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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인류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수능이 끝나고 갈 대학이 정해졌다. 대학입학 때까지 긴 시간을 헌책방에서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당시엔 교과서가 아닌 책(소설)이 참 고팠다. 그 헌책방 골목은 주로 참고서 위주였다. 허나 일반 소설류를 취급하는 곳도 많았다. 부담 없이 쭈그리고 앉아, 책더미에 숨어서 이것저것 읽었다. 그때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와 존 그리샴의 책이다. 당시 <개미>는 예쁜 양장이 아니었고, 투박한 반양장이었다. (당시엔 양장본이 아주 드물었다.)
군대에 갔다. 일, 이등병 때는 책 읽는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상병 이후에는 시간이 좀 났다. 특히 자기 전, 당직사관 몰래 랜턴을 켜고 책을 읽었는데, 이게 정말 환상이다. 완벽하게 몰입해서 책을 읽고 싶다면, 군대에 가서 병장쯤 된 다음, 22시 이후 랜턴켜고 읽어보라ㅋㅋㅋ 아무튼, 이때 <개미> 1권을 다시 읽고, 나머지 권들을 전부 읽었다. <개미>는 군에 있을 때 읽은 모든 책 중, 단연 최고였다. 이처럼,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내 인생의 주요지점에서 나와 함께 했다. 그것도 최고로 멋진 기억으로.
2.
<제3인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선보인 기념작이다. 데뷔 20주년 기념작답게, <제3인류>에는 특별한 장치가 있다. 뭘까? ... 작가는 의도적으로 데뷔작 <개미>의 흔적을 곳곳에 뿌려두었다.
첫째, <개미>의 주인공, 에드몽 웰즈가 <제3인류>의 주인공 다비드 웰즈의 할아버지로 설정되었다. (에드몽 웰즈의 딸 '레티샤'도 다비드의 대사속에서 잠깐 등장한다.) 개미는 '소형화'의 한 상징으로 중요하게 부각되는데, 절대자 가이아(지구)는 개미를 자신의 파트너(?)로 점찍기(p.283)까지 한다. 둘째, 에드몽 웰즈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입체적 구성의 한 축으로 전면에 등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 셋째, <개미>의 주요 테마였던 '소형화, 여성화, 긴밀한 연대'가 <제3인류>에서는 보다 극적으로 다뤄진다.
3.
<제3인류>를 읽으며 감탄한 건, 현란하고도 입체적인 구성이다. 다비드 웰즈와 오르르 카메러의 메인스토리 사이사이, 1) 절대자 가이아(지구) 시점, 2)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3) 뉴스가 이어진다. 대충 껴맞춰진 구성이 아니다. 상당히 정교하다. 예를 들어, 오로르와 오비츠 대령의 대화속에 오로르의 증조부 '파울 카메러'가 언급(p.380)되는데, 바로 다음장에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인물 '파울 카메러'를 이야기한다. 또한, '뉴스'에는 이란의 대규모 시위사태가 비중있게 다뤄지는데, 이게 바로 오비츠 대령이 연구를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이처럼 <제3인류>의 구성은 탄탄하며 놀랍고, 다양하며 입체적이다.
절대자 가이아(지구)의 시점부분은 <제3인류>의 커다란 특징이다. 작가는 지구에 의지를 부여하고, 살아있는 존재처럼 독백하는 가이아를 그려냈다. 가이아는 환경파괴를 일삼는 인간에 분노하며, 경고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자신의 탄생(지구의 역사)과 자기 위에서 살아가던 생명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재밌는 건, 인간 탄생을 설명하는 부분(p.306)이다. 가이아는 충돌하는 행성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존재를 찾는다. 유력한 후보로 영장류를 떠올리지만, 뇌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게 문제였다. 가이아는 한가지 묘안을 떠올린다. 영장류를 유인해 돼지와 교접시키는 거다. 가이아는 곧 지진을 일으켜 영장류와 흑맷돼지를 한곳에 가두었고, 둘은 교접하여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니, 이게 바로 인간이었다. 충격적이지 않을가?^^
4.
다비드와 오로르의 미묘한 관계 역시 <제3인류>의 매력 포인트다. 초반 등장했던 샤를 웰즈가 사라지고 나서, 다비드와 오로르는 번갈아 등장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둘은 자신의 프로젝트가 채택되길 바라는 경쟁자이지만, 호감을 느끼는 동료이기도 하다. 다비드 웰즈는 피그미를 대상으로 인류의 '소형화'를 연구하고, 오로르 카메러는 '여성화'를 통해 방사능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한다. 이들은 오비츠 대령의 권유로 '어떤 연구'에 동참하게 되는데, 과연 이들은 '소형화', '여성화'에 근접한 제3인류를 탄생시킬 수 있을까?
본문에는 자세히 소개하지 않았지만, 1) 피그미 전통인 '마조바 의식'을 통해 다비드가 경험한 전생체험(p.234), 2) 각기 터키와 콩고로 가 연구중이던 오로르와 다비드를 괴롭힌 엄청난 폭풍우와 식인 마냥개미, 3) 프랑스 정치권에 대한 비판과 경멸(p.106,290등), (경멸의 상징인물은 프랑스 대통령 '스타니슬라스 드루앵') 4) 가수 '더 도어스'의 음악 [디 엔드]의 상징성 등도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데뷔 20주년 기념작, <제3인류>는 그 가치에 걸맞는 작품이다. 특히, 데뷔작 <개미>와 연계해 작품을 풀어갔다는 점이 놀랍다. <제3인류>야 말로, <개미>,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등을 포괄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결정체다. 항상 내 인생의 주요지점에서 함께해줬던 그이기에, <제3인류>를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뭔가 인생의 중요한 통로를 통과한 듯한 기분이다.
* 스포일러 때문에, 호모 기간티스, 호모 메타모르포시스, ㄴㅅ인류에 대한 서술은 뺐습니다.
* 페이지는 1권의 페이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