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세제곱 - 세상과 사람을 넓고 깊게 알기 위한 생각세제곱
해성 지음 / 휴앤스토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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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으로만 구성된 인문서를 접하기는 쉽지 않다. 재미와 지식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면 더더욱. 대화로만 이루어진 아멜리 노통브의 <시간의 옷>을 읽으며 느꼈던 충격을 수십년만에 다시금 느꼈다.

<생각3(생각세제곱)>은 3단계의 생각수준을 상정하고 '생각에 관한 생각을 다시 생각하는 것'을 생각세제곱이라 칭한다.(p.4) 교육, 종교, 평등 처럼 어려운 주제도, 작가의 학창시절이나 직장(검찰)생활 에피소드 같이 흥미진진한 소재도 작가의 생각 제곱, 또한번의 제곱을 거쳐 음미된 후 유려하게 풀어내진다.

작가(소장)가 펼쳐내는 이야기는 인문학의 전반을 꿰뚫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것으로 깊이가 있고,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하여 신뢰감을 더해준다. (예시는 박스처리되어 가독성이 있고, 그 자체만으로 재미있다 p.30, p.69, p.102, p.113, p.130, 134, 161 등) 파트 1에서는 속담과 고사성어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재미있게 풀어낸 에피소드10, 동서양의 고사성어 이야기 에피소드11, 백면서생 고사성어로 역량과 기량차이를 논하는 에피소드12가 흥미진진했다.

파트 1이 시카고 대학 벤저민 블름의 '교육목표의 위계' 지식->이해->적용-> 분석-> 종합-> 평가(p.39)를 대전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파트 2를 자유주제로 이어지는데, 파트 2에서는 일단 작가의 학창 시절을 이야기한 에피소드 16이 재미있었다. 남의 논에다 스키장을 직접 만든(p.165) 클라스^^ 역시 대단하다. 한번도 듣지 못했던 작가의 학창 시절 이야기라 미소지으며 작가의 유년시절을 함께 느껴보았다. 직장(검찰) 생활 에피소드인 에피소드 17로 흥미진진 그 자체였다. 직접 직원들을 인솔하여 벌금미납자 검거활동을 진두지휘한 속 뜻, 기록관리과 직원들에게 건넨 엄청난 명문의 시(p.181) 작가의 훌륭한 면모에 다시한번 감탄.

초반에 아멜리 노통브가 언급된 김에 더 말을 하자면, 이 책의 '소장' 캐릭터는 아멜리 노통브<살인자의 건강법>의 프레텍스타 타슈의 재림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타슈의 괴팍함을 덜어내고,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인간미를 추가한다면, 상당히 유사하다. 물론 ⓐ대화를 압도하는 강한 카리스마, ⓑ방대한 지식, ⓒ감히 대적할 자가 없는 말빨은 <생각세제곱>의 소장이 한수 위^^ (단, <생각세제곱>의 '소장' 캐릭터가 너무 일반명사처럼 된 점에 대한 아쉬움은 후술)

이 책을 통해 평소 깊게 생각하지 않던 다양한 주제를 문답형식으로 편안하고 흥미진진하게 접할 수 있었다. 다양한 에피소드와 작가 본인의 학창시절, 직장생활 이야기까지 포함시켜 딱딱함을 덜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점도, 다른 책들과 비교되는 큰 장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읽는 것보다 에피소드별로 천천히 음미해가며 읽는 것을 추천한다. (단, 재미있기에 한번 손에 잡으면 기본 4~5 에피소드는 읽어나가게 될 것이다^^)



