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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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김연수 작가의 책을 읽었다. 역시 김연수였다.

소설 속에 담긴 시가 이렇게 강한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놀랐고

소설 전체가 하나의 서사시 같이 아름다웠다.




아래는 메모를 위한 끄적임


 * [제2부 지은]의 시점이 어색해서 "이건 뭐지, 왜 이렇게 쓰셨지" 의아했는데, 화자가 ㅇㅇㅇ인 점을 고려하면 작가님의 깊은 뜻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제2부 시점의 어색함은 내겐 아쉬움으로 남는다. 차라리, 1984년 지은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 문장하나하나가 시같고 소설은 아릅답지만, 등장인물이 뭔가 그림 속 인물들 같이 느껴졌다. 제1부에서 생생했던 인물들은 제2부 이하에서는 박제되어 버렸다. 제2부의 도전적인 시점을 생각하면, 더 과감한 多시점은 어려웠을까? 84년 지은의 시점으로 생생한 지은의 모습이 그려지던지, 앤의 시점으로 동양 여자아이를 입양하고 행복해 했던 모습, 카밀라의 어린시절을 그려졌으면, 더 나아가 타워크레인에 올라가야 했던 지은의 아버지의 시점도 있었으면 하는 욕심. 아버지의 고뇌, 가족간 유대감이 더 부각될 수 있고, 마지막 장면의 감흥이 배가 될 수 있었을텐데.


 * 기록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작가는 A를 소개해야 할 때, 한번에 이야기하지 않고 짐짓 모른체를 하다 슬쩍 A의 1/3만, 또 한참 뒤에 다른 인물들의 대화속에서 1/3만, 또 나머지는 1/3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듯 혹은 관심이 없다는 듯 하다 우연히(을 가장하여) 이야기하는데, 이 노련함이 놀라웠다. 이름이 붙어있는 소설작법 중 하나일까? 잘 모르겠다


 * 제목 별로임. 해당 문장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제목으론 어울리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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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별일 없이 산다 탐 청소년 문학 11
강미 외 지음 / 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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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어릴 때 읽었던 책들이 더 재미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특히 방귀봉씨가 주인공인 '별난' 시리즈(별난 가족, 별난 국민학교 등등)는 지금 생각해도 명작중의 명작. 최영재 선생님은 잘 계시는지. 아, 신동일 선생님의 <요술친구 깨묵이의 별난 모험>도 여러번 읽은 책이다. 청소년 소설집을 읽으니 갑자기 어릴 때 생각이 난다.

 

<우리는 별일 없이 산다>는 일곱 작가의 단편이 실린 청소년 소설집이다. 빼어난 작품, 별로인 작품을 구분짓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일곱 작품 모두 작품성이 뛰어나다. 그래도 좀 더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다. [오시비엥침], [나우]는 '청소년 문학을 가볍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한방을 날리는 작품이다. 재미도 있고 주제의식도 또렷하다. [유자마들렌]이나 [팩트와 판타지]는 약간 전형적인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학교를 배경으로 학생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점이 좋았다. 각 작품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오시비엥침] 일단, 이 아리까리한 제목부터. 오시비엥침은 아우슈비츠의 폴란드식 명칭(p.20)이다. 아우슈비츠는 독일이 마음대로 지어 부른거란다. 주인공은 선영, 정은, 찬으로, '여행학교'란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여행학교는 학기 단위로 세계를 여행한다. 지금 이들이 있는 곳은 독일. 여행학교의 취지에 무색하게 선영, 정은, 찬은 사사건건 대립하고 갈등은 고조되는데...과연 이들은 조화될 수 있을까?

 

[유자마들렌] 싱글맘인 엄마와 사는 여고생 지수의 이야기다. 담임 자이구루를 비롯, 재미있는 학교생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실업계지만 꿈을 향해 노력하는 아이들의 모습(제과제빵, 바리스타 수업 등등)이 대견하고, 원빈이와의 풋사랑도 웃음 짓게 한다. 아, 엄마와 지수의 밀당하는 듯한, 모녀관계도 포인트.

 

[팩트와 판타지] 유자마들렌과 이 작품은 배경이 학교라 좀 더 몰입도가 좋았다. (학원물 좋아함ㅋ) 수업시간에도 만화작업을 하는 당당하고 시니컬한 주인공과, 예쁘지만 약간 수동적인, 구미호(별명) 미호의 캐릭터가 인상적인 작품. (미호같은 여자가 남자들의 로망인데, 이야기 속에서도 미호는 남자아이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는다. 다만, 순진한 미호는 이를 모름ㅋ)

 

[두드ing] 드러머를 꿈꾸는 나현제의 이야기. 엄마와 선생님은 수능과 공부만을 강요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시간을 쪼개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담임의 대사에선 정말로 고등학교 때가 떠올랐음. 현제의 아빠는 회사 퇴직하고 트럭 야채장사를 시작하는데, 그나마 현제를 이해해 주는 인물이다.

