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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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인 '홍도'는 섬이름인가요?

 

아닙니다. 여자 주인공의 별칭이에요. 여자 주인공은 '이영'이라는 이름의 아가씨인데, 자기가 경진년생, 1580년생(그럼, 433살임)이라 주장합니다. 또한, 정여립이 자신의 진외증조부이며 '죽도 할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홍도'라는 별칭도 죽도 할아버지가 지어준 거에요. 그 장면을 보죠.

 

어린아이였던 이영이 조선지에 봄 그림을 그리고 시까지 적자, 죽도 할아버지는 이를 기특하게 여깁니다. 그리고는 "진길아, 오늘부터 영이를 홍도라 부르면 어떻겠느냐?" "종이에 꽃물을 들이고 마음이 동한 시를 적었으니, 여이가 당나라 시인 설도를 쏙 빼닮지 않았느냐? 설도의 자가 홍도니라. 영이도 홍도 모양으로 시를 짓고, 도가의 도인이 되어 세상을 두루 살피는 아름다운 여인이 되면 좋을 것이야."(p.25)라고 하죠. 다 읽고 나서, 이 부분을 다시 보면, 뭔가 예언 같은 느낌이에요.

 

- 1500년대에 태어났다니, 그럼 홍도(이영)은 정말 불로불사인가요? 아니면, 정신이상자인가요?

 

이건, 뭐라 직답을 드릴 수 없네요. 독자가 판단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에요. 다만, 작품내에서는 홍도가 불로불사가 되는 과정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 때문에 XX처리해서 이야기 하죠.) XX라는 인물(p.258)이 있어요. 홍도가 XX를 X는 상황(p.278,279)에서, 홍도에게 어떤 행동을 해줍니다. 홍도는 이 XX 덕분에 불로불사가 되죠.

 

- <홍도>의 설정은 어떻죠?

 

시대는 현대입니다. 비행기 안에 김동현이란 영화감독이 타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위해 정여립에 관한 자료를 모아두었어요. 그런데, 화장실에 간 사이, 어떤 여자(물론, 이영)가 슬그머니 동현의 자리에 앉아 자료를 읽고 있어요. 둘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동현은 이영에게 강한 호감을 느낍니다. 이영이 동현에게 하는 이야기가, 액자형식으로 등장하는데요. <홍도>의 중심사건인, 정여립의 기축옥사, 임진왜란, 신유박해 등이 전부 액자 속 이야기에요.

 

- 홍도(이영)란 인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홍도는 일단 아름답고, 시나 그림, 의술(p.220)에도 뛰어난 아가씨에요. 거기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뎌내는 당찬, 기개도 있죠. 두 장면을 소개하겠습니다.

 

[장면 1] 홍도의 아버지인 이진길은 기축옥사에 휘말려 서울로 압송됩니다. 이때 퇴기가 나타나 이진길을 희롱(p.116)하며 얼굴에 술을 붙죠. 이에 격분한 홍도는 퇴기의 다리에 매달려 허벅지를 물고는 질겅질겅 씹습니다. 그러고는 소리치죠. "내 아버지에게 수모를 주다니, 죽어라, 이년! 내, 네년을 오독오독 씹어 먹을 테다!"(p.119)

 

[장면 2] (스포일러 가능성) 홍도는 임진왜란 때, 정주옹주와 일본으로 끌려갑니다. 일본 놈들은 홍도와 옹주의 신분을 제대로 알지 못하죠. 이때 홍도는 자신이 정주옹주라고 주장(p.201)합니다. 정주옹주는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자식이었으니까요.

 

- 작품에 로맨스는 없나요? 남자주인공도 있겠죠?