* 해 본 생각

1. 팀장과 소장간 문답이 오가며 이야기를 펼쳐가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나, 동시에 자칫 일률적인 흐름에 지겨움을 느낄 수도 있다. 팀장, 소장만을 문답의 당사자로 등장시키지 말고, 중간중간 여직원 S를 등장시켜 문답에 여성의 감성을 가미시킨다던지, 여성만이 질문할 수 있는 점을 추가한다던지, 때때로 팀장, 소장, 여직원 3자간 문답을 구성한다면, 단조로움이 덜해지고 입체적인 구성이 가능할 거 같다. (여성독자의 호응도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2. 사소한 문제이나, '팀장'과 '소장'이 유사하여 자칫 읽는 도중 혼동이 올 수 있다. 100페이지 이후에는 괜찮으나 초반 상당히 혼란스웠다. 여기에서 좀 더 확장하여, '소장'은 단순한 '소장'으로 불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페르소나인 '소장'을 일반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 강조하여 <작업론> 등 작가의 다른 작품을 아우르는 대표 인물로 그려낸다면 어떨까? 아멜리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하면 '프레텍스타 타슈 선생'이 떠오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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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뇌, 우울한 뇌 - 최신 심리학이 밝혀낸 낙관과 비관의 비밀
일레인 폭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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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즐거운 뇌, 우울한 뇌>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의 특징, 장단점 등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뇌나 유전자같은 과학적 차원에서 체계화를 시도한 책이다. 즉, 제목 '즐거운 뇌, 우울한 뇌'는 뇌와의 연관성 차원에서 표현한 낙관주의, 비관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머리말에서 두 형제의 사례를 소개(p.11)하며 시선을 사로 잡는다. 연년생 형제인 대니얼과 조이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대니얼은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며, 적극적으로 기회를 찾아 나섰다. 반면, 조이는 신중하고, 조심성이 있었으며 실패를 두려워 해 모험을 절대 하지 않았다. 과연 이들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대니얼은 수없는 실패를 거쳐 억만장자가 되었고, 조이는 학교교사로 대출금을 갚는데 신경쓰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저자가 이 사례를 소개한 이유는, 도입부의 흥미유발, 서로 다른 인생관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절대 '인생한방!'식의 모험적인 태도가 좋다는 건 아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인생관이 다르다.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인생관을 측정하고 정량화할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노력(p.25)했는데, 첫 단계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의 용례를 분석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단계는 뇌가 좋은 일과 나쁜 일에 반응하는 양상을 살펴보는 거였다. 이제부터 슬슬 <즐거운 뇌, 우울한 뇌>의 최대 장점인 흥미진진한 사례가 쏟아져 나온다.

 

저자는 '믿음은 정말로 우리의 몸에 물리적 변화를 일으키는가?'(p.54)라고 문제제기하고, 밴스 밴더스의 극적인 사례(p.55)를 소개한다. 밴스는 동네 주술사와 말다툼을 벌였고, 주술사는 밴스에게 저주를 건다. "네게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의사도 너를 구하지 못하리라" 이후, 밴스는 큰 충격을 받아 몇 주째 앓아누웠다. 음식을 먹지 못해 거의 죽을 지경이 됐고, 검사를 해봐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고민하던 담당의사 도허티는 한가지 꾀를 낸다. 심리치료 차원에서 쇼를 벌이기로 한 거다. 도허티는 밴스에게 주술사의 저주로 도마뱀이 위장에서 기어 다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는 "도마뱀을 없애야 합니다!"라며 구토제를 주사한다. 밴스가 구토를 시작하자 도허티는 몰래 도마뱀 모형을 꺼낸다. "밴스 씨, 이것 봐요. 당신 몸에서 나온 겁니다! 이제 치료가 되었어요. 부두교의 저주가 풀렸어요!" 놀랍게도 이후, 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났다. 이어, 플라시보 효과와 노시보 효과와 관련된 다른 사례들도 소개된다.

 

낙관주의는 기대수명까지 연장시킨다고 한다. 저자는 수녀사례(p.94)를 통해 과학적으로 이를 설명한다. 즉, 낙관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정서를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사용해서(확장과 수립 이론) 보다 더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게 된다는 거다. 이어, 발명왕 에디슨(p.96), 화장품 산업의 선구자 마담 워커(p.98),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조스(p.101) 등 낙관주의자들의 재미있는 사례가 이어진다. 특히, 자신의 공장에 난 화재를 친구들과 함께 구경한 에디슨 이야기는, 어릴 때 위인전에서 본 기억이 있어 느낌이 색달랐다.

