 동료이기도 하다. 다비드 웰즈는 피그미를 대상으로 인류의 '소형화'를 연구하고, 오로르 카메러는 '여성화'를 통해 방사능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한다. 이들은 오비츠 대령의 권유로 '어떤 연구'에 동참하게 되는데, 과연 이들은 '소형화', '여성화'에 근접한 제3인류를 탄생시킬 수 있을까?

 

본문에는 자세히 소개하지 않았지만, 1) 피그미 전통인 '마조바 의식'을 통해 다비드가 경험한 전생체험(p.234), 2) 각기 터키와 콩고로 가 연구중이던 오로르와 다비드를 괴롭힌 엄청난 폭풍우와 식인 마냥개미, 3) 프랑스 정치권에 대한 비판과 경멸(p.106,290등), (경멸의 상징인물은 프랑스 대통령 '스타니슬라스 드루앵') 4) 가수 '더 도어스'의 음악 [디 엔드]의 상징성 등도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데뷔 20주년 기념작, <제3인류>는 그 가치에 걸맞는 작품이다. 특히, 데뷔작 <개미>와 연계해 작품을 풀어갔다는 점이 놀랍다. <제3인류>야 말로, <개미>,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등을 포괄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결정체다. 항상 내 인생의 주요지점에서 함께해줬던 그이기에, <제3인류>를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뭔가 인생의 중요한 통로를 통과한 듯한 기분이다. 

 

 

 

 

 

* 스포일러 때문에, 호모 기간티스, 호모 메타모르포시스, ㄴㅅ인류에 대한 서술은 뺐습니다. 

* 페이지는 1권의 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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