 

물론 있습니다. <홍도>가 500년을 넘나드는 감동적인 사랑이야기인데 없을 리가요. 남자주인공은 '자치기'라는 이름의 머슴입니다. 자치기란 이름은 홍도가 지어준 거에요. 그 장면을 보죠. 죽도 할아버지는 어디서 누런 먼지를 뒤집어쓴 열서넛 먹은 사내아이를 데려옵니다. 사실, 이 녀석이 죽도 할아버지를 따라 나선 거였죠. 죽도 할아버지는 이 녀석이 이름이 없다며, 홍도에게 이름을 지어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홍도는, "흙투성이가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자치기 놀이가 그리도 좋은 모양이니, 이름도 자치기라 하면 좋을 듯합니다."(p.27) 이리하여 봉두난발 머슴은 자치기가 됩니다. 이들은 이후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나누는데요, 19금 장면(p.273,274)도 있습니다ㅋㅋㅋ

 

- <홍도>를 자신있게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혹시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물론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홍도>는 일단 재미있고, 500여 년에 걸친 사랑이 있으며, 종이를 뚫고 나올 것만 같은 등장인물이 넘실댑니다. 불로불사나 환생 같은 설정에 거부감을 가진 분들도, 막상 읽어보면, 작품의 설정에 빨려들 수밖에 없어요. 홍도가 너무나 진지하고 진지하기 때문이죠. 저 역시 어느 순간, 홍도가 433년 동안 살아왔다는 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또한, <홍도>는 기축옥사, 임진왜란 같은 역사를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재구성을 시도합니다. 예를 들어, 이진길의 죽음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정여립에 대한 기록에 의문을 품는 거죠. 홍도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기록과는 다른 견해를 제시(p.110)합니다. 물론, 전면적인 재구성은 아니죠. 아주 미미한 시도이지만, 시도 자체에 큰 점수를 주고 싶어요.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꼭 집어서, p.279~284 부분은 지나친 축약입니다. (스포일러 때문에 어떤 부분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너무 모호하고 흐릿해서, 원고를 뭉텅 덜어냈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전체를 조망해보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도 이렇게 처리했다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네요. 때문에, p.285부터는 힘이 상당히 빠집니다. 김대현 작가님도 분명, 이 점을 알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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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배명훈 지음 / 문예중앙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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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은 우주 출신 장교가 지구인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이자, 진실고백이고, 청혼이자 유언장이다. 한편으로 장시(長詩)를 읽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예쁜 일러스트와 어울려 마치 '한편의 예쁜 시집'을 손에 뒤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하지만,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충격이었다. 첫째, <청혼>은 기대했던 우주인과 지구인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둘째, 배명훈 작가의 작품임에도 따분하고, 지루하다.

 

두번째부터 보자. 외형상 연애편지이다 보니, 어투는 '~했어, ~놓여있지 뭐야'같은 구어체다. 시종일관 구어체가 이어지는데, 하나의 호흡으로, 하나의 어투로 끝까지 이어지다 보니, 따분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내용은 '버글러의 모순'같은 개념조차 난해한 것. 배명훈이란 이름만으로도 열광할 준비가 된, 자칭 SF매니아에게 이런 지루함은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구어체의 호흡을 끝까지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은데, 여성시점을 추가해 핑퐁식으로 '남자-여자-남자-여자' 구성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한다.)

 

첫번째를 보자. 처음 책소개를 보고, 우주인과 지구인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를 상상했다. '우주선에서 지구와 별을 바라보며 키스를 하겠지? 무중력상태에서 우주 유영을 하면서 두 손을 꼬옥 맞잡는거야. 아 두근두근. 이런 건, 배명훈 아니면 못하지ㅋㅋㅋ'. 하지만, <청혼>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아쉬운 것은 청혼의 상대방인 여성이 일방적 서술속에서만 존재하기에, 존재감 제로! 모호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감동적이어야만 하는 마지막 장면은 붕 떠버리고, 감동도 반감된다. 사랑이란 건, 혼자 하는게 아니다. <청혼>의 마지막 장면은, 혼자 울고, 고뇌하다 마지막에 시선을 제3자에게 돌리더니 "어때 감동적이지 않아?" 이러는 느낌? 손발이 오그라 들었을 뿐, 전혀 감동적이지 않다. (p.21같은 데이트 에피소드를 추가하거나, p.130같은 만남에 살을 붙여서 '청혼'의 대상인 지구인 여성을 생기있는 존재로 부각시켰다면, 좋았을 것이다.)

 

내용은 적군과 아군의 우주전쟁이다. 여기서는 2가지가 핵심인데, 하나는 '적 함대의 정체가 무엇인가?'라는 의혹. 다른 하나는 [데 나다 총사령관 VS 리델 감찰군 사령관]간 군내갈등이다. 리델 원수가 음흉하게 그려지는데 반해, 데 나다 장군은 참군인 그 자체다. 데 나다 장군의 마지막 행동은 인상적.