 

과학계의 최신 이론도 많이 소개된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후성유전학(p.172)이다. 후성유전학은 살면서 겪는 사소한 일에 따라 유전자가 작동하는 방식이 변한다는 이론이다. 놀라운 건, DNA서열 자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다음 세대에 전달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방의학 전문가 비그렌의 연구가 소개된다. 비그렌은 어느 소도시에 살던 주민을 무작위 추출하여 연구했는데, 한겨울 기근을 견디고 다음 해에 폭식한 소년들의 수명이 훨씬 짧았으며, 놀랍게도 그들의 자식과 손자들까지 수명이 짧았다고 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문답으로 쐐기를 박는다. [나의 증조할머니의 고지방 식단이 나를 뚱뚱하게 만들 수 있을까?](p.175) [그렇다로 굳어지고 있다.]

 

<즐거운 뇌, 우울한 뇌>는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무절제한 낙관주의 문제점(p.61)과 비관주의의 역할도 빠트리지 않는다. 또한, 우울한 뇌가 즐거운 뇌로 변화할 가능성(p.198이하)까지 제시한다. 최신 연구와 다양한 사례가 가득하기에, 읽는 재미가 있었고 저자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었다. <설득의 심리학>이후 가장 푹 빠져서 읽은 심리학, 과학분야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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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크라트 -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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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루토크라트(Plutocrat)]는 그리스어로 '부'를 의미하는 pluto'권력'을 의미하는 kratos로 이루어진 합성어로 [부와 권력을 다 가진 부유층]을 뜻한다. (앞날개 참조)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플루토크라트>는 플루토크라트에 대한 비판보다, 플루토크라트가 탄생한 과정, 이들의 특징, 다양한 인물소개가 핵심인 책이다. (특히, p.82이하에는 '자수성가'라는 키워드에 포커스를 맞춰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기도.) 부의 편향, 양극화를 날카롭게 비판해주길 기대했다면, 무딘 비판이 아쉬웠을 거다.

 

단, 약간 다른 관점에서 인상적인 비판이 있다. 최상층(플루토크라트)에서 여성들이 소외당하는 현상.(p.140)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여성의 사회참여가 점점 더 활발해지는 세상의 흐름에 역행한다고 놀라워 한다.

 

그럼 왜 여성들은 플루토크라트에서 소외당할까? 원인으로 두 가지가 언급되는데, 첫째, 직업 선택과 관련된 원인. 고소득 직종인 금융, 경영 분야에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적극적으로 진출한다는 것. 둘째, 여성들에게 부족한 면이 있을 거라 믿는 사회적 편견. 사모펀드 억만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킬러 본능이 없습니다. 싸우려 들지 않고, 상대의 급소를 공략하지도 않죠."(p.143) 뭔가 중요한 게 부족하다는 거다. 더군다나, 상류층 여성들의 이기심으로 취급되기에, 이 문제가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 점도 지적한다.

 

<플루토크라트>엔, 전 세계 플루토크라트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들이 플루토크라트가 된 과정은 억만장자들의 성공담, 성공철학으로 읽을 수 있기에 자체로 흥미진진했다. 소개하고 싶은 인물은 세계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 자포스 설립자 '토니 셰이'다.

 

[조지 소로스] 소로스는 '혁명적인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아버지에게 배웠다(p.239)고 말한다. 나치 대학살로부터 피해 다녀야 했던 시절, 독일군이 쳐들어온다. 다른 사람들은 고향에서의 삶을 버리지 못하고 피난을 망설였지만, 소로스의 아버지 티바다르는 달랐다. 아내와 장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족들을 즉각 대피시켰고,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소로스는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때로 적극적인 도전이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 저는 그렇게 살았고, 그리고 일부는 경험으로, 다른 일부는 공부로 그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아버지의 가르침으로부터 예외적인 상황에서 일반적인 법칙을 따르다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법칙들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 때로는 행동하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p.239)

 

[토니 셰이] 자포스는 콜센터로 '온라인 유통기업은 전화로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이 거래 쌍방에게 감정적으로 즐거운 경험을 가져다준다'(p.349)는 신념을 기반으로 한다. 자포스는 전형적인 미국 기업의 모습에서 탈피하고자 튀는 행동을 하는 직원을 적극적으로 격려한다. 예를 들어, 방문객이 지나갈 때, 타이밍에 맞춰 음악을 틀고 역기를 흔들어 댄다거나, 업무 중에도 금발 가발이나 모피 목도리를 걸치고 있는 거다. 셰이의 이런 전략은 큰 성공을 거뒀고, 아마존은 자포스를 12억 달러에 지분인수 한다. 마흔이 되기도 전에 억만장자가 된 것.

