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증명 증명 시리즈 3부작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10월
품절


"저는 가족이나 친구들은 편대를 짜서 함께 날아가는 비행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비행기?"
"네 어떤 비행기가 고장 나거나 조종사가 부상을 입어 비행이 불가능해도 동료가 대신 조종해줄 수는 없죠. 옆으로 다가가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게 고작입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
"실질적으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죠. 아무리 격려하고 응원해도 고장 난 기체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고 조종사가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비행기를 날게 하는 건 온전히 자신의 몫입니다."
"거 참 삭막한 사람이구먼."
"인생은 홀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설령 기체가 고장 나도 남의 비행기를 옮겨 탈 수는 없고, 대신 조종해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350,351쪽

"어머니, 그건 제가 아끼던 모자였어요.
그날 얼마나 분했는지 몰라요.
갑자기 바람이 불었거든요.
어머니, 그때 건너편에서 젊은 약장수가 다가왔죠.
남색 각반에 토시를 낀.
제 모자를 주워주려고 무척 애를 썼죠.
하지만 도저히 주울 수 없었어요.
깊은 계곡이었고, 풀이 어깨까지 무성하게 자라 있었으니까요.
어머니, 그 모자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때 우리 곁에 피었던 말나리꽃은
벌써 저버린 지 오래겠지요.
그리고 가을에는 회색 안개가 그 언덕을 뒤덮고
그 모자 아래서는 밤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렸을지도 몰라요.
어머니, 분명 지끔쯤
오늘 밤 그 계곡에는 조용히 눈이 내리고 있겠죠.
오래전 반들반들 빛나던 그 이탈리아 밀짚모자와
그 안에 제가 쓴 Y.S.라는 머리글자를 감추듯, 조용히, 쓸쓸하게."-495,4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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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품절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 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158,159쪽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269쪽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건 어지간히 중대한 사안인 게 틀림없다, 어설피 섣부른 답장을 써서는 안 되겠다,하고 생각한 참입니다.
 늙어 망령이 난 머리를 채찍질해가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결과, 이것은 지도(地圖)가 없다는 뜻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봤습니다.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이어서)-446,447쪽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상담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難問)을 보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미야 잡화점 드림-446,4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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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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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사는 좁은 마을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외국인들을 열등하다고 단정해 버린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시나징'과 '조센징'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가?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사람들이 그런 모순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변변치 못한 머리인 것에 중학생이었던 겐토는 그만 질려 버렸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서 겐토는 일본인이 저지른 제노사이드를 알고 오싹했다. 관동 대지진 직후 '조센징이 방화를 저지르고 우물에 독을 푼다'와 같은 유언비어가 나돌자 정부와 정치가, 신문사까지 이 근거 없는 소문을 흘리면서 일본인들이 수천 명의 조선 반도 출신 사람들을 말살하도록 부추겼다. 총이나 일본도, 방망이 따위로 사람들을 가지고 놀다가 살해하는 것으로 모자라 희생자를 땅 위에 눕혀 묶어 놓고 트럭으로 치고 나가는 잔학한 행위까지 벌어졌다. 일본이 조선 반도를 무력으로 식민 지배한 것이 당시의 일본인들에게는 켕기는 구석이었던 탔에, 보복이 있을 수 있다는 공포가 오히려 흉폭함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폭력이 한계치까지 달해 조선 반도 출신의 사람으로 착각하고 일본인을 살해한 일도 많았다. (이어서)-170,171쪽

인종 차별주의자인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현장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대량 학살에 가담했을 것이다. 다른 민족에 대한 차별 감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무언가 계기가 주어지면 그들 안의 잔인한 감정이 폭발하여 살인자로 돌변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마물이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살해당한 사람들의 공포와 아픔은 어떤 것일까? 일본인의 무서움을 일본인은 알지 못한다.-170,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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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13-07-3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문단 앞에 공백이 안 먹어서, 문단 구분이 안 됨.
글자 제한 때문에 나눠서 올림. 보기 흉함. 고쳐주세요~
 
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품절


"뭐가 진짜인지는 아무도 몰라. 모든 생물이 단 하나의 길에서 가지쳐 나왔다느니 그런 건 거짓말이야. 진화법칙이니 빅뱅이니 하는 것도, 진실 같은 건 없어. 사실 같은 것도 없어. 기록된 순간부터 모든 게 거짓말이 되어버려. 사실이란 건, 그걸 본 사람이랑 시간에 따라서 얼마든지 무궁무진하게 해석될 수 있어.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고, 아무것도 없었는지도 몰라. 아주 먼 옛날에 우주인이 왔을지도 모르고, 마그마에서 인간이 태어났을지도 몰라. 올리브 잎사귀나 바다 물거품에서 생명이 태어났을지도 몰라. 문명이 몇 번이고 멸망을 되풀이 하면서 그때마다 똑같은 운명을 반복하고 있을 뿐, 지금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도 빙하 밑에 잠들어 있는 공룡이 꾸는 꿈일지도 몰라…."-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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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담
누쿠이 도쿠로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6월
품절


 달은 바로 나였다. 사쿠라 레이카는 큰 상의 후보에 올라 쏟아지는 주목을 받지만 그 실체인 고토 가즈코는 어느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미녀 작가라는 허구의 옷을 뒤집어쓴 나. 기노우치와도 남몰래 만나야 하는 나. 고토 가즈코를 똑바로 봐 주는 존재는 이 세상에 기노우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악착같이 기노우치에게 매달렸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달이 없는 새로운 달, 신월의 밤을 홀로 걷기 시작했다. 외롭지 않았다. 이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5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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