 

허나, <청혼>의 전쟁장면은 지루하다. 신무기나 함선에 대한 전제서술이 부족해, 전쟁묘사에 몰입할 수 없으며, 전쟁장면에 긴장감이 전혀 없다. 작가는 전쟁장면을 보충해 중편으로 개작하고, 그 후 장편으로 만들었다는데, 그냥 단편인 게 나았다. 정말 장편으로 쓰고 싶었다면, 남자주인공에 대한 상세서술(군내에서 현재위치에 이르기까지 과정, 지구인 여자친구를 만나게 된 계기 등), 남자와 여자가 연인이 된 과정 및 연애감정, 신무기나 함선, UES(궤도연합사령부) 대한 상세설정등이 필요하다. 경장편 정도인 지금 분량으로는 설명은 설명대로 안되고, 단편같은 임팩트도 없다.

 

<청혼>을 읽으며, 'SF가 가미된 사랑이야기란, 정말 쓰기 힘든 것이구나.'란 사실을 알았다. 한국 SF의 희망인 배명훈 작가의 작품을 찬양하지 못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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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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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의!!! 스포일러 있음!!!

 

1. 김영하를 읽는 이유!!

 

근래 한국소설을 멀리한 이유는 소재가 빈곤하고 재미없기 때문이다. 읽다보면 등장인물이 전부 비슷비슷하고, 소재도 항상 보아왔던 것이다. 그래도 꼭 찾아읽는 작가들이 있는데, 김영하 작가도 그 중 한명이다. 김영하 작가하면, 일단 떠오르는 건, <오빠가 돌아왔다>의 '경선이'다. 처음 작가를 접하고, 웃고, 좋아하게 된 작품의 주인공인데다, 힘든 군생활때 여러번 읽어서 친여동생 같은 느낌도 들기 때문에. 작가의 다른 작품 중 빼어난 작품이 많지만, 이상하게도 김영하!하면 "경선이!"하고 튀어 나오고,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게 된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며, "역시" "역시 김영하!!"를 연발했다. 한국소설에 대한 불만 1순위, 소재의 빈곤함은 이 작품 앞에선 딴나라 얘기고 등장인물은 거의 충격 그 자체다. 한문장 한문장, 만족스럽게, 즐겁게 때론 심각하게 읽고서 마지막에 또 배시시 웃어 버렸다. 이런 말이 되내이면서. "오~ 김영하를 모국어로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역서만 읽다 지쳐버린 나.)

 

 

2. <살인자의 기억법>의 혁신적 구성

 

일단, 가장 주목되는 건, 짧게 짧게 끊어지는 문단이다. 어떤 문단은 달랑 한 문장인데, 초반엔 약간 어색했다. 이런 의심까지 했다. "어라, 분량 확보를 위한거 아냐? 왜 이렇게 끊으셨을까-_-" 하지만, 읽다보면 알게 된다. 이런 구성이, 알츠하이머 환자의 파편적 기억을 상징하는 것이란 걸. 더욱 놀라운 건, 문단이 짧게 짧게 이어지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이 전혀 끊기지 않고, 도리어 살아 넘실댄다는 점. 가히 [김영하 매직]이라고 불러도 될법한 이것은, 김영하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3. <살인자의 기억법>은 SF ??

 

이야기 중반부터 SF로 읽혔는데, 이 또한 엄청난 충격이었다. 자세히 보자. <살인자의 기억법>은 병수가 보고 느낀 것이, 병수의 관점에서 이야기 되기에, 서술된 내용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한마디로, 쓰여져 있지만 그대로 믿을 수 없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쓰여있는 사실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

 