 

셰이는 엄격한 대만출신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엄격한 교육에는 저항한 반항아였는데, 바이올린 연습을 열심히 하는 척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연주 테이프를 틀어놓고 놀았다(p.355)고 한다. 이런 자유분방함이 자포스의 바탕이 된 것은 아닐지.

 

<플루토크라트>를 통해 상위 0.1% 플루토크라트들의 면면을 살필 수 있었다. 비판보단 플루토크라트의 본질을 파헤쳤기에 객관성, 중립성을 확보했다. 이 책을 통해 플루토크라트를 꿈꿀 수도 있고, 플루토크라트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울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비판도 상대를 잘 알아야 가능한 것 아닌가? 자, 이제 플루토크라트의 모든 것을 파헤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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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탐정들
정명섭.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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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녁 먹기 전 한 꼭지만 읽으려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중간에서 멈출 수 없었다. 조선시대에 CSI마냥 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결국, 저녁은 9시쯤에야 먹을 수 있었다.

 

2.

 

<조선의 명탐정들>은 냉철하고 과학적인 추리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낸, 조선의 탐정 이야기다. 탐정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탐정'이었던 건 아니고, 오늘날 탐정처럼 사건을 해결했다는 의미에서의 탐정이다. 그래서, 세종대왕, 정조, 연산군이나 하급관리였던 선비들도 명탐정으로 등장한다. 얼마 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TV프로그램 [별순검]은 조선 말기(거의 일제강점기 직전) 이야기이며, '별순검'이란 특정 집단의 활약상이었던 데 반해, <조선의 명탐정들>은 조선시대를 총망라하고 있고, 훨씬 다양한 인물들, 훨씬 다양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별순검]에 환호했던 분이라면, <조선의 명탐정들>에는 거의 찬양, 경배를 바치지 않을까?

 

3.

 

13개의 챕터로 되어 있고, 인물로는 16명의 명탐정이 등장한다. 전부 재미있었지만, 소개하고 싶은 건, 조선 최고의 명탐정 '정약용'의 활약상이다. 정약용은 곡산 부사나 형조참의의 직에서 여러 사건을 해결(p.202)했는데, 이런 기록을 [흠흠신서]에 남겨두었다. 실학자답게 과학적으로 사건을 해결했던 그는, 역시 조선 최고의 명탐정이었다. 한 사례를 보자.

 

한 여성(안 소사)이 어떤 남자(민성주)를 잔인하게 살해하고는, 관아로 찾아간다. "제 남편(최주변)이 민성주의 칼에 찔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원수를 갚고자 민성주를 죽이고 자수하러 왔습니다."(p.206 일부수정) 효와 충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조선이었기에, 안 소사를 도리어 남편의 원수를 갚은 열녀라 칭하고 석방(p.207)한다.

 

하지만, 정약용은 의문을 품는다. 1) 안 소사는 자신의 남편이 민성주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주장하나, 민성주가 최주변에게 입힌 상처는 둘이 장난치다 생긴 것으로 아주 경미한 것이었다는 점. 2) 안 소사는 남편이 민성주에게 여러 군데 찔려서 사망했다고 했지만, 최주변의 상처는 크기와 아문 상태가 모두 다른 것으로 한번에 난 상처가 아닌 점. 3) 남편이 한 달동안 시름시름 앓았다고 주장했던, 안 소사의 말이 사실이 아니었고, 당사자인 최주변이 민성주를 고발하고나 죄를 묻지 않은 점 등. 의심스러운 게 한둘이 아니었다. 결국, 명탐정 정약용은 사건의 숨겨진 충격적 진실을 밝혀내는데...