 

[나우] 일단, 제목부터. '나우'는 주인공의 닉네임 비슷한 거다. 청소년 활동가 조직 '나비청'에 소속된 나우, 클로이, 버믈릭 등이,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반대서명을 받는 이야기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일 수 있지만, 굉장히 흥미롭게 풀어냈다. 작가의 분신인 듯한 나우와 커밍아웃한 클로이의 우정(혹은 사랑?)도 풋풋함.

 

[내 사랑은 에이뿔] 열성적으로 연예인 팬클럽 활동을 하는 다빈이가 주인공이다. 다빈이의 동생은 예쁜 외모를 가졌으면 현직 아역배우인 소빈이. 사생팬의 일상생활과 엄마와의 갈등, 다빈과 소빈의 대조 등이 재미있다. 다만, 약간 가벼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

 

[영재는 영재다] 다친 아버지를 대신해, 이사짐센터 알바하는 영재의 이야기.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해야 한다는 것과 학업에 열중해야 한다는 딜레마 사이에서, 듬직하게 묵묵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는 영재의 모습이 기특했다. 담임은 열성적인, 무엇보다 성적을 중시하는 인물인데, 그런 그마저도 영재의 듬직함 앞에 두 손을 든다. 과연 학교성적만이 전부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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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은 맛있다
강지영 지음 / 네오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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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습니다.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다, 제목마저 '가벼워' 걱정이 앞섰다. '그저 그런 연애소설이 아닐까? 제목이 왠지 사랑이야기 같은데?' 하지만, 머지않아 알게 됐다. 저런 의심 자체가 얼마나 큰 실례였는지를. <하품은 맛있다>을 읽으며, 1년 365일 내내 맨밥에 김치만 먹다가, 갑자기 1등급 한우에 고급뷔페를 먹는 듯한 행복함을 느꼈다. 미스터리 바탕에, SF적인 설정이 있고, '다운'의 가족사엔 막장드라마가 있으며, 연습생과 스캔들, 오원춘 같은 인간사냥꾼도 등장한다. 문체도 경쾌해서 가독성도 일품이다.

 

가장 주목한 건, 이경과 다운이 '의식을 공유한다는 설정'이다. 초반 이경과 다운의 모습이 번갈아 제시된다. 추녀에 가난한 이경과 눈이 돌아갈 정도로 예쁘고 부자집 딸인 다운. 살인사건 현장을 청소하는 알바생 이경과 명문대 성악과 력셔리 여대생 다운. 완벽히 대조된다. 그러다, 점점 이경과 다운사이 접점이 발견되고 (ex.생년월일이 같다.) 다운은 미래의 이경이 자신으로 설정된 꿈까지 꾼다. 결국, 둘은 서로의 몸을 오가며 의식을 공유하게 되는데... 이경과 다운이 의식을 공유하는 지점부터는 약 먹은 필립 K.딕 마냥, 이야기가 약간 모호해진다. 비판점은 아니다. 원래 작가의 설정이나 의도한 바라고 받아들였다.

 

전체를 지배하는 장르는 미스터리다. 이야기 초반, 스노우볼을 남기고 살해당한 여대생의 비밀, 임대리와 다운의 관계, 중반, 남사장과 임대리 중 과연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의 문제, 만신(무당) 유나가 밝힌 비밀들, 다운과 그 어머니의 미스터리한 행적 등등. 막판에는 남사장에다 왕태봉, 재수 없는 노파까지 등장해 한바탕 난장이 벌어진다.

 

강지영 작가는 여러 가지 소개를 맛깔지게 버무려 내는 재능이 탁월하다. (특히, 최근에 이슈가 되는 소재들) 위에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연예인 오디션, 연습생과 스캔들. 프로토폴 투약문제, 안티팬들의 행각, 오원춘 같은 인간백정, 새아버지와 가족의 이상한 관계 등. 거기다 마지막 장면도 흥미로운 소재가 쓰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어떤 작품(이름을 이야기하면 스포일러라.)이나, 동화 '왕자와 거지'와 유사하게 볼 수 있는 설정인데, 과감하게 시도한 점이 좋다. (만약, 강지영 작가가 능력이 부족했다면 뒤죽박죽 난잡해졌을지도 모른다.)