[개]를 통해 이야기 해보자. [개]는 초반부터 결말을 암시하는 핵심소재이다. 병수는 [옆집 개]가 마당에 똥을 싸고 짖는다며 욕설을 하는데, 은희는 그 개가 [우리집 개](p.43)라고 한다. 병수는 은희에게 집에 도둑이 들었고 개까지 없어졌다고 하소연한다. 그러자 은희는 원래 [집에 개가 없다.](p.85)고 한다. p.125에서는 은희에 의해 부정되었던 개가 다시 등장한다. 이처럼 [개]는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고, 우리집 개인 동시에 옆집 개이다. 이런 개방성은 SF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컨데, 필립 K.딕의 <유빅>에는 '반프리콕'인 패트(패트리샤 콘리)란 인물이 등장한다. 패트는 시간을 역행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과거로 돌아가서 현재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능력(미래 통제능력)을 갖고 있다. 현재 존재하는 것으로 이미 서술된 사실일지라도, 패트에 의해 곧바로 부정되어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 될수도 있다. 따라서, 독자는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대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살인자의 기억법> 역시 마찬가지다.

 

 

4. 알츠하이머가 아닌, 다중인격의 발현 가능성

 

병수가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 장면(p.13)에 은희가 등장하기에, 1) 알츠하이머 자체를 공(空)으로 보아, 알츠하이머가 아닌 다중인격의 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2) 은희는 XXXXX로 실제로 함께 병원에 갔고, 병수가 착각했을 뿐이라고 보면, 알츠하이머는 공(空)이 아니고, 알츠하이머에 의한 다중인격의 발현으로 볼 수도 있다. (2번 해석론이 주류일 것) (하단 보충설명 참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병수에 의해 그려지는 은희의 모습이다. 왜 병수는 은희를 창조했을까? 1) 은희를 병수의 또다른 모습 즉 병수의 유년시절 자아로 볼 수도 있고, 2) 먼저 죽은 누이에 대한 기억이 은희로 발현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3) 아버지와 함께 살해한 어린아이(p.143)에게 병수는 무의식적 죄책감을 갖고 있었고, 이것이 은희를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 살해당한 아이의 이름이 '은희'(p.143)임을 감안하면 3)해석이 유력하다. (물론, 1) 2) 3)이 종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5.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과의 연관성

 

영화 [장화, 홍련]과 <살인자의 기억법>은 상당한 연관성을 갖는다. 영화 속 수미(임수정)와 수연(문근영), 두 자매는 새엄마 은주(염정아)와 갈등하고 중후반까지 격렬하게 대립각을 세운다. 3인의 존재는 너무나 생생해 의심의 여지가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수연과 은주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들의 갈등은 수미가 수연과 은주의 인격을 창조하여 벌인 1인3역의 1인극이었던 것이다. (하단 보충설명 참조)

 

<살인자의 기억법>의 병수는 1) 지켜내야 하는 은희 2) 은희를 노리는 살인마 박주태 3) 끈질기게 추격하는 안형사란 인물에 둘러쌓여 있는데, 이들은 모두 병수의 머리속에서 재창조된 인물이다. 즉, 존재하지 않는 인격을 (재)창조하고, 원맨쇼를 벌인다는 점에서 병수와 수미는 완벽히 일치한다.

 

 

6.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어야 하는 이유!!!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나서, 뭔가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자기전에 '이런 내용을 쓰면 어떨까?'라며 이런저런 생각도 해보고, 의외로 SF적인 내용을 해석하려고 필립 K.딕의 여러 작품을 다시 읽었다. 영화 [장화, 홍련]도 다시 한번 봤다. 읽어서 즐겁고, 뭔가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처럼 훌륭한 소설은 없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며 작가의 숨소리를 느꼈다. 이는 모국어로 읽지 않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작가 김영하의 존재는 한국어를 쓰는 이들의 영광이자, 축복이다. 번역서가 아닌, 우리 작가의 소설에서 실로 오랜만에 큰나큰 만족감을 느꼈다. <살인자의 기억법>이 고전 반열에 오르는데 걸림돌은, 오로지 시간의 흐름뿐이다.

 

 

 

 

 

 

 

 

* 보다 쉽게, <살인자의 기억법>의 장점 중 몇 가지만 열거해 보겠습니다. 1) '재미'라는 소설의 기본에 충실하다. (한마디로 무지 재밌다^_^) 2) 혁신적 구성과 충격적 반전. (일본소설의 왠만한 반전은 명함도 못내밈) 3) SF적 향취 (김영하 작가에게서 SF의 향기를 느끼다니, 황홀함ㅋㅋㅋ) 4)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열린 단초들. (예를 들어, [개], [박주태] 등)

 

 

* 4번 항목에 대한 보충설명.