 

4.

 

조선시대 활용되었던 수사기법들도 인상적이었다. 그 중, 독살 여부를 판명하는 방법(p.121)을 보자. 1) 조각수(쥐엄나무를 끓여서 우려낸 물)로 씻어낸 은비녀를 입 안에 넣고 종이로 막은 다음, 꺼내서 변색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청흑색으로 변하면 독살이 의심되었다. 2) 흰 밥을 피살자의 입 안에 넣고 종이로 막았다가, 몇 시간 후에 빼서 닭에게 먹인다. 닭이 밥을 먹고 죽으면 독살로 봤다. 또한, 독이 몸 안으로 들어갔을 경우를 대비, 항문도 같은 방법으로 검사했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 시체검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p.240)도 있다. 기본적으로 피살자의 시신은 조사관을 바꿔서 세 차례에 걸쳐 조사를 진행(p.223)했다고 한다. 거기다 사체의 외상을 꼼꼼히 확인하여, 칼에 찔리거나 멍든 흔적이 있으면 자로 상처의 크기와 넓이를 쟀고, 대꼬챙이를 이용해서 상처의 깊이도 쟀다. 이런 기록들은 전부 그림과 함께 꼼꼼히 기록되었다.

 

5.

 

각 챕터 끝부분에는 조선 명탐정과 비슷한 활약을 했던, 서양 추리소설 속 탐정 이야기가 나온다. 예를 들어, '이의형처럼 가족들 간의 은밀한 비밀을 파헤친 탐정은?'이라 문제제기하고, 로스 맥도널드가 탄생시킨 '루 아처'를 소개하는 식이다. 추리소설의 간략한 서평으로 읽을 수도 있고, 탐정 캐릭터 분석으로도 볼 수 있다. 몰랐던 탐정들도 있고, 상당히 괜찮았다.

 

또한, 삽화와 기발한 표지도 훌륭하다. 삽화는 위에서 이야기한 서양 추리소설 속 탐정 이야기에 실려 있는데, 주로 서양 탐정과 조선 탐정을 대비해 그렸다. 짙은 자주색과 검정색의 조합이 좋고 선이 강렬하다. <조선의 명탐정들>의 표지는 근래 본 표지 중 가장 기발하고 독창적이었다. 멀리서 보면, 정말 신문 1면을 접어둔 것처럼 보인다. 작품의 품격을 한 차원 높여준 부분.

 

6.

 

저녁밥도 잊고, 미친듯이 읽은 책이라 쉽게, '너무 재미있다'라고 말하기 꺼려진다. 뭔가 그 이상의 표현을 하고 싶다. 역사 속 숨겨진 사건사고과 명탐정의 활약상을 발굴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선보인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유명 작가의 신간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관심이 가져야 할 책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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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 - 정치적 암투 속에 피어난 형제애
이종호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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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책이 나오자마자 썼던 리뷰인데, '어떤 사정상' 올리지 못했습니다.

묵히기 아까워 수정없이 그대로 올립니다.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은 경종과 영조의 형제애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갈등관계, 왕위쟁탈 같이 기존에 널리 알려진 것과는 정반대의 관점이다. 나아가 18c 탕평정치의 씨앗을 두 왕의 우애에서 찾기까지 한다. 아주 좋다. 색다른 관점에서의 역사 다시보기. 하지만 문제는 저자가 초점을 맞춘 둘의 형제애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형제애의 증거라고 내세우는 논거는 미미하며 이해할 수도 없다. (후술) 이 책에서 색다른 관점에 걸맞는 '새로운 뭔가'를 찾긴 어려웠다. 기존의 논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는 것은 없고 독특한 관점에서 이야기할 뿐이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장황하고, 막연한 추측성 서술이 많다. 다시말해 저자의 주장이나 논거가 설득력이 떨어진다.