 

소재만 보면 어둡고 칙칙할 수 있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의외로 경쾌하고 발랄하다. 이것도 참 놀라운 점인데, 열심히 살아가는 이경의 긍정에너지 때문일 수도 있고, 작가의 톡톡 튀는 문체 때문일 수도 있다. <하품은 맛있다>는 재미있고 맛깔스러운 작품이다. 흔한 연애소설로 절대 오해 마시길. 다 읽고 나서, 알라딘 신간알리미에 강지영 작가를 등록했으며, 작가의 다른 작품을 죄다 검색해 봤다. 멋진 작가를 알게 되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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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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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안 좋고, 이래저래 일이 많아서 집중해서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펀치>는 일단 가독성이 좋다. 읽을수록 감칠맛 나는 문장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몰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사람을 쭈욱쭈욱 끌어당긴다. 재미도 있다. 개성 넘치는 (때론, 지나치게 과장된 듯 보이나) 인물들, 여고생의 삐딱하고 도발적인 시선, 믿기 어려운 설정 등 재미로 똘똘 뭉쳐져 있다.

 

하지만, 뭔가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뭐, 그게 대단한 사건이 아니면 뭐야? 이럴 분도 계시겠지만) 스토리는 아주 심플하다. 사회 지도층이나 속물인 방 변호사와 부인, 그런 부모를 경원시하는 딸 방인영이 있다. 여고생 방인영은 우연히 고양이를 죽이는 '모래의 남자'를 본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부모를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모래의 남자'는 과연 방인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남자작가가 삐딱하고 도발적(반항적)인 여고생을 제대로 그려냈다는 점이 놀랍다. 여고생 방인영은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지만, 난 방인영 사촌뻘인 여자아이를 알고 있다. 바로 김영하 작가의 단편 [오빠가 돌아왔다]속 경선이. 경선이가 좀 더 자라면('악의'까지 장착해서), 제2의 방인영이 될지도 모른다.

 

근데, 투정하나 하자면, 방인영의 심리변화에 강약을 두지 않은 점이 아쉽다. 뭔 말인가 하면, 인영은 시종일관 시니컬하고 반항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그러다 보니 후반부엔 읽기 거북하고 지치는 감이 있다. 이런 상상을 해봤다. 교회오빠에 사랑에 빠지는 인영의 모습이나, 길 잃은 고양이를 보고 가여워하는 인영을 중간중간 등장시키면, 도리어 삐딱함이나 악의가 더 부각되지 않았을까? 소금을 살짝 곁들이면 단맛이 더 강해지는 것처럼.

 

<펀치>는 재기발랄하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읽으면 왜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지 알게 될 것이다. 비윤리적인 설정은 그대로 보지 말고, 배후의 상징을 생각하는 게 낫다. 읽으며 모든 게 인영의 꿈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봤다. 너무 허무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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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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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느낌은 'TV단막극 같네. 인물들도 개성 넘치고, 재밌다' 뭐 이런 거였습니다. 그런데 읽을수록 몽환적인 느낌이 강해지더니, 중후반에는 완전히 '실험적인 이야기'가 되어 버렸네요. 작가의 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나, 작품 초반의 느낌을 그대로 이어가길 원했다면 아쉬울 수도 있습니다.

 

<밤의 여행자>는 설정이 독특하고, 분위기 묘사가 탁월합니다. 특히 작가의 창조한 베트남의 섬 '므이'는, 꿈속에서 여행했던 곳 같이 미스터리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읽는 내내, 실제 베트남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주인공 '고요나'는 [정글]이란 회사의 여행 프로그래머입니다. 직장 내 위치가 위태위태하더니 퇴출위기에 몰리고, 상사인 김조광에게 성추행까지 당합니다. 결국, 사표(p.30)를 던지지만, 상사는 장기휴가를 권하며 겸사겸사 여행상품의 존폐를 결정하는 일을 맡깁니다. 그래서, 요나는 '므이'로 가게 됩니다.

 

요나가 '므이'에서 만난 사람 중, 특히 주목한 이는 [작가]와 [럭]입니다. [작가]는 므이에 머물며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놀랍게도 그의 시나리오는 소설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 <밤의 여행자> 자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소설 속 [작가]가 A란 인물이 사고를 당하는 걸로 설정하면, <밤의 여행자>의 내용이 시나리오처럼 바뀌는 거죠.

 

[럭]은 요나와 사랑에 빠지는 베트남 남자입니다. 둘의 연애감정은 여러모로 의아합니다. 관계진전이 급작스러워요. 그냥 남남처럼 지내가, 갑자기 100년 동안 절절한 사랑을 나눈 것처럼 행동(p.171,186)하니 어색할 수밖에요. 그리고, 요나는 [럭]을 위해 시나리오 변경을 요구(p.186)하는데, 그 때문에 변화된 결말(p.198 요나의 XX)이 마음에 안듭니다. p.198이후는 전혀 몰입할 수 없었어요.

 

다 읽고나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요나의 꿈일지도 몰라.' '므이도 사람들도, 벌어지는 사건들도 모두 몽롱하잖아.' 소설 속 요나 역시, 노란 트럭에 치인 여자를 보며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p.190)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꿈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은 '므이'입니다.

 

<밤의 여행자>는 미스터리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훌륭한 작품입니다. 작가가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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