 

뭐낙 직접적인 스포일러라, 말미에서 추가설명 합니다.

 

필자는 '다중인격의 발현'이란 점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 들입니다. 물론, 은희는 사회복지사를 딸로 착각한 것이지만, 그려지는 은희의 모든 모습이 사회복지사의 그것은 아닙니다. 즉, 현재 존재하는 사회복지사에 병수가 만들어 낸, 자아가 겹쳐졌다는 것이죠. 결국, 병수는 1) 사회복지사를 바탕으로 은희라는 인격을, 2) 형사 박주태에서 살인마 박주태 인격을 만들고, 3) 자신의 쫒는 추격자의 인격으로 안형사를 탄생시킵니다.

 

* 5번 항목에 대한 보충설명

 

[수연과 은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서술은 배경이 되는 시골집에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수연과 관련, 수연이 수미가 창조한 인격인지, 실제 시골집에 머무르는 유령인지 견해가 분분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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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 1 - 영웅의 탄생
김성한 지음 / 나남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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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 외적인 부분

1) 이북 사투리

<요하>를 이야기하는데, 이북사투리를 빼놓을 순 없다. 놀랍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들은 이북사투리로 이야기한다. 배경이 고구려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거지만, 초반부 상당히 당황했다. "아슴채이타"(p.23,44,247), "그렇재이탕이까"(p.36) 같이 어리둥절한 말도 있고, 타이핑조차 불가한 'ㅁ과 ㄱ의 쌍받침 글자'(p.47)도 있다. 편집자는 독자를 배려해서 상당부분 괄호로 뜻을 풀이해 주었고, (아슴채이타는 "고맙습니다", 그렇재이탕이까는 "그렇지 않다니까"는 뜻) 괄호가 없는 부분은 문맥상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젊은 독자들이 이북사투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당히 걱정된다. 인물의 대화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괄호속 설명과 추측을 거쳐 이해해야 하기에, 독자로선 상당한 부담이다.

2) 독특한 목차

목차에 줄거리가 실려있는게 독특하다. [목숨을 건 임무]라는 큰 타이틀 밑에 [수양제가 고구려 정벌을 선포했다는 소식이 무여라 성에 전해진다. 능소는 적군의 정황을 정탐하기 위해 중국어에 능통한 돌쇠 등의 부하들을 이끌고 적지에 침투한다.]라고 줄거리가 있다. 이는 마치, 대하사극에서 전편을 간략하게 나레이션 해주는 것이나, 무성영화의 변사가 도입부에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3) 상세한 지도

앞부분에 고구려의 강역이 컬러로 실려있고, 뒤에는 '고구려 주요도', '수대의 중국 주요도', '북방 민가구조의 일례'가 있다. 이는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평곽으로 끌려가서 야장질을 하고(p.51), 돌아온 지루가 평양에서 돌아왔다고 거짓말 하는 장면(p.68)을 보자. 만약 지도가 없었다면, 평곽의 위치를 알 수 없기에 대충 넘어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평양과 평곽이 어마어마하게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체 말이다. 또한 상세한 지도덕에 주요 무대인 옥저마을과 무여라성의 위치, 수나라의 침입 경로등도 명쾌하게 확인할 수 있다. 

(삼국지 이야기 잠깐. 어릴 때 삼국지를 읽으며, 촉과 오가 형주를 두고 빌리네 마네 하는 걸 이해 못했다. 지도가 실려있지 않아서 형주의 위치가 어디인지,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 형주의 위치와 크기를 확인하고야, "아, 둘이 싸울만 했구나" 했다.)


2. 소설 내적인 부분

1) 능소와 상아의 사랑, 그리고 지루의 악행

초반부 시선을 집중시키는 인물은 지루이다. 지루는 상아를 짝사랑하며, 상아의 연인인 능소를 증오한다. 야장(대장장이)인 덕에 홀로 마을에 남아, 상아를 차지하려 애쓴다. 능소가 10인장이 되어 한동안 소식이 없자, "평양성 친구한테서 편지가 왔단 말이야. 옥저마을에서 온 능소라는 10인장이 평양 미인하구 결혼했단 이 말이야"(p.89)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상아의 마음이 변치않자, 어머니 약을 구해 오는 상아를 강제로 덮치기까지(p.95) 한다.