 

 

1) 막연한 추측성 서술

어차피 역사는 사료를 바탕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지만, 저자의 추론은 다소 뜬금없다. 역사적 사실이 숨겨 있는 정치적 이해를 완전히 배제하고 해석한 것(~다고 생각되는)도 있고, 경종과 영조의 우애라는 대주제에 집착한 나머지 무리한 해석을 하기도 한다. 물론 저자는 수많은 사료를 검토하고 연구한 끝에 내린 결론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제시해 독자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다. 논문이라면 몰라도 이건 전 국민이 보는 대중역사서다. 

- p.34 첫째문단. " (전략) 허나, 평소 자신과 아들 금에게 쏟아준 왕후의 은혜를 잊을 수 없는 숙빈 최씨로서는 가만있을 수 없었다. 장씨에 대한 두려움보다 돌아간 왕후에 대한 슬픔이 그녀의 가슴을 더욱 뒤흔들었다. 결국 그녀는 왕을 찾아뵙고 눈물을 흘리며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에 이른다."

이것만 보면, 마치 숙빈 최씨가 고결한 충의지사 같다. 물론 인현왕후와 숙빈 최씨는 사이가 아주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인현왕후의 은혜를 잊지 못했기 때문에 일러바쳤다'란 해석은 너무 단순하다. 저자는 숙빈 최씨가 일러 바침으로써 얻게 되는 이해득실은 따져 보지 않는다. 무수리였다 신분상승한 숙빈 최씨를 가로막는 건, 희빈 장씨와 세자였다. 만일 윤이 그대로 왕위를 계승한다면 금과 최씨는 말그대로 바람 앞의 촛불 신세다. 반대로 장씨가 제거된다면 세자 윤의 입지는 흔들리고 금과 최씨가 운신할 폭은 확대된다. 한마디로 숙빈 최씨의 행동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었다. 이를 배제하고 은혜만을 언급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 p.52 둘째문단. "문제는 어떤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도 윤은 길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뢰는 신하들의 말이 좋다 싶으면 그대로 하라 했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거부하는 게 고작이었다. (중략) 실어증으로 인한 말에의 두려움(-이 표현은 정말 심하다고 생각한다.)을 그는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 된 사안에 대하여 그의 두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핵심 또한 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말을 별로 하지 않으니 신하들로서는 답답할 때가 많았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 저자는 경종이 '실어증'을 앓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다. 저자가 내세우는 논거는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으로 인한 충격, 실록의 몇몇 기록들이다. 물론, '경종이 지나치게 침묵을 지키고 문답중에 간혹 분명치 못한바가 있다'고 실록에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실어증'이라고 하는건 지나치다. 당시 경종을 둘러싼 역학관계를 보면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경종은 숙종과 노론신하들이 시퍼렇게 '감시'하는 틈에 대리청정을 했고, 즉위후에도 노론의 엄청난 압박을 받았다. 그런 그가 말을 많이 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가 할말 다하고 자기 주관대로 했다면 숙종이 살아 있을 때는 왕위를 넘본다며 쫒겨나고 노론에겐 비난의 빌미만을 줬을 것이다. 그는 실어증이 아니었다. 다만 할 수 없었을 뿐이다. 실어증이라면, 노론을 몰아붙이며 보여줬던 그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마디로 경종이 말을 적게 한 것은 실어증이 아니라, 몸조심에 몸조심을 한 경종의 생존법이었다. 

- p.132 둘째문단. " (전략) 그의 말대로 잠시 물러나 있다가 몸이 회복되면 얼마든지 왕으로 복귀할 수도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경종은 물러났다 다시 복귀할 수 있었을까? 회의적이다. 당시 노론은 경종을 왕위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정말 갖은 노력을 다했다. 만약 경종이 물러나면 금이 왕위를 계승하고 게임은 끝이다. 설사 그것이 요양을 위해 일시적으로 물러난 것이라 해도 말이다. 이미 왕위에 있는 왕조차 저렇게 핍박하는데, 물러난 왕이야 상대가 되겠는가?


