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이혜경 지음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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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산지 한달반 정도 지났다. 대학복학이다 뭐다 아직까지 읽지못하다 몇일전에야 손에 잡았다. 처음 이혜경이란 작가를 접한건 군에 있을때 어떤 문학상수상집을 통해서였는데,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그냥 차분한 글이 호감이 가는 정도였다.

<틈새>의 마지막장을 넘기고, 이혜경 작가의 글은 처음 읽을때보단 다음이, 또 그 다음이 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란한 말로 독자를 현혹하려 한다거나, 쓸데없는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침착하게 자기 할 말을 한다. 이점이 마음에 든다.

첫 단편은 [물 한모금]이다. 이 소설은 한국내 불법체류자가 주인공이며, 화자란 점에서 내게 놀라움은 안겨줬다. '불법체류자들의 시각으로 쓴 소설을 과연 어떠할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화자는 아밀. 그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그의 동료이자 친구인 샤프의 체포소식을 전한다. 샤프와 함께 한국에 건너온 일들을 회상하는 아밀...

이 소설을 읽으며, 불법체류자인 그들의 일상과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느꼈다. 그들이 다른것이라고는 국적과 생김새가 다른다는 것일뿐이었다. 그들의 삶은 우리형 누님들이 1960년대 70년대 독일이나 미국에서 겪었던 삶의 다름 아니고, 또 오늘의 우리삶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똑같이 사랑을 느끼고 허무감을 느끼고, 살아간다.

난 '물 한모금'이라는 제목 역시 저러한 관점에서 이해 하고자 하였다. '아밀, 인생은 소가 물 한모금 마시는 시간만큼밖에 안된단다. 딱 그 만큼이란다.'(p.19)라는 아밀의 할머니의 저 말은 인생의 무상성과 돈을 벌기위해 발버둥치고, 국적이 다른다는 이유로 배타시하는 사회를 대조하고, 은근한 비판의식을 표출하고 있는건 아닐지. 그들의 한마디. '난 작은 도마뱀보다 무력하고 무해한 인간이랍니다. 그저 당신네 땅에서 잠시 숨쉬는 것 뿐이에요. (p.21)

[틈새] 표제작인 틈새는 인상적이었다. 전자제품 수리기사인 그는 친구인 영석의 집 냉장고를 수리하러 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석은 전교1등을 도맡아하던 친구로 육사에 들어갔다 보증빛으로 조기전역한 친구다. 그는 이야기한다. '짐작은 했지만, 그다지 여유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게 한눈에 드러나는 살림이었다. 쌔뜻한 가구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누추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그녀의 살림솜씨 덕분일 것이다' (p.112)

어느날 갑자기 일을 하겠다는 그의 부인. 집에서 살림만하는 여자들의 권태가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친구인 현태에세 들었던 그는 무시하려 하지만, 지하노래방을 혼자 드나드는 아내의 권태는 끝이 없다, 결국 아내는 그에게 말한다. '이혼해요. 나 이혼할거에요. 그러잖아도 당신에게 말하려 했어요.'(p.127) 말할 수 없는 충격. 그는 삶의 의욕을 잃고 살아할 이유,죽어야 할 이유를 끄적인다. 농약을 구하려는 그. 그에게 삶이란 무었인가?

<틈새>는 삶의 권태와 상실, 일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균적인 소시민인 '그'를 통해 평균인들의 삶과 권태를 살펴본다. 근래 자극적인 소재의 극적인 책을 주로 읽었던 내겐 오히려 저점이 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무문제없어 보이던 아내와의 관계는 조금씩 틈새가 벌어지고 있었으며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지나간 시절과 지금의 아득한 틈새역시 메울 수 없다. 이런 우리의 상실감과 고뇌를 효과적으로 전달한 수작이다.

이 리뷰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일곱편의 단편들도 대단하다. 특히 이수문학상 수상작인 피아간(이 작품을 통해 이혜경이란 작가를 알게 되었음)과, 미발표작이었던 '섬'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혜경이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선보여주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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