지루의 악행은 끝이 없다. 전쟁이 피해 마을사람들 모두가 요동성으로 들어간 뒤(p.170), 노역을 하게 되는데, 이를 담당하던 지루는 (지루는 야장에서 군인으로 편입됨p.143) 유독 상아와 상아모친, 능소모친에게만 모질게 군다. "낮일이 불실한 사람은 밤일루 벌충하기루 돼 있지요." "오늘 보신대로 다른 사람덜은 다 잘했는데 아즈망이너어(오타아님) 한 일이 좀 부족해서 벌충을 받아야겠소다."(p.217) 결국, 하루종일 노역에 시달리는 상아와 모친.

이후, 전쟁이 벌어지고 능소와 지루는 같은 부대에서 잠깐 머물게 된다. 능소는 이미 승진(?)하여 20인장이 되어 있었고, 지루는 비록 계급은 낮으나 을지문덕의 직속궁병이었다. 그런데 지루는 상급자인 능소에게 충격적인 도발을 한다. "조심하시오. 20인장님 쥑이는 연습을 하구 있었소다." "어떻게 하면 한칼에 목을 쌍둥 잘라베릴 것인가, 돌아앉은 목덜미를 더듬어 보던 질이오다."(p.407,408) 능소는 "이눔아, 당장 쥑에 봐라"하고 치를 떨지만, 지루는 뻔뻔하기만 하다. 이 정도면 거의 사이코패스 수준 아닌가?

2) 상아의 고뇌, 상아네와 능소네의 갈등.

모든 남자들이 부역이다 군대다 끌려가고, 옥저마을엔 여자들과 노인만이 남게 된다. 상아는 능소만을 기다리지만 소식은 도통 없고, 기나긴 기다림에 상아는 지쳐간다. '언젠가 능소는 결혼하면 한번 바다에도 가고 국내성을 거쳐 평양성까지 함께 구경가자고 했었다. 그러나 겨울이 가고 봄도 가고 여름이 와도 편지 한 장 없었다. (중략) 얼굴에는 수심이 가실 날이 없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습관이 생겼다. 언제나 돌아올까. 돌아오기는 오는 것일까.'(p.120.121)

상아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능소모친의 냉대다. 지루가 상아를 덮쳤을 때(p.95) 상아는 가까스로 위험을 모면하지만, 능소모친은 상아가 이미 몸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능소를 만나서는 "상아 갈라…말이다. 성한 줄 아니? … 다 틀렜다."(p.258) 라고 까지 해버림) 그러니 상아가 뭘하든 트집이고 매몰차게 대한다. 상아가 잠깐 늦자, "늦게 댕기는 갈라 치구 행실이 좋은 거 보지 못했다"(p.125) 이러고, 마주 보기 싫어서 같이 방아찟는 것조차 거부한다.

3) 능소의 대활약상

능소는 고구려 황제의 '즉위 20주년 기념 사냥대회'에서 2등을 하고, 10인장으로 발탁(p.64)된다. 약광장군에게 첫 임무를 받은 능소는 수나라 영주장사를 사로잡는(p.111) 전과를 올리며 승승장구한다. 20인장으로 승진(p.186)하는 능소.

능소의 활약상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수나라 최홍승을 혼쭐내는 장면(p.398)이다. 을지문덕이 수나라 군영을 찾아가 담판을 하고 돌아오자, 최홍승은 을지문덕을 다시 유인해 내려한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 도리어 억류되고 만다. 연개소문은 능소에게 최홍승은 "부아가 터지도록 놀려 주다가 적당히 돌려 보내라"(p.397)고 명령한다. 이에 능소는 최홍승을 혼구멍을 낸다. "야아, 너 여기가 어디멘 줄 아니? 이 간나새끼 죽구 싶어?" "이 똥뙤눔아, 넌 우리 아버지의 원쉬다." "나뿐 눔의 새끼. 우리 가족이 성안에 있다. 이판저판 우리 가족은 죽은 게구 대신 널 쥑에 베레야겠다."(p.398) 거기다 최홍승의 무릎까지 꿇리는 능소. 20인장이 수나라 장수를 농락한 통쾌한 장면.