2) 저자가 말하는 형제애의 실체

경종과 영조의 각별한 관계, 우애라며 저자가 드는 논거는 크게 둘이다. 첫째, 목호룡 고변등 긴박했던 정치상황에서 경종은 영조를 적극 보호했다. 둘째, 영조 즉위이후 경종에 대한 애틋함을 많이 내보였다. 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 저자는 둘의 형제애에 집착한 나머지, 배후에 깔린 정치적 의도를 간과했다.

- 노론 핵심인사와 연잉군 금이 경종을 시해하려 했다고 목호룡이 고발한 것이 목호룡의 고변이다. 노론을 제거하기 위한 소론의 음모(혹은 과장)라고 보여지고, 개인적 생각으론 경종의 배후지원, 적어도 암묵적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사건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경종은 왜 연잉군을 보호했을까?

목호룡의 고변은 자체로 소수세력이었던 경종과 소론에겐 과감한 도전이었다. 그렇기에 더 나아가 연잉군까지 제거할 수는 없었다. 세자였던 연잉군까지 죽일 경우(혹은 유배) 불어칠 엄청난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차근차근 지지세력을 키워가던 경종의 스타일을 볼 때, 이런 해석이 타당해 보인다. 노론 인사의 처벌만으로 연잉군에겐 충분한 경고가 되었으리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 영조가 즉위이후, 경종에 대해 보인 특별한 반응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영조는 집권내내 경종 시해의혹을 받았다. 심지어 이인좌는 경종의 복수를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놀라운 건 이들이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는 것. 영조에 대한 민심이 어떠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영조가 경종에게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뭘까?


3) 경종은 독살 되었다.

저자는 경종 독살설이 근거 없다(p.208)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일련의 반론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논거가 미약하다.

- p.211 중간 "당시에 그렇게 할 긴급한 이유가 금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자 지위를 윤이 적극 지지, 보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금이 시간을 다투어가며 윤을 시해할 이유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윤의 평소 건강 상태로 볼 때, 그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은 충분히 예견된 상황이 아니었던가."

전혀 아니다. 저자는 경종이 연잉군의 세자 지위를 적극 지지, 보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위에서 살펴 봤듯이 경종의 태도는 정치적 고려가 깔려 있었고 연잉군 역시 이를 모를리 없었다. 또한 저자는 왜 노론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가? 혹여 연잉군에게 급박함이 없더라고 노론이 급박했다면 독살을 사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저자는 경종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은 충분히 예견 되었다고 한다. 어떤 논거로 저런 주장을 하는 건가? 경종이 급사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어떤 질병이 있었고 얼마나 상태가 안 좋았다는 건가? 또한 게장를 둘러싼 의혹을 반박하는 p.212는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 하다.

- p.219 "(전략) 그러니 형 윤의 위급함을 당해 그가 인삼과 부자를 올리도록 한 것에는 전혀 악의가 있을 수 없다."

p.219의 모든 서술은 내 생각과는 반대다. 모든 걸 떠나, 객관적으로 당시 상황을 보자. 어의를 꾸짖어가며 취한 연잉군의 행동은 의혹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하다. 저자는 형에 대한 애정으로 해석하고, 독살설은 허무맹랑하다고 한다. 나 역시 허무맹랑하다. 전혀 악의가 있을 수 없다니...


* 미처 정리하지 못했지만, 저자의 견해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부분들 & 지적할 부분들

p.35,36 전체적으로 장황.
p.49 추측성 서술
p.52 아래에서 9, p.53 위에서 3. 추측성 서술
p.55 아래 3. 그렇다면 과연 저자의 입장은 무엇인가?
p.93 마지막 과연 그랬을까? 이상적이라 생각함
p.106 둘째 문단. 추측성 서술
p.107 위에서 4. 완벽히 신뢰?
p.118 첫째 문단. 도대체 우애측면에서 뭘 살펴 봤다는 건가? 답답하다.
p.168 위에서 5. 경박한 인물? 당연히 금은 요망하다고 말했을 거다.
p.177 위에서 7,8 조금 재미있는 서술이라 생각한다.
p.200 위에서 6 앞 서술과는 모순
p.201 마지막 문단. 거의 드라마
p.202 위4 천만에. 쉬고 싶은 마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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