4) 성(요동성)안에서의 생활

수나라의 침략이 임박하자, 옥저마을 주민들은 요동성 안으로 이주(p.170)한다. 고구려의 청야전술인데, 그간 청야전술만 알았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민들을 이주시키는지, 성안에서 주거를 어떻게 배분하는지, 어떠한 노역을 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요하>를 통해서 상당부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또한 일반백성들 관점에서 청야전술을 바라보게 된것도 큰 수확이었다.

전쟁에 임한 처절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수나라 수십만 대군이 결국 성을 부수고 침입(p.330)하자, 성안의 노인과 여성들도 도끼를 들고 결사항전을 다짐한다. 작가는 이렇게 묘사한다. '불에 비친 여자들의 모습은 사람이 아니었다. 빗물과 흙탕물에 젖은 몰골에 살기를 품은 두 눈,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었다. 행여 어둠 속에서 뙤놈들이 덤벼들면 대갈통을 내리치라고 했다. 무서운 그들의 눈, 장막을 나서 박달나무 더미로 뛰어가면서 능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눈들이라고 생각했다.'(p.331)


3. 마무리

1) 살수대첩은 알지만, 을지문덕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으로, 어떻게 싸웠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요하>에는 수백만대군 물리친 고구려의 기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을지문덕의 놀라운 지략과 기개, 정말 대단하다. (살수대첩은 2권 p.22부터 시작됨)

2) [고구려 vs 수나라]라는 국가적 차원 대립에, [능소, 상아 vs 지루]라는 개인적 갈등을 병치함으로써 이야기가 깊이있고 생생하다. 능소를 기다리는 상아의 마음, 상아를 노리는 지루의 집요함, 능소와 지루의 갈등, 인물간 갈등이 굉장히 치밀해서 읽는내내 "드라마로 만든다면, 능소역은 누가 어울릴까? 상아는 XXX가 딱인데ㅋ" 이랬다. 엄청난 몰입도.

3) 정겨운 옛 풍속과 사투리를 접할 수 있다. 옥저마을에는 정신적 지주, 우만노인이 있다. (사실, 우만노인의 리더쉽은 본문에서 자세하게 논의하려 했었다.) 우만노인은 헛소문에 흔들리던 상아를 안심(p.92)시키고, 상아를 든든하게 지켜준다. 마을 사람들 모두 우만노인을 공경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예신제(p.23)와 같은 옛풍속, 식생활, 주거구조 등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 <요하>를 다 읽고 나니, 이북사투리가 아주 친근하다. 초반 사투리에 대한 우려를 늘어놓았지만, 진정한 독자라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 장담한다. 본인은 1권 p.100 무렵부터 이북사투리에 대한 거부감이 완전히 사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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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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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단편중에서 표제작인 [유쾌한 하녀 마리사]만 읽었고, 이건 그에 대한 후기입니다.  

천명관 작가에 굉장한 호감을 갖고 있다. 군에 있을때 읽은 <고래>가 뭐낙 좋았고, 반복해 읽으며 팬이 되기로 결심까지 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시작부터 불안했다. 편지로 시작하는데 편지체가 작가와는 어울리지 않았고 겉도는 느낌까지 들었기 때문. 그리고 따분하다. 편지로만 소설 대부분이 구성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 

음…마지막 장면. 이건 실망감의 극한. 마리사의 오두방정은 신인배우가 연기하듯 어색하고 코메디 같다. 설정도 너무 뻔하고…

 

* 출간하자마자 샀는데, 이제껏 안 읽다가 오늘에야 읽었어요. 무려 4년 가까이 책장에 방치해 두었다니… 부지런히 읽어야지. (그리고 지금까지 이 작품이 장편인 줄 알았어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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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11-07-1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래>가 책장에서 자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못읽었고요. 이거 <백경>같은 이야기 아니죠?ㅎㅎ

쥬베이 2011-07-13 22:25   좋아요 0 | URL
<고래>는 진짜 재밌어요. 전 군대있을때 읽었죠ㅋㅋㅋ
초강추!!